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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2. 외국 문학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 고트프리트 뷔르거 (한미희 옮김, 비룡소)

by handaikhan 2024. 2. 9.

 

 

고트프리트 뷔르거 -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1785년)

 

얘들아! 보다시피 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어.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 셋이 날 찾아왔거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말이야. 바로 내 여행 이야기지. 이렇게 모일 때면 늘 그렇듯이, 우리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파이프 담배를 뻑뻑 피워 대면서 배가 불룩한 술병을 계속 기울이고 있어...(p.7)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정말 조금도 뻐기지 않고 하고 있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프라이팬이 없어서 넘치는 사냥감을 지글지글 볶지는 못했단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그렇잖아. 항상 뭔가 모자라는 법이지. 이를테면 내 이야기가 백 퍼센트 사실뿐이라서 재미가 조금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자 내 친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것 있지.

깐깐한 안토니우스가 말했어.

"남작, 우리 모임에서 그런 터무니없는 말은 말게. 나는 어쨌든 정말 재밌게 들었네. 털끝만 한 거짓말이라도 찾아내려고 귀를 곤두세웠지.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 하긴 거짓말을 찾아냈으면 재미있을리가 없었겠지."

그러자 착한 엥겔베르트가 말했어.

"친애하는 뮌히하우젠, 나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네. 어떤 이야기든지 뒤로 갈수록 점점 흥미진진해지더군. 나는 지금 나 자신한테 그리고 자네한테 묻고 싶은 마음뿐이야. 자네 어머님이신 존경해 마지않는 유명한 쿠니군데 폰 뮌히하우젠 님은 당신이 대체 어떤 아드님을 두셨는지 알고 계실까? 이렇게 놀랍고 특이한 허풍선이 아들을 둔 여인은 아마 이 세상에 또 없을걸. 아,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허풍선이 아들이 아니라 남작 아들이지!" (p.32-3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봉이 김선달 - 강용숙 (꿈소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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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났구나 싶었을 때마다, 누가 날 도와주었게? 바로 저 유명한 행운의 여신이야. 난 잘 모르겠어. 너희들도 그런 경험이 있니? 행운의 여신이 나만 특별히 좋아하는 걸까? 그래서 나만 바라보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걸까? 역시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행운을 믿을 수 있단다. 여기서 이 말은 꼭 해야겠다. 행운 역시 나를 믿을 수 있을 거야. 왜냐하면 행운만 갖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거든. 정말이라니까! 우선 솜씨가 좋아야 해. 그 다음엔 제일 좋은 도구를 마련하는 게 중요해. 마지막으로 누가 같이 가는지가 중요하단다. 말인지 개인지, 수컷읹 암컷인지......건강한 두 발 동물 옆에 약한 네 발 동물이 있으면 별로 좋지 않아. 너희들의 친구 뮌히하우젠 남작이 손톱만큼도 잘난 체 뻐기지 않고 아주 겸손하게 말한다. 나는 늘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동물이 꼭 필요했단다. (p.36)

 

높으신 분들이 옥좌에 앉아 수많은 사람을 죽일 일이나 꾸미고, 정작 자신은 발 빼는 걸 보면 정말 한심해. (p.45)

 

내 친구들이 나 뮌히하우젠뿐 아니라, 도끼도 굳게 믿고 있다는 걸 알겠더라고. 하지만 도끼는 더 멀리 날아갔어. 인간의 팔이 던질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내 도끼만큼 멀리 날아간 적이 없을걸. 어디까지 갔냐고? 달나라까지!

하지만 은 도끼 걱정은 하지 마! 뮌히하우젠은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터키 콩이 있잖아. 잘 알려져 있듯이, 터키 콩은 놀랄 만큼 빨리 자라거든! 나는 즉시 콩을 심었어. 콩은 쑥쑥 쑥쑥 자라, 까마득한 하늘을 지나, 드디어 달나라에 닿았어. 터키 땅에 있는 나로선 알 도리가 없는 어떤 것에 넝쿨을 감으려고.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었어. 나는 콩 넝쿨을 타고 위로, 위로 더 위로 올라갔어.

손과 팔이 다 뻣뻣해질 때까지 넝쿨을 타고 올라갔지.

문득 죽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아름다운 우리 지구를 내려다보며 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했단다. 인간들은 왜 서로 욕하고, 왜 티격태격 싸울까? 왜 아름다운 우리 지구를 더럽히고 망가뜨릴까? 세상만사가 다 무의미한 것 같더라고.

하지만, 얘들아, 그 순간 내 친구들 생각이 났어! 친구들을 떠올리니 다시 용기가 나고 힘도 나더라. 나는 다시 콩 넝쿨을 타고 재빨리 올라갔어. 위로, 위로, 더 위로. 달나라라는 놀라운 땅에 도착할 때까지.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별로 없어서 달나라에 정말 남자가, 혹은 여자가 사는지 둘러볼 여유는 없었어. 잠깐 산책만 했어. 아니, 잠깐 겅중겅중 뛰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냉큼 도끼를 찾아 들고 다시 집에 오려고 했지.

아, 그때 콩 넝쿨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글쎄 넝쿨이 그사이 바싹 말라 버린 거야. 타고 내려갈 엄두도 못 내겠더라. 세상에, 너무해! 너무해!

상상력을 발휘해서 빠져나갈 방도를 생각해 내야 했어. 상황이 어려워지면 나는 늘 기막히게 좋은 생각이 난단다. 그래서 이번엔 어떤 생각이 날지 바짝 기대가 되더라.

하지만 정말 실망했어. 너무 단순한 생각이 나서. 그냥 말라비틀어진 콩 넝쿨을 이어서 밧줄을 만들어 수많은 분화구 중 하나에 꼭꼭 동여맸을 뿐이야.

나는 얼른 내려왔어. 아래로, 아래로....아, 이런, 줄이 너무 짧잖아! 이제 정말 끝난 걸까?

그때 한 세기에 딱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막힌 생각이 났어! 나는 다짜고짜 도끼를 들고, 이제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머리 위쪽의 넝쿨을 찍어 냈어. 그 넝쿨을 손에 잡고 있는 넝쿨 끝에 이었어. 마지막으로 한 번 훌쩍 뛰면 터키 땅에 닿을 때까지 계속 그렇게 했단다! (p.56-59)

 

하지만 얘들아, 인생이란게 어떤 거니?

어떤 불행도 결국 끝이 있는 법이란다. (p. 84)

 

아버지는 우리에게 늘 이렇게 말슴하셨단다.

"너희들이 해 주는 이야기가 아무리 희한하고 재미있다고 해도 항상 으스대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자기 자랑은 고약한 입 냄새와 같은 거야. 우리 뮌히하우젠 가문은 그런 짓은 절대 용납 못한다. 너희들이 정말 영웅적인 일을 했어도 차라리 입을 다물어라. 이 세상은 어차피 더벌이와 허풍선이로 득실대니까. 사람들 눈에 띄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아주아주 겸손하거나, 아니면 세계 제일의 허풍선이보다 더 허풍을 떨어야 한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다. 절대 비밀이야. 너희들은 왜 많은 남자들이 허풍을 떠는지 알고 있지? 안 그래?

살짝 말해 줄게. 열듬감 때문에 그러는 거야. 속으로는 여자들보다 자기들이 더 약하다고 느기고 있지. 그래서 아무리 눈치채지 못하게 잰 체 뽐내는 거야. 알겠니?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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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프리트 뷔르거(Gottfried August Burger, 1747~1794)

1747년 독일 태생으로 근세 발라드의 아버지로 불린다. 신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나 ‘괴팅엔시파’와 교류하면서 소박하면서도 민중성을 살린 독특한 시들을 창작, 유럽 낭만주의 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 『레노레Lenore』(1773)는 죽은 연인 행세를 하며 나타난 유령이 번개가 치는 밤 주인공을 데리고 사라진다는 내용의 유령 로맨스로, 당시로서는 선정적인 주제와 잘 다듬어진 후렴구 등을 사용함으로써 민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괴팅엔 대학의 강사 시절, 라스페가 쓴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접한 그는 독일 지방의 이야기가 타국에서 먼저 쓰인 것을 발견하곤 서둘러 자국의 언어로 다시 썼다. 영국 특유의 지역적인 관심사를 삭제한 대신 에피소드들을 보충하고 윤색하고 순서를 바꾸었으며, 그가 살던 시대를 빗댄 일화들을 새롭게 추가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떠한 대가도 받지 못했다. 책을 출간하면서 모든 권한을 출판인 디터리히에게 공짜로 넘겼기 때문이다. 뷔르거가 하필이면 익명으로 간행해 평생 그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던 이 작품이 자신이 지은 발라드보다도 더 많이 알려지고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것은 문학사의 역설로 보인다.
1794년 그가 사망하고 4년이 지나서야 『고트프리트 아우구스트 뷔르거의 고귀한 생활과 형편에 관한 몇 가지 소식』에서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과 관련하여 뷔르거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그는 이 책의 원저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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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 고트프리트 뷔르거 (염정용 옮김, 인디북)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 루돌프 에리히 라스페 (이매진 옮김,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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