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4. 서양 - 고전 희곡

오라스 - 피에르 코르네유 (진중권 옮김, 살림)

by handaikhan 2024. 3. 20.

 

생각하는 힘 세계문학 컬렉션 (청소년용 축약본)

 

피에르 코르네유 - 오라스 (1640년)

 

때는 로마 건국 초기인 기원전 7세기경, 로마는 인접해 있는 알바와 2년째 전쟁 중이었다. 전쟁을 치르기 전에 두 나라는 형제 국가로서 사이좋게 지냈다. 로마의 청년과 처녀들은 알바의 청년, 처녀들과 자유롭게 사귀고 결혼했다. 로마의 전사이자 귀족인 오라스는 알바의 귀족인 사빈과 결혼했다. 사빈에게는 퀴리아스라는 오빠가 있었다. 그는 오라스의 누이동생 카미유와 약혼한 사이였다. 로마와 알바의 두 명문 가문은 그렇게 서로 겹으로 맺어져 화목하게 지냈다.

하지만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모든 것이 확 달라졌다. 사돈 간에 서로 칼을 맞대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가장 슬퍼한 것은 역시 여인들이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그녀들은 찢길 수밖에 없었다. 오라스의 부인 사빈에게 조국은 알바였다. 하지만 그녀는 오라스와 결혼한 이래 남편 나라인 로마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알바와 로마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오라스의 동생 카미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주국은 로마였다. 그러나 로마의 적 알바에는 사랑하는 연인 퀴리아스가 있었다. 그녀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p.98-99)

 

"아, 내 남편 오라스가 로마인이니 나도 로마 여인이로구나. 하지만 결혼으로 내 조국이 바뀌는 건 아냐. 만일 그렇다면 나는 그의 부인이 아니라 노예인 셈이야. 아, 내 소중한 조국 알바, 나는 로마의 패배뿐 아니라 승리도 두려워. 아, 로마여, 세 오빠가 한쪽에, 남편이 다른 쪽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찌 너의 승리만을 기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알고 있어. 너 로마는 끝없이 뻗어나가 더 넓은 곳에 서 그 꿈을 펼치리라는 것을. 신들은 너에게 지상의 제국을 약속했지. 너는 전쟁에 의해서만 그 약속을 실현할 수 있어. 나는 이미 왕관을 쓴 너의 군대가 피레네 산맥을 넘은 것을 눈에 그리고 있어. 저 동양까지, 라인 강변까지 너의 깃발이 휘날리는 걸 보고 싶어.

하지만 로마여, 로물루스를 태어나게 한 도시인 알바는 존경해라. 배은망덕한 로마여, 기억해라. 알바의 왕의 혈통에서 너희가 나왔음을. 그러니 멈추어라. 그리고 생각해라. 너는 지금 네 어머니 가슴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음을." (p.102-10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아이네이스 - 베르길루우스 (천병희 옮김, 숲)

............................................................................

 

마주 앉아 있던 오라스가 퀴리아스의 말에 화답했다.

"운명의 신은 우리에게 명예의 전당을 열어주었소. 또한 우리의 단호함을 보여줄 기회를 우리에게 주었소. 운명의 신은 온 힘을 다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려 하고 있소.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홀로 적과 맞서는 일은 많은 사람이 마주했던 운명이었소. 하지만 우리는 그 이상이오. 우리는 국가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하오. 또 다른 나와 다름없는 이를 적으로 삼아 싸워야 하오. 부인의 오빠이자 누이동생의 약혼자를 상대로 하여 싸운다는 것, 모든 정을 끊고 조국을 위해 칼을 든다는 것, 이건 온전히 우리만이 마주한 운명이오. 그 누구도 그런 운명 앞에 마주 선 적은 없었소. 그 누구도 이런 명예를 가질 수 없었소."

퀴라아스도 오라스의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오라스처럼 단호할 수는 없었다. 그가 오라스에게 말했다.

"우리의 이름이 오래 사라지지 않을 것은 사실이오. 쉽게 주어지지 않을 기회이니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오. 당신은 정말 야만적일 정도로 단호하구려. 이 길을 통해 영원불멸의 명성을 얻으려 하고 있으니, 하지만 이런 길을 통해 영원한 영광을 얻는 것보다는 이름 없이 사는 게 더 나을 것이오.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이제까지 아무 주저 없이 내 의무를 따랐소. 우리의 기나긴 우정, 카미유를 향한 나의 사랑도 내 영혼을 망설이게 하지 않았소. 로마가 당신을 높이 평가하듯이 알바도 나를 폰이 평가하오. 이번 선택이 그것을 증명하오. 당신이 로마를 위하듯이 나도 알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오.

나는 알고 있소. 당신의 명예는 나의 피를 요구하고 있고 내 명예는 당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데 있다는 것을. 나는 결혼을 앞둔 애인의 오빠를 죽여야 하며 그대는 누이동생의 약혼자이며 그대 아내의 오빠를 죽여야 하오. 나는 아무 두려움 없이 그 의무를 행할 것이오.

하지만 이 말만은 하고 싶소. 내 마음은 그 운명에서 도망치려 하고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소. 내 자신이 애처롭고 먼저 죽은 자들이 부러울 정도요. 나는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소. 떨리지도 않소. 하지만 망설여지오. 명예를 사랑하지만, 명예 때문에 잃게 되는 것이 아쉽소. 나는 인긴이기 때문이오. 로마의 야심이 얼마나 큰지 모르지만 내가 당신처럼 그렇게 단호한 로마인이 아닌 게 다행이오." (p.114-116)

 

하지만 고통을 위로하는 방법은 서로 달랐다. 카미유는 고통 속에서 오로지 사랑에 매달렸다. 그녀에게는 남자들의 명예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빈은 고통을 이성으로 극복하려 했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리 불행하더라도 한쪽 편을 들어야 해. 이렇게 내 영혼이 찢기고 있을 수는 없어. 그러나 아! 이ㅣ 상반된 운명 속에서 어느 편을 든다 말인가! 혈육과 사랑이 모두 편을 들어달라고 내게 요구하는 구나.

그래, 한 사람의 부인이면서 동시에 오빠들의 누이가 되자. 그들을 닮자.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는 명예를 내 것으로 삼자. 이제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자. 누가 죽던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여기자.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죽음을 기다리자. 두 가문이 승리해서 얻게 되는 영광만을 생각하자. 승자를 기쁘게 맞자. 나는 로마의 부인이고 알바의 딸이다. 모두 내 가문이다. 내 가문의 팔이 아니고는 승리할 수 없다. 결국 승리하는 것은 내 가문이다. 나는 아무 절망 없이 죽은 자를 만날 수 있으며 아무 두려움 없이 승자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위안도 잠깐이었다. 그녀는 잠시 위안에 젖었다가 다시 슬픔에 잠겼다.

'아, 나를 기만하는 헛된 위안아! 너는 어둠 속에서 한순간 번쩍이는 번개와 같구나! 번개가 사라지고 나면 더욱 어두운 밤이 찾아오듯, 내 마음은 다시 어둠에 빠지는구나. 너는 순간적으로 내 고통을 마비시켰을 뿐, 내게서 오빠나 남편을 빼앗아 간다는 가혹한 슬픔을 영원히 거두어 가지는 못하는구나. 아, 어쩌란 말이냐. 누가 승리하건 결국 내 가문의 피의 대가로 얻은 영광인 것을! 내가 그토록 바랐던 평화가 고작 이런 거란 말이냐! 오, 신이시여. 그대가 우리에게 베푼 호의가 바로 이것입니까? 호의를 베푸실 때 그토록 잔인하시다면 화가 났을 때는 어떤 벼락을 내리시려는 것입니까? 순수한 사람들을 이렇게 고통에 빠지게 하신다면, 신을 모독하는 자들에게는 도대체 어떤 가혹한 형벌을 준비하고 계신 건가요?' (p.126-128)

 

'아가씨,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희망을 갖도록 해요. 하늘의 은총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 법이에요.' (p.131-132)

 

 

 

....................................................................................................................................................................................................................................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1606년 6월 6일 ~ 1684년 10월 1일)

프랑스의 비극 작가로, 몰리에르, 장 라신과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3대 극작가 중 하나이다. 그는 “프랑스 비극”의 창립자로 불리며, 거의 40년 동안 희곡을 작성하였다.


루앙의 성직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심이 깊은 분위기 속에서 자라고 예수회(Society of Jesus)가 경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라틴문학, 특히 비극시인 세네카에 심취했다.
후에 에스파냐 연극을 연구하여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수학(修學) 후에는 고향 루앙에서 성직자가 되는 한편 사교계에도 출입, 연애사건이 계기가 되어 쓴 희극 <멜리트>를 1629년에 파리에서 상연, 예상외의 성공을 올렸기에 파리로 진출했다.
1633년, 그는 리슐리외 등 4명의 극시인과 함께 코메디 데 튀를을 형성했으나, 소심한 반면 자유를 갈구하는 성격 때문에 탈퇴하여 루앙에 돌아왔다. 그 후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36년에는 <르 시드>를 발표, 대성공을 거두는 한편, 대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르 시드>는 이 작가의 성공작인 동시에 프랑스 고전극의 기초를 확립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청년기사 동 로드리그는 아버지가 받은 치욕을 씻기 위해 애인 시메인의 부친 동 고메스 백작을 결투로 쓰러뜨린다. 시메인은 자식된 의무로서 국왕에게 로드리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이 의무감에 의해 정념을 초극하려는 경향으로서 코르네유의 비극은 의지 비극이라고도 불리며 이는 희비극의 외면적인 갈등 대립을 심리적으로 내면화시켰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표현에도 대구(對句)의 명문이 많고 지금도 많이 애송되고 있다.
이 논쟁 이후 잠시 침묵을 지켜왔던 코르네유는 1640년, 로마 기사의 명예를 묘사한 <오라스>, 로마황제의 덕을 칭송하는 <신나>, 그리고 1643년에는 기독교 순교자의 숭고함을 주제로 하는 <풀뤼우크트>, 다음해에는 강렬한 에고이즘의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로드귄> 등 많은 명작을 내놓았으며 비극의 거장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이러한 작품은 모두 의지와 정념을 대립시키면서 의지의 승리와 그것에 이르는 인간적인 고뇌를 웅장한 명문과 아름다운 서정을 교차시키며 묘사한 걸작이라 하겠다. 그 이후 희극의 명작 <거짓말쟁이 사내>(1644)를 발표, 몰리에르 이전의 사교계에 고상한 풍속희극을 제공한 공적은 크다고 하겠다.
그는 1647년에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페르타리트>(1652)는 치명적인 실패작이었으며 파리에서 낙향, 한때는 루앙에 은둔하기도 했다. 그 후 당시의 재무상 푸케의 간청이나 아우인 토마 코르네유의 성공등에 자극을 받아 극단에 복귀, <외디프>(1659), <세르트리우스>(1662), <아틸라>(1667), <쉬레나>(1674) 등을 썼다. 이러한 작품은 운문이나 장면에 의해 정적인 미는 있으나 심리상으로나 문체상으로도 율동에 넘치는 라신에게 압도되어 크게 떨치지는 못했다.
그의 동생인 토마 코르네유(Thomas Corneille, 1625-1709)도 극시인이 되어 에스파냐극의 번안에 솜씨를 발휘, 광기 어린 로마네스크극 <티모크라트>(1653)는 당대에 가장 성공한 작품(상연 50회)이 되었으나 문학적으로는 무가치하고 형의 명성만이 남아 있다.

 

.............................................

연극적 환상 오라스 - 피에르 코르네유 (김덕희 옮김, 책세상)

코르네유 희곡선 - 피에르 코르네유 (김덕희 외 옮김, 이화여대출판부)

1. 르 시드 Le Cid (비극) - 송민숙 옮김
2. 오라스 Horace (비극) - 조만수 옮김
3. 폴리왹트 Polyeucte (비극) - 김애련 옮김
4. 거짓말쟁이 Le Menteur (희극) - 김덕희 옮김
5. 속 거짓말쟁이 La Suite du Menteur (희극) - 박무호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