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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나들이 하는 그림 - 이청준 (다림)

by handaikhan 2023. 5. 26.

목차

나들이 하는 그림
별을 기르는 아이
선생님의 밥그릇
그 가을의 내력
어머니를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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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 나들이 하는 그림

 

나라에 큰 전쟁이 있을 때였습ㄴ디ㅏ.

서울의 어느 가난한 산동네에 그림을 매우 잘 그리는 화가가 한 사람 살고 있었습니다. 전쟁 때가 되어 확가의 살림이 매우 궁색했지만, 사는 형편이 어려운 것은 그 화가네만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화가가 살고 있는 산동네 주변에는 고아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화가는 그 아이들을 누구보다 깊이 사랑하였습니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그림 공부를 가르쳐 주고, 먹을 것이 생기면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곤 했습니다.

그에게는 어리고 사랑스런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화가는 그 아들을 늘 아이들과 함게 어울려 놀게 하였습니다. 자신의 아들과 다른 아이들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아들이 갑자기 나쁜 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화가는 애가 끊어지는 듯 슬펐습니다. 사랑스런 아들을 혼자 어둡고 차가운 땅 속에 묻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세상이 온통 깜깜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묻으러 가기 전날 밤 사랑스런 아들의 주검 곁에서 밤새도록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들이 살아 있을 때 함께 즐겁게 놀던 산동네의 가난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살림이 워낙 가난하였기 때문에 화가이면서도 그림을 그릴 종이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헌 담뱃갑 은종이 껍질을 주어다 그것을 펴서 거기에다 아이들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혼자서 땅 속에 외롭게 묻힐 아들이 심심하지 않게, 이 세상에서와 같이 하늘 나라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놀도록 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화가는 그 아이들의 그림을 아들의 관 속에 함께 넣어 주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따 먹으라고 하늘 나라 나무에 열린다는 천도 복숭아도 함께 그려 넣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화가는 다음 날 그 그림과 함께 아들을 외딴 산골짜기에 묻고 돌아왔습니다. (p.11-1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이중섭 191601956 편지와 그림들 - 이중섭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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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이었습니다. 화가는 슬픔 속에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꿈 속에서 사랑스런 아들이 그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슬퍼만 하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슬퍼하지 마셔요. 저는 아빠가 그려 주신 아이들과 하늘 나라에서 즐겁게 놀고 있어요. 자, 보셔요. 아빠가 그려 주신 아이들이 모두 이렇게 저와 함께 있잖아요. 배가 고프면 아빠가 그려 주신 복숭아도 따 먹고요."

화가가 보니 아들은 과연 이 세상에서와 똑같이 산동네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티없이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를 본 화가는 그제서야 슬픔이 조금 가랑앉는 것 같았습니다. (p.15)

 

비밀을 알거나 모르거나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림을 아꼈습니다. 화가의 간절한 당부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그들 자신이 그만큼 그림에 마음이 끌리고, 그 그림으로 인해서 즐겁고 행복해졌기 때문입니다. 화가가 죽고 나니다시는 그림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림을 더욱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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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李淸俊, 1939년 8월 9일 ~ 2008년 7월 31일)

대한민국의 소설가.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출생했으며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를 나왔다. 1966년 서울대를 나온 후 《사상계》에 입사했다가 1967년 《여원》사로 이직했으며 1971년에는 《월간 지성》 창간에 참여했다.
한편 그는 1968년 10월에 남경자와 혼인하여 13년 후 1981년에 외동딸 이은지를 득녀하였다.
1965년 《사상계》 신인 작품 모집에 단편 소설 <퇴원(退院)> 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이후 단편 〈임부(姙婦)〉, 〈줄〉, 〈무서운 토요일〉, 〈굴레〉 등을 발표하여 작가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1968년 《병신과 머저리》로 제1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계속해서 《소문의 벽》, 《등산기》 등을 발표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고통을 묘사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사물의 겉모습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탐색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조율사》·《이어도》 《눈길》등이 있으며, 창작집으로 《별을 보여드립니다》·《예언자》·《당신들의 천국》·《자유의 문》·《서편제》 등 중·장편집이 있다.
2006년 여름 폐암 판정을 받고 2008년 6월 중순 병세가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7월 31일 새벽 4시쯤에 향년 70세(만나이 68세)로 영면했다. 그의 장례식 빈소에서는 삼일장 첫날에 김승옥, 이어령, 황동규 등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동문 출신의 문인들이 조문, 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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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전집 (문학과지성사)

병신과 머저리 - 이청준 (문학과지성사)

당신들의 천국 - 이청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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