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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푸른꽃 - 노발리스 (신영환 옮김, 종이나라)

by handaikhan 2024. 2. 2.

 

노발리스 - 푸른 꽃 (1802년)

 

하인리히의 부모님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벽시계의 째각거리는 소리가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었고, 이따금 불어대는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렸다. 그리고 밝은 달빛이 간간이 방으로 새어 들어왔다. 하인리히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한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열망을 불러일으킨 것이 과연 값진 일일까?"

그는 중얼거렸다.

"내겐 큰 욕심도 없어. 그렇지만 한 번만이라도 푸른 꽃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대체 이런 생각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군.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글로 쓸 수도 없단 말이야. 이런 마음은 처음이야. 마치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선잠이 든 채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 같아. 이 세상에서 나 말고 과연 누가 푸른 꽃에 대해 이토록 성가실 정도로 생각하고 또 생각할까? 하긴, 푸른 꽃을 보고 싶은 이 낯선 열망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p.8)

 

하인리히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다. 그는 여태 그가 태어난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대한 것은 그저 이야기 속에서나 들을 뿐이었다. 책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영주의 영도하에서 소박하고 조용하게 생활했다. 영주의 호화로움과 안락함은 후세의 부유한 시민이 비록 호사스럽지는 않다 하더라도 자신과 가족과 함께 누렸던 물질적 행복과는 비교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바쳐서 마련한 세간이나 재산들에 대해 훨씬 더 깊은 애정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소유물은 매우 소중하고도 훌륭한 것이었다. 자연의 신비와 그 속에서 발견된 물질의 근원이 직관적인 영혼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들은 새로운 산물로 만들어내는 알려지지 않은 진기한 기술과 새로운 산물을 만들어낸 곳은 아주 멀리 떨어진 미지의 도시라고 하는 허황한 소문들, 고대 문명인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심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에 대해 더욱 집착했다. 잡다한 그릇이라도 매우 소중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수 세대를 거쳐도 온전한 유물로 남아 전해질 수 있었다. 그리하여 특별한 은총이나 행운을 입은 신성한 보물로 취급되기도 했으며, 여기저기에 살고 있는 가족과 제국 전체의 번영은 재산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에 좌우되었다.

목가적인 빈곤은 꾸밈없이 정직한 단순함으로 이 시대를 풍미한 하나의 덕목이 되었다. 배분되는 몫이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빈곤한 삶 속에서 이 조그만 보석들이 보다 찬란하게 빛났다. 사람들은 이에 열렬한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빛과 색깔과 그림자를 교묘하게 배치한다면 지금까지 감춰져 있던 세상의 영광이 밝혀질 것이며, 새롭고도 드높은 시각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사실이었다면, 어디에서든 유사한 분배와 경제체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반면 보다 풍요해진 근대 시대는 개성 없이 진부한 날들의 지루한 반복일 뿐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에는 언제나 고도의 영적인 힘이 공백 기간에 분출하듯 등장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눈으로 보기에는 땅 위와 땅 밑의 풍부한 천연 자원들이 야생의 원시림과 끝없이 펼쳐진 광야에서 산재하는 것처럼, 투박하고 가공되지 않은 원시시대와 부와 예술과 지식으로 넘쳐나는 근대 시대 사이에는, 단조로운 장식품 이면에 보다 높은 형태의 자산을 감추고 있는 지적이고도 낭만적인 시대가 존재한다. 

어느 누가 황혼으로 붉게 물든 세상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낮의 태양과 밤의 어둠이 교묘하게 섞여 찬란한 빛을 만들어내는 황혼은 누구에게도 매력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인리히가 살고 있는 시대로 돌아가서 경이로움이 가득한 새로운 경험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P.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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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 요한 하위징아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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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는 아버지와 태어난 고향을 떠났다. 마음속엔 작별의 슬픔이 밀려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난생 처음으로 이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인리히는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 어떤 낯선 감정을 느기게 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익숙한 세계와 결별해야 했고, 마치 낯선 해변에 버려진 것과 같았다. 하인리히는 끝없는 슬픔에 사로잡혔다. 여태까지 하인리히는, 어떤 존재든 견고하게 변함 없이 그 자체의 속성상 필수 불가결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익숙한 세계와의 이별과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를 경험하게 되면서, 그는 지금까지 믿어왔던 견고한 존재들도 결국 변하고 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죽음을 대했던 그때처럼, 이별의 경험도 그의 마음속 깊숙이 잊혀지지 않고 남았다. 이별의 경험은 어두운 밤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한동안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그 시절의 기억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생김에 따라 차차 이별도 또 하나의 삶의 과정처럼 익숙해졌다. 어머니는 하인리히의 손을 어루만지며 이별의 고통을 위로했다. 하인리히는 비록 이별을 했다고 하지만, 이별 이전의 시간들이 완전한 상실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들을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새롭게 가슴에 품게 되었다. (P.28-29)

 

사람의 마음이란 언제나 유희와 다양함을 추구하는 법이지요.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사회 속에서 인정받는 능력을 발휘하고 창조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삶은 다양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될 겁니다. (p.31)

 

성직자가 되어서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거부할 필요가 없단 말일세. 학자들은 좁은 방에 갇혀 세상과는 격리된 채 연구에만 몰두하지. 우리가 따라야 하는 규율이란 것을 바로 그런 세상물정도 모르고 비사교적이며 경험도 없는 학자들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어. 진정한 세상의 일원이 되지 못한 학자로서의 고독한 삶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사상이라는 것들은 쓸모없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생활에 적용할 수 없는 무용지물 아니겠는가? 하지만 슈바벤에 가면 현명하고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야. 평범한 사람들 중에 바로 그런 사람이 있는 법이지. 자네는 마음에 드는 인간의 지식을 습득하면 되고, 그러면 그 어떤 학자들에게도 뒤지 않는 지식과 지혜를 갖게 될걸세. (p.33-34)

 

끊임없이 생겨나는 우연한 사건들과 복잡하고도 뒤얽힌 세계에서 오로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기민하게 행동하는 것보다, 비록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학자들의 지식이란 복잡한 현실과 달리 명쾌하기 때문에 세속사의 미로를 뚫고 나올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지 않나요?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인간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는 경험을 통해서 획득하는 방법으로, 복잡하고 뒤얽혀 있으며 명쾌한 목적 없이 셀 수 없는 왜곡과 수많은 기회에 맞서는 것이지요. 다른 방법은 직관을 통한 것인데, 그 모든 복잡함을 단숨에 뛰어넘는 것이지요. (p.35)

 

자연은 그 자체로 아주 훌륭한 미술 선생님이야. 자연은 아름답고도 놀라운 광경들을 무한히 보여주며, 다양한 색상과 빛과 그림자들을 만들어내지. 그리하여 잘 숙련된 손재주로 물감을 섞고 색을 만들어내는 방법만 숙지한다면, 자연 그 자체를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있을걸세. 나이팅게일의 노래와 몰아치는 바람, 눈부신 태양과 그 빛 그리고 자연의 갖가지 형태는 우리들을 즐겁게 한다네. 왜냐 하면 아름다움을 보게 되면, 인간의 오감은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자연이 만들어낸 그 찬란한 아름다움에 모든 감각이 감동으로 충만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이것들을 흉내 낸 예술품들 또한 인간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거라구. 대자연의 여신도 자신으로부터 예술적인 극치를 표현하려고 할 거야. 그러니까 자신의 일부를 우리 인간으로 변형시켜 표현한 것 아니겠나. 자연은 바로 자신에게서 나온 찬란한 아름다움에 도취되는 셈이지. 온갖 사물로부터 매력과 감동의 요소를 찾아내 다양한 방법으로 언제 어디서나 그 아름다움과 감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예술이라네.

그는 예술에 대한 그의 견해를 계속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시는 다르다네. 시는 외부 세계와 닮은 점이 전혀 없지. 자연의 모습을 닮지 않았어. 시라는 예술은 연장이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눈과 귀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어. 단지 말 한 마디 듣는 것이 이 비밀스러운 예술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야. 시는 영혼의 문제야. 다른 예술들이 외부의 감각을 일깨워 감동을 주는 것이라면, 시란 새롭고 경이로우며 감동적인 사고를 통해 인간 내면의 성스러운 공간을 충족시켜 주는 거거든.

시인은 인간들의 내면을 어떻게 하면 휘저을 수 있는지 그 비밀을 알고 있다네. 언어라는 도구로 인간이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야. 인간이 내면의 깊은 동굴에서 바깥으로 나와 세상의 빛을 맞이하는 것처럼, 고대와 미래의 시간이 공존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불가사의한 지역들과 낯선 사건들을 통해서 인간들을 이미 익숙한 현재로부터 끌어내는 것이 바로 시라네. 낯선 언어들을 듣고, 나중엔 그 언어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시인의 언어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지. 시인은 평범한 단어조차 신비롭게 들리게 해서 듣는 이의 넋을 빼놓는다네. (p.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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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 강신주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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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대화가 오갔다. 그러던 중 대화는 자연스레 과거에 벌어졌던 전쟁담으로 이어졌다. 하인리히는 대화의 내용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에게는 전쟁 이야기가 새로웠다. 기사들은 성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며, 성스러운 무덤과 십자군 원정에서의 모험, 바다를 가로질러 갔던 위험천만한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전우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사라센 전투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으며, 전쟁터와 캠프에서 벌어졌던 흥미진진하고도 멋진 경험들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도취되어 그리스도가 태어난 예루살렘이 사악한 이교도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사실이 불경스럽기 그지없다고 분노를 토해 냈다. 또한 전쟁 영웅들을 칭송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더할 수 없는 용기로 사악한 적들에 대항한 그들에게 영원한 영광의 왕관을 하사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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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원정 - 아민 말루프 (김미선 옮김, 아침이슬)

십자군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송태욱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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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꿈은 항상 변하는 법 (p.93)

 

수 세대를 거듭해 오면서, 인간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바로 그 땅을 보다 값진 것으로 만들었답니다. 선인들은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애정을 담아 땅을 가꾸었지요. 그리하여 자연은 그 자체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 의해 '인간화'되고 '지성'을 더하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명확하게 보고 느낄 수 있지만, 흘러가 버린 과거는 희미하게 반추해 볼 따름이지요. 그렇지만 현재를 통해서 과거를 보다 더 명확하게 그려볼 수 있답니다. 현재와 과거를 함께 볼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곧 두 개의 세계를 두 배로 살아가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살아간다면 원시적이고 잔인하며 힘이 지배하는 자연의 세계를 거쳐서 결국 마법 같은 시의 아름다움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 찬 세계를 맞이하게 될 거예요.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 세계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누가 알겠어요? 사람들은 모호하지만 어떤 습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조금 더 참거나 기다리지 못하고 많은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새로운 집을 떠나 조상들이 살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는 것이죠. 문득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앞뒤 가리지 않고 전쟁을 해서라도 조상이 살던 땅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리하여 재산을 잏고 피를 흘리고서라도 과거에 조상들이 살았던 땅을 되찾으려고 달려든답니다. 오로지 그 생각밖엔 없는 것이죠.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믿지 않길 바랍니다. 그 사람들은 내 조국 사람들이 잔인하다고 이야기했겠지요. 그렇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랍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포로들을 내 조국만큼 관대하게 대했던 곳은 없었답니다. 예류살렘을 방문한 성지순례자들도 언제나 따뜻한 대접을 받았구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걸맞은 대접을 받게 마련이지요. 다만 대부분 인간들은 사악하여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답니다. 그들은 온갖 무례를 저지르며 자신들의 순례자들을 모욕하는 나쁜 인간들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런 인간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뿐 어떠한 잔인함도 사악함도 아니랍니다. 그리스도교들은 평화롭세 성스런 묘지를 뜻대로 방문하고 참배할 수 있었답니다. 전쟁의 공포를 동반하지 않고도 가능한 일이었어요.그렇지만 사악한 전쟁을 일으켰고 모든 것을 나쁜 상황으로 몰아갔죠. 전쟁으로 끝없는 불행이 찾아왔고, 유럽과 동양을 영원히 갈라놓아 서로 반목하게 만들었답니다. 땅을 소유한 자의 이름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우리 조국은 당신들이 숭배하는 그리스도의 무덤을 경건하게 섬기고 보존했답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성스러운 선지자로 존경하고 추앟했답니다.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무덤을 매개로 동과 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성지에 찬란한 영광이 깃들 수 있도록 했을 수도 있었어요. 누구에게[나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영원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말이에요. 그러나, 그러나.....결국 추악한 전쟁뿐이었어요? (p.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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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중동사 - 미야자키 마사카츠 (이규원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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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일은 하느님의 축복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랍니다. 일하는 사람들을 보다 행복하게 하거나 고귀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광산업은 하늘의 섭리와 하늘이 내린 지혜를 진심으로 믿어야만 가능하지요. 무엇보다도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과 깨끗한 영혼으로 임해야만 하는 것이죠.

광부는 가난하게 태어나서 가난하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법이죠. 광부는 단지 금속의 힘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산답니다. 지하에 묻혀 있는 것들을 캐내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답니다. 광부들의 순수한 마음에 비한다면, 및나는 금덩이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렇고 말구요. 광부들은 금덩어리가 묻혀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물론 그것들을 갖게 된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말이죠. 땅속에서 발견된 금맥이 돈의 가치를 갖게 되는 순간 광부들은 어떠한 욕심도 갖지 않게 된답니다. 더 이상 그들이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닌거죠. 광부들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금맥을 찾는답니다. 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잘 정제된 값비싼 금이 아니라, 무수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갱도를 통해 지하 깊숙이 잠들어 있는 금맥을 찾아내는 일이랍니다. 세상에 빛을 본 금덩어리는 광부들에게 있어 탐욕과 기만의 수단일 뿐이지요.

광부들은 고된 일을 하면서 마음은 더욱 상쾌해지고 튼튼해진답니다. 광부들은 얼마 되지 않는 품삯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죠. 그리고 매일 삶의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어두운 갱도로 들어가지요. 오로지 광부만이 빛의 아름다움과 휴식의 즐거움을 알지요. 바깥세상의 탁 트인 공기와 아름다운 광경이 얼머나 소중한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광부들뿐일 겁니다. 광부는 음식을 먹을 때도 물을 마실 때도 영혼을 새롭게 하면서 존경심을 가진답니다. 마치 주님의 최후의 만찬을 대하듯이 말이죠. 언제나 애정과 관심으로 가족을 대하지요. 아내와 아이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지요. 가족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제나 이러한 상황을 축복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답니다.

광부들의 작업은 매우 고독하답니다. 대부분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사람들과 제대로 교류할 수 없지요. 그렇지만 지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든 외면하지 않는답니다. 광부들에게는 그 모든 존재가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광부들의 눈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타고난 제각각의 특성을 볼 수 있답니다. 어린아이의 눈에 세상은 그저 놀랍고 다채로울 뿐이지요. 광부는 바로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본답니다.

자연이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도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죠. 만일 어떤 사람이 자연을 소유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독약이 되어버리고 말죠. 그 순간 평화는 산산조각이 나버린답니다. 자연을 소유한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마련입니다. 소유욕은 결국 끝없는 근심과 사악한 열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이때 비로소 자연은 위력을 발휘한답니다. 아무도 모르게 자신을 소유한 자의 발 아래 깊은 굴을 파서 매장시켜 버리고 말지요. 그때야 자연은 개인의 소유로부터 벗어나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치면서 모든 사람의 소유가 되고자 하는 자신의 바람을 실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광부는 다릅니다. 가난하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할 줄 알지요. 언제나 깊은 고독 속에서 묵묵히 작업을 할 뿐입니다. 지상 위의 일상은 번잡하고 시끄럽지만, 광부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지요. 지식을 추구하는 욕망을 불태우고 조화로운 생활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고독한 작업을 하기에 순수한 마음으로 가족과 동료들을 사랑과 우정으로 대한답니다. 그는 항상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피를 나눈 형제와도 같다는 믿음을 갖고 있답니다. 광부는 고독한 작업을 통해 지치지 않는 인내심을 키운답니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한 곳에 집중하여 다른 생각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지 않도록 합니다.

광부가 하는 일은 단단하고도 놀라운 힘을 가진 바위와의 한판 승부라고 할 테지요. 이기는 방법은 절대 굴복하지 않고 부단하게 노력하며 잠시도 방심하지 않는 마음가짐뿐입니다. 그가 일하는 갱도는 어둡고 고독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소중한 꽃 한송이가 피어난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에 대한 깊은 믿음이랍니다. 그는 매일같이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그의 섭리를 실천합니다. 나도 램프를 켜놓고 막장에 앉아서 범접할 수 없는 경건한 마음으로 소박한 십자가상 앞에 앉아 기도를 드리는 동료 광부들을 수도 없이 보았답니다. 그때 비로소 신비로운 형상에 깃들어 있는 성스러운 의미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광산의 갱도가 아니라 내 가슴속에 얽혀 있는 소중한 갱도를 탐험하게 되었지요. 내 마음 안에 있는 갱도로부터 평생 끊임없이 생산되는 소중한 광물들을 알게 되었답니다. 

이처럼 광산에서의 작업은 예술처럼 신성하죠. 이 일을 처음으로 인간에게 가르쳐준 자는 하느님께서 보낸 사신일 겁니다. 깊은 산 속에 그리고 더 깊은 땅속에 삶의 심오한 진리를 묻어놓고서 인간이 그걸 찾아내길 바랐던 하느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떤 곳의 광맥은 규모도 크고 캐내기도 쉽지만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어떤 곳은 겉보기에 하찮은 바위 덩어리들뿐이지만 그 사이 좁은 틈에 질 좋은 광맥이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답니다 .아마도 우리가 접하게 되는 가장 고귀한 운명이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질이 좋지 않은 광맥들이 여기저기 있답니다. 그러다가 비슷한 광맥 하나가 질 좋은 광맥을 만나 짝을 이루게 되는데, 이때 광맥의 가치는 한없이 치솟는답니다. 광부는 종종 산산조각 난 모양의 광맥을 보게 되지요. 오랜 작업 속에 인내심이 강해진 광부는 묵묵히 광맥을 따라 삽질을 해나갑니다. 광맥의 흔적이 산산이 흩어져 있다 해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답니다. 그저 진정한 광맥을 찾아서 부단히 작업할 뿐이지요. 그렇게 땀을 흘리다 보면, 흩어져 있던 광맥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 장대한 모습으로 하나의 멋진 광맥을 만들어낸답니다. 이때야 비로소 광부는 끈기와 땀으로 부단히 해나갔던 작업에 대해 진정한 보답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가끔은 가짜 광맥으로 일을 그르칠 때도 있지요. 광부들의 눈과 판단력을 흐리게 해 잘못된 방향으로 작업을 하게 만들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광부는 이내 자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당을 파나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한 치의 후회도 없이 단호히 결단을 내려 방향을 바구지요. 그렇게 또 작업을 해나가다 보면 비로소 진정한 광물들이 숨겨진 값진 광맥을 발견하게 된답니다.

어떻게 보면 광부는 모든 우연적인 요소들과 변덕스런 환경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정과 끈기로 우연과 변덕을 극복해 내지요. 어쩌면 우연과 변덕은 값진 보물들을 감추려는 장애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광부들의 부단한 노력과 인내심은 숨겨진 보물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도구랍니다. 이 덕목들만 가지고 있다면 실패는 없지요. (p.117-122)

 

"이토록 보기 좋은 얼굴들을 보는 것보다 더 값진 명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외딴 곳에서 산다고 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인간혐오주의자라고 생각지 말아주십시오. 세상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랍니다. 다만, 방해받지 않고 명상할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곳에 왔을 뿐입니다."

"혹시 이곳에 오게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때때로 혼자 지내는 것이 불안해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이제는 그렇지 않답니다. 명상을 위해 젊은 시절 내 모든 열정을 다 바쳤답니다. 그때 은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요. 마음을 살찌우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고독 속에서 찾을 수 있기를 소망했답니다. 내면 생활의 샘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명상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경험도 수반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젊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혼자 살아갈 수 없지요. 사람들과 만나 관계를 가져야만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내 생각엔, 사람이란 살아가는 방식에 맞게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간 사회의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이윤을 만들어내고 사회의 보존을 위해서 활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요구하지요. 위대한 희망과 공동의 목적을 위해 인간사회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회의 요구에 어린아이나 노인은 부응할 수 없답니다. 아이들은 아직 서툴고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배척당한답니다. 반면 노인들은 위대한 희망이나 공동의 목표가 성취되는 것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기에 더 이상 사회의 요구에 휩쓸리지 않고 그 영역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것이지요. 다만 내면 세계로 돌아가 위엄을 지키며 근엄하게, 보다 높은 차원의 공동체를 준비하는 일을 맡게 된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간들의 모습일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미 인간 사회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와 사회가 제공하는 안락함을 포기하셨군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내 생각엔, 당신은 영혼의 긴장감이 종종 느슨해져서 그것에 불편을 느꼈던 것 같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엄격하게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느슨해지는 일이 없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몸을 움직이고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했답니다. 그래서 특별한 문제 없이 지금까지 잘 지낼 수 있었답니다. 매일 몇시간씩 산책을 하고, 마음껏 밝은 햇살을 맞으며 싱그러운 공기를 들이마시지요. 때때로 이곳에 앉아서 정해진 시간에 바구니를 만들거나 조각하는 일에 몰두하기도 한답니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 가서 내가 만든 물건들을 팔아 필요한 것들을 구한답니다. 책을 사기도 하지요. 그렇게 지내다보니 시간이 참 빨리 흐르더군요. 물건을 내다 파는 그 마을에는 내가 어디에 사는지 아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답니다. 그 사람들은 내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야기해 주죠. 아마 내가 죽게 되면 그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줄 것이고, 내가 갖고 있던 책들도 가져가게 될 겁니다." (p.141-143)

 

인간들의 역사에 대해서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완성되는 법이지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바라보면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진실된 의미는 깨달을 수 없답니다. 오히려 과거의 일들을 차분히 회상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지요. 어뜻 보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일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지요.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아주 엉성하게 보일 뿐이지요. .그러나 진실은 다르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이미 먼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요. 그래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파악하고 그 흐름을 이해하고 있을 때, 모든 사건을 보이는 대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이면을 읽을 수 있을 때 그리고 변덕스러운 망상에 사로잡혀 사건의 진실한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에 벌어질 일들 간의 감춰진 관계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답니다. 그리하여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과거에 대한 회상을 바탕으로 복잡한 인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 역사의 규칙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과거의 일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모든 것을 기억해 낼 수는 없지요. 그래서 불완전하고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법칙만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짧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그 짧은 인생이나마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삶의 법칙을 발견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다양한 사람들의 다른 삶을 하나씩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지요.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인생의 법칙을 통해 닥쳐올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을 겁니다. 젊은이에게 역사란 호기심의 대상일 뿐입니다.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와 같다고 하겠지요. 좀 더 나이를 먹게 되면, 위안을 주고 지식을 제공하는 천사 같은 친구로서 역사를 바라보게 된답니다. 사람들은 역사와 대화하면서 그 현명함을 습득하게 되고, 보다 관대한 인생을 준비할 수 있게 되지요. 그리하여 지금껏 깨닫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 보다 명확한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랍니다. (p.144-146)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역사란 무엇인가 - 에리히 카 (이상두 옮김, 동서월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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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한 개인의 삶이라 할지라도 절대 헛되이 보지 않을 겁니다. 왜냐 하면, 개인의 삶 속에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함께 녹아 있기 때문이지요. (p.147)

 

무역이나 장사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급적 일찍부터 모든 일을 직접 보고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다운 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일을 직접 처리해야만 하고 잡다한 일을 정신 없이 처리해야만 한다.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나 갖가지 다양한 일로 인한 혼란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련시켜야 한다. 그리고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처하게 되는 심리적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구하여 능숙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고요한 명상의 환상에 빠져서도 안 된다. 상인에게 자기 성찰적인 몽상은 절대적인 금기사항이다. 상인의 마음은 언제나 외부를 향해 있어야 하며 부지런히 일하고 뺘른 결단력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영웅이다. 그리하여 상인들의 주변에는 상인 특유의 지혜를 빌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모여들게 된다. 우연히 발생한 사건들은 상인들의 영향을 받아 역사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상인들의 인생이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화려하고도 뒤얽힌 괴상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혼란의 연속이다.

조용한 성격으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은 상인들과 다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영적인 내면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들의 활동은 조용한 명상이다. 그리하여 내면의 힘을 차분하게 증대시키는 것이 이들에겐 곧 삶의 목적이 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외부로 나가고자 하는 어떠한 동기도 없다. 가진 것 없어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주변에서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거기에 휘말리려고 하지 않는다.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한가한 시간에 그 사건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직접 사건에 연루되지 않고 관조하고자 한다. 인간 세계의 극적인 사건들의 본질을 파헤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해, 이들은 신비로운 영적인 세계에 모물러 있는 것이다. 반면 사건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외부의 구성원들과 함께 세상의 감각과 활동적인 힘들을 대변한다.

거대하고도 복잡다단한 사건들은 내성적인 사람들에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들은 단순한 삶을 운명적으로 추구한다. 그들이 세상의 풍부한 지식과 셀 수 없는 현상들을 알아가는 방식이란 소문을 듣거나 책들을 통해서다.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사건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게 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게 된다. 한편 그들의 예민한 감수성은 거대한 세상의 새로운 모습들을 담고 있는 주변의 사소한 사건이나 사물들을 통해서 개발된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내면의 성찰을 통해서 그 본질과 의미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 없다.

그들은 바로 시인이다. 때때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소리 없이 서성이는 사람들이다. 물론 흔히 볼 수 있지는 않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인류가 해야 할 일과, 태고의 신들이 명한 신성한 직무를 새롭게 수행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별들과 봄과 사랑과 행운과 풍요와 건강과 기쁨을 노래한다. 지상에서 살아가지만 이미 천상의 평온함을 소유하고 있다. 허튼 욕망에 미혹되지 않고, 나뭇가지에 결실을 맺은 과일 향기만 맡을 뿐이다. 과일을 따서 먹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차마 끊을 수 없는 지하 세계와의 질긴 사슬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방문객이다. 그들의 발길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소리를 내는 법이 없으며, 그들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으로 만물은 그 속에 품고 있던 날개를 펼치게 된다. 즐겁게 환하게 웃는 얼굴 속에는 이미 어진 군주의 모습과 함께 시인의 모습이 어려 있다. 오로지 시인만이 현자라고 불릴 수 있다. 시대의 영웅들과 비교한다고 해도, 시인의 노래가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영웅다운 용기를 심어주기는 해도, 영웅적인 행동이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 적은 결코 없었다. (p.165-16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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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보다 빠른 것이 무엇이냐?

복수만이 번개보다 빠르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덧없는 것이 무엇이더냐?

부당하게 얻은 재산입니다.

이 세상을 알고 있는 자는 누구더냐?

그야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지요.

영원한 비밀은 무엇이냐?

사랑이요. (p.262)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그리스 로마 신화 - 이윤기 (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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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란 분명히 인간사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중재자가 될 수도 있겠지. 현실 세계에서 양심은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세상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이자 궁극의 존재가 되는 거라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도덕 혹은 윤리학이라고 불러왔던 학문은, 이 숭고하고 광범위한 인격적 사고의 순수한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네. 양심은 완전히 정화된 형태의,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어. 성스러운 태곳적 인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지. 양심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네. 양심은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명령과 다른 거야. 양심은 여러 가지 개별적인 덕목으로 구성되는 것도 아니야. 단 하나의 덕목이 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결정의 순간에 망설이지 않고 결심을 하고 선택을 하는 순수하고 신성한 의지, 바로 그것이 양심이라네. 양심은 나누어질 수 없어. 양심은 자체의 완전한 모습으로 연약한 인간의 육신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영혼과 육체가 진정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력의 원천이라네. (p.3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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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발리스(Novalis, 1772년 5월 2일 ~ 1801년 3월 25일)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이다. "노발리스"는 필명으로, 그의 본명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 남작(Georg Friedrich Freiherr von Hardenberg)이다. 그의 작품들은 초기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노발리스는 북부 독일의 유서 깊은 귀족 집안 출신이다. 작센 주에 있는 영지 오버비더슈테트의 성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 하인리히 울리히 에라스무스 폰 하르덴베르크(1738-1814)는 엄격한 경건주의 신앙의 소유자로, 첫 부인이 요절하자 이를 방탕한 세속적 삶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여 복음주의 운동인 모라비아 형제회와 친분을 맺었다. 이후 아우구스테 베른하르디네 뵐칙 (1749-1818)와 재혼하여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노발리스는 두번째 자녀이자 장남이었다. 노발리스의 형제들은 대체로 병약하여,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친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당대의 다른 귀족 자제와 마찬가지로 노발리스는 어린시절 가정교사를 통한 교육을 받았다. 1790년에는 아이스레벤의 김나지움 졸업반에 다니며 수사학과 고대 문학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수많은 습작시를 짓고 희랍어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등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1790년에는 예나를 시작으로, 라이프치히와 비텐베르크에서 대학 공부를 했다.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법학을 전공했으나, 특히 예나에서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역사학 강의를 듣고 개인적 친분을 맺는 등 문학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실러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 곁에서 직접 간호했던 지인 중 한명이기도 하다. 또한 대학 시절에 괴테, 헤르더, 장 폴 등의 인물들을 만났으며, 같은 나이대의 루드비히 틱, 프리드리히 셸링, 슐레겔 형제 (프리드리히 슐레겔,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와 친분을 맺는다. 1794년, 노발리스는 최고점수를 받으며 법학대를 졸업한다.
1794년 10월에 노발리스는 당초 계획대로 공직자가 되지 않고, 영지 관리인 쵤레스틴 아우구스트 유스트의 서기로 취직했다. 그와의 관계에서 큰 감명을 받은 유스트는 나중에 노발리스 평전을 쓰기도 했다. 이 시절 노발리스는 근교의 그뤼닝엔 성에서 소피 폰 퀸을 만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얼마후인 1795년 3월 15일, 13세 생일을 맞은 소피와 약혼했는데, 당시 귀족의 풍습상 이 나이에 약혼을 하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다. 1796년에 노발리스는 바이센펠스의 제염소 관리자로 일하게 된다.
1795년에서 1796년에 이르는 기간에 노발리스는 피히테의 철학을 깊게 파고 들면서 자신의 철학적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1797년에 약혼녀 소피가 결핵성 간염으로 투병 끝에 사망하였고, 그녀의 죽음은 노발리스의 예술과 철학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같은 해에 노발리스는 제염소 업무를 더욱 완벽하게 수행하려는 목적으로 프라이베르크 광업대학교에서 공부한다. 이는 당대 최고수준의 자연과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었다. 광업학, 수학, 화학 등의 과목을 포함하는 이 대학의 폭넓은 교육과정은 정규 3년 과정이었으나, 노발리스는 이를 1년 반만에 수료했다.
1798년에 첫번째 철학 파편집 <꽃가루>가 슐레겔 형제가 간행하는 문학지 <아테네움>에 발표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노발리스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에게 보내는 편지에 따르면, 이 필명은 그의 가문에 아주 오래전 붙어있던 이름의 하나로, De novali는 "새 땅을 개간하는 자"라는 의미다.
1798년에 노발리스는 프라이베르크 대학교수의 딸인 쥘리 폰 샤르팽티에 (1778-1811)와 두번째 약혼을 한다.
1799년에는 다시 제염소로 돌아와서 업무를 시작했으며, 12월에는 제염소 관리위원으로 승격된다. 이 지역에 매장된 갈탄을 발견하고 채굴하여, 근방의 제염소들에 공급하는 공적을 세웠다. 1799년에는 루트비히 틱과 친분을 맺고, 예나를 근거지로 하던 당시의 낭만주의자들을 만났다.
1800년에는 29세의 나이로 튀링겐 지역 최고관리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도의원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노발리스는 1800년에 근방 지역에 대한 최초의 지질학적 조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1801년 3월 25일에 노발리스는 폐결핵으로 인한 내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미 1800년 여름에 직업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실러를 간호하던 당시에 감염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의 시신은 바이센펠스의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노발리스는 생전에 파편집 <꽃가루>를 제외하면 <신앙과 사랑 또는 왕과 왕비>(1798), 그리고 시 <밤의 찬가>(1800)만을 발표할 수 있었다. 소설 유작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푸른꽃")>과 <사이스의 제자들>, 논설문 <그리스도교 또는 유럽> 등은 친구들 루트비히 틱과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사후에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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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꽃 - 노발리스 (김재혁 옮김, 민음사)

(김주연 옮김, 열림원)

(이유영 옮김,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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