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 아동, 청소년67 우리들의 장례식 - 박범신 (한국헤르만헤세) 큰한국문학 413 (75권) 목차 박범신 우리들의 장례식 토끼와 잠수함 방영웅 첫눈 노새 ..................................................... 박범신 - 우리들의 장례식 (1976년) "막걸리 한 되만...." 주전자를 내멸며 봉추는 말끝을 사렸다. 문구멍에 눈알만 내놓고 바라보던 주인 여자는 미닫이를 열고 한 발만 술청에 내려놓은 채 손을 뻗쳐 주전자를 받았다. 세 평쯤이나 될까, 좁은 술청은 전구 하나만 천장에 매달려 있을 뿐 썰렁하였다. 여자는 방 안과 술청에 한 발씩 벌려 세운 자세로 미닫이 옆에 놓인 술독에서 막걸리를 퍼 담았다. 머리가 헝클어진 여자의 얼굴은 늙고 메말라 보였다. 되질도 하지 않고 주전자 목까지 막걸리를 채운 그녀는 허리를 펴고 주전자.. 2023. 7. 24. 미지의 새 - 한수산 (한국헤르만헤세) 큰한국문학 413 (76권) 목차 한수산 침묵 미지의 새 윤후명 하늘 지팡이 송기원 월행 ....................................... 한수산 - 미지의 새 (1978년) 아내여, 겨울 오후, 2시에서 5시까지의 서해안은 때때로 참혹하게 아름답다. 아름다웠다. 송도도 그랬다. 지금은 매립이 되면서 없어져 버린 그 개펄과 낙조와 가슴을 저리게 하던 햇빛들을 기억하는가. 끄때 우리가 버스에 올라 삶은 달걀을 까 먹으며 찾아가곤 하던 그 서해안의 저녁에는, 우리가 껴안고 있던 가난도 남루함도 작은 방도....다 치열했었네. 육화와 변형을 거친 우리들 젊은 날의 비늘들이 와 함께 여기 남아 있음을, 아내여, 너는 알고 있지.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 2023. 7. 21. 침묵 - 한수산 (한국헤르만헤세) 큰한국문학 413 (76권) 목차 한수산 침묵 미지의 새 윤후명 하늘 지팡이 송기원 월행 ....................................... 한수산 - 침묵 (1977년) 모래를 날리며 바람이 불어와서 우리는 일제히 강변 쪽으로 돌아섰다. 가슴 깊숙이 머리를 처박았다. 길 밑으로는 철책이 쳐져 있었고 그 밑으로 드문드문 푸른빛이 보이는 잔디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덮여 있었다. 바람은 여전히 불어와 우리들의 머리칼을 날리고 옷깃을 펄럭이게 했다. 강물 위에서는 햇빛이 잘디잘게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가느다랗게 눈을 뜨면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번들거리는 음모를, 터질 듯한 기대를, 그리고 숨길 수 없이 도사리고 있는 나들이에 대한 불안을 보았다. 그러한 여러 .. 2023. 7. 21. 암사지도 - 서기원 (한국헤르만헤세) 큰한국문학413 (56권) 목차 선우휘 불꽃 서기원 암사지도 마록 열전 4 ...................................... 서기원 - 암사지도 (1957년) 형남이 작년 여름에 제대되어 의지할 곳이 없었던 차에 우연히 만난 옛 전우가 상덕이었다. 그들은 같은 중대에서 1년 남짓 함께 지냈었다. 중대장은 해방 직후 군대에 들어가서 6년 만에 대위가 된 사내로, 중대원들에게 훈시할 적마다, "본관의 사병 시대에는 침구를 정돈함에, 공장에서 갓 나온 벽돌을 포개어 놓듯 했는데, 귀관들은 도시 정신 상태가 돼 먹지 않았다." 고 기합을 넣다가, 으레, "그럼으로 해서 귀관들은 인격을 도치해야 된다." 고 다지곤 하였다. 못살던 자가 돈푼깨나 생기면 가난뱅이 업신여기기가 도리어 심하다더니, .. 2023. 7. 19. 목마른 뿌리 - 김소진 (한국헤르만헤세) 큰한국문학413 (71권) 목차 김소진 목마른 뿌리 이문구 관촌수필(여요주서) 장천리 소태나무 .............................................................. 김소진 - 목마른 뿌리 (1996년) "내가 바로 김태섭이외다." 물이 많이 빠진 낡은 자줏빛 반코트를 입은 사내가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등 뒤에는 해가 떠 있어 눈이 부셨다. 나는 이마에 손갓을 만들어 붙엿다. 사내는 굵은 모직 천으로 만든 흰 운동화를 신은 왼쪽 다리를 땅에 대고 가볍게 끌고 있었다. "예....제가 김영호입니다.어서 오시지요.'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아주버님. 호영 씨 안사람 됩니다." 아내가 머리를 숙.. 2023. 6. 25. 동백꽃 누님 - 이청준 (다림) 이청준 - 동백꽃 누님 (2004년)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누가 그렇게 외우랬어? 하늘 천 따따지 검은 솥에 누룽지.....이게 맞는 거야. 아까 선생님도 그렇게 외우라시던걸." 아랫동네 골목집의 서당 글공부는 준영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신명났다. 나이 먹은 글방 형들의 장난 소리에 동갑내기 판동이 녀석이 어수룩하게 잘 속아 넘어가는 것부터 그랬다. 낮 시간이 한참 지나 글공부가 지루해지면 나이 먹은 형들은 이따금 선생님의 눈길을 필해 어린 학생들에게 그런 우스개 장난 소리를 하곤 했다. (p.9) "허, 그래. 나이가 너무 어린가 싶었더니 글공부를 일찍 다니길 잘했구나. 하지만 글공부는 글만 외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글 속에 있는 세상살이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를 .. 2023. 6. 23. 우리시대의 소설가 - 조성기 (한국헤르만헤세) 큰 한국문학 413 (제82권) 목차 김채원 겨울의 환 조성기 우리 시대의 소설가 ............................................ 조성기 - 우리 시대의 소설가 (1991년) 이곳은 소설가가 살 만한 동네가 아니다. 그렇다고 소설가 강만우 씨는 다른 곳으로 옮기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다른 동네로 옮겨 봐도 결국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말 것이 아닌가 싶을 뿐이다. 언젠가 만우 씨는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남산에 올라가서 벤치 같은 데 앉아 쉬었다 갈까 하고, 남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 동국대 정문 앞으로 해서 필동이라는 동네로 들어서 보았는데, 이전에는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던 그 동리가, 만우 씨가 소설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될 .. 2023. 6. 13. 겨울의 환 - 김채원 (한국헤르만헤세) 큰 한국문학 413 (제82권) 목차 김채원 겨울의 환 조성기 우리 시대의 소설가 ..................................................... 김채원 - 겨울의 환 (1989년) 언젠가 당신은 제게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을 한번 써 보라고 말하셨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지나쳐 들었습니다, 라기보다 글이라고는 편지와 일기 정도밖에 써 보지 못한 제가 어떻게 그런 것을 쓸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저는 감정의 훈련도, 또한 그 감정을 끌어내어 표현하는 능력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그때부터 죽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에 대해서 분명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그 말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어떤 매혹을 느꼈다고 .. 2023. 6. 12. 반죽의 형상 - 권여선 (한국헤르만헤세) 큰 한국문학 413 (94권) 목차 공선옥 가리봉 연가 남쪽 바다 푸른 나라 권여선 반죽의 형상 ............................................ 권여선 - 반죽의 형상 (2007년) N에게 말은 안 했지만, 올해에도 나는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전부터 긴 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것을 과연 휴가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휴가의 예감은 결투의 예감처럼 끔찍하고 달콤하다. 모욕에 결투로 응하는 풍습은 사라졌지만 그 깨끗한 변제에 대한 향수는 인류의 정신속에 면면히 남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결투는 모욕을 청산하는 가장 명쾌한 방식이다. 결투에는 상대를 몇 대 패 주겠다거나 보상금 몇 푼 받아 내겠다는 식의 유치한 계산 찌꺼기가 없다. 나를 모욕한 자를 죽이거나 모욕당한 .. 2023. 6. 10. 남쪽 바다 푸른 나라 - 공선옥 (한국헤르만헤세) 큰 한국문학 413 (94권) 목차 공선옥 가리봉 연가 남쪽 바다 푸른 나라 권여선 반죽의 형상 ................................... 공선옥 - 남쪽 바다 푸른 나라 (2005년) 영주 담임 이민우 선생에게 영주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던 게 지난봄이었다. 병원으로 옮겨 진찰을 해 본 결과 위암이었고 말기였다. 말기여서라기보다 입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 번 춘양에 갔다 온 뒤로 여름을 넘기는 동안 한은 춘양 영주 집에 두어번 전화를 했을 뿐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한은 춘양 김유분 노인의 부음을 들었다. 역시 이민우에게서였다. (p.67) 는 주인공 '한'이 할머니를 여의고 천애 고아가 된 영주를 만나러 가면서 이야.. 2023. 6. 9. 이전 1 2 3 4 5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