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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우리시대의 소설가 - 조성기 (한국헤르만헤세)

by handaikhan 2023. 6. 13.

큰 한국문학 413 (제82권)

 

목차

 

김채원

겨울의 환

 

조성기

우리 시대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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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 우리 시대의 소설가 (1991년)

 

이곳은 소설가가 살 만한 동네가 아니다. 그렇다고 소설가 강만우 씨는 다른 곳으로 옮기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다른 동네로 옮겨 봐도 결국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말 것이 아닌가 싶을 뿐이다.

언젠가 만우 씨는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남산에 올라가서 벤치 같은 데 앉아 쉬었다 갈까 하고, 남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 동국대 정문 앞으로 해서 필동이라는 동네로 들어서 보았는데, 이전에는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던 그 동리가, 만우 씨가 소설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될 때 와서 살고 싶었던 그 동리가, 갖가지 중소기업 공장들, 수공업 공장들로 잠식당해 있는 몰골을 보고 얼마나 우울해졌던지. 그야말로 잠식,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어 들어가는 형국이었다. 근데 그 누에는 뽕잎을 가장자리부터 차근차근 갉아 먹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미친 누에처럼 여기 조금 저기 조금 기분 내키는 대로 꿈틀꿈틀 건너뛰면서 갉아 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가옥이 두어 채 이어지다가 무슨 제품 공장, 또 한 집 건너 무슨 인쇄 공장, 이런 마당이었다. 남산의 신선한 바람이 고여 있어야 마땅한 좁은 골목길은 공장 봉고차들이 왔다 갔다 하느라고 사람 지나다닐 틈도 없을 지경이고, 공장들에서 풍겨 나온 냄새들이 합성된 이상한 악취가 콧구멍을 쿡쿡 쥐어박아 만우 씨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고전적인 삽상한 길 같은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만우 씨는 생각했다. 이제 한국 어느 구석에도 전통적인 주택가를 찾아보기는 힘들겠다고. 그리고 정부에서 남산을 보존하려면, 외관상의 문제만 다룰 것이 아니라 남산 밑에 보이지 않게 뻗어 있는 골목길들부터 정화하여 원래의 주택가 골목으로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p.9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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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우리 시대의 소설가>는 조성기의 중편 소설로 냉전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전환기 상황을 풍자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어느 날 주인공 강만우는 독자 민준규로부터 책값을 환불해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민준규는 강만우의 소설이 불량품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입장에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에 대해 상품성과 문학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조성기 자신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결말 부분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풍자한 것으로 작가적 양심과 자유에 대한 갈등하는 인간을 통해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인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했던 강만우는 환불을 거부하고, 쓰고 있던 작품 <말의 섭>에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다가 화형당하는 중세 사상가 세르베투스를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다.

<우리 시대의 소설가>는 '말의 자유와 그 진실된 가치를 위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신화적인 세계와 현실의 삶 속에서 함께 끌어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던 90년대 초기에 날카로운 풍자 의식과 비판 정신을 통해 인간 존엄성을 다시금 환기시켜다는 점이 인정되어 제 15회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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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趙星基, 1951년 3월 30일 ~ )

대한민국의 작가, 소설가, 목사, 교육자이다.

1951년 3월 30일 경남 고성에서 출생하여 부산중, 경기고를 거쳐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라하트 하헤렙', '야훼의 밤'을 필두로 한 종교 소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사랑', '우리 시대의 소설가'같은 세태 소설 등으로 이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이지만 이것과 별개로 고전 연구가이기도 하다.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시 카를 융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논문 '삼위일체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로 학위를 받았고,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을 응용한 '마음의 비밀'강연회를 학교, 기업, 각종 단체에서 수십차례 개최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71년 소설 '만화경'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으며, 1985년 '라하트하헤렙'으로 제9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함으로써 창작활동을 재개했다. 1991년 중편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제1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그는 동양 고전을 번역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계속 해왔으며, '굴원의 노래', '전국시대', '맹자가 살아 있다면' 등은 그 성과물이다. 성경도 그에게는 중요한 서양 고전의 하나이다. 이런 이유로 한문을 계속 배우고 접해왔듯, 성경을 제대로 독해하고 이해하기 위해 히브리어를 공부했다. 고전 연구가로서의 그가 지금까지 동서양 고전을 통해 선대의 지혜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읽기 쉽도록 현대화했다면, 소설가로서의 그는 현세대의 문제점들을 부각시키는 작업들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장편소설로 '야훼의 밤', '슬픈 듯이 조금 빠르게', '가시둥지', '욕망의 오감도', '베데스다', '바바의 나라', '우리시대의 사랑', '굴원의 노래', '너에게 닿고 싶다', '천년 동안의 고독',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전국시대', 소설집 '왕과 개', '통도사 가는 길', '실직자 욥의 묵시록', '종희의 아름다운 시절', '우리는 완전히 만나지 않았다', '안티고네의 밤',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 , 소설시 '내 영혼의 백야', 저서 및 번역서로 '한경직 평전', '유일한 평전', '예수의 일기'(노먼 메일러), '카를 융 자서전'(아니엘라 야페), '삼국지'(모종강) 등이 있다. 언어와 인간, 종교, 자유 등 정신의 영역을 다루면서도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현실과 소설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표현력, 인간 본성을 비판하고 풍자하면서도 그에 대한 희망과 연민의 시선을 놓지 않는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세속에 대한 욕망과 초월, 그리고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 본연의 의미를 주로 종교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관념 소설을 주로 집필하였으나, 그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 양상과 역사 돌아보기 등 다채로운 영역을 부지런히 오가는 '우리 시대의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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