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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두 파산 - 염상섭 (창비)

by handaikhan 2023. 3. 27.

창비 20세기 한국 소설 2

 

목차
간행사

염상섭
전화
만세전
양과자갑
두 파산

이메일 해설 - 배철영, 박현수
낱말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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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 두 파산 (1949년)

 

"어머니, 교장 또 오는군요."

학교가 파한 뒤라 갑자기 조용해진 상점 앞길을 열어놓은 유리창밖으로 내다보고 등상에 앉았던 정례가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다본다. 그렇지 않아도 돈 걱정에 팔려서 테이블 앞에 멀거니 앉았던 정례 모친도 저절로 양미간이 짜붓하여졌다. 점방 안에는 학교를 파해 가는 길에 공짜 만화를 보느라고 아이들이 저편 구석 진열대에 옹기종기 몰려섰다가, 교장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하였는지 조그만 얼굴들을 쳐든다. 그러나 모시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하며 우둥퉁한 중늙은이가 단장을 짚고 쑥 들어서는 것을 보고 학생 아이들은 저희끼리 눈짓을 하고 킥킥 웃어버린다. 저희 학교 교장이나 온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어째 이렇게 쓸쓸하우?"

영감은 언제나 오면 하는 버릇으로 상점 안을 휘휘 둘러보며 말을 건다.

"어서 오십쇼. 아침 한때와 점심 한나절이 한참 붐비죠. 지금쯤야 다 파해 가지 않았어요."

안주인은 일어나지도 않고 앉은 채 무관히 대꾸를 하였다. 교장은 정례가 앉았던 등상을 내어주니까 대신 걸터앉으며,

"딴은 그렇겠군요. 그래도 팔리는 거야 여전하겠죠?"

하고 눈이 저절로 테이블 위의 손고금로 갔다. 이 역시 올 제마다 늘 캐어묻는 말이지마는 또 무슨 딴 까닭이 있어서 붙이는 수작 같아서 정례 어머니는,

"그야 다소 둘쭉날쭉야 있죠마는 온 요새 같아서는...."

하고 시들히 대답을 하여준다.

"어쨌든 좌처가 좋으니까...하루에 두어 번쯤 바쁘고 편히 앉아서 네다섯 식구가 뜯어먹구 살면야 아낙네 소일루 그만 장사가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 그리구두 빚에 쫄리다니 알 수 없는 일이로군..."

왜 그런지 이 영감이 싫고 멸시하는 정례는,

'누가 해달라는 걱정인감!'

하는 생각에 입이 삐죽하여졌다.

"날마다 쑬쑬히 나가기야 하지만 원체 물건이 자니까 남는 게 변변해야죠."

여주인은 또 마지못해 늘 하는 수작을 뇌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 영감이 더 유난히 물건 쌓인 것이며 진열장에 늘어놓인 것을 눈여겨보는 것이었다. 정례 모녀는 그 뜻을 짐작하겠느니만큼 더욱 불쾌하였다. (p.233-235)

 

그 후 근 일주일은 옥임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정례 모녀는 맞닥뜨리면 말수도 부족하거니와 아귀다툼하는 것이 싫어서 그날그날 소리 없이 넘어가는 것만 다행하나, 어느 때 달려들어서 무슨 조건을 내놓고 졸라댈지 불안은 한층 더하였다.

"응, 마침 잘 만났군. 그런데 그만하면 얘기는 끝났을 텐데 웬 세도가 그리 좋아서 누구를 오너라 가너라 하구 아니꼽게 야단야..."

정례 모친이 황토현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며 열 틈에 끼어 섰으려니까, 이곳으로 향하여 오던 옥임이가 옆에 와서 딱 서며 시비를 건다.

'바쁘기야 하겠지만, 좀 못 들를 건 뭔구."

정례 모친은 옥임이의 기색이 좋지는 않아 보이나 싫없는 말이거니 하고 대꾸를 하며 열에서 빠져 나서려니까.

"그래 그 돈은 갚는다는 거야 안 갚을 작정야? 세도 좋은 젊은 서방을 믿고 그 떠세루 남의 돈을 무쪽같이 떼먹으려 드나부다마는 김옥임이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어..."

원체 예쁘장한 상판이기는 하면서도 쌀쌀한 편이지마는 눈을 곤두 세우고 대드는 품이 어려서부터 삼십 년 동안이나 보던 옥임이는 아니다. 전부터 "네 영감은 어째 점점 더 젊어가니? 거기다 대면 넌 어머니 같구나" 하고, 새롱새롱 놀리기도 하며 육십이 넘은 아버지 같은 영감 밑에 쓸쓸히 사는 옥임이는 은근히 부러워도 하는 눈치였지마는, 밑도끝도없이 길바닥에서 '젊은 서방'을 들추어내는 것을 보고 정례 어머니는 어이가 없었다.

"늙은 영감에 넌더리가 나거든 젊은 서장 하나 또 얻으려무나."

하고 정례 모친도 비꼬아주고 싶었으나 열을 지어 섰는 사람들이 쳐다보며 픽픽 웃는 통에,

"이거 미쳐나려나? 이건 무슨 객설야?"

하고 달래며 나무라며 끌고 가려 하였다.

"그래 내 돈을 곱게 먹겠는가 생각을 해보렴. 매달린 식솔은 많구, 병들어 누운 늙은 영감의 약값이라두 뜯어 쓰랴구 이렇게 쩔쩔거리구 다니는 이년의 돈을 먹겠다는 너 같은 의리없는 년은 욕을 좀 단단히 뵈야 정신이 날 거다마는, 제 사정 보아서 싼 변리에 좋은 자국을 지시해 바친 밖에! 그것두 마다니 남의 돈 생으루 먹자는 도둑년 같은 배짱 아니구 뭐냐?"

오고 가는 사람이 우중우중 서며 구경났다고 바라보는데, 원체 히스테리증이 있는 줄은 짐작하지만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기가 나서 대든다.. 히스테리는 고사하고 이것도 빚쟁이의 돈 받는 상투 수단인가 싶었다.

"누가 안 갚는대나? 돈두 중하지만 이게 무슨 꼬락서니냔 말야."

정례 어머니는 그래도 달래서 뒷골목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였다.

"난 돈밖에 몰라. 내일모레면 거리로 나앉게 된 년이 체면은 뭐구, 우정은 다 뭐냐? 어쨌든 내 돈만 내놓으면 이러니저러니 너 같은 장래 대신 부인께 나 같은 년야 감히 말이나 붙여보려 들겠다던!"

하고 허청 나오는 코웃음을 친다. 구경꾼은 자꾸 꾀어드는데, 정례 모친은 생전에 처음 당하는 이런 봉욕에 눈앞이 아찔하여지고 가슴이 꼭 메어 올랐으나, 언제까지나 이러고 섰다가는 예서 더 무슨 창피한 꼴을 볼까 무서워서 선뜻 몸을 빼쳐 옆의 골목으로 줄달음질쳐 들어갔다. 뒤에서 발자죽소리가 없으니 옥임이는 제대로 간 모양이다. 정례 모친은 눈물이 핑 돌았다.

스물예닐곱까지 동경 바닥에서 신여성운동이네, 연애네, 어쩌네 하고 멋대로 놀다가, 지금 영감의 후실로 들어앉아서 세상 고생을 알까, 아이를 한번 낳아보았을까, 사십 전의 젊은 한때를 도지사 대감의 실내마님으로 떠받들려 제멋대로 호강도 하여본 옥임이다. 지금도 어디가 사십이 훨씬 넘은 중늙은이로 보이랴. 머리를 곱게 지지고 엷은 얼굴 단장에, 번질거리는 미국제 핸드백을 착 끼고 나선 맵시가 어느 댁 유한마님으로 알 것이지 설마 일할, 일할 오푼으로 아귀다툼을 하고 어려운 예전 동무를 쫓아다니며 울리는 고리대금업자로야 그 누가 짐작이나 할까? 해방이 되자 고리대금이 전당국 대신으로 터놓고 하는 큰 생화가 되었지마는, 옥임이는 반민자의 아내가 되리라는 것을 도리어 간판으로 내세우고 부라퀴같이 덤빈 것이다. 중경 도지사요, 전쟁 말기에는 무슨 군수품회사의 취체역인가 감사역을 지냈으니 반민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날이면, 중풍으로 삼 년째나 누웠는 영감이, 어서 돌아가주기나 하기 전에야 으레 걸리고 말 것이요, 걸리는 날이면 떠메어다가 징역은 시키지 않을지 모르되, 지니고 있는 집칸이며 땅섬지기나마 몰수당할 것이니, 비록 자식은 없을망정 자기는 자기대로 살길을 차려야 하겠다고 나선 길이 이 길이었다. 상하 식솔을 혼자 떠맡고 영감의 약값을 제 손으로 벌어야 될 가련한 신세같이 우는소리를 하지마는, 그래야 남의 욕을 덜 먹는 발뺌이 되는 것이다.

옥임이는 정례 모친이 혼쭐이 나서 달아나는 꼴을 그리 보라는 듯이 곁눈으로 흘겨보고는 입귀를 셀룩하여 비웃으며, 버젓이 사람 틈을 헤치고 종로 편으로 내려갔다. 의기양양할 것도 없지마는 가슴속이 후련하니 머릿속이고 가슴속이고 무언지 뭉치고 비비 꼬이던 것이 확 풀어져 스러지고 화가 제대로 도는 것 같아서 기분이 시원하다. 그러나 그 뭉치고 비비 꼬인 것이라는 것이 반드시 정레 어머니에게 대한 악감정은 아니었다. 옥임이가 그 오랜 동무에게 이렇다 할 감정이 있을 까닭은 없었다. 다만 아무리 요샛돈이라도 이십여만 원이라는 대금을 받아내려면은 한번 혼을 단단히 내고 제독을 주어야 하겠다고 벼르기는 하였지만, 얼떨결에 나온다는 말이 젊은 서방을 둔 떠세냐 무어냐고 한 것은 구성없는 말이었고, 지금 생각하니 우스웠다. 그러나 자기보다도 훨씬 늙어 보이고 살림에 찌든 정례 모친에게는 과분한 남편이라는 생각을 늘 하던 옥임이기는 하였다. 남의 남편을 보고 부럽다거나 샘이 나거나 하는 그런 몰상식한 옥임이도 아니지만 자식도 없이 군식구들만 들썩거리는 집에 들어가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늙은 영감의 병을 들여다보면 공연히 짜증이 나고, 정례 어머니가 자식들을 공부시키느라고 어려운 살림에 얽매이고 고생은 하나 자기보다는 팔자가 좋다는 생각도 나는 것이었다. 내년이면 공과대학을 나오는 맏아들에, 중학교에 다니는 어머니보다도 키가 큰 둘째 아들이 있고, 딸은 지금이라도 사위를 보게 다 길러놓았고, 남편은 펀둥펀둥 놀며 마누라가 조리차를 하는 용돈이나 받아쓰고 자동차로 땅뙈기는 까불렸을망정 신수가 멀쩡한 호남자가 무슨 정당이라나 하는 곳의 조직부장이니 훈련부장이니 하고 돌아다니니 때를 만나면 아닌 게 아니라 장래 대신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팔구 삭 동안 동사를 하느라고 매일 들러보면, 젊은 영감을 등이라도 뚜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줄 듯이 지성으로 고이는 꼴이란 아닌 게 아니라 옆에서 보기에도 부러운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았지마는, 결혼들을 처음 했을 예전 시절이나, 도지사 관사에 들어서 드날릴 때야 어디 존재나 있던 위인들인가? 그것이 처지가 뒤바뀌어서 관 속에 한발을 들여놓은 영감이나마 반민자로 지목이 가다니, 이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하면 쭉쭉 뽑아놓은 자식들과, 한참 활동적인 허위대 좋은 남편에 둘러싸여 재미있고 기운꼴 차게 사는 양이 역시 부럽고 저희만 잘된다는 것에 시기도 나는 것이었다. 보기 좋게 이년 저년을 붙이며 한바탕 해대고 나서 속이 후련한 것도 그러한 은연중의 시기였고 공연한 자기 화풀이였는지 모른다. (p.246-250)

 

"오늘은 아퀴를 지어주시렵니까? 언제 갚으나 갚고 말 것인데 그걸루 의 상할 거야 있나요?"

이튿날 교장이 슬쩍 들러서 매우 점잖은 수작을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교장 선생님부터가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지만 김옥임이가 그렇게 되다니 불쌍해 못 견디겠어요.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원서를 끼구 다니구, <인형의 집>에 신이 나구, 엘렌 케이의 숭배자요 하던 그런 옥임이가 동냥자루 같은 돈전대를 차구 나서면 세상이 모두 노랑 돈닢으로 보이는지 어린애 코 묻은 돈푼이나 바라고 이런 구멍가게에 나와 앉았는 나두 불쌍한 신세지마는 난 옥임이가 가엾어서 어제 울었습니다. 난 살림이나 파산 지경이지 옥임이는 성격 파산인가보드군요...."

정례 어머니는 분하다 할지 딱하다 할지, 속에 맺히고 서린 불쾌한 감정을 스스로 풀어버려는 듯이 웃으며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말씀을 하시니 나두 듣기에 좀 괴란쩍습니다마는 모두 어려운 세상에 살자니까 그런 거죠. 별수 있나요. 그래도 제 돈 내놓고 싸든 비싸든 이자라고 명토 있는 돈을 어엿이 받아먹는 것은 아직도 양심이 있는 생화입니다. 입만 가지고 속여먹고, 등쳐먹고, 알로 먹고, 꿩으로 먹는 허루 좋은 불한당 아니고는 밥알이 올곧게 들어가지 못하는 지금 세상 아닙니까.... 허허허."

하고 교장은 자기변명인지 옥임이 역성인지를 하는 것이었다. (p.25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인형의 집 - 헨리크 입센 (안미란 옮김, 민음사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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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례 어머니는 딸이 옆에서 한사코 말리며, "그따위 돈은 안 갚아도 좋으니 정장을 하든 어쩌든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두세요." 하며 팔팔 뛰는 것을 모른 척하고 이십만 원 표에 이만 원 현금을 얹어서 옥임이에게 갖다주라고 내놓았다.

정례 모친은 그 후 두 달 걸려서 교장 영감의 오만 원 밎은 갚았으나, 석 달째 가서는 이 상점 주인이 바뀌어 들고야 말았다. 정말 교장 영감의 조카가 나서는가 하였더니, 교장의 딸 내외가 들어앉았다. 상점을 내놓고 만 바에는 자질구레한 셈속을 따진대야 죽은 아이 귀 만져보기지 별수 없지만, 하여튼 이십만 원의 석 달 변리 육만 원이 또 늘어서 이십육만 원인데 정례 모녀가 사글세의 보증금 팔만 원마저 못 찾고 두 손 털고 나선 것을 보면, 그 팔만 원을 에끼고 남은 십팔만 원이 점방의 설비와 남은 물건값으로 친 것이었다. 물론 옥임이가 뒤에 앉아 맡은 것이나 권리값으로 오만 원 더 얹어서 교장 영감에게 팔아넘긴 것이었다. 옥임이는 좀더 남겨먹었을 것이로되 교장 영감이 그 빚 받아내는 데에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오만 원만 얹어먹고 말았고 또 교장은 이북에서 내려온 딸 내외에게는 꼭 알맞은 장사라는 생각이 들어서 애초부터 침을 삼키고 눈독을 들이던 것이라, 이 상점을 손에 넣으려고 애도 썼지마는, 매득하였다고 좋아하였다.

정레 모녀는 일 년 반 동안이나 죽도록 벌어서 죽 쑤어 개 좋은 일한 셈이라고 절통을 하였으나 그보다도 정레 모친은 오래간만에 몸이 편해져서 그렇기도 하였겠으나 몸살감기에 울화가 터져서 그만 몸져누운 것이 반달이나 끌었다.

"마누라, 염려 말아요. 김옥임이 돈쯤 먹자고만 들면 삼사십만 원쯤 금시 녹여내지. 가만있어요."

정레 부친은 앓는 마누라 앞에 앉아서 이렇게 위로하였다.

"옥임이 돈을 먹자는 것두 아니지만 무슨 재주루?"

마누라는 말리는 것도 아니요 부채질하는 것도 아닌 소리를 하였다.

"김옥임이도 요사이 자동차를 놀려보구 싶어한다는데 마침 어수룩 한 자동차 한 대가 나섰단 말이지. 조금만 참어요. 우리 집문서는 아무레두 김옥임 여사의 돈으로 찾아놓고 말 것이니..."

하며 정례 부친은 앓는 아내를 위하여 뱃속 유하게 껄껄 웃었다. (p.252-253)

 

<신천지> 38호 91949.8)

<일대의 유업> (을유문화사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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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 박현수>

<두 파산>은 학교 앞 네거리에 자리한 문방구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인물들의 적나라한 욕망을 그린 소설입니다. <두 파산>에서 작가의 부정적 시선의 중심에 위치한 인물은 옥임이지요. 그녀는 일본 유학 등을 통해 첨단의 유행을 좇는 신여성을 자처하다가 국내로 돌아와서는 도지사 대감의 후실이 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중풍으로 삼 년째 누워 있는 남편의 친일경력 때문에 재산이 몰수될 처지에 이르자 고리대금에 손을 댑니다. 그러고는 소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정례 모친과 동업관계를 자처하고 나서 정례 모친의 노동의 대가를 거저먹을 생각에 혈안이 되지요.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정례의 집 쪽에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땅을 다 팔아먹고 자동차를 사는가 하면 어느 정당의 부장이라는 명목으로 건들대는 남편은 작가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부정적 인물의 하나지요. 그런데 문제는 정례 모친입니다. 남편이 자동차를 미끼로 옥임을 속여 다시 집문서를 찾아오자고 하자 정레 모친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때까지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겠다는 정례 모친의 윤리의식 역시 위기에 빠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결국 작가는 돈이라는 무소불위의 위력 앞에서 어떠한 친구관계나 윤리의식도 무력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거지요.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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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廉想涉, 1897년 8월 30일 ~ 1963년 3월 14일)

대한민국의 소설가.
본관은 서원(瑞原). 본명은 염상섭(廉尙燮). 호는 제월(霽月) 또는 횡보(橫步). 서울 출생.
대한제국 중추원 참의 염인식(廉仁湜)의 손자이며, 가평 군수 염규환(廉圭桓)의 8남매 중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경주(慶州) 김씨, 부인은 의성(義城) 김씨 김영옥(金英玉)이다.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우다가 1907년 관립사범부속보통학교(官立師範附屬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반일 학생으로 지목되어 중퇴하였다.
1912년 보성소 · 중학교를 거쳐 일본에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교토[京都] 부립제2중학을 졸업하고 1918년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예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오사카[大阪]에서 자신이 쓴 「조선독립선언문」과 격문을 살포하고 시위를 주동하다 일경에게 체포되어 금고형을 받고 학교는 중퇴한 채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정치부기자가 되어 1920년 귀국하였다.
한때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한 일도 있지만, 이후 줄곧 신문 · 잡지 편집인으로 생활하면서 소설 · 평론에 전념하였다.
문예전문지 『폐허(廢墟)』의 동인 활동을 계기로 습작기를 청산하고 출세작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를 발표하면서 한국 근대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이어 중편소설 「만세전」(1922)을 집필, 연재함으로써 그의 뛰어난 현실 인식이 확인되었으며,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저항적 반일감정을 리얼리즘의 수법으로 펼쳐나가기 시작하였다.
이어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이다가 다시 일본에 건너갔으나 별 성과 없이 귀국하여 1929년 결혼을 하고 생활의 안정을 찾아 장편에 전념하였다.
그는 대표작 「삼대(三代)」를 비롯하여 「무화과(無花果)」 · 「백구(白鳩)」 등과 「사랑과 죄」 · 「이심(二心)」 · 「모란꽃 필 때」 등 우수한 장편을 쓰기도 하였다.
단편 역시 초기에는 암울, 침통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자연주의적 경향이 짙었으나 사회 전반을 다루는 경향으로 나가면서부터는 보다 치밀한 관찰과 객관적 기술을 보임으로써 명실공히 리얼리즘적 경향을 뚜렷이 보이게 되었다.
「제야(除夜)」 · 「해바라기」 · 「금반지」 · 「고독」 · 「조그만 일」 · 「두 출발」 · 「남충서(南忠緖)」 등 우수한 작품을 남겼다.
일제강점기 말기 10여 년(1936∼1945)은 만주 · 신경에 살면서 『만선일보』 편집국장 · 회사 홍보담당관 노릇을 하면서 절필하였고, 광복과 더불어 귀국하여 다시 『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나 6 · 25중에는 해군 소령으로 입대하여 반공 전선에 나가 휴전이 되는 해까지 정훈일을 보았다.
제대 후 한때 서라벌예술대학장으로 있기도 하였지만, 창작에 정진하여 병중에도 많은 작품을 집필하였다. 「삼팔선」 · 「임종」 · 「두파산」 · 「굴레」 등 단편과 「효풍」 · 「난류」 · 「취우」 · 「새울림」 · 「미망인」 등의 장편은 우수작으로 평가된다.
1963년 3월 직장암으로 작고할 때까지 완성된 본격 장편 20여 편, 단편 150편, 평론 100여 편 이외에 기타 수필 등 잡문 200여 편의 글을 남기었다.
그 삶과 문학의 특징은 민족적이었고 전통적이었으며 야인적이었다. 식민지사회를 투철히 인식하면서 당대 사회의 진실을 묘사하였다. 또 전통적인 사실적 문체인 내간체를 계승, 발전시켜 자신의 문학의 골격으로 삼았고 서구 근대 물질문명을 점진적으로 수용하면서 보수적인 자세를 보였다.
윤리적인 측면에도 관심을 두어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 점 등은 높이 평가된다. 더욱이, 리얼리즘 문학을 확립하고 식민지적 현실을 부정하고 전통을 계승하고자 한 점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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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 염상섭 (문학과지성사)

만세전 - 염상섭 (문학과지성사)

두 파산 - 염상섭 (문학과지성사)

만세전 - 염상섭 (글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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