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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2. 외국 문학

공주와 고블린 - 조지 맥도널드 (황해조 옮김, 교원)

by handaikhan 2023. 5. 18.

교원 위즈퍼니 세계 명작 1

 

조지 맥도널드 - 공주와 고블린 (1872년)

 

옛날에 어린 공주가 있었다. 아버지는 깊은 골짜기와 높은 산이 많은 큰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었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왕의 궁전은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공주 아이린이 태어났다. 공주는 태어나자마자 곧 궁전을 떠나야 했는데, 어머니의 몸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공주는 큰 저택에 사는 시골 사람들 손에 자랐다. 절반은 성, 절반은 농가로 이루어진 이 저택은 왕이 사는 곳과 다르게 산기슭과 산꼭대기 중간인 산 중턱에 있었다. (p.11)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런 식으로 말한 사람들이 고블린의 짐승을 고블린이라고 착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의 설명과 달리 고블린의 모습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블린의 몸은 점점 기형적으로 변했지만, 지식과 솜씨는 점점 더 발전했다. 이제 그들은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더 교활해졌고, 못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가장 큰 기쁨은 온갖 방법을 궁리해 내 그들 머리 위, 즉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나 고블린의 마음속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고블린들은 성가시게 하는 자들이 있어도 끔찍할 정도로 잔인하게 대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조상의 소유물을 차지한 사람들, 결국 자신들을 내쫓은 왕의 자손들에게는 조상의 원한을 가슴속 깊이 품고 있었다. 그들은 왕의 자손들을 괴롭힐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며, 그들의 모습처럼 기괴한 방식을 고안해 내고 있었다. 몸은 왜소해지고 기형적으로 변했지만 그들은 교활해졌고, 그에 못지않게 힘도 세고 강해졌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고블린도 그들의 나라를 세웠고, 왕을 뽑았다. 간단한 일상의 일들을 다스리는 것을 포함해서 이웃 사람들을 괴롭힐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왕의 중요한 업무였다. (p.13-14)

 

그러나 공주의 모험은 어제처럼 시작되긴 했지만 어제 같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실제로도 오늘이 어제와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 어제와 똑같이 비가 내린다고 해도 오늘은 다르게 내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 (p.4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 헤밍웨이 (김욱동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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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도 거대한 먹구름이 산을 에워싸고 있었고, 물을 잔뜩 빨아들인 스펀지를 짜듯 비가 퍼부었다. 공주는 문밖으로 나갈 생각에 들떠 있다가 날씨가 좋아지지 않자 울먹거렸다. 그런데 날씨는 흐렸지만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햇빛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거의 햇빛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밝아졌다. 오후 늦게 해가 찬란하게 타오르자 아이런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보, 봐, 루티! 해가 말끔하게 세수를 했어. 얼마나 눈부신지 봐! 모자 좀 갖다 줘, 산책을 나가야겠어. 야, 정말 멋지다! 멋지다! 너무너무 좋아!"

루티는 기뻐하는 공주를 보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유모는 공주의 모자와 망토를 가져왔고, 두 사람은 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길이 아주 단단하고 경사가 기울어져 있어 물이 고일 틈이 없는 데다가, 비가 그치고 나면 곧바로 말라서 걷기에 딱 알맞았다. 커다란 털복숭이 양 같은 구름이 여기저기 흩어져 떠다녔는데 햇빛에 표백된 털처럼 너무 하얘서 볼 수 업을 정도였다. 구름들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은 더 깊고 푸르게 빛났다. 길가의 나무들마다 매달려 있는 물방울들은 햇빛에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비 때문에 밝은 빛을 잃은 것은 계곡들뿐이었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점점 내려오면서 진흙탕 색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색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음악처럼 아름답던 계곡의 물소리도 점점 소음으로 변했다. 하지만 아이린 공주는 신이 나서 커다란 갈색 물줄기를 따라 사방을 뛰어다녔다. 루티 역시 즐거웠다. (p.43-44)

 

녹색 빛으로 환하게 반짝거리는 두 눈이 열린 창문 너머에서 공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무엇인가가 방 안으로 훌쩍 뒤어 들어왔다. 꼭 고양이 같았는데, 다리는 말처럼 길었다. 그러나 공주가 보기에 그것의 몸집과 다리는 고양이보다 더 크지도, 더 굵지도 않았다. 공주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하지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 나갈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여러분은 공주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실제로 무엇을 생각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도는 낡은 계단 밑으로 갔을 때, 공주는 그 동물이 긴 발로 뒤쫓아와 자신을 덮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탑까지 올라갈 수 없을 거야! 이런 생각이 공주를 괴롭혔다. 절망적이었다. 공주는 계단에서 몸을 돌려 거실 쪽으로 뛰어갔다. 마침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공주는 짐승이 뒤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거실 쪽으로 내달렸다. 공주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주는 무섭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달렸다. 끔찍한 다리가 달린 동물로부터 피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뒤를 돌아볼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공주는 문 밖으로 곧장 달려 나가 산으로 달아나 버렸다. 정말이지 어리석은 짓 아닌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더 멀리 도망치고 있다니. 그것은 고블린의 짐승이 자기를 마음대로 잡아먹기에 딱 알맞은 장소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서움은 항상 그런 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겁을 먹으면 우리는 항상 샛길로 가게 된다. (p.128-130)

 

"왜 할머니는 늙었다고 말씀하세요? 할머니는 전혀 늙어 보이시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 나는 늙었다고 할 만큼 나이가 들었단다. 그런데 널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만, 사람들은 어리석기도 하지. 나이가 들었다고 하면 허리는 꾸부정하게 굽었고, 얼굴은 쭈글쭈글하고, 기력이 다 빠진 모습만 생각하다니 얼마나 어리석냐. 노인이라면 지팡이나 안경, 관절염, 건망증 따위만 떠올리거든! 어리석기 짝이 없어! 나이가 들어 늙는다는 건 사실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단다. 올바른 의미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힘이 생기고,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기쁨을 느기고, 용기가 생기고, 눈이 맑아지고, 팔다리에는 쉽게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이 붙게 되는 거란다. 할머니는 네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나이가 많단다. 그리고..." (p.14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노년에 관하여 - 키케로 (김성숙 옮김, 동서월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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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만 믿는단다. 그러니 더 많이 믿는다고 해서 조금만 믿는 사람들을 탓해서는 안 되는 거란다. 너 역시 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했을 거야." (p.214)

 

공주는 커디가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 것만큼이나 커디의 말을 믿지 않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p.215-216)

 

"시간을 좀 주려무나."

할머니가 말했다.

"한동안은 다름 사람이 믿지 않아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단다. 참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 할머니는 아주 오랫동안 참아 왔단다. 또 앞으로도 참아야 하지. 결국에는 커디도 널 믿게 될 거야. 그러니 이번엔 그냥 보내도록 해라." (p.217)

 

"그래, 커디는 루티보다는 훨씬 더 마음이 열려 있지. 커디가 어떻게 달라질지 너도 보게 될 게다. 하지만 얼마 동안은 네 말을 믿어 주지 않아도 참아야 한단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믿어 주길 간절히 바라지만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야.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단다."

"그게 뭔데요, 할머니?"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거란다."

"네, 할머니. 공평해야죠. 전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는 공평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이 저를 믿어 주길 바랄 자격이 없어요. 알겠어요. 커디도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이제는 기분 나빠하지 않겠어요. 참고 기다리겠어요." (p.218-219)

 

"그렇다면 얘야, 전체적으로 이 일에서 너도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는 말이지?"

어머니가 물었다.

"네, 그래요, 어머니. 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내가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겠어요? 또 어떻게 내가 있는 곳까지 혼자서 찾아올 수 있었겠어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어요. 그리고 구멍에서 나를 꺼낸 다음, 공주님이 길을 찾아 산에서 빠져나왔어요.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도 없는 길이었죠. 대낮처럼 환한 길이었다고 해도 저로서는 전혀 찾아갈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공주님이 했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단다. 너를 데리고 나온 건 공주님이잖아. 그러니 틀림없이 공주님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뭔가가 있었을 거야. 그게 실이면 어떻고, 밧줄이면 어떠냐? 그게 뭐였던지 네가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거야. 공주님의 설명이 맞는지도 모르지."

"어머니, 그건 설명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전 믿을 수 없다니까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거란다. 일단 이해가 되고 나면 설명도 되고, 확실하게 믿게 되지. 커디, 공주님이 한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해서 너를 꾸지람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네가 어린아이가 널 속이려 했다고 오해하고 있으니, 그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거란다. 공주님이 왜 그런 말을 했겠니? 그 말에 따르면 공주님은 자기가 아는 대로 모두 말한 게 아니냐. 공주님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더 잘 알아보기 전까지는 적어도 너의 판단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일을 미루어 둬야 했어." (p.227-228)

 

잘못을 했거나 실수가 있었다고 하자. 그러나 이를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꺼려 한다면 그것은 비열하고 하찮은 행동이다. (p.246)

 

왕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 왕은 행동을 먼저 하고 질문은 나중에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p.28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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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맥도널드 (George MacDonald, 1824년 12월 10일 - 1905년 09월 18일)
스코틀랜드의 시인, 작가. 

1824년 12월 10일 스코틀랜드의 헌틀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어머니와 사별했으나 다정하고 착한 새어머니 아래서 비교적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애버딘의 킹스 칼리지를 졸업한 뒤 목사가 되기 위해 1848년 런던의 하이버리 칼리지에 입학하였고 1850년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교리에 대한 논쟁이 벌어져 1853년 사임했다. 그 후 영문학 강의, 개인 지도, 강연, 설교, 아동잡지 편집 일과 문필 생활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1851년 루이사 파월Louisa Powell과 결혼한 뒤 열한 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전 가족이 극단을 구성해 공연을 하기도 했다. 평소 그는 어머니를 앗아간 결핵을 앓았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명랑함과 유쾌함을 보이며 여러 사람들에게 환대를 베풀었다. 자녀 가운데 네 명을 병으로 잃고 노년에 아내 역시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은 뒤에는 말문을 닫은 채 침묵 속에서 지냈다. 1905년 9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소설, 동화, 시집, 설교집, 문학비평서 등 맥도널드가 쓴 책은 50여 권에 달한다. 사실주의 소설이 유행하고 엄격한 문화적·사회적 차별이 만연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한복판에서,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신선한 충격과 더불어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오늘날 ‘판타지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루이스 캐럴, J. R. R.톨킨, C. S.루이스, G. K. 체스터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행복한 가정 생활과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나와 그의 작품 면면에 흐르는 사랑과 선은, 흥미로운 캐릭터와 재치 넘치는 대사, 뛰어난 상상력과 가슴 뭉클한 감동을 더하며 자연스레 빛을 발한다. 『공주와 고블린』, 『북풍의 등에서』, 『황금 열쇠』, 『가벼운 공주』, 『현명한 여인』, 『판타스테스』, 『릴리스』는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공감을 일으키며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이끈다. 이 외에 설교집인 『전하지 않은 설교』, 『우리 주님의 기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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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고블린 - 조지 맥도널드 (시공주니어)

가벼운 공주 - 조지 맥도널드 (문학과지성사)

북풍의 등에서 - 조지 맥도널드 (시공주니어)

공주와 난쟁이 공주와 커디 - 조지 맥도널드 (현대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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