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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외투 - 고골 (오정석 옮김, 산호와진주)

by handaikhan 2024. 3. 3.

고골리 단편선

 

네프스키 거리

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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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 - 외투 (1842년)

 

어느 관청에....아니, 어느 관청인지는 밝히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어느 부처, 어느 연대, 어느 지청을 막론하고 한마디로 말해서 관리란 족속들처럼 화를 잘 내는 친구들도 없으니까 말이다. 요즘 세상에는 누구나 자기 한 개인이 느끼는 모욕을 마치 사회 전체 구성원에 대한 모욕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어느 도시인지 이름은 잊었지만, 하여튼 어느 도시의 경찰서장이 상부에 진정서를 제출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진정서에서, 지금 국가의 법치 질서가 땅에 떨어지고 있으며 자기의 신성한 직책마저도 번번이 모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자기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방대한 분량의 장편소설 하나를 참조 문서라는 이름으로 그 진정서에 첨부해 함께 제출했으며, 그 장편소설에는 거의 10페이지마다 경찰서장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인물을 곤드레만드레 술에 만취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대목도 몇 군데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이런 불쾌한 일이 생기는 것을 피하려면 여기서는 화제에 오른 관청 이름도 그저 '어떤 관청'이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부르는 것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p.95-96)

 

그가 그 어떤 관청에 언제 어느 때 들어가게 됐는지, 누가 그를 그 자리에 임명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국장이나 과장은 수없이 많이 바귀었지만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 같은 등급인 서기라는 직책을 여전히 맡고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다들 그가 마치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머리가 벗겨지고 관리 제복을 입은 채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그가 일하는 관청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를 존중해 주지 않았다. 수위들조차도 그가 앞을 지나가도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마치 파리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는 듯한 태도로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더구나 상관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에게 위압적이고 전제적인 태도를 보였다. 계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자는 아예 예의상 하는 최소한의 말 한마디도 없이 그의 코앞에 다짜고짜 서류를 불쑥 들이밀곤 했다. 그에게는 '이거 정소 좀 해 줄래요' 라거나 '이거 꽤 재미있는 일감인 것 같은데' 등과 같은 의례적인 푷ㄴ조차 그에게는 생략하는 것이다. 아카키 아카키에비치 역시 일을 맡기는 사람이 누군인지, 그 사람에게 그런 일을 시킬 권리가 있는지 따위에는 아예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자기 코파에 있는 서류를 힐끔 보고는 그냥 받아서 즉석에서 그것을 정서하기 시작하곤 했다.

젊은 관리들은 이른반 공무원식 위트를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그를 풍자하고 골려먹기에 바빴다. 그들은 전혀 근거 없는 얘기를 만들어 그의 앞에서 떠들어대곤 했다. 그의 하숙집 주인은 나이가 일흔이 넘은 할머니였는데, 젊은 관리들은 이걸 빌미로 아카키 아카키에비치가 항상 그 할머니에게 얻어맞고 지낸다느니, 노파하고 결혼식은 언제 올릴 계획이냐느니 하며 짓궂게 굴었다. 심지어는 종이 조각을 잘게 찢어서 눈이 내린다며 그의 머리 위에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이런 짓궂은 장난에 대해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마치 그런 모습들이 자기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사실 그가 일을 하는 데 그러한 장난은 별로 방해가 되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심하게 장난을 걸고 조롱해도 그는 서류에 글자 하나 틀리게 쓰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장난이 도를 넘어 사람들이 그의 팔꿈치를 툭툭 건드리며 일을 방해할 정도가 되면 그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나를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거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음성과 말투에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사람의 동정심을 이끌어 내는 그 무언가 말이다. 어느 땐가 그 관청에 새로 임명돼 왔던 어떤 청년 관리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를 놀려대다가 갑자기 무엇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바뀌어 장난을 그만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청년의 눈에는 모든 사물이 갑자기 달라 보였다.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그를 여태까지 교재헤 왔던 사람들과 완전히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전까지 그 청년은 그들을 예의 바르고 사교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그 후 오랫동안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갑자기 이마가 벗겨지고 키가 작달막한 어떤 관리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 모습과 함꼐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 거요! 라던,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듯한 애처로운 말소리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이 애처로운 말속에는 '나도 당신들의 형제요!'라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럴 때면 이 가엾은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했다. 그리고 그 후 평생을 통해 이 청년은 인간의 내면에는 얼마나 비인간적인 요소가 많이 숨겨져 있는가를 눈앞에서 보며 몇 번씩이나 무서운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교양 있고 세련된 상류 사회의 사람들, 심지어 고결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세상의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의 내면에도 그런 잔인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야수성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그는 지켜보았던 것이다. (p.100-10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보이지 않는 인간 - 랠프 앨리슨 (송무 옮김,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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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시체는 묘지로 실려 나가 매장됐다. 그리고 아카키 아카키에비치가 없어져도 페테르부르크는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였다. 마치 그런 인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리하여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 누구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했던, 흔해빠진 파리조차도 핀으로 꽂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박물학자의 주의조차 끌지 못한 존재, 관청에서 온갖 비웃음을 순순히 참아내면서 이렇다 할 업적 하나 이루지 못한 채 무덤으로 간 그 존재는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역시 비록 생애가 끝나기 직전이기는 했지만 외투라는 기쁜 손님이 환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의 초라한 인생에 잠시나마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리고는 곧 이 세상의 힘센 존재들에게도 예외 없이 닥쳐오는, 피할 수 없는 불행이 그에게 닥쳐 오고야 만 것이다. (p.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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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 1809년 3월 20일 ~ 1852년 2월 21일)

러시아의 작가이며 극작가이다.

1809년 우크라이나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818년 풀타바 군립 학교를 거쳐 1829년 네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젊었을 때 배우를 지망했으나 성공하지 못해 문학으로 전환한 고골은 철학, 문학, 역사에 관심을 두었고 이후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 1827년에 페테르스부르크로 이주하여 우크라이나 인민의 생활을 취재한 소설 《디카니카 근교 농촌 야화》를 출판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으며, 이때부터 알렉산드르 푸시킨을 사귀고 이후 그가 남긴 대작의 소재는 거의 대부분 푸시킨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1834년 페테르스부르크 대학의 조교로서 세계사를 강의했으나 실패하여 곧 퇴직하였다. 1836년 희극 《감찰관》을 알렉산더 극장과 모스크바에서 상연하였다. 이는 진보 세력의 절찬을 받았지만, 지배 세력으로부터는 공격을 받게 되어 그는 로마로 갔다. 그 후 계속하여 스위스·파리·로마 등지에 거주하였다. 1847년에 또 하나의 대표작 《결혼》을 쓰고, 같은 시기에 로마에서 명작 《죽은 영혼》의 제1부를 완성했고 제2부의 집필을 시작하며 1848년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건강을 해친 뒤였다. 결국 《죽은 영혼》을 모스크바에서 완성했으나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정신적 고뇌와 사상적 동요로 인해 정신 착란에 빠져 원고를 불 속에 던지고 10일간의 단식으로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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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 고골 (조주관 옮김, 민음사)

외투 - 고골 (이기주 옮김, 펭귄클래식)

외투 - 고골 (김영국 옮김, 범우사)

외투 - 고골 (김학수 옮김, 동서월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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