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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1. 동양 - 고전 소설

뜬구름 - 하야시 후미코 (이상복 옮김, 어문학사)

by handaikhan 2023. 2. 2.

하야시 후미코 - 뜬구름 (1951년)

 

젊은 여자에게 평범이라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p29)

 

내가 돌아올 때까지는 반드시 해결해서, 부인과 헤어져 깨끗하게 나를 맞이할 거라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지요? 남자란 사기꾼이야. 여자를 말로만 위로하고 자신의 경계는 확실히 해두지요. 나를 이런 곳으로 데리고 와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지독한 사람이야. 일본으로 돌아오면 모든 옛날 생활은 깨끗이 청산하고 둘이서 일용 노동자라도 하면서 살자고 말해놓고선….(p94)

 

당신은 나 따위는 버리고 싶겠지요?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나의 일 따위는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겠지요. 나라는 존재가 당신에게는 고통일 테니까. 나는 당신과 헤어지면 지옥으로 떨어져 버릴 거예요.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 버릴거예요. 당신의 그림자만 보며 살아갈 수는 없어요. 부인을 사랑하지요? 거지처럼 구걸하는 애정은 싫어요. (p104)

 

유키코는 화로에 불을 붙여 오징어를 구우면서 말했다. 구운 오징어를 접시에 조그많게 찢어 놓으면서 자신의 손끝에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행복을 느꼈다. 인생은 잘 살아가는 것이라는, 그런 눈앞의 행복이 오징어 냄새 속에 배어 있는 듯해 유키코는 속으로 킬킬 웃었다. 나는 잘 살고 있지만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된 거예요. 미꾸라지같이 거품을 뿜어내고 있지 않아요? 유키코는 그런 기분이었다. (p144-145)

 

나날의 생활이 너무 시시하고 애달프기만 한 도미오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희극적으로 생각되었다. 모두 성실하게 비극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인류를 윤택하게 하는 인간의 비극의 묘미는 몇 천 년 전부터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다. 인간이 하는 일은 전부 희극의 연장선이었다. 인간은 마음을 억누르며 살며시 희극 속에서 살아간다. 정의를 내세우는 일도 희극, 인간의 선도 악도 모두 희극인 것이다. 눈물이 나올 정도의 이상함 속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맞는 가장 지극한 이유를 붙여서 생활하고 있다. 죽음 직전이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한숨이 나올지도 모른다. (p170-171)

 

당신의 사랑도 나의 사랑도

처음에는 진실했다.

그 눈은 진실한 눈이었다.

나의 눈도, 그날 그때는 진실한 눈이었다.

지금은 당신도 나도

의심스러운 눈…… (p174)

 

지금에 와서 추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멀리 사라진 꿈은 그립다. (p174)

 

생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모두가 쓸쓸하고 아름답다. 가엾을 정도로 보는 것이 모두 아름답다. 하얗게 보이는 국화꽃의 연 노란색….때탄 족자의 산수화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p176)

 

좀 더 괴로워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당신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겠지만둘이 만나서 옛날 일을 그리워해봤자 이제 세월은 흘러버렸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야. 그런 옛날이야기로 당신과 나 사이가 옛날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그 때문에 나는 마누라에게 옛날처럼 애정이 가지 않고, 전쟁은 우리들에게 강한 꿈을 보여주었던 것이야. 어쩔 수 없이 혼이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어. 애매모호한 인간이 되어버렸어. 이 도한 때가 되면 옛날니야기로 퇴색되어버리겠지. 인생이란 그런 것이야. 갈망하는 마음만이 바보스럽게 강해져 이런 현실에서는 되도록 타격받지 않도록 영악해지는 거지. 우라시마 다로의 파란 시대 같은 거야. 현실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 묘한 큰 여행은 하지 않는 쪽이 좋겠어……

그래요. 알아요. 하지만 살아 있는 한은 우라시마 다로처럼 언제까지나 엉덩방아나 찧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연기나는 상자의 뚜껑이라도 닫고 거기서부터 걷기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도 먹여살려 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둘이 헤어져 이 삼 일 정도 만나지 않으면 문득 보고 싶어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나는 언제나 당신을 생각해요. 미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면서….인간이란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이야. 어쩌면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 감정도 편해질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p194-195)

 

운명적인 만남이란,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역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연한 만남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된다. (p203)

 

사람으로 태어나 내일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어려우니

영요의 사람을 보고

가는 세월이 그러하리라 여기지만

세상의 변화는 너무나 빠르나니

날개를 편 잠자리의 걸음도

그렇게 빠르지는 않으리                    (p265)

 

현실 세계에서 살아 있는 인간끼리 서로를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정열적인 연애를 하고 있어도 어려운 것이다. 미묘한 무지개가 인간의 마음 깊숙이 나타나서는 사라지고 나타나서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안타까워서 인간은 웃거나 울거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은 그런 생물이다. (p268)

 

나는 이제 남자에게 속지 않아요. 여자라도 나이를 먹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겨요. 나는 이제 옛날의 보상 따윈 필요 없어요. 당신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아니, 비열한 마음으로 말한 게 아니야. 모두 유키코의 행복을 생각해서 이런 말을 사심없이 하는거야. 너무 이상을 좇는 일은 생각 안 하는게 좋을 거야. 너는 세상 속에서 쓴맛 단맛을 꽤 경험해 왔잖아? 남자나 여자나 사랑이라는 둥, 반했다는 둥의 말 같은 건 크게 믿을 게 못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이 세상의 천국도 지옥도 돈의 문제야. 돈의 고마움을 나는 절실히 알아. 종전 후 뒤처져서 그때만큼 우울했던 적은 없지만 오늘날의 나, 이바는 달라. 살아서 돈을 모을 수 있을 때 모아둘 필요를 느꼈어. (p291)

 

두 사람 모두 얻을 수 없는 옛날의 꿈을 너무 꾸어서 서로를 싫어하게 된지도 모른다. (p337)

 

누구라도 곤궁할 때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네요. 마음까지 허전하여 늑대처럼 되어버리나 봐요. 서로 사랑하고 있더라도 허전 할 때는, 서로 싫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평화스런 바다를 항해해 가는 배에 타면 멀미도 없지만, 폭풍우가 치는 날의 출항은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 해도 멀미를 하잖아요…(p339)

 

인간은 단순한 것이다. 사소한 것에서 현실은 금방 변화한다. 의외로 상처받지도 않는다. 곧 일어나서 미소 짓는다. (p353)

 

추억과 운명이라는 것을 여자는 언제나 착각하고 있다….. (p430)

 

도미오카는 마치 뜬구름 같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게 사라져갈 뜬 구름이다.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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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 1903~1951년)

1903~1951.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가난한 부모를 따라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녔다. 여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를 꿈꾸며 고단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 부나 팔린 『방랑기』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당시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특히 여성의 자립과 가족,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내 대중에게 사랑받았고 사후에도 다수의 작품이 영화, 연극, 드라마로 제작됐다. 1948년 제3회 여류문학자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청빈의 서』, 『만국』, 『뜬구름』, 『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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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 - 하야시 후미코 (이애숙 옮김, 창비 세계문학)

일본 근현대 여성문학전집 - 하야시 후미코 (김효순 옮김, 어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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