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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옥상의 민들레꽃 - 박완서 (삼성출판사)

by handaikhan 2023. 5. 16.

삼성 문학의 탐정 한국문학 1

 

목차


이범선 

표구된 휴지


맹주천 

천 년 묵은 홰나무


박완서 

자전거 도둑
시인의 꿈
옥상의 민들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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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 옥상의 민들레꽃 (1979년)

 

우리 아파트 7층 베란다에서 할머니가 떨어져서 돌아가셨습니다. 실수로 떨어진 게 아니라, 일부러 떨어지셨다니까 할머니는 자살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이 두 번째 입니다.

그것을 제일 먼저 발견한 할머니의 며느리가 놀라서 악을 쓰는 소리를 듣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베란다로 뛰어나갔습니다. 나도 뛰어나갔습니다만, 엄마가 뒤에서 내 눈을 가렸기 때문에 7층에서 떨어진 할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지는 못했습니다.

엄마는 내 눈을 가려 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오, 끔찍한 일이다."

다른 어른들도

"끔찍한 일이야. 오오, 끔찍한 일이야."

하면서 아이들의 눈을 가려서 얼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우리 궁전 아파트는 살기 편하고 시설이 고급이고 환경이 아름답기로 이름이 난 아파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물건은 물론 외국에서 들어온 물건까지 없는 것 없이 갖추어 놓은 슈퍼마켓도 있고, 어린이를 위한 널찍한 놀이터도 있고, 아름다운 공원도 있고, 노인들을 위한 정자도 있고, 사람의 힘으로 만든 푸른 연못도 있습니다.

누가 "너, 어디서 사냐?" 하고 물었을 때 궁전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물은 사람이 얼굴에 단박 부러워하는 빛이 역력해집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참 좋겠다. 우린 언제 그런 데 살아 보누."

그러니까 궁전 아파트에 살지 않은 사람들은 궁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나 봅니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궁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모두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벌써 두 사람째나 살기가 싫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얼마나 사는 게 행복하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질까, 궁전 아파트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궁전 아파트 사람이 알 수 있는 건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 소문이 퍼져 보십시오. 사람들은 궁전 아파트 사람들의 행복이 가짜일거라고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큰일입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궁전 아파트 사람들은 단박 불행해지고 맙니다.

궁전 아파트 사람들이 여태껏 행복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줬기 때문이니까요.

그것은 마치 엄마의 보석 반지가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보석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보석이 진짜라는 보석 장수의 보증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p.134-137)

 

나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란다에서 떨어져서 그만 살고 싶은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건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라는 걸 나만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어른들처럼 갑자기 떠오른 날림 생각이 아니라, 겪어서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자신이 있습니다.

'베란다에 있어야 할 것은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에요. 정말이에요.'

그 소리를 소리 높이 외치고 싶어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고 가슴이 두근댑니다. (p.147)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에겐 내 가족이 필요한데 내 가족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건 나에겐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었습니다.
엄마는 늘 나를 막내, 우리 귀여운 막내 하면서 끼고 돌았기 때문에 나는 한 번도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은 거짓이었습니다. 나는 엄마를 진짜로 사랑했는데 엄마는 나를 거짓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나는 말없이 집을 나왔습니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마침내 옥상까지 올랐습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니까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습니다. 나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없어져 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데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습니까.
나는 옥상에서 떨어지기 위해 밤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낮에 떨어지면 사람들이 금방 보게 되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살려 놀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밤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밤을 기다리는 동안 춥지도 않았고 배고프지도 않았습니다.
아파트 광장에 차와 사람의 움직임이 멎자 둥근 달이 하늘 한가운데 와서 옥상을 대낮같이 비춰 주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달하고 나하고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때 나는 민들레꽃을 보았습니다. 옥상은 시멘트로 빤빤하게 발라 놓아 흙이라곤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 송이의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습니다. 봄에 엄마 아빠와 함께 야외로 소풍 가서 본 민들레꽃보다 훨씬 작아 꼭 내 양복의 단추만 했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민들레꽃이었습니다.
나는 하도 이상해서 톱니 같은 이파리를 들치고 밑동을 살펴보았습니다. 옥상의 시멘트 바닥이 조금 패인곳에 한 숟갈도 안 되게 흙이 조금 모여 있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흙이 아니라 먼지일지도 모릅니다. 하늘을 날던 먼지가 축축한 날, 몸이 무거워 옥상에 내려앉았다가 비를 맞고 떠내려가면서 움푹한 그곳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 먼지 중에 민들레 씨앗이 있었나 봅니다. 싹이 나고 잎이 돋고 꽃이 피게 하기에는 너무 적은 흙이어서 잎은 시들시들하고 꽃은 작은 단추만 했습니다. 그러나 흙을 찾아 공중을 날던 수많은 씨앗 중에서 그래도 뿌릴 내릴 수 있는 한 줌의 흙을 만난 게 고맙다는 듯이 꽃은 샛노랗게 피어서 달빛 속에서 곱게 웃고 있었습니다.
도시로 부는 바람을 탄 민들레 씨앗들은 모두 시멘트로 포장한 딱딱한 땅을 만나 싹트지 못하고 죽어버렸으련만 단 하나의 민들레 씨앗은 옹색하나마 흙을 만난 것입니다. 흙이랄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 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을 보자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아 하던 게 큰 잘못같이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나를 찾아 헤매다 돌아와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나를 껴안고 엉엉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구나, 막내야. 만일 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나도 살아 있지 않으려고 했다."
엄마는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것만 반가워서 말없이 집을 나간 잘못에 대해선 나무라지도 않았습니다. 나 역시 엄마의 잘못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일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사람은 언제 살고 싶지 않아지나를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없어져 줬으면 할 때 살고 싶지가 않아집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가족들도 말이나 눈치로 할머니가 안 계셨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살고 싶지 않아 베란다나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막아 주는 게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라는 것도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내가 겪어서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어른들은 끝내 나에게 그 말을 할 기회를 안 주었습니다. (p.163-167)

 

<작품 이해>

1. 사실 이 이야기에는 할머니들의 자살 이유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궁전 아파트 사람들의 말을 통해 할머니들이 자살한 이유를 대충 짐작해 볼 수 있지요. 

자살한 할머니들의 딸과 며느리의 말에 의하면, 할머니들은 부족한 것 없이 아주 풍족하게 생활했습니다. 할머니의 방의 냉장고는 항상 음식이 가득했고, 옷장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옷이 있었지요. 또 다른 식구들의 방에 있는 것과 똑같은 물건들이 할머니 방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생전에 할머니는 늘 불만이 많았다고 며느리는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가족에게 불만이 많았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 사는 모습'이 그리워서 할머니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젊은 아저씨의 말을 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 사는 모습'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전부터 할머니들이 살아오신 모습, 곧 손자를 업어 키우고 버선을 꿰매어 신으며, 흙에 채소 등을 심어 키우면서 사는 그런 모습입니다.

결국 할머니는 자연과 함께하며 가족, 이웃들과 오순도순 지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돈이나 물건으로 할머니를 만족시키려 했을 뿐, 할머니를 진심으로 대하고 할머니가 진정으로 필요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또 '나'가 자살하려 한 이유처럼, 가족들도 할머니가 빨리 없어져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는 할머니가 자살한 후, 이 사건을 대하는 궁전 아파트 사람들의 모습과 할머니가 자살한 이유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딸과 며느리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할머니가 자살한 후에도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걱정할 뿐이었습니다. 또 부족한 것 없이 다 사 드렸는데, 왜 자살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만 보였지요.

2. 어버이날에 '나'는 꽃을 만들어 부모님께 드렸는데, 그 꽃이 쓰레기통에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때마침 엄마가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엄마가 '나'를 싫어하며 우리 가족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꼈지요. 그래서 그 길로 옥상으로 올라가 밤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자살하려고 결심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우연히 단추만 한 작은 민들레꽃에서 생명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은 것이지요.

아파트 옥상의 메마른 시멘트 바닥에서 한 줌의 흙을 터전 삼아 피어 있으면서도, 그러한 환경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듯 곱게 핀 민들레꽃의 모습을 보고는 생명을 함부로 버리려 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나는 할머니들도 민들레를 보았으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지요. (p.17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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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朴婉緖, 1931년 10월 20일 ~ 2011년 1월 22일)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박완서(한1931년 10월 20일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에서 태어났다. 1934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열 살 위인 오빠만 데리고 서울로 떠나자 조부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8년 자식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어머니 덕에 서울로 이주, 같은 해 매동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44년 숙명고등여학교에 입학하는데, 여중(숙명고등여학교가 6년제 숙명여자중학교로 개편) 5학년 때 담임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고, 같은 반 친구였던 소설가 한말숙과 친분을 나누게 되었다.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입학식을 치른 지 닷새 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실제로 학교를 다닌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전쟁으로 오빠와 숙부가 죽은 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미8군 PX의 초상화부에 근무하다가 화가 박수근과 알았다. 어린 시절 고향 박적골과 서울살이의 추억은 「엄마의 말뚝」 연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반복적으로 서술되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박수근과의 만남은 등단작 『나목』을 쓰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1953년 호영진과 결혼한 뒤, 네 딸과 외아들을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40세가 되던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늦게 등단하였으나, 이후 왕성한 창작활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1976년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시작으로 하여, 중산층의 소비문화와 허위의식을 비판한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1977), 『목마른 계절』(1978), 『도시의 흉년』(1979)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와 같은 중년 여성의 현실을 다룬 작품을 발표하였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잇달아 잃으면서 잠시 미망의 시간을 보내다가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였고,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사회를 서사화하였다. 「저문날의 삽화」 연작,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노년기 인물이나 주변 인물을 통해 노인문제를 심도있게 서사화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도 『친절한 복희씨』와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근대 자본주의 도시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견지하였다.
1993년부터 장편소설을 모은 『박완서 소설 전집』이 순서에 따라서 발행되었으며, 1999년 단편소설을 모은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이 발행되었다. 2011년 1월 22일 노환으로 작고하였다.


「엄마의 말뚝 2」로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현대문학상,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동인문학상,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대산문학상,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만해문학상, 「그리움을 위하여」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 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었다.국 한자: 朴婉緖, 1931년 10월 20일 ~ 2011년 1월 22일)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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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민들레꽃 - 박완서 (휴이넘)

옥상의 민들레꽃 - 박완서 (훈민)

박완서 단편 소설 전집 (문학동네 7권)

박완서 소설 전집 (세계사 22권)

나목 - 박완서 (민음사)

대범한 밥상 - 박완서 (문학동네)

그 남자네 집 - 박완서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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