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 - 오주석이 한국의 미 특강 (2003년)
목차
1. 초인적인 사실성 - 송하맹호도
2. 소재와 의미의 다양성 - 황묘롱접도
3. 이상적 진경산수 - 소림명월도
4. 따스했던 인간성 - 포의풍류도
5. 흔들림 없는 주체성 - 선동취적도
6. 시서화악의 풍부한 교양 - 주상관매도
7. 섬세한 감성 - 마상청앵도
8. 기지 넘치는 해학성 - 해탐노화도
9. 국가를 위한 봉사 - 시흥환어행렬도
10. 군주를 위한 작품 - 월만수만도
11. 풍속화의 진실성 - 씨름
12. 예술과 종교의 만남 - 염불서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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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크고 작은데 일정한 거리에서 본다면? 이건 엉터리입니다! 큰 그림은 좀 떨어져서 보고, 작은 그림은 바짝 다가서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상식이고, 상식이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인데, 이상하게도 우리 미술 교과서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 내용들이 정작 책 속에는 안적혀 있구나 하는 일을 새삼 깨닫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럼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작품을 보는 것이 좋을까요? 저 나름으로 생각하건대 동양화든 서양화든 할 것 없이, 회화 작품 크기의 대각선을 그었을 때, 대략 그 대각선만큼 떨어져서 보는 게 적당할 듯싶습니다. 혹 성품이 유난히 느긋한 분이라면 대충 대각선의 1.5배 정도까지 떨어져서 볼 수도 있겠죠. (p.18-19)
김홍도 - 군선도
그림도 내 마음에 드는 것, 왠지는 모르지만 자꾸만 마음이 끌리는 작품, 그렇게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 몇 점을 골라서 잘 보고 찬찬히 나만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p.22)
우리 옛날 그림은 족자건 병풍이건 세로가 깁니다! (p.25)
그러니까 족자 그림에서는 우상에서 좌하로 가는 시선이 옛날 분들한테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족자에 만약 낙락장송 소나무 한 그루를 그린다 할 경우에도 대개는 이렇게 그립니다. 서샹사람들 시선은 좌상에서 우하로 가지만,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우리 그림을 무심코 서양식으로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림 위에 X자가 그려지게 되죠. 틀린 것입니다! 옛 그림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이렇게 쓰다듬듯이 바라보지 않으면 그림 위에 X자만 그어지고 아주 혼란스러워집니다.
이게 간단한 내용이지만 무척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국립중앙박물관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어느 박물관이나 다 마찬가지로 꼭 같습니다. 전시실에 들어가면 어디서나 척 들어서자마자 '동선을 좌로 꺾으시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전시장 입구부터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거슬러가며 보라는 얘기가 됩니다. 서양식으로, 옛 그림을 전부 거꾸로 보게 되죠. 박물관에서 전시 유물의 도록을 만들 때도 문제가 생깁니다. 옛날 조상들이 남기신 국보며 보물이며 이런 소중한 유물 사진들을 책 속에 편집하는데, 그 책들을 하나같이 서샹식 좌철 책으로 만듭니다. 책의 왼쪽을 묶는 형식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두루마리 병풍이고 모두 끝에서부터 거꾸로 보게 합니다. 우리 조상들 책은 원래 이렇게 우철로 되어 있습니다. <훈민정음>이나 <동의보감> 모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책 표지를 오른쪽으로 넘기면 병풍의 1폭, 2폭, 3폭, 4폭이 순서대로 보이고, 두루마리도 당연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보게 되는데, 지금은 모두 서양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사물을 전부 거꾸로 보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실 이것은 옛 그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 학생들은 세로쓰기 책을 아예 읽지 못합니다. 도서관에 있는 예전에 출판된 훌륭한 책들을 도무지 읽어내질 못합니다. 세대 간에 문화의 전승이 단절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p.27-29)
훈민정음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할 적인데요. 9m짜리 긴 그림이 있었어요!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라고...너무나 훌륭한 작품인데, 이건 사실 국보 중에서도 초특급 국보라 할 작품인데 지금 문화재 지정조차 되어 있지 않습니다. - 사실 우리나라의 국보, 보물 지정 현황은 썩 좋은 편이 아닙니다. 일제 때의 악영향이 아직도 짙게 남아 있어서, 지금 안목으로 보면 정말 뛰어난 작품이 정작 지정되어 있지 않은가 하면, 일본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했던 도자기 같은 것들은 엄청나게 많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공부 많이 하신 큰선비들의 글씨라든가 점잖은 그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국보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옛 글씨나 그림을 감상하는 안목이 전반적으로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소중한 유물들이 지정되지 않은 채 소홀할게 취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 아무튼 저 걸작 <강산무진도>를 위해서 저는 천만 원짜리 기다란 통짜 전시장을 짰습니다. 어렵사리 특별 예산을 얻어 가지고....그래서 통유리로 쫘악 연결해 놓고는 마음이 너무나 뿌듯해서 '이제 손님들, 그림 전체를 실컷 구경하십시오' 하고 멀리서 바라보았는데, 아니 중학생들이 와, 하고 몰려가더니 전부 왼쪽 끝으로 가는 거예요. 그림을 꽁무니서부터 거슬러 올라오면서 보는 겁니다. '아니, 이럴 수가....'하고 다시 봤더니, 제가 작품 위에 설명문 써 놓은 것이 전부 가로쓰기였습니다. 조형 심리적으로 가로쓰기 글이 있으면 당연히 왼쪽을 앞쪽이라 생각하고 그쪽으로 쫓아가게 되는 거죠. (p.29-3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강산무진 - 김훈 (문학동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 오주석 (신구문화사)
이인문 - 강산무진도(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이 그린 것으로 총 길이 8.5m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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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吳柱錫,1956년~2005년 2월 5일)
현대 미술사학자. 출생지는 경기도 수원(水原)이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도쿄[東京]대학 동양문화연구소에서 연수하였다. 1982년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1983년부터 1986년까지 호암미술관 학예연구원, 1987년부터 1994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지냈고, 중앙대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연구위원 및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였다.
1995년 김홍도(金弘道)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단원(檀園) 김홍도 특별전’ 등 25차례 전시를 기획하였는데, 김홍도와 이인문(李寅文) 등의 회화사적 업적을 부각하고 사료를 발굴해내는 등 한국전통회화사 연구에 커다란 성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출간한 저서를 통해 한국 고미술의 대중성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서로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단원 김홍도』등이 있다. 이 중에서 『단원 김홍도』를 Lim Seon-young과 Yang Ji-hyun이 번역한 영문판으로 『The Art of Kim Hong-Do』(2005)를 출판사 Art Media Resources Sol에서 출간하였으며,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Lee Subun과 Cho Yoon-jung이 번역한 영문판으로 『Special Lecture on Korean Paintings』(2011)를 출판사 Hollym에서 출판했다. 유고집으로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2009)‧『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이인문의 강산무진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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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솔)
단원 김홍도 - 오주석 (솔)
그림 속에 노닐다 - 오주석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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