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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릴케 (도희서 옮김, 태동출판사)

by handaikhan 2024. 3. 27.

 

릴케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1929년)

 

1903년 2월 17일, 파리에서

 

당신이 보내 주신 편지는 며칠 전에야 받아보았습니다. 편지의 내용에 담겨 있는 커다란 친절에 뭐라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어떤 비평적인 견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평을 통해서 예술작품에 다가서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비평을 가하면 다소의 오해가 생기게 마련이지요. 모든 사물은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것 이상으로 이해할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건들은 대부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역 안에서 발생하며, 무엇보다도 예술작품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릇 예술작품이란 우리의 목숨과 달리 영원한 것입니다. (p.7)

 

덴마크의 위대한 작가 옌스 페터 야콥센의 작품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p.16)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베르가모의 페스트 - 야콥센 (박종대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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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이해하거나 직접 창작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서 시간을 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10년이라는 세월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계산을 하지도, 햇수를 세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부디 나무처럼 무성하도록 하십시오. 나무는 억지로 수액을 내품지 않으며, 봄의 폭풍 속에서도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혹시나 그 폭풍 뒤에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결국 여름은 오기 마련이지만, 아무런 걱정 없이 침착하고 끈기 있게 서 있는 사람들에게만 다시 활기로 찾아옵니다. 저는 날마다 괴로움을 참아가며 인내심으로 단련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 괴로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p.20-21)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할지도 모르는 모든 것에 대해, 고독한 사람은 일찍부터 미리 준비하며 실수가 없는 손으로 세워 나갈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 또한 고독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부닥쳐 올 고통을 아름다운 음조로 참고 견뎌내십시오. (p.31)

 

직업은 인습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견해가 발붙일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고독은 그 속에섣 당신이 기댈 수 있는 고향이 되어 줄 것이며, 그 고독 덕분에 당신은 자신의 길을 좀더 빨리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p.33)

 

당신의 지위를 다른 사람에게 확인시키는 데 쓸데없이 많은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 마세요. 당신이 그런 지위에 있다고 해서 누가 당신에게 말이라도 건넬까요? 물론 당신의 직업이 어렵운 것이고 자신에 대해 까다롭게 군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당신의 한탄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조만간 당신이 내게 그런 한탄을 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말이 나왔지만, 나는 별다른 위안의 말을 드릴 수가 없군요. 드릴 말이 있다면, 모든 직업이 자신에게는 까다롭고 불만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고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p.40)

 

친애하는 카프스 씨, 현재 장교로서 경험하는 것들은 당신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똑같이 느낄 만한 것들입니다. 심지어 당신의 직위에서 벗어나 가볍고도 독창적인 사회와 접촉하고 싶더라도, 당신에게 엄습해오는 그와 같은 답답한 감정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슬퍼하거나 불안에 떨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과 당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없다면 차라리 사물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들은 결코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숱한 밤도 여전히 그대로이며, 나무 사이와 대지 위에 불어오는 바람도 아무런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사물과 동물 가운데는 여전히 당신이 관여해도 좋을 사건으로 가득 차 있으며, 당신의 어린 시절처럼 행복하면서도 슬픔을 느끼는 아이들도 그대로 있습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또다시 그 고독한 아이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어른들이란 아무것도 아니며, 그들의 권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p.41)

 

사랑하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사랑 역시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마지막 시련이자 시험이며 과제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다른 일들은 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도 배워야 하니까요. 그들은 혼신을 다해 고독하고 긴장하며 하늘을 향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청춘은 언제나 지루하고 닫힌 기간이므로 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고독입니다. 무릇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승화 되고 심화된 홀로됨입니다.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어 헌신하면서 다른 사람과 하나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미완성인 사람, 그리고 무원칙한 사람과의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 가는 숭고한 계기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끄는 용기입니다. 사랑을 마치 하나의 임무처럼 밤낮으로 수련을 쌓아 나간다는 의미에서만, 젊은이들의 사랑은 의미가 있습니다. 깊이 빠져들고 헌신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린다는 것은 아직 힘을 비축해야 할 젊은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 생활에서 지금까지 도달할 수 없었던 영원한 것입니다. (p.46-48)

 

삶은 언제나 어렵지만 성장을 멈추진 않습니다.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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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독일어: Rainer Maria Rilke, 1875년 12월 4일 ~ 1926년 12월 29일)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고독한 소년 시절을 보낸 후 1886년부터 1891년까지 육군 유년 학교에서 군인 교육을 받았으나 중퇴하였다. 프라하·뮌헨·베를린 등의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일찍부터 꿈과 동경이 넘치는 섬세한 서정시를 썼다. 본명은 레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René Karl Wilhelm Johann Josef Maria Rilke)였으나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의 조언에 따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다.

제1기는 시집 《가신에게 바치는 제물들》, 단편소설《旗手 크리스토프 릴케의 죽음과 사랑의 노래(de)》 등을 발표한 시기이며, 제2기는 뮌헨에서 만난 러시아 여자 살로메에게 감화를 받아 러시아 여행을 떠난 후, 러시아의 자연과 소박한 슬라브 농민들 속에서 《나의 축제를 위하여》,《사랑하는 신 이야기》,《기도 시집》,《형상 시집》 등을 발표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절에 루 살로메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그녀를 위해 <<그대의 축제를 위하여>>라는 시집을 써서 혼자서 간직한다. 1902년 이후 파리로 건너가 조각가 로댕의 비서가 되었는데, 그는 로댕의 이념인 모든 사물을 깊이 관찰하고 규명하는 능력을 길렀다. 제3기에 그는 조각품처럼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우주와 같은 시를 지으려고 애썼다. 1907년 《신시집 (die Neuen Gedichte)》, 《로댕론》을, 1908년 《신시집 제2부 (Der neuen Gedichte anderer Teil)》를 발표하고, 이어 1909년 파리 시대의 불안과 고독, 인간의 발전을 아름답게 서술한 일기체의 단 한편의 장편소설 《말테의 수기(de)》를 발표하였다. 
제4기는 1913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였다. 그 때까지 작품 활동을 중지하고 있던 릴케는 10년간의 침묵 끝에 1923년 스위스의 고성에서 최후를 장식하는《두이노 비가(de)》,《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발표하였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영혼의 부르짖음으로써 높이 평가되고 있다.

릴케는 수많은 사람들과 편지로 교류를 하였다. 당시 삶과 예술, 고독, 사랑 등의 문제로 고뇌하던 젊은 청년 프란츠 카푸스(de)에게 보낸 열 통의 편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독일은 물론 미국에서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죽음 직전에 릴케(Rilke)의 병은 백혈병으로 진단되었다. 그는 입속 궤양을 앓고 있었고, 위장등에 통증과 점점 더 열악해지는 건강으로 고생했다. 1926년 12월 29일 스위스 발몽 요양소(Valmont Sanatorium)에서 사망했다. 그는 1927년 1월 2일 비스프(Visp) 서쪽에 있는 라론(Raron) 공동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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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릴케 (김재혁 옮김, 고려대출판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릴케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릴케 (이옥용 옮김, 에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릴케 (홍경호 옮김, 범우사)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릴케 (백정승 옮김, 동서월드북)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릴케 (정우교 옮김, 종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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