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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사랑에 빠진 악마 - 자크 카조트 (최애영 옮김, 열림원)

by handaikhan 2024. 2. 12.

 

자크 카조트 - 사랑에 빠진 악마 (1772년)

 

내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나폴리 왕립 근위대에 대위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동료들끼리 많이 어울렸는데, 젊은이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주로 여자와 도박으로 시간을 보냈다. 물론 돈주머니가 충분히 두둑한 때에 한해서였다. 돈이 다 떨어졌을 때면 우리는 병영에 남아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서로 잘난 체하며 떠들어대곤 하였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군밤 몇 개와 아주 작은 키프로스산 포도주 한 병을 놓고 온갖 종류의 추론들로 에너지를 소진시키던 무렵, 우리의 대화는 우연히 히브리 신비철학과 그 비법을 행하는 강신술사들에 관한 토론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p.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카발라, 히브리 종교철학 - 아돌프 프랑크 (김태항 옮김,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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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 자네의 무지함이 참 마음에 드는군.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학설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지. 적어도 자네는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일세. 그리고 지금은 자네가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으이. (p.1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논어 강설 - 이기동 (성균대출판부)

 

子曰由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 (자왈 유야, 회여지지호인저. 지지위지지요 부지위부지면 시지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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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주 냉정한 표정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다니, 참 훌륭한 양념이기도 하군요! 나 자신까지도 얼어붙게 만들어요! 아! 알바로! 알바로! 다행히도 내겐 시도 이성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어요. 단지 내가 원하는 ㄱ넛은 내 모든 가슴으로 바로 그 양념 없이 사랑하는 것이에요. 당신은 당신 어머니를 존경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에요. 그분의 의지가 우리 두 마음의 결합에 동의하는 것으로 충분하잖아요. 그런데 왜 그 의지가 우리의 결합보다 앞서야 하죠? 지식의 빛이 부족한 당신의 머릿속에는 선입견들이 가득 차 있어요. 그것들은 때로는 당신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하고, 때로는 그렇게 하지 않게 만듦으로써, 당신의 행동을 이상하고 일관성 없게 만들어버려요. 의무감 자체에 종속되어, 당신은 이행할 필요가 없거나 불가능한 것들을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다고요. 결국 당신은 가장 소유하고픈 대상을 뒤쫓기 위해 택해야 할 길로부터 스스로 벗ㄷ어나려 하고 있어요. 우리의 결합, 우리의 인연이 타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니. 멘시아 마님이 과연 나를 마라빌랴스 가문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훌륭한 가문 출신으로 생각할지 누가 알아요? 그리고 내가 무시당하면 어떻게 하죠? 당신에게서 당신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당신 어머니에게서 당신을 쟁취해야겠군요. 나와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이 바로 최고의 과학에 이르도록 운명 지어진 자가 맞아요? 아니면 그저 에스트라마두르 산지에서 태어난 아무개 집 자식인가요? 나 자신의 감정의 신중함보다 다른 사람들의 것을 더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을 볼 때도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아야 하나요? 알바로! 알바로!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의 사랑을 대단한 것으로 칭찬해요. 하지만 그들은 언제까지나 사랑보다는 자존심과 거만함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할 거예요." (p.88-89)

 

"난 아무런 이유 없이 여자가 되지는 않았어요, 알바로. 당신은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얻고, 나는 당신 자신으로부터 당신을 얻기를 원해요. 멘시아 부인이 경솔한 분이시라면, 우리의 사랑이 맺어진 후에 반대하시겠죠.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내게 말하지 마세요. 당신이 나를 존중하는 순간부터, 당신이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순간부터, 그리고 당신이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는 순간부터 난 당신이 나를 증오하던 때보다 더 불행해져요."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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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카조트 (Jacques Cazotte, 1719-1792)

환상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자크 카조트는 1719년 프랑스 디종에서 태어났다. 해군 행정관으로 일하던 그는 시골에서 집필에 몰두하여 마술적 분위기로 주목받는 중세풍의 소설 『올리비에』(1763) 등을 발표했고, 1768년에는 디종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그는 신비주의자 클로드 드 생마르탱의 제자들과 교류했는데, 발랄하고 명랑한 그가 몽상이나 신비주의적 환각에 빠져드는 것에 사람들은 적잖이 놀라곤 했다. 왕당파였던 그는, 혁명의 공포가 휩쓸던 1792년 9월 단두대에서 생을 마쳤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익살스럽고 교훈적인 작품들』(1776)이라는 전집으로 출판되었다. 『사랑에 빠진 악마』는 1845년, 낭만주의 작가 네르발의 감수성을 통해, 당시 성행하던 환상문학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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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악마 - 자크 카조트 (최애영 옮김, 열림원) 개정판

사랑에 빠진 악마 - 자크 카조트 (김계영 옮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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