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 오만과 편견 (1813년)
부유한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그런 남자가 새로 이사를 오게 되면, 그 주위의 집안들은 이런 진리를 너무나도 확고하게 믿는 나머지, 그가 어떤 심정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오는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그를 자기 집안 딸들 중 누군가가 차지하게 될 재산으로 여기곤 한다.
"아유, 여보." 어느 날 베넷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네더필드 파크가 드디어 세줄 사람을 찾았다는 소문 들었어요?"
베넷 씨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됐대요." 베넷 부인이 말했다. "롱 부인이 방금 들렀다가 그 이야기를 몽땅 해주고 갔어요."
베넷 씨는 대꾸하지 않았다.
"누가 오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베넷 부인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말하고 싶으면 해요. 듣기 싫다고는 안 할 테니까."
그 정도 권유면 충분했다.
"글쎄, 당신도 좀 알아둬야 해요. 롱 부인이 그러는데, 네더필드 파크에 올 사람이 잉글랜드 북부 출신의 부자 청년이래요. 월요일에 사두마차를 타고 집을 보러 왔다가 마음에 쏙 든다면서 모리스 씨하고 그 자리에서 당장 계약했대요. 미가엘 축일 전에 입주할 거고, 하인들은 다음 주말이면 들어올 거래요."
"이름이 뭐랍디까?"
"빙리라네요."
"결혼한 사람인가? 아니면 미혼?"
"어머나, 당연히 미혼이죠! 돈 많은 총각이라고요. 1년 수입이 사오 천 파운드나 된대요. 우리 딸들한테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어떻게 말이오? 그게 우리 딸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소?"
"이것 보세요. 베넷 씨. 당신은 잠 사람을 피곤하게 하네요! 우리 딸 중 하나랑 결혼시키고 싶어서 그런다는 걸 알면서 왜 그래요?" 베넷 부인이 말했다.
"그 사람이 그걸 노리고 여기 온다는 거요?"
"노린다고요?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애들 중 하나랑 사랑에 빠질 가능성은 다분하죠. 그러니까 그 사람이 오면 당신이 곧장 그 집에 찾아가 봐야 해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소. 당신하고 애들은 가도 좋아요. 아니, 애들만 보내는 게 더 좋겠소. 당신이 애들보다 더 예쁘니 빙리 씨가 당신을 맘에 들어할지도 모르잖소."
"그런 말 말아요. 뭐 나도 한때 미모를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 신통할 게 없죠. 나도 알아요. 그리고 다 큰 딸이 다섯이나 있는 여자라면, 자기 미모에 대한 생각일랑 접어야죠."
"하지만 그건 따로 생각할 만한 미모가 없는 여자들의 경우가 아닐까?"
"어쨌거나 여보. 빙리 씨가 이사 오면 꼭 가서 인사해야 해요!"
"장담은 못하겠구려."
"우리 딸들을 좀 생각해 봐요. 애들 결혼에 얼마나 좋은 기회냐고요. 윌리엄 경과 루카스 부인도 그 집에 인사 가기로 마음먹었다는데, 무엇 때문이겠어요? 알다시피 그 집 사람들은 새로 이사 온 집에 찾아가는 일이 거의 없잖아요. 당신이야말로 정말 가봐야 해요. 당신이 안 가는데 우리끼리 찾아갈 수는 없는 거라고요."
"그렇게까지 구애받을 건 없을 것 같구려. 굳이 내가 안 가도 빙리 씨는 당신하고 우리 딸들을 아주 반겨 맞을 거요. 그리고 내가 당신 편에 몇 자 적어 보내리다. 우리 딸 누구를 골라잡든 그 결혼은 흔쾌히 승낙한다고 말이오. 물론 둘째 리지를 특별히 추천해야겠지만."
"제발 그러지 좀 마요. 리지가 다른 아이들보다 나을 게 뭐가 있어요? 인물은 제인의 반도 못 따라오고 리디아만큼 싹싹하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늘 그 애 편만 들죠."
"다른 애들은 딱히 추천할 만한 구석이 없지 않소." 남편이 대답했다. "그 애들은 다른 집 딸들하고 똑같이 멍청해요. 하지만 리지는 예리한 구석이 있지."
"여보, 어떻게 자기 아이들을 그렇게 깎아내릴 수 있어요? 당신은 나를 화나게 하는 게 재미있나 봐요. 내 예민한 신경을 도통 헤아려줄 줄 모른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부인. 난 당신의 신경을 더없이 존중한다오. 내 오랜 친구인걸. 20년도 넘게 당신에게 신경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으니까."
"아! 당신은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그 고통을 극복하고 오래오래 살아서, 연수입 4천 파운드의 젊은이들이 우리 동네에 오는 걸 많이 오는 걸 많이 보았으면 싶소"
"그런 사람이 스무 명이 와봤자 뭐해요. 당신이 찾아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데."
"걱정 마시오. 스무 명이 되면 내 모조리 찾아가리다."
베넷 씨에게느 예리한 지성, 냉소적인 유머, 내향적인 기질, 충동적인 변덕이 매우 기묘하게 뒤섞여 있어서. 부인이 그와 함께 산 23년도 그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에 부인의 정신세계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이해력은 보잘것없고, 견문도 좁고, 성미는 종잡을 수 없었다. 불만에 차면 그녀는 그게 자신이 신경과민을 앓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베넷 부인의 일생의 과업은 딸들을 출가시키는 것이고, 인생의 낙은 이웃을 방문해서 소문을 듣고 퍼뜨리는 것이었다. (p.9-13)
빙리 씨는 잘 생기고 신사다웠다. 호감 가는 표정에 태도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누이들도 상류층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세련된 여성들이었다. 매형인 허스트 씨는 그저 차림새만 신사다울 뿐이었지만,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 씨는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품위 있는 태도로 온 무도회장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가 입장하고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 그의 연간 소득이 1만 파운드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남자들은 그의 풍채가 훌륭하다고 했고, 여자들은 그가 빙리 씨보다 훨씬 잘생겼다고 단언했다. 이렇듯 그는 무도회 중반쯤까지는 많은 이들에게서 찬사를 받았지만, 고약한 태도로 인해 급격히 인기가 떨어졌다. 아주 오만하고 잘난 척하며 한없이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가 소유한 더비셔의 광대한 영지를 모두 들이댄다 해도, 그 거만하고 불쾌한 낯빛과, 친구인 빙리 씨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품성이라는 사실을 무마힐 수는 없었다. (p.18-19)
"아, 언니는 사람을 너무 쉽게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결점을 잘 못 봐. 언니 눈에는 온 세상이 다 착하고 상냥해. 나는 지금까지 언니가 누구 흉을 보는 걸 들은 적이 없어."
"섣불리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긴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
"나도 알아. 그러니까 놀라운 거지. 언니처럼 분별 있는 사람이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단점을 그렇게 잘 보지 못한다는 게 말이야! 착한 척하는 건 쉬워. 그런 사람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어. 하지만 가식이나 다른 속셈 없이 착한 것, 사람들 성격에서 좋은 점을 더 좋게 보고 나쁜 점은 이야기하지 않는 것, 그건 언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까 언니는 그 사람 누이들도 좋지? 그 여자들 태도는 자기 오라비한테 못 미쳐."
"처음에는 그래 보여. 하지만 그 여자들도 대화해 보면 기분이 좋아져. 빙리 양은 오빠랑 같이 살면서 집안일을 돌볼 거래. 내가 크게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우리 모두 빙리 양을 좋은 이웃으로 여기게 될 거야."
엘리자베스는 말없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렇다고 수긍하지는 않았다. 무도회에서 그들이 보인 행동은 전반적으로 사람들을 기분 좋게 배려하려는 태도가 아니었다. 언니보다 조금 더 예리하고 조금 덜 고분고분한 데다 남에게 관심을 받아도 판단력이 흔들리지 않는 엘리자베스는, 그 여자들에게 호의를 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기품 있는 숙녀들인 빙리 자매는 기분이 좋을 때는 다정하고 마음이 내키면 호의적이었지만 오만하고 도도했다. 인물도 좋고, 런던에 새로 건립되기 시작한 기숙 여학교 중 한 곳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2만 파운드의 재산이 있었지만, 소득에 비해 소비가 지나쳤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탓에 자신들을 대단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우습게 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잉글랜드 북부의 존경받을 만한 집안 출신이었고, 그 사라실은 오라비와 자신들의 재산이 장사를 통해 취득한 것이라는 사실보다도 기억 속에 더 중요하게 새겨져 있었다. (p.24-25)
<각주>
전통적인 상류층은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였다. 빙리 가 사람들은 상업을 통해 신분상승을 이룬 계급이기 때문에, 재산을 유지하고 그에 상응하는 권위와 덕망을 얻고자 토지를 사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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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럽의 형성 - 주경철, 이영림, 최갑수 공저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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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번에서 가볍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베넷 가와 각별한 가족이 살았다. 윌리엄 루카스 경은 본래는 메리턴에서 상업에 종사했는데, 그를 통해 상당한 재산을 모으자 시장 재직 시절 왕에게 청을 올려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런 명예는 그에게 어쩌면 지나칠 만큼 크게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그는 작위를 받자 사업과 자신이 살던 조그만 상업 도시에 혐오를 느껴서, 두 가지를 모두 버리고 메리턴에서 1마일 정도 떨어진 집으로 이사했다. 스스로 루카스 로지라고 명명한 그 집에서 그는 높은 지위를 기꺼이 누리고, 직업에 구애받는 일 없이 온 세상을 상대로 자신의 정중함을 발휘하는 데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자랑스러워했지만 남을 깔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다. (p.27)
<각주>
윌리엄 경은 계급 상승 기제에 대한 제인 오스틴의 신랄하고 풍자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상인이었던 윌리엄 경은 지역 유지로서 왕실의 공인을 받았고, 이 일을 계기로 '사이비 신사 계급'의 자부심을 갖게 된다.
"리지한테 그 사람의 몰상식한 행동을 생각나게 해서 화를 돋우지 말아 주렴. 그 사람은 정말 불쾌한 인간이라 그런 사람에게 호감을 산다면 오히려 그게 더 불상한 일이야. 롱 부인이 어젯밤 그 사람 옆에 30분을 앉아 있었는데, 입 한 번 열지 않았다더라."
"정말이에요, 어머니? 잘못 들으신 거 아니에요?" 제인이 말했다. "다아시 씨가 롱 부인께 말하는 걸 제 눈으로 분명히 봤는데요."
"아, 그건 부인이 참다못해서 네더필드가 어떠냐고 물으니까 대답을 안 할 수 없었던 거야. 하지만 부인 말로는 말을 시켜서 언짢은 것 같았다더구나."
"빙리 양한테 들었는데 다아시 씨는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니면 말을 별로 안 한대요." 제인이 말했다. "친한 사람들한테는 아주 다정하다네요."
'믿을 수 없어! 그렇게 다정하다면 롱 부인하고 대화를 했어야지. 하지만 대충 뭔지는 알 것 같구나. 사람들은 모두 그자가 오만으로 똘똘 뭉쳤다고 해. 아마 롱 부인이 마차가 없어서 임대 마차로 무도회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지."
"그 사람이 롱 부인하고 대화하지 않은 건 별로 상관없어요." 루카스 양이 말했다. "하지만 일라이지하고 춤을 추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예요."
"내가 리지 너라면 다음번에 그 사람하고는 절대 춤추지 않을 거다." 베넷 부인이 말했다.
"그 사람하고는 절대, 영원히 춤추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어머니."
"그런데 그 사람이 오만한 게 저는 다른 사람 경우보다 별로 화가 안 나요." 루카스 양이 말했다. "왜냐면 이유가 있거든요. 그렇게 인물도 잘나고 집안이며 재산이며 모든 게 최고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높게 볼 수밖에 없잖아요.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제가 볼 때 그 사람은 오만할 권리가 있어요."
"그렇긴 해."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의 오만을 용서할 수 있었을 거야. 나 자신이 그렇게 모욕당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야."
"오만은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단점이지." 견실한 사고를 자랑하는 메리가 말했다. "언젠가 읽었는데, 오만은 정말 널리 퍼져 있고, 인간 본성은 특히나 그러기 쉽게 되어 있어. 우리 중에서 자신이 실제로 가졌거나 가졌다고 상상하는 속성들에 흡족해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 허영심과 오만은 흔히 비슷한 뜻으로 쓰이지만 별개의 것이야. 오만하지만 허영은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 오만은 자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뿌리를 두고, 허영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지."
"내가 다아시 씨처럼 돈이 많다면 오만하건 말건 상관 안 해요." 누나들과 함께 온 루카스 가의 사내아이가 말했다. "폭스하운드 개를 한 무리 키우면서 날마다 포도주를 한 병씩 마실 거예요."
"그건 너무 많이 마시는 거야." 네넷 부인이 말했다. "내가 그 꼴을 보면 당장 술병을 치워버릴 거다!"
소년은 그러면 안 된다고 했고, 부인은 꼭 그렇게 할 거라고 했다. 둘의 옥신각신은 자리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p.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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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 -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최홍규 옮김, 동서월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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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가 볼 때는 제인 역시 처음부터 그에게 각별히 호감을 품었으며, 어떻게 보면 이제 사랑에 푹 빠졌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제인은 강렬한 감정이 차분한 태도와 잘 결합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성품이라서, 오지랖 넓은 사람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친구 루카스 양에게 이런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런 경우에는 사람들 눈을 속이는 게 편할지도 몰라." 샬럿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를 방어하는 게 불리할 때도 있어. 여자가 자신의 애정을 상대방에게까지 감쪽같이 숨기면, 그 사람을 잡을 기회를 놓칠지도 몰라. 그렇게 되고 나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을 모른다는 건 별로 위안이 되지 않지. 애정 관계는 대부분 감사하는 마음이나 허영심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대로 내버려 두는 건 별로 효과적이지 않아. 시작은 가볍게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약간의 호감은 자연스러워. 하지만 상대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도 진심으로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드물어. 대개의 경우 여자 쪽은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호감을 표현하는 게 좋아. 빙리가 제인을 좋아하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 하지만 제인이 빙리 씨에게 힘을 실어주고 확신을 주지 않으면 그저 좋아하는데서 그칠 수도 있다는 거지."
"언니는 이미 힘을 실어주고 있어. 자기 성격이 허락하는 한에서 말이야. 나도 언니의 호감을 알아차렸는데, 그 사람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
"하지만 일라이자, 그 사람은 너만큼 제인의 성격을 잘 알지는 못한다는 걸 기억해."
"여자가 남자에게 호감을 품었고 그걸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으면, 남자가 당연히 알아차리지 않겠어?"
"서로 자주 만난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빙리하고 제인이 꽤 자주 만난다고 해도 함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아. 그리고 언제나 여러 사람 속에 섞여서 만나니까. 그 시간 내내 둘이 대화를 나눌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제인은 빙리의 관심을 붙잡아 둘 수 있는 30분짜리 자투리 시간들을 잘 활용해야 해. 그 사람 마음을 확실하게 잡아두면, 그때는 원하는 만큼 사랑할 수 있게 될 거야."
"좋은 방법이네."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오직 결혼을 잘하는 게 목적이라면 말이지. 내가 돈 많은 남편, 아니 아무 남편이라도 얻으려고 결심했다면, 나도 기꺼이 그 방법을 따르겠어. 하지만 제인의 감정은 그렇지 않아. 언니는 결혼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행동하지 않아. 아직까지 언니는 자기가 빙리 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고 그게 합리적인 건지 어쩐 건지도 몰라. 만난 지 이제 겨우 보름이니까. 메리턴 무도회에서 그 사람하고 춤을 네 곡 추었고, 오전에 그 사람 집을 방문한 적이 한 번 있고, 그 뒤로 정한 모임이 네 번 있었어. 그 정도로는 그 사람 성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
'네가 말하는 식으로야 안 되겠지. 제인이 같이 식사만 했다면 그 사람 식성밖에 더 알겠어? 하지만 두 사람이 네 번 식사하면서 나흘 저녁을 함께했다는 게 중요해. 그 정도는 나름대로 상당한 시간이야. 많은 일이 가능하다고."
"그래, 그 나흘 저녁 동안 두 사람은 자기들이 카드놀이 중에서 코머스보다 벵툉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지. 하지만 다른 중요한 특성들은 그다지 많이 알게 된 것 같지 않아."
"나는 진심으로 제인이 잘됐으면 좋겠어." 샬럿이 말했다.
"그리고 제인이 내일 당장 그 남자하고 결혼한다고 해도 1년 동안 서로를 알아보고 결혼한 것만큼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결혼 생활에서 행복이란 순전히 운에 달렸어. 서로의 기질을 속속들이 안다거나 원래부터 아주 비슷했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건 아냐. 기질은 세월이 지나면 계속 달라져서 결국은 서로 부딪히게 되지. 일생을 함께 보낼 사람이라면 결점은 되도록 모르는 게 좋아."
"재미있는 말이긴 하지만 샬럿, 그런 건 바람직하지 않아. 너도 그렇다는 걸 알 거고, 말은 그렇게 해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을걸."
엘리자베스는 제인에 대한 빙리 씨의 관심을 관찰하는 데 몰두해 있어서, 그의 친구가 자신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p.31-34)
베넷 씨의 재산은 연간 2천 파운드가 나오는 영지가 거의 전부였는데, 안타깝게도 이 재산은 남자 후손이 없을 경우 어느 먼 친척에게 한사상속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베넷 부인의 재산은 부인의 처지로서는 상당했지만, 남편의 재산이 사라졌을 때 그 부족분을 메울 만큼은 아니었다. 메리턴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부인의 아버지는 베넷 부인에게 4천 파운드를 남겼다. (p.40)
<각주>
한사상속(限嗣相續)이란 재산을 물려줄 때 피상속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음 세대의 상속인을 미리 지정해 놓은 것으로 몇 대가 내려가도 재산을 집안에 묶어두기 위한 것이다.
베넷 가의 토지는 '상속이 남자로 한정된' 한사상속 재산이다. 재산이 장남에게만 상속되고 아들이 없을 경우 현 소유자의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이 상속하도록 하는 한사상속은 당시 널리 행해진 관습법이다.
<베넷 가의 여인들은 생존을 위해서 남자가 있어야 한다. 남자만이 그들 가족의 재산을 상속하여 가족의 생계를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없으면 가족자체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딸들에게 남자를 구해주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베넷 부인의 한탄은 베넷 가족 위에 드리워져 있는 한사상속의 불안한 환영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남자를 기다리는 것이 삶 자체인 것이다.
또한 여자에게 재산상속권을 부여하지 않는 한사상속의 그늘에 있는 엘리자베스의 집은 ‘롱번에 있는 집’이라고 불려질 뿐 펌벌리나 로징즈 같이 저택에 대한 고유의 이름이 없다. 한사상속으로 없어질 집이기 때문에 저택이름조차 없는 것이다.
이렇듯 베넷가의 여인들은 당대의 영국의 여인들을 표상하는 상징적 인물들이다.>
어느 날 아침, 장교들에 대한 달들의 수다를 듣고 난 뒤 베넷 씨가 냉랭하게 말했다.
"너희가 말하는 모습을 보니,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멍청한 처녀는 너희 둘인 것 같구나.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만 지금 보니 아주 확실하다."
캐서린은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디리아는 아버지 말에 아랑곳없이 카터 대위라는 사람을 계속 칭찬하며, 그가 내일 런던으로 갈 예정이라서 오늘 안에 그를 꼭 봐야 한다고 떠들었다.
"여보, 어쩜 그럴 수가, " 베넷 부인이 말했다. "어떻게 자기 아이들더러 멍청하다고 할 수 있나요? 나는 다른 사람 자식은 흉보고 싶을지언정 내 자식은 그렇게 못해요."
"우리 아이가 멍청하다면, 나는 언제라도 그걸 제대로 알고 있는 부모가 되고 싶소."
"그야 그렇죠, 하지만 사실 우리 애들은 다 똑똑하다고요!"
"우리가 생각이 다른 부분은 다행히도 이거 하나뿐인 것 같군. 우리 생각이 완벽하게 일치하기 바랐지만, 당신과 달리 나는 우리 넷째와 다섯째가 보기 드물게 멍청하다고 생각하오."
"아유 여보, 어린 여자애들한테 부모 같은 분별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요. 이 아이들도 우리 나이가 되면 장교들에게 아무 관심 없을 거예요. 나도 군인을 아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아직도 속으로는 좋아하네요. 연 수입이 5천에서 6천 파운드쯤 되는 멋진 대령이 우리 딸애 한 명과 결혼하길 원한다면 난 거절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며칠 전에 윌리엄 경의 집에서 본 포스터 대령은 제복이 아주 잘 어울리던걸요." (p.42-43)
엘리자베스는 제인이 걱정되어서 마차를 쓰지 못하더라도 직접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말을 탈 줄 몰랐기 때문에 걸어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엘리자베스가 걸어서 다녀오겠다는 결심을 밝히자, 베넷 부인이 소리쳤다.
"그렇게 멍청한 소리가 어디 있니? 길이 얼마나 엉망인데! 그 집에 도착할 때면 네 꼴이 말이 아닐 게다."
"언니를 보러 가는 건데요, 뭘. 문제없을 거예요. 그거면 됐죠."
"리지, 지금 마차를 타고 가고 싶다는 뜻이냐? 나한테 말을 부르라는 거니?" 아버지가 말해다.
"아뇨, 저는 걸어가도 괜찮아요.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겨우 3마일이잖아요. 정찬 때까지는 돌아올게요."
"제인 언니를 생각하는 언니의 애정 어린 마음은 높이 살 만해." 메리가 말했다. "하지만 감정의 충동은 이성의 안내를 받아야 해. 그리고 행동과 노력은 언제나 필요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
"메리턴까지는 우리가 같이 가줄게." 캐서린과 리디아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동행을 허락했고, 세 아가씨는 함께 떠났다. (p.46)
5시가 되자 빙리 자매는 옷을 갈아입으러 물러갔고, 엘리자베스는 6시 30분에 정찬 호출을 받았다. 식사 자리에서는 환자의 차도를 묻는 예의 바른 질문이 쏟아졌다. 엘리자베스는 그 가운데서 빙리 씨가 진심으로 깊이 걱정하고 있음을 알아보고 기쁘긴 했지만, 그다지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제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빙리 자매는 정말로 마음이 아프다며, 심한 감기라니 너무 놀랍고 끔찍하다고, 자신들은 몸 아픈 게 너무나 싫다는 말을 서너 번 되풀이했다. 제인에 대한 관심은 그러고는 끝이었다. 눈앞에 없을 때 그들이 제인에게 그렇게 무관심한 것을 보자, 엘리자베스는 애초에 품었던 그들에 대한 미움이 되살아났다. (p.49)
정찬이 끝나자 엘리자베스는 곧장 제인에게 돌아갔고, 그녀가 자리를 떠나기 무섭게 빙이 양은 그녀를 험담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가 무례하고 품위 없고 오만불손하며, 대화할 줄도 모르고,, 맵시도 부족하고, 취향도 형편없고 예쁘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허스트 부인도 동감한다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먼 길을 잘 걷는다는 것밖에는 내세울 게 없는 것 같아. 오늘 아침 여기 불쑥 나타났을 때 그 모습이라니, 평생 못 잊을 거야. 거의 정신이 나간 것 같았어."
"정말이야, 언니. 나도 표정을 감추느라 너무 힘들었어. 여기까지 왔다는 그 자체가 황당하지! 자기 언니가 감기에 걸렸다고 시골길을 달려오다니.... 사납게 헝클어진 머리는 또 어찌나 지저분하던지!"
"속치마는 또 어떻고, 혹시 봤니? 치맛단 위 6인치까지 진흙 투성이더라. 가려보겠다고 드레스를 아래로 잡아 내렸던데, 전혀 소용없었어."
"누나 눈이 정확했는지 몰라도, 나는 전혀 그런 생각 못 했어." 빙리 씨가 말했다. "오늘 아침 조찬실에 들어올 때, 엘리자베스 베넷 양은 아주 좋아 보였어. 진흙투성이 속치마 같은 건 보이지도 않던데?"
"다아시 씨는 보셨겠죠? " 빙리 양이 말했다. "당신 여동생이 사람들에게 그런 꼴을 보이며 돌아다니는 건 싫으시겠죠?"
"당연합니다."
"3마일, 아니 4마일, 5마일, 몇 마일이건 발목이 빠지는 진흙길을, 그것도 혼자, 걸어오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내 눈에는 자립심을 역겹게 과시하려는 태도 같아. 그런 식으로 예법을 무시하는 건 시골 마을에서는 흔한 일이겠지."
"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따뜻한 행동이었어." 빙리 씨가 말했다.
"다아시 씨." 빙리 양이 반쯤 속삭이듯 말했다. "그 여자의 맑고 고운 눈을 칭찬하시더니, 이 사건 때문에 영향을 받으셨을까 걱정이네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먼 길을 걸은 덕분인지 눈빛이 더 반짝이더군요." 그의 대답에 짧은 침묵이 이어졌고, 잠시 후 허스트 부인이 입을 열었다.
"나는 제인 베넷은 정말 칭찬하고 싶어, 아주 사랑스러운 아가씨고, 결혼도 잘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그 지경이고, 일가친척도 별 볼일 없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
"제인의 이모부가 메리턴에서 사무 변호사로 일한다고 언니가 그러지 않았었나?"
"그래, 외숙부도 한 명 있는데, 런던 칩사이드 근처에 산대."
"훌륭한데?" 빙리 양이 말했고, 자매는 웃음을 터뜨렸다.
"칩사이드 전체가 베넷 양 숙부들로 가득하다고 해도 저 두 아가씨의 매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 빙리 씨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 아가씨들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자와 결혼할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들겠지." 다아시가 대꾸했다.
빙리 씨는 이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두 누이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한동안 제인의 보잘것없는 친척들과 사회적 배경을 두고 신나게 비웃어댔다. (p.50-52)
"난 정말 신기해." 빙리가 말했다. "아가씨들이 그렇게 예술적 교양을 쌓으려면 끈기 있게 계속 연습해야 할 텐데, 세상 아가씨들 모두가 교양이 높으니 말이야."
"모두가 그렇다니! 오빠, 대체 무슨 뜻이야?"
"그렇잖아. 여자들은 모두 그림 그리기, 수놓기, 뜨개질 같은 걸 할 줄 알더라고. 나는 그런 걸 못하는 아가씨를 본 적이 거의 없어. 모르는 아가씨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아가씨가 교양이 높다는 말을 듣지 못했던 적도 없고."
"자네가 별 볼일 없는 교양의 목록을 제대로 말했군." 다아시가 말했다. "겨우 손뜨개질이나 가림막 장식밖에 할 줄 모르는 여자들한테 많은 사람들이 교양 있다는 말을 쓰지. 하지만 세상 아가씨들이 모두 교양이 높다는 자네의 판단에는 동의할 수가 없군. 내가 아는 여자들 중에서도 정말로 교양이 높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니까."
"제 생각도 그래요!" 빙리 양이 말했다.
"그렇다면 다아시 씨가 교양이 높다고 생각하시는 여성은 아주 능력이 뛰어나야겠네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렴, 당연하죠." 그의 충실한 조수인 빙리 양이 소리쳤다. "정말 교양이 높다는 말을 들으려면 평범한 수준을 월등하게 뛰어넘어야 하죠. 그 말에 걸맞으려면 음악, 노래, 그림, 춤, 외국어에 능통해야겠지요. 거기다 태도나 걸음걸이, 목소리나 말투, 어법도 잘 갖추어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그 교양이라는 말은 의미가 반감될 거예요."
"그 모든 것을 갖출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독서로 정신을 고양해 내면의 깊이를 쌓아야 하겠지요." 다아시 씨가 덧붙였다.
"교양이 높은 여성은 고작 손꼽을 정도만 아신다는 게 당연하네요. 사실 한 분이라도 아시는지 모르겠는걸요."
"교양이 높은 여성이 전혀 없다고 의심할 만큼 같은 여성을 과소평가하는 건가요?"
"저는 그런 여자를 본 적이 없어요. 그런 재능, 그런 심미안, 그런 성실함과 열성과 우아함과 품위를, 다아시 씨 말대로 전부 겸비한 경우를요."
허스트 부인과 빙리 양은 교양이 높은 여자가 없다는 의심은 부당하다고, 자신들은 그런 여자를 많이 안다고 주장했다.
그때 허스트 씨가 좀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모두가 카드놀이에 집중하지 않자 부아가 치민 것이다. 이렇게 대화가 중단되자 엘리자베스는 곧 방을 나갔다. 엘리자베스의 등 뒤로 문이 닫히자 빙리 양이 말했다.
"일라이자 베넷은 남자들 앞에서 다른 여자를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내세우는 그런 여자로군요. 실제로 그 작전이 통해서 넘어가는 남자들도 많겠지요. 하지만 제가 볼 때 그건 얄팍한 수작이고 저열한 수법이에요."
"물론입니다." 빙리 양이 염두에 두고 말한 상대인 다아시 씨가 대답했다. "여자들이 이따금 남자들 사로잡으려고 사용하는 기술은 모두 저열한 데가 있지요. 그런 잔꾀들은 무엇이든 천박합니다."
빙리 양은 이 대답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아서 대화를 진척할 수 없었다. (p.55-57)
"저도 그러실 거라 생각했어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제 마음을 이해하신다는 뜻인가요?" 그가 그녀를 돌아보며 외쳤다.
"아, 네! 그럼요. 아주 잘 이해해요."
"칭찬이면 좋겠습니다만, 제 마음이 이렇게 쉽게 들통난다니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그건 그냥 그런 거예요. 속을 알기 힘든 복잡한 성격과 빙리 씨 같은 성격 중, 반드시 어느 한쪽이 더 좋은 거라고 규정할 수는 없어요."
"리지,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집에서처럼 멋대로 구는 거니?" 베넷 부인이 말했다.
빙리가 얼른 엘리자베스의 말을 이어갔다. "엘리자베스 양이 사람의 성격을 연구하시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아주 흥미로운 연구일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복잡한 성격이 더 재미있긴 해요. 복잡한 성격이 적어도 그런 장점은 있네요."
"시골에서는 그런 연구를 할 만한 대상을 충분히 찾기 힘들 텐데요." 다아시가 말했다. "가까운 사람들도 한정되어 있는 데다가 변화도 드무니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자체가 자주 변하기 때문에 언제나 관찰할 거리가 생기지요."
"맞아요. 시골도 도시만큼이나 변화가 많답니다." 시골에 대한 다아시 씨의 언급에 기분이 상한 베넷 부인이 소리쳤다.
모두가 크게 놀랐고, 다아시는 베넷 부인을 잠시 바라본 뒤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부인은 다아시를 완전히 꺾었다고 여기고 승리감에 들떠 말을 이었다.
"저는 런던이 시골보다 특별히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어요. 상점이나 공공시설은 많지만요. 시골이 훨씬 더 쾌적하고 살기 좋은데. 그렇지 않아요, 빙리 씨?"
"저는 시골에 있으면 시골을 떠나고 싶지 않고, 런던에 있을 때는 런던을 떠나기 싫고, 역시 그렇습니다." 빙리가 대답했다.
"각각 좋은 점이 있으니까. 저는 어디서건 똑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답니다."
"그건 빙리 씨가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요. 하지만 저 신사분은," 부인이 다아시를 보면서 말했다. "시골을 업신여기시는 것 같네요."
"어머니, 그건 오해예요." 엘리자베스가 어머니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다아시 씨 말씀은 그 뜻이 아니에요. 시골에서는 도시만큼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거고, 그건 틀린 말은 아니죠."
"그래, 누가 아니랬니?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 사람 만나기가 힘들다니! 우리 동네만큼 사람이 많은 곳도 드물어. 우리는 스물네 가족과 정찬을 하잖니." (p.59-6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아들러 성격 상담소 - 기시미 이치로 (이영미 옮김, 생각의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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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넷 양은 제가 밝히지도 않은 견해를 제 의견이라고 하시면서 설명을 요청하시는군요. 하지만 설령 제 말이 그렇다 해도, 기억해 두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예에서 빙리에게 떠나지 말라고 부탁한 친구는 자기 소망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래야 할 마땅한 이유는 하나도 들지 않고서요."
"친구의 설득에 기꺼이, 쉽게 응하는 것도 다아시 씨에게는 부정적인 일이군요."
"친구 말이라고 해서 근거 없이 무조건 따른다면, 바라는 쪽이나 들어주는 쪽이나 현명하다고 하기는 힘들겠지요."
"다아시 씨는 우정과 사랑의 힘을 무시하는 것 같네요. 친구에 대한 배려와 애정 때문에 이유를 따지지 않고 기꺼이 부탁을 들어주는 경우도 많아요. 이건 다아시 씨가 예로 드셨던, 빙리 씨의 경우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 경우에는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난 다음 그 행동이 신중했는지 따져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친구 사이에, 한 친구가 상대방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결심을 바꾸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상대방이 그 이유를 묻지도 않고 일단 응했다면, 다아시 씨는 그를 좋지 않게 보실 건가요?"
"이 이야기를 계속하려면, 먼저 그 부탁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두 사람이 얼마나 친밀한 사이인지를 좀 더 정확하게 규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래요." 빙리가 소리쳤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죠. 쌍방 간의 키와 체격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이 논의에서 그 부분은 엘리자베스 양 생각보다 중요할 테니까요. 다아시가 저보다 이렇게 키가 훨씬 더 크지 않았다면, 저는 이 친구를 지금의 절반만큼도 존경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아시는 제게 가장 위엄 있고 두려운 존재랍니다. 어떤 상황과 장소에서는 더 그렇지요. 다아시가 아무 할 일이 없는 일요일 저녁, 집에 있을 때 특히나 더 그렇습니다."
다아시 씨는 미소 지었지만, 엘리자베스는 그가 살짝 기분이 상한 걸 알아차리고 웃음을 자제했다. 빙리 양은 다아시 씨가 모욕받은 데 분개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오빠를 나무랐다.
"빙리, 자네의 의도는 알겠네." 친구가 말했다. "논쟁하기 싫으니까 이 이야기를 어떻게든 끝내려는 거로군."
"그런지도 몰라. 논쟁은 언쟁과 너무 비슷해. 두 사람의 논쟁은 내가 이 방을 나간 다음으로 미뤄주면 고맙겠어요. 그런 다음에는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해도 좋습니다." (p.68-70)
"더없이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이 행하는 더없이 현명하고 훌륭한 행동이라도, 농담을 인생의 제일 목표로 삼는 사람에게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요."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죠. 하지만 제가 그런 사람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제가 현명하고 훌륭한 것을 웃음거리로 삼지는 않았기를 바라고요. 하지만 고백하건대 저는 미련한 일, 어처구니없는 일, 변덕스럽고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볼 때마다 비웃어요. 하지만 다아시 씨에게는 그런 결점이 전혀 없는 것 같네요."
"그런 결점들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뛰어난 지성도 웃음거리가 되곤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일생토록 그런 약점을 피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허영과 오만 같은 것들요?"
"그렇습니다. 허영은 진정코 약점이죠. 하지만 진실로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라면, 오만을 건강한 자부심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감추었다.
"다아시 씨에 대한 진단은 끝났나요?" 빙리 양이 말했다.
"결과가 어떤가요?"
"단언컨대 다아시 씨에게는 결점이 없습니다. 본인도 그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하시네요."
"무슨 말씀을." 다아시가 말했다. "결점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결점이 꽤 많지만, 그것이 이성의 결함은 아니기를 바라는 거죠. 제 성격은 그리 내세울 만한 것은 못 됩니다. 양보심이 너무 없고 고집이 셉니다. 이 세상의 편의에 맞추기에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들 불편해하지요.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악행, 제게 저지른 잘못을 지나치게 오래 기억하죠. 제 감정은 외부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습니다. 제 기질은 아마 분노가 깊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화가 잘 안 풀리죠. 한번 마음이 떠나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정말로 큰 결점이군요!"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골수에 박힌 깊은 분노라면, 분명 결점이죠. 하지만 아주 잘 고르셨네요. 저는 그런 결점에는 웃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제게 비웃음 사실 일은 없을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교육을 받아도 해결할 수 없는 특별한 문제, 타고난 결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아시 씨의 결함은 모든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베넷 양의 결함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오해하는 것이죠." 그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p.77-79)
다아시 씨에게는 그 소식이 반가웠다. 엘리자베스는 네더필드에 충분히 오래 있었다. 그녀에 대한 매혹은 그 스스로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거기다 빙리 양은 그녀에게 무례했고, 자신에게는 평소보다 더 지분거렸다. 그는 이제 각별히 조심해서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분별 있는 결정을 내렸다. 그녀가 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우쭐해지게 만들면 안 되었다.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만약 엘리자베스가 이미 그런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면, 마지막 날 그가 하는 행동에 따라 상대방의 생각을 확정하거나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심에 충실하게 토요일이 다 가도록 그녀에게 열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고, 한때 반 시간 동안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도 책만 들여다볼 뿐 그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p.80-81)
"아유! 여보." 아내가 소리쳤다. "그 말을 들으니 부아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네요. 제발 그 밉살스러운 남자 이야기는 그만둬요. 당신 영지가 우리 아이들 손을 떠나 한사상속인지 뭔지, 그렇게 된다는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이라고요. 내가 당신이었다면 오래전에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했을 거예요.: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에게 한사상속의 속성을 설명하려고 했다. 전에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그것은 베넷 부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딸 다섯이 있는 가족의 땅이 아무 상관도 없는 남자의 손에 들어가는 고약한 처사에 대해 부인은 끊임없이 욕을 퍼부었다.
"정말로 악독한 제도요." 베넷 씨가 말했다. "콜린스 씨가 어떤 일을 한다 해도 롱번을 상속받는 쇠는 씻을 수 없을 거요. 그런데 당신도 그 편지를 보면, 그 사람의 표현 방식에 마음이 좀 누그러질지도 모르겠소."
"아니. 그럴 일 없어요. 절대로요. 당신한테 편지를 보낸 것 자체가 아주 불손하고 위선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거짓된 행동은 싫다고요. 왜 이 친구는 자기 애비처럼 당신하고 계속 싸우지 못하는 거래요.?"
"글쎄, 이 친구는 아들로서 그때 일을 미안해하고 있는 것 같구려. 일단 들어보시오." (p.83)
콜린스 씨는 약속한 시간에 딱 맞추어 왔고, 식구들은 모두 아주 예의 바르게 그를 맞았다. 베넷 씨는 별로 말이 없었지만 여자들은 기꺼이 그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콜린스 씨는 굳이 대화를 부추길 필요도 없고 입을 다물 생각도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키가 크고 표정이 무거운 스물다섯 살의 젊은이였다. 태도는 진지하고 근엄했으며, 예의범절은 아주 의례적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 곧바로, 베넷 부인에게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따님들을 두었냐며 칭찬했다. 따님들의 아름다움은 익히 들어 알았지만, 이 경우는 명성이 실제만 못하다며 모두 때가 되면 좋은 혼처를 얻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런 칭찬이 식구들 모두의 호감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칭찬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베넷 부인은 즉각 반응했다
"고마운 말씀이네요.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지요. 안 그러면 이 아이들이 궁핍을 벗을 길이 없으니까요. 세상 일이 정말로 이상하게 꼬여서 말이에요."
" 이 롱번 영지의 한사상속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콜린스 씨! 우리 딸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지요. 그렇다고 콜린스 씨 잘못이라는 건 아니에요. 이런 일은 다 운수소간이죠. 일단 한사상속이 걸리면, 영지가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p.87)
"안타깝게도 드 버그 양의 허약한 건강 상태로는 런던에 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캐서린 숙부인께 말씀드렸듯이, 영국 국정은 가장 빛나는 보석을 잃은 셈이죠. 숙부인게서는 그 말씀에 흡족하시는 것 같았고, 저는 이렇듯이 기회가 될 때마다 귀부인들에게 기쁨을 안겨 드리는 세심한 칭찬을 많이 합니다. 캐서린 숙부인께는 영애께서는 공작부인이 되실 운명 같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죠. 그리고 영애께서 결혼으로 아무리 더 높은 지위를 얻는다고 해도, 지위가 영애를 빛내주는 게 아니라 영애께서 그 지위를 빛내줄 거라고요. 숙부인께서는 이런 작은 칭찬들을 좋아하시고, 저는 이런 관심을 각별히 기울여 드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판단이오." 베넷 씨가 말했다. "그처럼 세련되게 아첨하는 기술이 있다는 건 다행스런 일이라오. 그런데 그런 기술이 즉석에서 발휘되는 것인지 아니면 미리 준비하는 것인지 궁금하구려."
"대개는 즉석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때로는 일반적인 다양한 상황에 적용할 만한 작은 칭찬들을 궁리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도 언제나 상대에게는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인상을 주려고 합니다." (p.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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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들은 어떻게 정치를 농락하는가 - 김영수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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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스 씨는 그리 분별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교육이나 사교 활동을 통해 그런 타고난 결함을 교정하지도 못했다. 그는 일생 대부분을 무지하고 인색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대학에 가기는 했지만 유용한 인맥을 쌓지 못하고 겨우 졸업 요건만을 채웠다. 아버지가 명령하면 무조건 복종하며 산 그의 인생은 애초에는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세상과 떨어져 살아온 아둔한 자의 우쭐함과 젊은 나이에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둔 자의 자만심이 채우게 되었다. 헌스퍼드 교구 목사직이 공석이 되었을 때, 그는 캐서린 드 버그 숙부인에게 추천되는 행운을 얻었다. 숙부인의 지위에 대한 존경과 후원자에 대한 숭앙이 스스로에 대한 높은 평가와 성직자라는 권위, 목사의 권한과 합해져, 그는 전체적으로 오만하면서도 비굴하고, 거들먹거리면서도 굽신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좋은 집과 넉넉한 수입이 확보되자, 그는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내를 구하려는 심산에서 롱번의 가족과 화해를 시도했다. 그 집 딸들이 평판대로 아름답고 싹싹하다면, 그중 한 명을 고르겠다는 계획이었다. 이것이 그가 베넷 가 영지를 상속하는 데 대한 화해책, 다시 말해 보상이었다. 그는 이것이 매우 바람직하고 적절하며 지나칠 만큼 너그럽고 이타적인 훌륭한 계획이라고 여겼다. (p.92-93)
콜린스 씨는 상대를 제인에서 엘리자베스로 바꾸기만 하면 되었다. 그 결정은 곧, 그러니까 베넷 부인이 벽난로 불을 쑤시는 동안 이루어졌다. 엘리자베스는 나이도 미모도 제인에 이어 두 번째였으므로 당연히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베넷 부인은 콜린스 씨가 넌지시 건넨 암시를 마음에 새겼고, 이제 곧 딸을 둘이나 시집보내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입에도 올리기 싫던 사람이 이제는 아주 훌륭한 남자로 보였다. (p.94)
위컴 씨는 거의 모든 여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기쁨을 누렸고, 엘리자베스는 마침내 그의 옆자리 상대로 선택되는 기쁨을 누렸다.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는 저녁 날씨가 궂고, 장마가 시작될 것 같다는 게 전부였지만, 엘리자베스는 위컴 씨의 다정다감한 말투를 접하며,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재미없고 진부한 대화 소재라도 화자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p.10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데일 카네기 성공대화론 - 데일 카네기 (임상훈 옮김,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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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에요. 제가 그 사람에게 쫓겨날 일은 없어요. 제가 싫으면 그 사람이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사이라고 할 수 없고 그를 만나는 건 고통스럽지만, 제가 그를 피하는 이유는 세상에 떳떳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그의 현재 모습이 더없이 안타깝기 때문이죠. 베넷 양, 선대인 다아시 씨는 더없이 훌륭한 분이였고, 제게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의 다아시 씨와 함께 있으면 제 마음은 수천 가지 따뜻한 기억이 솟아서 마음 깊이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모욕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게 저지른 그 모든 일을 용서한다고 해도, 선대인의 소망을 무시하고 그분의 기억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p.102-103)
"전부터 이곳이 이름 높은 훌륭한 부대라는 건 알았는데, 친구 데니에게서 지금 본부 소재지가 어떤 곳인지, 메리턴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얼마나 친절하신지 듣자 마음이 더 크게 움직였습니다. 저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지금껏 인생에서 많은 좌절을 겪었고, 고독을 견디지 못한답니다. 저는 직업과 사교계가 필요합니다. 군인으로 사는 것은 제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었죠. 저는 원래 성직에 임했어야 했어요.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방금 전에 이야기한 신사가 동의했다면 저는 지금쯤 더없이 훌륭한 교구의 목사직을 수행하고 있었을 겁니다." (p.103)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그녀가 잠시 후에 말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몰인정한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저를 지독히도 싫어했으니까요. 질투심 때문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네요. 고인께서 저를 조금만 덜 아끼셨어도 지금의 다아시 씨가 이렇게까지 저를 싫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 대한 그분의 지극한 애정 때문에 그 아들은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무척 괴로웠을 겁니다. 그 사람 성품으로는 우리가 애정을 두고 경쟁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겠죠. 게다가 제가 더 자주 칭찬받곤 했으니까요."
"저는 다아시 씨가 이렇게까지 나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전에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나쁘네요. 매사에 안하무인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악의적이고 치사한 복수에, 부당하고 잔인한 행동을 할 줄은 몰랐어요!"
그러다가 그녀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 "지난번 네더필드에서 그 사람이, 자기는 한번 화가 나면 잘 풀리지 않고 용서할 줄 모르는 성품이라고 자랑한 게 생각나네요. 정말 혐오스런 성격 같아요!"
"그 문제는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위컴이 대답했다. "저는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으니까요." (p.105)
"정말 이상하군요!"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기가 막혀요! 그렇게 오만할 만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위컴 씨에게 그런 부당하고 치사한 짓을 저질렀다는 게 말예요! 적어도 자존심 높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치사하게 배신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저는 그걸 배신이라고 봐요."
"놀랍죠." 위컴이 대답했다. "그의 거의 모든 행동이 그 자존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존심은 그자의 단짝 친구죠. 그 사람이 미덕을 행하는 건 다른 어떤 감정보다 바로 그 자존심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일관되지 않은 부분이 있겠지요. 저를 대할 때면 그 사람도 자존심보다 다른 충동이 더 강했습니다."
"그런 오만한 자존심이 그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적이 있나요?"
"있지요. 그 덕에 그는 대범하고 너그러운 일을 자주 합니다. 돈을 나눠주고,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소작인들을 돕고, 빈민을 구제하는 일 같은 가요. 가문에 대한 자부심, 아들로서의 자부심이 그에게 그런 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선대인에게 큰 자부심을 품었으니까요. 가족에게 불명예가 되지 않는 것, 평판과 지위를 유지하는 것, 아니면 펨벌리 저택의 영향력을 보존하는 것, 이런 게 그의 강력한 동기죠. 그 사람은 오빠로서도 자부심과 애정이 강해서 여동생을 아주 다정하고 세심하게 돌봅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더없이 훌륭한 오빠라며 칭찬하는 말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p.106-107)
"그럴 겁니다. 하지만 다아시 씨는 마음이 내키면 친절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능력이 없지는 않습니다. 상대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대화도 잘합니다. 자기하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 속에 있으면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들하고 있을 때와 전혀 달라지죠. 오만한 태도는 변함없지만, 부자들하고 있을 때는 너그럽고 공정하고 진실하고 합리적이고 점잖고 때로 상냥하기까지 하답니다. 재산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량을 발휘하지요." (p.108)
다음 날 엘리자베스는 제인에게 위컴 씨와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제인은 놀라움과 걱정 속에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빙리 씨가 존경하는 친구 다아시 씨가 그토록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위컴처럼 온화해 보이는 젊은이가 거짓말한다고 의심하는 것도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정말로 그런 냉대를 받았을 가능성만으로도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두 사람 모두를 좋게 생각하는 것, 양쪽 다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이해하는 것,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사고나 실수의 탓으로 돌리는 것밖에 없었다.
"내가 볼 때는 양쪽 다 어떤 식으로 건 오해가 생긴 거야." 제인이 말했다. "이해관계가 얽힌 다른 사람들이 중간에서 이간질해서 오해를 만드는 경우가 있잖아. 두 사람 사이가 나빠진 원인이나 상황을 추측하다 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둘 중 한 사람을 비난하게 될 거야."
"맞는 말이야. 하지만 언니, 그러면 이 일에 이해관계가 얽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옹호할 거야? 그 사람들이 무고하다는 것도 증명해 봐. 안 그러면 우리는 누군가를 나쁘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
"웃고 싶으면 실컷 웃어. 그렇다고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 거야. 리지, 아버지가 아끼신 대자를 그렇게 대접하는 게, 다이시 씨에게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인지 생각해 봐. 아버지가 생게를 책임져주겠다고 한 사람을 말이야. 불가능해. 다아시 씨가 그랬을 리 없어. 인정이 있는 사람, 인품이 약간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일은 할 수 없어. 그리고 절친한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전부 속을 수 있겠어? 그건 불가능해."
"내가 볼 때는 어젯밤 위컴 씨가 나한테 거짓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것보다는 빙리 씨가 친구한테 속고 있다는 게 더 신빙성 있는걸. 사람들과 정황, 모든 게 자연스러웠어. 만약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다아시 씨한테 반박해 보라고 해. 게다가 위컴 씨 모습은 정말로 진실해 보였단 말이야."
"참 어려운 문제다. 괴로워.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아니, 미안하지만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는 분명해."
하지만 제인에게 분명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만약 빙리 씨가 속고 있는 거라면 나중에 이 일이 알려졌을 때 그에게 큰 고통이 닥칠 거라는 거뿐이었다. (p.111-112)
"아뇨. 무도회에서 책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요. 머릿속에 항상 다른 게 가득하니까요.:
"이런 곳에서는 항상 '현재'가 당신 머릿속을 채우는 겁니까?: 그가 의구심을 드러내며 말했다.
"맞아요. 항상 그래요." 생각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서, 그녀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문득 이렇게 말해서 그 사실을 드러냈다. "전에 다아시 씨가 용서를 잘 못하는 성격이라고 말했잖아요. 한번 분노를 품으면 잘 풀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화를 내지 않도록 무척 조심하시는 편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가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의견을 절대 바꾸지 않는 사람은 애초에 올바르게 판단하는 게 더욱 중요하죠."
"이런 질문들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다아시 씨 성격을 파악해 보려는 것뿐이에요." 그녀가 심각한 태도를 떨치려고 하면서 말했다. "이해해 보려고요."
"그래서 성과가 있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당신에 대해 너무 상반되는 이야기를 들어서 혼란스러워요."
"저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리라는 건 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무겁게 대답했다. "하지만 베넷 양, 지금 이 순간은 제 성격 이야기를 그만했으면 합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될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당신을 파악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베넷 양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고, 두 사람은 춤을 마저 춘 뒤 말없이 헤어졌다. 둘 다 불만스러웠지만, 그 강도는 서로 달랐다. 다아시의 가슴에는 그녀를 향한 열렬한 감정이 있었기에, 곧 그녀를 용서하고 그 모든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그들이 갈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빙리 양이 엘리자베스에게 다가와 점잖게 그러나 경멸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일라이자 양, 조지 위컴에게 반했다고요? 제인이 그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질문을 천 개는 했어요. 그런데 가만 보니까 그 사람은 일라이자 양과 이야기할 때 자기 아버지가 고 다아시 씨의 집사였다는 사실을 빼먹은 것 같더군요. 하지만 친구로서 조언하건대, 그 사람 말을 무조건 믿지 말아요. 다아시 씨가 그 사람을 푸대접했다는 건 완전히 거짓말이니까요. 반대로 다아시 씨는 조지 위컴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에게 친절을 베풀었어요.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다아시 씨가 비난받을 일은 전혀 없다는 것, 그분은 조지 위컴의 이름을 듣는 일조차 괴로워한다는 건 알아요. 그리고 우리 오빠는 장교들을 초대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사람도 불렀지만, 그 사람이 알아서 피해 준 걸 아주 기뻐했어요. 그 사람이 이 고장에 온 것 자체가 뻔뻔한 일이에요.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일라이자 양이 호감을 품은 사람에게 그런 과오가 있다는 걸 전하게 되어서 안 됐지만, 그런 출신의 사람에게서 더 크게 바랄 건 없겠죠.:
"빙리 양 말에 따르면, 그 사람의 과오는 다름 아니라 그런 출신이라는 사실이로군요." 엘리자베스가 발끈해서 말했다.
" 그 사람이 집사의 아들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비난 거리니까요.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는 이미 그 사실을 밝혔습니다."
'미안해요." 빙리 양이 조롱하는 표정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주제넘게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어요."
"뻔뻔한 여자 같으니!" 엘리자베스가 혼잣말을 했다. "하찮은 비난으로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완전한 착각이야. 그 말을 통해서 내가 느낀 건 당신의 고집스런 무지와 다아시 씨의 악의뿐이야!" 그런 뒤 그녀는 빙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기로 한 제인을 찾아갔다. 제인의 얼굴에 빛나는 미소와 행복한 표정은 그날 저녁이 그녀에게 얼마나 순조로웠는지를 알려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제인의 감정을 알아차렸고, 그 순간 위컴에 대한 걱정, 그의 적들에 대한 분개심 같은 것은 제인이 누구보다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앞에 사그라들었다. (p.121-123)
자신만의 관심사가 사라진 엘리자베스는 언니와 빙리 씨에게 온 관심을 기울이다시피 했고, 그들을 지켜보다 보니 즐거운 상상이 꼬리를 물어서 거의 제인만큼이나 행복해졌다. 그녀는 제인이 바로 그 집에서 진정한 사랑으로 맺은 결혼의 모든 행복을 누리며 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빙리의 두 누이마저 좋아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보니 어머니 역시 자신과 똑같은 생각에 몰두한 게 역력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될까 봐 어머니 곁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석식 때 어머니와 한 사람 건너 나란히 앉게 된 일은 그녀에게는 극도로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 한 사람 (루카스 부인)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인이 곧 빙리 씨와 결혼할 것 같다는 한 가지 이야기만을 한다는 사실에 깊은 당혹감을 느꼈다. 그것은 흥미로운 화제였고, 베넷 부인은 지칠 줄 모르는 기색으로 그 혼사의 이점을 열거했다. 빙리 씨는 다정한 젊은이고, 부유하며, 두 집의 거리가 3마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먼저 손꼽혔다. 이어서 빙리 자매가 제인을 좋아하는 것도 다행이고, 그 둘 또한 자기만큼이나 제인과 빙리 씨의 결합을 바랄 거라고 했다. 거기다 제인이 그렇게 시집을 잘 가면 동생들도 부유한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 동생들 앞날에도 좋을 거라고 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미혼의 딸들을 자기 살아생전에 장녀 손에 맡길 수 있으면, 자기가 억지로 사람들하고 어울릴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생토록 베넷 부인만큼 집에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좋다고 말한 건 이런 경우 그것이 예의이기 때문이었다. 부인은 루카스 부인도 자기 못지않은 행운을 얻기 바란다는 덕담 속에 이야기를 마쳤지만, 속으로는 그럴 기회는 결코 없을 거라고 의기양양해했다.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의 말을 늦추고 기쁨의 속삭임과 목소리를 낮추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그 내용을 맞은편에 앉은 다아시 씨가 다 듣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괴로웠다. 하지만 베넷 부인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딸을 꾸짖었을 뿐이다.
"거 참, 다아시 씨가 뭔데 내가 그 사람을 겁내야 하니? 그 사람 때문에 조용히 하라니! 그 사람 마음에 안 드는 말을 삼가야 할 만큼 특별히 조심할 이유는 없어."
"어머니, 제발 목소리를 낮추세요. 다아시 씨 기분을 거슬려서 좋을 게 뭐가 있어요? 그러다가는 저 사람 친구의 호감도 잃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녀의 어떤 말도 힘을 쓰지 못했다. 어머니는 계속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자기 견해를 이어 나갔다. 엘리자베스는 수치심과 당혹감에 얼굴을 붉히고 또 붉혔다. 그리고 다아시 씨에게 자꾸 곁눈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때마다 걱정이 사실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가 베넷 부인을 계속 주시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을 쓰며 듣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의 표정은 분노와 경멸에서 차분하고 무거운 숙고로 천천히 변해 갔다. (p.127-129)
엘리자베스는 식구들이 오늘 저녁 내내 집안 망신을 당해 보자고 약속하고 무도회에 왔다 해도 그 과업을 이보다 더 성공적으로 수행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그나마 빙리와 제인에게 다행인 것은, 빙리가 그런 일을 전부 알아차리지는 못했다는 것과 그의 감정은 그날 목격한 우행들에 크게 흔들리는 종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빙리 자매와 다아시 씨에게 베넷 가를 비웃을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에 엘리자베스는 우울했고, 한 남자의 말 없는 경멸과 여자들의 무례한 웃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괴로운지도 알 수 없었다. (p.131)
"제가 결혼하려는 이유는 우선 (저처럼) 안락한 지위를 갖춘 성직자는 교구 내 결혼 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결혼하면 제가 더욱더 행복해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미리 꼽아야 했겠지만, 기쁘게도 저를 후원해 주시는 귀부인의 특별한 조언과 추천 때문입니다. 그분은 두 번이나 친히 제게 이 일과 관련해서 의견을 주셨죠. (여쭙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제가 헌스퍼드를 더니가 직전의 토요일 밤 카드릴 놀이를 하던 중, 젠킨슨 부인이 드 버그 양의 발판을 조절하는 동안 숙부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콜린스 씨, 결혼하게. 자네 같은 성적자는 결혼을 해야 돼. 우선 여자를 잘 골라. 나를 위해서는 양가의 규수를 고르고, 자네를 위해서는 활달하고 솜씨 좋은 여자를 고르게나, 지체가 높지 않고 적은 수입으로 살림을 알뜰하게 꾸리는 여자가 좋아. 지나치게 귀하게 자라지 않은 여자로. 이게 내 조언일세. 어서 빨리 그런 여자를 찾아서 헌스퍼드로 데려오게. 그러면 내 한번 만나보겠네.' 여기서 캐서린 드 버그 숙부인의 관심과 친절은 제가 결혼조건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적잖은 이점들 가운데 하나라는 말을 덧붙여야겠습니다. 당신도 숙부인을 보면 그분의 품위는 제가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이 본래 지닌 재치와 활기에 숙부인을 만났을 때 필연적으로 솟아날 침묵과 존경이 더해지면, 숙부인께서도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제가 결혼을 하려는 기본 의도는 이와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 제가 왜 현 거주지가 아닌 롱번에서 신부감을 찾으려고 했는지를 말해야겠군요. 물론 헌스퍼드에도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베넷 씨가 돌아가시면 (물론 앞으로 오래 사실지도 모르지만) 제가 이 영지를 상속하는 까닭에, 제가 그분의 따님 한 분과 결혼해서 그처럼 슬픈 일이 닥쳤을 때 베넷 가가 겪을 타격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제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미 말씀드렸듯이 그 일이 몇 년 안에 일어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제 의도이고, 이런 의도가 저에 대한 평가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제 열렬한 애정을 뜨거운 언어로 표현하는 것뿐이군요. 저는 재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베넷 씨에게 그와 관련된 어떤 요구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충족될 수 없는 요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4퍼센트에 투자한 1천 파운드가 당신이 받을 최대치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것도 베넷 부인이 돌아가신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저는 시종일관 침묵할 생각이고, 우리가 결혼하면 제 입에서 그와 관련된 불미스런 말은 한마디도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제 정말 그의 말을 막아야 했다.
"콜린스 씨, 너무 앞서 나가시는군요." 그녀가 소리쳤다.
"제가 아직 답을 드리지 않았다는 점을 잊으신 것 같아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시지 않도록 지금 대답해 드릴게요. 저를 좋게 보아주신 것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청혼을 받는 것이 매우 영광스런 일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저로서는 이 청혼을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p.135-137)
하지만 그 사실은 베넷 부인에게는 당황스러웠다. 딸의 거절이 그의 애간장을 태우려는 목적이었다면 부인 또한 기뻤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가 않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콜린스 씨." 부인이 덧붙였다. "걱정 마세요. 리지는 정신을 차릴 거예요. 내가 직접 말하겠어요. 그 아이는 고집불통에 아둔해서 뭐가 저한테 이로운지도 모른다니까요. 하지만 내가 알아듣게 말하겠어요." (p.140)
베넷 부인이 종을 울려서 엘리자베스 아가씨를 서재로 호출하라고 명령했다.
"이리 오려무나." 그녀가 들어오자 아버지가 말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불렀다. 콜린스 씨가 너한테 청혼했다는 게 사실이냐?" 엘리자베스는 그렇다고 했다. "좋다. 그리고 너는 그걸 거절했고?"
"네, 아버지."
"그래. 이제 요즘으로 들어가자. 네 어머니는 네가 청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구나. 그렇소, 여보?"
"그래요, 안 그러면 나는 다시는 리지를 안 볼 거예요."
"그러면 네 앞에는 힘든 선택이 놓여 있구나. 엘리자베스, 오늘부터 너는 부모 중 한 사람과 남이 되어야겠다. 네가 콜린스 씨하고 결혼을 안 하면 네 어머니가 너를 안 볼 테고, 결혼을 하면 내가 너를 안 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이렇게 종결된 것에 엘리자베스는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 거라고 믿었던 배넷 부인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보, 그게 무슨 소리예요? 결혼하라고 말한다고 했잖아요!"
"여보." 남편이 대답했다. "당신한테 작게나마 부탁이 두 가지 있소. 하나는 내가 이 사건을 내 나름대로 판단할 권리를 달라는 거고, 둘째는 이 방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권리를 달라는 거요. 되도록 빨리 서재에서 나가주었으면 좋겠구려."
하지만 베넷 부인은 남편에게 실망한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엘리자베스를 계속 설득하려고 했다.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았다. 제인을 아군으로 끌여들이려고도 했지만, 제인은 온화한 태도로 이 일에 끼어들기를 거부했다. 엘리자베스는 부인의 공격에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응대했다. 그렇게 태도는 바뀌어도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p.142-14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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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엘리자베스, 그 최선의 상태를 가정한다고 해도 그의 누이와 친구들이 모두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서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건 언니가 결정해야지."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잘 생각해 봐. 두 누이의 뜻을 거스르는 고통이 그 사람하고 결혼하는 행복보다 크다면 거절하는 게 좋지."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말하니?" 제인이 힘 없이 미소 짓고 말했다. "빙리 자매가 나를 찬성하지 않는 건 마음 아프지만, 그 이유로 머뭇거릴 수는 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언니 처지를 별로 동정할 필요가 없는걸." (p.151)
윌리엄 경과 루카스 부인은 신속하게 결혼 허락을 요청받았고, 그들은 기쁨에 넘쳐 지체 없이 허락했다. 콜린스 씨의 현 상황을 볼 대 달에게 아주 합당한 혼사였다. 그들은 그녀에게 물려줄 유산이 거의 없었고, 콜린스 씨의 장래 전망은 더없이 밝았다. 루카스 부인은 베넷 씨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까 하는데 갑자기 큰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윌리엄 경은 콜린스 씨가 롱번 영지를 소유하게 되면, 부부 동반으로 정에 나가 왕을 알현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단호하게 개진했다. 다시 말해서 온 가족이 둘의 결혼을 크게 기뻐했다. 여동생들은 이 일로 사교계 데뷔가 한두 해 앞당겨질 것을 희망했다. 남동생들은 샬럿이 노처녀로 죽을 거라는 걱정을 덜었다. 샬럿 자신은 오히려 차분했다. 목적을 달성한 뒤 그녀는 생각할 시간을 얻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콜린스 씨는 물론 분별도 없고 즐거운 상대도 아니었다. 그와의 교제는 지루하고, 자신에 대한 애정도 환상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는 그녀의 남편이 될 것이다. 그녀는 남자라는 존재도 결혼 생활도 대단치 않게 여겼지만,, 결혼은 언제나 그녀의 목표였다. 그것은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은 부족한 처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명예로운 생존 방식이었고, 행복의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 해도 가난을 막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었다. 이 수단을 그녀는 손에 넣었다. 나이 스물일곱에 미모를 누린 적이 없던 그녀는 이 일을 깊은 행운으로 여겼다. 이 일에서 가장 곤란한 점은 그녀의 가장 좋은 친구인 엘리자베스 베넷이 크게 놀랄 거라는 점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이해하지 못하고 어쩌면 자신을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결심이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그런 비난은 상처가 될 것이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에게 직접 말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래서 콜린스 씨에게 롱번에서 정찬을 할 때 그 집 식구들에게 아무 말도 흘리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비밀 약속은 성실하게 지켜졌지만, 그것을 수행하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그가 롱번에 돌아가자 집을 오래 비운 이유에 대해 모두 궁금해했기 때문에, 콜린스 씨로서는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얼마간의 재치가 필요했다. 또한 사랑의 성공을 발표하고 싶어서 좀이 쑤셨기에 엄청난 인내력도 발휘해야 했다. (p.154-155)
"놀랐을 거야. 그것도 아주 많이. 콜린스 씨가 너한테 청혼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니까. 하지만 너도 언젠가 내 결정에 수긍할 수 있으면 좋겠어. 나는 낭만적인 사람이 아냐. 전부터 그랬어. 내가 원하는 것은 편안한 가정이야. 콜린스 씨의 성격이나 사회적 배경, 상황을 생각해 보면, 내가 그 사람 곁에서 행복을 얻을 가능성도 결혼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별로 뒤처지지는 않을 것 같아."
"물론이지." 엘리자베스는 조용히 대답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두 사람은 가족들에게 갔다. 샬럿은 금방 떠났고, 엘리자베스는 그녀에게 들은 말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아주 한참이 지나서야 그렇게 안 어울려 보이는 결합을 수긍할 수 있었다. 콜린스 씨가 사흘 동안 두 여자에게 청혼한 것도 이상했지만, 그것이 수락된 것은 더욱 이상했다. 예전부터 샬럿은 결혼에 대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지만,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그녀가 세속적 이득을 위해 섬세한 감정을 모두 희생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샬럿이 콜린스 씨의 아내가 된다는 생각은 굴욕감마저 들었다! 친구가 그토록 수치스럽게 자신을 실망시킨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그녀가 그렇게 선택한 길에서 어지간한 행복도 얻지 못할 거라는 예감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p.157-158)
궁정에 출입했던 사람으로 지닌 품위가 아니라면, 그런 반응에 발끈하지 않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윌리엄 경의 교양은 그 모든 것을 이겨냈다. 그는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무례한 반응을 더없이 예의바르게 경청했다. (p.15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 데일 카네기 (임상훈 옮김,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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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건 말이야, 그건 내 착각일 뿐이었다는 거야. 그래서 나 혼자 잘못 알고 좋아했던 거고 나 말고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으니까."
"언니!"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언니는 너무 착해. 어떻게 그렇게 다정하고 욕심이 없는지 천사가 따로 없어. 언니한테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 지금까지 난 언니라는 사람의 진정한 가치도 몰라본 것 같아. 언니한테 더 잘했어야 하는데."
베넷 양은 그런 찬사는 지나치다며, 동생의 따뜻한 애정에 대한 칭찬으로 답을 했다.
"아냐.: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이건 불공평해. 언니는 세상 사람이 모두 선량하다고 믿고 싶어서, 내가 누구 한 사람이라도 험담을 하면 상처받아. 그런데 내가 언니가 정말 좋은 사람이고 완벽하다고 칭찬하려고 하면 그것도 싫대. 이러다가 내가 너무 극단적이 되어서 언니처럼 누구나 좋게 보게 될까 봐 걱정하지는 마.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적어. 세상을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불만만 커져 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깨닫는 건 사람들 성격이 모순투성이고, 겉으로 보이는 장점이나 분별력은 믿을 수 없다는 거야. 최근에도 그런 사건을 두 번이나 겪었어. 하나는 말하지 않을 거고, 또 하나는 샬럿의 결혼이야. 너무 이해가 안 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설명이 안 돼!"
"리지야, 자꾸 그런 감정에 휘둘리지 마. 너만 괴로워져. 그러면 행복해질 수 없어. 너는 사람마다 상황과 기질이 다르다는 걸 무시하고 있어. 콜린스 씨의 지위를 생각하고, 샬럿의 신중하고 차분한 성격을 생각해 봐. 샬럿은 대가족의 일원이고, 재산을 생각하면 그건 아주 어울리는 혼사야. 그리고 샬럿이 우리 사촌에게 어떤 호감이나 존경을 느꼈을 거라고 믿어보자. 그게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이야."
"언니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믿어보려고 노력하겠어. 다른 누구에게도 이런 믿음은 바차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누구한테 좋을지는 잘 모르겠어. 샬럿이 그 사람에게 호감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 그 애의 감정에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실망을 그 애의 이해력에 느끼게 될 테니까. 제인, 콜린스 씨는 교만하고 허황되고 편협하고 모자란 사람이야. 언니도 나 못지않게 잘 알잖아. 언니 역시 그 사람과 결혼하는 여자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람이 아닐 거라고 느낄 거야. 변호하려고 하지 마. 아무리 샬럿 루카스라고 해도 옹호할 수 없을걸. 한 사람 때문에 언니의 원칙과 진정성의 의미를 바꿀 수는 없어. 이기심에 따른 계산이 신중함이고, 위험을 간과하는 게 행복의 조건이라는 설득은 언니 자신한테도 나한테도 안 통해."
"너는 두 사람이 모두를 너무 심하게 말하고 있어." 제인이 대답했다. "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걸 보고 네가 생각을 바꾸게 되길 바란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만두자.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고 했지? 두 가지 경우라고 했잖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데, 하지만 리지. 제발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실망했다는 말로 날 괴롭히지 말아 줘. 남들이 우리에게 고의로 상처를 준다고 섣불리 생각해선 안 돼. 활기찬 젊은이가 언제나 신중하고 사려 깊으리라고 기대해서도 안 돼. 우리가 속는 건 실제로 자신의 허영심인 경우가 많잖니. 상대방의 단순한 호의도 그 이상이라고 상상하곤 하니까."
"남자들은 일부러 여자들이 그렇게 상상하게끔 만들어.:
"고의로 그런다면 용납할 수 없지만, 이 세상에서 그런 고의는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
"빙리 씨의 행동이 고의라는 건 아냐."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하지만 나쁜 짓을 하거나 남을 불행하게 하겠다는 계획 없이도 실수할 수 있고 고통이 따르지. 사려 깊지 못하거나 남의 감정을 배려하지 못하거나 결단력이 부족해도 그럴 수 있어."
"아까 말한 두 가지 경우랑 관련해서 하는 비난이니?"
"응, 두 번째 경우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야기를 계속하면 언니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욕해서 언니를 기분 상하게 할 거야. 듣기 싫으면 말해."
"네 말은, 그 사람이 계속 누이들에 휘둘리고 이다는 거구나."
"그래, 그리고 그 사람 친구한테도,"
"말도 안 돼. 그 사람들이 왜 그러겠니? 그의 행복만을 바라는 사람들이고, 또 만약 그 사람이 나에게 애정을 품었다면, 다른 여자가 그걸 차지할 수는 없는 거잖아."
"일단 첫 번째 생각이 잘못됐어. 그 사람들은 빙리 씨의 행복 말고 다른 걸 바랄 수도 이어. 부와 지위의 상승 같은 거 말이야. 그 사람이 재산과 훌륭한 배경과 높은 지위를 고루 겸비한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고."
"그 사람들은 분명히 그가 다아시 양을 선택하기를 바라겠지." 제인이 말했다. "하지만 그 동기는 네 생각보다 좋은 것일 수도 있어. 그 사람들은 나보다는 다아시 양하고 훨씬 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니까. 다아시 양을 더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지. 하지만 그 사람들이 속으로 무슨 소망을 품었다고 해도 자기 오빠의 소망을 거스를 가능성은 희박해. 어떤 누이가 그럴 수 있겠어? 반대할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말이야. 그 사람이 나한테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우리를 갈라놓지는 않았을 거야. 그런 마음이 누이들 때문에 바뀔 리도 없는 거고. 너는 그 사람이 내게 애정이 있다고 단정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전부 부자연스럽고 그릇된 행동을 하는 걸로 보이는 거야. 그러니 내가 더 불행해 보일 테고.........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러면 내가 더 괴로워. 나는 착각했던 게 부끄럽지 않아. 아니, 그 사람이나 누이를 나쁘게 생각하면서 느낄 감정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이번 일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해하게 해 주렴."
엘리자베스는 그렇게까지 간절한 소망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 뒤로 둘 사이에 빙리 씨의 이름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p.169-172)
이 무렵 가디너 부인이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보내서, 위컴에 대해 주의하겠다는 약속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엘리자베스가 보낸 답은 그녀 자신보다는 외숙모에게 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가 보이던 각별한 호감은 사그라지고, 관심도 끝나고, 그의 찬탄은 다른 여자에게 옮겨 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이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지만, 그 일을 관찰하고 편지에 적는 게 그리 크게 속상하거나 아쉽지는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조금 흔들린 정도였고, 만약 자신에게 재산이 있었으면 그가 당연히 자신을 선택했으리라고 믿음으로 허영심을 충족했다. 그가 지금 정성을 들이는 숙녀의 가장 큰 매력은 갑작스레 1만 파운드 재산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위컴의 일을 샬럿의 경우처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기에, 재산을 원하는 그의 소망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더없이 자연스런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약간은 힘들었을 거라 짐작하면서도, 서로에게 현명하고 바람직한 일이라 인정하고,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가디너 부인에게 설명하고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제대로 사랑에 빠졌던 게 아닌 것 같아요. 정말로 그렇게 뜨거운 열정을 경험했다면, 지금쯤 그 사람 이름조차 듣기 싫고 그 사람에게 온갖 나쁜 일이 일어나길 빌겠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그 사람에게도 여전히 좋은 감정일 뿐만 아니라 킹 양에게도 전혀 유감이 없어요. 킹 양이 밉지도 않고,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요. 이런 건 사랑이 아니잖아요. 미리 조심한 게 효과가 있었어요. 제가 정신없이 그 사람에게 빠졌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흥미를 안겨 주었겠지만, 관심을 못 받아서 아쉽지는 않아요. 남들의 관심이란 때로 값비싼 희생이 필요하니까요. 키티하고 리디아는 그 사람 일로 저보다 더 슬퍼하고 있어요. 둘은 아직 어려서 세상 이치를 모르고, 잘생긴 남자도 못생긴 남자 하고 똑같이 먹고살아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니까요." (p.186-187)
"가정교사는 이제 없나?"
"저희는 한 번도 가정교사를 둔 적이 없습니다."
"가정교사가 없었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딸 다섯을 키우는 집에 가정교사가 없다니! 그런 일은 들어본 적이 없어. 어머니가 딸들을 가르치느라 꼼짝 못 하셨겠군."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하며 엘리자베스는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참기가 힘들었다.
"그러면 누구한테 배웠지? 누가 그 집 자매를 돌봤어? 가정교사가 없었다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텐데."
"몇몇 집안과 비교하면 그게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수단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은 언제나 책을 읽는 분위기였고, 필요한 선생님은 모두 언제든 부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울 생각이 없는 사람은 확실히 별로 배우지 못했죠."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가정교사가 있으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어. 내가 베넷 양 어머니를 진작 알았다면 가정교사를 꼭 써야 한다고 누차 권했을 텐데. 나는 사람들은 만나면 늘 말해. 교육에는 꾸준한 학습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가정교사가 필수라고 말이야. 내가 그렇게 해서 가정교사를 들인 집이 몇 집인지 몰라. 젊은 사람들에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야. 젠킨슨 부인의 조카딸 네 명이 내 손을 거쳐서 아주 좋은 집에 자리를 잡았어.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도 내가 우연히 전해 들은 젊은 여자를 추천했더니, 그 집에서 아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어. 콜린스 부인, 어제 매트캐프 부인이 감사 인사를 하러 들렀다는 이야기를 했나? 부인은 포프 양을 보배라고 부르더군. '캐서린숙부인, 부인께서 우리에게 보배를 주셨어요?'하고 말이야. 동생은 몇 명이나 사교계에 나갔나, 베넷 양?" (p.20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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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가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그녀는 피츠윌리엄 대령이 왔나 싶어 약간 당황했다. 그는 전에도 한 번 저녁 늦게 방문한 적이 있으니, 아프다는 자신의 안부를 묻기 위해 특별히 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사라지고 그녀는 완전히 다른 기분에 사로잡혔다. 응접실로 걸어 들어온 사람은 놀랍게도 다아시 씨였기 때문이다. 그는 약간 허둥대는 기색으로 그녀의 건강에 대해 묻고는 지금은 좀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왔노라고 ㅁ했다. 그녀는 가능한 차갑고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는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방 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는 놀랐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간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동요된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애써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도저히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찬미하고 사랑하는지 밝히지 않을 수가 없군요."
엘리자베스의 놀라움은 뭐라 말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녀는 그를 보고 얼굴을 붉혔고, 귀를 의심하며 침묵을 지켰다. 그는 이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여기고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느껴왔던 감정을 송두리째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훌륭했지만, 사랑의 감정 말고도 설명해야 할 다른 감정들도 많았다. 그는 사랑보다는 자존심을 말할 때 더욱 유창했다. 그녀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 그로 인해 신분 하락과 불명예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녀의 가족이 보여주는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끌리는 감정을 이성으로 붙잡았다는 사실을 격렬한 어조로 전했다. 그런 흥분된 고백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지위에 흠집을 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 듯했지만, 어쨌건 청혼하는 마당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뼛속 깊이 미움이 박힌 사람이긴 해도, 그녀는 그런 남자의 애정을 받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할 만한 일인지 모를 수 없었다.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그가 받을 고통이 안타깝고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어지는 말을 듣다 보니 분노가 치밀어, 그에 대한 모든 연민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인내를 가지고, 그가 이야기를 마치면 차분하게 대답하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떨쳐 버리지 못한,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애정을 전하고, 이제 그녀가 청혼을 수락해 주기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그가 그렇게 말할 때, 긍정적인 답을 들을 것을 거의 의심하지 않고 있음을 그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두렵고 불안하다고 했지만 표정은 여유롭고 편안했다. 그런 상황은 엘리자베스의 화를 부채질할 뿐이었고, 그가 말을 마쳤을 때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제가 어떤 답을 드리건 상관없이 일단 고백받은 감정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게 예의라고 알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 일이지요. 그리고 저도 고마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지금 바로 그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다아시 씨의 호의를 바랐던 적이 없고, 다아시 씨도 전혀 내키지 않는 상태로 그런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저 때문에 그리도 고통스러우셨다니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의식하고 한 일이 아니었고, 아무쪼록 짧은 시일 안에 그 괴로움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다아시 씨가 오래도록 스스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고 말슴하신 그 감정들은, 이제 제 말씀을 듣고 난 뒤에는 어렵지 않게 극복하실 수 있을 겁니다."
벽난로 선반에 몸을 기댄 채 그녀의 얼굴에 눈길을 고정하고 있던 다아시 씨는 놀란 것 못지않게 화가 난 것 같았다. 안색은 분노로 창백해졌고, 마음의 혼란이 이목구비 전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침착한 태도를 보이려고 애썼고, 그럴 수 있을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침묵이 그녀는 끔찍하고 두려웠다. 마침내 그가 겨우 만들어낸, 침착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영광스럽게 기다리던 대답이 고작 이것이로군요! 왜 제가, 예의를 갖추려는 말치레도 없이 거절당하는지 이유를 묻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는 것 같군요."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왜 이토록 명백하게 저를 모욕하겠다는 의도를 품고, 자신의 의지와 이성과 심지어 인격까지 거스르면서 저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는지 말이죠. 제가 예의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그 설명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저한테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다아시 씨도 아실 겁니다. 제가 당신에게 아무 반감이 없었다고 해도, 그냥 무심한 쪽이었다 해도, 아니 더 나아가 호감을 품고 있었다고 해도, 사랑하는 언니의 행복을 어쩌면 영원히 짓밟아 놓은 사람을, 그 사람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지막 문장을 말할 때 다아시 씨의 얼굴빛이 달라졌지만, 그것은 곧 지나갔고 그는 묵묵히 서서 그녀의 말을 계속 들었다.
"제게는 당신을 나쁘게 볼 이유가 아주 많습니다. 어떤 동기로도 당신이 그 일에서 부당하고 냉혹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어요. 당신이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잖아요. 혼자서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앞장섰겠죠. 당신 때문에 한 사람은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하다는 세상의 비난을 받아야 했고, 또 다른 사람은 헛된 꿈을 꾸었다는 조롱을 참아내야 했어요. 당신이 두 사람 모두를 지독한 고통에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감히 부인하지는 못하겠지요?"
그녀는 거기서 멈추었고, 그가 아무런 후회의 기색 없이 자기 이야기를 듣는 데 상당한 분노를 느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심지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미소까지 떠올랐다.
"그러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 있나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는 애써 차분한 기색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제가 온 힘을 다해서 친구와 언니 분을 갈라놓았고, 다행히 성공한 것에 기뻐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나 자신보다 친구에게 더 친절했습니다. 스스로는 못할 일을 친구를 위해서는 할 수 있었으니까요."
엘리자베스는 이 예의 바른 말을 알아들을 기색을 보이기가 싫었지만, 그 의미는 놓치지 않았다. 물론 이로 인해 마음이 누그러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제가 당신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당신에 대해 제 의견은 그 일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당신의 인격에 대해서는 몇 달 전 위컴 씨에게서 상세하게 들었으니까요. 그에 대해서 무슨 말씀을 하실 수 있나요? 이번에도 그게 어떤 우정의 행위였다고 변명하실 건가요? 아니면 또 어떤 허위를 뒤집어씌우실 건가요?"
"그 신사 분의 일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으시군요." 다아시가 약간 평정을 잃은 목소리로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그분이 겪어요 했던 불운을 아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불운이라!" 다아시가 경멸 어린 말투로 대꾸했다. "그래요. 그는 대단한 불운을 겪었지요."
"바로 당신 때문에요." 엘리자베스가 힘주어 소리쳤다. "그 사람을 지금처럼 가난한, 상대적으로 가난한 상태에 몰아넣은 건 당신이에요. 당신이 그분에게 돌아가야 할 이권을 주지 않아서요. 그분이 받을 자격이 있고 그렇게 정해져 있던 재산을 빼앗아서 그분 인생의 절정기를 망쳤어요. 그 사람 몫인 수입인데! 모두 당신이 저지른 일이라고요! 그러고도 그의 불운을 경멸하고 조롱할 수 있다니요."
"이것에 저에 대한 당신의 견해로군요!" 다아시가 빠른 걸음으로 방 안을 오가며 소리쳤다. "저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군요! 저를 어떤 사람으로 보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말씀에 따르면, 내 과오가 실로 무겁군요! 하지만 아마도," 그가 멈춰 서서 그녀에게 돌아서면서 덧붙였다. "제가 그동안 진지한 마음을 품지 못한 이유를 이토록 솔직하게 고백해서 당신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면, 그런 과오는 어쩌면 용납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신랄한 비난은 제가 그동안의 고투를 감추고 좀 더 능란하게 절대적이고 순수한 애정, 이성과 숙고와 그 밖의 모든 것에 따라 청혼한다고 믿게 했다면 피해 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종류의 가식을 싫어합니다. 또 제가 고백한 감정들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정당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부족한 사회적 배경을 기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보다 현저히 뒤지는 조건을 지닌 사람과 맺어지는 걸 스스로 축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매 순간 분노가 커져 갔지만, 엘리자베스는 최선을 다해 마음을 진정하고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말한 방식이 제가 당신을 거절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혹여 있었다고 한다면, 좀 더 신사답게 말했다면 제가 느꼈을지도 모를 송구함을 덜어주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녀는 그가 그 말에 움찔하는 걸 보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자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식으로 청혼하셨다 해도,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역력해졌다. 그는 의구심과 굴욕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계속 말했다.
"처음부터, 아마도 제가 당신을 만난 첫 순간부터였겠네요. 당신은 오만하고 거만하고 남의 감정을 멋대로 경멸하는 태도로 제 반감을 샀어요. 그 뒤로 이어진 일들을 보면서 그 반감은 확실한 혐오로 굳어졌고요. 당신과 알게 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당신이야말로 제가 절대 결혼하지 않을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베넷 양. 당신의 감정을 잘 알겠습니다. 이제 제 감정을 부끄러워할 일만 남았군요. 시간을 이렇게 많이 빼앗은 데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그는 그 말과 함께 서둘러 방을 나갔고, 엘리자베스는 다음 순간 그가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마음의 혼돈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몸을 어떻게 가누어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기운이 빠져서 그 자리에 앉아 30분을 울었다. 방금 일어난 일은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기 그지없었다. 다아시 씨에게 청혼을 받다니! 그가 그렇게 오래전부터 자신을 사랑했다니! 너무도 사랑해서 자기 친구를 제인과 결혼하지 못하게 한 그 모든 사유들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기를 바랐다니! 자신의 경우에는 그런 장애가 더 컸으면 컸지 더 작지는 않았을 텐데도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는 새 남자에게 그렇게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오만, 참을 수 없는 그 오만한, 제인에게 저지른 일에 대한 뻔뻔한 고백, 정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서도 그런 사실을 인정한 용서할 수 없는 당당함, 위컴을 언급할 때의 차가운 태도가 (심지어 위컴에 대한 냉대에 대해서는 부정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애정을 생각하던 순간 잠시 일어났던 연민을 이내 가라앉혔다.
그렇게 계속 어지러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캐서린 숙부인의 마차 소리가 났고, 샬럿의 시선을 견뎌 낼 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느낀 엘리자베스는 얼른 자기 방으로 물러갔다. (p.230-237)
허트퍼드셔에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저는 빙리가 그곳의 다른 어떤 아가씨보다도 제인 베넷 양에게 깊은 호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만 알수 있는 일은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그의 애착이 진지하다는 걱정이 시작된 건 네더필드 무도회 때였습니다. 저는 전에도 빙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제가 당신과 춤을 추는 영광을 누렸던 그 무도회에서 윌리엄 루카스 경이 무심코 하신 말씀을 듣고서, 저는 처음으로 빙리가 제인 양에게 기울이는 관심에 사람들이 결혼을 기대하게 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분은 그 일은 기정사실이고 날짜를 잡는 일만 남았다고 하였죠. 그 순간부터 저는 친구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고, 베넷 양에 대한 관심이 이전까지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인 베넷 양도 관찰 했습니다. 언니 분의 표정과 태도는 늘 그렇듯이 솔직하고 유쾌하고 매력적이었지만, 빙리에 대해 각별한 호감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저는 그날 저녁 관찰한 대로 제인 양이 빙리의 관심을 즐거워하지만, 그런 감정에 동참하지는 않는다는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만약 이 일에 대해 당신의 판단이 옳다면 제가 오류를 범한 것이겠지요. 당신은 언니 분에 대해서 저보다 훨씬 더 잘 알 테니, 아마도 제가 틀렸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제가 그런 오류를 범해 제인 양에게 고통을 끼친 거라면 당신의 분노는 부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저 없이 말씀드리건대 아무리 예리한 관찰자라 해도 제인 양의 평온한 표정과 차분한 태도를 보면, 그녀가 매우 다정하지만 그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가 제인 양이 무심하다고 믿고 싶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관찰과 판단은 희망이나 걱정에 영향받는 일이 드물다는 점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그녀가 무심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본 것이 아닙니다. 공정한 판단에 근거해서 믿었고, 그러기를 바란 것 또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습니다. 그 결혼을 반대한 이유는, 어젯밤 제가 인정했듯이 더없이 강렬한 열정이 아니면 누르지 못하는 그런 부분들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라는 부분은 사실상 저에 비해 제 친구에게는 그다지 큰 결함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그 결혼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다른 요인들이 있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들은 아직도 존재하고, 또 제 경우에도 빙리 못지않게 심각했지만, 저에게는 당면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잊으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 문제들을 간략하게나마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베넷 양 외가의 상황은 비록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베넷 양 어머니의 경우 없는 처신에 비하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당신 어머니와 세 동생은 자주 그런 태도를 보이셨고, 심지어는 아버지이신 베넷 씨까지 동참하시곤 했지요. 용서 바랍니다. 당신의 감정을 거스르는 것은 제게도 고통스런 일입니다. 하지만 가족의 결점이 안타깝고 이런 말을 듣는 것이 불쾌하다고 해도, 당신과 제인 양이 그처럼 비난을 받을 행동을 하지 않아서 모든 이가 칭찬하고, 그것이 두 분의 분별력과 성품에까지 명예로운 칭찬이 되었다는 점으로 위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더 말씀 드릴 것은, 그날 저녁에 보고 들은 일들로 가족 분들에 대한 제 판단은 더욱 확고해졌고, 친구가 불행한 결혼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지 못하게 막아야겠다는 결심도 굳어졌습니다. (p.239-241)
그녀는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다아시를 생각할 때도 위컴을 생각할 때도, 자신이 맹목적이고 불공정하고 편견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었다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행동했는지!" 그녀가 외쳤다. "나 자신의 분별력에 그토록 자부심을 품고 있던 내가! 자신의 능력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긴 내가!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솔직한 언니의 진심을 비웃고, 남들을 쓸데없이 의심하면서 허영심을 채우던 내가! 너무나 수치스러워! 하지만 수치심을 느끼는 건 당연해! 사랑에 빠졌다 해도 이렇게 눈이 멀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문제는 사랑이 아니라 허영심이었어. 처음부터 한 사람은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어 기뻤고 다른 사람은 나를 무시해서 분개했던 거야. 그래서 두 사람과 관련된 모든 일에서 스스로 선입견과 무지를 키우고 이성을 몰아냈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나 자신을 몰랐던 거야." (p.252-25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편견이란 무엇인가 - 애덤 아다토 샌델 (이재석 옮김, 와이즈베리)
가다머가 들려주는 선입견 이야기 - 조극훈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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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리디아가 사람들 앞에서 부주의하고 경한 행동을 벌이면 어떻게 해요? 그것 때문에 우리 모두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지 생각하신다면, 아니 피해는 벌써 입었어요. 그걸 아신다면 이 일을 달리 판단하실 거예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벌써 피해를 입었다고?" 베넷 씨가 말했다. "네 애인 몇 명이 리디아에게 놀라서 달아나기라도 한 거냐? 불쌍한 리지! 하지만 너무 낙심 말아라. 이런 작은 바보짓도 못 견디는 까탈스러운 놈들은 아쉬워할 필요가 없으니까. 자, 어디, 리디아의 바보짓 때문에 물러선 한심한 녀석들의 명단이나 좀 보자."
"그건 아버지 오해예요. 저는 그런 피해를 본 적 없어요. 저는 어디까지나 특정한 사례가 아니라 전반적인 해악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경박하고 뻔뻔스럽고 무절제하고 싫은 소리라면 무조건 듣지 않으려 하는 리디아 때문에, 우리 집안의 지위와 평판이 깎이고 있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해서요. 아버지가 단단히 혼을 내셔서 리디아의 끓어 넘치는 기운을 자제시켜야 해요. 지금 열중하는 일들이 일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가르쳐주시지 않으면, 그 아이는 곧 우리가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될 거예요. 성격이 이대로 굳어지고, 열여섯 살만 되면 남자들과 방종한 행위를 일삼아서 그에 자신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오명을 씌울 거라고요. 방종 가운데서도 최악의 방종으로요. 어리다는 것, 외모가 그런대로 봐줄 만 하다는 것밖에는 아무런 매력도 없고, 무지하고 머리가 비었으니 그렇게 남자들 눈길을 끌려고 열 올리다가는 모든 사람에게 경멸받는 일을 피할 길이 없어요. 키티도 다르지 않아요. 그애는 리디아가 끌고 가는 대로 따라갈 거예요. 허영심 강하고 무지하고 게으르고 제멋대로라고요! 아, 제발 아버지. 그 아이들은 가는 곳마다 비난받고 무시당할 거고, 그렇게 되면 언니들도 불명예스러울 거예요."
베넷 씨는 엘리자베스가 진심을 다해 말하는 것을 보고 따뜻하게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불안해할 것 없다, 얘야. 너와 제인은 어디에서나 존경과 칭찬을 받을 테니까. 너희는 멍청한 동생이 한두 명, 아니 세 명 있다고 해서 가치가 깎일 아이들이 아니야. 리디아가 브라이턴에 가지 못하면 우리 집은 바람 잘 날이 없을 거다. 그러니 보내자꾸나. 포스터 대령은 분별 있는 사람이고, 그 아이가 심각한 문제에 빠지지 않게 해 줄 거야. 다행인 건 그 아이는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기에는 너무 가난하다는 거지. 브라이턴에 가면 리디아는 여기서처럼 가벼운 연애 상대 취급도 못 받을거다. 장교들에게는 훨씬 괜찮은 여자들이 나타나겠지. 그러니까 그 아이가 거기 가서 자기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직접 깨닫게 하자꾸나. 어쨌거나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그애를 평생토록 가둬둘 권리가 생길 테니까." (p.278-279)
오로지 자기 가족의 사례만으로 판단했다면, 엘리자베스는 결혼의 행복이나 가정의 안락함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젊음과 미모, 그리고 젊음과 미모가 흔히 안겨주는 선량한 인상에 반해서 한 여자와 결혼했지만, 그녀의 빈약한 이해력과 협량한 마음에 일찌감치 애정을 접어야 했다. 존경과 존중과 신뢰는 기대할 수 없었다. 가정 행복에 대한 소망은 모두 무너졌다. 하지만 베넷 씨는, 자신의 부주의로 야기된 결과에 실망했다고 해서, 스스로의 우행이나 악행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그런 쾌락에 기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시골 생활과 책을 좋아했고, 그 두 가지를 주요한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가 아내에게 빚진 것이라곤 그녀의 어리석음을 오락의 일부로 삼는다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남자들이 아내에게 일반적으로 바라는 행복은 아니었지만, 진정한 철학자라면 다른 즐거움이 없는 곳에서도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법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남편으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는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아버지의 능력을 존경하고 그가 자신에게 주는 애정에 감사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잊으려고 노력하고, 아버지가 자녀 앞에서 빈번하게 아내를 비웃음거리로 삼아 결혼의 의무와 예절을 위반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결혼에 따르는 문제를 지금처럼 강하게 느낀 적도 없고, 재능을 엉뚱하게 사용할 때 따르는 해악을 지금처럼 똑똑히 인식한 적도 없었다. 베넷 씨가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사용했다면, 아내의 정신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딸들의 품행은 올바로 가르쳤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연대의 이동이 반갑긴 했지만, 위컴이 떠난 일 말고 딱히 좋아할 만한 이유도 없었다. 집 밖의 파티는 전만큼 다채롭지 않았다. 집 안에서도 어머니와 동생이 모든 게 재미없다고 끊임없이 투덜대며 사방에 우울한 그림자를 던졌다. 혼란의 원인이 사라진 까닭에 키티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지 모르지만, 더 걱정스러운 리디아는 해변 휴양지와 군부대라는 두 배로 위험한 상황에서 더 어리석고 뻔뻔하게 굴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그녀는 전체적으로 전에도 가끔 깨달았듯이, 강렬히 바라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도 기대했던 만큼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결과 이제 다른 시기를 골라 그때 진정한 기쁨이 시작되기를 기대해야했다. 거기에 그녀의 소망과 희망을 걸어놓고, 그것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현재의 실망을 위로하고, 새로운 실망에 대비해야 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 여행 계획은 어머니와 키티로 인해피할 수 없었던 그 괴로운 시간 동안 그녀를 지탱해준 가장 큰 위안이었다. 제인만 동행할 수 있다면 계획은 모든 면에서 완벽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게 있어서 차라리 다행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모든 계획이 완벽하다면 나는 분명 실망하게 될 거야. 하지만 언니가 가지 못하는 사실 하나를 계속 안타까워하면서, 내 모든 기대가 실현되기를 희망할 수 없어. 모든 게 완벽한 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전체적인 실망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작은 불만 하나를 남겨 두는 거야." (p.283-285)
외삼촌과 숙모가 그녀에게 와서 그의 외모에 대해 칭찬했지만, 엘리자베스는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자기감정에 휩싸여 말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그녀는 수치스럽고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기에 온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불운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에게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까! 그토록 거만한 남자 앞에서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이람! 그녀가 일부러 그의 길에 나타난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 도대체 왜 왔던가? 아니, 그는 왜 예정보다 하루 일찍 돌아왔단 말인가? 일행이 10분만 일렀어도 그의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때 막 도착해서 말 또는 마차에서 내린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고약한 재회를 상기하며 거듭거듭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그의 행동이 놀랍도록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게다가 그렇게 정중하고 공손하게 말을 걸고 가족의 안부를 묻다니! 그녀는 지금 이 우연한 만남에서만큼 그가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부드럽게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로징스 대정원에서 그녀의 손에 편지를 건네주며 마지막으로 말을 걸 때와 얼마나 다른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떻게 이 변화를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느새 강가의 아름다운 산책길에 들어서자, 걸음걸음마다 길은 우아하게 떨어져 내려갔고, 다가오는 드넓은 숲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이런 풍경들을 하나라도 인식한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 외삼촌과 숙모의 거듭된 감탄에 기게적으로 대답하고, 그들이 가리켜 보이는 것들에 눈을 돌리는 시늉은 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풍경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은 펨벌리 하우스의 한 지점, 어딘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다아시 씨가 있을, 그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녀를 소중히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그가 그토록 예의 바르게 행동한 것은 마음이 담담해서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편해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그가 그녀를 보고 기분이 나빴는지 좋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차분하지 못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냐는 동행들의 말에 그녀는 마침내 정신이 들었고, 겉으로는 차분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p.302-303)
그날 저녁 엘리자베스는 그 전날 밤보다도 펨벌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그날 밤은 아주 길게 느껴졌지만, 펨벌리에 있는 누군가를 향한 감정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길지는 않았다. 그녀는 두 시간 동안 눈을 뜨고 누워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려고 노력했다. 그가 싫은 것은 분명 아니었다. 싫은 감정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그에게 혐오라고 할 만한 감정을 품었던 옛날을 부끄러워했다. 그의 훌륭한 인품을 확신하게 되면서 일어난 존경심은,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얼마 전부터는 다른 감정들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존경심은 어제 들었던 호의적인 증언들에 의해 좀 더 다정한 성격의 감정으로 변하고, 그의 기질을 더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다아시 씨에게 호의를 갖게 된 데에는 존경과 존중을 넘어서는, 간과할 수 없는 동기가 있었다.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한때 그녀를 사랑한 데 그치지 않고 여전히 깊이 사랑해서, 그녀가 그토록 불쾌하고 지독하게 그를 거절하고 부당하게 비난한 걸 용서한 데 대한 감사였다.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고 외면할 줄 알았던 그가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것을 계기로 교제를 이어 나가고자 하는 열망을 보였고, 자신들 둘만이 관련된 일에서 서툴게 관심을 표현하거나 어색한 태도를 보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그녀의 일행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그녀를 동생에게 기꺼이 소개했다. 그렇게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 이렇게 변했다니 놀라웠을 뿐만 아니라 감사의 마음이 함께 솟아났다. 그것은 사랑, 열렬한 사랑에서 비롯된 게 분명했다. 이렇듯 엘리자베스가 받은 인상은 기분 나쁜 것과는 거리가 먼 고무적인 종류의 것이었지만, 그 정체를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이제 그에게 존경과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느꼈고, 그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랐다. 다만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자신이 그의 행복을 주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어느 정도 바라고 있는지, 그리고 아직도 자신에게 남아 있는 듯한 그 매력의 힘을 발산해 그의 구애를 되살리면, 두 사람의 행복에 어느 정도까지 도움이 될까 하는 것이었다. (p.316-318)
오빠가 들어오자, 다아시 양은 훨씬 더 열심히 대화를 나누려고 애썼다.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가 자신과 여동생이 더 친해지기를 간절히 바랐고, 가능한 한 두 사람이 더 많이 대화를 나누도록 배려했다. 엘리자베스는 물론 빙리 양도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고, 결국 분노에 사로잡힌 빙리 양은 경솔하게도, 말할 기회가 오자마자 예의를 갖춘 태도로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일라이자 양, **민병대는 메리턴을 떠났나요? 일라이자 양 가족에게는 손실이 크겠어요?"
다아시의 면전이다 보니 감히 위컴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녀가 특히 그를 염두에 두고 말한다는 것을 금세 알았다.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억에 잠시 괴롭긴 했지만, 그런 고약한 공격을 밀쳐 내기 위해서 그녀는 꽤 무관심한 어조로 답을 했다. 말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다아시 씨를 돌아보니 그 역시 상기된 안색으로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다아시 양은 당황해서 눈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말이 사랑하는 친구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빙리 양이 알았다면, 결코 그런 암시를 던지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녀가 의도한 것은 엘리자베스가 좋아하는 남자 이야기를 끌어들여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고, 그렇게 그녀에 대한 다아시의 평가를 깎아내리고, 군인들 뒤를 쫓아다니던 여동생들을 떠올리게 해 그 일가의 온갖 어리석음과 경솔함을 드러내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다아시 양이 위컴과 달아나려고 했던 계획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던 사람 중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엘리자베스 뿐이었다. 다아시 씨는 빙리 일가에게는 이 일을 더욱더 애써서 감추었는데, 엘리자베스가 오래전에 짐작했던 대로 다아시 양을 빙리 씨와 결혼시켜 빙리 가의 일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소망 때문이었다. 그는 분명히 그런 계획을 품었었고, 굳이 그 때문에 제인에게서 빙리를 떼어놓으려 노력한 것은 아니라 해도, 친구의 행복에 대해 더 깊이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은 있었다. (p.321-322)
분노는 지혜를 안겨주기 어려운 법이다. (p.324)
"정말로 불행한 사건이야. 앞으로 사람들 입에 엄청나게 오르내리겠지. 하지만 우리는 악의 물결을 저지하고, 서로의 상처 난 가슴에 위로의 자매애를 불어넣어야 해."
그런 엘리자베스가 대답하려고 하지 않자 덧붙였다.
"리디아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유용한 훈을 얻을 수 있어. 여자가 정절을 잃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잘못된 한 걸음이 끝없는 파멸로 이어진다는 것, 여자의 평판은 그 미모만큼이나 허약하다는 것, 그리고 형편없는 남자들에 대해서 여자는 아무리 행동을 조심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지." (p.345)
엘리자베스는 이제, 더비셔에서 놀라고 경황이 없던 나머지 다아시 씨에게 리디아 일을 알린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그들의 도주 행각이 결혼으로 신속하고 적절하게 마무리되고 보니,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불미스러운 시작을 감출 수도 있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녀는 다아시 씨가 그 이야기를 퍼뜨릴 것이라고는 걱정하지 않았다. 비밀 엄수에 관한 한 그보다 더 믿을 만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아시 씨에게 동생의 부도덕이 알려졌다는 사실이, 다른 누가 아는 것보다 더 수치스럽고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아니었다. 어쨌건 두 사람 사이에는 넘지 못할 간극이 놓여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디아의 결혼이 명예롭게 이루어졌다 해도, 다아시 씨가 다른 모든 반대 사유에 더해서 그가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는 남자와 일가가 된 집안과 인연을 맺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결합에서 그가 물러서는 것은 당연했다. 더비셔에서는 분명히 그가 자신의 호감을 회복할 거라 기대했겠지만, 그 희망이 이런 일의 충격도 견디고 살아남으리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부끄럽고 슬펐으며, 정체 모를 회한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은 다아시 씨의 흠모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그것을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의 소식을 들을 기회가 가장 희박해진 이 시점에, 그것이 궁금했다. 그와 함께라면 행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일은 이제 불가능해 보였다.
여러 번 생각한 일이지만, 겨우 넉 달 전에 그토록 당당하게 거절한 청혼을 그녀가 이제는 기쁘고도 감사하게 받아들일 것을 안다면, 그가 얼마나 우쭐할 것인가! 그가 그 어떤 남자보다 너그럽고 관대하다는 것을 엘리자베스는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사람인 한 우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그가 기질과 재능 면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남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의 이해력과 성격은 그녀와 다르지만, 그녀의 소망을 남김없이 채워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함이었다. 그녀의 여유롭고 밝은 성격으로 그의 정신은 부드러워지고 태도는 향상되었을 것이고, 그의 판단력과 학식과 세상에 대한 지식으로 그녀는 더욱 큰 이득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에게 진정한 결혼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며 존경을 받을 그런 행복한 결합은 없을 것이다. 대신 그것과 종류도 다르고, 그로 인해 다른 결합의 가능성을 배제시키는 결혼이 그들 집안에서 곧 이루어질 터였다.
위컴과 리디아가 어떻게 적절한 수입을 얻고 살지 엘리자베스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열정이 미덕을 능가한다는 이유만으로 결합한 부부에게 영속적인 행복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p.370-372)
우리 인생의 목표는 이웃들의 놀림감이 되고, 또 때가 되면 우리가 비웃어 주는 게 전부 아니겠니? (p.433-434)
"숙모님을 원망하지 마세요. 제가 처음 이 일에 당신이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리디아 때문이었어요. 리디아가 무심코, 경솔하게 말했으니까요. 그러고 나자 자세한 내용을 알기 전에는 편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온 가족의 이름으로, 두 사람을 찾기 위해 그렇게 수고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려요. 그토록 지독한 수모를 견뎌낸 너그러운 연민에도 감사드립니다."
"굳이 제게 감사하고 싶으시다면,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만 해 주십시오." 그가 대답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이 다른 이유들에 힘을 더했음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가족분들은 제게 빚진 것이 없습니다. 그분들을 매우 존경하지만 저는 오직 당신만을 생각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너무나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다아시 씨가 덧붙였다. "당신은 너그러운 사람이니, 제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시지는 않을 겁니다. 혹 당신의 감정이 아직도 지난 4월과 같다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제 애정과 소망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한마디만 하시면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영원히 함구하겠습니다."
ㄹ리자베스는 그가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어색하고 불안할지를 느끼고, 애써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약간 더듬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전했다. 처음 그런 말을 들은 이후로 자신의 감정이 크게 변했고, 지금은 새로이 거듭된 확인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답이 다아시 씨에게 안겨준 행복은 그가 평생토록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는 그에 대해 열렬한 사랑에 빠진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사려 깊고 뜨거운 말로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의 얼굴 가득 퍼진 진정한 기쁨이 얼마나 그와 잘 어울리는지를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볼 수는 없어도 들을 수는 있었다. 그가 자기감정을 표현하면서 그녀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증명할 때, 그녀는 그의 사랑을 순간순간 더욱 고귀하게 느꼈다. (p.436-437)
"악감정으로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끝은 그렇지 않았어요. 마지막 작별 인사는 온정 자체였죠. 하지만 편지 이야기는 그만해요. 그걸 쓴 사람과 받은 사람의 감정이 그때하고 크게 달라졌으니, 그것과 관련된 불쾌한 상황은 모두 잊어야 해요. 제 인생철학 하나를 배우세요. 기분 좋은 과거만 기억하는 거요.:
"그런 인생철학은 당신의 공적으로 볼 수 없군요. 당신은 돌아봐도 잘못한 게 전혀 없으니 거기 만족하는 건 인생철학이 아니라 그보다 더 좋은 것, 그러니까 순수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경우는 그렇지 않아요. 물리칠 수 없고 물리쳐서도 안 되는 고통스런 기억이 계속 쳐들어 올 겁니다. 저는 평생토록 윤리적 원칙으로는 그렇지 않아도 실제로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 배웠지만, 성격을 올바르게 고치라고 배우지는 못했어요. 좋은 원칙들을 배웠지만, 그걸 오만과 자만 속에 따르게 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외아들로서, (그리고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외동이었죠) 부모님은 저를 응석받이로 키우셨습니다. 좋은 분들이셨지만 (특히 선친은 정말로 너그럽고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우쭐거리고 가족 바깥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세상을 우습게 보도록, 아니 적어도 제 분별력과 가치에 비하면 세상의 그것들을 우습게 보아도 좋다고 허락받은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격려받고 거의 그렇게 배웠습니다. 여덟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엘리자베스, 당신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그랬을 겁니다! 이 모든 게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은 제게 가르침을 주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더없이 유익했어요. 당신으로 인해 저는 겸손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그때 당신에게 가면서, 당신이 저를 받아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기쁨을 줄 만한 여자가에게 기쁨을 준다는 나의 자만이 얼마나 부족한 것이었는지 일러주었습니다."
"제가 반드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고요?"
"그래요. 저의 이런 허영심을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신이 제가 입을 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믿었어요."
"제가 잘못했던 건 사실이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녜요. 당신을 속이려고 한 건 아닌데 제 기분 때문에 자주 실수를 하거든요. 그날 저녁 이후 당신이 얼마나 저를 미워했을까요?"
"미워한다고요! 물론 처음에는 화가 났죠. 하지만 분노는 곧 제 방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펨벌리에서 만났을 때 당신이 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묻기도 두려워요. 제가 거기 온 걸 보고 어처구니없었죠?"
"그럴 리가요. 그저 놀랐을 뿐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놀라셨다 해도 당신에게 들킨 저만큼 놀라지는 않으셨겠지요. 제 양심은 제가 특별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고, 고백하건대 제 몫 이상의 대접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 목적은 모든 예의를 다해서, 제가 지난 일에 분개할 만큼 저열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신이 했던 비난에 주의를 기울였다는 걸 보여서, 용서를 구하고 저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 개선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거기에 다른 소망들이 덧붙은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당신을 본 지 30분가량 지나서였을 겁니다." (p.439-440)
"세상에나! 하느님 맙소사! 어떻게! 세상에나! 다아시 씨라니! 누가 그런 생각을 했겠니! 그런데 정말이니, 리지? 네가 얼마나 부자가 되고 지체가 높아질까? 얼마나 많은 용돈에, 보석에, 마차가 생길까? 제인은 너한테 댈 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지. 이렇게 기쁠 수가. 정말로 좋구나. 사랑스러운 남자야! 잘생기고 키도 크고! 리지야! 그 사람을 그렇게 미워한 걸 용서해 다오. 그 사람이 가볍게 봐주겠지, 뭐. 아, 리지. 런던에도 집이 있고! 모든 게 다 아름답지! 딸이 한꺼번에 셋이나 결혼하다니! 1년에 1만 파운드! 하느님! 이제 나는 어떻게 될까.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구나!" (p.451-452)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고정아 옮김, 시공사 제인 오스틴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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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년 12월 16일 ~ 1817년 7월 18일)
영국의 소설가
1775년 12월 16일에, 햄프셔주 스티븐턴의 교회에서 태어났다. 잉글랜드 성공회 교구사제(Vicar)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1731년 - 1805년)은 그가 9세 때 일찍이 고아가 되었지만, 큰 아버지 프랜시스 오스틴의 도움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 들어갔다. 어머니 카산드라(1739 - 1827)는 제인 외에 7명의 형제자매를 두었다. 큰 오빠 제임스는 아버지와 같이 옥스퍼드에 들어가 시를 발표하였고, 이것은 제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둘째 오빠 조지에 대해서는 별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셋째 오빠 에드워드는 유복한 집 양자로 들어갔고, 넷째 오빠 헨리도 옥스퍼드에 들어갔다. 다섯째 오빠 프랜시스와 남동생 찰스는 모두 해군에 입대하여 제독까지 승진했다. 언니 카산드라와는 생애를 통해 가장 친한 관계로 현존하는 편지의 대부분은 카산드라 앞으로 보내진 것이다. 제인의 초상화는 카산드라가 스케치한 것만이 전해지며, 런던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 보관하고 있다. 또한 반신의 채색화가 제인의 친족들에 의해서 소장되고 있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것은 10대의 제인을 그린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783년에 카산드라도 지인에게 부탁하여 단기간이지만 옥스퍼드 및 사우샘프턴에서 교육을 받았다. 1785년부터 다음 해까지 바크셔 리딩에 있는 리딩 수도원 여자기숙학교에서 배웠다. 당시 다른 일반 소녀보다 충실한 교육을 받아 이전에 많은 문학 작품을 접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영어로 번역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읽었다고 한다. 14세가 된 1789년에는 이미 소설을 습작하기 시작했는데, 친구나 가족에게 읽어주고,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글쓰기가 억압받던 서구 문학사에서도 가족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소설가로 자라 갔다. 소설은 세 권의 노트에 정리했는데, 이것들 중 두 권째에 있는 《사랑과 우정》(Love and Friendship) 등과 같이 벌써 특색이 있는 것도 쓰여지기 시작했다.
1796년 톰 러프로이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청년을 만났고 그와의 연애담이 최초의 낭만적 소문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끌렸다. 제인이 캐산드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사답고, 잘생기고, 유쾌한 청년'이라고 그를 표현한 데서 짐작할 수 있다. 톰 러프로이는 늙어서 자신의 조카에게 말하기를, 젊은 시절의 제인에게서 순수한 사랑을 느꼈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결실을 맺지 못했고, 러프로이가 아일랜드로 돌아간 뒤 서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1795년, 편지체 형식의 《에리나와 메리안》을, 1796년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는 와중에 《첫인상(First Impressions)》을 썼다. 《첫인상》은 아버지에게 권유받아 출판사에 편지까지 보냈지만, 도달하지 않았다. 1797년 11월, 《에리나와 메어리안》을 바탕으로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을 쓰기 시작한다. 게다가 후에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이 되는 《레이디 수잔(Lady Susan)》도 착수해, 1803년에 크로스드사에 판매를 하였다. 그러나 이때 출판되지 못하고, 사후 《설득(Persuasion)》과 함께 출판되었다.
오스틴의 사생활은 거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1801년 아버지 조지는 큰 오빠인 제임스에게 사제직을 양도하고 일가는 당시 유명한 휴양지였던 바스(서머싯주)로 이사를 간다. 제인은 이 사실을 듣고 졸도했다고 하지만, 바스에서의 경험은 이후 소설을 쓰는 큰 밑바탕이 된다. 여기에 가족이 함께 보낸 가옥도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왓슨 가족》은 이 시기에 쓰여졌다가 버려진 것이다.
1802년 해리스 빅 위저드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다. 그는 부유한 젊은이였지만 "아주 서투른" 성격이었으며, 그녀보다 6살 연하였다. 당시 미혼 여성은 평생 아버지와 형제에 의존하여 생활해야 했다. 영국 중류 계급에게 이러한 프로포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제인은 일단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가 하루 만에 마음을 바꾸어 거절을 했다.
1805년 1월 21일 아버지가 사망하자, 오스틴은 어머니와 언니 세 명과 함께 사우샘프턴(Southampton)의 캐슬 스퀘어의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평온하게 살았다.
1809년 아내를 잃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가 본인의 영지가 있는 초턴의 관리인 관리인 집을 내어준다. 제인 오스틴은 죽을 때까지 이 집에 정착한다. 이 집은 오스틴 기념관으로 일반에 개방된다.
1811년, 《맨스필드 파크》를 기고하였고, 나아가 《이성과 감성》을 익명으로 출판하였다. 게다가 1813년 1월에는 《첫인상》을 기초로 한 《오만과 편견》을 출판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익명으로 발표되어 친한 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1814년 5월 《맨스필드 파크》를 간행하지만, 독자나 문단으로부터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이 알려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1815년 10월, 《엠마》의 출판의 직전에, 우연히 제인의 애독자가 된 이후의 조지 4세(당시는 섭정관)를 대접하고, 급히 엠마를 섭정관에 헌정했다.
1816년이 되자 몸상태가 자주 악화되어 병상에 오래 누웠다. 결핵, 애디슨병 등에 감염되었다고 추정지되만 자세한 병명은 불명확하다. 1817년에는 『샌디턴(Sanditon)』 집필 도중 요양을 위해 윈체스터로 옮겼지만, 2개월 후 7월 18일에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의 유해는 《윈체스터 대성당》에 묻혔고, 1818년에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과 《설득》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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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윤지관, 천승희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류경희 옮김, 문동동네 세계문학)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원유경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김유경 옮김, 동서월드북)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김정아 옮김, 펭귄클래식)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조성진 옮김, 을유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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