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날개 - 이상 (문학과지성사)

by handaikhan 2023. 2. 1.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6

목차

일러두기

12월 12일
지도의 암실
지팡이 역사(轢死)
황소와 도깨비
공포의 기록
동해(童骸)
날개
봉별기(逢別記)
실화(失花)
종생기(終生記)


작품 해설
이상의 삶과 문학 그리고 전위와 해체에 대하여 / 김주현
작가 연보
작품 목록
참고 문헌
기획의 말

................................

이상 - 날개 (1936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 유쾌하오. (p.268)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르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 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 만을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쯤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꾿빠이.

꾿빠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패러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인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생채기도 머지않아 완치될 줄 믿소. 꾿빠이).

감정은 어떤 포즈(그 포즈의 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나 모르겠소0. 그 포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벌과 미망인 - 세상의 하고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 '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독이되오? 꾿빠이. (p.268-27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레 미제라블 - 빅토르 위고 (이형식 옮김, 펭귄클래식)

지하로부터의 수기 - 도스토예프스키 (이동현 옮김, 문예세계문학)

.............................................................................................................

내 방 미닫이 위 한곁에 칼표딱지를 넷에다 낸 것만 한 내 - 아니! 내 아내의 명함이 붙어 있는 것도 이 풍속을 좇은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러나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 나는 내 아내와 인사하는 외에 누구와도 인사하고 싶지 않았따.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놀거나 하는 것은 내 아내 낯을 보아 좋지 않은 일인 것만 같이 생갃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까닭은 이 삼십삼 번지 십팔 가구 가운데서 내 아내가 내 아내의 명함처럼 제일 작고 제일 아름다운 것을 안 까닭이다. 십팔 가구에 각기 별러 든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아내는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지붕 밑 볕 안 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따라서 그런 한 떨기 꽃을 지키고 - 아니 그 꽃에 메어달려 사는 나라는 존재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p.271-272)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 - 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 마음에 들었다. 방 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 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인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는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을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이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 그날을 그저 까닭 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 이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이 절대적인 내 방은 대문간에서 세어서 똑 - 일곱째 칸이다. 럭키 세븐의 뜻이 없지 않다. 나는 이 일곱이라는 숫자를 훈장처럼 사랑하였다. 이런 이 방이 가운데 장지로 말미암아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그것이 내 운명의 상징이었던 것을 누가 알랴? (p.272-273)

 

어느덧 손수건만 해졌던 볕이 나갔는데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요만 일에도 좀 피곤하였고 또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내 방으로 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고 그만 내 방으로 건너간다. 내 방은 침침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잠을 잔다. 한 번도 걷은 일이 없는 내 이부자리는 내 몸뚱이의 일부분처럼 내게는 참 반갑다. 잠은 잘 오는 적도 있다. 그러나 또 전신이 까칫까칫하면서 영 잠이 오지 않는 적도 있다. 그런 때는 아무 제목으로나 제목을 하나 골라서 연구하였다.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 다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간데가 없고 한잠 자고 깬 나는 속이 무명 헝겊이나 메밀껍질로 튕튕 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 벌 신경이었을 뿐이고 뿐이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내 방에서는 겨울에도 몇 마리씩의 빈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쓰라리다. 그것은 그윽한 쾌감에 틀림없었다. 나는 혼곤히 잠이 든다.

나는 그러나 그런 이불 속의 사색 생활에서도 적극적인 것을 궁리하는 법이 없다. 내게는 그럴 필요가 대체 없었다. 만일 내가 그런 좀 적극적인 것을 궁리해내었을 경우에 나는 반드시 내 아내와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나는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고 -나는 꾸지람이 무서웠다느니보다도 성가셨다. 내가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보는 것도, 아내에게 사설 듣는 것도,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로웠다. 생활이 스스로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p.275-276)

 

아내에게 직업이 있었던가?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수 없다. 만일 아내에게 직업이 없었다면, 같이 직업이 없는 나처럼 외출할 필요가 생기지 않을 것인데 - 아내는 외출한다. 외출할 뿐만 아니라 내객이 많다. 아내에게 내객이 많은 날은 나는 온종일 내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야만 된다. 불장난도 못한다. 화장품 냄새도 못 맡는다. 그런 날은 나는 의식적으로 우울해 하였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돈을 준다. 50전짜리 은화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에 써야 옳을지 몰라서 늘 머리맡에 던져두고 두고 한 것이 어느 결에 모여서 꽤 많아졌다. 어느 날 이것을 본 아내는 금고처럼 생긴 벙어리를 사다 준다. 나는 한 푼씩 한 푼씩 고 속에 넣고 열쇠는 아내가 가져갔다. 그 후에도 나는 더러 은화를 그 벙어리에 넣은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게을렀다. 얼마 후 아내의 머리 쪽에 보지 못하던 누깔잠이 하나 여드름처럼 돋았던 것은 바로 그 금고형 벙어리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증거일까. 그러나 나는 드디어 머리맡에 놓였던 그 벙어리에 손을 대지 않고 말았다. 내 게으름은 그런 것에 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싫었다. (p.276-277)

 

아내에게 내객이 있는 날은 이불 속으로 암만 깊이 들어가도 비오는 날만큼 잠이 잘 오지는 않는다. 나는 그런 때 아내에게는 왜 늘 돈이 있나 왜 돈이 많은가를 연구했다.

내객들은 장지 저쪽에 내가 있는 것은 모르나 보다. 내 아내와 나도 좀 하기 어려운 농을 아주 서슴지 않고 쉽게 내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 아내를 가운데 서너 사람의 내객들은 늘 비교적 점잖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자정이 좀 지나면 으레 돌아들 갔다. 그들 가운데는 퍽 교양이 옅은 자도 있는 듯싶었는데 그런 자는 보통 음식을 사다 먹고 논다. 그래서 보충을 하고 대체로 무사하였다.

나는 우선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내기 힘이 든다. 나는 끝끝내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말려나 보다.

아내는 늘 진솔버선만 신었다. 아내는 밥도 지었다. 아내가 밥짓는 것을 나는 한 번도 구경한 일은 없으나 언제든지 끼니때면 내 방으로 내 조석을 날라다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나와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밥은 분명히 아내가 손수 지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이 없다.

나는 늘 윗방에서 나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찬이 너무 엉성하였다. 나는 닭이나 강아지처럼 말없이 주는 모이를 넙죽넙죽 받아먹기는 했으나 내심 야속하게 생각한 적도 더러 없지 않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나날이 눈에 보이듯이 기운이 줄어들었다. 영양부족으로 하여 몸뚱이 곳곳이 뼈가 불쑥불쑥 내어밀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십차를 돌쳐눕지 않고는 여기저기가 배겨서 나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이불 속에서 아내가 늘 흔히 쓸 수 있는 저 돈의 출처를 탐색해보는 일변 장지 틈으로 새어나오는 아랫방의 음식은 무엇일까를 간단히 연구하였다. 나는 잠이 잘 안 왔다. 

깨달았다. 아내가 쓰는 돈은 그 내게는 다만 실없는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까닭 모를 내객들이 놓고 가는 것에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왜 그들 내객은 돈을 놓고 가나. 왜 내 아내는 그 돈을 받아야 되나 하는 예의 관념이 내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에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혹 무슨 대가일까 보수일까. 내 아내가 그들의 눈에는 동정을 받아야만 할 한 가엾은 인물로 보였던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노라면 으레 내 머리는 그냥 혼란하여버리고 버리고 하였다. 잠들기 전에 획득했다는 결론이 오직 불쾌하다는 것뿐이었으면서도 나는 그런 것을 아내에게 물어보거나 할 일이 참 한 번도 없다. 그것은 대체 귀찬히도 하려니와 한잠 자고 일어나는 나는 사뭇 딴사람처럼 이것도 저것도 다 깨끗이 잊어버리고 그만두는 까닭이다.

내객들이 돌아가고, 혹 밤 외출에서 돌아오고 하면 아내는 경편한 것으로 옷을 바꾸어 입고 내 방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불을 들추고 내 귀에는 영 생동생동한 몇 마디 말로 나를 위로하려 든다. 나는 조소도 고소도 홍소도 아닌 웃음을 얼굴에 띠고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본다. 아내는 빙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얼굴에 떠도는 일말의 애수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아내는 능히 내가 배고파하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러나 아랫방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나에게 주려 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나를 존경하는 마음일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배가 고프면서도 적이 마음이 든든한 것을 좋아했다. 아내가 무엇이라고 지껄이고 갔는지 귀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내 머리맡에 아내 놓고 간 은화가 전등불에 흐릿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고 금고형 벙어리 속에 고 은화가 얼마큼이나 모였을까. 나는 그러나 그것을 쳐들어보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의욕도 기원도 없이 그 단춧구멍처럼 생긴 틈바구니로 은화를 들이뜨려둘 뿐이었다.

왜 아내의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이 풀 수 없는 의문인 것같이 왜 아내는 나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도 역시 나에게는 똑같이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내 비록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싫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고것이 내 손가락에 닿는 순간에서부터 고 벙어리 주둥이에서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하잘것없는 짧은 촉각이 좋았달 뿐ㅇ니지 그 이상 아무 기쁨도 없다. 

어느 날 나는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넣어버렸다. 그때 벙어리 속에는 몇 푼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고 은화들이 꽤 들어있었다. (p.277-28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김현욱 옮김, 동서월드북)

.............................................................................................................................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 - 그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쾌감이라면 어떤 종류의 쾌감일까를 계속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불 속의 연구로는 알길이 없었다. 쾌감 쾌감., 하고 나는 뜻밖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 흥미를 느꼈다.

아내는 물론 나를 늘 감금하여두다시피 하여왔다. 내게 불평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중에도 나는 그 쾌감이라는 것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었다.

나는 아내의 밤 외출 틈을 타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거리에서 잊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나온 은화를 지폐로 바꾼다. 5원이나 된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나는 목적을 잃어버리기 위하여 얼마든지 거리를 쏘다녔다. 오래간만에 보는 거리는 거의 경이에 가까울 만치 내 신경을 흥분시키지 않고는 마지않았다. 나는 금시에 피곤하여버렸다. 그러나 나는 참았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까닭을 잊어버린 채 이 거리 저 거리로 지향 없이 헤매었다. 돈은 물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돈을 쑬 아무 엄두도 나서지 않았다. 나는 벌써 돈을 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나는 과연 피로를 더 잇아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는 가까스로 내 집을 찾았다. 나는 내 방으로 가려면 아내 방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아내에게 내객이 있나 없나를 걱정하면서 미닫이 앞에서 좀 거북살스럽게 기침을 한 번 했더니 이것은 참 또 너무 암상스럽게 미닫이가 열리면서 아내의 얼굴과 그 등 뒤에 낯선 남자의 얼굴이 이 쪽을 내다보는 것이다. 나는 별안간 내어 쏟아지는 불빛에 눈이 부셔서 좀 머뭇머뭇했다.

나는 아내의 눈초리를 못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체 하는 수박에 없었다. 왜? 나는 어쨌든 아내의 방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엇보다도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불 속에서는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암만해도 까무러칠것만 같았다. 걸을 때는 몰랐더니 숨이 차다. 등에 식은땀이 쭉 내배인다. 나는 외출한 것을 후회하였다. 이런 피로를 잊고 어서 잠이 들었으면 좋았다. 한잠 잘 자고 싶었다. (p.281-28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돈의 철학 - 게오르그 짐멜 (김덕영 옮김, 길)

...........................................................................

 

나는 몹시 흔들렸다. 내객을 보내고 들어온 아내가 잠든 나를 잡아 흔드는 것이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나는 좀 눈을 비비고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노기가 눈초리에 떠서 얇은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좀처럼 이 노기가 풀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벼락이 내리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쌔근 하는 숨소리가 나면서 푸스스 아내의 치맛자락 소리가 나고 장지가 여닫히며 아내는 아내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몸을 돌쳐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개구리처럼 엎드리고, 엎드려서 배가 고픈 가운데에도 오늘 밤의 외출을 또 한 번 후회하였다.

나는 이불 속에서 아내에게 사죄하였다. 그것은 네 오해라고...

나는 사실 밤이 퍽이나 이슥한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네 말마따나 자정 전인 줄은 나는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너무 피곤하였다. 오래간만에 나는 너무 많이 걸은 것이 잘못이다. 내 잘못이라면 잘못은 그거밖에는 없다. 외출은 왜 하여더냐고?

나는 그 머리맡에 저절로 모인 5원 돈을 아무에게라도 좋으니 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 잘못이라면 나는 그렇게 알겠다. 나는 후회하고 있지 않나?

내가 그 5원 돈을 써버릴 수가 있었던들 나는 자정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는 너무 복잡하였고 사람은 너무도 들끓었다. 나는 어느 사람을 붙들고 그 5원 돈을 내어 주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여지없이 피곤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p.284-285)

 

한 시간 동안을 나는 이렇게 초조하게 굴지 않으면 안 되었따. 나는 이불을 홱 젖혀버리고 일어나서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비칠비칠 달려갔던 것이다. 내게는 거의 의식이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내 이불 위에 엎드러지면서 바지 포켓 속에서 그 돈 5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여준 것을 간신히 기억할 뿐이다.

이튿날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내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 삼십삼 번지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내가 아내 방에서 잔 맨 처음이었다. (p.285-286)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느 지난 밤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 돈 5원을 아내 손에 쥐여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몰랐다. 나는 어깨춤이 났다.

따라서 나는 또 오늘 밤에도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나는 엊저녁에 그 돈 5원을 한꺼번에 아내에게 주어버린 것을 후회하였다. 또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처넣어버린 것도 후회하였다는 나는 실없이 실망하면서 습관처럼 그 돈 5원이 들어 있던 내 바지 포켓에 손을 넣어 한번 휘둘러보았다. 뜻밖에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었다. 2원밖에 없다. 그러나 많아야 맛은 아니다. 얼마간이고 있으면 된다. 나는 그만한 것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운을 얻었다. 나는 그 단벌 다 떨어진 코르덴 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갯짓을 하면서 또 거리로 나섰다. 나서면서 나는 제발 시간이 화살 닫듯 해서 자정이 어서 홱 지나버렸으면 하고 조바심을 태웠다. 아내에게 돈을 주고 아내 방에서 자보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좋았지만 만일 잘못해서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갔다가 아내의 눈총을 맞는 것은 그것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저물도록 길가 시계를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또 지향 없이 거리를 방황하였다. 그러나 이날은 좀처럼 피곤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좀 너무 더디게 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경성역 시계가 확실히 자정이 지난 것을 본 뒤에 나는 집을 향하였다. 그날은 그 일각 대문에서 아내와 아내의 남자가 이야기하고 섰는 것을 만났다. 나는 모른 체하고 두 사람 곁을 지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아내도 들어왔다. 와서는 이 밤중에 평생 안하던 쓰게질을 하는 것이다. 조금 있다가 아내가 눕는 기척을 엿듣자마자 나는 또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가서 그 돈 2원을 아내 손에 덥석 쥐여주고 그리고 - 하여간 그 2원을 오늘 밤에도 쓰지 않고 도로 가져온 것이 참 이상하다는 듯이 아내는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엿보고 - 아내는 드디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자기 방에 재워주었다.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편히 잘 잤다. (p.287-288)

 

5분! 10분!

그러나 벼락은 내리지 않았다. 긴장이 차츰 늘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어느덧 오늘 밤에도 외출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돈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돈은 확실히 없다. 오늘은 외출하여도 나중에 올 무슨 기쁨이 있나. 나는 앞이 그냥 아뜩하였다. 나는 화가 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렀다. 금시 먹은 밥이 목으로 자꾸 치밀어 올라온다. 메스꺼웠다.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나는 이렇게밖에 돈을 구하는 아무런 방법도 알지는 못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보다. 돈이 왜 없냐면서....

그랬더니 아내가 또 내 방에 왔다. 나는 깜짝 놀라 아마 인제서야 벼락이 내리려나 보다 하고 숨ㅇ믈 죽이고 두꺼비 모양으로 엎디어 있었다. 그러나 떨어진 입으로 새어나오는 아내의 말소리는 참 부드러웠다. 정다웠다. 아내는 내가 왜 우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냔다. 나는 실없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의 속을 환하게 들여다보는구 해서 나는 한편으로 슬그머니 겁도 안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 내게 돈을 줄 생각이 있나 보다. 만일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은 일일까. 나는 이불 속에 뚤뚤 말린 채 고개도 들지 않고 아내의 다음 거동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엣소 하고 내 머리 맡에 내려뜨리는 것은 그 가뿐한 음향으로 보아 지폐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 귀에다 대고 오늘일랑 어제보다 좀더 늦게 들어와도 좋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그 돈이 무엇보다도 고맙고 반가웠다. (p.289-290)

 

나는 한 복스에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주 앉아서 잘 끓은 커피를 마셨다. 총총한 가운데 여객들은 그래도 한잔 커피가 즐거운가 보다. 얼른얼른 마시고 무얼 좀 생각하는 것같이 담벼락도 좀 쳐다보고 하다가 곧 나가버린다. 서글프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서글픈 분위기가 거리의 티룸들의 거추장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절실하고 마음에 들었다. 이따금 들리는 날카로운 혹은 우렁찬 기적소리가 모차트르보다도 더 가깝다. 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 그것들은 아무아물한 것이 어딘가 내 어렸을 때 동무들 이름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p. 291)

 

나는 걸음을 재우치면서 생각하였다. 오늘 같은 궂은 날도 아내에게 내객이 있을라구.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집으로 가야겠다. 아내에게 불행히 내객이 있거든 내 사정을 하리라. 사정을 하면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아주겠지.

부리나케 와 보니까 그러나 아내에게는 내객이 있었다. 나는 그만 너무 춥고 척척해서 얼떨김에 노크하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나는 보면 아내가 좀 덜 좋아할 것을 그만 보았다. 나는 갑발 자국 같은 발자국을 내면서 덤벙덤벙 아내 방을 디디고 그리고 내 방으로 가서 쭉 빠진 옷을 활활 벗어버리고 이불을 뒤썼다. 덜덜 덜덜 떨린다. 오한이 점점 더 심해 들어온다. 여전 땅이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만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튿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제법 근심스러운 얼굴이다. 나는 감기가 들었다. 여전히 으스스 춥고 또 골치가 아프고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 씁쓸하면서 다리 팔이 척 늘어져서 노곤하다.

아내는 내 머리를 쓱 짚어보더니 약을 먹어야지 한다. 아내 손이 이마에 선득한 것을 보면 신열이 어지간한 모야인데 약을 먹는다면 해열제를 먹어야지 하고 속생각을 하지나까 아내는 따뜻한 물에 하얀 정제약 네 개를 준다. 이것을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면 괘찮다는 것이다. 나는 널름 받아먹었다. 쌉싸름한 것이 짐작 같아서는 아마 아스피린인가 싶다. 나는 다시 이불을 쓰고 단번에 그냥 죽은 것처럼 잠이 들었다.

나는 콧물을 훌쩍훌쩍하면서 여러 날을 앓았다. 앓는 동안에 끊이지 않고 그 정제약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에 감기도 나았다. 그러나 입맛은 여전히 소태처럼 썼다.

나느 차츰 또 외출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아내는 나더러 외출하지 말라고 이르는 것이다. 이 약을 날마다 먹고 그리고 가만히 누워 있으라는 것이다. 공연히 외출을 하다가 이렇게 감기가 들어서 저를 고생을 시키는 게 아니냔다. 그도 그렇다. 그럼 외출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 약을 연복하여 몸을 좀 보해보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날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이나 낮이나 잤다. 유난스럽게 밤이나 낮이나 졸려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잠이 자꾸만 오는 것은 내가 몸이 훨씬 튼튼해진 증거라고 귿게 믿었다.

나는 아마 한 달이나 이렇게 지냈나 보다. (p.292-293)

 

그러나 다음 순간 실로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최면약 아달린 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화장대 밑에서 발견하고 그것이 흡사 아스피린처럼 생겼다고 느꼈다. 나는 그것을 열어보았다. 똑 네 개가 비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네 개의 아스피린을 먹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잤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 나는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아내는 내게 아스피린을 주었다. 내가 잠이 든 동안에 이웃에 불이 난 일이 있다. 그때에도 나는 자느라고 몰랐다. 이렇게 나는 잤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럼 한 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온 것이다. 이것은 좀 너무 심하다.

별안간 아뜩하더니 하마터면 나는 까무러칠 뻔하였다. 나는 그 아달린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났다. 그리고 산을 찾아 올라갔다. 인간 세상의 아무것도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걸으면서 나는 아무쪼록 아내에 관계된느 일은 일체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길에서 까무러치기 쉬우니까다. 나는 어디라도 양지가 바른 자리를 하나 골라서 자리를 잡아가지고 서서히 아내에 관하여서 연구할 작정이었다. 나는 길가에 도랑창, 핀 구경도 못한 진 개나리꽃, 종달새, 돌멩이도 새끼를 까는 이야기, 이런 것만 생각하였다. 다행이 길가에서 나는 졸도하지 않았다.

거기는 벤치가 있었다. 나는 거기 정좌하고 그리고 그 아스피린과 아달린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머리가 도무지 혼란하여 생각이 체계를 이루지 않는다. 단 5분이 못 가서 나는 그만 귀찮은 생각이 번쩍 들면서 심술이 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가지고 온 아달린을 꺼내 남은 여섯 개를 한꺼번에 질겅질겅 씹어 먹어버렸다. 맛이 익살맞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 벤치 위에 가로 기다랗게 누웠다. 무슨 생각으로 내가 그따위 짓을 했나? 알 수가 없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나는 게서 그냥 깊이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바위틈을 흐르는 물소리가 졸졸하고 귀에 언제까지나 어렴풋이 들려왔다.

내가 잠을 깨었을 때는 날이 환히 밝은 뒤다. 나는 거기서 일주야를 잔 것이다. 풍경이 그냥 노오랗게 보인다. 그 속에서도 나는 번개처럼 아스피린과 아달린이 생각났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마르크스,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p.294-29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자본론 - 마르크스 (강문헌 옮김, 동서월드북)

인구론 - 맬더스 (이서행 옮김, 동서월드북)

콜럼버스 항해록 - 콜럼버스 (이종훈 옮김, 서해문집)

......................................................................................

 

아내는 한 달 동안 아달린을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내게 먹였다. 그것은 아내 방에서 이 아달린 갑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증거가 너무나 확실하였다.

무슨 목적으로 아내는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웠어야 됐나?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워놓고 그리고 아내는 내가 자는 동안에 무슨 짓을 했나?

나를 조금씩 조금씩 죽이려던 것일까?

그러나 또 생각하여 보면 내가 한 달을 두고 먹어온 것은 아스피린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무슨 근심되는 일이 있어서 밤되면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정작 아내가 아달린을 사용한 것이나 아닌지. 그렇다면 나는 참 미안하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큰 의혹을 가졌다는 것이 참 안됐다.

나는 그래서 부리나케 거기서 내려왔다. 아랫도리가 홰홰 내저이면서 어찔어찔한 것을 나는 겨우 집을 향하여 걸었따. 8시 가까이였다.

나는 내 잘못 든 생각을 죄다 일러바치고 아내에게 사죄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급해서 그만 또 말을 잊어버렸다.

그랬더니 이건 참 너무 큰일났다. 나는 내 눈으로 절대로 보아서 안 될 것을 그만 딱 보아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그만 냉큼 미닫이를 닫고 그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을 진정시키느라고 잠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기둥을 짚고 섰자니까 일 초 여유도 없이 홱 미닫이가 다시 열리더니 매무새를 풀어헤친 아내가 불쑥 내밀면서 내 멱살을 잡는 것이다. 나는 그만 어지러워서 게가 그냥 나둥그러졌다. 그랬더니 아내는 넘어진 내 위에 덮치면서 내 살을 함부로 물어뜯는 것이다. 아파 죽겠다. 나는 사실 반항할 의사도 힘도 없어서 그냥 법죽 엎뎌 있으면서 어떻게 되나 보고 있자니까 뒤이어 남자가 나오는 것 같더니 아내를 한아름에 덥석 안아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내는 아무말 없이 다소곳이 그렇게 안겨 들어가는 것이 내 눈에 여간 미운 것이 아니다. 밉다.

아내는 너 밤 새워가면서 도적질하러 다니느냐, 계질질하러 다니느냐고 발악이다. 이것은 참 너무 억울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너는 그야말로 나를 살해하려던 것이 아니냐고 소리를 한번 꽥 질러보고도 싶었으나 그런 긴가민가한 소리를 섣불리 입밖에 내었다가는 무슨 화를 볼는지 알 수 있나. 차라리 억울하지만 잠자코 있는 것이 우선 상책인 듯싶이 생각이 들길래 나는 이것은 또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서 내 바지 포켓 속에 남은 돈 몇 원 몇십 전을 가만히 꺼내서는 몰래 미닫이를 열고 살며시 문지방 밑에다 놓고 나서는 나는 그냥 줄달음박질을 쳐서 나와버렸다. (p.295-297)

 

커피 -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 걸음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박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또 아뜩하였다. 나는 어디선가 그저 맥없이 머뭇머뭇하면서 어쩔 줄 모를 뿐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p.297-298)

 

나는 또 회탁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비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 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회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들어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

그때 내 눈앞에는 아내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아스피란과 아딜린.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 대신에 아달린의 정량을 나에게 먹여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아내가 그럴 대체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날밤을 새면서 도적질을 계집질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가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 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p.298-300)

 

........................................................................

[작품해설 - 김주현]

<날개>는 발표 당시 대단히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무누체나 구성이 독특하다. 작가는 작품의 서두에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있다. 이 작품은 질문과 답변의 형태, 아이러니, 패러독스, 비유 등 특이한 문체로 이뤄졌다. 아내의 직업을 밝히기 위해 잠, 내객, 돈, 아달린 등을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서 연속적으로 제시한다. 하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유보되면서 다음 화제로 넘어가는데, 새로운 화제는 이전 질문과 연관성을 지니면서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외출과 귀가의 반복 구조를 띠고 있다. 다섯 번의 외출과 네 번의 귀가를 겹쳐놓으면 하나의 완전한 영상, 즉 성행위 장면으로 상승, 발전하는 양상을 띤다. 외출과 귀가는 시,공간적인 차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외출은 거리에서 티룸, 산 위, 미스코시 옥상이라는 공간의 수직적 상승 국면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시간은 밤 또는 자정에서 낮 또는 대낮으로 수직적 이동 국면을 갖는다. 이 작품은 사회와의 단절된 공간에 유폐된 주인공의 자의식적 세계를 내적 초점화를 통해 서술하고 있다. 나는 돈을 변소에 집어넣는 등 근대 자본주의의 토대인 화폐의 가치를 부정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쾌감의 세계, 욕망과 무의식 세계를 탐닉하게 된다. 근대 경성은 자본주의화, 성의 상품화, 그리고 인간 관계의 단절 등으로 인해 회탁의 거리로 변질되었고, 그 속에서 지식인은 희망과 야심조차 말소된 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 "날자, 날자"는 마침내 의식의 회복, 주체의 각성을 일깨우는 외침이다. (p.381-382)

 

[작품해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 강신주 (프로네시스)

 

일본 제국주의가 경성 시민에게 가져다준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였다. (p.31)

 

이상의 문학을 통해 우리는 1930년대 지성인들의 자본주의와 모던의 세계를 어떻게 겪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날개 - 이상>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 - 그 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쾌감이라면 어떤 종류의 쾌감일까를 계속하여 연구하였다.....나는 아내 이불 위에 엎드러지면서 바지 포켓 속에서 그 돈 5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준 것을 간신히 기억할 뿐이다. 이튿날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내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 삼십삼번지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내가 아내 방에서 잔 맨 처음이었다."

 

<날개>라는 단편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돈'이라는 소재가 반복해서 출현한다는 점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아내가 몸을 팔아서 번 돈으로 생계를 연명합니다. 유일한 취미는 아내가 바깥으로 몸을 팔러 나갈 때마다 혼자 남아서 볼록렌즈로 휴지를 태우는 일이지요. 아내는 매춘으로 받은 돈의 일부분을 꼬박꼬박 우리의 주인공에게 건네줍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처음엔 돈의 가치와 의미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왜 아내는 매춘으로 번 돈을 주인공에게 주었을까요?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 거래로 보입니다. 아내로서의 부도덕성을 묵인 받는 대가로 남편에게 돈을 건네준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거꾸로 주인공이 아내 손에 돈을 쥐어 줍니다. 그날 비로소 처음으로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골방이 아닌 아내의 방에서 잠자리에 듭니다. 마치 아내의 몸을 돈으로 샀던 손님들처럼 말입니다. 아내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남편을 재워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아내가 내민 기존의 심리적 거래가 결렬되었으니까요. 이어지는 구절을 읽어보면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는 지난밤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 돈 오원을 아내 손에 쥐어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 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몰랐다. 나는 어깨춤이 났다. 따라서 나는 또 오늘밤에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나는 엊저녁에 그 돈 오원을 아내에게 주어버린 것을 후회하였다.....뜻밖에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었다. 2원밖에 없다. 그러나 많아야 맛은 아니다. 얼마간이고 있으면 된다. 나는 그만한 것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운을 얻었다. 나는 그 단벌 다 떨어진 콜덴 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갯짓을 하면서도 또 거리를 나섰다."

 

<날개>는 돈을 배워나가는 주인공 이야기, 그러니까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우리의 주인공은 마치 돈을 전혀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자본주의에 대해 미성숙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인공은 돈이 있을 때 '활갯짓'이 가능함을 알 만큼 성장합니다. 손님들이 아내에게 돈을 주는 심리며 아내가 자신에게 돈을 주는 심리를 알아채버린 '나'는, 이제 도리어 지난밤 아내에게 수중의 돈을 모두 주어버린 것을 후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지금 2원의 돈을 손에 쥔 것을 깨닫고 다시 기분이 좋아집니다. '돈'이야말로 그가 활갯짓할 수 있게 해주는 장본인이었던 셈이지요. 한편 자신과 마찬가지로 돈에 대해 알아채버린 남편이란 존재는, 몸을 파는 아내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주인공의 아내는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린 남편에게 아달린이라는 최면제를 아스피린이라고 속여서 먹이지요. 아마도 그것이 그녀가 아내로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몸을 파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무척 아이러니하지요. 주인공 자신은 전통적 부부 윤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돈의 의미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데, 정작 몸을 파는그의 아내는 오랫동안 돈을 벌어왔으면서도 여전히 전통적 부부 윤리의 부담을 느끼니 말입니다.

<날개>라는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과 그의 아내 사이에 사실 사랑과 같은 남녀 사이의 애뜻한 감정이 전혀 도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직 돈과 상품의 교환만이 두 사람 사이에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질 뿐입니다. 이 때문에 유학적 사고에 기반을 둔 기존 부부 윤리도 마치 돈으로 살 수 있는 일종의 상품처럼 다루어질 수 있었지요. <날개>를 썼던 이상의 독특함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그는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도래한 자본주의의 핵심을 '돈'의 논리를 통해 찾는 데 최초로 성공했던 작가입니다. <날개>의 주인공은 이상이 돈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는 돈이란 인간에게 '날개를 단 것처럼' 활개를 치도록 만드는 신비한 마력을 지녔음을 간파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핵심에 놓인 돈의 논리를 좀 더 깊이 이해하자면, 이상의 소설에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아직 돈의 논리를 이론적으로 명료하게 포착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p.32-35)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나는 이렇게밖에 돈을 구하는 아무런 방법도 알지 못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보다. 돈이 왜 없냐면서. .....내가 잠을 깨었을 때는 날이 환히 밝은 뒤다. 나는 거기서 일주야를 잔 것이다. 풍경이 그냥 노-랗게 보인다. 그 속에서도 나는 번개처럼 아스피린과 아달린이 생각났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내는 한 달 동안 아달린을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내게 먹였다."

 

<날개>를 보면 주인공은 점점 진화합니다. 이것은 그가 돈이 지닌 매력을 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러나 돈을 알아버린 <날개>의 주인공을 강제로 재워야만 그의 아내는 양심의 가책 없이 몸을 팔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기에 걸린 남편에게 아달린이란 최면제를 아스피린이라고 속여 먹이지요. 우리의 주인공은 사랑의 징표라고 여겼던 아스피린이 아달린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크게 좌절합니다. 여기서 아스피린은 부부 사이의 전통적 애정을, 아달린은 그에 대한 거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자신이 건넨 돈을 다시 돌려준 남편에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돈이 가진 최면 효과와 유사한 아달린을 주는 것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때 충격으로 가출한 우리의 주인공은 벤치에서 아달린 여섯 알을 마저 먹고 잠에 취해 하룻밤을 보냅니다. 깨어난 그는 아스피린과 아달린을 연상하며 읊조립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스피린과 아달린에서 그가 마르크스, 맬더스 그리고 마도로스를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이곳에서 마르크스는 돈을, 그리고 맬더스는 모던한 도시를 가득 채운 인구를, 그리고 마로도스는 미쓰코시 백화점 주변을 떠돌아다니는 돈과 사람의 바다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주인공 자신을 상징합니다. 아직도 아달린에 취해 정신이 없던 우리의 주인공은 경성의 모던한 생활을 상징하는 미쓰코시 백화점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백화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그에게는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이때 정오 사이렌이 울리면서 주인공의 몽롱한 정신을 일깨웁니다. (p.65-66)

 

"이때 뚜우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주인공은 사람들로 가득한 모던한 도시 경성에서 소외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그에게 돈이 한 푼도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주인공에게는 돈이 가져다주는 자유의 느낌이 부재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돈의 매력을 제대로 배우게 됩니다. 활갯짓이 가능했던 것도 돈이라는 사실을 알 만큼 주인공은 성숙해집니다. 결국 그에게 돈이란 인공의 날개였던 셈이지요. 주인공에게 돈이 인공의 날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주인공에게 돈은 '오늘은 없는 날개'입니다. 지폐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던 주인공이 현실적으로 돈을 덛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내가 준 돈이 그가 만져본 돈의 전부였을 테니 말입니다.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비록 그는 노동이란 것을 알지도 못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에게 인공의 날개가 돋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절망스럽게도 우리의 주인공, 즉 이상은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불가능한 날개가 돋기를 꿈꾸며 절규할 뿐입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난 번만 날자꾸나." 그러나 과연 이런 소망이 실현되기나 할까요? (p.66-6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정본 이상 문학전집 - 이상 (소명출판사)

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 - 게오르그 짐멜 (김덕영 옮김, 길)

 

.................................................................

[참고]

금홍 - 이상의 연인

1933년 폐결핵을 치료차 들른 배천온천에서 금홍과 처음 만났다. 금홍과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한 이상은 종로1가에 제비다방을 차리고 금홍을 불러 그녀를 마담 자리에 앉힌 후 금홍과 동거하기 시작했다. 1935년까지 이어진 동거생활동안 이상의 생활은 절대 순탄하지는 않았다. 제비다방이 경영난에 빠졌고, 이에 심심해진 금홍은 외박을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1936년 발표된 소설 <날개>에서 등장하는 무기력한 남편과 매춘일을 하는 아내에서, 아내의 이름이 연심이로 표현되는데, 이는 금홍의 본명이다. 이 같은 금홍의 일탈에 이상은 "예전 생활에 대한 향수"가 났냐며 금홍을 몰아세웠고 이에 금홍은 가출을 하거나 이상을 심하게 때리기까지 하였다. 1936년 12월 발표된 소설 <봉별기>에서 “하루 나는 제목 없이 금홍이에게 몹시 얻어맞았다. 나는 아파서 울고 나가서 사흘을 들어오지 못했다. 너무도 금홍이가 무서웠다. 나흘 만에 와 보니까 금홍이는 때 묻은 버선을 윗목에다 벗어 놓고 나가 버린 뒤였다.”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935년 여름 결국 금홍은 몇 번의 가출 끝에 이상의 집을 완전히 나가버리고 1935년 9월 제비다방은 폐업하였다.

 

.................................................................................................................................................................................................................

이상(李箱, 1910년 9월 23일 ~ 1937년 4월 17일)

일제강점기의 시인, 작가,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로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이자 아방가르드 문학가이다. 본명이 김해경(金海卿)이며 본관이 강릉 김씨(江陵 金氏)이다.


경성부 북부 순화방 반정동 4통 6호에서 부친 김연창(金演昌)과 모친 박세창(朴世昌)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본관은 강릉이다. 제적부에 기재된 본적은 경성부 통동(이후 통인동으로 개칭) 154번지다. 형제로 누이동생 김옥희와 남동생 김윤경이 있다. 김영창은 일본 강점 전 구한말 당시 궁내부 활판소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절단된 뒤 일을 그만두고 집 근처에 이발관을 개업, 가계를 꾸렸다. 1913년, 백부 김연필은 본처 사이에 소생이 없던 차에 조카인 이상을 데려다 친자식처럼 키우고 학업을 도왔다. 하지만 백부는 북지에서 새로 여자를 데려왔고, 때문에 백모는 집을 나가게 된다. 백부가 데려온 새로운 아내 김영숙 에게는 김연필과 결혼하기 전의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문경이 있었고, 김영숙은 이상을 문경과 차별하며 홀대하였으며, 백부 또한 백모의 이러한 차별에 별다른 태도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어린 조카 김해경을 입양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닌 영특한 머리로 가문을 일으킬 인재로만 생각하여 항상 엄격한 모습으로만 대했다고 한다. 1917년 여덟 살 되던 해 누상동의 신명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 화가 구본웅과 동기생이 되어 오랜 친구로 이어졌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동광학교에 입학했다. 1922년 동광학교가 보통학교와 합병되자 보성고보에 편입했다. 1924년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재단법인으로 보성고보의 설립자가 되었다. 보성고보에 재학 중에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화가 지망생이 되었으며 학업 성적 상급 수준에 닿았다. 1925년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유화 〈풍경〉이 입선했다. 1926년 3월 보성고보 제4회 졸업생이 되었다. 같은 해 경성 동숭동의 관립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부에 입학했다. 1929년 동 학교 건축과를 수석 졸업했다. 보성고보 졸업식에 참여한 친부모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그를 문경과 차별하는 백부모에게 화가 나 있었지만, 그를 그러한 환경에 내버려둔 그의 친부모에게도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졸업기념 사진첩에 본명 대신 이상(李箱)이라는 별명을 썼는데, 구본웅에게 선물로 받은 화구상자(畵具箱子)에서 연유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때 받은 화구상자가 오얏나무로 만들어진 상자였기 때문에 이상(李箱)은 '오얏나무 상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부를 수석으로 졸업하자 학교의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을 받았다. 이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자리를 옮겼다. 또한,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 건축기술자를 축으로 1922년 3월 결성된 조선건축회에 정회원으로 가입, 이 학회의 일본어 학회지 《조선과 건축》(朝鮮と建築)의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었다. 1930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일반에게 홍보하기 위해 펴내던 잡지 《조선》 국문판에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데뷔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 《12월 12일》을 필명 이상(李箱) 아래 연재하였다. 1931년 6월,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 〈자상〉이 입선했다. 같은 해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가역반응〉 등 20여편을 세 차례에 걸쳐 발표했다. 1932년 《조선과 건축》에 〈건축무한육면각체〉 제하에 일본어 시 〈AU MAGASIN DE NOUVEAUTES〉, 〈출판법〉 등을 발표했다. 《조선》에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비구(比久) 필명으로 발표하고 단편소설 〈휴업과 사정〉을 보산(甫山) 필명으로 잇달아 발표했다. 동년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서 가작 4석으로 입상했다.
1931년 이상은 폐결핵 감염 사실을 진단받았고 병의 증세는 점차 악화되었다. 1933년 새로 부임한 일본인 상사와의 마찰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로 인해 심한 각혈 증세까지 보이는 등 악화된 폐결핵으로 직무를 수행키 어렵게 되자 기수직에서 물러앉고 봄에 황해도 배천 온천에서 요양하였다. 이곳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을 서울로 불러올려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하며 동거하였다. 같은 해 문학단체 구인회의 핵심 동인인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유를 트고 정지용의 주선을 통해 잡지 《가톨닉청년》에 〈꽃나무〉, 〈이런 시〉 등을 국문으로 발표했다. 이듬해 이태준의 도움으로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지만, 15편을 발표한 후 너무도 난해한 표현이 끝내 독자들의 항의와 비난에 시달림으로 힘입어 연재를 중도 작파하였다. 같은 해 동 잡지에서 연재된 박태원(朴泰遠)의 소설 작품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아호 하융(河戎) 아래 삽화를 그렸다. 1935년 다방 제비를 경영난으로 폐업하고 금홍과 결별한다. 인사동의 카페 쓰루(鶴)와 다방 69를 개업 양도하고 명동에서 다방 무기[參]를 경영하다 문을 닫은 후 성천, 인천 등지를 표표하였다.

 

..........................................

날개 - 이상 (창비,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9) *****

이상 전집 (소명출판사 전3권)

날개 - 이상 (애플북스 한국문학을 권하다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