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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투계 - 안회남 (한국헤르만헤세)

by handaikhan 2023. 5. 17.

큰 한국문학 413 (44)

 

목차

 

유진오

김 강사와 T 교수

청랑정기

 

안회남

겸허(김유정전)

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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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남 - 투계 (1937년)

 

목로집에서는 언제나 사람들이 떠들썩하고 굿드레한 냄새가 난다. 좋다. 그래서 어른들뿐 아니라 동리 어린아이들까지도 술집 부근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앞에 가서 술청을 들여다보고 안주 굽는 것을 구경하고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고 한다.

그 어른들 약주 잡숫는 세계가 제들 눈에 신기하기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쓸쓸하고 가난한 집안보다 늘 거기가 풍더분해서 아이들에게도 자연 마음이 쏠리는 것이리라. (p.155)

 

심가는 오늘도 한종일 방에서 뒹굴고 있다. 주독으로 해서 콧등이 빨갛고 세수를 안 하는 날이 하는 날보다 많아서 얼굴이 추하고 더럽다.

그는 그저께 제면 공장에서 쫓겨 나왔다. 일하다가는 솜뭉치를 슬쩍 바짓가랑이 속에다 넣고 나와서 모주를 마시고 마시고 하여서는 면직을 당한 것이다. 술이 그렇게 좋았던가.

그 시원한 대포를 한 잔 죽 들이켰으면! 하고 생각이 간절하다.

'대포'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한방 놓으면 그 대포알에 뭐든지 녹는 것처럼 그렇게 지독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뭐가 그리 지독하냐 하면 안주도 없이 그 대신 술을 곱빼기가 넘도록 한 잔 가득히 부어 주는데, 아무리 모주 대장이라도 그놈을 몇 잔 먹으면 녹는다. 그러니 웬만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굉장한 대포일밖에.

그래서 대포인데 심가는 지금 이놈을 몇 방 맞고 녹아 보고 싶은 것이다.

마음껏 취하고 싶다. 자기의 신세를 생각하고 육자배기며 신고산타령을 한번 멋들어지게 흥얼거리고 남과 시비도 하고 괜히 쓸데없이 투덜거려 보고 싶어 죽겠다. (p.157-158)

 

닭이둥어리를 보니까 문밖에 있는 것이 안으로 옮기어 놓였고 위에 커다란 돌이 올라앉았다. 속에서는 꽤 큰 수탉 한 마리가 눈을 부라리고 있다. 딴은 이만치 험상스럽게 생긴 놈이고 보면 그까짓 서너 살쯤 난 아이들이야 넉넉히 얕잡아볼 것이다. 순한 강아지도 거지를 보면 업수이 여겨 짖고 양복을 안 입은 사람이면 말도 지랄을 해서 못 타는 세상이다. (p.165)

 

"네가 사람을 그렇게 업신여기니?"

이 말은 엊그저께 체면 공장에서 쫓기어 나오면서도 한 말이다. 

닭은 놀래어 구석으로 파들며 움츠린다. 그러나 소용없다. 심가는 이를테면 사람의 멱살을 잡은 셈으로 싸움닭의 기다란 모가지를 덥석 움켜쥔다.

"보아하니 이놈아, 닭이라도 너는 나이깨나 먹은 놈이 아니냐."

"그래, 어린아이하구 싸움을 해?"

닭이 푸덕거릴 때 별안간 뒤에서 술집 여편네의 떠드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어느 틈에 노랫가락에 정신이 없던 도화가 나와서,

"아, 심 주사 왜 그러세요. 우리 아버님께서 또 취하셨어."

하며 심가의 팔목을 잡아당긴다. 동네 아이들도 한 패가 와서 들여다보며 구경을 하고....(p.16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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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남(安懷南, 1909년 11월 15일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 겸 정치인이다. 

본관은 안성(安城). 본명은 안필승(安必承). 서울 출생. 개화기에 신소설 작가로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을 쓴 안국선(安國善)의 아들이다.
1924년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 입학, 3학년 때 아버지의 사망으로 불우한 청년기를 보냈다.
『개벽(開闢)』지의 사원으로 입사 후, 약 10년간 창작 생활에 전념하였다. 193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발(髮)」이 3등으로 입선되어 작가 생활이 비롯되었는데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 주목되었다.
그는 예술파의 작가로 평판되었고 당대 일본 문단의 신흥예술파를 적극적으로 소개(新東亞, 1932.11.)하기도 하였다. 전기에는 신변, 가정사를 제재로 한 심리 추구가 주조를 이룬 「연기(煙氣)」(1933)·「명상(瞑想)」(1937) 등을 발표했다.
후기에는 거의 개인적인 주변의 일을 다룬 작품으로, 「소년과 기생」(1937)·「온실(溫室)」(1939) 등이 거론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악마(惡魔)」(1935)·「우울」(1935)·「향기(香氣)」(1936)·「그날 밤에 생긴 일」(1938)·「겸허(謙虛) 김유정전」(1939)·「탁류(濁流)를 헤치고」(1940) 등이 있다.
이들 소설들은 그의 평론 「본격소설론-진실과 통속성에 관한 제언」(1937)에서 소설의 목표를 인생의 묘사, 특히 ‘인생의 단면’의 묘사에 있다고 한 것과 ‘나의 일생을 통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연애와 결혼과 문학’이라고 하였던 논리와 상통한다.
1944년 9월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 북구주 탄광으로 강제 징용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하였다.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회 소설부 위원장직을 맡아 활동하다가 월북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작품은 「폭풍(暴風)의 역사」(1947)와 「농민의 비애(悲哀)」(1948) 등으로 이를 통하여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였다.
1947년 월북 후, 별로 뚜렷한 작품 활동이 없었고 문단에서 빛을 잃고 말았다. 본래 프로문학 작가가 아니었던 그로서는 북한의 문학 이념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 채 문필 활동이 중단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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