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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4. 서양 - 고전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 -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연구회, 아름다운날)

by handaikhan 2024. 1. 31.

 

셰익스피어 - 말괄량이 길들이기 (1592년)

 

 

페트루치오: 여기서 기다릴 테니 보내주시지요. 오기만 해봐라. 악담을 한다고? 그럼 나는 나이팅게일처럼 노래한다고 말해야지. 인상을 쓰면 이슬을 머금은 장미처럼 싱그럽다고 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으면 심금을 울리는 웅변이라고 하고, 냉큼 꺼지라고 하면 오히려 더 머물라고 한 것처럼 고맙다고 해야지. 청혼을 겆러하면 언제 결혼식을 올릴 것인가 날짜를 물어보고. 마침내 오는구나. 케이트 양, 이름을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카타리나: 듣긴 들은 것 같은데 잘못 들었군요. 사람들은 날 카타리나라고 부르죠.

페트루치오: 그럴 리가요. 사람들은 모두 케이트라고 부르던데. 어떨 때는 여장부 케이트라고 부르고, 어떨 내는 말괄량이라고 부르더군. 그렇지만 이봐요, 케이트 양, 기독교 나라에선 가장 예쁜 케이트요, 여왕님이 납신 케이트 홀의 케이트이고, 과자같이 먹고 싶은 케이트 양, 내 말 좀 들어봐요. 사람들이 당신은 상냥하고 예쁘고 얌전하다고 자자하게 칭찬하더군요. 그러나 그 소문보다 실물이 더 낫다는 얘길 듣고, 당신을 아내로 맞으려고 이렇게 발걸음을 옮겼다오.

카타리나: 옮겼다고요? 좋아요! 그럼 그렇게 옮겨온 그 발을 다시 옮기시죠. 단박에 난 당신이 옮기기 쉬운 가구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페트루치오: 아니, 옮기기 쉬운 가구라고?

카타리나: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싸구려 의자 말예요.

페트루치오: 그 말 참 잘했소. 그럼 이리 와서 걸터앉으시오.

카타리나: 당나귀에나 걸터앉지. 당신이 바로 그 당나귀인가요?

페트루치오: 착한 케이트 양! 당신은 가벼운 여자니까....

카타리나: 이래봬도 난 당신 같은 병신 당나귀는 아니에요.

페트루치오: 케이트 양, 나도 당신에게 걸터앉을 생각은 없다오. 어떻게 그리 가냘픈 허리에....

카타리나: 이건 가냘픈 게 아니라 당신 같은 촌닭한테 안 잡히려고 날씬하고 벌처럼 재빠른 거죠.

페트루치오: 벌이라, 벌이면 위윙거려야지.

카타리나: 윙윙 돌아가는 머리치곤 꽤 재치가 있군요.

페트루치오: 이쪽은 잘 돌아가고 있으니 얻어맞지 않게 조심해요.

카타리나: 당하지 않으려면 댁이나 조심하시지요.

페트루치오: 어이구, 말벌처럼 잘도 쏘아대는 구먼.

카타리나: 내가 말벌이라고요? 그럼 조심해요. 침이 있으니.

페트루치오: 그 침을 뽑아버리면 되지 뭐.

카타리나: 아까부터 말꼬리를 물고늘어지는데, 썩 꺼져버려요.

페트루치오: 말도 안 돼. 이리 와요, 케이트. 케이트, 난 신사니까....

카타리나: 이것 놔요.

페트루치오: 한 대 더 쳐보시오, 다음엔 내 주먹이 나갈 차례니.

카타리나: 여자를 치면 신사가 아니겠죠. 신사가 아니면 족보도 없는 법이고요.

페트루치오: 족보? 좋아, 그럼 나를 당신 족보에 올려주시오.

카타리나: 당신 족보는 뭐죠? 닭벼슬처럼 생겼나요?

페트루치오: 벼슬 없는 수탉이지. 당신은 곧 내 암탉이 될 거요.

카타리나: 그럼 당신은 소리만 빽빽 지르는 겁쟁이 수탉이겠군요.

페트루치오: 제발 케이트, 얼굴을 찡그리지 말아요.

카타리나: 신 능금을 보면 그래요.

페트루치오: 아니, 신 능금이 어디 있어?

카타리나: 자기 얼굴은 볼 수가 없는 법이죠.

페트루치오: 보여주오. 사실 내 힘은 당신에게 쓰기엔 너무 넘친다오.

카타리나: 이거 놔요. 정말 화낼 거예요.

페트루치오: 싫어. 당신은 참으로 상냥해. 거만하고 무뚝뚝하다는 소문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어. 알고 보니 당신은 싹싹하고 에절 바르고 말씨도 얌전하고. 얼굴도 봄에 피는 꽃처럼 예쁘고, 찡그릴 줄도 모르고, 앙칼진 계집애처럼 남을 멸시하거나 화낼 줄도 모르고, 오히려 청혼자들에게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한단 말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왜 당신을 절름발이라고 하지? 왜 남의 험담을 마구 하는 걸까? 케이트는 피부도 개암나무 열매처럼 싱싱하고 맛은 그 알맹이보다 더 달콤하잖아! 자, 뒤뚱거리지 말고 걸어봐요.

카타리나: 에잇, 누구에게 명령을 하는 거야?

페트루치오: 그대 걸어가는 뒷모습은 달의 여신보다 더 아름답지. 오, 그대는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는 케이트여라. 아르테미스가 요염함을 지녔다면 케이트는 정절을 지녔도다.

카타리나: 어디서 그런 능청을 배웠어요?

페트루치오: 타고난 것이지.

카타리나: 대단한 어머니시네요. 바보 아들을 만들었으니.

페트루치오: 카타리나, 허튼 소리는 이제 그만 집어치웁시다. 당신은 나의 아내가 될 거요. 당신 아버지한테 허락을 받았지. 난 당신이 싫건 좋건 당신과 결혼할 거요. 지참금도 합의를 봤소. 태야 아래에 드러난 당신의 미모로 인해 나는 눈이 멀 지경이오. 저 태양을 두고 맹세하건대, 당신은 당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집한 나 외의 어떤 남자와도 결혼할 수가 없소. 나는 당신을 길들이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오. 살쾡이 케이트를 고양이처럼 양순한 케이트로 길들이는 게 내 임무요. 마침 아버지께서 오시는구려. 거절할 생각은 마시오. 난 당신을 아내로 꼭 맞이할 테니까.

밥티스타: 아, 페트루치오 씨, 그래 딸애와는 이야기가 잘 되었소?

페트루치오: 물론이지요. 소금이 상하는 걸 보았나요? 내 사전에 실패란 없습니다.

밥티스타: 아니, 카타리나, 표정이 왜 그러느냐? 내 딸 카타리나의 얼굴이 왜 이렇게 뚱해 있지?

카타리나: 제가 아버지 딸 맞나요? 참으로 딸에게 아버지 구실 한번 잘하셨군요. 이런 미치광이한테 시집보내려고 하시다니! 도깨비 같은 성격에다 입은 얼마나 험한지...

페트루치오: 장인 어른,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케이트에 대해 전혀 잘못 알고 있어서요. 설사 따님이 고집쟁이라 하더라도 그건 겉과 속이 다른 하나의 정책일 뿐이지요. 따님은 성미가 못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름 새벽같이 상쾌하답니다. 게다가 참을서 많기로는 데카메론에 나오는 양처 그리셀다에 못지 않고, 정조 관념은 저 로마의 열녀 루크레티아에 버금가지요. 그래서 결국 저희 두 사람은 다음 일요일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카타리나: 일요일에 저는 당신이 교수형을 당하는 꼴을 보고 말겠어요.

페트루치오: 자, 케이트, 그럼 난 베니스로 돌아가서 결혼식날 입을 옷을 마련하겠소. 장인 어른은 피로연 준비와 손님들을 초청해주시지요. 다시 말하건대, 케이트는 멋진 신부가 될 거라 장담합니다. (p.496-50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데카메론 - 보카치오 (박상진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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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니오: 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미 늙고 나는 이렇게 젊지 않습니까?

그레미오: 죽음이란 나이순으로 찾아오는 건 아니지요. (p.502)

 

트래니오: 아니, 그렇게 괴상망측한 차림새로 신부를 만나실 생각이오? 내 옷을 빌려드릴 테니 방으로 갑시다.

페트루치오: 천만에요. 이대로 만나겠소.

밥티스타: 설마 그런 모습으로 결혼식을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페트루치오: 아뇨, 이대로 식을 올리겠습니다. 신부는 나하고 결혼하는 것이지, 내 의복하고 결혼하는 게 아니니까요. 지금은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끌 때가 아닌 듯합니다. 어서 신부한테 가서 사랑의 키스를 퍼부어 남편의 권리로 아내를 봉인해야겠습니다.

트래니오: 저렇게 미치광이처럼 차려입은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테지만, 아무튼 교회가 가기 전에 바궈 입도록 설득해야겠습니다.

밥티스타: 나도 좋은 생각이오. 아무튼 뒤쫓아가 봅시다.

페트루치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아마 오늘 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해놓으신 모양입니다만, 나는 급한 볼일이 있어서 작별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밥티스타: 아니, 오늘 밤에 떠나겠다고?

페트루치오: 해가 저물기 전에 떠나야 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장인 어른도 제가 왜 그런지 아신다면, 어서 가보라고 권하실 겁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덕택에 이 세상에서 가장 참을서 있고 상냥하고 정숙한 여자를 아내로 맞게 되었으니까요. 그럼 장인 어른과 만찬을 함께 드시고, 떠나는 저의 앞날을 축복해주십시오.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다들 안녕히 계십시오.

카타리나: 제발 저를 사랑하신다면 가지 마세요.

페트루치오: 그루미오, 말을 준비해라.

카타리나: 그럼 당신 맘대로 해요. 저는 오늘 같이 가지 않을 거예요. 문은 열려 있으니 가보세요. 그 장화가 닳아빠질 때까지 실컷 돌아다녀 보시죠. 난 마음이 내킬 때까진 여길 떠나지 않을 작정이나까. 지금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안하무인일 게 안 봐도 뻔해요.

페트루치오: 케이트, 진정하시오.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오.

카타리나: 이래도 화를 내지 말라고요. 아버지는 상관 마세요. 흥, 누가 자기 마음대로 될 줄 알고. 여러분, 피로연 장소로 들어가세요. 이제 보니, 여자란 여간 강하지 않고선 바보 취급당하기 십상이네요.

페트루치오: 케이트, 당신의 명령인데, 누가 피로연 장소로 안 들어가겠소. 여러분, 모두 피로연 장소로 들어가서 마음껏 즐기십시오. 즐거워서 미쳐버리든 죽어버리든 마음대로 즐기시지요. 그러나 내 귀여운 신부 케이트만은 내가 데리고 가야겠습니다. 그렇게 두 발을 구르고 반항해도 소용없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제 나는 당신의 주인이라고. 이 여자는 내 소유물이요, 집이요, 가구요, 밭이요, 말이요, 소요, 당나귀요, 나의 전부이자 내 것이란 말이오. 그러니 누구든지 감히 이 여자한테 손을 대었다가는 내 가문두지 않을 테니. 그루미오, 칼을 빼라. 우린 도둑 떼에 둘러싸여 있다. 네가 사나이라면 나와 아씨를 호위하라. 케이트, 백만 대군이 몰려온다 해도 나는 당신을 지켜줄 것이오. (p.506-507)

 

카타리나: 그럼 시작할게요. 우선 얼굴부터 환하게 펴세요. 깔보는 듯한 눈은 거두시고요. 그건 자기의 주인이며 지배자이며 군주인 남편한테 상처가 되는 짓이니까요. 결국 서리를 맞아 떨어지는 감꼭지처럼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어느 모로 보나 화가 난 여자는 맑은 물에 돌을 던져 흙탕물이 된 것처럼 흉하고 불결해보이지요. 남편이 아무리 목이 마르다 해도 입을 대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남편은 우리의 생명이자 보호자이며 군주이세요. 남편은 오로지 아내를 위해 자나깨나 일을 하니까 우리가 집에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남편은 아내의 사랑과 고운 얼굴과 순종밖에 바라는 게 없죠. 그렇게 보면 아내가 할 일은 참으로 하찮은 거죠. 하물며 아내가 고집을 부리고, 짜증을 내고, 남편의 의사를 거역한다면, 그게 배은망덕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야말로 평화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할 때 선전포고하는 격이죠. 저는 여자의 좁은 소견머리가 부끄럽기 그지없답니다. 그러니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오만함을 버리세요. 어서 모자를 벗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려요. 난 남편이 원한다면 순종의 증거로 남편 앞에 엎드릴 수도 있어요. (p.529-53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고정아 옮김,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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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1616년 4월 23일)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잉글랜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이주하고서 본격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일약 명성을 얻었고, 생전에 '영국 최고의 극작가' 지위에 올랐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처럼 인간 내면을 통찰한 걸작을 남겼으며, 그 희곡은 인류의 고전으로 남아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다. 당대 여타 작가와 다르게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자연 그 자체에서 깊은 생각과 뛰어난 지식을 모은 셰익스피어는 당대 최고의 희곡 작가로 칭송받는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 셰익스피어 (신상웅 옮김, 동서출판사)

말괄량이 길들이기 - 셰익스피어 (신정옥 옮김, 전예원)

말괄량이 길들이기 - 셰익스피어 (도해자 옮김, 한국외대출판부)

말괄량이 길들이기 - 셰익스피어 (김재남 옮김, 해누리)

말괄량이 길들이기 - 셰익스피어 (방승희 옮김,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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