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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1. 동양 - 고전 소설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정수윤 옮김, 도서출판b 오사무 전집 9)

by handaikhan 2023. 2. 2.

도서출판 b 다자이 오사무 전집 (9)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 (1948년)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p142)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아직 전혀 모른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행복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과 세상 사람들의 관점이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으로 인해 밤마다 뒤척이고 신음하다,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것일까요. 어릴 적부터 행운아라는 소리를 참 자주 들었는데, 저는 제가 있는 곳이 항상 지옥 같았고, 오히려 저를 행운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다시 말해,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옆 사람이 지나고 있는 고통의 성질이나 정도가, 영 가늠이 가질 않습니다. 현실적인 고통, 그저 밥만 먹으면 해결되는 고통, 그러나 그런 것들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고통이니, 제 열 개의 재앙쯤은 단숨에 날아갈 정도로 처참한 아비지옥일 수도 있고, 그건 모르는 일,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다들 용케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하는 일 없이, 꿋꿋하게 생과 싸워나간다,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뼛속까지 이기주의자가 되어, 심지어 그것을 으레 그런 것이라 믿으며,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의심해본 적 없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속 편하다, 하긴 인간이란 모두 그런 족속이라, 어쩌면 그런 게 만점 인생인지도 모르지, 모르겠어…, 밤에는 푹 자고, 아침에는 상쾌할까 몰라, 무슨 꿈을 꾸며 살까,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생각하면 할수록 도통 모르겠으니, 이 세상에서 홀로 이상한 사람이 된 듯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힐 따름입니다. 저는 옆 사람과의 대화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어릿광대였습니다.

그것은 저의, 인간을 향한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그렇다고 인간을, 완전히 단념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릿광대라는 실낱 같은 줄을 잡고, 겨우 인간과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끊임없이 미소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한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또 저는 가족들이 제게 무슨 소리를 해도, 말대꾸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 별 것 아닌 꾸지람이, 제 귀에는 날벼락과도 같이 우렁차게 들려 미칠지경이었기에, 말대꾸를 하기는커녕, 그 꾸지람이야말로 자손만대에 길이 남을 인간의 진리임에 틀림없으며, 내게는 그 진리를 행할 능력이 없으니 끝내 인간과 함께 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다툼이나 자기변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욕하면, 두말할 것 없이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거니 싶어서, 언제나 잠자코 공격을 받아들이면서, 속으로는 미칠 듯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야 누구든, 비난을 받거나 욕을 먹어서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겠지만, 저는 화를 내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동물의 본성을 발견합니다. 평소에는 그 본성을 숨기고 있는 듯해도, 어떤 계기로, 예컨대 느긋하게 풀밭에 누워 있던 소가 돌연 꼬리를 휘둘러 배에 붙은 등에를 찰싹 쳐 죽이듯, 인간의 무시무시한 정체가 분노로 인해 느닷없이 폭로되는 모습을 보면, 머리칼이 곤두설 만큼 두려웠고, 이러한 본성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격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절망에 가까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공포로 늘 벌벌 떨면서, 인간으로서의 제 언동에 한 줌 자신감도 갖지 못한 채, 혼자만의 고민을 마음속 작은 상자에 숨겨두고, 우울과 신경과민을 꼭꼭 감추며, 그저 순진하고 낙천적인 척 꾸며대면서, 저는 점차 우스꽝스러운 괴짜가 되어 갔습니다.

뭐라도 좋으니 웃기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인간들은, 내가 그들의 이른바 생활밖에 있더라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겠지, 아무튼 저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된다, 나는 무다, 바람이다, 허공이다, 이런 생각만 쌓여서, 우스꽝스러운 짓으로 가족들을 웃기고, 또 가족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무서운 하인들에게까지 필사적으로 어릿광대 서비스를 하게 되었습니다. (p144-147)

 

아아, 인간이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서로를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 평생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다, 상대방이 죽고 나서야 울면서 애도사나 읊어대는 존재인 것은 아닌지요. (p209)

 

그나저나 자네, 여자 갖고 노는 건 그쯤 해둬. 세상이 더는 용서하지 않을 테니.

세상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복수형인지요.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어쨌거나 그건, 강력하고 엄격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호리키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문득,

세상이란 것은, 바로 자네가 아닌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만들기 싫어서 꾹 참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아니라, 당신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거겠죠?)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아니라, 당신이겠죠?)

(머지 않아 세상에서 매장당할 것이다.)

(세상이 아니라, 매장하는 것은, 당신이겠죠?)

너는 네 안의 끔찍함, 괴기스러움, 악랄함, 능구렁이 같은 뻔뻔함, 마귀할멈 같은 요망함을 먼저 알아라! 등등 오만 가지 말들이 머릿속을 오갔지만, 저는 그저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진땀나네, 진땀나. 하고 웃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하는, 사상 비슷한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이라는 것은 개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전보다는 다소, 제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210-211)

 

시즈코의, 진심으로 행복한 듯한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하얀 새끼 토끼가 보였습니다. 모녀는 방 안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토끼를 쫓고 있었습니다.

(행복하구나, 이 사람들은. 나 같은 바보가 이 둘 사이에 끼어들면, 이들의 인생은 당장에라도 엉망이 되겠지. 조촐한 행복. 어여쁜 모녀여, 행복하기를. 아아, 만약 신께서 나 같은 놈의 기도라도 들어주신다면, 한 번만,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저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합장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살며시, 문을 닫고, 저는 다시 긴자로 향했고, 그 후로 다시는, 그 아파트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교바시 근처의 스탠드바 이층에서, 다시금 남첩 비슷한 처지가 되어 드러누워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 아마 저도, 어렴풋이 그것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개인과 개인의 싸움, 더구나 그 자리에 한하는 싸움이며, 심지어 그 자리에서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인간은 결코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노예조차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자리에서 한판승부를 보는 것 외에 달리 살길이 없다,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부르짖으면서도,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이며, 대양은 세상이 아닌 개인이다, 그리 생각하니 세상이라는 바다의 무시무시한 환영으로부터 다소 해방되어, 예전처럼 이것저것 한없이 배려하는 일 없이, 이를테면 당장의 필요에 따라 어느 정도 뻔뻔하게 행동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p214)

 

불행. 세상에는 저마다 불행한 사람들, 아니, 온통 불행한 사람들로 가득하다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은 자기 불행을 세상에 당당히 하소연할 수 있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하소연을 쉬이 이해하며 동정합니다. 하지만 저의 불행은, 오롯이 제가 저지른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니,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또 우물거리며 하소연 비슷한 소리를 한마디라도 꺼냈다가는, 딱히 넙치가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런 뻔뻔한 소리를 잘도 입에 올린다며 어이없어 할 것이 분명합니다. 애당초 제가 제멋대로인 것인지, 혹은 그 반대로 마음이 너무 약한 것인 것, 저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죄악으로 똘똘 뭉쳐진 인간인 모양이니, 어디까지나 스스로를 점점 더 불행하게 만들 뿐, 어떻게 막아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p237-238)

 

죽고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어떤 일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점점 더 엉망이 될 뿐이다, 부끄러운 짓이 쌓여만 갈 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신록이 우거진 숲 속 폭포수 주변을 달리는 일 따위, 나로서는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그저 추잡한 죄에 한심스런 죄가 더해져, 고뇌가 깊어가고 격렬해질 뿐이다, 죽고 싶다, 죽어야 한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의 씨앗이다, 라는 생각에 골몰하면서도, 여전히 반미치광이처럼 아파트와 약국 사이를 오갈 뿐이었습니다. (p242)

 

이제 저는 죄인을 뛰어넘어, 광인이었습니다. 아니요, 결단코 저는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미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아, 광인은 대개 그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병원에 들어온 사람은 미치광이,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정상이라는 것 같습니다.

신께 묻나니. 무저항이 죄이나이까?

호리키의 이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 미소에 저는 눈물을 흘렸고, 판단력도 저항심도 흐려진 채 자동차에 올라, 그렇게 이곳에서 광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곳을 나가더라도, 제 이마에는 여전히 광인,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히겠지요.

 

인간, 실격.

 

어느덧,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p244)

 

그야말로 폐인.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저는 점차 얼빠진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없다, 내 가슴속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그 그립고도 두려운 존재는, 이제 없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빈 느낌이었습니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유난히 무거웠던 것도, 아버지 탓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완전히, 진이 빠졌습니다. 고뇌할 능력조차 상실했습니다. (p245)

 

지금 제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지나갑니다.

제가 이제껏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 세계에서, 오직 한 가지, 진리처럼 여겨졌던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지나갑니다.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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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샤를 크로 (Guy Charles Cros)

Charles Cros or Émile-Hortensius-Charles Cros (October 1, 1842 – August 9, 1888) 프랑스 시인

 

무제 

 

세상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홀로 견뎌내는 인내의 놀이와 같고,

오래전부터 몸에 밴 일과를

비몽사몽 읊어대는 것과 같고,

카페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과

손때 묻은 카드를 돌리며 노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이 그저 가볍고,

수고로울 것 없이 예사롭기만 하여,

편지를 쓰기도 하고, 사랑을 하기도 하고,

어찌 됐든 각자의 일들을 하고 산다.

그렇게 다음날도 같은 하루를 되풀이하니,

어제와 다름없는 관례를 따를 뿐이다.

크고 격렬한 기쁨을 피하기만 한다면,

거대한 슬픔 또한 찾아오지 않으니.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돌을

두꺼비는 그저 돌아서 지나간다.

 

 

그러나 그대여, 만약 그대가 진정으로 살기 원한다면,

하루하루 새로이 힘을 내어

미친 듯 날뛰는 삶, 거칠게 콧김을 내뿜는 삶,

굴복당하지 않으려는 삶을 견뎌내야 한다.

쉴 틈 없이 기적을 이뤄내야만

어지러이 휘날리는 갈기,

펄떡펄떡 뛰는 땀범벅 된 옆구리,

김을 내뿜는 큰 콧구멍을 얻을 수 있을지니.

그대여, 그대의 삶은 사랑의 몸짓이어야 한다.

미련의 녹 한 점 없는,

회한의 녹 한 점 없는,

아름다운 강철처럼 맑게 빛나라.

그대의 심장은 언제나 그대의 꿈만큼 웅대하게,

신이 그대에게 준 횃불을 아낌없이 태우라.

그대의 음울한 육신으로부터 당당히 아우성쳐라,

고통에 쓰러진 육신으로부터,

순순히 죽음의 약혼자가 된 육신으로부터 외쳐라.

보석은 광물을 깨부수고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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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09년 6월 19일 ~ 1948년 6월 13일)

일본의 소설가.

1936년(쇼와 11년)에 첫 작품집 『만년(晩年)』을 간행하였다. 1948년(쇼와 23년)에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山崎富栄)와 함께 다마가와(玉川) 죠스이(上水)에 투신자살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달려라 메로스(원제: 走れメロス)」, 「쓰가루(津軽)」, 「옛날 이야기(お伽草紙)」, 「사양(斜陽)」, 「인간실격」이 있으며, 사카구치 안고・오다 사쿠노스케(織田作之助)・이시카와 준(石川淳) 등과 함께 신희작파(新戱作派)・무뢰파(無賴派)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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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전집 10권 - 도서출판 b

■다자이오사무太宰治
1909년 일본 아오모리 현 북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 1936년 창작집 <만년>으로 문단에 등장하여 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사양>은 전후 사상적 공허함에 빠진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양족’이라는 유행어를 낳을 만큼 화제를 모았다. 1948년 다자이 문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인간 실격을 완성하고, 그해 서른아홉의 나이에 연인과 함께 강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그의 작품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거나 영화화되는 등 시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재원(제3권, 10권 옮긴이)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 전집 중 <유다의 고백> <생각하는 갈대>와 다카하시 도시오의 <호러국가 일본>(공역) 등이 있다.

■정수윤(제1권, 4권, 7권, 9권 옮긴이)
경희대학교에서 수학과 국문학을 공부하고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번역과 창작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모기소녀>가 있고, 옮긴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 전집 중 <만년> <신햄릿> <판도라의 상자> <인간 실격>과 다카하시 도시오의 <호러국가 일본>(공역),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 등이 있다.

■최혜수(제2권, 5권, 6권, 8권 옮긴이)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졸업. 일본 문부성 초청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 전집 중 <사랑과 미에 대하여> <정의와 미소> <쓰가루> <사양>과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 다카하시 도시오의 <호러국가 일본>(공역) 등이 있다.

 

>>> 옮긴이의 말

번역을 하면서 지나치리만치 많은 쉼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제의 문제, 끝없이 이어지는 만연체 등등, 아마도 다자이 오사무를 번역한 적이 있는 모든 번역가들이 겪었을 난해한 문체를 마주하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했다. 물론 그 판단 기준이 된 것은 내가 가진 지식과 동료들의 조언이었다.
좋은 번역이란 외국어와 한국어 실력, 해당분야 지식의 세 박자가 다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그리고 그 세 박자가 다 맞아 떨어지기에는 내가 아직 모자라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일본어와 한국어 실력이 이미 어느 정도 굳어진 나이에, 지금 내 수준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번역이 바로 이번 다자이 오사무 전집 번역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양>, 옮긴이 후기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자이 한 사람을 통해 지난 삼 년여 간 나를 스쳐 지나간 것들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고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던 날도 있었지만, 대개는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했다. 특히 즐거웠던 건 다자이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했을 때였다. 돌이켜 보면 번역을 하면서 유난히 참기 어려웠던 건 ‘술’이었다. 특히 9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술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술독에 빠져 사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오는데, 문제는 나 역시 술의 유혹에 매우 약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번역은 하루에 문고본으로 서너 장 정도면 하루해가 꼴딱 다 갔기 때문에 오백 페이지가 훌쩍 넘는 전집 한 권을 끝내려면 하루 종일 꼼짝없이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다자이가 아침이고 낮이고 ‘마시자, 마시자.’ 하면서 나를 유혹했다. 꾹꾹 참다가 해가 지면 뛰쳐나가 허겁지겁 생맥주를 들이켜던 날들이 생각난다. -<인간 실격>, 옮긴이 후기에서

10권에 실린 수필들은 짤막짤막하고 신변잡기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다자이의 맨얼굴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면에서는 다른 소설 작품에 뒤지지 않는 큰 매력이 있다. 다자이가 스스로 말했듯, “수필은 소설과 달리 작가의 말도 ‘날것’이기 때문”(「작가상」)이다. 약에 취해 나락에 떨어진 다자이, 다시 일어서 스타트 라인에 서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다자이, 영화를 보고 펑펑 우는 다자이, 전쟁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다자이, 다자이가 들려주는 다자이의 반생 이야기. 다자이의 삶과 글에 대한 이야기가 이 수필집 구석구석에 ‘날것’ 그대로 담겨져 있다. 우울과 퇴폐의 상징으로서의 다자이가 아닌, 따뜻하고 인간적인 다자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반갑게 맞아주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다자이를 발견할 수 있는 보석 같은 글들이라고 믿는다. -<생각하는 갈대>, 옮긴이 후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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