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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by handaikhan 2023. 8. 4.

헤르만 헤세 - 수레바퀴 아래서 (1906년)

 

중개업자이자 대리점주인 요제프 기벤라트 씨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두드러지는 장점이나 특징이 없는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처럼 어깨가 넓고 다부진 체격이었으며, 진심으로 돈을 숭배하고 장사 수완도 꽤 좋은 편이었다. 그는 아담한 정원이 딸린 집과 작은 가족 묘지를 갖고 있었으며, 종교적으로는 약간 깨인 편이었으나 신앙심이 깊지는 않았다. 신과 고위 공직자들한테는 적당히 존경을 표했고, 시민 사회의 예의범절은 맹목적일 만큼 엄격하게 따랐다. 술은 즐기는 편이었지만 취한 적은 없었다. 간혹 비난의 소지가 있는 거래를 하곤 했지만 절대 법이 허용하는 한계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뱅이라고 무시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거만하고 잘난 척한다고 비난했다. 도 그는 지역 사교 모임 회원으로, 금요일 마다 <독수리 주점>에서 열리는 볼링 게임은 물론이고 빵 굽는 날 혹은 스튜나 소시지 수프를 시식하는 날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평소 일할 때에는 싸구려 시가를 피웠지만 식사 후나 일요일에는 고급 시가를 피웠다.

기벤라트 씨의 내면은 한마디로 속물이었다. 한때 지녔던 감성은 이미 오래전에 메말라 버렸고, 그나마 남은 감정이라고는 가족에 대한 의레적인 관심, 아들에 대한 자부심, 간혹 가난한 사람들에게 느끼는 동정심 정도였다. 지적인 능력은 타고난잔꾀와 교활한 계산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읽는 것은 신문 하나였고, 예술 감상에 대한 욕구는 매년 시민 단체가 공연하는 아마추어 연극을 보거나 가끔 서커스를 관람하는 것으로 충분히 해소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이웃에 사는 누군가와 이름과 집을 바꾸더라도 달라질 게 전혀 없을 만큼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 지역의 모든 다른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는 뛰어난 힘과 능력을 가진 모든 인물들에 대한 불신이 확고히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평범하지 않은 것, 보다 자유롭고 세련된 것, 정신적인 것에 대한 본능적인 적대감 역시 그들과 공유했는데, 이는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p.7-8)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관찰자라면, 병약한 어머니와 기벤라트 가문의 오랜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이처럼 비정상적일 정도로 지성이 발달하는 것은 몰락의 징후일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지방에는 그런 사람이 살지 않았다. 관리들과 젊고 눈치 빠른 일부 교사들 정도만 잡지 기사를 통해 <현대적인 인간>의 존재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서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몰라도 교양 있는 척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의 결혼 생활은견고했고 대체로 행복했으며, 삶은 전체적으로 개선의 가망이 전혀 없는 고루한 관습에 따라 굴러갔다. 유복한 생활을 누리는 부유한 시민들 중에는 지난 20년 동안 수공업자에서 공장주로 성공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관리들 앞에서는 모자를 벗고 공손히 인사하며 아부를 떨었지만, 자기들끼리 있을 때에는 가난뱅이니 서기 나부랭이니 하면서 관리들을 욕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들의 가장 큰 야망은 가능하면 아드을 대학에 보내 관리로 만드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이루지 못할 아름다운 꿈으로 그칠 때가 많았다. 자식들 대부분이 몇 번씩 낙제를 하며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라틴어 학교를 졸업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p.9-1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홍성광 옮김, 펭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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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분야가 그렇듯, 신학도 여러 갈래가 있다. 예술로서의 신학이 있고, 학문으로서의 신학, 혹은 적어도 학문이 되고자 노력하는 신학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학자들은 늘 술을 담을 새 부대에 신경 쓰느라 오래된 포도주를 상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예술가들은 외적인 실수 따위에 개의치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려 애쓴다. 이것이 바로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비평과 창작, 학문과 예술의 불공정한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전자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늘 옳다고 인정받지만, 후자는 항상 믿음과 사랑, 위로, 아름다움, 영원에 대한 예감 등의 씨앗을 뿌리면서 계속 좋은 밭을 일군다. 왜냐하면 삶이 죽음보다 강하고, 믿음이 의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p.57)

 

한스는 자신이 이미 오래전에 학교와 교사, 교육 과정을 저 멀리 떠나보내고 지식과 능력의 정상을 향해 홀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설핏 잠이 들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꿈 때문에 자꾸 잠에서 깼다. 한밤중에 찾아온 두통 때문에 잠이 깬 뒤 다시 잠들지 못할 때면 한스는 성공에 대한 조바심으로 마음이 초조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동급생들보다 한참 앞서 있다는 사실과 교사들과 교장이 그를 쳐다보던 찬사의 눈빛을 떠올리며 우월감을 느꼈다.

교장은 한스의 아름다운 야망을 일깨우고 그것을 올바르게 인도하여 훌륭하게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며 만족감을 느꼈다. 교사를 냉정하고 고리타분하며 영혼 없는 소인배라고 말하지 마라! 절대 그렇지 안핟. 교사는 아무리 자극을 줘도 꿈쩍도 않던 아이의 재능이 자신에 의해 피어나고, 목검과 고무줄 새총과 활 따위의 유치한 장난감에 집착하던 아이가 꾸준한 노력과 진지한 탐구에 매진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던 볼이 포동포동한 아이에게 섬세하고 진지하고 금욕적인 소년으로 변모할 때, 즉 더 어른스럽고 지적으로 변한 얼굴과 더 깊어진 눈매와 더 차분해진 하얀 손으로 확고한 목표를 향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법이다.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교사의 의무이자 본분은 아이들의 거친 본성을 뿌리 뽑고 욕망을 제어한 뒤 그 자리에 국가가 원하는 차분하고 절제된 이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학교의 그러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현재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시민이나 성실한 관료들 대다수는 난폭하게 폭주하는 개혁가나 공허한 이상만 추구하는 몽상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교사는 우선 소년의 내면에 들어 있는 거칠고 무질서하고 야만적인 요소들을 부숴 버려야 한다.그런 다음 그것이 위험한 불꽃으로 타오르지 않도록 불씨까지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자연 그대로의 인간은 예측 ㅂㄹ가능할뿐더러 속을 들여다볼 수 없어 위험하기 그지없다. 미지의 산에서 흘러 내려온 강물이나 길도 없고 질서도 없는 원시림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원시림은 나무를 솎아 내어 개간한 뒤 튼튼한 울타리로 둘러싸야 하는 것처럼, 학교도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깨뜨리고 정복하고 강력하게 제어해야 한다. 학교의 사명은 정부가 인가한 원칙에 따라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사회에 유용한 일원으로 만드는 것이며, 최종적으로 세심한 훈련 과정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 완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p.65-6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교육의 목적 - 화이트헤드 (오영환 옮김,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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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카를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년 7월 2일 ~ 1962년 8월 9일)

독일계 스위스인이며, 시인, 소설가, 화가.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는 신교(新敎)의 목사이고, 어머니 마리는 인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교육을 받고, 인도로 돌아가 그곳에서 영국인 선교사와 결혼하였으나, 그와 사별한 후 요하네스와 재혼하여 그를 낳았다. 헤세는 4세부터 9세까지, 한때 스위스의 바젤에서 지낸 것 외에는 대부분 칼프에서 지냈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를 입학했으나 천성적인 자연아로서, 개성에 눈뜨면서 미래의 시인을 꿈꾼 헤세는, 신학교의 속박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탈주, 한때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이때의 경험은 지나치게 근면한 학생이 자기 파멸에 이르는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1906)에 잘 나타나 있다. 노이로제가 회복된 후 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1년도 못 되어 퇴학하고, 서점의 점원이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병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칼프의 시계공장에서 3년간 시계 톱니바퀴를 닦으면서 문학수업을 시작하였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한 헤세의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이 출간됐다. 특히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으며,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904년 첫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으며 문학적 지위가 확고해졌다. 9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고, 스위스의 보덴 호반의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주한 후 글쓰기에 전념하였으며,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다. 1906년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한 후 1914년 1차 세계대전을 맞는다. 군 입대를 지원하나 부적격 판정을 받고 독일 포로 구호 기구에서 일하며 전쟁 포로들과 억류자들을 위한 잡지를 발행한다. 그는 융의 제자인 랑 박사와 함께 정신 분석을 연구하며 융과도 알게 되었는데 그 영향이 『데미안』(1919)에 나타난다. 이 작품은 고뇌하는 청년의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작품으로 독일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서른세 살이 되는 해 인도 여행을 감행하고 이 경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다.
나치의 광기가 극에 달한 시기에 쓴 마지막 소설 『유리알 유희』(1943)는 931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 최종적으로 완성 하였다. 정신적인 봉사와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유리알 유희』 속에 세웠다.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동서양의 철학, 문학, 음악 등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녹여내 유럽 지식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두 개의 동화가 있는 크리스마스」는 1951년 발표된 에세이로, 헤세 동화집 『두 형제』에 담겨 있다. 1955년에는 독일출판협회의 평화상을 받았다.
이후 정치적 논문, 경고문, 호소문 등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글들을 발표하는 한편, 이상 사회의 실현을 꿈꾸며 다양한 소재의 동화를 집필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동방순례』 등 세계 독자들을 매료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타고난 평화주의자로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전쟁을 비판하여 나치 정권으로부터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스위스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보내며 수채화를 즐겨 그리고 정원 일을 매우 좋아했다. 헤세는 화가로도 성공을 했으며, 3,000점 이상의 수채화를 남겼다.그가 걸어온 긴 생애에는, 인도 여행으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일, 제1차 세계대전과 아버지의 죽음, 아내의 정신병, 그 자신의 신병 등 가정적 위기를 당하자 정신분석 연구로 이 위기를 타개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인간성을 말살시키려고 한 나치스의 광신적인 폭정에 저항한 일 등 많은 파란을 겪었지만,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오로지 자기실현의 길만을 걸었다. 뇌출혈로 사망한 후 아본디오 묘지에 안치되었다.소설 『데미안』은 1919년 헤르만 헤세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창작에 임했으며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소설이다. 이후 평론가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분석을 통해 원작자가 헤르만 헤세인 것으로 밝혀졌다. 소설 『데미안』은 당시 사회는 물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으며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간 내면의 혼란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작 소설로 손꼽힌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작품 『데미안』에 나오는 말이다. 이 유명한 말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헤르만 헤세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의 작품에 흠뻑 빠지도록 만들고, 특히 우리의 청소년들에게는 거의 필독서가 되었을까?
헤세의 대부분의 소설은 자기가 겪은 그때그때의 역사적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헤세는 단 한 번도 시대 자체를 자기 소설의 주제 또는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한 사회와 함께 있는 “집단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고 반대로 “개인 인간”을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즉 작가 자신의 체험을 자서전적으로 묘사하였고, 그의 작품 주인공들 모두가 청소년이다. 헤세의 문학 세계는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고독과 반항의 기록이고, 영원한 청춘의 기록이다. 19세기와 20세기 독일 기독교 주류 사회의 엄격한 계율과 관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고독에 시달렸지만,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그 당시의 위압적인 분위기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주요작품으로 제2의 장편소설 『수레바퀴 밑에서』, 『로스할데』, 『크눌프』, 정신분석 연구로 자기탐구의 길을 개척한 대표작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늑대』,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황야의 이리』, 『지와 사랑』, 『동방여행』,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유리알유희』, 『헤세와 로맹 롤랑의 왕복서한』 등이 있다. 또 이 밖에 단편집, 시집, 우화집, 여행기, 평론, 수상, 서한집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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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김이섭 옮김, 민음사)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한미희 옮김, 문학동네)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이미선 옮김, 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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