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1. 동양 - 고전 소설

태풍 - 나쓰메 소세키 (노재명 옮김, 현암사)

by handaikhan 2023. 2. 2.

 

나쓰메 소세키 - 태풍 (1907년)

 

교사 노릇도 이제 그만 하겠다고 아내에게 고백했다.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든 사회적 상황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글의 힘에 의지해야 한다고 깨달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디를 가든 어떤 직업을 갖든 자신만 올곧다면 휘어진 대상 이야 껍질을 벗긴 삼대처럼 걲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명성은 자신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권위와 인망 역시 자신이 지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인격의 힘으로 미래의 국민인 청년들에게 발전의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스스로 전범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6년여의 시간 동안 애써왔지만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세상에 괴물은 없다고 하니, 올바르고 고귀하며,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에 동정심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번에야 말로'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믿음이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살아왔지만 그런 믿음을 가졌던 것이 잘못이었다. 세상은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고상하지 않았다. 감식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정심은 강하고 부유한 자들이나 따라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했다.

이 정도의 세상을 공연히 과대평가하고는 바꿔 보겠노라고 과감히 시골로 내려간 것은, 기초도 다지지 않은 지면 위에 튼튼한 집을 짓겠다고 조급해 한 것과 같다. 그러니 집을 짓자 마자 바람과 비 따위의 방해꾼이 나타나 집을 파괴해버린다. 기초를 다지지 않고 바람과 비를 막지 않는 한 안정된 상태에서 살아갈 수 없다. 안정된 상태로 살 수 없는 세상을 안정된 상태로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천하의 선비가 해야 할 일이다.

돈도 권력도 없는 사람이 천하의 선비로서 부끄럽지 않게 과업을 이루려면 붓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뇌수를 짜내서라도 이타의 지혜를 얻지 않으면 안된다. 뇌수는 마르고, 혀는 짓무른다. 붓은 몇 개라도 부러진다. 그래도 세상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나 천하의 선비라고 해도 먹지 않고는 일을 할 수 없다. 비록 자신은 먹지 않아도 된다 해도 아내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다. 아내를 풍요롭게 부양하지 않는 남편은 아내의 관점에서 보면 대죄인 이다. (P23-24)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할 때, 자신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자신을 대충 위로하는 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내 불평을 알아 들었는지 아닌지, 정말 나를 가엾게 생각하는 것인지 그냥 겉으로만 그런 말을 하는것인지 알 수 없다. (p32)

 

, 자네 얼굴은 묘하군. 햇볕을 쬐 인 오른쪽은 혈색이 굉장히 좋은데, 그늘이 져 있던 쪽은 안색이 아주 좋지 않아. 기묘 하군. 코를 경계로 모순이 서로 눈싸움을 하고 있어. 비극과 희극의 가면을 반반 이어 붙인 모습 이라고나 할까.(p36)

 

지금은 그때와는 정반대다. 세상은 명문을 입을 모아 칭송한다, 세상은 부자들을 칭송한다, 세상은 박사, 학사까지도 칭송한다. 그러나 공정한 인격을 만나서, 지위를 저버리고, 금전을 저버리고, 또는 학력이나 재능, 기예를 저버리고, 인격 그 자체만을 존경하는 일을 이해하지 않는다. 인간의 근본에 해당하는 인격에 비판의 기준을 두지 않고, 그 겉에 해당하는 부속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한다. 이 부속물과 공정한 인격이 싸움을 벌일 때, 세상 사람들은 반드시 이 부속물에 흔들려서 인격을 유린하려고 한다. 세상이 한 사람의 공정한 인격을 잃을 때, 세상은 그만큼 빛을 잃는다. 공정한 인격은 백 명의 귀족, 백 명의 거부, 백 명의 박사로도 보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존귀한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인격을 지켜내는 것보다 의미 있은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추울 때 옷을 입고 배고플 때 밥을 먹는 것은 인격을 지키려는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하다. 글을 쓰고 벼루를 닦는 것 역시 이 공정한 인격을 다른 방식으로 관철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현재 도야가 갖고 있는 신념이다. 이런 신념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도야는 아내의 비위나 맞춰주고 있을 수는 없다. (p60)

 

 옅지만 도톰한 아랫입술이 뾰로통하게 움직인다. 남자는 여자의 불평을 어리석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다정하다고 느끼며 재미있어 한다. 두 사람의 세계는 사랑의 세계다. 사랑은 가장 진지한 유희다. 유희기 때문에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반드시 모습을 감춘다. 사랑을 장난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은 더 없이 행복하다.

사랑은 진지한 것이다. 진지 기 때문에 심오하다. 동시에 사랑은 유희다. 유희이기 때문에 들떠 있다. 심오하고 들떠 있는 것은 물속의 해초와 청년의 사랑이다.

사랑은 방황이다. 또 깨달음이다. 사랑은 세상의 온갖 만물을 재빨리 흡수하여 뭔가 다른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방황이다. 사랑의 눈빛을 보내면 대천세계는 모두 황금이다. 사랑의 마음에 비치는 우주는 깊은 연정의 우주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깨우침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은 방황인지 깨달음인지 알지 못한다. 단 스스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또 사람에게 끌려간다. 자연은 진공을 꺼리고, 사랑은 고립을 싫어한다.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해 심각한 동정심을 갖고 있다. 다만 너무 심각해 향락의 만족이 있을 경우에만 자신을 뚫고 나오고 남의 신상에도 보통 이상으로 동정을 기울이는 일이 생긴다. 너무 심각해 실연을 당한 경우 자신을 뚫고 나와서 남의 신상에도 도한 보통 이상으로 원한을 기울이는 일이 생긴다. 사랑에 성공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선인이라고 생각한다. 성패에 관계없이 사랑은 일직선이다. 단지 사랑이라는 척도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 성공하는 사랑은 동정심을 싣고 달리는 마차의 말이다. 실패하는 사랑은 원한을 싣고 달리는 마차의 말이다. 사랑은 가장 제멋대로인 것이다. 가장 제멋대로인 선인 두 사람이 아름답게 장식된 방에서 심각한 유희를 연기하고 있다. 방 밖의 세상은 쓸쓸한 가을이다. 세상의 가을은 숱한 도야 선생들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 숱한 다카야나기 군을 계속 쓸쓸하게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선인이다. (p119-120)

 

너무 많이 아는 것이 그에게는 버릇 같은 것이지만, 그런 버릇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점이 그의 병이다. 세상에는 설사 죽인다고 작정해도 전부 죽일 수는 없을 정도로 인간이 많다. 그러나 이런 병을 고쳐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런 병을 고쳐줄 수 없는 이상 몇천만의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외톨이가 되었다. 자신에게 만족하고 다른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 한가한 외톨이가 되었다. 자신에게 만족하고 다른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 한가한 외톨이가 아니다. 동정심을 간절하게 바라고 인간을 갈구하는, 마음 달랠 길 없는 외톨이다. 나카노군은 병이라고 했다. 자신도 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을 외톨이 병에 걸리게 한 것은 세상이다. 자신을 외톨이 병에 걸리게 한 세상은 위험한 병자를 눈앞에 두고 휘파람을 불고 있다. 세상은 자신을 병자로 만든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병자를 살해하려고 달려든다. 다카야나기 군은 세상을 저주할 수 밖에 없다. 도야 선생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다. 다카야나기 군이 바라보는 세상은 자신을 위한 세상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어도 원한을 갖지 않는다. 자신을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을 개의치 않는 세상을 잔혹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 태어난 사람과 보살핌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이 정도로 다르다.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자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이 정도로 다르다. 똑같이 외톨이면서 이 정도로 다르다. 다카야나기 군은 이런 다름을 알지 못한다. (p126)

 

밤이 되면 가끔 식은 땀을 흘린다. 땀 때문에 눈을 뜨는 경우도 있다. 아주 캄캄한 상태에서 눈을뜬다. 그런 캄캄한 밤이 무한히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밤이 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고통스럽다.

어두운 상태를 더욱 어둡게 하기 위해 눈을 감고 이불 속으로 머리를 처박는다. 이제 이런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다. 이대로 잠이 들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동안에 저세상으로 가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잔다. 다음 날이 되면 태양은 무자비하게도 강렬하게 창문을 비추고 있다.

시계를 꺼내 하루에 몇 번이나 자신의 맥박을 검사해본다. 몇 번이나 검사를 해도 정상이 아니다. 너무 빨리 뛴다. 불규칙하게 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으로 뛰지 않는다. 가래를 뺃을 때마다 눈에 핏대를 세우고 바라본다. 붉은색이 보이지 않는 것이 그런대로 위안이 된다. 가래에 피가 섞이지 않은 것에서 위안을 느낀다면 피가 섞일 때는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위안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껴야 하는 그런 운명에 다가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다카야나기 군은,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은 꺼리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모순을 무릅쓴다. 그들은 대개 행복한 삶이 목적이다.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행복을 즐길 인생 그 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단순한 생명은 그들의 목적이 아니라 해도 행복을 향유할 필수조건으로서 온갖 고통 속에서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이런 모순을 무릅쓰며 속세를 살아가면서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고 게다가 날마다 죽음에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부채를 갚으려고 하지만 다달이 새로운 부채가 쌓여가는 현상과 다를 바가 없다. 이를 비참한 번민이라고 한다. (p129-130)

 

문 앞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 보니 흘러가는 가을을 무거운 어떤 것이 위에서부터 둘러싸고 있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서라도 걸을 생각이다. 어딘가 구체적인 목적지는 없지만 그냥 걸어볼 작정이다. 전차는 무작정 달릴 뿐, 왜 달려야 하는지 전차도 알 리 없다. 다카야나기 군은 자신이 걷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왜 걷고 있는지는 전차와 마찬가지로 알지 못한다. 아무 일도 없고, 도 걷고 싶지도 않은 사람을 무리하게 걷게 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잔혹함을 만들어낸 장본인에게 향할 수 밖에 없다. 잔혹함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세상이다. 다카야나기 군은 혼자서 그 적진 속을 걷고 있다. 아무리 걷는다고 해도 역시 외톨이다. (p131-132)

 

선생님! 죄악도 유전되는 것일까요?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유전되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죄인의자식입니다.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그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잊어야만 합니다. 잊는다고 해도 곧 떠오르더군요. 그러나 당신의 인생은 과거에 있는 것입니까? 미래에 있는 것입니까? 당신은 앞으로 꽃을 피울 사람입니다. 꽃이 피기 전에 시들어버릴 겁니다. 시들기 전에 일을 하면 됩니다.

다카야나기 군은 입을 다물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죄가 있다. 미래를 바라보면 병이 있다. 현재는 빵을 위해 글씨를 베껴 쓴다.

당신은 당신만 외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나 역시 외톨이입니다. 외톨이는 숭고한 사람입니다. 이해하겠습니까? 숭고? 왜 그렇지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저히 외톨이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곳에살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사람들이 그곳을 인정해줄 만한 곳이라면 그들도 올라설 수 있는 곳입니다. 게이샤나 인력거꾼이 이해할 만한 인격이라면 틀림없이 수준이 낮을 겁니다. 게이샤나 인력거꾼이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업신여길 때 화가 치민다거나 번민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과 동등 하다면 창작을 해 봤자 역시 동등한 창작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과 동등하지 않기 대문에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도 나옵니다.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을 쓰지 못한다면 그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일이지요. 게이샤나 인력거꾼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만.

누구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학교를 같이 졸업한 사람이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학교의 졸업생이기 때문에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육의 형식이 비슷한 것을 교육의 실체가 비슷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같은 대학의 졸업생이 동일한 수준이라면 대학의 졸업생은 죄다 후세에 이름을 남기든지 아니면 죄다 사라져야 하는 것이지요. 자신만이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자 기를 쓴다면 설령 같은 학교 졸업생이나 그 밖의 사람들은 후세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미 그런 가정을 하고 있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은 같은 학사라고 해도 크게 차이가 난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 아닙니까?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자부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번민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럼 선생님은 후세에 이름을 남길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고 계십니까?

난 조금 다릅니다. 지금 내가 한 말은 당신을 중심으로 세운 논의입니다. 훌륭한 작품을 써서 후세에 전하고 싶은 것이 당신의 희망인 듯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난 이름처럼 미덥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만족을 얻으려고 세상을 위해 일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 결과가 악명이 되든, 오명이 되든, 아니면 광기가 되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일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일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내가 걸어야 하는 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인간에겐 자신의 길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은 길의 동물이기 때문에 길을 좇는 것이 가장 존엄하다 생각합니다. 길을 좇는 사람은 신 역시 피해야 합니다. 이와사키의 담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p138-140)

 

부와 권세와 자신감과 만족감이 발호하는 곳은 동반구 서반구 할 것 없이 다카야나기 군에게는 모두 적지다. 다카야나기 군은 아치 아래에 선 신혼부부를 열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도 이 사람이 자신의 친구라고 분명히 알아보지 못했다. 적잖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캬나기 군을 기다리고 있던 부부의 눈에 그의 모습이 언뜻 비쳤을 때, 분명히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기다린 보람이 있는 손님 이라고는 부부 모두 생각지 않았다. 우정의 3분의 1은 복장이 담당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친구와 눈앞에 나타난 친구는 상당히 다르다. 다카야나기 군의 복장은 오늘 온 손님들 중에 가장 초라한 차림이었다. 사랑은 사치다. 아름다움에서서 벗어난 것은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여자는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p146)

 

주객은 하나다. 주인을 떠난 손님은 없고, 손님을 떠난 주인은 없다. 우리가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는 것은 생존상의 편의 때문이다. 형태를 떠난 색깔은 없으며, 색깔을 떠난 형태는 없는데 구태여 나누는 편의. 착상을 떠난 기교는 없으며, 기교를 떠난 착상도 없음에도 잠시 둘로 나눠보는 편의와 마찬가지다. 이런 차별적인 기준을 세우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의 미로로 들어간다. 그러나 생존은 인생의 목적이기에 생존에 편의를 제공하는 이런 미로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오로지 생존 욕구를 한시라도 빨리 제거해야만 이런 방황을 끝낼 수 있다. 다카야나기 군은 이런 욕구를 한순간도 제거할 수 없는 남자다. 따라서 주객을 아주 좁은 범위에서라도 일치시키는 것이 어려운 남자다. 주인은 주인, 손님은 손님이라는 생각에 철저하게 집착해 만약 자신보다 여러모로 나아 보이는 손님을 만날 때면, 사방팔방에서 무형의 도검을 휘둘러 자신을 때려눕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다카야나기 군은 가든파티에서 홀로 적에게 포위당한 채 고립된 처지였다. (p154-155)

 

생각해보니 시집온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딸이었을 때가 얼마나 편하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아내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누군가 가르쳐주었다면 시집오기 전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시집올 때 품었던 각오부터가 잘못되었다. 자신이 시집을 온 것은 자신을 위해서였다. 남편을 위해서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혼례의 축배를 들었던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런 생각으로 다카사고를 들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이 상황을 아버지,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면 틀림없이 도야가 괘씸하다고 화를 냈을 것이다. 자신 역시 속으로는 화를 내고 있다.

도야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이 아내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건 오히려 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다. 여자는 연약하고 나이도 어리기 때문에 남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남편을 돌보는 것 이상으로 남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신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말한다. 남편은 결코 이런 마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가정의 생애는 오히려 아내의 생애이다. 도야는 남편의 생애라고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잠잠해지지 않는다. 세상의 남편은 모두 도야와 비슷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모두 도야 같다면 앞으로 결혼하는 여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줄지 않는 것을 보면 다른 남편들은 남편답게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넓은 세상에서 자신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일생이 불행이다. 어차피 이렇게 시집을 온 상태에서 밖으로 뛰쳐나갈 수는 없다. 그러나 함께 사는 남편이 이런 상태라면 임종할 때까지 자신이 정말 아내라는 기분은 생기지 않을 듯하다. 이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떻게라도 해서 남편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의 남편으로 만들지 않으면 사는 보람이 없다. 아내는 이렇게 궁리하면서 화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바람이 마른 파초나무를 불어 넘어뜨릴 기세로 세차게 분다. (p162-163)

 

자신은 과거와 미래의 연쇄입니다.

과거를 미래로 보내는 것을 구파라고 하고, 미래를 과거로부터 찾는 것을 신파라고 합니다.

자기 속에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부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같고, 자기 속에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자식을 낳을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입장은 이런 점에서 명료합니다. 난 부모를 위해 존재하는가? 난 자식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 그 자체를 수립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의 생존의 의미는 이 셋 중의 하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겹옷은 홑옷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솜옷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또 겹옷 자신을 위해존재하는 것입니까? 라고 말하고 한 차례 청중을 둘러본다. 웃어 버리기에는 너무 기발하다. 심각한 표정을 짓기에는 좀 우스꽝스럽다. 그런 어려운 문제는 나 역시 모릅니다.

그건 몰라도 지장 없습니다. 그러나 우린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이건 몰라서는 안됩니다. 메이지 시대도 40년이 지났습니다. 40년은 짧지 않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사업은 이걸로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어딘가에서 노, ,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난 그 사람의 의사에 찬성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0년이라는 세월은 짧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살아보면 길어요. 그러나 메이지 시대 이외의 사람들이 바라봐도 길까요? 망원경의 렌즈는 직경이 3센티미터입니다. 그러나 아마고야마에서 바라보면 시나카와의 앞바다가 바로 3센티미터 안에 들어와버립니다. 메이지 40년을 길다고 말하는 사람은 메이지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후세에서 보면 아주 짧게 보입니다. 아주 멀리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아요. 이런 짧은 시간에 무엇이 가능한가요?

정치가는 일대 사업을 벌이려고 합니다. 학자도 일대 사업을 벌이려고 합니다. 실업가도 군인도 일대 사업을 벌이려고 합니다. 벌이려고 하지만 그건 자신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메이지 40년 세상에 머리를 디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짧은 시간에 무엇이 가능한가요?

메이지 40년이라는 세월은 메이지 개화의 초기입니다. 말을 바꾸어 이를 설명하면 오늘의 우리는 과거를 갖지 않은 개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를 전달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시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갑니다. 과거가 없는 시대는 없습니다. 여러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린 물론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거는 망령된 과거든지, 유치한 과거입니다. 기준으로 삼고 따를 만한 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메이지 40년은 전례가 없는 40년 입니다.

전례가 없는 사회에 태어난 사람만큼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요. 나는 여러분이 이런 전례 없는 사회에 태어난 것을 깊이 축하하는 사람입니다.

전례 없는 사회에 태어났다는 것은 스스로 전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예요. 속박이 없는 자유를 향유하는 사람은 이미 자유를 위해 속박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 자유를 어떻게 능숙하게 사용할까 하는 문제는 여러분의 권리이자 동시에 큰 책임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이상을 갖지 못한 사람의 자유는 타락입니다.

개인에 관해 논해봐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은 반백의 노인입니다. 젊고 원기 왕성한 사람에게 회상해야 할 과거는 없을 것입니다. 앞길에 커다란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며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젊고 원기 왕성한 시대입니다. 과거를 회상할 정도로 노쇠한 시대가 아니에요. 정치에서 이토 후작이나 야마가타후작을 회상할 시대가 아니에요….

문학에서는 고요 씨나 이치요 씨를 회상할 시대가 아니에요. 이런 사람들은 여러분의 선례가 되기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에요. 여러분을 낳기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조금 전에 한 말을 사용하면 이런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살았다는 것이 됩니다. 후손을 위해 존재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한 시대에서 초기의 사람들은 후손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기의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산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후기의 사람들은 아버지를 위해 산다는 체념을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메이지 40년이 흘렀습니다. 우선 초기라고 보아도 지장은 없겠지요. 그렇다면 현대 청년인 여러분은 자기를 크게 발전시켜 중기를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고 앞날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그저 자아를 생각한 대로 발전시키는 지위에 선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장 유쾌한 시기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왜 초기의 사람들이 선례가 될 수 없는가? 초기는 가장 무질서한 시대입니다. 우연성이 발호하는 시대입니다. 요행을 얻을 수 있던 시대입니다. 초기에 이름을 떨친 사람들, 집안을 일으킨 사람들, 재물을 쌓은 사람들, 사업을 일으킨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역량만으로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역량에 의하지 않고 성공했다는 것은 선비로서 가장 치욕적인 일입니다. 중기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는 초기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합니다. 일을 쉽게 성취할 수 없다는 점이 행복한 것입니다.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요행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 행복합니다. 곤란함도 불구하고 능력에 따라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고, 발전의 길이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후기에 이르면 굳어져버려요. 단지 전 시대를 조술 하는 것 말고는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인간이 타락할 때 다시 파란이 일게 됩니다. 파란이 일지 않으면 화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화석이 되기 싫으면 스스로 파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이상은 메이지 시대에 여러분들이 처한 지위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유쾌한 지위에 선 여러분은 이 유쾌함에 상당하는 이상을 키워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상은 혼입니다. 혼은 형태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인간의 혼이 행위에서 발현하는 것을 어렴풋하게 보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아쉽게도 현대 청년들은 이것을 보지 못합니다. 이걸 과거에서 찾아도 없고, 현대에서 찾으려 하면 더더욱 없습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부모를 이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학교에서 교사를 이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사회에서 신사를 이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사실상 여러분은 이상을 갖고 있지 않아요. 집에서는 부모를 경멸하고, 학교에서는 교사를 경멸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신사를 경멸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경멸하는 것은 식견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경멸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원대한 이상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이상도 없이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것은 타락입니다. 현대의 청년은 도도하게 날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영국식을 고취하며 위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엾은 일입니다. 자신에게 이상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일본 청년이 도도하게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정도까지 타락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상은 자신의 혼입니다. 내부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돼요. 노예의 두뇌에 웅대한 이상이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서양의 이상에 압도되어 눈이 먼 일본인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노예입니다. 노예로 만족할 뿐 아니라 앞다투어 노예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상이 발효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상은 여러분의 내면에서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학문이나 식견이 여러분의 피가 되고, 육체가 되고, 마침내 여러분의 혼이 되었을 때 여러분의 이상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벼락치기로는 어떤 일도 되지 않습니다. 이상이 있는 사람은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원대한 이상이 있는 사람은 큰길을 걸어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과는 달라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길을 걸어냅니다. 방황하고 싶어도 방황할 수 없습니다. 혼이 이쪽, 이쪽 하고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어디까지 걸어갈 생각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수명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수명을 다른 사람이야 더욱더 알 턱이 없습니다. 의사를 가업으로 하는 전문가라도 인간의 수명을 추정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몇 살까지 살지는 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언급할 수 있습니다. 80세까지 살았다면 80세까지 살았다는 사실이 증거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령 80세까지 살 자신이 있고 그대로 될 것이 확실하다고 해도 80세까지 산 사실이 없는 이상 그 누구도 그걸 믿어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굳이 입에 담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상의 묵시를 받아들이고 가야 할 길을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스스로의 이상을 어느 정도나 현실화 했는지는 자신조차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과거가 이러 했기 때문에 미래도 이렇게 될 것이라는 억측은 지금까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살아 있을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종의 사기입니다. 성공을 목적으로 인생이라는 길에서 있는 사람은 이미 사기꾼입니다.

사회는 아수라장입니다. 문명 사회는 피가 보이지 않는 아수라장입니다. 40년 전의 지사는 생사를 넘나들며 유신이라는 대업을 성취했습니다. 여러분을 위협하는 위험은 그들의 위험보다 두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피가 보이지 않는 아수라장은 포성과 총칼의 아수라장보다도 더 심각하고 더 비참합니다. 여러분은 각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근왕의 지사 이상의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태평한 시대라고 한심하며 필짱을 끼고 성공을 간절히 열망하는 무리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다가 넘어져 비명횡사하는 실패를 맞는 아이보다도 인간적인 가치가 훨씬 떨어지는 인간입니다.

여러분은 길을 가기 위해 그 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들과 싸울 때 우리는 우리 생애에서 처음으로 생명감을 느낄 수 있으며, 근왕의 지사가 무릅쓰고 느꼈던 것 이상의 번민과 쓰라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바람이 붑니다. 어제도 바람이 불었습니다. 요즘 날씨가 평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슴속의 불온함은 이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난 여러분이 얼마나 강한 사람이 될 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세상과 후세가 증명해낼 뿐입니다. 이상의 큰 길을 끝까지 걸어가서 도중에 쓰러져 죽으려는 찰나, 우리의 과거를 축소하여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는 일 그 자체에 따라 전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단순히 여러분의 이름을 통해 전하려고 하는 것은 경박한 짓입니다.

이상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는 학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의 이상이 무엇인가 하면,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얼마 전에 학문을 한다는 사람이 찾아와, 저도 아내가 생겼고 아이 또한 얻었습니다, 앞으로 돈을 모아야 합니다, 반드시 아이를 훌륭하게 교육시키려면 지금 돈을 모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학문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물음은 없습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학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돈을 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학문을 통해 돈을 벌 궁리를 하는 것은 북극에 가서 호랑이를 사냥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노력과 돈의 관계에 관해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걸맞은 학문을 하면 그에 걸맞은 돈을 벌 수 있는 전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학문은 돈에서 멀어지는 기계입니다. 돈을 벌고 싶으면 돈을 목적으로 하는 실업가나 상인이 되면 됩니다. 학자와 상인은 완전히 별개의 인간으로, 학자가 돈을 기대하고 학문을 한다는 것은 상인이 학문을 목적으로 견습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에 관한 것은 학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돈이 필요하다면 상인에게 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학문, 즉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과 생활의 자유, 즉 돈이 있다는 것은 서로 독립해 있어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학자이기 때문에 돈이 없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때문에 학자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학자는 돈이 없는 대신에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고, 상인은 그런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돈을 법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돈이 있는 곳에 이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오해하고 있어요. 저 사람은 부자고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니 이치 또한 분명 알고 있을 것이고, 문화 역시 제대로 즐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화를 즐길 여유가 없기 때문에 돈을 벌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공평해서 한 사람에게 돈도 벌게 해주고 동시에 문화도 즐길 수 있게 편애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알기 쉬운 도리도 가려내지 못하고 부자들은 자만하여, 자신들은 사회의상류층에 속해 일반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어서 세상에 자신만큼 이치에 정통한 사람은 없다, 학자든 누구든 자신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가련한 일로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문화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영문 모를 그들의 자만을 구제할 길은 없다 하더라도 사회에서 그들의 자만을 지당하다고 시인하는 것은 실로 정 떨어지는 경망함 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히들 저 사내는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재산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쉽게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어찌 알겠습니다. 그런 사회적 지위를 얻고 상응하는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는 무엇으로 결정 되는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문벌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셋째, 자신이 갖고 있는 재주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돈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장 많아요. 이와 같이 여러가지 기준이 존재하는 것을 잊고 돈으로 그 가치가 결정된 사람을 학문으로 그 가치가 결정된 사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거의 눈먼 장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돈으로 가치가 결정된 사람은 돈 이외의 일에는 무능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은 어떤 의미에서 귀중 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이런 귀중한 것을 안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존경을 받습니다. 그건 좋습니다. 거기까지는 그 누구도 이의가 없어요. 그러나 돈 이외의 영역에서 그들은 영향력이 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돈 이외의 기준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의 집단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일 이게 가능하다면 학자도 부자들의 영역에 들어가 금전 중심의 구역 안에서 위력을 발휘해도 좋게 됩니다. 하지만 부자들은 그렇게 두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만은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점잖게 처신하지 않고 다른 영역까지 함부로 설치며 나오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물의 이치를 모른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돈은 노력의 보수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노력하면 돈은 더 많이 벌리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세상도 공평합니다. 그러나 한 발 나아가 생각해보는 것이 좋아요. 높은 수준의 노력에는 높은 보수가 주어집니까?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답하지 않으니 설명을 해야겠군요. 보수라는 것은 눈앞의 이해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주는 사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교사의 보수가 장사꾼의 보수보다도 적은 것입니다. 눈앞보다 멀고 높은 수준의 노력을 하는 사람의 보수는 그 노력이 제아무리 미래나 국가, 인류를 위해 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해도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즉 노력하는 질의 높고 낮음에 따라 보수의 많고 적음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금전의 분배는 그런 것에 지배되지 않아요. 따라서 돈이 있는 사람이 고상한 노력을 했다고 할 수 없어요. 말을 바꾸면 돈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고상하다고 말할 수 없어요. 돈을 기준으로 해서 사람의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학자와 언쟁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품격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숙이게 하려는 것도 잘못입니다. 좀 생각해 보는 게 좋아요.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병이 들었을 때는 의사에게 항복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금화를 달여 마실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금화를 달여 먹으면 설사가 그치지 않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의사에게 머리를 숙이지요. 그 대신에 의사는 돈에 머리를 숙이지요. 그걸로 좋습니다. 돈에 먹이를 숙이는 건 좋습니다. 그러나 부자에게는 안 돼요. 의사에게 머리를 숙일 줄은 알면서도 취미라든가 기호라든가 기품이라든가 인품이라든가 하는 것에 관해 학문을 하고, 고상한 이치를 아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줄은 몰라요. 그뿐만 아니라, 거꾸로 돈의 힘으로 이런 고상한 분들의 머리를 숙이게 하려고 하지요. 장님은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더니 딱 그 짝이라고나 할까요.

학문적 능력이 있는 사람, 이치를 이해한 사람은 부자들이 돈의 힘으로 세상에 이익을 주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를 통해, 학문을 통해 이치를 이해함으로써 사회에 행복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장은 다르지만, 그들은 도저히 범할 수 없는 지위에 확고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학자가 만일 금전 문제에 좌우되면 자기 본령을 버리고 다른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부자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동시에 돈 이상의 취미라든가 문학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사회라든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부자들이 학자에게 탄복하지 않으면 안돼요. 지금 학자와 부자 사이에는 갈등이 발생하려고 합니다. 단순하게 금전 문제라면 학자는 첫 수부터 무능력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 문제나 도덕 문제, 사회 문제인 이상은 처음부터 부자들은 입을 열 권한이 없다고 자각하고 학자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돼요. 부자들은 학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이와사키는 별장을 줄지어 세운 것으로 학자들을 압도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회나 인생 문제에 관해서는 어린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10만 평이나 되는 별장을 시의 동서남북에 세웠다고 하여 세상의 학자를 굴복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료운카쿠를 세웠다고 하여 신선이 황송해 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상인이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전문적인 일로 누구도 참견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업상에 쓰지 않고 인간사에 그 힘을 이용할 때는 이치를 아는 사람에게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악을 스스로 조장해내면서 태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부자들의 돈 중 일부분은 항상 이런 목적에 사용되고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자신이 돈의 주인일 뿐이고 그 밖의 덕이나 재주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자를 존경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재앙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그들이 학자나 문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시기가 옵니다.

도야 선생은 예언자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단상에 서 있다. 휘몰아치는 초겨울 바람은 건물을 흔들고 사라진다. (p175-193)

 

나에게는 나가 있다. 이 나를 내놓지 않고 빈둥빈둥하다 죽어버리는 것은 아깝다. 그뿐만 아니라 이는 부모나 세상에 면목이 없다. 사람들로부터 토우처럼 소외되는 것도 이 나를 내놓을 기회가 없어서, 모자란 인간조차 훌륭하게 할 수 있는 번역 허드렛일 같은 것 때문에 날을 새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하다. 바위에 덤벼 들어 봤자 하고 생각할 때 도야의 연설을 듣고 몸져누웠다. 의사는 대담하게도 결핵 초기라고 말한다. 확실히 결핵이라면 도저히 목숨을 건질 수 없다.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다시 옛 원고에 매달려보았지만 꼬는 새끼는 늦고 도망치는 도둑은 빠르다. 무슨 선물 하나 남겨두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쓸데없이 열까지 난다. 이 작품을 완성한다면 죽어도 명분이 선다. (p201)

 

.......................................................................................................................................................................................................................................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년 1월 11일 ~ 1916년 1월 9일)

1867년 1월 11일(음력 1월 5일)에 에도의 우시고메 바바시모요코초(오늘날 신주쿠구 기쿠이 정)에서 나쓰메 고효에 나오카쓰(夏目小兵衛直克)의 막내로 태어났다. 자식 많은 집에서 늦둥이로 태어났으므로, 어머니가 부끄럽게 여겼다. 긴노스케라는 이름은 태어난 날이 경신일(庚申日, 이날 태어난 아이는 큰 도둑이 된다는 미신이 있었다)이었으므로, 액을 막는 의미에서 긴(金)이라는 글자가 이름에 들어갔다. 세 살 때쯤 걸린 천연두 흔적은 이후에도 남았다.
당시 에도 막부가 붕괴한 이후 혼란기였고, 생가는 몰락하고 있었으므로 태어난 직후에 요쓰야(四谷)의 낡은 도구점(일설에는 야채가게)에 양자로 갔지만, 늦은 밤까지 물건 옆에서 나란히 자는 것을 지켜본 누나가 불만을 품고 곧 본가로 데리고 왔다. 이후 1세 때 부친의 친구였던 시오바라 쇼노스케(塩原昌之助)의 양자로 갔지만, 양부였던 쇼노스케의 여성 문제가 들통나는 등 가정불화가 불거지면서 7세 때 양모가 잠깐 생가로 데려왔다. 이후 양부모 이혼과 함께 9세 때 생가로 되돌아오지만, 친부와 양부 대립으로 말미암아 나쓰메가로 복적한 게 21세 때 일이다. 이러한 양부모와 관계는 이후 소설 《한눈팔기》의 소재가 되었다.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이치가야 학교(市ヶ谷学校)를 거쳐 니시키하나 소학교(錦華小学校)로 전학했다. 12세 때인 1879년에 도쿄부 제1중학 정칙과(正則科, 훗날 부립 1중, 오늘날 도쿄도립 히비야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 예비문 수험에 필수였던 영어 수업이 없던 것과 함께 한학과 문학에 뜻을 두었으므로 2년 뒤 중퇴했다. 1883년에 대학 예비문 수험을 위해 영어를 가르치던 영학숙 세이리쓰 학사(成立学舎)에 입학해 두각을 드러냈다.
1884년에 무사히 대학 예비문 예과에 입학했다. 당시 하숙 동료로 훗날 남만주 철도 총재가 되는 나카무라 요시코토가 있다. 1886년에 대학 예비문이 제1고등중학교로 개칭하고, 이후 맹장염 등으로 인해 예과 2급의 진급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요시코토와 함께 낙제하였다. 이후 사립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영어실력이 우수했다.
1889년에 동창생으로 소세키에게 문학적·인간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마사오카 시키와 처음으로 만났다. 시키가 손수 쓴 한시나 하이쿠 등을 묶은 문집 《나나쿠사슈》(七草集)가 돌고 있을 때 소세키가 그 비평을 권말에 한문으로 쓴 게 우정의 시작이었으며, 이때 처음으로 ‘소세키’라는 호를 사용했다. 소세키라는 이름은 《진서》(晉書)의 고사 ‘수석침류’(漱石枕流,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억지가 강하거나 괴짜라는 것의 대표적인 예이다. 소세키는 원래 시키의 수많은 필명 가운데 하나였으나, 이후에 소세키는 시키로부터 이를 물려받았다.
1890년에 창설된 지 얼마 안된 제국대학(이후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하며, 이즈음에 염세주의와 신경쇠약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887년에는 큰 형 다이스케(大助)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둘째 형 에이노스케(榮之助)를 잃는다. 1891년에는 셋째 형 와사부로(和三郎)의 아내 도세(登世)가 스물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92년에는 병역을 피하기 위해 분가하였으며, 홋카이도로 적을 옮겼다. 같은 해 5월에는 도쿄 전문학교(지금의 와세다 대학)의 강사를 시작한다. 이후 시키가 대학을 중퇴하지만, 소세키는 마쓰야마의 시키의 집에서 뒤에 소세키를 직업작가의 길로 이끄는 다카하마 교시와 만나게 되었다.
1893년에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도쿄 고등사범학교 영어교사가 되었으나 일본인이 영문학을 가르치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잇단 가족 죽음과 함께 폐결핵, 극도의 신경쇠약 등이 나타난 게 이때다. 1895년에 도쿄에서 도망치듯 고등사범학교에서 사직하고, 스가 도라오(菅虎雄)의 주선으로 에히메현 심상 중학교로 부임한다. 마쓰야마시는 시키의 고향으로, 이 즈음에 시키와 함께 하이쿠나 작품을 남기고 있다.
1896년에는 구마모토현 제5고등학교(구마모토 대학의 전신)의 영어교사로 부임하고, 친족들의 권유로 귀족원 서기관장이던 나카네 시게카즈의 장녀 교코와 결혼하지만, 좋은 관계는 맺지 못하는 등 원만한 부부는 아니었다.
1900년 5월에 문부성에 의해 영문학 연구를 위해 영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메리디스나 디킨스 등을 주로 읽었다. 《긴 봄날의 소품》(永日小品)에서도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연구가 윌리엄 크레이그의 지도를 받거나, 《문학론》(文学論) 연구 등을 하지만 영문학 연구와의 위화감은 지속되어 신경쇠약은 심해졌다. 또한 동양인이라는 이유에서 인종차별을 받는 등의 초조함도 쌓여 몇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1901년에 물리화학 연구를 위해 2년간 독일로 유학해 있던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가 베를린에서 소세키를 찾아와 잠시 동거한 것으로 인해 깊은 자극을 받고, “기쿠나에에게 받은 자극을 계기로 소세키가 과학이라는 학문을 강하게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혼자서 연구에 몰두하는 등으로 인해 주변의 일본인들에게서 “나쓰메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문부성에서 귀국 명령을 내린다. 1903년에 결국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었으며, 소세키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의 맞은 편에 1984년에 쓰네마쓰 이쿠오에 의해 런던 소세키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귀국 이후 도쿄 제국대학의 강사나 메이지 대학의 강사 등을 전전하던 소세키는, 신경쇠약을 완화하기 위해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필하고 시키 문하의 모임에서 발표하여 호평을 얻었다. 1905년 1월에 《호토토기스》에 1회만 게재할 계획이었지만, 호평으로 속편을 집필한다. 이때부터 작가의 길을 열망하기 시작했고, 이후 〈런던탑〉이나 《도련님》 등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인기를 얻어간다. 소세키의 작품은 세속을 잊고 인생을 관조하는, 이른바 저회취미(低徊趣味, 소세키의 조어)적 요소가 강해 당시 주류였던 자연주의와 대립된 여유파로 불렸다.
1907년에 도쿄 아사히 신문의 주필이던 이케베 산잔의 초청으로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해 본격적인 직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에 직업작가로서의 첫 작품 《우미인초》의 연재를 시작하고, 집필 도중에 신경쇠약이나 위병 등으로 고생했다. 1909년에 친우였던 남만주 철도 총재 나카무라 요시코토의 초청으로 만주와 조선을 여행한다. 이 여행의 기록은 《아사히 신문》에 〈만한 이곳저곳〉(満韓ところどころ)이란 이름으로 연재되었다.
1910년 6월, 《산시로》와 《그 후》에 이은 전반기 3부작의 세 번째 작품 《문》을 집필하던 중에 위궤양으로 입원하게 된다. 같은 해 8월에는 이즈의 슈젠지로 요양을 떠난다. 그러나 거기에서 병이 악화되어 각혈을 일으키고, 위독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슈젠지의 큰 병’(修善寺の大患)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이때 사경을 헤메던 것은 이후의 작품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에 용태가 안정되었고, 다시 입원하였으나 이후에도 위궤양 등으로 수차례 고통을 겪는다. 1912년 12월에는 병으로 《행인》의 집필도 중단한다. 이후의 작품은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을 따라가면서, 후반기 3부작이라고 불리는 《피안이 지날 때까지》, 《행인》, 《마음》으로 연결되었다.
1915년 3월에 교토에서 놀던 중 다섯 번째의 위궤양으로 쓰러진다. 6월부터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집필 당시의 환경을 돌아보는 내용인 《한눈팔기》의 연재를 시작하지만 1916년에는 당뇨병도 앓게 된다. 그해 1월 9일에 큰 내출혈을 일으키면서 《명암》 집필 중 향년 48세로 요절하였다.
소세키가 요절한 다음 날, 사체는 도쿄 제국대학 의학부 해부실에서 나가요 마타로에 의해 해부되었다. 이때 적출된 뇌하고 위는 기증되어, 뇌는 현재도 에탄올에 담긴 상태로 도쿄 대학 의학부에 보관되어 있다. 묘는 도쿄도 도시마구 미나미이케부쿠로의 조시가야 묘원(雑司ヶ谷霊園)이다.

 

..........................................

태풍 - 나쓰메 소세키 (박현석 옮김, 현인)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현암사)

01.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02. 도련님
03. 풀베개
04. 태풍
05. 우미인초
06. 갱부
07. 산시로
08. 그 후
09. 문
10. 춘분 지나고까지
11. 행인
12. 마음
13. 한눈팔기
14. 명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