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탐정 한국문학 24
목차
김원일
오마니 별
이상준
산고양이 재판
노일용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
안평원
물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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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 - 오마니 별 (2008년)
"조 씨 있는가?"
하고 부르는 소리가 길 아래쪽에서 들렸다. 전지 불빛이 마당 입구를 스쳐 갔다. 어스름은 늘 골짜기 아래에서부터 바람을 몰아왔고, 등성이를 타고 오른 바람이 펼친 치마폭인 듯 산을 흔들며 훑어 나갔다. 느릅나무와 개암나무가 스산스레 잎을 지웠다. 마당을 덮은 가랑잎이 아이들 줄 세우듯 가지런히 선 참깨 묶음을 비켜 언덕 아래로 쓸려 갔다. 전지 불빛이 마당까지 올라오자 불빛과 인기척을 알아챈 염소 우리의 염소들이 기척을 내며 수런댔다. 울은커녕 삽짝 조차 없는 마당으로 당주골 이장 황 씨가 들어섰다. 이장 손에 들린 전지 불빛이 툇마루에 나앉은 조 씨를 집어냈다.
"귀신 나오겠군. 왜 불도 안 켜고 우두커니 앉았어."
가는귀 먹은 조 씨라 황 이장이 큰 소리로 나무라곤, 마루로 올라와 손수 형광등을 켰다. 전구가 몇 번 깜박거리더니 흐릿한 빛을 냈다.
"전구를 갈아야겠군. 저녁은 먹었어?"
"암, 한술 떴지."
시무룩한 조 씨 말에 황 이장이 전기 코드가 꽂힌 전기밥통 뚜껑을 열었다. 두 끼니쯤 밥이 남아 있었다. 흠 투성이 낡은 두레상에는 치우지 않은 먹다 남긴 밥그릇에 찬이라곤 김치, 멸치조림, 새우젓이 고작이었다. 홀아비 노인의 지지리 궁상에 이장이, 나이도 있는데 이렇게 먹어서야 어떻게 힘을 써, 하곤 혀를 찼다. 저녁 찬으로 먹고 온 김치찌개며 된장국이 남았다며 처에게 가져다주라 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P.8-10)
"어머니는 한국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기에 그 상처가 너무 커 한국말은 일절 입에 담지 않아 지금은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십 년을 사셨는데, 그런 의미에서 영어도 마찬가집니다. 미군 비행기 폭격으로 어머니와 동생을 잃게 되었으니까요. 미국에 사는 동안 어머니 기도 제목이 뭔지 아십니까? 미국이 아닌,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전쟁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였답니다. 그 기도를 신이 허락했는지, 아버지를 만난 겁니다. 스위스는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 어를 공용하지만 영어를 쓰지 않으며, 영세 중립국으로 전쟁이 없는, 평화와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국가입니다. 어머니가 영어를 사용한 경우가 꼭 두 번 있었는데, 미국의 양부모님을 스위스로 초청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미국분들 은혜를 평생 잊을 수 없다고,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미국 한 가정이 어머니의 미래를 열어 주었으나, 손 시절 한국에서 받은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만은 우리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알기에 우리는 어머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p.78-7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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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우리가 피란 내려올 때, 지프차 타고 후퇴하던 미군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피란민 대열에서 장정들만 따로 골라내어 두 손을 들게 하여 한자리에 모아 놓고 불문곡절 총 쏘아 죽인 걸 기억합니까? 그때 미군들이 겁먹은 장정들을 거칠게 다루며 외친 말을 나는 똑똑히 들었습니다. 미국에 가서야 그 말뜻을 알게 되었는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인간 비하의 욕설이었습니다. 인민군이 민간복으로 바꾸어 입고 피란민 대열에 섞여 있다고, 그들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그런 짓을 저질렀지요. 그때 미군을 보았던 게 생각납니까?" (p.81-82)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전쟁범죄 -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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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조 씨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을 깜박이더니, 추위를 타듯 어깨를 움츠리고 온몸을 떨어 댔다.
"하늘에 별?"
"별 보구 내 뭐라 말했어?"
봇물이 터진 듯 안나 리 여사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국말이 터졌고 낮춤말을 썼다. 그네가 팔걸이 쥔 손에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휠체어가 흔들렸다.
"오마니 별, 저기 있어...."
허공을 보는 조 씨 입에서 꿈결이듯 그 말이 흘러나왔고, 눈동자가 뿌옇게 풀어졌다.
손수건으로 입을 막아 격한 감정을 다스리던 안나 리 여사의 비탄이 터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오마니 별을 알다니! 내 동생이 틀림없어!"
엄마가 숨을 거둔 겨울밤이었다. 폭격으로 반쯤 허물어진 빈집의 무너진 천장 사이로 밤하늘이 보였고, 찬 별들이 하늘 가득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헌 이불을 둘러쓰고 서로 껴안아 체온으로 밤을 새울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누이가 말했다.
"중길아,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 두 개를 봐. 아바지 별과 오마니 별이야. 천지 강산에 우리 둘만 남기구, 아바지가 오마니 데빌구 하늘에 가서 별루 떴어. 저기, 저기 오마니 별 보여?"
"중길아! 네 이름은 중길이야. 여기루 오라구?"
안나 리 여사가 떨리는 두 팔을 한껏 벌리고 외쳤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현 선생이 앞으로 나서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안나 리 여사 며느리는 뒤쪽에 따로 준비해 둔 한 아름 생화 꽃다발을 들고 활짝 웃으며 조 씨 쪽으로 걸어왔다. (p.8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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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金源一, 1942년 3월 15일 ~ )
대한민국의 소설가
1942년 3월 15일에 3남 1녀 중 장남으로 경상남도 김해에서 출생하였고, 경상남도 밀양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경상북도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생계가 곤란하게 되어 신문배달 등을 하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1964년에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년 뒤인 1965년 영남대학교 국문학과 3년에 편입하였고, 이후 1968년에 영남대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이후 1984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1년 소설 〈알제리아〉가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 후 유년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람과 강》, 《마당 깊은 집》 등을 집필하게 된다. 1967년 《어둠의 축제》가 《현대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는 등 주목받는 소설가가 되었다.
김원일은 일곱 살에 겪은 한국전과 월북한 아버지로 인한 결손가족의 애환을 이후 40여 년에 걸친 그의 소설사를 관통하는 문학적 화두로 작용시켰다. 담담한 문체에 절제된 감정으로 6.25의 비극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는 김원일은 굴곡진 현대사를 몸으로 겪은 한글세대의 문학이고 궁핍한 농촌에서 한국전쟁과 4.19 혁명을 체험하고 산업화를 이룩한 우리세대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할 줄 아는 작가로 열등의식에 사로잡혔던 사춘기와 가난에 대한 원망 등으로 초기 소설은 지나칠 정도로 사회 비판적인 시각이 우세했으나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중편이 많아지고 분위기도 대립에서 화해로 바뀐다.
그의 작품세계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다룬 초기의 실존적 경향의 소설 《늘푸른 소나무》(1993)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변화를 보였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한 민족분단의 비극을 집요하게 파헤쳐 대표적인 '분단작가'이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분단 현실을 보편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빼어난 소설로 승화시키며 분단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작가의 어린 시절과 6·25전쟁으로 인한 분단을 주제로 한 대표 작품으로 《어둠의 혼》(1973), 《노을》(1977), 《연》(1979), 《미망》(1982) 등이 있다. 특히 《어둠의 혼》은 당시 비평계의 관심을 끌었으며, 장편 《노을》에서는 한국전쟁의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한 역사적 현실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작가의 분단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본 아버지의 이야기인 《연》과 고부간의 갈등을 분단의 비극적 상황과 관련시켜 파악한 《미망》으로 이어지며, 장편 《불의 제전》(1983)과 《겨울골짜기》(1986)에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분단소설을 통하여 그는 분단의 논리적 해명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단의 상처와 그로 인한 고통스러운 삶을 추적하고 있다.
<마당깊은 집>, <깨끗한 몸>이 특히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김원일의 소설에 있어서 피난살이 모티프는 억세고도 끈질긴 생명력을 일러주고 있다.
김원일의 작품들 중 온전히 회상의 방법에 의거한 <마당깊은 집>, <깨끗한 몸>, <불망> 등이 90년대 의 한국인들에게 가져다준 울림의 깊이와 넓이를 생각하면 기억과 회상의 기능 및 방법을 긍정적으로 헤아린 논리를 가볍게 떨쳐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원일은 회억은 인간의 감상벽과 순수에의 본능을 가장 잘 자극하는 것이라는 이치를 <마음의 감옥>에서도 적절히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의 감옥>에서는 김원일이 그 이전의 소설들에서 반복해서 취한 중요한 모티프 몇 가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전쟁 통에 아버지가 죽었다든가 젊어서부터 아버지의 역할까지 떠맡았던 어머니는 강한 느낌을 주었다든가 형제간이 서로 다른 이념이나 편에 선다든가 하는 반복모티프들이 있다. [아버지의 부재]라는 모티프에 대한 김원일의 애착은 남다르다. 그의 소설들에 있어서 아버지의 죽음, 그로 인한 부성의 상실이라는 모티프는 가장 원인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서 어머니는 강하고 엄하다는 모티프와 동생을 향한 형의 뜨거운 연민이라는 모티프가 빚어지게 된 것이다.
철저하게 대리부의 역할을 해내는 어머니를 통해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런가 하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 이념과 행동방식을 모성애라는 용광로 속에서 다 녹여 버리고 있는 어머니를 통해 우리 시대의 비극적 단면을 헤아리게 된다.
김원일의 소설은 그 특수한 배경으로 인해 분단문학이라는 독특한 지평을 획득하며 많은 연구가 논의되었지만 그러한 분단 상황의 중심에 성장하는 인물이 등장했음은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성장하는 인물은 일인칭 유년기 화자로 설정되었으며 이는 작가의 자전적 체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껴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성장 주체의 소통과 정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아버지의 부재 혹은 유년기 서술자에게 ‘이상적이지 않은’아버지상을 정리하며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 맡게 된 어머니의 모습을 살폈다. 이때 어머니는 부재하는 아버지와 복합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가부장 중심의 가정에서 사라진 아버지 역할은 곧 장남인 유년기 화자에게 넘겨지고, 장자로의 역할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서술자의 성장을 살필 수 있었다.
김원일의 작품은 그동안 주로 분단문학, 가족사 소설 등으로 다루어져 왔다. 6.25 전쟁이라는 일관된 소재로 탄생한 그의 작품은 분단문학이라는 독특한 지평을 획득했으며 전쟁과 연결된 시대적 배경 안에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가족들의 이야기는 특히 작품 내 등장인물에 의해 전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때 화자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즉 어린소년은 분단의 시대에 가족의 틀 안에서 성장하는 인물인 것이다. 이러한 특정으로 인해 그의 작품세계는 흔히 ‘성장’이라는 모티프에 의해 일관된 체제를 이루고 있다고도 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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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깊은 집 - 김원일 (문학과 지성사)
노을 - 김원일 (문학과 지성사)
마음의 감옥 - 김원일 (문이당)
미망 - 김원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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