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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비 오는 날 - 송창섭 (삼성출판사)

by handaikhan 2023. 5. 23.

삼성 주니어 문학 23

 

목차

 

장용학

요한시집

 

손창섭

비오는 날

잉여 인간

 

오상원

유예

 

선우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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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 - 비오는 날 (1953년)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원구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욱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그의 뇌리를 영사막처럼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원구에게는 으레 동욱과 그의 여동생 동옥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들의 어두운 방과 쓰러져 가는 목조 건물이 비의 장막 저편에 우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비록 맑은 날일지라도 동옥 오뉘의 생활을 생각하면, 원구의 귀에는 빗소리가 설레고 그 마음구석에는 빗물이 스며 흐르는 것 같았다. 원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욱과 동옥은 그 모양으로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었다. (p.76)

 

원구는 이런 무의미한 대좌를 감당할 수 없어 차라리 부엌에 나가 풍로에 부채질이나마 거들어 줄까도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만 한 행동도 이 상태로는 일종의 비약이라 적지 아니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는 동안 원구는 별안간 엉덩이가 척척해 들어옴을 의식했다. 바께쓰의 빗물이 넘어서 옆에 앉아 있는 원구의 자리로 흘러내린 것이었다. 원구는 젖은 양복바지 엉덩이를 만지며 일어섰다. 그제야 동옥도 바께쓰의 물이 넘는 줄을 안 모양이다. 그러나 동옥은 직접 일어나서 제 손으로 치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앉은 채 부엌 쪽을 행해 오빠 물 넘어, 했을 뿐이었다. 동욱은 사잇문을 반쯤 열고 들여다보며 이년아 네가 좀 치우지 못해? 하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러자 자기가 나서기에 절호한 기회라고 생각한 원구는 내가 내다 버리지, 하고 한 손으로 바께쓰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한 걸음도 미처 옮겨 놓을 사이도 없이 바께쓰는 철그렁하는 소리와 함께 한 옆이 떨어지며 물이 좌르르 쏟아졌다. 손잡이의 한쪽 끝 갈고리가 고리 구멍에서 벗겨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방바닥은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여지껏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던 동옥도 그제만은 냉큼 일어나 한 걸음 비켜서는 것이었다. 그 순간 동옥의 동작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원구에게 또 하나 우울의 씨를 뿌려 주는 것이었다. 원피스 밑으로 드러난 동옥의 왼쪽 다리가 어린애의 손목같이 가늘고 짧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다리를 옮겨 디디는 순간, 동옥의 전신은 한쪽으로 쓰러질 듯이 기울어지는 것이었다. 동옥은 다시 한 번 그 가늘고 짧은 다리를 옮겨 놓는 일 없이 젖지 않은 구석 자리에 재빨리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희다 못해 파랗게 질린 얼굴에 독이 오른 눈초리로 원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것이었다. 동옥의 시선을 피하여 탁류의 대하 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은 공포에 몸을 떨며, 원구는 마지막 기력을 다하여 허우적거리듯 두 발로 물 괸 방을 허우적거려 보는 것이었다.

그 뒤로는 비가 와서 가게를 벌일 수 없는 날이면 원구는 자주 동욱이네 집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불구인 그 신체와 같이 불구적인 성격으로 대해 주는 동옥의 태도가 결코 대견할 리 없으면서도, 어느 얄궂은 힘에 조롱당하듯이 원구는 또다시 찾아가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침침한 방 안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일까? 동옥의 가늘고 짧은 한쪽 다리가 지니고 있는 슬픔에 중독된 탓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찾아갈 적마다 차츰 정상적인 데로 돌아오는 동옥의 태도에 색다른 매력을 발견한 탓일까? 정말 동옥의 태도는 원구가 찾아가는 횟수에 따라 현저히 부드러워지는 것이었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 동옥은 원구를 보자 얼굴을 붉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세 번째 찾아갔을 때는 원구를 보자 동옥은 해죽이 웃어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울한 미소였다. 찾아갈 때마다 달라지는 동옥의 태도가 원구에게는 꽤 반가운 것이었다. 인사불성에 빠졌던 환자가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처럼 고마웠다. (p.85-87)

 

동옥이가 변소에 간 틈에, 될 수 있는 대로 위로해 주지 않고 왜 그리 사납게 구느냐니까, 병신 고운 데 없다고 그년 맘 쓰는 게 모두가 틀렸다는 것이다. 우선 그림 값만 하더라도 얼마 전까지는 받아 오면 반씩 꼭 같이 나눠 가졌는데 근자에 와서는 동욱을 신용할 수 없다고 대소에 따라 한 장에 얼마씩 또박또박 선금을 받고야 그려 준다는 것이었다. 생활비도 둘이 꼭 같이 절반씩 부담한다는 것이다. 동옥은 자기가 병신이기 때문에 부모 말고는 자기를 거두어 오래 돌봐 줄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오빠도 언제든 자기를 버릴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자기는 자기대로 약간이라도 밑천을 장만해 두어야 비참한 꼴을 면하지 않겠느냐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동옥의 심중을 생각할 때 헤어져 있으면 몹시 측은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낯만 대하면 왜 그런지 안 그러리라 하면서도 동욱은 다자꾸 화가 치민다는 것이다. 동옥은 불을 끄고는 외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반대로 동욱은 불을 꺼야만 안심하고 잠을 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욱은 어둠만이 유일한 휴식이노라 했다. 낮에는 아무리 가만하고 앉았거나 누워 뒹굴어도 걸레처럼 전신에 배어 있는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동욱은 심지를 낮추어서 희미하게 켜 놓은 불빛에도 화를 내어 이년아, 아주 꺼 버리지 못해,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옥은 손을 내밀어 심지를 조금 더 낮추었다. 그러고 나서 누가 데려오랬나 차라리 어머니하고 거기 있을 걸 괜히 왔지, 하고 종알대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욱은 벌떡 일어나며 이년 다시 한 번 그 주둥일 놀려 봐라, 나두 너 같은 년 끌구 오구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하두 애원하시듯 다 버리구 가더라두 네년만은 데리구 가라구 하 조르기에 끌구 와 이 꼴이다, 하고 골을 내는 것이었다. 동옥은 말없이 저편으로 돌아누웠다. 어렴풋이 불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이 가슴을 내리누르는 것 같아서 원구는 오래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동욱도 잠이 안 오는 모양이었다. 동옥 역시 필경 잠이 들지 않았으련만 죽은 듯이 가만하고 있었다. (p.89-90)

 

동욱은 한동안 말이 없이 술잔을 빨고 앉았다가, 가끔 찾아와서 동옥을 좀 위로해 주라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조소하고 멸시한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동옥은 맑은 날일지라도 일체 바깥출입을 않고 두더지처럼 방에만 처박혀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반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동옥도 원구만은 자기를 업신여기지 않고 자연스레 대하여 준다고 해서 자주 찾아와 주기를 여간 기다리지 않는다고 했다. (p.93-94)

 

<작품 해설>

이 작품은 1953년 11월 <문예>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신체 불구자인 인물을 통해 한국 전쟁 후의 페허가 된 당시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사건 자체는 전쟁 후의 현실 적응 문제이며, 음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와 병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여 당대의 시대상을 잘 보여 주고 있지요. 이 작품은 절망적인 상황과 그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사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전쟁이 가져다준 물질적, 정신적 상처와 전후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발 방법에 있어서 작가는 끝까지 냉소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이 작품에서 허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부산입니다. 부산은 한국 전쟁 중에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극적인 장소였습니다. 폐가와 장마라는 배경 또한 주제 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요.

이 작품에서 장맛비는 작품 전체의 우울하고 불쾌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동욱 남매의 불구적인 삶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질척거리는 거리에 내리는 비는 그대로 당시의 황폐화된 현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청명한 날이 없는 시대, 동욱 남매를 계속 무겁게 누르는 불운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편 '한 귀퉁이에 버티고 있는 두 개의 통나무 기둥이 모로 기울어지려는 집'은 월남 후의 극한적인 가난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성격을 선명히 드러내고 있지요. 절망적인 도시 부산에서 거의 폐가에 가까운 이들의 집에 대한 설정은 작품 전체의 비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쓰러져 갈 것 같은 동욱과 동옥의 삶이 지닌 신체적, 정신적 불구성은 이러한 공간적 묘사와 연결되어 선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원구는 빗소리를 들으며 동욱과 그 여동생 동옥을 생각합니다. 여기서 원구는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동욱 남매가 생각나고 마음이 무거워지지요. 곧 원구에게 있어서 눅눅하고 끈끈한 불쾌감을 주는 비와 함께 연상되는 동욱과 동옥, 이들은 원구에게 비 오는 날처럼 우울하고 불행한 삶의 모습을 지닌 인물로 의식되는 것입니다.

또한 빗소리를 통해 동욱과 동옥의 삶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곧 동욱 남매가 사는 공간인 낡은 목조 건물은 한국 전쟁 후의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실 생활을 드러내 주는 공간으로 그려지고, 그러한 곳에서 사는 이들을 생각할 때면 원구는 빗소리가 더욱 우울하게 느껴지지요. 결국 이들은 원구에게 비에 젖은 우울한 인생으로 인식되는데, 이는 불구적인 동욱 남매의 인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무기력하고 우울한 그들의 삶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p.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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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孫昌涉, 1922년 5월 20일 ~ 2010년 6월 23일, 일본 귀화 이름은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渉)

일본에 귀화한 대한민국의 소설가.

1922년 5월 20일 평안남도 평양시(현 평양직할시)의 한 빈한한 집안에서 2대 독자로 태어났으나, 상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14세가 되던 1935년 만주로 갔다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와 도쿄에서 고학(苦學)으로 겨우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이후 니혼대학 법학과에 들어갔으나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는데, 이 시기의 자세한 사항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46년 해방을 맞아 일본에서 귀국하여 평양으로 갔지만 1948년 무렵 월남하였다. 이후 교사, 잡지사 사원, 출판사 사원 등을 전전하다가 1949년 단편 「얄궂은 비」를 『연합신문』에 발표하지만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하지 못하였다. 한국전쟁 중에 단편 「공휴일」과 「사연기」를 『문예』를 통해 발표하면서 이 잡지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등단 이후 빠른 시일 내에 전후의 비참한 현실과 그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자연주의 수법으로 묘사한 소설들을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고 1950년대 전후소설을 대표하는 신진 작가로 평가받았다. 1973년 급작스럽게 일본으로 간 이후에는 다시는 귀국하지 않았고 국내 문인들과의 교유도 1976년 『한국일보』에 장편역사소설 『유맹』을 연재하는 과정에서의 접촉 이외에는 일체 단절하였다. 이러한 일본행의 이유로는 오랜 창작에 지쳤다는 설, 1970년대 초의 한국 정치상황에 대한 절망 때문이라는 설, 이미 1960년대 말에 일본으로 돌아갔던 아내 우에노 지즈코를 따라갔다는 설 등이 있다. 1998년 일본의 외국인에 대한 등록제도 때문에 결국 일본으로 귀화하였다(귀화 시기가 1984년이라는 설도 있음). 2010년 6월 23일 도쿄 근교의 한 병원에서 폐질환으로 인한 노환으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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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 손창섭 (문학과지성사)

비오는 날 - 손창섭 (창비)

비오는 날 - 손창섭 (사피엔스21).

싸우는 아이 - 손창섭 (우리교육, 힘찬문고)

장님 강아지 - 손창섭 (우리교육, 힘찬문고)

잉여인간 - 손창섭 (훈민출판사, 논술한국대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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