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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우리들의 장례식 - 박범신 (한국헤르만헤세)

by handaikhan 2023. 7. 24.

큰한국문학 413 (75권)

 

목차

 

박범신

우리들의 장례식

토끼와 잠수함

방영웅

첫눈

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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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 우리들의 장례식 (1976년)

 

"막걸리 한 되만...."

주전자를 내멸며 봉추는 말끝을 사렸다. 문구멍에 눈알만 내놓고 바라보던 주인 여자는 미닫이를 열고 한 발만 술청에 내려놓은 채 손을 뻗쳐 주전자를 받았다. 세 평쯤이나 될까, 좁은 술청은 전구 하나만 천장에 매달려 있을 뿐 썰렁하였다. 여자는 방 안과 술청에 한 발씩 벌려 세운 자세로 미닫이 옆에 놓인 술독에서 막걸리를 퍼 담았다. 머리가 헝클어진 여자의 얼굴은 늙고 메말라 보였다. 되질도 하지 않고 주전자 목까지 막걸리를 채운 그녀는 허리를 펴고 주전자의 몸퉁을 손바닥으로 훔치고 뚜껑을 닫았다. 깔가당,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텅 빈 술청에 차갑게 울렸다.

"여기 있수다, 돈!"

여자는 돈과 주전자를 맞바꾸고 말없이 술청에 내디뎠던 한 발을 끌어올린 뒤 거칠게 문을 닫았다.

지미랄, 되게 말없는 예펜네구먼.

봉추는 곧 그곳을 떠났다. 종점으로 통하는 다리 앞에서 직각으로 꺾어 돌자 어두운 골목이 나왔다. 개천과 나란히 뚫린 골목을 그는 떠걱떠걱 목발 소리와 함께 걸었다. 땅이 얼어 있어서 목발 소리는 유난히 크고 음산하게 골목의 어둠 속에 파묻혀 갔다. 한 손에는 목발을 짚고 한 손에는 주전자를 든 자세여서 더욱 손등이 시렸다. 골목의 저편에서부터 매운 1월의 바람이 불고, 바람은 끝없이 늘어서 있는 판잣집들의 유지로 된 추녀 끝에서 징징거렸다. (p.911)

 

<작품이해>

<우리들의 장례식>의 주인공 봉추는 벙어리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다가 낯선 사내의 방문을 받는다. 저녁을 먹으며 봉추는 사내에게 오늘 낮에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한다. 사내가 돌아간 뒤 봉추는 장모님의 시신을 얼어붙은 개천에 묻으려 한다. 석 달 전에 화재로 전 재산을 날린 뒤 하루 벌어서 먹고 살기도 힘든 그에게 장레비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잘 곳이 마땅치 않은 사내가 다시 찾아와 봉추를 도와주게 된다. 일을 처리한 후 자고 있던 새벽녘 사내의 죽음을 발견한 아내가 봉추를 깨운다. 갑작스런 일에 당황하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돈을 걷어 관을 사 온다. 봉추는 장모님 대신 관 속에 사내의 시체를 넣는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자들이 열심히 일해도 장례비조차 마련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임을 꼬집은 작품이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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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朴範信, 1946년 8월 24일 ~ )

대한민국의 소설가, 아동문학가이다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現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봉동리에서 출생하였고, 중학교 때부터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에서 생활하였다. 전주교육대학을 거쳐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나온 그는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殘骸)〉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어 〈식구〉,〈말뚝과 굴렁쇠〉,〈못과 망치〉 등의 단편과 《죽음보다 깊은 밤》,《깨소금과 옥떨메》,《풀잎처럼 눕다》,《불의 나라》 등의 장편을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했다. 1981년 장편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제1회 대한민국문학상 신인부문을 수상했다. 창작집 《토끼와 잠수함》이 있고 단편집으로 《아침에 날린 풍선》,《식구》, 중편집 《도시의 이끼》,《그들은 그렇게 잊었다》와 다수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1993년 한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하던 중 절필을 선언하고 1996년 중반까지 칩거에 들어갔으나, 1996년 《문학동네》 가을호에 중편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여, 장편 《침묵의 집》(1999)과 단편 〈향기로운 우물이야기〉(2001년) 등을 발표하였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지냈고, 2007년 KBS 한국방송공사 이사장과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았으며. 명지대학교로 복귀해서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지낸 뒤 2011년 정년퇴임하였고 그 후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를 지내고 있으며 2012년부터는 상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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