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3. 동양 - 고전 수필

부생육기 - 심복 (김지선 옮김, 달아실)

by handaikhan 2023. 6. 14.

 

심복 - 부생육기 (1808년)

 

1. 규방기락 (閨房記樂 규방의 즐거움을 노래하다)

 

나는 건륭 계미년 겨울 11월 22일에 태어났다. 당시는 태평성대였고 명문세가에서 태어나 소주의 창랑정 옆에 살았으니 하늘이 나에게 내린 복은 정말로 컸다고 할 수 있다. 소동파가 "모든 일이 봄날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만약 내 삶을 붓으로 기록해두지 않으면 하늘이 내려준 복을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단지 부부의 사랑을 읊은 <관저>가 [시경] 삼백 편 가운데에서도 맨 처음에 실린 것을 고려하여, 나도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책 첫머리에 두었다. 그 외 다른 이야기들은 순서대로 기록하고자 한다. 부끄럽게도 젊은 시절 학문에 뜻을 잃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이 책도 진실한 감정과 사실을 적은 것에 불과하다. 만약 문법을 따져 고치려고 한다면, 먼지 가득한 거울에게 왜 밝게 비추지 못하냐고 탓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p.78-7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소동파 시선 - 소동파 (류종목 옮김, 지만지)

 

소동파(소식(蘇軾) 1037년~1101년)

 

正月二十日,與潘、郭二生出郊尋春,忽記去年是日同至女王城作詩,乃和前韻


東風未肯入東門 (동풍미긍입동문)

走馬還尋去歲 (주마환심거세촌)
人似秋鴻來有信 (인사추홍내유신)

事如春夢了無痕 (사여춘몽요무흔)
江城白酒三杯釅 (강성백주삼배염)

野老蒼顏一笑溫 (야로창안일소온)
已約年年為此會 (이약년년위차회)

故人不用賦招魂 (고인불용부초혼)

반병, 곽구 두 사람과 교외로 봄을 찾아

 

성 안에는 봄바람이 들어 오려 하지 않아

말을 타고 작년에 갔던 그 마을을 또 찾았네

사람은 이렇게 기러기처럼 어김없이 찾아오건만

일은 일장춘몽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네 <모든 일이 봄날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네>

강 마을의 백주 석 잔에 기분이 거나해져

시골 친구의 거무튀튀한 얼굴에 웃음꽃이 환하게 피는데

해마다 이런 모임 가지기로 했으니

옛 친구여 <초혼> 따위는 지을 필요 없다네

 

...............................................................................

시경 강의 - 우응순 (북튜브)

 

시경(詩經) - 관저(關雎)

 

關關雎鳩 (관관저구) 끼룩끼룩 우는 물수리가
在河之洲 (재하지주) 강의 모래섬에 있구나
窈窕淑女 (요조숙녀) 요조숙녀는
君子好逑 (군자호구)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參差荇菜 (삼치행채) 이쪽 저쪽에 떠 있는 마름나물을
左右流之 (좌우류지) 왼쪽 오른쪽에서 물길 따라 따네
窈窕淑女 (요조숙녀) 요조숙녀를
寤寐求之 (오매구지) 자나깨나 구하는데
求之不得 (구지불득) 구하여도 만나지 못하는지라
寤寐思服 (오매사복) 자나깨나 생각하고 그리워하네
悠哉悠哉 (유재유재) 아득한 그림이여!
輾轉反側 (전전반측) 이리 뒹굴, 저리 뒹굴

參差荇菜 (삼치행채) 이쪽저쪽에 떠 있는 마름나물을
左右采之 (좌우채지) 왼쪽 오른쪽에서 다듬네
窈窕淑女 (요조숙녀) 요조숙녀와
琴瑟友之 (금슬우지) 거문고, 비파로 사귀도다
參差荇菜 (삼치행채) 이쪽저쪽에 떠 있는 마름나물을
左右芼之 (좌우모지) 왼쪽 오른쪽에서 삶네
窈窕淑女 (요조숙녀) 요조숙녀와
鍾鼓樂之 (종고락지) 종과 북으로 즐기도다

.................................................................................

 

그 후에 진씨를 아내로 맞았는데, 이름은 운이고 자는 숙진이었다.

진운이지은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가을 가까워지니 사람 그림자 여위고,

서리 내리니 국화는 살찌네.

 秋侵人影瘦 霜染菊花肥
(추침인영수 상염국화비)  (p.79)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지은 것이라 그래. 나중에 가르쳐줄 수 있는 지기가 생기면 이 시들을 완성해보고 싶어."

나는 종이에 장난삼아 '비단 주머니 속의 아름다운 구절들'이라고 썼다. 그 속에 요절할 운명이 숨어 있을 줄을 그때는 몰랐다. (p.80-81)

 

방금 자려고 하다가 궤짝을 열어보니 이 책이 나오지 뭐예요. 나도 모르게 책을 읽다보니 피곤함이 사라졌어요. <서상기>라는 책 제목은 익히 들어왔는데 지금에야 읽어봐요. 과연 재자가인 중 제일이라고 할 만해요. 하지만 묘사가 너무 노골적이고 경박한 느낌은 어쩔 수 없네요. (p.8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서상기 - 왕실보 (양회석 옮김, 지만지)

.................................................................

 

6월이 되자 집안은 더웠다. 다행히 창랑정의 애련거 서쪽에 살아서 판교 안에 개울을 마주한 별채가 있었는데, 아취헌 이라고 하였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네"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따왔다. (p.86)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장강을 떠도는 영혼 - 신정규 (신서원)

 

굴원(屈原, 기원전 340년 ~ 기원전 278년)은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의 시인 · 정치가

 

굴원(屈原) - 어부사(漁夫辭)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창랑지수청해 가이탁아영)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아족)
창랑의 물이 맑네, 내 갓 끈을 씻네
창랑의 물이 더럽네, 내 발을 씻네

......................................................................................

 

하루는 전운이 물었다.

"여러 고문 중에서 어떤 것이 본받을 만한가요?"

"<전국책>과 <장자>는 민첩하면서 솔직하고, 광형과 유항은 우아하고 힘이 있어요. 사마천과 반고는 박학다식하고 한유는 꾸밈이 없으며 유종원은 날카롭고요. 구양수는 호탕하고 소순과 소식, 소철은 변론에 뛰어나요. 그 외에 가의와 동중서의 책대, 유신과 서릉의 변체, 육지의 주의 등 본보기로 삼을 문장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그저 각자의 안목으로 이해하고 깨달으면 되지요."

"고문은 모두 식견이 높고 기세가 웅건하여 여자는 배워도 그 수준에 이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시는 조금 알 것 같긴 해요."

"당나라 때는 시로 선비를 뽑았어요. 시의 으뜸으로는 이백과 두보가 있는데, 당신은 누구를 본받고 싶어요?"

"두보의 시는 갈고 닦아서 시어가 정돈되었고, 이백의 시는 거침없고 호방한 느낌을 줘요. 나는 두보의 엄숙함보다는 이백의 자유분방함을 배우고 싶어요."

"두보는 시를 집대성한 문인으로 일컬어져요. 학자들은 대부분 두보를 따르는데 당신은 왜 이백이 좋아요?"

"격률이 엄격하면 뜻이 간결해지니 이는 진정 두보가 독보적이지요. 하지만 이백의 시는 고야산의 신선 같아요. 흐르는 물결에 낙화가 떠내려가는 정취가 있어서 좋고요. 두보가 이백보다 한 수 아래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저 내 생각에 두보를 배우고 싶은 마음보다 이백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깊을 뿐이에요."

나는 웃으며 말하였다.

"당신이 이백의 지기인 줄 몰랐네요."

진운 역시 웃으며 말하였다.

"왜요. 나에게 글을 깨우쳐준 백거이 선생도 있잖아요.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잠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무슨 말이에요?"

"백거이가 <비파행>을 짓지 않았나요?"

"이상하네. 이백은 지기이고, 백거이는 글을 깨우쳐준 선생이었고, 내 자가 삼백인데 당신 남편이 되었잖아요. 당신은 '백'자와 무슨 인연이 있는 걸까요?"

"백자와 인연이 있으니 앞으로 글을 쓸 때마다 백자가 수두룩하게 나오겠네요."

오 지역의 방언에서 잘못 쓴 글자를 뜻하는 별자는 백자로 발음한다. 이 말을하며 서로 크게 웃었다.

"당신이 시를 아니 부의 장단점도 알겠네요."

"초사는 부의 근원이지만 학식이 얕아서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한나라와 진나라 문인들 중에서 격조가 높고 언어가 정련된 사람으로 사마상여가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놀라면서 말하였다.

"그때 탁문군이 사마상여를 따라간 이유가 거문고가 아니라 문장에 있었던 걸까요?"

그러고는 서로 다시 크게 웃었다. (p.86-8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중국문인열전 - 류소천 (박성희 옮김, 북스넛)

................................................................................

 

"세상 사람들이 사이가 틀어지는 게 대부분 농담에서 나와요. 앞으로 억울하게 만들지 마세요. 속이 터져서 죽을 지경이니까." (p.89)

 

우리는 양홍과 맹광처럼 서로 존중하며 스물세 해를 함께 살았다. (p.89)

<참고>

후한서 - 범엽 (장은수 옮김, 새물결)

 

양홍과 맹광(梁鴻, 孟光)

거안제미(擧案齊眉)

밥상을 눈썹까지 들어 올린다. 아내가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공경함.

 

사마천의 《史記》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계구사(季臼使)가 기(冀)라는 곳을 지나다가 들에서 김을 매고 있는 기결(冀缺)의 아내가 점심을 내온 것을 보았다. 둘 사이가 어찌나 친근하면서도 조심하는지 돌아와서 문공에게 이렇게 말했다."경(敬)이란 덕(德)이 모인 것인데, 덕은 백성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대왕께선 그를 채용하십시오."

후한(後漢) 시대 양홍(梁鴻)이라는 사람의 처 맹광(孟光)의 이야기다.
맹광은 뚱보인데다 얼굴이 추하고, 게다가 얼굴빛이 새까맸다. 하지만 미녀에게는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쉽게 돌절구를 들어올릴 정도로 힘이 세었다. 더욱이 마음이 상냥하고 그 언행에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마을에서는 평판이 좋아 사방에서 혼담이 들어왔으나 맹광은 계속 거절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른 살이 되어 버렸다.
맹관은 혼담이 들어오는 족족 퇴박하더니 양홍이라는 돼지치기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맹광의 부친이 양홍을 찾아가서 청혼을 했다.'댁의 따님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기꺼이 맞이하겠습니다."양홍이 청혼을 받아들이자 맹광은 양홍의 희망대로 신변의 일용품만 가지고 시집을 왔다. 
이튿날부터 즉시 허술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트레머리로 하고 친정에 있을 때와 같은 복장을 했다. 양홍은 그러한 아내를 보고 흡족해 했다."당신은 정말로 나의 아내다."당시는 왕망(王莽)이 정권을 빼앗아 국호를 신(新)이라 칭한 때로, 그의 악정을 견디지 못해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천하가 어지러웠다. 
양홍은 학식이나 인품이 높아 사방의 반란자나 그 부하들로부터 끊임없이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유혹의 손길을 피해 돼지치기를 그만두고 맹광과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산속에다 양홍은 땅을 갈고, 맹광은 베를 짜며 2년간을 살았다.이윽고 산속에까지 유혹의 손이 뻗치자 두 사람은 오(吳)나라에 가서 이름을 숨긴 채 어느 집의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살았다.양홍은 매일 삯방아를 찧으러 나가고, 그 근소한 수입으로 겨우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였다.그런데도 맹광은 매일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 치마를 입고서 남편을 따뜻이 맞았으며, 밥상을 눈썹 높이 들어 공손히 남편에게 식사를 권했다.
常荊釵布裙 每進食 擧案齊眉(상형재포군 매진식 거안제미)이 맹광의 고사에서 허술한 옷차림을 가리켜 형채포군(荊釵布裙)이라 하고, 부인이 예절을 다해 남편을 섬기는 것을 거안제미(擧案齊眉)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형처(荊妻)라는 말도 생겼다.

.....................................

 

오강의 전사죽이라는 분이 병으로 돌아가시자 아버님께서는 편지를 보내 나에게 조문하러 가라고 하셨다.

진운이 살며시 나에게 말했다.

"오강으로 가려면 반드시 태호를 지나가야 하지요? 저도 따라가서 넓은 세상 구경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나도 혼자 가기 적적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과 함께 가면 정말 좋지요. 하지만 핑계를 댈 게 없잖아요."

"친정에 간다고 핑게대면 되지요. 당신이 먼저 배에 오르면 내가 뒤따라갈게요."

"돌아올 때는 배를 만년교에 대고 달구경하며 시원한 바람을 쐽시다. 그러면 창랑정에서 운치 있었던 일들을 계속 이어갈 수 있잖아요."

이때가 6월 18일이었다. 떠나는 날 아침 날씨는 서늘하였다. 하인 하나를 데리고 서강 나루터에 가서 배에 올라 기다리니 진운도 가마를 타고 왔다. 닻줄을 풀고 호소교를 떠나니 점점 돛단배와 모래섬 새들이 눈에 들어왔고 물과 하늘은 서로 맞닿아 있었다.

진운이 말하였다.

"여기가 태호라는 곳인가요? 지금 천지가 넓은 것을 보았으니 이번 생은 헛되지 않았네요. 아마도 규방의 여인들은 죽을 때까지 이 광경을 보지 못할 거예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얼마 되지 않아 바람이 강가의 버드나무 가지를 흔들고 있었고, 배는 벌써 오강의 성 아래에 도착하였다. (p.106-10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지도밖으로 행군하라 - 한비야 (푸른숲주니어)

..............................................................................

 

"학은 춤을 잘 추지만 밭을 갈 수 없고, 소는 밭을 잘 갈지만 춤을 출 수 없어요. 이것이 타고난 천성이에요. 선생께서 그 천성을 거스르며 가르치려 했으니 힘들지 않겠어요." (p.108)

 

2. 한정기취 (閑情記趣 한적한 생활의 정취를 음미하다)

 

어린 시절 눈을 크게 뜨고 해를 마주 바라보던 일이며, 작은 사물들을 자세히 관찰하였던 일을 기억한다. 아주 작은 사물이라도 늘 그 무늬를 관찰하였는데, 이는 때로 의외의 즐거움을 주었다. 여름에 모기가 천둥처럼 앵앵거리며 날면 여러 마리 학이 하늘을 춤추며 날아다니는 것으로 혼자 생각하곤 하였다.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니 백 마리이건 천 마리이건 모두 학으로 보였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다 목이 뻣뻣해지기도 하였다. 한번은 연기 속에서 이리저리 소리 내며 날아다니게 하였다. 푸른 하늘에 구름 사이로 백학이 날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학이 구름 끝에서 울며 나는 것처럼 보였다.혼자 기뻐하며 좋아하였다.

토담이 울퉁불퉁하거나 화단에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는 항상 쪼그리고 앉아 눈을 화단과 나란히 해서 정신을 집중하고 자세하게 관찰하였다. 우거진 풀은 숲이라고 생각하고, 벌레나 개미는 그 속에 사는 짐승이라고 생각했다. 흙이나 부서진 돌이 솟아오른 곳은 언덕이고 움푹 파진 곳은 골짜기로 생각하며 그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다보면 너무도 즐거웠다. (p.117-11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유년시절 - 톨스토이 (최진희 옮김, 펭귄클래식)

....................................................................................

 

진운은 비녀를 빼서 술을 받아와야 할 경우에도 얼굴빛이 변하거나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고, 좋은 시절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흘러보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친구들은 모두 하늘가로 떨어져 바람처럼 날아가고 구름처럼 흩어져버렸다. 내 사랑하는 진운마저 옥이 부서지고 향기가 묻히듯 죽었으니 차마 지난날을 돌아보기 어렵구나! (p.130-131)

 

"대나무 끄트러기나 나무 부스러기 하나도 모두 쓸모가 있다." (p.136)

 

3. 감가기수 (坎坷記愁 쓰라린 인생의 슬픔을 떠올리다)

 

인생의 불행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대개는 자신의 업보에서 비롯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나는 정이 많고 약속을 잘 지키며 명랑하고 솔직해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내 아버님께서도 너그럽고 의협심이 강한 분이셨다. 남의 어려운 처지를 보면 도와주셨고 남의 일이 잘 되도록 해주셨으며 남의 집 딸을 시집보내주시거나 남의 집 아이들을 돌봐주신 일 등은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이다. 돈은 흙처럼 여겨 쉽게 쓰셨지만 대부분 남을 위해 쓰셨다. (p.138)

 

우연히 진운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을 때, 마침 친구 주춘후가 복군왕의 막우로 일하다가 돌아와 <반야바라밀다심경> 한 부를 수놓아줄 이를 찾고 있었다. 진운은 불경을 수놓으면 재앙이 사라지고 복이 온다고 여기고 있었다. 또 품삯도 적지 않았기에 결국 수놓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춘후가 바쁘게 서두르는 바람에 열흘 만에 완성해주었는데, 약한 몸에 갑자기 과로한 탓에 허리가 시큰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증세까지 얻게 되었다. 박복한 사람에게는 부처님조차도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그 일 이후로 진운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물을 달라, 탕약을 달라 하는 바람에 집안사람들 모두 진운을 멀리하게 되었다. (p.14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반야심경 마음공부 - 페이융 (허유영 옮김, 유보븍스)

....................................................................................

 

진운이 내 손을 잡고 더 말을 하려는 듯 했지만 간간이 '내세'라는 말만 되뇔 뿐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숨을 헐떡이며 입을 꼭 다물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몇 번이고 불렀지만 이미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진운의 눈에는 슬픈 두 줄기 눈물만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숨이 점점 약해지고 눈물도 점점 말라갔다. 영혼이 가물가물하더니 결국 저세상으로 떠났다. 이때가 가경 계해년91803) 3월 30일이었다. 외로운 등불만 곁에 있을 뿐 눈을 들어 둘러보아도 주변에 친척 하나 없었다. 빈주먹만 쥐고 있자니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끝없는 이 한은 언제 다 사라질까! (p.161)

 

4. 낭유기괘 (浪遊記快 방랑 생활의 유쾌함을 추억하다)

 

나는 매사에 내 생각을 밝히는 것을 좋아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옳다 그르다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시를 논하고 그림을 평할 때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해도 그저 그렇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고, 다른 사람이 별로라고 해도 해도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명승고적이 되는 기준도 마음에 얼마나 많은 감동을 주느냐에 달려있다. 아무리 유명해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곳이 있고,  유명하지 않아도 오묘한 느낌을 주는 곳이 있다. 이제 내가 평생 동안 유람해온 곳에 대해 기록해보려 한다. (p.173-17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지 - 유홍준 (창비)

...................................................................................

 

5. 중산기력 (中山記歷 유구의 곳곳을 기록하다)

 

조개산 선생은 내게 급히 편지를 보내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나는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멀리 길을 떠나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막우로 스무 해 동안 일하면서 남북의 변경을 두루 다녔지만 대부분 나라의 울타이 안이었지 외국은 가보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아득한 바다 밖의 절경을 구경한다면 견문을 넓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버님께 말씀드렸더니 허락해주셨다. 수행하는 사람은 모두 다섯 명으로 왕문고, 진원균, 무송, 양화재 그리고 나였다. (p.232-233)

<참고>

류큐국(琉球國 또는 유구국(琉球國)은 1429년부터 1879년까지 류큐 제도에 있는 왕국이었다. 류큐 제도는 류큐국에 의해 명나라의 속국으로 통치되었으며, 오키나와섬을 통일하여 산잔 시대를 끝내고 왕국을 아마미 군도와 사키시마 제도로 구성하고 류큐국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중세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상 무역망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류큐국은 1609년 류큐 침공 이후 사쓰마번의 속국이 되었지만 1872년 일본 제국에 의해 류큐번으로 전환될 때까지 법적인 독립을 유지했다. 류큐국은 공식적으로 합병되었다. 1879년 4월 일본에 의해 해체되어 오키나와현이 형성되었고 류큐국은 새로운 일본 귀족으로 통합되었다. 대유구국(오키나와어: 大琉球國 티루츄쿠쿠) 이라고도 한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해동제국기 - 신숙주 (범우사)

......................................................

 

밤이 되니 별빛은 옆으로 비끼고 달빛은 부서져내려 바다 위는 온통 불꽃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 같았다.

목화(木華, 晉나라의 문인)가 그의 시 <해부(海賦)>에서

 

도깨비불이 자맥질하네

陰火潛然

 

라고했던 그것과 같았다. (p.236)

 

..............................................................

 

6. 양생기도 (養生記道 양생의 이치를 말하다)

 

진운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나는 근심만 가득할 뿐 즐거움이라고는 없었다. 봄날 아침이나 가을날 저녁이나, 산을 오를 때나 물가를 거닐 때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내 마음을 상하게 하니, 슬픔 아니면 한스러움뿐이었다. 3장 '쓰라린 인생의 슬픔을 떠올리다(감가기수坎坷記愁)'을 읽어보면 내가 겪었던 지난날 고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해탈하는 방법을 찾아 조용히 명상하면서 멀리 집을 더나 세상 밖에서 적송자 같은 신선의 도를 닦으려 하였다. 하지만 담안과 읍산 두 형제가 거듭 권유하여 작은 암자에 기거하였고, 오직 <남화경南華經>만 읽으며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장자가 자기 아내가 죽었을 때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하지만 어찌 정말로 정을 잊은 것이겠는가? 어쩔 수 없었기에 도리어 달관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장자>를 읽으면서 차츰 깨달았다. <양생주養生主>를 읽고 나니 달관한 선비는 언제든 불안해하지 않고, 어디서도 순응하지 않음이 없으며, 명연히 조화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 장차 무엇을 얻ㅈ고 무엇을 잃을 것이며, 무엇이 죽음이고 무엇이 삶이란 말인가. 주어진 바를 받아들이면 슬픔과 즐거움 그 사이에 놓이는 바가 없다.

또 <소요유逍遙遊>를 읽고 양생의 비결이 한가하게 지내며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며 즐겁게 사는 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이전에 정에 얽혀 있었던 것이 나를 스르로 옭아맨 것은 아닌가 하고 후회하게 되었다. 이것이 '양싱의 이치를 말하다養生記道'를 쓰게 된 까닭이다. 옛 현인들의 말슴을 가려 스스로를 넓히고, 갖가지 번뇌들을 없애며 몸과 마음에 유익한 내용을 위주로 썼다. 이것이 곧 장자의 뜻이니, 그렇게 함으로써 삶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천수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P.295-296)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장자 - 안동림 (현암사)

.............................................

 

왜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고민하고

자신의 지혜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걱정하나

발그레 윤기 나던 얼굴이 마른 나무처럼 되고

검게 윤나던 머리 희끗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네

而況思其力之所不及 (이항사기력지소불급) 
憂其智之所不能 (우기지지소불능)
宜其渥然丹者為槁木 (의기악연단자위고목)
黟然黑者為星星 (묵연흑자위성성)

 

갖가지 근심이 마음을 뒤흔들고

온갖 일들이 몸을 괴롭히니

마음이 흔들리면

그 정신도 분명 요동치리라

百憂感其心, 萬事勞其形 (백우감기심, 만사노기형)
有動于中, 必搖其精 (유동우중, 필요기정)  (p.298)

 

,,,,,,,,,,,,,,,,,,,,,,,,,,,,,,,,,,,,,,,,,,,,,,,,,,,,,,,,,

구양수(歐陽修)의 추성부(秋聲賦)

歐陽子方夜讀書 (구양자방야독서)
聞有聲自西南來者(문유성자서남내자)
悚然而聽之 曰, 異哉 (송연이청지왈, 이재.!)
初淅瀝以蕭颯 (초석력이소삽)
忽奔騰而砰湃 (홀붕등이팽배)
如波濤夜驚, 風雨驟至 (여파도야경, 풍우취지)
其觸於物也, 鏦鏦錚錚, 金鐵皆鳴 (기촉어물야, 총총쟁쟁, 금철개명)
又如赴敵之兵 (우여부적지병)
銜枚疾走, 不聞號令 (함매질주, 불문호령)
但聞人馬之行聲 (단문인마지행성)
予謂童子, 此何聲也, 汝出視之 (여위동자, 차성하야, 여출시지)
童子曰 星月皎潔, 明河在天 (동자왈, 월명교결, 명하재천)
四無人聲, 聲在樹間 (사무인성, 성재수간)
予曰, 噫嘻, 悲哉 (여왈, 희희, 비재)
此秋聲也, 胡為而來哉 (차추성야. 호위이재오)
蓋夫秋之為狀也 (개부추지위상야)
其色慘淡, 煙霏雲斂 (기색참담, 연비운렴)
其容清明, 天高日晶 (기용청명, 천고일정)
其氣慄冽, 砭人肌骨 (기기율렬 폄, 인기골)
其意蕭條, 山川寂寥 (기의소조, 산천적료)
故其為聲也, 淒淒切切, 呼號憤發 (고기위성야, 처처절절, 호호분발)
豐草綠縟而爭茂 (풍초록욕이쟁무)
佳木蔥籠而可悅 (가목총롱이가열)
草拂之而色變, 木遭之而葉脫 (초불지이색변, 목조지이엽탈)
其所以摧敗零落者 (기소이최패영락자)
乃其一氣之餘烈 (내기일기지여열)
夫秋, 刑官也, 於時為陰 (부추, 형관야. 어시위음)
又兵象也, 於行為金 (우병상야, 어행위금)
是謂天地之義氣 (시위천지지의기)
常以肅殺而為心 (상이숙살이위심)
天之於物, 春生秋實 (천지어물, 춘생추실)
故其在樂也 (고기재낙야)

商聲主西方之音 (상성주서방지음)
夷則為七月之律 (이칙위칠월지율)
商, 傷也, 物既老而悲傷 (상, 상야, 물기노이비상)
夷, 戮也, 物過盛而當殺 (이, 육야, 물과성이당살)
嗟乎,  草木無情, 有時飄零 (차호, 초목무정, 유시표령)
人為動物, 惟物之靈 (인위동물, 유물지영)
百憂感其心, 萬事勞其形 (백우감기심, 만사노기형)
有動于中, 必搖其精 (유동우중, 필요기정)
而況思其力之所不及 (이항사기력지소불급) 
憂其智之所不能 (우기지지소불능)
宜其渥然丹者為槁木 (의기악연단자위고목)
黟然黑者為星星 (묵연흑자위성성)
奈何以非金石之質 (내하이비금석지질)
欲與草木而爭榮 (욕여초목이쟁영)
念誰為之戕賊 (염수위지장적)
亦何恨乎秋聲 (역하한호추성 )
童子莫對, 垂頭而睡 (동자막대, 수두이수)
但聞四壁蟲聲唧唧 (단문사벽충성즉즉)
如助余之歎息 (여조여지탄식)

 

....................................................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아서 먼지가 쌓이면 안 되고, 또 고요한 물과 같아서 물결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 (p.304)

 

양유정(원나라의 시인)은 <노봉삼수사>에서 이렇게 노래 했다.

 

윗노인이 나서서 하는 말,

큰 도는 하늘을 온전히 품는다네.

가운뎃노인이 나서서 하는 말,

추위와 더위를 늘 조절한다네.

아랫노인이 나서서 하는 말,

백 년을 살면서 절반은 잠만 잤다네. (p.310-311)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 부족하고, 못 한 사람과 비교하면 남음이 있다."고 했으니, 이는 즐거움을 찾는 가장 오묘한 방법이다. 배고파 우는 사람과 비교하면 배가 부른 것만으로도 즐겁고, 추위에 떠는 사람과 비교하면 따뜻한 것만으로도 즐겁다. 힘들게 일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한가로운 것만으로도 즐겁고, 병들어 아픈 사람과 비교하면 건강한 것만으로도 즐겁다. 재난을 당한 사람과 비교하면 평안한 것만으로도 즐겁고, 죽은 사람과 비교하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p.312)

 

백거이(白居易)는 <술을 마주하고(대주對酒)>라는 시에서 이렇게 읋었다.

 

달팽이 뿔 위에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빛처럼 잠시 살다 가는 것을

부유하든 가난하든 그런대로 즐겁게 살면 될 일

호탕하게 웃을 줄 모르는 이가 어리석을 뿐이지

 

蝸牛角上爭何事 (와우각상쟁하사)
石火光中寄此身 (석화광중기차신)
隨富隨貧且歡樂 (수부수빈차환락)
不開口笑是痴人 (불개구소시치인)  (p.312)

 

....................................................

<역자서문>

"덧없는 인생,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릴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浮生若夢(부생약몽) 爲歡幾何(위환기하) "

이백은 일찍이 봄날 도리원에서 연회를 열며 인간의 유한함을 이렇게 탄식하였다. 부생, 덧없는 인생이라는 말은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에서 나왔다. 세속에 얽매이지 않으며 신선처럼 호방하게 살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이백의 삶을 심복 역시 동경하고 있었으리라. 후회 없이 방랑하였고 세상의 진부함에 물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사랑하였던 심복은 "인생은 덧없다"는 말부터 우리에게 던진다.

<참고>

李白(이백) -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天地者(천지자) 萬物之逆旅(만물지역려)
光陰者(광음자) 百代之過客(백대지과객)
而(이)
浮生若夢(부생약몽) 爲歡幾何(위환기하)
古人秉燭夜遊(고인병촉야유) 良有以也(양유이야)
況(황)
陽春(양춘) 召我以煙景(소아이연경)
大塊(대괴) 假我以文章(가아이문장)
會桃李之芳園(회도리지방원) 序天倫之樂事(서천륜지락사)
群季俊秀(군계준수) 皆爲惠連(개위혜련)
吾人詠歌(오인영가) 獨慙康樂(독참강락)
幽賞未已(유상미이) 高談轉淸(고담전청)
開瓊宴以坐花(개경연이좌화) 飛羽觴而醉月(비우상이취월)
不有佳作(불유가작) 何伸雅懷(아신아회)
如詩不成(여시불성) 罰依金谷酒數(벌의금곡주수)

.........................................................................................

 

<작품 이해>

부생육기 - 심복 (권수전 옮김, 책세상)

 

《부생육기》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보편적 인간 정서와 탁월하게 접목하고 있는 중국문학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인생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담담하지만 명징하게 표현되고 있는《부생육기》의 서술 태도에는 슬퍼하되 비통해하지 않는다(哀而不悲)는 한문학적 전통의 향취가 배어난다.
이백의〈춘야연도화원서春夜宴桃花園序〉의 ‘덧없는 인생 꿈만 같으니, 얼마나 즐거움을 누리겠는가?(浮生如夢, 爲歡幾何)’라는 구절에서 제목을 따고 있는 이 작품은 1장 첫머리에서 소동파의〈여반곽이생교심춘與潘郭二生出郊尋春〉이라는 시에서 ‘모든 일은 봄날의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구나(事如春夢了無痕)’라는 구절을 인용해 작품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의식을 전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단순히 있었던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서술하고만 있지는 않다. 제 1, 2장에서 삶을 아름답게 꾸며가는 부부상을 보여주고는 3장에서 갑작스레 화자의 슬픈 기억들이 전혀 무방비 상태의 독자들에게 던져질 때 느낄 수 있는 강한 충격과 비애감은 오늘날의 문학적 형식미를 기준으로 봐도 절묘한 것으로 보인다. 제 4, 5, 6장은 저자가 유람했던 명산대천과 유구국에서 본 갖가지 풍물을 아주 세밀하게 제시하면서도 1, 2, 3장의 즐거웠던 기억과 슬픔이 함께 조화되고 있어 사실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이 모든 것을 정리하며 마음의 평정을 얻어 화자가 삶을 마무리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화자인 ‘나’는 1763년 소주 지방에서 태어났다. 자신보다 열 달 정도 먼저 태어난 ‘운’이에게 어려서부터 마음이 있었던 화자는 운이와 13세 때 혼약을 맺고, 18세 때 결혼을 했다. 화자는 운이와의 애틋한 사랑을 진솔하게 그려 보이며 이 글을 시작하고 있다.
운이는 문장을 잘 알고 시를 쓰는, 그리고 자수와 바느질에 뛰어난 당대의 현숙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엄숙주의에 물들지 않았고 오히려 자유분방한 풍취를 보여준다. 처음에 화자에게 지극히 정중한 태도로 일관했던 운이에게 화자는 “예의로 날 옭아매려는 거요?” 하며 서로의 관계를 차츰 친구처럼 대등하고 스스럼없는 관계로 만들어간다. 또한 당시 여성들이 참석할 수 없던 어느 연회 자리에 남장한 아내와 함께 참석하는 화자의 즐거운 추억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제1장 ‘행복했던 결혼 생활’은 당시의 딱딱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관계를 열어놓고 있는 두 사람의 사랑이 중심에 놓인다.
제2장 ‘아름다운 멋을 찾아서’에서는 화자의 선비다운 풍모가 담백하게 그려지고 있다. 집과 정원을 꾸미고 난을 치고, 꽃과 곤충들을 벗하는 화자는 가난하지만 인생을 향유할 줄 안다. 친구들을 만나면 즐겁게 술을 마시고 글을 지으며 꽃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제3장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는 이들 부부의 가난과 당시 시댁 친지들과 겪어야 했던 불화를 통해 인생의 고통과 슬픔이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운이는 시아버지에게 첩을 얻어줬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의 미움을 받기도 하고, 시동생의 빚보증 문제에 연루되어서는 부부가 집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운이는 양주에서 41세의 나이로 병이 들어 숨을 거둔다. 또한 화자는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소주로 돌아오지만 다시 동생과 불화를 겪게 되고, 아들 봉삼이마저 뜻밖에 요절하게 된다.
제4장 ‘내 숨결이 묻어나는 곳’과 제5장 ‘유구국을 다녀와서’는 화자가 막우 일을 하면서 중국의 명산대천과 오늘날의 오키나와 지역에 해당되는 유구국을 다니면서 본 풍물을 묘사하고 있다.
제6장 ‘건강하고 여유롭게 사는 법’은 화자가 인생의 덧없음을 깨우치고 신선도를 익혀, 건강하고 여유롭게 지내는 방법에 대해 명상하는 내용이다. 그는 마음속에 있는 집착을 끊어버릴 때만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생이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해탈의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고통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

심복(沈復, 청, 1763-? )

심복(沈復)은 청나라 때 사람으로 1763년 11월 22일 소주에서 태어났다.
1777년 아버지와 여러 스승들에게 당시 지방 장관들의 비서에 해당되는 막우 일을 배운 뒤부터 그는 중국에서는 사천성, 귀주성, 운남성 세 곳을 제외하고는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당대의 명승고적을 두루 유람했다. 그는 중국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오키나와에 해당하는 유구국의 답사기까지 남기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웃하며 지내던 운이라는 여인과 결혼했다. 그녀는 그와 동갑이지만 그보다 열 달 정도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본래 그가 누나라 부르며 따르곤 했던 여성이었다. 운이는 문장에 밝고 자수와 바느질에도 뛰어난 재주 있는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뜻이 맞는 지기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예술적인 삶을 누렸다. 하지만 그들은 집안 사람들과의 불화와 가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운이가 양주에서 41세의 나이로 병이 들어 숨을 거두기까지 23년 세월을, 힘들기도 했지만 아름답고 그리운 기억들을 정리하며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있다.
운이가 타향에서 병으로 죽은 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막우 일을 정리하고 소주로 돌아왔으나 동생과 불화를 겪게 되었다. 그후 아들 봉삼이가 뜻밖에 요절하게 되자 그는 인생의 덧없음을 깨우치고 신선도를 익혀, 건강하고 여유롭게 지내는 방법에 대해 명상하며 여생을 보낸다.
심복이 죽은 해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그가 《부생육기》의 4장을 쓴 1808년 이후 10여 년 가량을 더 생존했던 것으로 보고 1822년 60세 전후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부생육기 - 심복 (권수전 옮김, 책세상)

부생육기 - 심복 (지영재 옮김, 을유문화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