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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목마른 뿌리 - 김소진 (한국헤르만헤세)

by handaikhan 2023. 6. 25.

큰한국문학413 (71권)

 

목차

 

김소진

목마른 뿌리

 

이문구

관촌수필(여요주서)

장천리 소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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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 목마른 뿌리 (1996년)

 

"내가 바로 김태섭이외다." 물이 많이 빠진 낡은 자줏빛 반코트를 입은 사내가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등 뒤에는 해가 떠 있어 눈이 부셨다. 나는 이마에 손갓을 만들어 붙엿다. 사내는 굵은 모직 천으로 만든 흰 운동화를 신은 왼쪽 다리를 땅에 대고 가볍게 끌고 있었다.

"예....제가 김영호입니다.어서 오시지요.'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아주버님. 호영 씨 안사람 됩니다."

아내가 머리를 숙여 첫인사를 건네자 그는 고개를 보일락 말락 하게 깐닥거렸다.

"으흠, 반갑습네다."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탓일까? 그는 몹시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언뜻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틀림없이 50년생일 터였다.

"내가 원산 철수 때 포 연기에 휩싸인 그 시내에서 강보에 싸인 백일짜리 갸를 못 데리고 나왔지..."

그렇다면 이제 쉰두 살로 나와는 십삼 년 차이였다. 그러나 굵은 주름이 도랑처럼 파인 그의 얼굴은 그를 제법 육십 대 중반의 늙은이로 보이게 하는 데 충분했다. 머리에는 잔설을 인 듯한 흰 머리칼이 검은 머리칼보다 더 우세해 보였다. 나는 어깨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았던 피켓을 내려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라면 상자를 뜯어 엉성하게 만든 그 피켓에는 김태섭이라는 이름이 커다랗게 씌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아버지가 북한에 두고 내려온 나의 이복형이었다. 우리들의 상봉은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건 하등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와 나는 사실 어떤 추억도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단 하루를 같이 살아 본 적도 없고 이 자리가 초면이었으니, 게다가 서로 몇 십 년을 다른 체제에서 살온 게 아닌가? 다만 아버지라는 같은 뿌리에서 가지를 친 인생들이라는 점이 희미한 끈이라면 끈이었다. 하긴...그보다 더 끈질기고 근본적인 끈이 또 어디 있으랴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내 마음은 흥분하기는커녕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p.9-10)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 상처 위에 내 손바닥을 얹었다. 그러자 형님도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상처를 덮은 내 손등 위로 그의 손이 다시 포개졌다.

"형님! 우린 누가 뭐래도 한뿌리입니다!"

"기거를 새삼 말하믄 무얼 하겠음? 타고난 핏줄인 것을.....서로에게 가닿지 못해서 그동안 얼마나 애달프고 목마른 뿌리로 살아왔음둥? 이제는 그런 일 없어야 함둥!"

"예, 형님!"

그는 더 이상 배웅하지 말라며 만남의 광장에서 내려 앞장서 걸어갔다. 그가 한 번 뒤돌아보았다. 나는 입에 손나발을 해 붙이고 소리쳤다.

"형님! 이번엔 제가 태형이 방학하면 데리고 찾아가 뵐게요!:"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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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金昭晉, 1964년 1월 17일 ~ 1997년 4월 22일)

대한민국의 소설가.

강원도 철원 출신. 아버지 김응수, 어머니 김영혜의 이남이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5살 때 미아리 산동네로 이사와 1993년 결혼할 때까지 26년을 살았다. 1982년 서울대학교 인문대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학생운동과 야학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이 무렵 그는 사회변혁운동의 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학회지에 글을 발표하는 등 습작을 하였다. 한겨레 기자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던 그는 1993년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을 하였다. 기자생활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던 그는 1995년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된다. 1996년 제4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고 계간 『한국문학』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중경공업전문대학 문창과에 출강을 하기도 한다. 1997년 위암 판정을 받은 후 한 달 남짓 투병하다가 4월 22일 작고하였다.

1991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쥐잡기」가 당선돼 문단에 데뷔하였다. 6년 남짓인 짧은 기간 동안 그는『열린사회와 그 적들』(1993),『장석조네 사람들』(1995),『고아떤 뺑덕어멈』(1995),『자전거 도둑』(1996),『양파』(1996) 등 소설집과 콩트집『바람부는 쪽으로 가라』(1996), 창작동화집 『열한 살의 푸른 바다』(1996)를 잇따라 내놓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1998년 지인과 부인 함정임은 유고작을 모아 『아버지의 미소』를, 짧은 소설을 모아 『달팽이 사랑』을 펴냈다.
김소진의 작품세계는 흔히 자신의 가족사 이야기, 미아리 산동네의 민중들의 이야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다룬 이야기 등 세 개의 계열로 분류된다. 사회변혁 운동이 실패를 하면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가족사에 대한 기억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던 가족에 대한 기억은 주로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다(「쥐잡기」,「춘하 돌아오다」,「사랑이 앓기」,「고아떤 뺑덕어멈」,「개흘레꾼」,「두 장의 사진으로 남은 아버지」,「자전거 도둑」,「원생학습생활도감」,「목마른 뿌리」). 자신을 탄생시킨 아버지와의 화해는 결국 아버지로 대표되는 산동네 민중들의 이해로 확대된다(『장석조네 사람들』,「비운의 육손이형」,「수습일기」, 「그리운 동방」). 그는 기억의 서사를 통해 아버지와 엄마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구성해내었다. 90년 신세대 작가들이 사회나 역사 대신 개인과 욕망을 내세웠던 것과는 달리 그는 추상적인 이념으로만 존재하던 민중이 실제로 역사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우리말 공부와 어머니의 입심의 영향으로 그는 계층에 맞는 언어와 생생한 생활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산동네 민중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다.
김소진은 또한 변혁운동의 실패 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식인을 다룬 소설을 썼다. 「처용단장」,「임존성 가는 실」,「혁명기념일」,「경복여관에서 꿈꾸기」,「울프강의 세월」,「신풍근배커리 약사」등에서 그는 자본제적 논리에 순응해가는 지식인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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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근베커리 약사 - 김소진 (문학동네)

 

목차

 

목마른 뿌리
쐬주
갈매나무를 찾아서
부엌
건널목에서
벌레는 단 과육 속에 깃들인다
지붕 위의 남자 1
울프강의 세월
신풍근 베이커리 약사(略史)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내 마음의 세렝게티(미완성 유고)
동물원

장석조네 사람들 - 김소진 (문학동네)

그리운 동방 - 김소진 (문학동네)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 - 김소진 (문학동네)

 

열린사회와 그 적들 - 김소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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