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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마지막 수업 - 알퐁스 도데 (김명숙 옮김, 좋은생각)

by handaikhan 2024. 2. 11.

 

알퐁스 도데 - 마지막 수업 (1871년)

 

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몹시 늦었다. 그래서 야단맞을 일이 걱정되었다. 아멜 선생님이 분사 문법에 대해 질문을 한다고 했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나는 분사 문법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순간 수업을 빼먹고 들판이나 쏘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p.8)

 

여러분, 이것이 내가 여러분과 수업을 하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알자스와 로렌 지방의 모든 학교에서는 이제부터 독일어만을 가르치라는 명령이 베를린으로부터 왔습니다.... 새 선생님이 내일 오실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입니다. 모두들, 열심히 듣기 바랍니다. (p.11)

<참조>

알자스-로렌 지역은 921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에 속했으나, 1600년대 초반부터 독일 내에 30년 전쟁이 일어나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결과 프랑스령으로 복속되어 병합되었다.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후 프랑크푸르트 조약에 따라 알자스-로렌은 새로 만들어진 독일 제국의 영토로 되돌려졌다. 독일 제국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알자스-로렌 지역에 가능한 한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도록 하여 프랑스 문화 및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일 제국령으로 자연히 물들이기 위해 적극 추진하려고 했으나, 주변 보수파들(융커 계층)의 반발이 심해 결국 알자스-로렌 지방은 독일 제국령으로 복속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잠시 독립국(알자스-로렌 독립 공화국)으로 있다가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 알자스로렌의 양도에 따라서 프랑스에 독일식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었다.
이 지역은 1940년 나치 독일에 의해 다시 합병되었으나,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에게 되돌아갔다.
특기할 점은 프랑크푸르트 조약으로 로렌의 약 1/4이 독일 제국의 영토가 된 바, 당시 프랑스의 주 경계와 상관 없이 영토의 할양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주의 경계가 조정되었다. 이후 알자스-로렌이 프랑스령으로 되돌려진 이후에도 조정된 경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사료로 읽는 서양사 - 이영효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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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프란츠야, 너를 야단치지는 않겠다. 네 스스로 충분히 자신을 나무라고 있을 테니까....사람들은 늘 이렇게 생각하곤 하지. '시간은 많아. 공부는 내일 하지 뭐.' 그런데 봐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아! 교육을 늘상 내일로 미룬 데에 우리 알자스의 불행이 있는 거야. 저 프러시아 사람들이 우리에게 '뭐요? 당신네들은 프랑스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자기 나라 말을 읽고 쓸 줄도 모른단 말이오!'라고 말할만도 해. 하지만 프란츠, 너의 잘못만은 아니란다.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해. 부모님들도 너희들이 공부하는 것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셨단다. 몇 푼 더 벌기 위해 너희들을 들판이나 공장으로 내보내기를 좋아했지. 나 자신은 자책할 것이 없을까? 공부 대신 너희들에게 자주 내 정원에 물이나 주게 하지는 않았는지, 송어 낚시를 하러 가고 싶을 때면 수업을 빼먹으면서도 미안해하지는 않았는지..."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어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프랑스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이해하기 쉬우며 가장 확실한 언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프랑스어를 결코 잊어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한 민족이 노예로 전락해도 자기네들의 언어만 잊지 않으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문법책을 들고 우리가 배울 곳을 읽어주셨다. 나는 내가 너무나도 잘 알아듣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 모든 것이 쉽게만 여겨졌다. 나는 한 번도 이토록 귀를 기울여 열심히 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 또한 이처럼 정성을 다해 설명하신 적이 없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떠나기 전에 자신의 모든 지식을 우리들의 머릿속에 한꺼번에 넣어주시려는 듯했다. (p.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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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년 5월 13일 ~ 1897년 12월 16일)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이다.

프랑스 남부의 랑그도크 지방의 님(Nîmes)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뱅상 도데는 비단 제조업을 하고 있었지만 불운을 부르는 사람이었고 하는 일마다 실패해서 알퐁스 도데의 어린 시절은 상당히 불우했다. 알퐁스 도데는 자라서 리용(Lyon)을 떠나 알레스(Alès)로 가서 교사 생활을 했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심한 노이로제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1년여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었으며 후에 그의 회고로는 "알레스를 떠난 몇 달 뒤에도 나 자신이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 가운데 서 있는 듯한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교사 생활을 그만둔 뒤 3살 연상의 형과 함께 살았는데 형은 파리에서 기자가 되고 싶어했다. 알퐁스도 형을 따라서 시를 썼는데 쓴 시들을 모아 <사랑하는 여자들>을 출판했다. 이는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르 피가로지>가 도데를 기자로 기용했고, 2~3편의 희곡을 써서 장래성을 주목받았다. 한편으로 나폴레옹 3세의 대신이자 입법회의 의장인 샤를 드 모르니 후작의 후원을 받아서 모르니 후작이 사망하는 1865년까지 모르니 후작의 비서로서 활동했다.
1866년, 첫 소설을 써서 크게 성공하게 된 그는 이후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 1868년에 <Le Petit Chose>라는 첫 자전적 장편 소설을 썼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후 <밝은 타타린>과 3막짜리 희곡 <아를의 여인>을 썼지만 역시 흥행에 실패한 뒤, 집필한 희곡 <프로몽과 리제르>가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어권에도 주목을 받을 정도였다.
이후로 <나바브> 등의 여러 편의 소설과 희곡을 쓰는 등 작가로서의 위상은 뚜렷해졌다. 1867년에 쥴리아 아라드와 결혼했는데 그의 부인도 문학적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1883년 도데는 자신이 아카데미 회원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쓴 기자와 결투를 벌였고 자신의 부인에 대한 안좋은 기사를 쓴 기자와도 결투를 신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말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약을 잘못 쓴 탓에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1897년 12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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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 단편선 - 알퐁드 도데 (김사행 옮김, 문예 세계문학)

별들 - 알퐁스 도데 (김명섭 옮김, 새움)

알퐁드 도데 (임희근 옮김, 현대문학 세계단편선)

별 - 알퐁스 도데 (최복현 옮김, 인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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