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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3. 동양 - 고전 수필

취옹, 풍경을 마시다 - 루서우룽(壽榮), 허옌(何燕) (서은숙 옮김, 자음과모음)

by handaikhan 2023. 2. 3.

 

취옹, 풍경을 마시다

 

1. 순간은 어떻게 꽃이 되는가 - 왕희지
2. 복숭아 꽃, 그 분홍빛 얼굴 - 도연명
3. 화살처럼 달려가는 마음 - 도연명
4. 눈물에 치마가 젖는구나 - 역도원
5. 꽃향기 나는 술잔 - 이백
6. 풍요로운 작은 집 - 유우석
7. 예사로운 아름다움 - 유종원
8. 마음속 처음 태어나는 산 -유종원
9. 안개는 운몽雲夢 연못에 자욱하고 - 범중엄
10. 진정한 즐거움 - 구양수
11. 가을의 소리 - 구양수
12. 연꽃에 마음이 설레다 - 주돈이
13.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을 뿐이네 - 왕안석
14. 행복이라는 피안 - 소식
15. 신선을 만나다 - 소식
16. 석종의 비밀 - 소식
17. 이 좋은 벗! - 소식
18. 하늘로 오르는 길 - 육유 / 흰 비단이 바람을 따라 - 육유
19. 만 개의 등불 보현을 향해 타오르네 - 범성대
20. 절벽에서의 깨달음 - 주희
21. 봄바람에 화답하며 - 등목
22. 너는 나의 소망을 기억하고 있느냐? - 원굉도
23. 시인의 불행, 강산의 행운 - 종성
24. 달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 장대
25. 소매 끝에 핀 눈송이 - 장대
26. 샘물, 운해, 소나무 - 전겸익
27. 소나무가 전하는 바람 소리 - 나문준
28. 글을 쓸 수 없는 이유 - 방포
29. 물은 푸른 비단 띠, 산은 벽옥 비녀 - 원매
30. 태산에 오르다 - 요내
31. 구름을 뚫고 나온 오두막집 - 운경
32. 산에 비가 오려 하니 누대에 바람이 가득하구나 - 공자진
33. 동정산의 가을 - 오민수
34. 다향 순례 - 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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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희지 (王羲之, 303년 ~ 361년)

동진의 정치가이자 시인, 서예가이다.

 

순간은 어떻게 꽃이 되는가 ( 왕희지 - 난정집 서문)

 

인간 세상은 그 얼마나 짧은가. 그러나 대자연은 이처럼 신묘하다. 세상의 알름다운 풍경은 평생 보아도 다 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날처럼 산수 자연 속에서 친구와 함께 인생을 논하며 눈과 귀의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흰 구름이 두둥실 가볍게 떠가고 만물은 갖가지 모습을 하고 눈 속으로 모여들었다. 정말 눈도, 마음도 모두 일신하는 것 같았다.

사람 사이의 만남도 아주 잠시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해 빠진 술자리에서의 만남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관료사회의 위선적인 진실은 더욱 역겨울 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전히 성정의 토로에 충실한 군자가 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몸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취사하고 선택하는 것이 다르듯 성격도 판이하다. 하지만 누구든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만 한다면 인생은 대만족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여기에 빠져 순식간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귀밑머리는 하얘지고 웅대한 포부는 희미해지며 홍안의 청년은 백발 노인이 된다. 열렬하게 추구하던 것들에 점점 싫증이 난다. 열심히 했던 일들도 시간을 따라 다시 올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 버린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진심을 다했던 감정들이 이 순간 물에 비친 꽃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바라볼 수는 있으나 다가갈 수는 없다. 한때 번영을 구가하던 곳은 역사의 옛 자취 속으로 사라진다. 눈앞에서 굽이굽이 흘러가는 저 시냇물만이 조용히, 예나 다름없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우리가 흥겹게 취해 있지만, 훗날 이곳에 앉아 거문고를 타며 그것을 알아 줄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은 우리가 왔었다는 것을 기억이나 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든다.

아름다운 것은 모두 찰나일 뿐이다. 나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의 이 마음만은 간직할 수 있다. 도피는 결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람은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인간은 늙어 간다. 죽음은 벌써 나를 향해 손짓한다. 삶과 죽음, 그것은 얼마나 큰일인가라는 고인의 말에는 얼마나 깊은 감개가 담겨 있는가.

선배 문인들의 시나 문장을 읽노라면 세월의 무상함에 대한 탄식을 발견하곤 한다. 오늘에야 비로소 알겠다. 인생의 고통과 허무가 얼마나 현실적인 문제인가를.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이라도 삶과 죽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인생의 고질병과 만나기도 하고,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떠도는 영혼의 부르짖음을 듣기도 한다. 삶과 죽음은 매양 한 가지라는 말은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팽조처럼 오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은 무상하고 우리네 인간들은 그것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지금, 과거의 일을 생각해 보면 슬픔이 가슴속에 차오른다. 후손들이 우리를  떠올릴 때도 어찌 이와 같지 않겠는가! 인생은 마치 개미처럼 하느작거리며 지나가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즐거움은 그 얼마나 짧은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더욱 서글프다.

시대와 인사는 달라도 느끼고 감탄하는 마음은 같을 터이다. 훗날 이 글을 읽을 사람이여, 당신은 오늘 이 시간 이 순간의 우리네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p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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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陶淵明,  365년 ~ 427년)

중국 동진 후기에서 남조 송대 초기까지 살았던 전원시인(田園詩人)이다.

 

화살처럼 달려가는 마음 (도연명 - 귀거래사(歸去來辭))

 

마흔 한 살이 되던 해, 나는 팽택 현령이라는 말단 관직에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돌아가리라!

오랫동안 방치한 논과 밭은 이제 잡초가 무성하다. 어찌 돌아가지 않는단 말인가.

정신은 자유롭고 양심적인 생활을 갈구하지만, 몸은 오히려 명분과 이익의 틈바구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내려고 한다. 유약한 정신은 보잘것 없는 몸의 감옥에 갇혀 실의로 남몰래 흐느끼고, 숨이 끊어질 듯 고통스러워하고, 상처 자국만 가득하다. 이럴 필요가 있을까. 한 번 분인 인생,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리라! 지나가 버린 시간은 이미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 오직 미래만을 다시 설계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명백해진 지금이야말로 늦기 않았다.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그리 멀리 오지는 않았다. 이제 정신의 인도에 귀를 기울이고 방향을 바꿀 때이다.

이 순간, 운명이 염화미소하고 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지금의 선택이 얼마나 옳은지, 그리고 어제의 고생이란 게 얼마나 우스운지를 깨닫는다.

이제야 알겠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마음 가볍게 낙향의 길에 올랐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돌아오는 동안 작은 배는 마치 바람이 수면 위를 스쳐가듯 나부꼈다. 사공은 반나절이면 도착한다고 했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희미한 아침 햇살이 구름층을 뚫고 나와 붉은 빛을 무수히 뿌렸으면 좋겠다. 그 덕분에 고향을 향해 화살처럼 달려가는 내 마음이 그동안 떨어져 지낸 고향집을 똑똑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중략)

나는 안다. 지금부터는 이렇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일이 없는 날에는 술병과 술잔을 들고 창가의 나무 탁자에 앉아 혼자 권커니 잣컷니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취기가 약간 오른 눈으로 비스듬히 창밖을 바라볼 것이다. 뜰의 무성한 나무들은 나와 서로 뜻이 맞고, 내 얼굴ㄹ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이 퍼져 있을 것이다. 이제, 나도 안다. 남쪽 창가에 기대앉아 저 멀리 아득한 하늘을 쳐다볼 때만이 세상에 대한 나의 자존심이 비로소 이해되고 위로받는 때임을. 그것은 자유롭고, 그래서 즐겁다. 두 다리를 겨우 펼 수 있는 좁은 집이 사실은 가장 편안하고 근심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안다. 매일 뜰 안을 어슬렁거리며 솔바람 소리를 듣거나 국화를 감상하는 것만으로 유유자적하고 생기가 충만할 것이다. 늘 닫혀 있는 문은 늦게나마 찾아온 나의 평안과 고요를 지켜줄 것이다.

(중략)

돌아가리라!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혼자만의 생활을 누리리라는 마음의 노래를 그친 적이 없다.

낙향을 선택한 이상, 그리고 이 뜬구름 같은 세상사와 상반된 길을 가기로 결정한 이상, 내게 필요한 것은 이 명징한 깨달음을 계속 지켜 가는 것이다. 명분과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과 내 마음 사이에는 더 이상 접합점이 없다. 그런데 뜻을 굽혀 가며 사방팔방으로 쫓아다닐 필요가 있을까. 내 마음속 속내를 털어놓은들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서로가 만족할 만한 화제를 찾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역시 내 집에서 나를 이해하는 친지와 담소를 나누며 만남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 더 낫다. 역시 홀로 방 안에 정좌하고 낡은 거문고를 타며 낮고 아련한 옛 곡조를 불러 보거나, 옛 서적을 뒤적이며 성현들의 예지가 빛나는 말씀을 기록하는 것이 더 낫다. 하지만 내가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뜻밖에도 고금의 현인들은 몸소 해 볼 가치가 없다고 여긴 노동에 대한 경험에서였다.

(중략)

봄이 왔습니다. 서쪽 전답에 흙을 갈려고 가는 참입니다!

그 순간, 나는 만물이 생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호기심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길을 나섰다. 때로는 휘장이 달린 작은 마차를 타기도 하고 대로는 혼자 일엽편주를 젓기도 했다. 구불구불한 깊은 게속 속에서 그윽한 고요를 맛보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산길에서 끊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보기도 했다. 봄바람의 애무로 나무는 흔연히 가지를 뻗고 잎을 토하며, 샘물은 얇은 얼음이 녹아 졸졸 흐르고 있었다. 눈에 와 닿는 모든 것들을 향해 흠모의 마음이 저절로 일었다.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윤회하고 변화하며 지금 이 화창한 봄빛을 맞이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생명의 불꽃이 타오르며 가져다준 이 따뜻함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이제 그 불이 꺼지려 한다. 나도 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아니, 그만 두련다.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내 몸은 육체를 잠시 천지에 의탁한 것일 뿐임을. 그것은 아주 짧은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무슨 좋은 계획이 있을 것이며, 뭔가에 오르려고 허둥지둥 살 필요가 무에 있으리! 부귀는 내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신선의 경지도 가 볼 기회는 없을 것이다. 좋은 시절은 단 1각이라도 아껴 가며 몸소 그것을 즐긴 다음, 흔쾌히 시간을 내어 더욱 의미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지팡이를 땅에 꽂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몸소 노동하는 것이다. 새로 자라난 농작물의 잡초를 뽑고, 생명을 기다리는 땅에 새싹을 심는다. 부귀와 공명에 신경 쓸 틈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의탁할 데 없는 인생에 놀랄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노동을 통해 생명에 무한히 근접하는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소박한 핵심을 얻는다.

나는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노래를 부르고 차가운 개울에 발을 담그고 시를 읊조리며 마음속의 모든 깨달음을 표현한다. 다만 하늘의 뜻에 순종하고 만물이 변화하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기고 그 자연스런 즐거움을 누린다면 삶에 있어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p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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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인열전>

석도 - 저우스펀 (서은숙 옮김, 창해)

 

서위 - 저우스펀 (서은숙 옮김, 창해)

팔대선인 - 저우스펀 (서은숙 옮김, 창해)

양주팔괴 - 저우스펀 (서은숙 옮김,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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