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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4. 수필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 최순우 (학고재, 2002년 초판)

by handaikhan 2023. 2. 2.

최순우의 한국미 사랑

 

최순우 -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임당 백은백의 <기려도>

동양의 산수화에 표현된 주인공 인물은 대개 화가 자신의 모습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의식하고 산수화에 자기를 담아 보는 화가들도 있지만 산수화를 그리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오느 사이엔가 그 속으로 자기가 들어가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하다. 말하자면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의 산수화란 대개 그 화가가 동경하는 어느 산천의 크고 깊고 오묘한 자연 속에 자기 자신을 들여 세워 놓고 자신이 그 속을 두루두루 소요하는 마음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동야의 산수화, 즉 요샛말로 풍경화 속에는 그 어느 위치엔가 유유히 자연 속을 소요하는 한 인물이 있거나, 초당이나 정자에 홀로 앉아 고요히 사색을 즐기는 인물이 있을 때가 많다. 다시 말하면 동야의 풍경화란 서야 풍경화에서처럼 화가가 바라본 자연의 일각을 묘사한 그림, 즉 바라보는 풍경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기가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기고 또 두루두루 돌아보며 즐기는 입장을 택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산수화들을 살펴보면 산수화 속의 인물들에게는 거의 중국 옷을 입혔고 또 중국식 정자나 초당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 경치도 '여산초당'이니 '적벽'이니 '소상팔경'이니 하는 식의 중국의 명승을 흉내내서 배경으로 그린 경우가 많다. 상념적이기는 하지만, 말하자면 한국 사람이 중국 옷을 입고 중국의 명산에서 중국 정자에 앉아 중국인인 체해 보는 장면이 많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과거의 한국 사람, 특히 지식인들 중에는 선진 중국의 문화를 숭상한 나머지 지나친 모화, 사대의 폐단 속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잊을 뻔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한 풍조 속에서 자아를 의식한 일부 화가들이 대담하게 한국 옷을 입고 한국의 산천을 소요하는 산수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그 선구적인 사람이 겸재 정선이었고, 그 뒤를 이은 사람이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임당 백은배 같은 분들이었다. 이분들이 남긴 풍속화는 또 다른 면에서 평가돼야 할 것이지만, 산수화에 한국의 산천과 한국 사람을 담기 시작한 이분들의 뜻이 의식적이었건 무의식적이었건 이분들을 모화, 사대적인 화단 풍조에서 먼저 자아를 발견한 선각자들이었다고 할 것이다.

비록 소품에 불과하지만 임당이 그린 이 산수인물 한 폭은 그런 관점에서 의미심장한 장면임을 두말할 것도 없다. 나귀를 탄 맑고 깨끗한 중년의 선비가 시동을 거느리고 굽이굽이 긴 길을 도는 사이 인기척에 놀란 산오리가 다급하게 날아가는 모양에 사람과 나귀의 시선이 모두 함께 집중되어 있는 일순의 한국 정서를 너무나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 사람 임당 자신이 이 그림 속에서 나귀를 타고 꺼덕거리며 조국 산천낼 의 유람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p.196-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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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2016년>

이번 개정판의 가장 큰 변화는 책의 도판을 흑백에서 컬러로 교체했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탁월한 안목을 지녔던 최순우 선생답게 그의 글에는 색채에 대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담녹색으로 담담한 설채’ ‘잘 익은 수박색’ ‘쪽빛 치마에 연옥색 자주 회장저고리’……. 이러한 표현을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다만 개인 소장이거나 소장처를 확인할 수 없는 도판은 안타깝게도 바꾸지 못했다.
이 밖에도 최순우 선생과의 추억을 담은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의 글을 책 앞에 보탰으며, 원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초판에 수록되었다가 빠진 「초맛」을 되살려 넣었다.

나는 내것이 아름답다 - 최운우 (학고재, 2016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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