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이 부르는 소리 - 잭 런던
야성이 부르는 소리
불을 피우기 위하여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
잭 런던의 생애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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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 - 야성이 부르는 소리 (1903년)>
유랑을 향한 오랜 갈망이 솟구쳐
관습의 굴레를 못 견뎌 하더니
겨울잠에 빠진
야성을 다시 일깨운다.
벅은 신문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벅은 자신만이 아니라 퓨젓사운드에서 샌디에이고에 이르는 연안 지대의 억센 근육에 따뜻하고 덥수룩한 털을 가진 모든 개들에게 시련이 닥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북쪽 땅의 어둠 속을 탐색하던 사람들이 노란 금속을 발견하자 증기선 회사와 운송 회사가 그 발견을 요란하게 알렸고, 그러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북쪽 지방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개가 필요했다. 그것도 고된 일을 할 수 있는 억센 근육과 모진 추위에도 견딜 수 있는 털이 북슬북슬한 큼직한 개가 필요했다.
벅은 양지바른 산타클라라 벨리의 큰 저택에 살고 있었다. 그 집은 밀러 판사 댁이라 불렸다. (p.7-8)
이 광대한 영토를 벅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4년을 살았다. 사실 벅 말고 다른 개들도 있었다. 이렇게 넓은 땅에 다른 개들이 없을 리 없었지만, 그들은 중요한 축에 들지 않았다. 그 개들은 복잡한 개 사육장을 들락날락하거나 집 한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았는데, 일본 개인 투츠나 멕시코 종의 털이 없는 이자벨은 문밖으로 코를 내밀거나 땅에 발을 내딛는 일이 거의 없는 별종들이었다. 이들과 달리, 스무 마리 정도 되는 폭스테리어들은 빗자루와 대걸레를 든 하녀들의 보호를 받으며 창 밖으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투츠와 이자벨에게 혼을 내 줄 듯이 무섭게 짖어 댔다.
하지만 벅은 집안에만 있는 개도, 개집에만 사는 개도 아니었다. 저택 전체가 그의 것이었다. 그는 물 탱크에 뛰어들거나 판사의 아들들과 사냥을 나가기도 했다. 판사의 딸인 몰리와 앨리스가 해질녘이나 이른 아침에 오랜 산책에 나서면 같이 따라나섰다. 겨울밤이면 활활 타오르는 저재의 벽난로 앞에서 판사의 발 밑에 드러누워 있기도 했따. 판사의 손자들을 등에 태우거나 풀 위에 뒹굴려 주기도 했고, 그 아이들이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마구간 뜰의 분수까지, 혹은 그 너머 작은 목장이나 딸기 밭가지 모험을 떠날 때면 호위를 했따. 벅은 폭스테리어들 사이를 지나갈 때는 으스댔고, 투츠나 이자벨은 아예 무시했다. 그것은 벅이 인간들을 포함해 밀러 판사 댁의 날고 기는 모든 것들 위에 군림하는 왕이었기 때문이다. (p.8-10)
태어나서 4년을 사는 동안, 귀족적인 삶을 실컷 누렸다. 시골 신사들이 바깥세상을 몰라서 가끔 그렇듯이 벅 역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 그렇다고 아주 응석받이 집 지키는 개가 되지는 않았다. 사냥이나 비슷한 야외 운동으로 비계가 붙지 않았고 근육도 튼튼했다. 냉수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벅도 물을 좋아해서 늘 기력이 왕성하고 건강했다. (p.11)
매뉴얼이 배신을 한 그 잊지 못할 밤, 밀러 판사는 건포도 업자 조합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운동 모임을 꾸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매뉴얼과 벅이 과수원을 지나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고, 그때 벅은 산책을 가는 중이라고만 생각했다. 또한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곤, 그들이 칼리지 파크라는 작은 간이역에 도착하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다. 그 사나이는매뉴얼과 이야기를 나눴고, 둘 사이에는 돈 얘기가 오갔다.
"물건을 건네려면 미리 좀 묶고 올 것이지." 낯선 사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매뉴얼은 벅의 목걸이 아래 튼튼한 밧줄을 두 번 감았다.
"묶어요. 그래야 목이 확 졸릴 테니." 매뉴얼이 말하자 그 낯선 사내는 툴툴거리며 그리 하겠다고 했다.
벅은 얌전하고 위엄 있게 밧줄을 받아들였다. 분명 전에 없던 일이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믿어야 한다고, 또한 자신보다 나은 인간의 지혜를 믿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밧줄의 양끝이 모르는 사람의 손에 쥐어지자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그는 이제까지 으르렁대기만 하면 상대가 굴복한다는 자부심으로 자신의 불쾌감을 알려 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밧줄은 숨을 못 쉴 정도로 그의 목을 꽉 조여 왔다. 벅은 울컥 화가 치밀어 그 사내에게 달려들었는데, 사내는 오히려 벅의 목덜미를 꽉 움켜잡고 잽싸게 비틀어 내동댕이쳤다. 밧줄은 사정없이 조여 왔다. 벅은 너무나 화가 나서 대들었지만, 오히려 혀가 축 늘어지고 숨만 찰뿐이었다. 이런 지독한 대우를 받는 것도, 이렇게 화가 난 것도 난생 처음이었다. 하지만 점차 기운이 빠지고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기차가 역에 들어와 두 사내가 자신을 화물칸에 던져 넣었을 때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벅은 혀가 아프다는 것과 자신이 화물 열차 비슷한 것에 실려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건널목을 지날 때 울리는 날카로운 기적 소리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했다. 판사와 자주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화물 열차의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벅은 눈을 떴다. 두 눈에는 납치된 왕의 억제할 수 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낯선 사내가 그의 목을 움켜잡으려 달려들었지만, 벅이 더 빨랐다. 이빨로 그 사니이의 손을 물고서 다시 한번 의식을 잃을 때까지 이빨에 힘을 놓지 않았다. (p.14-14)
딱 한 가지 기쁜 일은 목을 조이던 밧줄에서 풀려난 것이었다. 밧줄 때문에 불리한 입장이었지만, 밧줄에서 풀려났으니 이제야말로 본때를 보여 주리라. 인간들이 또다시 그의 목에 밧줄을 맬 수는 없을 것이다. 벅은 단단히 결심을 했다. 이틀 밤낮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그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분노가 쌓이고 쌓여서, 이제는 누구라도 벅을 건드리기만 하면 화를 입을 판이었다. 눈에 핏발이 선 벅은 미쳐 날뒤는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너문 변해서 밀러 판사도 벅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운동 회사 배달원들도 시애틀에서 벅의 궤짝을 기차에서 내려놓을 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네 사람이 마차에서 조심스럽게 궤짝을 내려, 담이 높이 쳐진 작은 뒤뜰로 옮겼다. 목둘레가 헐렁한 빨간 스웨터를 입은 건장한 사내가 나와 마부의 장부에 서명을 했다. 벅은 그 사내가 다음 고문자라는 사실을 알아채고서 창살에 맹렬히 몸을 부딪혔다. 사내는 험악하게 웃더니 도끼와 몽둥이를 들고 나왔다.
"지금 꺼내려는 건 아니겠죠?" 마부가 물었다.
"지금 꺼낼 거요." 사내는 이렇게 대답하고서 뚜껑을 열기 위해 도끼로 궤짝을 찍기 시작했다.
궤짝을 들고 갔던 네 명의 사내는 순식간에 흩어져 담 위의 안전한 곳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앞으로의 광경을 지켜볼 태세를 취했다.
벅은 쪼개지는 나무 조각에 달려들어 이빨로 물어뜯고 맞붙어 싸웠다. 밖에서 도끼가 찍힐 때마다 벅은 궤짝 안에서 나가고 싶어 미치겠다는 듯이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은 벅은 꺼내려고 침착하게 궤짝을 부수는 빨간 스웨터의 사내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자, 눈이 시뻘건 악마야." 벅이 나올 만한 구멍이 뚫렸을 때 그 사내가 말했다. 그와 동시에 도끼를 내려놓고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었다.
사내에게 덤벼들려고 털을 곤두세우고 입에는 게거품을 물고 핏발 선 두 분에 광기를 번뜩이며 도사리고 있는 벅의 모습은 영락없이 눈이 시뻘건 악마였다. 이틀 밤낮을 벼르고 벼르던 일이라 벅은 140파운드의 분노의 덩어리가 되어 사내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사내를 물려는 순간 허공에서 벅의 몸뚱이를 저지하는 강타가 날아들었는데, 그 고통스러운 일격에 벅은 이를 악다물어야 했다. 벅은 허공에서 빙빙 돌다가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몽둥이로 맞아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고, 그래서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짖는 건지 비명을 지르는 건지 알 수 없는 으르렁거림으로 다시 일어서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또다시 날아든 한 방에 땅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졌다. 이번에도 몽둥이 때문인 줄 알았지만, 미칠 듯한 분노 때문에 앞뒤를 가릴 수 없었다. 벅은 열두 번이나 덤벼들었고, 그때마다 몽둥이에 걷어차여 단숨에 나가떨어졌다.
한 번은 아주 심하게 얻어맞고서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다시 덤빌 수도 없을 만큼 정신이 아찔했다. 휘청거리며 간신히 일어섰지만, 코와 입과 귀에서 피가 흘렀고 아름다운 털도 피로 물든 침으로 얼룩졌다. 사내는 다시 앞으로 다가와 벅의 콧등을 신중히 호되게 후려갈겼다. 이 한 번의 격렬한 고통은 앞서 견딘 고통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 광포함에 벅은 사자처럼 으르렁대며 또다시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사내는 몽둥이를 왼손에 바꿔 쥐고는 침착하게 벅의 아래턱을 잡고서 뒤로 거세게 비틀었다. 벅은 허공에서 한 바퀴 반을 돌고 나서 머리와 가슴을 땅에 처박았다.
벅은 마지막 돌격을 시도했다. 사내는 이때를 위해 일부러 아껴 두었던 노련한 일격을 가했고, 벅은 쿵 소리와 더불어 나가떨어져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다. (p.18-21)
벅은 의식이 돌아왔지만, 기운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쓰러진 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빨간 스웨터의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름이 벅이라고." 사내는 개를 궤짝에 넣어 보낸 술집 주인의 편지를 읽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자아, 벅, 친구." 사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엔간히 싸웠으니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겠다. 너도 네 처지를 알았을 테고, 나도 내 역할을 잘 안다. 말만 잘 들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거야. 대신 말을 안 들으면 내장이 튀어나오도록 두들겨 패 줄테다. 알겠지?"
이렇게 말하면서 사내는 이제까지 그렇게 두들겨 패던 벅의 머리를 겁도 없이 쓰다듬었다. 벅은 그 손길에 저도 모르게 털이 곤두섰지만, 대들지 않고 참았다. 사내가 물을 가져왔을 때 벅은 정신없이 마셨고, 사내의 손에 올려진 날고기도 한 점 한 점 통째로 삼키면서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벅은 졌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풀이 꺾이지는 않았다. 다만 몽둥이를 든 사람에겐 승산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그 교훈을 체득한 후 벅은 평생 동안 그것을 잊지 않았다. 그 몽둥이는 하나의 계시였다. 몽둥이는 벅에게 야만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를 처음으로 일깨워 주었고, 그도 그 세계에 반쯤 입문했다. 냉혹한 현실이 좀 더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 현실에 겁 없이 달려들었지만, 이제는 감춰졌던 교활한 본성이 눈을 떠 현실에 맞섰다. 날이 갈수록 궤짝에 실려 오고 밧줄에 매인 개들이 속속 몰려왔는데, 순한 놈도 있고 벅처럼 화가 나서 으르렁대는 놈들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 같이 빨간 스웨터 사내의 지배 하에 들어가고 마는 것이었다. 예의 그 참혹한 광경을 거듭해서 지켜볼 때마다 벅의 가슴에 그 교훈이 아로새겨졌다. 몽둥이를 가진 인간은 입법자이므로 비위를 맞출 것까지는 없지만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는 것. 벅은 비위를 맞추는 일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는 몽둥이로 얻어맞은 개가 그 사내에게 알랑거리면서 꼬리를 흔들고 손을 핥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알랑거리지도 복종하지도 않던 개 한 마리가 그 사내에게 끝가지 덤벼들다 결국 죽는 것도 보았다. (p.21-23)
낮이고 밤이나 지칠 줄 모르는 추진기의 고동에 맞춰 배는 나아갔다. 똑같은 날들이 반복됐지만,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추진기가 멈췄고, 나월 호에는 흥분의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다. 다른 개들과 마찬가지로 벅도 그런 기운을 느꼈고, 곧 어떤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프랑수아는 개들을 가죽 끈으로 묶어 갑판으로 끌고 나갔다. 차가운 땅에 발을 내디뎠을 때 벅의 발이 진흙처럼 말랑말랑한 하얀 물질 속으로 쑥 빠졌다. 벅은 놀라서 콧김을 내뿜으며 뒤로 껑충 물러섰다. 이 하얀 물질은 공중에서 자꾸 떨어지고 있었다.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것은 더 많이 몸 위에 떨어졌다. 벅은 시기한 듯이 냄새를 맡고 혀로 핥아 보았다. 벅은 어리둥절했다. 다시 한번 혀를 대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벅은 창피했지만, 웃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벅이 난생 처음 본 눈이었다. (p.27-28)
다이에 해변에서 보낸 첫날은 벅에게 악몽 같았다. 매 순간이 놀라움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갑자기 문명의 심장부에서 벗어나 원시 시계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햇볕을 쬐며 빈둥거리거나 무료하게 지내는 게으른 생활이라는 게 없었다. 여기에는 평화도 휴식도 한순간의 안전도 없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떠들썩했으며, 시시각각 생명과 사지를 위협하는 위험이 있었다. 언제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이곳의 개들과 사람들은 벅의 마을에 사는 개들이나 사람들과는 달랐다. 사람이고 개고 할 것 없이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밖에 모르는 야만인이었다.
벅은 이곳의 늑대 같은 개들이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싸움을 처음 보고서 벅은 잊지 못할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물론 간접 경험이었지만. 만일 직접 싸웠다면 살아남지도, 교훈을 덩지도 못했을 것이다. 컬리가 그 희생자였다. 늑대개들은 땔나무 창고 근처에서 야영을 했는데, 크기가 다 자란 늑대 만했다. 그런데 컬리가 자기 덩치의 반도 안 되는 허스키에게 평소처럼 친근하게 다가갔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 개는 번개처럼 달려들어 딱 하는 금속성 소리를 내고는 다시 번개처럼 물러났다. 컬리의 얼굴이 눈에서 턱까지 쭉 찢겨져 있었다.
그것은 확 물어뜯고 곧바로 물러나는 늑대의 싸움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삼사십 마리의 허스키들이 그 자리에 달려와 두 싸움꾼 주위를 둘러싸고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벅은 그 조용한 긴장도, 개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입맛을 다시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컬러가 덤벼들자 상대 개는 또 덥석 물고 휙 물러섰다. 다시 덤벼들었을 때는 특이한 방식으로 컬리를 가슴으로 받아 넘어뜨렸다. 컬리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구경하던 허스키들이 기다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으르렁대고 캥캥 대면서 컬리에게 다가갔다. 컬리는 털을 곤두세운 개 떼 밑에 깔린 채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사건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뜻밖이어서 벅은 당황했다. 스피치가 비웃는 듯이 붉은 혀를 날름거렸다. 이어서 프랑수아가 도끼를 휘두르며 어수선한 개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세 명의 사내가 몽둥이를 들고 와서 개들을 쫓는 것을 도왔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컬리가 쓰러진 지 2분 만에 개들은 몽둥이를 맞고 모조리 흩어졌다. 하지만 컬리는 피투성이 상태로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갈가리 찢겨져 있었는데, 피부가 거무스레한 혼혈인 프랑수아가 컬리 옆에 서서 무섭게 욕을 퍼부었다. 그 장면은 종종 끔으로 등장해 벅의 잠을 방해했다. 이런 것이다. 공정한 싸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쓰러지면, 그걸로 끝이다. 그렇다면, 절대 쓰러져서는 안 된다. 스피츠는 혀를 내밀고 다시 웃고 있다. 그 순간부터 벅은 놈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심한 적의를 품게 되었다.
컬리의 비극적인 최후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이 벅에게 찾아왔다. 프랑수아가 그의 몸에 가죽 끈과 물림쇠를 채운 것이다. 그것은 고향에서 마부들이 말에게 채우곤 하던 마구와 비슷했다. 전에는 말이 일하는 걸 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벅이 그런 식으로 일해야 했다. 프랑수아를 설매에 태우고 계곡 근처의 숲까지 가서 땔감을 싣고 돌아왔다. 그런 식으로 짐을 끄는 짐승이 돼 버리자 자존심이 몹시 상했지만, 반항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전혀 낯설고 새로운 일이었지만 벅은 최선을 다해 일했다. 푸랑수아는 즉각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엄격한 사람이어서,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바로 채찍을 날렸다. 한편 노련한 썰매 끌이 개인 데이브는 벅이 잘못할 때마다 엉덩이를 물었다. 스피츠도 마찬가지로 노련한 길잡이 개였는데, 녀석은 벅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서 이따금씩 무섭게 으르렁대거나 가야 할 쪽에 교묘하게 체중을 실어 벅을 바른 길로 확 돌렸다. 벅은 금방 배웠고, 두 동료와 프랑수아의 지도 아래 눈에 띄게 발전했다. 그들이 야영지에 도착하기 전에 벅은 '워'에서 멈추고, '이랴'에서 출발하며, 모퉁이를 돌 때는 크게 돌고, 짐을 실은 썰매를 끌며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는 맨 뒤쪽 썰매 끌이 개를 막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세 놈 다 훌륭한 개들이야." 프랑수아가 페로에게 말했다. '저 벅이란 놈, 무서운 힘으로 끈단 말야. 뭐든지 빨리 배워." (p.29-33)
벅은 게걸스럽게 먹었다. 하루분 양식인 볕에 말린 연어 1파운드 반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듯했다. 한 번도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었고, 늘 배고픈 고통에 시달렸다. 그러나 다른 개들은 벅보다 체중이 가볍고 날 때부터 썰매 끌이 개로 태어나서 1파운드의 생선을 먹고도 건강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벅은 예전의 까다로운 식 습관을 재빨리 버렸다. 맛을 가리고 있노라면, 동료들이 제 것을 먹어 치우고는 그의 것을 뺏어 먹었다. 막을 도리가 없었다. 두세 마리를 상대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면 먹이는 다른 놈들의 목구멍으로 사라졌다. 이를 막으려면 빨리 먹을 수밖에 없었고, 배고픔을 이길 수 없을 땐 다른 개들의 몫까지 아무렇지 않게 가로채게 되었다. 벅은 다른 개들을 보고 배웠다. 새로운 개들 중 꾀병 잘 부리고 도둑질에 능한 파이크가 페로가 등으로 돌린 사이 베이컨 한 조각을 슬쩍 훔치는 걸 보고서 벅도 다음 날 같은 수법으로 먹이를 통째로 갖고 달아났다. 큰 소동이 벌어졌지만 벅은 의심을 받지 않았고, 그 대신 실수 잘하고 늘 붙잡히기만 하는 덥이 벅의 못된 짓에 대한 벌을 받았다.
이 첫 도둑질은 벅이 끔찍한 북쪽 당의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적격자임을 입증했다. 그것은 벅의 적요ㅡㅇ성, 다시 말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나타냈다. 그런 능력이 없다는 건 당장에 무참히 죽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더 나아가 그것은 벅의 도덕성 - 가차 없는 생존 싸움에서는 무익한 허영이자 약점에 불과한 - 이 약화되고 무너졌음을 나타냈다. 사랑과 우정의 법칙이 중시되는 남쪽 지방에서는 사유 재산이나 개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아주 좋은 일이었지만,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이 지배하는 북쪽 지방에서는 그런 걸 생각하는 놈은 바보 멍청이였고, 그걸 걸 지키려 들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었다.
벅은 이것을 논리로 안 것이 아니었다. 다만 적격자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생활양식에 적응해 나갔다. 일생 동안 제아무리 승산이 없더라도 싸움을 피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빨간 스웨터 사내의 몽둥이가 그에게 보다 중요하고 원시적인 생활 방식을 심어 주었다. 아직도 문명의 세계에 있었다면, 밀러 판사를 지키는 것과 같은 도덕적 문제를 위해 목숨을 바쳤을 것이다. 하지만 도덕규범을 무시하고 벌을 피할 줄 아는 것으로 보아, 벅은 문명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그는 재미가 아니라 순전히 배가 고파서 남의 것을 훔쳤다. 몽둥이와 엄니가 무서워 공공연히 훔치지는 않고 교묘하게 슬쩍 훔쳤다. 한마디로 그가 한 짓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편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p.42-4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올리버 트위스트 - 찰스 디킨스 (황소연 옮김,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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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은 경험으로 배울 뿐 아니라,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야성의 본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인간 세상에서 대대로 길들여진 습성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희미하게나마 저 먼 야성의 시절, 들개들이 무리를 지어 원시림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잡아먹던 시절을 기억해 냈다. 물어뜯고, 베고, 늑대처럼 덥석 물어 싸우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옛 조상들은 싸웠던 것이다. 그들이 벅 속에 있던 야성을 일깨웠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옛 기술들이 이제는 벅의 것이 되었다. 그 기술들은 늘 그에게 있었던 것처럼 별다른 노력 없이 찾아왔다. 고요하고 추운 밤에 벅이 별을 향해 늑대처럼 길게 울부짖는 모습은 이미 죽어 흙이 된 조상들이 몇 백 년을 거슬러 와서 그의 몸을 빌려 별을 향해 울부짖는 것이었다. 벅의 울부짖음은 조상들의 울부짖음이었다. 그들의 슬픔과, 그들이 겪은 고요와 추위와 어둠이 함께 실린 소리였다.
그리하여 '삶이 참으로 꼭두각시다'라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옛 노래가 벅의 몸속으로 흘러들었고 벅은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벅이 이렇게 된 것은 사람들이 북쪽에서 황금을 발견했기 때문이며, 매뉴얼이 자신의 봉급만으로는 아내와 자식새끼 여럿을 부양할 수 없는 정원사 조수였기 때문이다. (p.45-46)
벅에게 잠재돼 있던 강한 야수성은, 썰매 끌이 생활의 험난한 여건 때문에 점점 더 강해졌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새롭게 익힌 노련함으로 벅은 침착성과 자제력을 얻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데 너무 바빠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어서 벅은 싸움을 걸지도 않았으며, 되도록 싸움을 피했다. 신중한 태도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무분별한 행동과 성급한 짓을 하지 않았다. 스피츠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절대 성급하게 굴지 않았고 공격적인 행동도 일체 삼갔다.
반면에 스피츠는 벅이 위험한 적수임을 알아채고서 기회만 엿보이면 으르렁거렸다. 벅을 골려 주려고 일부러 자기 자리를 이탈하면서까지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끝이 날 수 있는 싸움을 걸려고 끊임없이 애썼다. (p.47)
길잡이 개이자 팀이 인정하는 우두머리인 스피츠는 이 이상한 남쪽 지방의 개에게 패권의 위협을 느꼈다. 사실 스피츠에겐 벅이 참 이상한 놈이었다. 남쪽 지방의 개들을 여럿 보았지만, 야영 생활이나 썰매 끌기를 제대로 해내는 놈은 한 놈도 없었다. 하나같이 너무 약해서 힘든 일과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죽기 일쑤였다. 하지만 벅은 달랐다. 벅은 잘 견디고 잘 자랐으며, 힘이나 야수성이나 노련함이 허스키들 못지않았다. 게다가 벅에게는 지배자다운 기질이 있었다. 그런 지배욕에도 불구하고 벅이 가만히 있는 것은 빨간 스웨터 사내의 몽둥이가 무분별한 용기와 성급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벅은 어떤 놈들보다 영특했고, 타고난 인내력으로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주도권을 차지하는 싸움은 불가피했다. 벅은 그 싸움을 원했다. 그것이 그의 본성이었고, 또한 그는 썰매 끌이 개로서의 뭐라 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자부심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개들을 일하게 만들고, 마구에 매여 서라면 달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구를 벗게 되면 비탄에 빠지는 그런 자부심에, 이것은 썰매 끌이 개로서의 데이브의 자부심이자 전력을 다해 썰매를 끄는 솔렉스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또한 야영지를 출발할 때마다 개들을 사로잡아, 뚱하고 음울한 짐승에서 부지런하고 열성적이며 의욕적인 썰매 끌이 개로 바꾸어 놓는 자부심이면서, 하루종일 그들을 질주시켰다가 캠프를 치는 밤이면 사라져서 그들을 침울한 불안과 불만에 빠뜨리는 자부심이었다. 이러한 자부심이 스피츠를 견디게 해 주고, 실수를 하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아침에 마구를 채울 때 달아나는 개들을 혼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바로 이 자부심 때문에 스피츠는 벅에게 길잡이 개의 지위를 빼앗길까 두려워했다. 이것은 또한 벅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p.59-61)
도슨에 가까워지는 그 뒤 며칠 동안 벅은 스피츠와 규율을 어기는 개들 사이에 계속 끼어들었다. 하지만 영악하게도 프랑수아가 없을 때만 그렇게 했다. 벅의 은밀한 반란에 다른 개들도 영향을 받으면서 스피츠에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데이브와 솔렉스는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다른 개들은 점점 더 말을 듣지 않았다. 일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말다툼과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늘 골칫거리가 생겼고, 그 배후엔 벅이 있었다. 푸랑수아는 벅 때문에 한시도 감시를 늦출 수 없었다. 그것은 조만간 두 녀석 사이에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리라는 염력 때문이었다. 다른 개들이 다투는 소리만 들려도 벅과 스피츠가 싸우는 게 아닌가 싶어 자다 말고 뛰쳐나오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고, 그들은 결전의 날을 남겨 놓은 채 어느 쓸쓸한 오후 도슨에 도착했다. 도슨에는 사람도 많고 개도 셀 수 없이 많았는데, 개들은 저마다 일을 하고 있었다. 개란 족속은 모름지기 일을 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개들은 온종일 썰매 부대를 이끌고 한길을 왔다 갔다 했고, 밤에도 여전히 방울 소리를 딸랑거리며 지나다녔다. 개들은 오두막용 통나무와 장작을 싣고서 광산까지 운반했고, 산타클라라 밸리에선 말들이 하던 온갖 노역을 그들이 대신했다. 여기저기서 남쪽 지방의 개들과 마주치긴 했지만, 대개는 사나운 늑대 같은 허스키들이었다. 그들은 매일 밤 일정하게 9시, 12시, 3시면 섬뜩하고 기괴한 밤 노래를 불렀는데, 벅도 그 대열에 기꺼이 합류했다.
북극의 오로라가 머리 위로 차갑게 타오르거나 별들이 추운 하늘에서 춤을 출 때, 그리고 대지가 하얀 눈의 음침한 장막에 덮여 꽁꽁 얼어 있을 때, 허스키들이 불렀던 이 노래는 삶에 대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노래는 길게 꼬리를 끄는 울부짖음과 흐느낌이 섞인 단조의 가락이었는데, 도전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탄원이자 생존의 고달픔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태곳적부터 내려온 옛 노래 - 노래로 슬픔을 표현했던 원시 시대의 최초의 노래 중 하나 - 였다. 그 노래 속에는 무수한 조상들의 슬픔이 깃들여 있었고, 그 슬픔은 이상하게 벅을 흥분시켰다. 벅이 울부짖고 흐느낄 때, 그것은 그의 야생의 조상들이 겪은 삶의 고통과 같은 고통에서 나오는 소리였으며, 야생의 조상들이 느낀 추위화 어둠에 대한 공포와 신비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또한 벅이 밤 노래에 흥분하는 것은 그가 벽난로와 지붕이 있는 문명의 품을 떠나 거침없이 울부짖는 태곳적의 야생의 개로 완전히 되돌아갔음을 의미했다. (p.62-64)
첫날을 50마일을 달려 식스티마일즈에 이르렀다. 이튿날은 열심히 달려 펠리로 가는 길곡인 유콘강까지 갔다. 그러나 이런 좋은 성적을 거둔 데는 푸랑수아의 엄청난 노고와 마음고생이 따랐다. 벅이 주도한 엉큼한 반역으로 팀의 단결이 깨진 것이다. 대열을 이탈하는 개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벅의 부추김으로 개들은 온갖 짓궂은 짓들을 저질렀다. 스피츠는 더 이상 두려운 대장이 아니었다. 이제까지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모두들 그의 권위에 도전할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 밤 파이크가 스피츠의 고기를 반이나 빼앗아 벅의 호위 아래 그것을 꿀꺽 삼켰다. 또 한 번은 덥과 조가 스피츠에게 대들었는데,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교묘히 피했다. 마음 착한 빌리마저 성질이 사나워졌고 옛날처럼 동정을 구하듯 애처롭게 울지 않았다. 벅은 스피츠에게 접근할 때마다 으르렁대면서 털을 곤두세웠다. 사실 벅은 거의 싸움 대장처럼 행동했고, 스피츠의 코앞을 으스대며 지나다니길 좋아했다.
규율이 무너지자 개들 사이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개들끼리의 싸움이 전보다 빈번해졌고, 어떤 때는 야영지가 개 짖는 소리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데이브와 솔렉스만이 끝도 없는 다툼에 짜증을 내면서도 한결같았다. 프랑수아는 혼을 내주겠다며 별의별 심한 욕을 퍼부었고, 화가 나서 괜스레 눈을 쾅쾅 짓밟고 머리카락도 쥐어뜯었다. 개들에게 쉴 새 없이 채찍을 날려 보아도 별 소용이 없었다. 프랑수아가 돌아서기가 무섭게 개들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그가 채찍으로 스피츠를 응원하면, 벅은 반대로 다른 동료들을 편들었다. 프랑수아는 이 모든 말썽의 배후에 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벅은 워낙 영리해서 꼬투리 잡히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았다. 벅은 썰매 끄는 일을 충실히 수행했는데, 그것은 그 일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을 피해 동료들 간에 싸움을 부채질하고 썰매 줄을 엉키게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p.65-67)
어느 날 밤 탈키트나 강 어귀에서 저녁 식사 후에 덥이 눈덧신토끼를 발견했는데 우물쭈물하다 놓치고 말았다. ㅅ훈식간에 개들이 일제히 짖기 시작했다. 백 야드쯤 떨어진 곳에 서북 지구 경찰의 임시 주둔지가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50마리의 허스키들도 추적에 가세했다. 토끼는 강으로 급히 내려가서 작은 시내로 방향을 틀어 꽁꽁 언 강바닥을 따라 계속 달렸다. 토끼는 눈 위를 경쾌하게 달리는 반면 개들은 온 힘을 다해 눈을 헤치며 나아갔다. 벅은 60마리다 되는 개들의 선두에 서서 이쪽저쪽으로 계속 쫓았지만 따라집지를 못했다. 벅은 아주 낑낑대며 자세를 낮춰 달렸는데, 멋진 몸매가 앞으로 도약할 때마다 파리한 달빛에 비쳤다. 마찬가지로 토끼도 깡충깡충 뛸 때마다 창백한 유령처럼 번뜩였다.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소란한 도심에서 벗어나 숲과 들에 나가 총알로 사냥감들을 쏘아 죽이고 싶게 하는 저 꿈틀대는 오랜 본능, 피를 보고 싶은 욕구, 살생에 대한 기쁨, 이 모든 것이 벅의 욕망이었지만, 그의 욕망은 인간들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었다. 그는 개들의 선두에 서서 살아 있는 야생의 먹이를 쫓아 이빨로 물어뜯고 그 따뜻한 피로 주둥이를 적시고 싶었다.
삶의 극치를 이루는, 혹은 삶의 극치를 넘어선 황홀경이 있다. 이런 황홀경이 가장 살아 있을 때, 그리고 살아 있다는 사실마저 완전히 망각했을 때 찾아온다는 것은 분명 삶의 모순이다. 이 황홀경, 곧 살아 있음에 대한 망각은 창작열에 사로잡혀 그 불길에 자신을 잊어버리는 예술가에게 찾아오며, 공포에 휩싸인 전장에서 미쳐 날뒤며 항복을 거부하는 군인에게 찾아온다. 그런 황홀경이 개들의 선두에 서서 태곳적의 늑대 울음소리를 내며 달빛 사이로 눈앞에서 잽싸게 도망치는 먹이를 필사적으로 쫓고 있는 벅에게 찾아왔다. 벅은 그의 가장 깊은 본성, 시간의 태동기로 거슬러 올라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저 먼 옛날의 본성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삶에 대한 지극한 격동, 출렁이는 본성의 요동, 각각의 근육과 관절과 힘줄의 완벽한 환희가 벅을 사로잡았다.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모든 것이 저마다 들썩거리고 별빛 아래 움직이지 않는 죽은 대지 위를 기뻐 날뛰면서 달아오르고 요동쳤다.
그러나 스피츠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도 냉정하게 계산을 하여 무리를 떠나 강이 크게 구부러지는 좁은 길목을 가로질렀다. 벅은 스피츠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벅은 하얀 유령 같은 토끼를 여전히 눈앞에서 쫓으며 그 긴 굽이를 둘러서 갔는데, 쑥 튀어나온 둑 위에서 더 큰 하얀 물체가 튀어나와 앞선 토끼를 덮치는 것을 보았다. 스피츠였다. 토끼는 진로를 바꿀 수가 없었고, 스피츠의 하얀 이빨이 공중에서 등을 물어뜯자 총에 맞은 사람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이 소리, '죽음'의 손아귀에서 마지막 '생명'의 절규를 내질렀다가 잠겨드는 '생명'의 외침을 들었을 때, 벅을 따르던 모든 개들이 무시무시한 환희의 함성을 내질렀다.
벅은 소리 지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억누르지 않고 곧바로 스피츠에게 달려들었는데, 어깨와 어깨가 너무 심하게 부딪쳐서 스피츠의 목을 놓치고 말았다. 그 둘은 눈가루를 날리며 엎치락뒤치락 뒹굴었다. 스피츠는 뒹군 적도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나 벅의 어깨를 덥석 물고는 뒤로 휙 물러섰다. 얄팍한 입술을 위로 일그러뜨려 으르렁대면서 적당한 자리로 물러섰을 때, 강철 덫이 맞물릴 때처럼 이빨을 두 번 딱딱거렸다.
순간 벅은 알았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벅과 스피츠는 귀를 뒤로 착 붙인 채 으르렁대고 열심히 기회를 노리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벅은 그 광경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얀 숲, 땅, 달빛, 그리고 싸움의 ㅣ전율이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무시무시한 정적이 고요한 순백의 세계를 뒤덮었다. 희미한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나뭇잎 하나 떨리지 않았다. 들리는 것이라곤 추위 속에서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는 개들의 숨소리뿐이었다. 개들은 토기를 삽시간에 먹어치웠는데, 길들여지지 않은 늑대와도 같았다. 이제 그들은 싸움의 결과를 기대하며 벅과 스피츠를 빙 둘러쌌다. 그들은 눈만 번득인 채 침묵을 지키며 천천히 숨결을 높였다. 벅에게는 이 광경이 오래전부터 봐 왔던 것처럼 새롭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 늘 있어 왔던, 익숙한 삶의 모습 같았다. (p.67-7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광염 소나타 - 김동인 (사피엔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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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츠는 상처 하나 없었지만 벅은 피를 뚝뚝 흘리며 몹시 헐떡거렸다. 싸움은 점점 필사적으로 변했다. 두 놈이 싸우는 동안 빙 둘러선 허스키들은 어느 하나가 쓰러지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벅이 몹시 헐떡거리자 이번에는 스피츠가 덤벼들었고, 녀석은 계속해서 벅을 휘청거리게 했다. 한 번은 벅이 벌렁 나자빠지자 빙 둘러선 60마리의 개들이 일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벅이 기운을 차리고 자세를 바로잡자 놈들은 다시 주저앉아 결과를 기다렸다.
벅에게는 위대해질 수 있는 한 가지 자질, 즉 상상력이 있었다. 벅은 본능적으로 싸웠지만, 머리로도 싸울 수 있었다. 그는 오래된 수법인 어깨 치기를 쓰는 척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몸을 숙여 스피츠에게 달려들었다. 벅의 이빨이 스피츠의 왼쪽 앞다리를 물었다. 우두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스피츠는 세 발로 벅과 맞섰다. 벅은 세 차례나 상대를 넘어뜨리려고 하면서 예의 그 수법으로 상대의 오른쪽 앞다리마저 분질렀다. 스피츠는 고통스럽고 무력한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스피츠는 빙 둘러선 개들이 눈을 반짝이고, 혀를 축 늘어뜨리고,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자신에게 몰려드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일찍이 본 적 있는, 패한 자에게 접근하는 개들의 모습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자신이 패자였다.
스피츠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벅은 냉혹했다. 자비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나 통하는 얘기였다. 벅은 마지막 계략을 짰다. 원은 점점 더 좁아져서 허스키들의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벅은 스피츠의 맞은편과 양쪽에서 개들이 언제다로 덤벼들 태세로 반쯤 웅크린 채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순간 모두가 얼어붙었다. 모든 동물이 돌덩이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직 스피츠만이 이리저리 휘청거리면서 임박한 죽음의 위협으로 쫓아낼 듯이 무섭게 으렁대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털을 곧두세웠다. 그때 벅이 확 덤벼들었다가 물러섰다. 하지만 다시 덤벼들어 마침내 어깨와 어깨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검은 원이 환한 달빛 아래 한 점이 되자 스피츠의 모습이 사라졌다. 벅은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승리자, 살인을 하고 좋아하는 일인자로서의 야수의 모습이었다. (p.72-74)
캐시어 바에 도착할 무렵 데이브는 너무나 쇠약해져서 썰매를 끌다가 몇 번이나 넘어졌다. 스코틀랜드 계 혼혈인이 썰매를 멈추라고 한 뒤 데이브의 마구를 풀고서 솔렉스를 그 자리에 세우려 했다. 그는 데이브를 썰매 끌이에서 풀어 주고 자유롭게 달리게 하여 쉬게 해 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픈데도 데이브는 마구를 푸는 동안 으르렁대면서 제 자리를 뺏기는 것에 분개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지키고 있던 제 자리를 솔렉스가 차지하는 것을 보고서 상심하여 낑낑거렸다. 썰매를 끄는 것이 그의 긍지였기 때문에 아파서 죽을 지경인데도 다른 개가 제 일을 대신하는 것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p.88-89)
하지만 데이브는 야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끝까지 버텼고, 개 몰이꾼은 불 옆에 녀석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튿날 아침 데이브는 너무 약해져서 썰매를 끌 수가 없었다. 마구를 채울 시간이 되자 녀석은 겨우 일어서서 비틀대며 걷다가 푹 쓰러졌다. 그리고는 동료들의 마구가 채워지고 있는 썰매 쪽으로 벌레처럼 천천히 기어갔다. 녀석은 앞발을 내밀어 몸을 앞으로 확 끌어당겼고, 다시 앞발을 내밀어 몸을 확 끌어당겨 조금 앞으로 나아갔다. 곧이어 완전히 쓰러졌다. 눈 속에 숨을 헐떡거리며 동료들 곁으로 가고 싶다는 듯이 쳐다본 것이 데이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지만 데이브는 강가의 숲 뒤로 썰매가 사라질 때까지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갑자기 썰매가 멈췄다. 스코틀랜드 계 혼혈인이 방금 떠나온 야영지로 천천히 되돌아갔다. 사람들의 얘기 소리가 그쳤다. 그리고 한 방의 총성이 울렸다. 그 사내는 서둘러 돌아왔다. 채찍 소리가 나고 방울 소리가 딸랑딸랑 울리자 썰매는 눈보라를 일으키며 출발했다. 그러나 강가의 숲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벅도 다른 개들도 알고 있었다. (p.91-92)
신참 개들은 부실하고 절망적인 데다, 고참들은 이미 지나온 2천 5백 마일의 장정에 녹초가 되어 있어서, 앞으로의 여행 전망이 전혀 밝지 못했다. 그런데도 두 사내는 아주 쾌활했다. 게다가 우쭐해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개를 열네 마리나 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넘어 도슨으로 가거나 도슨에서 오는 여러 썰매들을 보았지만, 열 네 마리가 이끄는 썰매 부대는 하나도 없었다. 북쪽 지방을 여행할 때, 한 대의 썰매를 열 네 마리의 개가 끌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한 대의 썰매로는 그 많은 개들의 식량을 나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찰즈와 핼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펜을 굴리면서, 개 한 마리의 식량이 얼마나 되고, 이 정도 숫자면 얼마의 식량이 필요하며,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계산했다. 머시디즈는 이들의 어깨너머로 그 계산을 보면서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은 실로 간단해 보였다.
이튿날 아침 늦게 벅은 긴 썰매 부대의 선두에 섰다. 그 대열에는 활기라곤 없었고, 벅과 동료들은 한 발짝 내디딜 기운도 없었다. 그들은 거의 기진맥진이었다. 벅은 이제까지 솔트 워터와 도슨 사이를 네 번이나 왕복했다. 그런데 이렇게 지친 상태로 또다시 길을 나서야 하는 것이 몹시 화가 났다. 일할 마음이 나지 않았고, 그것은 다른 개들도 마찬가지였다. 신참 개들은 소심하고 겁이 많았으며, 이전 개들은 새 주인을 믿지 못했다.
벅은 왠지 모르게 이 두 사내와 여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은 일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데다, 날이 갈수록 배울 줄도 모르는 인간들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모든 일 처리가 느슨하고 원칙이나 질서가 없었다. 텐트를 치는 데만도 반나절이나 걸렸고, 텐트를 거둬 짐을 썰매에 싣는 데 아침나절을 보냈으며, 짐을 엉성하게 실어서 썰매를 세우고 짐을 다시 싣는 데 낮 시간을 다 보냈다. 이런 형편이라 어떤 날은 10마일도 못 가는가 하면 어떤 날은 아예 출발조차 못했다. 개들의 식량을 계산하여 원래 가기로 계획한 주행 거리의 반 이상을 달려 본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개들의 식량이 바닥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개들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여서 식량이 줄어들 날을 그만큼 빨라지게 했다. 오래 계속된 배고픔에다, 최소의 양을 최고로 이용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신참 개들은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여기에다 지친 허스키들이 힘없이 썰매를 끄는 것을 보고서 핼은 정해 놓은 먹이가 너무 적다고 판단하여 양을 배로 늘렸다. 거기다 머시디즈는 예쁜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개들에게 먹이들 더 주라고 애원했고, 그것도 안 되면 자루에서 생선을 몰래 꺼내 개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벅과 다른 개들에게 필요한 것은 먹이가 아니라 휴식이었다. 천천히 가긴 했지만, 그들은 무거운 짐을 실은 썰매의 무게에 진이 빠지고 있었다.
드디어 먹이의 양을 줄일 때가 왔다. 어느 날 아침 핼은 개의 식량이 반이나 줄였는데도 아직 4분의 1밖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개를 아무리 사랑하고 돈이 있다 해도 식량을 구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핼은 먹이의 양을 줄이고 더 빨리 가려고 애썼다. 그의 누이와 매형도 동의했다. 하지만 무거운 짐과 그들의 무능력으로 그 계획은 좌절되었다. 개들의 먹이를 줄이기는 쉬웠지만, 개들을 더 빨리 달리게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아침에 늑장을 부렸기 때문에 여행 시간을 더 줄어들었다. 그들은 개를 부릴 줄도 몰랐을 뿐 아니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p.104-107)
이 무렵이 되자 이들 세 사람에게선 남쪽 사람 특유의 상냥함과 온순함이 사라졌다. 북쪽 땅 여행의 매력과 낭만적인 분위기가 사라지자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여행은 너무나 가혹한 현실로 다가왔다. 머시디즈는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며 남편과 남동생과 다투는 데 정신이 팔려서 더 이상 개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 그들이 유일하게 지치지 않고 하는 것이 말다툼이었다. 그들의 짜증은 불행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짜증이 불행과 더불어 커지고 합쳐지면서 오히려 불행을 자초하고 말았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부드러운 말투와 친절을 잊지 않는 개 몰이꾼의 훌륭한 인내심이 이들에게는 없었다. 그런 인내심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경직되어 있고 고통스러워했다. 근육도 아프고 뼈도 쑤시고 마음도 아팠다. 그런 고통 때문에 말씨는 더욱 거칠어지고 아침부터 밤까지 입씨름만 계속되었다. (p.107-108)
찰즈와 핼은 머시디즈가 기회만 만들어 주면 서로 싸웠다. 둘 다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한다고 믿어서 틈만 나면 이 문제를 놓고 다퉜다. 머시디즈는 때로는 남편의 편을 들고, 때로는 동생 편을 들었다. 그 결과 진저리 나는 가족 싸움이 되어 버렸다.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누가 장작을 팰 것인가로 논쟁(순전히 찰즈와 핼 두 사람만 관련된 논쟁)을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다른 가족 성원들, 어머니, 아버지, 삼촌, 사촌들, 심지어는 몇 천 마일이나 떨어진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까지 들먹였다. 핼의 예술관이나 그의 외삼촌이 쓴 사회극이 장작을 패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논쟁은 그런 방면이나 찰즈의 정치적 편견으로 흐르기 일쑤였다. 우스운 것은 찰즈의 누이가 남의 말을 옮기고 다니는 것과 유콘 강가에서 불을 피우는 것이 머시디즈에게는 분명히 관련이 있었다. 머시디즈는 그 주제에 대해 연신 떠들어 대고 나서 그에 덧붙여 남편 집안의 몇 가지 흠도 늘어놓았다. 그동안 불은 지펴지지 않고, 텐트는 치다 만 채 있으며, 개들은 쫄쫄 굶고 있어야 했다. (p.108-109)
"그 사람들 말이 맞는 말이요." 손턴이 말했다. "언제 물속으로 빠질지 모르는 거요. 바보들. 다시 말해 무턱대고 요행을 바라는 바보들이나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요. 솔직히 나 같으면, 알래스카의 금덩이를 다 준대도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않겠소."
"그야 당신은 바보가 아니니까." 핼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슨으로 갈 겁니다." 그는 채찍을 휘둘렀다. "일어나, 벅! 어이! 일어나! 가자!"
손턴은 계속 도끼 손잡이를 다듬었다. 그는 바보에게 어리석음을 얘기해 봤자 헛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세상에 바보가 두세 명쯤 늘고 준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개들은 핼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매를 맞지 않고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와 있었다. 무자비한 일을 시키기 위해 채찍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존 스턴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솔렉스가 제일 먼저 가까스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틱이 일어섰다. 이번에는 조가 아파서 끙끙거리며 일어섰다. 파이크의 노력은 애처로웠다. 녀석은 두 번이나 반쯤 일어섰다가 쓰러졌고, 세 번째에야 겨우 일어섰다. 벅은 일어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쓰러진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채찍이 연신 날아들었지만, 소리를 지르지도 버둥대지도 않았다. 손턴은 몇 번이나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손턴의 눈에 눈물이 어렸고, 채찍질이 계속되자 일어나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왔다 갔다 했다.
벅이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사실 자체가 핼을 화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채찍 대신 이번에는 몽둥이를 들었다. 채찍보다 더 아픈 몽둥이 세례를 받으면서도 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른 개들처럼 어떻게든 일어설 수 있었지만, 그들과 달리 벅은 일어서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벅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그 느낌은 강둑에 들어섰을 때 강하게 느껴졌고, 그 뒤로도 계속 떠나질 않았다. 온종일 밟고 지나온 녹아 가는 얇은 얼음의 감촉에서 그는 주인이 몰고 가려는 앞으로의 얼음 위에 재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는 요동도 하지 않았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또 너무 지쳐서 몽둥이를 아무리 맞아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몽둥이가 날아들 때마다 몸 안의 생명의 불꽃이 타올랐다가 꺼졌다. 그 불꽃은 거의 꺼져 있었다. 몸이 이상하게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맞고 있다는 사실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고통을 느끼는 최후의 감각마저 없어졌다. 이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몽둥이가 몸에 부딪치는 소리만이 아주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그 몸마저도 제 것이 아니라, 아주 멀리 있는 다른 누군가의 몸 같았다. (p.116-118)
벅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손턴이 다가와 무릎을 꿇고서 거칠면서도 친절한 손길로 부러진 데가 없나 살펴 주었다. 여기저기 멍만 들고 심한 굶주림 외엔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무렵 썰매는 1/4마일이나 가 있었다. 벅과 손턴은 썰매가 얼음 위를 기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썰매 뒤쪽이 홈에 빠질 때처럼 푹 꺼지면서 핼이 잡고 있던 썰매 채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뒤이어 머시디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찰즈가 돌아서서 한 발 물러서자마자 그 근방의 얼음이 깨지면서 개들도 사람들도 사라졌다. 보이는 것은 커다란 구멍뿐이었다. 강바닥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존 스턴과 벅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불쌍한 녀석." 존 스턴이 말했고, 벅은 그의 손을 핥았다. (p.120-121)
또다시 봄이 왔다. 오랜 방황 끝에 그들이 발견한 것은 "전설의 통나무집"이 아니라 넓은 골짜기에서 프라이팬을 씻을 때 뜨는 누런 버터처럼 사금이 깔려 있는 물 얕은 금광이었다. 방랑은 여기서 끝이 났다. 하루종일 일해서 그들은 순수한 사금과 금덩이로 수천 달러를 벌었다. 그들은 날마다 일했다. 금은 무스 가죽 자루에 넣었는데, 한 자루에 50파운드씩 들어갔다. 자루는 가문비나무로 지은 오두막 바깥에 장작더미처럼 쌓였다. 그들은 초인처럼 열심히 일했는데, 금 자루를 쌓고 있을 동안 시간은 마치 꿈처럼 금방 지나갔다.
개들이 하는 일은 가끔가다 손턴이 잡은 사냥감을 물고 오는 것밖에 없었고, 벅은 모닥불 옆에서 몽상에 잠겨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일이 통 없었기 때문에 다리가 짧은 털복숭이 인간의 환영이 전보다 자주 나타났고, 벅은 불 옆에서 눈을 깜박이며 자신이 기억해 낸 또 다른 세계를 털복숭이 인간ㄴ과 함께 돌아다녔다.
이 다른 세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공포인 것 같았다. 털복숭이 인간은 머리를 두 무릎 사이에 묻고 손을 머리 위에 깍지 낀 채 불 옆에서 잠을 잤는데, 자다가 몇 번이나 깜짝 놀라 잠을 깼고 그때마다 불안스레 어둠 속을 응시한 후 장작을 몇 개 불 속에 던져 넣었따. 함께 바닷가를 거닐 때면 털복숭이 인간은 조개를 주워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치웠으며, 눈은 연신 보이지 않는 위험에 두리번거렸고, 다리는 위험이 닥치자마자 번개처럼 달아날 태세가 되어 있었다. 숲 속을 지나갈 때는 발소리를 죽였는데, 벅은 털복숭이 인간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벌름거리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털복숭이 인간의 귀와 코도 벅만큼 예민했다. 그는 땅에서 다닐 때처럼 나무 위로도 빠르게 다닐 수 있었는데, 팔을 흔들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뛰었다. 때로는 12피트나 떨어진 곳을 펄쩍 뛰는데도 절대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정말로 그는 땅에서처럼 나무 위에서도 아주 편해 보였다. 벅에게는 털복숭이 인간이 꼭 붙들고 잠이 드는 나무 밑에서 망을 보며 여러 날 밤을 지샌 기억이 있었다.
털복숭이 인간의 환영과 아주 비슷하게 숲 속 깊은 곳에서의 소리도 여전히 들렸다. 그 소리는 벅에게 아주 불안하고 이상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 소리는 막연하고 감미로운 기쁨을 느끼게 했는데, 벅은 뭔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미칠 듯한 열망과 흥분을 느꼈다. 가끔은 그 소리를 쫓아 숲 속으로 들어가서, 그 소리가 마치 만질 수 있는 물체나 되는 듯이 기분에 따라 조용히, 혹은 대담하게 찾으러 다녔다. 벅은 서늘한 숲의 이끼나 키 큰 풀들이 나 있는 검은흙 속에 코를 박고서 비옥한 땅의 냄새를 기쁘게 맡았다. 혹은 버섯으로 뒤덮인 쓰러진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듯 몇 시간이고 쭈그리고 앉아 주위에서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모든 것들에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어쩌면 벅은 그렇게 하고 있으면 알 수 없는 그 소리의 진원지를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벅은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했지만, 왜 그런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뿌리칠 수 없는 충동이 벅을 사로잡았다. 그날 벅은 한낮의 더위에 야영지에 누워서 나른하게 졸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귀를 쫑긋 세워 무슨 소리를 듣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그는 숲 속의 길과 검은 돌이 깔려 있는 빈터를 가로질러 몇 시간이고 달렸다. 그는 물이 말라버린 물길을 달리고 숲 속의 새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생활을 염탐하는 일을 좋아했다. 어떤 때는 하루종일 덤불 아래 누워 자고가 퍼덕거리며 보란 보란 듯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것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벅이 특히 좋아한 것은 여름 한밤의 어스름 속을 달리면서 숲의 조용하고 가라앉은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이 책을 읽는 것처럼 여러 자취와 소리를 읽고, 자신을 부르는 신비의 소리, 자나 깨나 늘 자신을 오라고 부르는 소리를 찾는 일이었다. (p.152-155)
벅은 상대를 공격하는 대신 주위를 빙빙 돌면서 우호적인 태도로 상대에게 접근했다. 늑대는 의심스러워하고 두려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벅이 자신보다 체중이 세 배나 더 나가고 키도 머리 하나가 더 컸기 때문이다. 늑대는 기회를 엿보아 쏜살 같이 달아났고, 또다시 추격이 시작되었다. 여러 번 늑대는 궁지에 몰렸다가 다시 달아나곤 했다. 늑대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그리 쉽게 벅에게 따라잡히지 않았다. 녀석은 벅의 머리가 자기 옆구리 근처에 올 때까지 내달렸고, 궁지에 몰렸을 때는 빠져나갈 기회가 포작되자마자 쏟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결국 벅이 끈질기게 버틴 보람이 있었다. 늑대는 상대가 적의를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벅에게 다가와 코를 킁킁거렸다. 곧이어 그들은 친해졌고, 사나운 짐승의 기질에 어울리지 않게 우물쭈물 수줍어하는 태도로 장난을 쳤다. 이렇게 장난을 치다가 늑대는 어딘가를 정해 놓고 가는 것처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벅에게도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두 짐승은 어스름한 새벽길을 나란히 달렸다. 그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강이 시작되는 골짜기로 들어가 강의 수원인 황량한 분수령을 넘었다.
그들은 분수령 반대편의 비탈을 내려가서 울창한 숲과 많은 개울들이 길게 펼쳐진 평지에 들어섰다. 그들은 이 긴 숲을 몇 시간이고 달렸는데, 해가 높이 솟아오르자 날씨가 점점 따뜻해졌다. 벅은 미칠 듯이 기뻤다. 그는 숲의 형체와 나란히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달리면서 이제야 자신이 그 소리에 응하고 있음을 ㅇ라았따. 옛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전에는 그 기억들이 환영으로만 보이던 모습에 흥분했다면, 이제는 그 옛 기억들에 흥분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또 다른 세계의 어느 곳에서 전에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벅은 지금 다시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발길이 닿은 적 없고 드넓은 하늘이 펼쳐진 빈터를 자유롭게 달리면서.
그들은 물을 마시려고 냇가에 멈췄는데, 그때서야 벅은 손턴을 떠올렸다. 벅은 주저앉았다. 늑대는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출발했다가 벅에게 되돌아와서 코를 킁킁거리며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이 몸짓을 했다 하지만 벅은 돌아서서 오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늑대는 낮게 낑낑거리며 벅과 나란히 달렸다. 그러다가 주저앉아서 코를 치켜들고 울부짖었다. 그것은 슬픈 포효였다. 벅이 계속 제 갈 길을 가는 동안 그 소리는 점점 희미해지면서 마침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벅이 급히 야영지로 왔을 때 손턴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벅은 좋아 죽겠다는 듯이 손턴에게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리고 그의 위에 올라타 얼굴을 핥고 손을 물었다. 손턴이 "온갖 바보짓"ㄴ이라고 부른 바 있는 그런 짓을 다했다. 손턴은 손턴대로 벅을 이리저리 흔들며 애정이 담긴 욕을 퍼부었다. (p.157-159)
이틀 밤낮으로 벅은 야영지를 떠나지 않고 줄곧 손턴을 따라다녔다. 그가 일하는 곳을 따라다니고 식사를 할 때는 지켜보고, 밤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계속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틀 후, 숲에서 부르는 소리가 전보다 더 절박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벅은 다시 안절부절못했고, 야생의 형제와 분수령 너머의 미소 짓는 땅과 광대한 숲을 나란히 달리던 기억에 시달렸다. 벅은 다시 숲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야생의 형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밤마다 자지 않고 귀를 기울이고 있어도 그 슬픈 소리는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p.159-160)
피에 대한 갈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벅은 누구의 도움 없이 제 실력과 힘으로 산 짐승을 잡아먹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적대적인 환경에서 의기양양하게 살아남은 맹수였다. 이 모든 일 때문에 그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자부심은 전염병처럼 온몸으로 번졌다. 그 자부심은 벅의 모든 움직임에 그대로 나타났다.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뚜렷이 보였고, 움직임 자체가 뭔가를 분명히 말하고 있었으며, 훌륭한 털은 그 어느 때보다 근사하게 빛났다. 주둥이와 눈 위의 갈색 반점과 가슴에 군데군데 난 흰 털만 없었다면, 벅은 거대한 늑대, 가장 큰 늑대보다도 더 큰 늑대라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p.161)
야생 동물에게는 인내가 있다 (생명만큼이나 끈질기고 지칠 줄 모르는 인내가) 그래서 거미는 거미줄 속에, 뱀은 몸을 똘똘 감은 채, 표범은 매복을 한 채 몇 시간이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인내는 특히 살아 있는 먹이를 사냥할 때 발휘된다. 지금 무스 무리에 붙어서 전진을 방해하고, 젊은 수놈 무스들을 화나게 하고, 새끼들을 데리고 있는 암놈 무스를 불안하게 만들고, 상처 입은 우두머리 수놈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 벅의 모습이 그 인내의 표상이었다. 이런 상태는 반나절이나 지속되었다. 벅은 사방에서 공격을 가하고 무리 주위를 위협적으로 빙빙 돌면서, 우두머리가 무리에 합류하자마자 또다시 고립시켜 공격을 당하는 자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모름지기 당하는 쪽보다는 공격하는 쪽의 인내가 더 강한 법이다. (p.166)
야영지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 벅의 털을 곤두서게 하는 새로운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은 존 손턴이 있는 야영지로 곧장 이어졌다. 벅은 길을 서둘렀다. 기민하면서도 은밀히, 그리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사건 - 결말은 모르지만 - 을 말해 주는 온갖 사소한 것에 주의를 놓치지 않았다. 벅의 코는 지금 그가 추적하고 있는 생명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다. 숲이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고 조용했다. 새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다람쥐들도 어딘가로 숨어 버렸다. 딱 한 마리, 윤기 나는 회색 다람쥐가 보였는데, 녀석은 회색의 죽은 나뭇가지에 착 달라붙어 있어서 나무에 있는 옹이처럼 그 나무의 일부처럼 보였다.
벅은 그림자처럼 눈에 띄지 않게 기어가다가 어떤 강한 힘에 잡아채인 것처럼 갑자기 코를 옆으로 홱 돌렸다. 새로운 냄새를 따라 덤불 속으로 들어가니 닉이 있었다. 닉은 옆으로 누워 있었는데, 여기까지 기어 와서 죽은 듯했다. 화살이 몸을 관통하여 화살촉과 화살 깃이 몸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백 야드를 더 가니 손턴이 도슨에서 산 썰매 끌이 개들 중 하나가 보였다. 이 개는 그 길에서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뒹굴고 있었는데, 벅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야영지에서 많은 사람의 소리가 노랫가락으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바짝 기어서 야영지 입구에 들어서자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화살이 꽂힌 채 엎어져 있는 한스가 보였다. 가문비나무로 만든 움막이 있던 자리에는 벅의 목덜미에서 어깨까지 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엄청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의 불길이 벅을 엄습했다. 벅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사납게 울부짖었다.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지혜와 이성을 격정에 내맡겼는데, 벅이 그렇게 흥분한 것은 존 손턴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다.
이하트 족 인디언들은 허물어진 가문비나무 움막을 돌며 춤을 추다가 섬뜩한 포효와 더불어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짐승이 자신들에게 돌진해 오는 것을 보았다. 성난 폭풍의 화신처럼 미칠 듯한 살의에 불타 덤벼든 것은 바로 벅이었다. 벅은 맨 앞의 사내 (이하트 족의 추장이었다)에게 달려들어 피가 콸콸 쏟아질 때까지 목을 왈칵 물어뜯었다. 벅은 그 쓰러진 놈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두 번째 사나이의 목을 크게 물어뜯었다. 벅을 제어하기란 불가능했다. 인디언들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물어뜯고, 쥐어뜯고, 죽이면서 무서운 기세로 쉴 새 없이 설쳐댔기 때문에 아무리 활을 쏘아도 맞지 않았다. 사실, 벅의 움직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데다 인디언들이 한 곳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화살이 자기편에게 날아드는 사태가 빚어졌다. 한 젊은 인디언이 공중에 뜬 벅에게 창을 던졌는데, 오히려 창끝이 다른 인디언의 등에 꽂히면서 엄청난 힘에 가슴을 뚫고 튀어나갔다. 그러자 이하트 족 인디언들은 악마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면서 공포에 떨며 숲으로 달아났다.
정말로 벅은 악마의 화신이 되어 인디언들을 미친 듯이 뒤쫓아 무스틀 잡듯이 그들을 쓰러뜨렸다. 이하트 족 최악의 날이었다. 그들은 그 부근 일대로 산산이 흩어졌다. 마지막 생존자들이 골짜기에 모여서 죽은 자들의 수를 센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벅은 추적에 지쳐 황량한 야영지로 돌아왔다. 피트는 기습을 당하자마자 죽었는지 담요를 두른 채 죽어 있었다. 손턴이 필사적으로 싸운 흔적이 땅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벅은 그 흔적을 일일이 추적하여 깊은 웅덩이에 이르렀다. 그 웅덩이 옆에는 머리와 두 앞발이 물속에 처박혀 있는 스킷이 있었다. 녀석은 끝까지 주인을 지켰던 것이다. 웅덩이 물은 사금이 흘러들어 시커멓고 더러워져서 물속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웅덩이 안에 존 손턴이 있는 게 분명했다. 물속으로 들어간 자취는 있지만 나온 흔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벅은 온종일 웅덩이 옆에서 생각에 잠기거나 야영지 주위를 초조하게 배회했다. 죽음이란 움직임의 정지이자 살아 잇는 생활에서 멀리 떠나 버리는 것임을 벅은 알고 있었다. 또한 존 손턴이 죽었다는 것도 알았다. 허기 같은 커다란 공허감이 밀려들어지만, 가슴이 몹시 쓰리고 먹을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공허감이었다. 벅은 이따금씩 가만히 서서 이하트 족의 시체를 보면서 그 아픔을 잊었다. 그럴 때면 자신에 대한 큰 자부심,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큰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는 동물 중 가장 고귀하다는 인간을 죽였고,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에 도전을 한 것이다. 벅은 신기한 듯이 시체 냄새를 맡았다. 인간들은 너무나 쉽게 죽었다. 허스키들을 죽이는 것보다 더 쉬웠다. 활과 창과 몽둥이만 없으면 인간들은 적수가 되지 않았다. 그 후로 벅은 인간들이 활과 창과 몽둥이만 쥐지 않는 한 인간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p.170-174)
존 손턴은 죽었다. 그로써 인간과의 끈은 끊어졌다. 인간도, 인간의 요구도 더 이상 벅을 구속할 수 없었다. (p.175)
벅이 너무나 잘 싸워서 삼십 분 후 늑대들은 모조리 패배한 채 물러났다. 하나같이 혀가 축 늘어졌고, 하얀 엄니가 달빛 속에서 잔인하게 반짝였다. 몇 놈은 머리를 쳐들고 귀를 쫑긋 세운 채 누워 있었고, 몇 놈은 우뚝 서서 벅을 쳐다보았으며, 또 몇 놈은 연못의 물을 핥아먹었다. 키가 크고 여윈 회색 늑대 한 마리가 친근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 늑대는 하루 밤낮을 벅과 함께 달렸던 야생의 형제였다. 그가 정답게 칭얼거려서 벅도 응답을 했고, 둘은 서로의 코를 비볐다.
이번에는 수척하고 상처투성이인 늙은 늑대가 앞으로 나왔다. 벅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으러렁거리려 하다가 그에게 코를 갖다 댔다. 그러자 늙은 늑대는 앉아서 달을 향해 코를 치켜들더니 긴 늑대 울음을 내질렀다. 다른 늑대들도 앉아서 울부짖었다. 이제서야 벅은 그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앉아서 함께 울부짖었다. 그리고 나서 벅이 구석에서 나오자 늑대들이 그에게 다가와 친근하면서도 거친 방법으로 벅의 냄새를 맡았다. 지도자들은 크게 울부짖은 뒤 숲으로 뛰어갔다. 다른 늑대들도 일제히 울부짖고서 그 뒤를 따랐다. 벅도 같이 야생의 형제들과 나란히 달렸고, 달리면서 계속 울부짖었다. (p. 176-177)
긴긴 겨울밤이 찾아와 늑대들이 먹이를 찾아 낮은 골짜기로 내려갈 때, 무리의 선두에 서서 창백한 달빛이나 북쪽 땅의 희미한 빛 아래 달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같이 다니는 늑대들보다 더 큰 덩치로 뛰어오르고, 그 거대한 목에서 무리의 노래인 야성의 노래를 내지르는 그의 모습을.....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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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Jack London, 1876년 1월 12일 ~ 1916년 11월 22일)
미국의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점성술사 윌리엄 체이니와 플로라 웰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때의 이름은 존 그리피스 체이니(John Griffith Chaney)였으나, 플로라가 곧 존 런던과 재혼하면서 런던이라는 성을 얻게 되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그는 여러 고된 일들을 전전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도와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1889년부터는 한 통조림 공장에서 18시간 가까이 일을 했다. 이후 모은 돈으로 배를 사서 굴양식장의 굴을 훔쳐서 팔면서 지냈다.
열아홉 살에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런던은 공부를 하는 한편, 학교 잡지에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투고하였다. 이듬해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 입학하고도 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1897년 런던은 그의 누이의 남편과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붐에 합류하였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포기하였다. 오클랜드로 돌아온 런던은 본격적으로 작품을 썼는데, 몇몇 작품은 실제로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1900년에 '늑대의 아들'을 완성하고 이것이 출판된 날 몇 년 동안 친구였던 엘리자베스 베시 메던과 결혼하게 되었다. 1903년에 '야생의 부름'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경제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한편 1904년에 샌프란시스코 신문사의 러일전쟁 특파원 임무를 받아들이고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조선 여행 이후 일본군 전선에서 러일전쟁 과정 중 하나인 압록강전투를 지켜보았으며, 그 이후 전선을 떠났다. 한편 이 시기 조선에서의 경험을 살려 그는 조선에 대한 글을 썼는데, 1982년 프랑스에서 'La Corée en feu'란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이후 한국에서도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에는 구한말 조선 사회의 퇴행과 후진성, 조선인의 나태와 무기력, 양반계급의 수탈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고, 전쟁이 나자 피난에 급급한 조선인들과 달리 압록강 너머 중국인들이 부지런히 생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성공한 일본이 중국의 개화에 자극을 준다면 장차 중국이 서양인들에게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1904년 말 그는 메던과 이혼하고, 샤미안 키트리지라는 여성과 교제하였는데, 이때 '바다 늑대'라는 작품을 집필했으며, 이것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듬해 그는 키트리지와 결혼하였고, 오클랜드 시장 후보로 나섰으나 언론의 뭇매를 맞았으며, 이혼한 뒤 키트리지와 곧바로 결혼한 문제까지 겹쳐 결국 낙선했다. 그는 낙선한 뒤에도 순회강연을 계속했는데, 이 순회강연에는 그의 미국 노동 문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겪어 온 미국의 가혹한 노동 환경에 대한 강력한 불신을 바탕으로 순회강연뿐만 아니라 집필 활동도 펼쳤는데, 그중 하나가 1908년에 그가 쓴 소설 강철군화다. 그는 이 소설에서 자본가들의 횡포가 노동자 정권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묘사했으며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후 말년에는 중국사에 관심이 생겼는지 기존에 하던 작가 활동을 병행하면서 중국사를 독자연구하는 데 매진했다. 한편 그 일환으로 만일 중국이 당나라 때에 운영하던 것과 같은 부병제를 부활시킨다면 훗날 서양 국가들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것 말고도 그는 캘리포니아의 글랜 엘런에 있는 땅을 사들여 농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그는 아시아의 '지속 가능한 농업(sustainable agriculture)'을 미국에 들여오고자 했고, 농촌 공동체 건설을 지향했지만 경제적 실패를 겪었으며, 그가 이곳에 건설한 석조건물 울프 하우스 또한 전소되어 큰 낭패를 보았다.
1916년 11월 22일 글랜 엘런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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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 잭 런던 (권택영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야성의 부름 - 잭 런던 (임종기 옮김, 문예세계문학)
야성의 부르짖음 - 잭 런던 (박상은 옮김, 동서월드북)
야성의 부름 - 잭 런던 (오숙은 옮김, 펭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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