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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꼬마 철학자 - 알퐁스 도데 (김승민 옮김, 종이나라)

by handaikhan 2024. 3. 29.

 

알퐁스 도데 - 꼬마 철학자 (1868년)

 

나는 18**년 5월 13일, 랑그독 지방의 한 도시에서 태어났다. 미디 지방의 여느 도시처럼 이곳도 햇빛과 먼지로 가득했으며, 카르멜회의 수도원과 두세 개의 로마 유적이 있었다.

이즈음 아버지 에세트 씨는 마을 어귀에서 큰 방직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공장 한쪽을 집으로 개조해 생활했는데 공장의 한 켠이라고는 하지만, 플라타너스나무로 온통 그늘지고 널찍한 정원이 있어서 다소 포근한 느김을 주었다. 바로 이곳에서 내가 세상에 태어났고,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좋은 시절들을 보냈다. 또 감사하게도 정원으로부터, 공장으로부터, 플라타너스나무로부터 영원히 남을 추억들을 받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님이 파산하자, 나는 이러한 것들과 이별해야 했다. 생명체들을 대하듯 섭섭했지만, 나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아름다운 추억이기 때문에).

시작하기 앞서, 나는 나의 출생이 에센트 집안에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한 듯하다. 우리 집 가정부 아누 누나에 의하면, 그 당시 여행 중이던 아버지는 나의 출생 소식과 아버지에게 4만 프랑을 갚아야 할 마르세유가 지방의 단골 고객이 잠적했다는 소식을 동시에 접했다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던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되물었을 것이다.

'고객이 잠적에 울어야 할지 귀여운 다니엘의 복된 출생에 웃어야 할지.'

하지만 착한 아버지는 울어야 했다. 그것도 두 배로.....

부모님에게 있어 나는 불행한 별이었다. 사실이었다. 내가 태어난 직후부터 믿어지지 않는 불행들이 마구잡이로 닥쳐왔다. 먼저 마르세유의 고객이 그랬고, 같은 해 화재가 두 번이나 났으며, 직공들이 파업을 했고, 바티스트 삼촌과 불화가 있었으며, 안료 거래상들과의 고액 소송이 진행됐으며, 그리고 마침내, 18**의 혁명이 우리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이때부터 공장에서는 한 개 이상의 원단을 만들지 못했으며, 작업장에서 하나둘씩 직공들이 빠져 나갔다. 주마다 조금씩 일감이 줄었으며, 달마다 날염 작업대가 하나씩 사라졌다. 천천히, 날마다 조금씩, 병든 것처럼 우리 집의 생명이 다해 가는 것을 처량하게 지켜봐야 했다. 언제부턴가 3층 작업장의 출입문이 닫혔으며, 또 언제부터인가 뒤쪽에 있던 뜰이 폐쇄되었다. 이런 일은 2년간 계속되었으며, 공장은 서서히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p.7-9)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 집의 몰락을 그렇게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갑자기 돌변한 아버지를 두려워했다. 매사에 쉽게 흥분하고,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집안이 몰락하고 나서는 그러한 본성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걸핏하면 손이 올라가고, 고상하고 거만한 어투 때문에 주위 사람들과 다투는 일이 잦았다. 자신에게 닥친 불운이 그를 체념시키기보다는 신경질적으로 만들었다. 하루 종일 무엇 하나 가릴 것 없이 사사건건 엄청나게 화를 냈다. 태양에 대해, 미스트랄에 대해 혁명에 대해 그리고 자크에게, 가정부 아누 누나에게....

특히 그 당시에 일어난 혁명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덧붙이자면 혁명가들은 에세트 가에게 그리 신성한 향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신은 우리가 혁명가들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알 것이다. 늙어 노인이 된 아버지는 관절염 통증이 올 때마다 안락의자에 힘겹게 누우면서 이런 말을 했다.

"오! 고얀 혁명가들!"

내가 이야기하던 그 당시에, 아버지는 관절염을 앓고 있지 않았다. 단지 몰락의 고통이 그를 어느 누구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보름에 두 번 피를 빼줘야 했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모두가 조용했다. 식탁에서는 작은 목소리로 빵을 찾았다. 아버지 앞에서 우는 건 감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아버지 몰래 흐느낄 뿐이었다. 어머니, 아누 누나, 자크 형, 신부로서 우리를 보러온 큰형까지, 이렇게 모든 사람이 흐느꼈다. 어머니는 불쌍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었으며, 큰형과 아누 누나는 어머니가 우는 걸 보고 울었다. 우리의 불행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자크 형은 그냥 울고 싶어서 울었다. (p.10-11)

 

관리인 콜롱브 씨의 아들인 루제는 열두 살치고는 몸집이 컸다. 소처럼 힘이 셌고, 개처럼 충성스러웠으며, 거위처럼 멍청했다. 특히 그의 빨간 머리카락이 눈에 금방 띄었다. 그래서 '붉으스름한'이라는 루제로 불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루제는 루제가 아니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충성스러운 부하 방드르디가 되기도 하고 야만인 부족, 반락군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나 역시 다니엘 에세트로 불리지 않았다. 나는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해입은, 자칭 크루소가 되었다. 그러다가 배고픔을 해결한 저녁 식사 후에, 「로빈슨」을 다시 읽으며 암기하곤 했다. 또 낮에는 그것을 열심히 중얼거리면서 로빈슨이 되어 놀았다.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나의 연극 속으로 끌어들였다. 공장은 더 이상 공장이 아니었다. 나의 무인도였다. 오! 그랬다. 무인도였다. 수조는 대서양이었고, 정원은 원시림이 되었다. 플라타너스나무의 매미 떼도 내 연극에서 역할을 해냈지만, 정작 매미는 영문도 모른 채 울어대기만 했다. (p.13-1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로빈슨 크루소 - 다니엘 디포 (윤혜준 옮김,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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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도 누추한 여관방에 혼자가 된 나는 침대 앞에 앉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했다.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위대한 철학자라는 자부심을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지금의 삶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 삶 앞에서 자신이 너무 나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느낀 나는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는데 버려진 집과 절망 속에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를 울었을까. 나는 내 자신의 고뇌를 극복하고, 에세트 집안의 불행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원대하고 아름다운 결심을 내렸다. 그리고 에세트 가문의 보금자리를 재건하겠다는 고결한 삶의 목표를 정한 자랑스러운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눈물을 힘차게 닦아 냈다. 그러고는 즉시 새로운 임무를 숙지하기 위해 비오 교무 주임이 건네준 학교 규정집을 펼쳐 들고 탐독하기 시작했다. (p.78)

 

훗날 나는 종종 그날 밤 파리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이 처음에 무언가를 볼 때는 아주 특별한 인상을 받아 기억에 오래 남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기억은 잔뜩 끼었던 안개가 물러나듯이 사라져버리는 것 같ㄷ아. 파리에 대한 기억도 다시는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내가 어렸을 적에 이 도시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수수께끼의 도시 같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p.219-220)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나? 그리고 내가 어떤 큰 교훈을 얻었는지 아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이 나를 돌봐주었던 거야. 반면에 날 반가이 맞아준 사람은 8일 전부터 나를 그 층계참에 세워둔 채 신부님의 소개로 온 나를 파란 옷을 걸친 노란 앵무새들의 웃음거리로 만든 거라고. 다니엘 이것이 바로 삶이야. 파리 같은 곳에서는 그 사실을 빨리 배우게 되지. (p.235)

 

-하지만 파리에 온 지 3년째 되는 해에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해다.. 바로 혁명이 일어난 1830년이었기 때문이다.

파리 시민들은 그들에게 필요 없는 왕을 정리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목이 터져라 "집 안에 필요 없는 물건들 정리하세요!"라고 외치고 다니는 피에로트 씨에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피에로트 씨는 텅 빈 수레로 돌아오는 일이 허다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나스타지도 죽어버렸다. (p.28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적과 흑 - 스탕달 (임미경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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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년 5월 13일 ~ 1897년 12월 16일)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이다.

프랑스 남부의 랑그도크 지방의 님(Nîmes)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뱅상 도데는 비단 제조업을 하고 있었지만 불운을 부르는 사람이었고 하는 일마다 실패해서 알퐁스 도데의 어린 시절은 상당히 불우했다. 알퐁스 도데는 자라서 리용(Lyon)을 떠나 알레스(Alès)로 가서 교사 생활을 했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심한 노이로제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1년여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었으며 후에 그의 회고로는 "알레스를 떠난 몇 달 뒤에도 나 자신이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 가운데 서 있는 듯한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교사 생활을 그만둔 뒤 3살 연상의 형과 함께 살았는데 형은 파리에서 기자가 되고 싶어했다. 알퐁스도 형을 따라서 시를 썼는데 쓴 시들을 모아 <사랑하는 여자들>을 출판했다. 이는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르 피가로지>가 도데를 기자로 기용했고, 2~3편의 희곡을 써서 장래성을 주목받았다. 한편으로 나폴레옹 3세의 대신이자 입법회의 의장인 샤를 드 모르니 후작의 후원을 받아서 모르니 후작이 사망하는 1865년까지 모르니 후작의 비서로서 활동했다.
1866년, 첫 소설을 써서 크게 성공하게 된 그는 이후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 1868년에 <Le Petit Chose>라는 첫 자전적 장편 소설을 썼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후 <밝은 타타린>과 3막짜리 희곡 <아를의 여인>을 썼지만 역시 흥행에 실패한 뒤, 집필한 희곡 <프로몽과 리제르>가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어권에도 주목을 받을 정도였다.
이후로 <나바브> 등의 여러 편의 소설과 희곡을 쓰는 등 작가로서의 위상은 뚜렷해졌다. 1867년에 쥴리아 아라드와 결혼했는데 그의 부인도 문학적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1883년 도데는 자신이 아카데미 회원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쓴 기자와 결투를 벌였고 자신의 부인에 대한 안좋은 기사를 쓴 기자와도 결투를 신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말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약을 잘못 쓴 탓에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1897년 12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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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 - 알퐁스 도데 (이재형 옮김, 책이있는마을)

꼬마 철학자 - 알퐁스 도데 (김혜경 옮김, 책만드는집)

꼬마 철학자 - 알퐁스 도데 (김택 옮김, 꿈꾸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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