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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꺼삐딴 리 - 전광용 (창비)

by handaikhan 2023. 3. 26.

 

창비 20세기 한국 소설 17

 

목차
간행사

전광용
사수(射手)
꺼삐딴 리

이범선
학마을 사람들
갈매기
오발탄

이호철
탈향
판문점
부시장 부임지로 안 가다
남에서 온 사람들

이메일 해설 - 백병부, 이호규
낱말풀이

 

......................................

전광용 - 꺼삐딴 리 (1962년)

 

수술실에서 나온 이인국 박사는 응접실 소파에 푸묻히듯이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그는 백금 무테안경을 벗어 들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등골에 축축이 밴 땀이 잦아들어감에 따라 피로가 스며왔다. 두 시간 이십 분의 집도, 위장 속의 균종 적출. 환자는 아직 혼수상태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

수술을 끝낼 찰나 스쳐가는 육감, 그것은 성공 여부의 적중률을 암시하는 계시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뒷맛이 꺼림칙하다.

그는 항생질 의약품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던 일제시대부터 개복수술에 최단 시간의 기록을 세웠던 것을 회상해본다.

맹장염이나 포경수술, 그 정도의 것은 약과다. 젊은 의사들에게 맡겨버리면 그만이다. 대수술의 경우에는 그렇게 방임할 수만은 없다. 환자 측에서도 대개 원장의 직접 집도를 조건부로 입원시킨다. 그는 그것을 자랑으로 삼아왔고 스스로 집도하는 쾌감마저 느꼈었다.

그의 병원 부근은 거의 한 집 건너 병원이랄 수 있을 정도로 밀집한 지대다. 이름 없는 신설 병원 같은 것은 숫제 비 장날 시골 전방처럼 한산한 속에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인국 박사는 일류 대학 병원에서까지 손을 쓰지 못하여 밀려오는 급환자들 틈에 끼여 환자의 감별에는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것은 마치 여관 보이가 현관으로 들어서는 손님의 옷차림을 훑어보고 그 등급에 맞는 방을 순간적으로 결정하거나 즉석에서 서슴지 않고 거절하는 경우와 흡사한 것이라고나 할까.

이인국 박사의 병원은 두 가지 전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병원 안이 먼지 하나도 없이 정결하다는 것과 치료비가 여느 병원의 갑절이나 비싸다는 점이다.

그는 새로 온 환자의 초진에서는 병에 앞서 우선 그 부담 능력을 감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신통치 않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는 무슨 핑계를 대든 그것도 자기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간호원더러 따돌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중환자가 아닌 한 대부분의 경우 예진은 젊은 의사들이 했다. 원장은 다만 기록된 진찰 카드에 따라 환자의 증세에 아울러 경제 정도를 판정하는 최종 진단을 내리면 된다.

상대가 지기나 거물급이 아닌 한 외상이라는 명목은 붙을 수 없었다. 설령 있다 해도 이 양면 진단은 한 푼의 미수나 결손도 없게 한 그의 반생을 통한 의술 생활의 신조요 비결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고객은 왜정시대는 주로 일본인이었고 현재는 권력층이 아니면 재벌의 셈속에 드는 축들이어야만 했다.

그의 일과는 아침에 진찰실에 나오자 손가락 끝으로 창틀이나 탁자 위를 훑어 무테안경 속 움푹한 눈으로 응시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이때 손가락 끝에 먼지만 묻으면 불호령이 터지고, 간호원은 하루 종일 원장의 신경질에 부대껴야만 한다.

아무튼 단골 고객들은 그의 정결한 결벽성에 감탄과 경의를 표해마지않는다.

1.4후퇴 시 청진기가 든 손가방 하나를 들고 월남한 이인국 박사다. 그는 수복되자 재빨리 셋방 하나를 얻어 병원을 차렸다. 그러나 이제는 평당 오십만 환을 호가하는 도심지에 타일을 바른 이층 양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전문의 외과 외에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개인 병원을 집결시켰다. 운영은 각자의 주머니 셈속이었지만 종합병원의 원장 자리는 의젓이 자기가 차지하고 있다. (P.28-30)

<각주>

'까비딴'은 영어의 captain에 해당하는 노어(러시아어)다. 8.15 직후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자 "까삐딴'이 '우두머리'나 '최고'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는데, 그 발음이 와전되어 '꺼삐딴'으로 통용되었다.

 

두시 사십분!

미국 대사관 브라운 씨와의 약속 시간은 이십 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시계에도 몇 가닥의 유서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인국 박사는 시계를 볼 때마다 참말 '기적'임에 틀림없었던 사태를 연상하게 된다.

왕진 가방과 함께 38선을 넘어온 피란 유물의 하나인 시계. 가방은 미군 의사에게서 얻은 새것으로 갈아 매어 흔적도 없게 된 지금, 시계는 목숨을 걸고 삶의 도피행을 같이한 유일품이요, 어찌 보면 인생의 반려이기도 한 것이다.

밤에 잘 때에도 그는 시계를 머리맡에 풀어놓거나 호주머니에 넣은 채로 버려두지 않는다. 반드시 풀어서 등기 서류, 저금통장 등이 들어 있는 비상용 캐비닛 속에 넣고야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또 그럴 만한 연유가 있었다. 이 시계는 제국대학을 졸업할 때 받은 영예로운 수상품이다. 뒤쪽에는 자기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후 삼십여 년,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은 변하여갔지만 시계만은 옛 모습 그대로다. 주변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은 얼마나 변한 것인가. 이십 대 홍안을 자랑하던 젊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머리카락도 반백이 넘었고 이마의 주름은 깊어만 간다. 일제시대, 소련군 점령하의 감옥 생활, 6.25 사변, 38선, 미군 부대, 그동안 몇 차례의 아슬아슬한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인가.

'월삼 17석'

우여곡절 많은 세월 속에서 아직도 제시간을 유지하는 것만도 신기하다. 시간을 보고는 습성처럼 째각째각 소리에 귀 기울이는 때의 그의 가느다란 눈매에는 흘러간 인생의 축도가 서리는 것이었다. 그속에서도 각모와 쯔메에리 학생복을 벗어버리고 신사복으로 갈아입던 그날의 감회를 더욱 새롭게 해주는 충동을 금할 길 없는 것이었다. (p.31-32)

 

벌써 육 개월 전의 일이다.

형무소에서 병보석으로 가출옥되었다는 중환자가 업혀서 왔다.

휑뎅그렁한 눈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환자, 그는 간호원의 부축으로 겨우 진찰을 받았다.

청진기의 상아 꼭지를 환자의 가슴에서 등으로 옮겨 두 줄기의 고무줄에서 감득되는 숨소리를 감별하면서도, 이인국 박사의 머릿속은 최후 판정의 분기점을 방황하고 있었다.

입원시킬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

환자의 몰골이나 업고 온 사람의 옷매무새로 보아 경제 정도는 뻔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것보다도 더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었다. 일본인 간부급들이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하는 이 병원에 이런 사상범을 입원시킨다는 것은 관선 시의원이라는 체면에서도 떳떳지 못할뿐더러,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적인 황국신민의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는 이런 경우의 가부 결정에 일도양단하는 자기 식으로 찰나적인 단안을 내렸다. 그는 응급치료만 하여주고 입원실이 없다는 가장 떳떳하고도 정당한 구실로 애걸하는 환자를 돌려보냈다.

환자의 집이 병원에서 멀지 않은 건너편 골목 안에 있다는 거서은 후에 간호원에게서 들었다. 그러나 그때쯤 예사로운 일이었기에 그는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렸다.

그런데 며칠 전 시민대회 끝에 있은 해방 경축 시가행진을 자기도 흥분에 차 구경하느라고 헤숙이와 함께 대문 앞에 나갔다가, 자위대 완장을 두르고 대열에 끼인 젊으니와 눈이 마주쳤다.

이쪽을 노려보는 청년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은 살기를 느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어리벙벙하던 이인국 박사는 그것이 언젠가 입원을 거절당한 사상범 환자 춘석이라는 것을 혜숙에게서 듣고야 슬금슬금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집으로 기어들어왔다.

그 후 그는 될 수 있는 거리로 나가는 것을 피하였지마는 공교롭게도 어제저녁에 그 벽보 앞에서 마주쳤었다. (p.39-40)

 

대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ㅐ방 직후 이삼 일 동안은 자기도 태연하였지만 번지르르하게 드나들던 몇몇 친구들도 소련군 입성이 보도된 이후부터는 거의 나타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이 뛰어다니며 물을 경황은 더욱 없다.

밤이 이슥해서야 중학교와 국민학교를 다니는 아들딸이 굉장한 구경이나 한 것처럼 탱크와 로스케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돌아왔다.

그들은 아버지의 심증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어머니, 혜숙이와 함께 저희들 이야기에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인국 박사는 슬그머니 일어나 이층으로 올라와 다다미방에서 혼자 뒹굴었다.

앞일은 대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뛰어넘을 수가 없는 큰 바다가 가로놓인 것만 같았다.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가 전연 더듬어지지 않는 뒤헝클어진 상념 속에서 그래도 이인국 박사는 꺼지려는 짚불을 불어 일으키는 심정으로 막연한 한 가닥의 기대만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채 천장을 멍청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지난 일에 대한 뉘우침이나 가책 같은 건 아예 있을 수 없었다. (p.45)

 

그는 코허리에 내려온 안경을 올리면서 눈을 부릅떴다.

그의 시각은 활자 속을 헤치고, 머릿속에는 아들의 환상이 뒤엉켜 들어차왔다. 아들을 모스끄바로 유학시킨 것은 자기의 억지에서였던 것만 같았다.

출신 계급, 성분, 어디 하나나 부합될 조건이 있었단 말인가. 고급 중학을 졸업하고 의과대학에 입학된 바로 그해다.

이인국 박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의 처세 방법에 대하여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다.

"얘, 너 그 노어 공부를 열심히 해라."

"왜요?"

아들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버지의 말에 의아를 느끼면서 반문했다.

"야, 원식아, 별수 없다. 왜정 때는 그래도 일본말이 출세를 하게 했고 이제는 노어가 또 판을 치지 않니.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지. 아무튼 그 노서아 말 꾸준히 해라."

아들은 아버지 말에 새삼스러이 자극을 받는 것 같진 않았다.

"내 나이로도 인제 이만큼 뜨내기 회화쯤은 할 수 있는데, 새파란 너희 나쎄로야 그걸 못하겠니."

"열려 마세요, 아버지..."

아들의 대답이 그에게는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

이인국 박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디 코 큰 놈이라구 별것이겠니. 말 잘해서 진정이 통하기만 하면 그것들두 다 그렇지..."

이인국 박사는 끝내 스뗀꼬프 소좌의 배경으로 요직에 있는 당 간부의 추천을 받아 아들의 소련 유학을 결정짓고야 말았다.

"여보, 보통으로 삽시다. 거저 표나지 않게 사는 것이 이런 세상에선 가장 편안할 것 같아요. 이제 겨우 죽을 고비를 면했는데 또 쨔까지 그 '높이 드는' 복판에 휘몰아넣으면 어쩔라고...."

"가만있어요. 호랑이두 굴에 가야 잡는 법이요. 무슨 세상이 되던 할 대로 해봅시다."

"그래도 저 어린것을 어떻게 노서아까지 보낸단 말이요."

"아니, 중학교 애들도 가지 못해 골들을 싸매는데 대학생이 못 가 견딜라구."

"그래도 어디 앞일을 알겠소....."

"괜한 소리, 쟤가 소련 바람을 쏘이구 와야 내게 허튼소리하는 놈들도 찍소리를 못할 거요. 어디 보란 듯이 다시 한 번 살아봅시다."

아들의 출발을 앞두고 걱정하는 마누라를 우격다짐으로 무마시키고 그는 아들의 유학을 관철하였다.

"흥, 혁명 유가족두 가기 힘든 구멍을 친일파 이인국의 아들이 뚫었으니 어디 두구 보자..."

그는 만장의 기염을 토하며 혼자 중얼거리고는 희망에 찬 미소를 풍겼다.

그다음 해에 사변이 터졌다.

잘 있노라는 서신이 계속하여 왔지만 동란 후 후퇴할 때까지 소식은 두절된 대로였다.

마누라의 죽음은 외아들을 사지로 보낸 것 같은 수심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p.46-48)

 

자위대가 친안대로 바뀐 다음 날이다. 이인국 박사는 치안대에 연행되었다.

씨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하반신이 저려오고 옆구리가 쑤신다. 이것만으로도 자기의 생애를 통한 가장 큰 고역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앞으로 닥쳐올 예기할 수 없는 사태가 공포 속에 그를 휘몰았다.

나가고 지나가는 구둣발 소리와 목덜미에 퍼부어지는 욕설을 들으면서 꺽ㄲ이듯이 축 늘어진 그의 머리는 들릴 줄을 몰랐다.

시간만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짓눌렸던 생각들이 하나씩 꼬리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더면 어디든지 가 숨거나, 진작 남으로라도 도피했을 걸...그러나 이 판국에 나를 감싸줄 사람이 어디 있담. 의지할 만한 곳은 다 나와 같은 코스를 밟았거나 조만간에 밟을 사람들이 아닌가. 일본인! 가장 믿었던 성벽이 다 무너지고 난 지금 누구를...'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이 막연한 기대는 절박한 이 순간에도 그에게서 완전히 떠나버리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인민재판의 첫코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끌려간 사람들의 행방은 전연 알 길이 없다. 즉결 처형을 당하였다는 소문도 떠돈다. 사흘의 여유만 더 있었더라면 나는 이미 이곳을 떴을지도 모른다. 다 운명이다. 아니 그래도 무슨 수가 있겠지....'

"쪽발이 끄나풀. 야 이 새끼야."

고함 소리에 놀라 이인국 박사는 흠칫 머리를 들었다. 때도 묻지 않은 일본 병사 군복에 완장을 찬 젊은이가 쏘아보고 있다. 춘석이다.

이인국 박사는 다시 쳐다볼 힘도 없었다. 모든 사태는 짐작되었다.

이제는 죽는구나. 그는 입속으로 뇌까렸다.

"왜놈의 밑바시. 이 개새끼야."

일본 군용화가 그의 옆구리를 들이찬다.

"이 새끼, 어디 죽어봐라."

구둣발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전신을 내지른다.

등골 척수에 다급한 충격을 받자 이인국 박사는 비명을 지르고 꼬꾸라졌다.

그는 현기증을 일을켰다. 어깻죽지를 끌어 바로 앉혀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한쪽으로 쓰러졌다.

"민족과 조국을 팔아먹은 이 개돼지 같은 놈아. 너는 총살이야, 총살.."

어렴풋이 꿈속에서처럼 들려왔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말도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기 앞자락에 부스럭거리는 감촉과 금속성의 부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어렴풋이 정신을 차렸다.

노란 털이 엉성한 손목이 시곗줄을 끄르고 있다. 그는 반사적으로 앞자락의 시계 주머니를 부둥켜 쥐면서 손의 임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파란 중대가리 소련 병사가 시곗줄을 거머쥔 채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이 웃고 있다.

그는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양복 안주머니를 감싸 쥐었다.

"흥...야뽄스끼..."

병사의 눈동자는 점점 노기를 띠어갔다.

"아니, 이것만은!"

그들의 대화는 서로 통하지 않는 대로 손아귀와 눈동자의 대결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병사는 됫박만한 손으로 이인국 박사의 손을 뿌리치면서 시게를 채어냈다. 시곗줄은 끊어져 고리가 달린 끝머리가 이인국 박사의 손가락 끝에서 달랑거렸다.

병사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죽음과 시게...'

이인국 박사는 토막 난 푸념을 되풀이하고 있다.

양쪽 팔목에 풀뚝시계를 둘씩이나 차고도 또 만족이 안 가 자기의 회중시계까지 앗아가는 그 병정의 모습을 머릿속에 똑똑히 되새겨갈 뿐이다.

감방속은 빼곡히 찼다. 그러나 고참자와 신입자의 서열은 분명했다. 달포가 지나는 사이에 맨 안쪽 똥통 위에 자리 잡았던 이인국 박사는 삼분지 이의 지점으로 점차 승격되었다.

그는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 범인 속에 섞여 있던 감방 밀정이 출감된 다음 날부터 불평만을 늘어놓던 축들이 불려나가 반송장이 되어 들어왔지만, 또 하루 이틀이 지나자 감방 속의 분위기는 여전히 불평과 음식 이야기로 소일되었다.

이인국 박사는 자기의 죄상이라는 것을 폭로하기도 싫었지만 예전에 고등계 형사들에게서 실컷 얻어들은 지식이 약이 되어 함구령이 지상명열이라는 신념을 일관하고 있었다.

그는 간밤에 출감한 학생이 내던지고 간 노어 회화 책을 첫 장부터 곰곰이 뒤지고 있을 뿐이다.

등골이 쏘고 옆구리가 결려온다. 이것으로 고질이 되는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사뭇 내려가고 있다. 아무리 체념한다면서도 초조감을 막을 길 없다.

노어책을 읽으면서도 그의 청각은 늘 감방 속의 이야기를 놓치지않고 있다. 그들이 예측하는 식대로의 중형으로 치른다면 자기의 죄상은 너무도 어마어마하다. 양곡조합의 쌀을 몰래 팔아먹은 것이 7년, 양민을 강제로 보국대에 동원했다는 것이 10년, 감정적인 즉결이 아니라 법에 의한 처단이라고 내대지만 이 난리 판국에 법이고 뭣이고 있을까, 마음에만 거슬리면 총살일 판인데...

'친일파, 민족 반역자, 반일투사 치료 거부, 일제의 간첩 행위...'

이건 너무도 어마어마한 죄상이다. 취조할 때 나열하던 그대로 한다면 고작해야 무기징역, 사형감일지도 모른다.

그는 방 안을 둘러보며 후 큰숨을 내쉬었다.

처마 밑에 바싹 달라붙은 환기창에서 들이비치던 손수건만한 햇살이 참대자처럼 길어졌다가 실오리만큼 가늘게 떨리며 사라졌다. 그 창살을 거쳐 아득히 보이는 가을 하늘이, 잊었던 지난 일을 한 덩어리로 얽어 휘몰아오곤 했다. 가슴이 찌릿했다.

밖의 세계와는 영원한 단절이다.

그는 눈을 감았다. 마누라, 아들, 딸, 혜숙이, 누구누구...그러다가 외과게의 원로 이인국 박사에 이르자 목구멍이 타는 것같이 꽉 막혔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침을 삼켰다.

'그럼, 어떤단 말이야. 식민지 백성이 별수 없었어. 날고 뛴들 소용이 있었느냐 말이야. 어느 놈은 일본놈한테 아첨을 안했어. 주는 떡을 안 먹은 놈이 바보지. 흥, 다 그놈이 그놈이었지.'

이인국 박사는 자기 변명을 합리화시키고 나면 가슴이 좀 후련해왔다.

거기다 어저께의 최종 취조 장면에서 얻은 소련 고문관의 표정은 그에게 일루의 희망을 던져주는 것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억지의 자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지만.

아마 스뗀꼬프 소좌라고 했지. 그 혹부리 장교. 직업이 의사라고 했을 때 독또르 독또르 하고 고개를 기웃거리던 순간의 표정, 그것이 무슨 기적의 에시 같기만 하였다. (p.48-53)

 

브라운 씨가 부엌 쪽으로 갔다 오더니 양주 몇 병이 놓인 쟁반이 따라 나왔다. 

"아무거라도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십시오."

이인국 박사는 보뜨까 잔을 신통한 안주도 없이 억지로라도 단숨에 들이켜야 속 시원해하던 스뗀꼬프를 브라운씨 얼굴에 겹쳐 보고있다.

그는 혈압 때문에 술을 조절해야 하는 자기 체질에 알맞게 스카치 잔을 핥듯이 조금씩 목을 축이면서 브라운 씨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거, 국무성에서 통지 왔습니다."

이인국 박사는 뛸 듯이 기뻤으나 솟구치는 흥분을 억제하면서 천천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생큐, 생큐."

어쩌면 이것은 수술 후의 스뗀꼬프가 자기에게 하던 방식 그대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인국 박사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의 처세법은 유에스에이에도 통하는구나 하는 기고만장한 기분이었다.

청자병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면서 술잔을 거듭하는 브라운 씨도 몹시 즐거운 표정이었다.

"미국에 가서의 모든 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염려 마십시오. 떠나실 때 소개장을 써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역사는 짧지만, 미국은 지상의 낙토입니다. 양국의 우호와 친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생큐.."

다음 날 휴전선 지대로 같이 수렵하러 가기로 약속하고 이인국 박사는 브라운 씨 대문을 나섰다.

이번 새로 장만한 영국제 쌍발 엽총의 짙푸른 총신을 머리에 그리면서 그의 몸은 날기라도 할 듯이 두둥실 가벼웠다. 이인국 박사는 아까 수술한 환자의 경과가 궁금했으나 그것은 곧 씻겨져갔다.

그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포부와 희망이 부풀어올랐다.

신체검사는 이미 끝난 것이고 외무부 출국 수속도 국무성 통지만 오면 즉일 될 수 있게 담당 책임자에게 교섭이 되어 있지 않은가? 빠르면 일주일 내에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브라운 씨의 말이 떠올랐다.

대학을 갓 나와 임상 경험도 신통치 않은 것들이 미국에만 갔다 오면 별이라도 딴 듯이 날치는 꼴이 눈꼴사나웠다.

'어디 나도 다녀오고 나면 보자!'

문득 딸 나미와 아들 원식의 얼굴이 한꺼번에 망막으로 휘몰아왔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듯이 긴장을 띠다가 어색한 미소를 흘러보냈다.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혁명이 일겠으면 일고,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고,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

그는 허공을 향하여 마음껏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면 위선 비행기 회사에 들러 형편이나 알아볼까...'

이인국 박사는 캘리포니아 특산 시가를 비스듬히 문 채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그는 스프링이 튈 듯이 박스에 털썩 주저앉았다.

"반도호텔로..."

차창을 거쳐 보이는 맑은 가을 하늘이 이인국 박사에게는 더욱 푸르고 드높게만 느껴졌다. (p.62-64)

 

<사상계> 109호 (1962.7)

<목단강행 열차> (태창 1978)

 

<작품해설-이호규>

보통 현대소설에서 '전형'이란 말은 '리얼리즘'소설에서 쓰이는 용어라고 할 수 있는데, 고대소설 같은 데서 보이는 이른바 '틀에 박힌' 인물이라는 뜻의 전형적 인물과는 다릅니다. 고대소설의 전형적인 인물은 현대소설에서 보이는 개성적 인물에 대비되는 개념이지요. <꺼삐딴 리>를 말할 때 언급되는 전형이란 말은 현대 '리얼리즘'소설에서 사용되는 용어인데, 여기서 '리얼리즘'을 간단히 말하면,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기본 전제하에 그저 막연하고 피상적으로 현실의 단순한 모사나 복제에 그치지 않고, 한 사회가 특정한 시기에 직면하는 고유한 모순과 현실운동의 본질적인 연관을 얼마나 정확하고 적절하게 그려내는가에 관한 예술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얼리즘 소설에 있어서 전형이란 말은 루카치의 설명에 따르면 "예술가가 어떤 구체적인 인간들의 운명 속에 그들이 속해 있는 특정 시대와 국가와 계급을 가장 잘 표출하는 어떤 역사적 상황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을 구현시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그리고 분단국가로서의 남한이라는 역사적 시공간을 기회주의적으로 살아온 이인국은 부정적인 관점에서 전형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부정적인 전형적 인물이기에 그는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요. 풍자는 소설 속 인물을 희화화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냉소적 비웃음을 짓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풍자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긍정적인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대개는 반도덕적이거나 약삭빠른 기회주의자이거나 비양심적인 인물입니다. 그 인물을 독자들이 비판하도록 만드는 데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가 동원됩니다. 역설, 아이러니, 과장, 축소 같은 것이지요. 이인국은 한국현대사의 굴곡을 약삭 빠른 기회주의적 속성으로 헤쳐온 부정적 지식인의 전형적 인물인 셈이며 그의 그러한 행각을 작가가 희화화하여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이인국은 비웃음의 대상, 비판의 대상, 곧 풍자적 인물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인국 박사라는 인물과 그의 행적은 한국현대사에서 기회주의적 약삭빠름으로 기득권을 누려온 지식인계층의 부정적 모습이며 작가는 그를 통해 그런 인물들이 청산되지 못한 한국현다사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p.32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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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용(全光鏞, 1919년 3월 1일 ~ 1988년 6월 21일)

대한민국의 소설가 겸 국문학자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백사(白史). 함경남도 북청 출생. 전주협(全周協)의 아들이다.
1937년 북청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1945년 경성경제전문학교(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전신)에 입학, 2년 수료하였다.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1951년에 졸업하였으며, 이어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1953년에 졸업하였다. 1955년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1984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봉직하였으며, 그 뒤 세종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였다.
1973년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별나라 공주와 토끼」로 입선하였으며, 1955년 『조선일보』에 「흑산도(黑山島)」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1948년 ‘주막(酒幕)’ 동인을 정한숙(鄭漢淑)·정한모(鄭漢模)·남상규(南相圭)·김봉혁(金鳳赫)과 함께 창립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는 한성일보(漢城日報) 기자 생활도 하였다.
1956년 학술논문 「설중매(雪中梅)」로 사상계 논문상, 1962년 단편소설 「꺼삐딴 리」(사상계, 1962.7.)로 제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한국현대문학연구회 회장,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회장, 한국비교문학회 부회장 등으로 창작과 문학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단편집으로 『흑산도』(1959)·『꺼삐딴 리』(1975)·『동혈인간(凍血人間)』(1977)·『목단강행열차(牧丹江行列車)』(1978)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나신(裸身)」(1965)·「창과 벽」(1967)·「태백산맥(太白山脈)」(1978) 등이 있다.
대표적 논문으로는 「설중매」를 비롯한 「신소설연구」가 1955∼1956년 사이에 『사상계』에 연재되었고, 「이광수연구서설」이 『동양학(東洋學)』 4집에 게재된 바 있다. 논문 연구의 방법은 철저하게 실증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주의적 연구방법론을 중시하였다.
작품의 특색은 대부분 직접 체험한 바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등단 작품인 「흑산도」는 학술답사 기록문에서 소재를 따온 것이며, 「진개권(塵芥圈)」(1955)은 휴전선 오지(奧地)에 있는 미군 쓰레기칸에서, 「지층(地層)」(1958)은 태백산의 탄광에서 경험한 바를 서술한 것이다.
그리고 「충매화(蟲媒花)」(1960)는 이웃 의사의 경험담에서, 「곽서방(郭書房)」(1962)은 다도해 경호도(鏡湖島)의 반농반어촌(半農半漁村)에서 취재한 것을 소재화한 것이다.
대표작인 「꺼삐딴 리」는 시류에 적절하게 편승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의사를 모델로 한 소설로, 일제 말엽부터 6·25 때까지 한 지식인이 살아 남기 위하여 어떻게 변신하는가를 실감 있게 그린 작품이다.
「사수(射手)」(1959)는 극한상황 속에서의 친구간의 미묘한 경쟁심리와 심리적 갈등 속에서도 빚어내는 깊이 있는 우정의 확인을 모색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냉철한 사실적 시선을 바탕으로, 현실적 부조리한 실상을 고발하려는 경향이 짙어 작품의 리얼리티를 실감 있게 살렸다는 면에서 높게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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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삐딴 리 - 전광용 (을유문화사)

꺼삐딴 리 - 전광용 (문학과지성사)

전광용 문학전집 (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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