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 인연이야기 (2002년)
서문 - 기쁨과 슬픔의 뿌리를 찾아
부처님의 언행록을 전통적으로 구분교 또는 십이분교로 분류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불교의 설화의 두 갈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자타카'와 '아바다나'이다. '자타카'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로 '본생담'이라고 하고, '아바다나'는 출가한 부처님 제자나 독실한 재가 신자에 대한 이야기로 '비유'라고 한다.
이와 같은 전생 이야기나 비유 속에는 부처님이 현세의 수행만으로 정각을 이룬 것이 아니라, 끝없는 과거 속에서 보살로서 많은 덕을 베풀어 현세에 부처님이 되었다는 인과관계가 담겨 있다. 보살은 사람으로서만이 아니라 때로는 천신으로, 또는 온갖 짐승의 생을 거치면서 삶과 죽음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인연 설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조연이나 방관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유익한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이런 비유나 인연 설화가 불교만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전래된 민담이나 전설 속에 들어 있는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에 불교적인 입김을 불어넣어 그 틀을 바꾸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이나 짐승 또는 천신들을 보살로 바꾼 것이다.
남전대장경에 실린 이야기만 하더라도 22편 547종이나 된다.
우리가 신화나 전설에 귀를 기울이는 까닭은 단순한 사실에 기대어 우리들의 역사적 상황을 잊고 신성한 시간 속에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서 있는 자리는 우리들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자신이 뿌린 것은 자신이 거둔다는 인과관계의 질서와 도리를 믿지 않고, 인류에서 벗어난 짓을 함부로 저지르는 막된 세태가 새삼스럽게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를 묻게 한다. 여기에 옮겨 싣는 이런 옛 인연 이야기에 오늘 우리들의 얼굴으 비춰 보았으면 한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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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 인연이야기
불법이란 그 뜻이 매우 깊어 헤아리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 깨닫기도 어렵소. 그것은 하나의 보시로써 얻을 수도 있지만, 백천의 보시로도 얻기 힘든 경우가 있소. 그러므로 불법을 바르게 깨달으려면 먼저 이웃에게 여러가지로 베풀어 복을 짓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 많이 배우며, 스스로 겸손하여 남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훗날 반드시 깨들음을 얻을 것이오. (p.23)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은 그 말 때문에 언젠가는 이와 같은 불행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p.34)
입은 재앙의 문
사람은 태어날 때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
아무리 아름답고 빛이 고울지라도 향기 없는 꽃이 있듯이,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은 그 열매가 없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자신의 말보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지혜의 샘을 깊게 한다. 입에 말이 적어야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는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p.36)
이웃나라의 포악한 왕이 군대를 일으켜 쳐들어왔다.
"만일 우리가 이기면 저들이 죽을 것이고, 저들이 이기면 우리가 죽을 것이다. 저쪽 군사나 이쪽 군사나 다 소중한 목숨들 아니냐. 누구나 제 몸을 소중히 여기고 목숨을 아까워하는데,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해치거나 죽이는 것은 어진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저 이웃나라의 왕은 우리 나라를 차지하고 싶어한다. 내 신하들은 나 한 사람을 위해 선량한 백성들의 목숨을 희생시킬 것이다. 나는 차라리 이 나라를 저 왕에게 내주어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리라." (p.38)
(비교)
송나라 양공 - 송양지인(宋襄之仁)
유가인간학 - 렁청진 (김태성 옮김, 21세기북스)
송양지인(宋襄之仁)
송 양공이 초나라와 통교한 정나라를 친 이유로 초나라가 송나라에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송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다. 그런데 그는 초나라 전군이 강을 다 건너왔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재상이었던 목이가 참다못해 "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라고 했으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송 양공은 군자는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라고 주장하며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열세한 송나라 군사는 참패했다. 그리고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하는 바람에 결국 이듬해 죽고 말았다.
[해설] 백성들을 사랑하고 국력을 키우며 군비를 강화하기만 하면 전쟁에서 싸우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 그러니 헛된 명분만 좇으면서 케케묵은 관념과 사상에 매인다면, 적을 제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싸워보지도 못하고 자멸하는 결과를 초래할게 될 것이다. 민심의 향배와 전쟁의 성격, 싸움의 정의와 가치가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의 운둉 또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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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원한은 원한에 의해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원한을 버릴 때만 풀리나니, 이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이다. (p.42)
보살과 여래는 자비심이 근본이다. 보살이 자비심을 일으키면 한량없는 선행을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무엇이 모든 선행의 근본이냐고 묻거든, 자비심이라고 대답하라. 자비심은 진실해서 헛되지 않고, 선한 행은 진실한 생각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진실한 생각은 자비심이며, 자비심은 곧 여래다. (p.47)
설산동자(雪山童子)의 설화 - 위법망구(爲法忘軀)
반 구절의 시를 얻어 듣기 위해 목숨도 아낌없이 내 던지는 구도의 정신.
이 세상 모든 일은 덧없으니 (諸行無常제행무상)
그것은 곧 나고 죽는 법이라네 (是生滅法시생멸법)
생사의 갈등이 사라지고 나면 (生死滅已생사멸이)
모든 것이 열반의 기쁨이어라 (寂滅爲樂적멸위락) (p.53)
'예나 지금이나 두려운 일 네 가지가 있습니다. 즉, 태어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고, 죽으면 가까운 사람들과 이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의 목숨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만물은 덧없어 오래 보전하기 어렵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듯이 사람의 목숨도 그와 같습니다. 마치 강물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듯이 사람 목숨의 빠르기도 그와 같습니다."
강물이 흘러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듯이
사람의 목숨 또한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네. (p.58)
(참고)
법구경 - 이규호 옮김 (문예춘추사) [원문과 해석 글자 크기가 아주 작아서 읽기가 힘듬]
마음의 향기를 품은 법구경 - 라다크리슈난, 차평일 옮김 (뜻이있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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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다는 것 모두 다 사라지고
높다는 것은 반드시 낮아지며
모인 것은 뿔뿔이 흩어지고
한번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느니라
-법구비유경- (p.68)
무상이라는 말은 단순히 덧없고 허무하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는 생겨나고 없어지고 변화하면서 잠시도 같은 상태로 머물지 않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무상이라는 말의 본뜻은 변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오히려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변하기 때문에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 변하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얼마든지 고쳐 나갈 수가 있다. 육신의 무상함을 알고 침울해 할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날마다 거듭나면서 후회 없이 알차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p.76)
너는 어찌 그렇게 어리석어 도리를 모르느냐. 도를 얻으려면 먼저 그 어리석음부터 끊고, 그 다음에 마음을 억제해야 한다. 마음이 선악의 뿌리이니라. 음욕의 근원을 끊으려거든 먼저 그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 마음이 안정되고 생각이 풀린 뒤에라야 도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열두 가지 인연은 어리석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어리석음은 모든 죄의 근원이요, 지혜는 모든 선행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먼저 이 어리석음을 끊어 버린 다음에야 생각이 안정될 것이다. (p.78-79)
조금 아는 것이 있다 하여
스스로 뽐내 남을 깔본다면
장님이 촛불을 든 것과 같아
남은 비추지만 자신을 밝히지 못하네
-법구비유경- (p.90)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진심으로 들을 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요즘처럼 성급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면서 저마다 자기 말과 주장만을 내세우는 세태 속에서는 단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이 깨지는 이유도 사람들이 남의 말을 진심으로 듣지 않거나, 또는 건너오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듣는다는 것은 바깥 것을 매개로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소리를 개우는 일일 수도 있다. 귀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은 그 말에서 자기 존재를 발견한다. 그러나 자기 말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별들이 우리에게 들려 준 이야기를 남한테 전하려면 그것에 필요한 말이 우리 안에서 먼저 자라야 한다."
'말'이 되기까지는 우리들 안에서 씨앗처럼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듣는다는 것은 곧 자기 것을 비우기 위해 침묵을 익히는 기간이다. 침묵 속에서 자란 성인들의 말은 솔직하고 단순하다. (p.9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모모 - 미하엘 엔데 (한미희 옮김,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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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을 얻으려면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하고, 큰 부자가 되려면 널리 베풀어야 하며, 오래 살려면 큰 자비를 펴야 하고, 지혜를 얻으려면 배우고 물어야합니다. 이 네 가지 일을 할 때는 그 뿌린 것을 따라 열매를 거둘 것입나다. (p.107-108)
나쁜 말과 꾸짖는 말로
잘난 체 뽐내면서
함부로 남을 업신여기면
미움과 원한이 움을 튼다
공손한 말과 부드러운 말시로
남을 높이고 공경하며
맺힘을 풀고 욕됨을 찾으면
미움과 원한은 저절로 사라지리
무릇 사람이 이 세상에 날 때
그 입 안에 도끼가 생겨
그로써 제 몸을 찍나니
그것은 악한 말 때문이니라.
-법구비유경- (p.113)
어떤 사람이든지 본래는 깨끗하지만 그 인연에 따라 죄와 복을 일으킨다. 어진 이를 가까이하면 뜻이 높아지고, 어리석은 자를 벗하면 재앙이 닥친다. 그것은 마치 종이가 향을 가까이했기 때문에 향내가 나고, 새끼줄을 가까이했기 때문에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사람들은 무엇엔가 점점 물들어가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악한 사람에게 물드는 것은
냄새나는 물건을 가까이하듯
조금씩 조금씩 허물을 익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악한 사람이 된다.
어진 사람에게 물드는 것은
향기를 쏘이며 가까이하듯
지혜를 일깨우며 선을 쌓아
자신도 모르게 선한 사람이 된다.
-법구비유경- (p.125)
작은 것이 아름답다. (p.13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슈마허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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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이야말로 좋은 시절 아닌가.
날마다 좋은 날.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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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속명 박재철(朴在喆), 1932년 11월 5일 ~ 2010년 3월 11일)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이자 수필가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수십 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했다.
1954년 승려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지냈다.
2010년 3월 11일에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입적(入寂)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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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이야기 - 법정 (문학의 숲)
무소유 - 법정 (범우사)
아름다운 마무리 - 법정 (범우사)
일기일회 - 법정 (문학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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