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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인생은 연극이다 - 오 헨리 (김선영 옮김, 좋은생각)

by handaikhan 2024. 4. 10.

 


목차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경찰관과 찬송가
20년 후
추수감사절의 두 신사
재물과 사랑의 신
운명의 충격
인생은 연극이다
마녀의 빵
나팔 소리
되살아난 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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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 인생은 연극이다

 

얼마 전에 신문기자인 친구와 함께 요즘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공연을 구경하러 갔다. 그 공연 중에 바이올린 독주가 있었다. 강한 인상의 연주자는 마흔쯤의 나이였지만, 머리가 하얗게 센 사나이였다. 나는 사실 음악에 문외한이었기에 음률이나 곡조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래서 연주자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p.110)

 

그녀의 마음은 둘로 나뉘어져 있었다. 남편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순수한 애정과, 새롭게 만난 남자에 대한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기억이 그녀의 마음을 절반씩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순수한 감정으로 빠져들어갔다. 존경과 정절과 늘 꺼지지 않는 감미로운 로맨스가 그녀를 그것에 묶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보다 충실하고 보다 가까운 감동이 마음의 절반을 분명 채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해묵은 것과 새로운 것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위층 방에서 부드럽게 애원하는 것 같은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음악이라는 마왕은 왕자의 마음조차 움직이는 것이다. 심장이 뛰고 있는 인간에게 음악이란 굉장한 효과를 지니는 법이다.

그 음악과 음악가가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동시에 체면과 옛사랑이 그녀를 멈추게 했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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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 20년 후

 

순찰중인 한 경찰관이 거드름을 피우며 큰길을 걸어갔다. 그의 거만한 행동은 습관적인 것으로, 일부러 그렇게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를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시간은 아직 밤 10시밖에 안 되었는데, 빗방울이 섞여 불어오는 찬바람 때문에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p.54)

 

"20년은 긴 세월이지만, 사람의 코를 매부리코에서 사자코로 바구지는 못하지."

"20년의 세월이 때로는 착한 사람을 악한 사람으로 바꿀 수는 있지."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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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O. Henry)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 1862년 9월 11일 ~ 1910년 6월 5일)는 미국의 작가이자 소설가로, 오 헨리(O. Henry)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90년대의 가족 사진, 왼쪽부터 아내 애솔(Athol), 딸 마거렛(Margaret), 포터 윌리엄 시드니 포터는 1862년 10월 11일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그린즈버러에서 앨저넌 시드니 포터와 메리 제인 버지니아 스웨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살 무렵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가족은 할머니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18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촌이 경영하는 약국의 조수로 들어가 1881년 약사 자격증을 획득하였다.
1882년 포터는 제임스 홀을 따라 텍사스로 이주하여 그의 아들 리처드 홀의 목장에서 일하였다. 그 곳에서 포터는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의 음악을 배웠다. 1884년 오스틴으로 이사하였다. 거기서 포터는 제도사, 은행원, 기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으며 습작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포터는 오스틴에서 극단에 들어가 기타와 만돌린을 연주하였다. 1887년 17세였던 애솔 에스테스와 결혼하였다. 1887년 리처드 홀이 지주협의회의 의장이 되자 그의 권유로 텍사스 제네럴 랜드 오피스의 제도사로 근무하였다. 1888년 아들이 태어났으나 태어나자 마자 사망하였다. 1889년 딸 마가릿 워스 포터가 태어났다. 리차드 홀이 1890년 낙선하자 포터는 은행원, 기자등으로 일하였으며 첫 작품 《구르는 돌》(The Rolling Stones)을 발표하였으나 1500부가 팔리는데 그쳤다.
포터 가족은 1895년 휴스턴으로 이사하였다. 포터는 우체국의 고정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스틴에서 재직하였던 은행에서 포터가 재직 중 계산 실수를 범했다는 이유로 고소하여 구금되었다. 포터는 장인의 도움으로 석방되어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의 가족들은 장인의 집에 의탁하였다. 첫 재판은 1896년 7월 7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포터는 처음에는 뉴올리언스로 이후 온두라스로 도피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바나나 공화국을 빗댄 《양배추와 왕》을 썼다.
포터는 1897년 아내 애솔이 결핵으로 죽어간다는 전갈을 받고 오스틴으로 돌아왔다. 애솔은 1897년 7월 25일 사망하였다. 포터는 체포되어 1898년 2월 횡령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5월 25일 오하이오 교도소에 수번 30664번으로 수감되었다. 포터는 약사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복역 중에 야간 약국 담당으로 일하였다. 복역 중에 포터는 여러 필명으로 단편 소설을 출간하였다.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휘파람 부는 딕의 크리스마스 스타킹》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그의 이름 역시 오 헨리로 널리 알려졌다.
1901년 출감한 그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로 이사한 장인을 찾아가 11살이 된 딸 마거릿을 만났다. 장인은 마거릿에게 포터가 사업 때문에 멀리 여행갔다고 말하여 두고 있었다.
1902년 《뉴욕 월드 썬데이 매거진》이 그의 글을 수록하길 하자 포터는 뉴욕으로 이사하였다. 포터는 이 잡지에 381편의 단편의 실었다. 1907년 포터는 세라 린지 콜먼과 재혼하였다.
1908년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글쓰기를 중단하였다. 1909년에 사라가 떠나간 뒤 더욱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10년 6월 5일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망 후 뉴욕 시에 의해 노스캐롤라이나의 애슈빌에 묻혔다. 1927년 그의 딸 마가렛 역시 사망하여 아버지의 옆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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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단편선 - 오 헨리 (김희용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20년 후 - 오 헨리 (조신권 옮김, 신원문화사)

마지막 잎새 - 오 헨리 (최인자 옮김, 펭귄클래식)

마지막 잎새 - 오 헨리 (오정환 옮김, 동서월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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