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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네프스키 거리 - 고골리 (오정석 옮김, 산호와 진주)

by handaikhan 2024. 2. 29.

고골리 단편선

 

네프스키 거리

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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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 - 네프스키 거리 (1835년)

 

페테르부르크에 네프스키 거리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이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이 도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수도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거리에서 훌륭하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두가 그 어떤 행복의 대가로도 네프스키 거리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멋진 수염을 기르고 근사한 프록코트를 입은 스물다 섯 살 쳥년뿐 아니라, 머리카락이 은쟁반처럼 미끈한 노인들까지도 네프스키 거리를 큰 자랑으로 삼고 있다. 아 여자들에게는 어떤가! 여자들에게 네프스키 거리는 훨씬 더 유쾌한 존재다. 과연 이 거리가 유쾌하지 않다는 사람이 있을까? (p.9-10)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그렇게 신성한 얼굴을 가진 여자가 그런 곳에 살고 있다니? 어떻게 그런 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사실 음탕하고 독성 가득한 숨결을 들이마신 아름다운 여자를 만날 때면 강렬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추한 여자라면 몰라도 그처럼 아름다운 미녀가, 우아한 여자가.... 우리의 머리는 아름다운 여자라면 무조건 순순하고 순결하다는 것과 연관짓게 마련이다. 피스카로프를 이토록 매혹시킨 여자는 사실 너무나 아름다웠다.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또 그런 부류의 여자가 그처럼 비천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여자의 얼굴 생김새는 정말 너무도 맑아서, 그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 표정은 실로 너무나 고상해 보여서 어떠한 음탕함이 무서운 마수를 여자에게 뻗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정열적인 남편에게는 실로 값진 진주가 될 수 있고, 전 세계가 될 수 있고, 낙원이 되고 또 전 재산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여자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가정의 단란함 속에서 아름답고 조용한 별이 되어, 아름다운 입술을 조금만 움직여도 즐거운 명령을 내릴 수 있을 터였다. 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다란 홀의 모자이크 위에서 촛불의 빛을 듬뿍 받으며, 그녀의 숭배자들이 말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발밑에 조아리는 가운데 마치 여신처럼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아! 그러나 그녀는 이 세상의 조화를 망가뜨리려는 악마의 무서운 계략에 의해 비웃음을 받으면서 이 무서운 나락에 내던져진 것이다. (p.36-37)

 

그들은 상류 계층의 모임에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곳에 가면 이 사회에서 귀족이라는 칭호를 받는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압도당해 버린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지식 있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불가닌이나 푸슈킨, 그레차니노프를 찬양하고 오를로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신랄하게 비꼬며 경멸하기도 한다. (p.66-6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마제파 - 파데이 불가린 (남규진 옮김, 크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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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운명이란 것은 얼마나 기묘하게 우리를 조롱하는가! 우리는 언제쯤 욕심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언제쯤 욕심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힘이 그것을 위해 준비되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것에 우리는 도달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반대 형태로 나타난다. 운명에 의해 가장 아름다운 말을 얻은 자는 말이 아름답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 그것을 타고 다닌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말이라도 좋다는 다른 사람은 절름발이 말이 옆에 지나갈 때 그저 옆에서 혀를 차는 것으로 만족하며 걸어다닌다. 어떤 자는 기술이 뛰어난 요리사를 고용하고 있으면서도 두 조각 이상은 넣을 수 없는 작은 입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참모본주의 아치와 같은 큰 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엾게 독일식 감자 요리로 만족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운명이란 것은 얼마나 기이하게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네프스키 거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오, 절대 네프스키 거리를 믿지 말아라! 나는 그곳을 지날 때는 외투로 몸을 꼭 감싸고 도중에 부닥치는 것들에는 일체 눈을 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모든 것이 허상이며, 모든 것이 꿈과 같다. 모든 것이 보기와도 다르다. 여러분은 훌륭한 코트를 입고 거리를 거니는 신사가 정말 부유하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외투가 그의 간판인 것이다. 여러분은 건축 중인 교회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뚱보가 건축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는가? 역시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두 마리의 큰 까마귀가 서로 마주보고 ㅇ이상하게 앉아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저기서 손까지 흔들어대며 이야기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 아내가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장교를 향해 창문에서 공을 던졌다는 이야기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라페예트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들 숙녀들을.......되도록 이 여자들을 절대 믿지 마라. 가능하면 상점의 진열장을 들여다보지 마라. 그 안에 진열된 물건들이 분명 아름답기는 하지만 실로 큰돈을 낭비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리고 모자 아래로 숙녀의 얼굴을 훔쳐보는 일이 제발 없기를! 멀리서 아름다운 여자의 망토가 아무리 매혹적으로 펄럭이더라도 나는 흥미를 느끼고 그 뒤를 밟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가로등 밑을 피해서 제발 멀리, 가능한 한 걸음을 재촉해 그 옆을 지나 버리기를! 멋진 외투에 가로등의 냄새나는 기름이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더군다나 가로등뿐만 아니라, 그 밖의 모든 것들이 허상에 가득 차 있다.

네프스키 거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속인다. 그 가운데서도 저녁놀이 거리 구석구석까지 무겁게 내려앉아 집들의 흰 벽을 드러나게 할 무렵, 도시가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와 반짝이는 불빛으로 넘쳐흐르고 무수히 많은 마차가 다리 쪽에서 몰려와 마부가 고함을 치며 말 위에서 뛰어내릴 때,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본래의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램프의 불을 밝힐 때가 되면 네프스키 거리는 사람들을 더더욱 심하게 속인다. (p.8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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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 1809년 3월 20일 ~ 1852년 2월 21일)

러시아의 작가이며 극작가이다.

1809년 우크라이나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818년 풀타바 군립 학교를 거쳐 1829년 네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젊었을 때 배우를 지망했으나 성공하지 못해 문학으로 전환한 고골은 철학, 문학, 역사에 관심을 두었고 이후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 1827년에 페테르스부르크로 이주하여 우크라이나 인민의 생활을 취재한 소설 《디카니카 근교 농촌 야화》를 출판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으며, 이때부터 알렉산드르 푸시킨을 사귀고 이후 그가 남긴 대작의 소재는 거의 대부분 푸시킨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1834년 페테르스부르크 대학의 조교로서 세계사를 강의했으나 실패하여 곧 퇴직하였다. 1836년 희극 《감찰관》을 알렉산더 극장과 모스크바에서 상연하였다. 이는 진보 세력의 절찬을 받았지만, 지배 세력으로부터는 공격을 받게 되어 그는 로마로 갔다. 그 후 계속하여 스위스·파리·로마 등지에 거주하였다. 1847년에 또 하나의 대표작 《결혼》을 쓰고, 같은 시기에 로마에서 명작 《죽은 영혼》의 제1부를 완성했고 제2부의 집필을 시작하며 1848년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건강을 해친 뒤였다. 결국 《죽은 영혼》을 모스크바에서 완성했으나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정신적 고뇌와 사상적 동요로 인해 정신 착란에 빠져 원고를 불 속에 던지고 10일간의 단식으로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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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프스키 거리 - 고골 (조주관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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