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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주홍 글씨 - 호손 (김태성 옮김, 삼성당)

by handaikhan 2025. 3. 26.

 

너새니얼 호손 - 주홍 글자 (1850년)

 

그러나 지금 이 발을 내디딤으로써 그녀의 일상 생활이 시작되었다. 죽지 않고 살려면 오직 참는 것뿐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자기 성품의 평범한 힘으로 그 굴욕적인 생활을 지탱하고 수행해 나가야 했고, 어쩌면 그 밑에 깔려서 신음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미래라는 희망이 박탈되었다. 현재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미래의 힘을 번다는 것도 이제 불가능하다. 내일은 내일대로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도 저 저주스러운 태양이 있는 한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날은 다 저마다의 시련을 갖고 그녀를 맞이할 것이며, 그것은 지금의 형언하기 어려운 굴욕과 조금도 다름없는 것이다. 젊은 그녀의 많은 날들은 그녀가 짊어져야 할 같은 양의 짐을 갖고 어김없이 다가올 것이며,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녀는 그 짐들을 받아들일 의무가 주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치옥 더미에는 쓰라린 기억들이 하루하루 쌓여지리라.

설교자나 도학자들은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일반적인 죄악의 표상으로 삼을 것이며, 여자의 약점이나 죄수러운 동물적 욕정을 구체적으로 또 명백히 설명할 때 그 산 증거로 지적하리라. 그리하여 세상의 젊고 순결한 처녀들은 가슴에 주홍 글씨가 새겨져 있는 저 여자를 보고 새삼 도덕심을 굳게 다져야 할 것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녀의 개성이란 아예 도태되어야 할 것이다. 단지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욕된 호흡을 계속할 뿐, 양친의 자식으로 축복받으며 태어났던 그녀, 사람들의 호감과 친절을 받으며 자라났던 소녀, 장차 현숙한 어머니가 될 예비 신부로서의 그녀, 이렇듯 평범한 여자였던 그녀가 지금은 죄인의 모습으로, 죄의 실체로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여자로 전락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무덤 위에는 그녀가 그곳까지도 지니고 가야 할 일평생의 치욕만이 쓸쓸한 그녀의 묘비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외적인 업고로부터 탈출할 수는 없었다. (P.46-47)

 

대중의 마음은 전제적인 것이라서 사실 하찮은 정의이지만 누구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면 그것을 거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꾸준히 그들의 관용을 애원한다면 정의 이상의 것도 서슴없이 풀어 주는 수가 있다. 사회는 헤스터 프린의 태도를 이런 애원이라고 받아들였기에, 과거의 희생자였던 그녀에 대해서 그녀가 희망하는 것 이상으로, 또 그녀가 받아야 할 값어치 이상으로 호의에 찬 얼굴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위정자들이나 일부 지식인들이 헤스터의 이런 아름다운 성품이 일반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는 데에는 좀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국의 전통 사회에서 교육받은 그들이었기에 꽤나 보수적이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들이나 서민층이나 편견을 가진 점에서는 매일반이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편견이 단순한 감정적 문제가 아닌 이성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 편견이 이성이라는 철통 같은 밀실에 갇혀 있었으므로 그것을 파괴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명예와 도덕, 관습으로 굳어진 그들의 주름살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거의 자비롭다고 할 만큼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뀔 것도 같았다. 세월과 망각이라는 자연적 필요 요소에 얽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었으므로 사실 그들의 엄격한 사고 방식은 필요 이상으로 생활 가운데 자리잡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위가 높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에게 도덕적 규범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더욱더 그것을 고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대체로 감정적이게 마련이다. 그들은 위선이 필요하지 않은 계층이어서 감정 또한 쉽게 바뀔 수 있다. 군중 심리에 휩싸이기 쉬운 것이 또한 그들이다. 헤스터의 선행이 그들의 거실에서 심심찮게 거론되면서부터 이미 그들은 마음 속으로 그녀를 용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의 가슴에 수놓인 주홍 글씨를 미화시키기까지 했다. 간통죄의 상징으로서가 아닌, 그 사건 이후로 그녀가 쌓은 선행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p.121)

 

"헤스터,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의 평화를 찾았소?"

그녀는 목사의 시선을 피하며 자기의 가슴 위를 쓸쓸히 내려다보았다.

"당신은요?"

"찾을 수가 없었소! 절반밖엔...나 같은 인간이, 또 나와 같은 길을 걸으면서 그 밖의 무얼 바라겠소? 내가 무신론자였다면, 양심이 굳어진 사람이었다면, 거칠고 잔인한 성격이었더라면 벌써 오래 전에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것이오! 아니, 찾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흔들리지조차 않았을 것이오! 그러나 내 영혼이 ㅇ런 상태에 있으니만큼 원래는 선량하기만 했던 내 모든 능력들이 이제는 나의 정신을 고문하는 철저한 고문자가 되었구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내 영혼이 이제는 거추장스럽기까지 하구려. 헤스터, 세상에 나처럼 비참한 인간이 또 어디 있겠소! 하루하루가 지옥 같기만 하니..."

"사람들은 당신을 존경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베풀고 계시고요. 그것만으로도 속죄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것만으론 마음의 위안이 되지 않으시나요?"

"더 비참할 따름이오, 헤스터! 그래서 더욱 비참해지는 것이오! 그들로 인하여 나는 위선이라는 죄악을 또다시 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이렇다 할 신념도 없이 습관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오. 이제까지 일해 온 연속적인 습관의 한 형태일 따름이지요. 따라서 그것은 망상에 불과할 뿐이라오. 이렇듯 파멸된 영혼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감히 남의 영혼을 구제할 수 있겠소? 검게 오염된 영혼의 소유자인 내가 말이오. 어찌 씻을 수 있단 말이오? 사람들의 존경은 나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키오. 차라리 그들로부터 존경이 아닌 질시, 경멸, 무관심을 받는다면 오히려 좋겠소! 헤스터, 설교 단상에 올라선 내 얼굴에서 마치 천상의 빛이라도 비쳐 나오는 것처럼 나를 쳐다보는 그 경건한 수많은 시선들, 어찌 위안이 될 수 있겠소? 나는 그들의 태도가 경건할수록, 더욱 바늘 방석에 앉은 듯 불안하오. 진리에 굶주려서 나의 말이 흡사 오순절의 하느님 말씀이나 되는 것처럼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그들을 대하면서 - 그들이 존경하는 내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그게 흉측한 암흑이라는 현실을 깨닫는 것 - 이것을 위안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사회적인 나와 내면적인 나를 비교하고서 어처구니없이 마음이 괴로워 차라리 실소해 버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소! 그것을 본 악마도 웃었을 것이오!" (p.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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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년 7월 4일 ~ 1864년 5월 19일)

미국의 소설가, 외교관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손의 아버지가 그가 7살일 때 병으로 사망한 후 그는 외삼촌에게 맡겨졌고 보든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리고 보든 칼리지에서 후에 미국의 제14대 대통령이 되는 프랭클린 피어스와 친구가 된다.
1825년에 대학교를 졸업한 후 호손은 어머니 집에서 살며 문학 활동을 했다. 1828년에 익명으로 첫 작품인 '팬쇼'를 출판했지만 자신은 이 작품을 부끄럽게 여겼는지 출판본들을 모두 회수해서 폐기했다.
1842년 자신보다 5-6살 어린 소피아 피바디와 결혼했다. 당대 시각으로 보면 둘다 상당히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었다. 가정이 생긴 호손은 펜을 내려놓고 세무서 직원으로 일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와중에 호손은 세무서에서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동안 가정을 위해 힘썼으니 이 기회에 쓰고 싶어하던 글을 써보라며 호손을 격려했다. 감동받은 호손은 작품 활동에 매진하여 1850년 엄격한 청교도 사회의 모습과 17세기 미국 청교도들의 위선을 묘사한 '주홍 글자'를 발표했다.
당시 청교도들은 주민들을 마녀로 몰아가 고문하거나 처형하곤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인 세일럼 마녀 재판의 판사였던 존 호손(John Hathorne)이 바로 호손의 고조부였다. 호손의 원래 성 또한 Hathorne이었지만, 선을 긋고 싶어서 w를 추가하여 Hawthorne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조상이 탄압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낀 호손은 이러한 배경을 '주홍 글자', '일곱 박공의 집' 등 자신의 작품에 투영시켜 청교도 정신의 위선적이고 편협한 면모를 비판했다. '일곱 박공의 집'에서 판사인 핀천은 자신이 갖고 싶어하던 땅의 소유주를 마녀 재판에 회부시켜 화형 선고를 내리고 자신이 땅을 차지하지만 핀천이 급사하고 그의 가문은 저주를 받아 몰락한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기독교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돋보인다. 호손의 작품들은 청교도 사회를 비판하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그린다. 더 나아가 인간의 죄를 탐구하였다.
문학적으로 보면, 호손은 미국 주류 청교도 사회에서 벗어난 글을 쓰는 것의 시초 격 되는 인물이다.
모더니즘과 페미니스트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 소설의 주홍 글자는 지금도 페미니즘에 의거한 해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1853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친구 피어스에 의해 영국 리버풀의 영사로 임명되어 영국에서 1857년까지 영사직을 맡았다. 영사직을 그만둔 후 호손은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견문을 쌓았다. 그러다 1860년에 귀국하여 이탈리아 여행을 바탕으로 쓴 '대리석 목양신'을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여생을 보내다가 1864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그는 절친인 프랭클린 피어스와 함께 요양 목적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호손은 안타깝게도 여행을 하던 중 여행지에서 사망하게 되었고, 절친한 친구를 잃고 크게 상심한 피어스는 결국 술에 절어 살다가 5년 뒤인 1869년에 쓸쓸히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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