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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시인의 꿈 - 박완서 (삼성출판사)

by handaikhan 2023. 5. 16.

삼성 문학의 탐정 한국문학 1

 

목차


이범선 

표구된 휴지


맹주천 

천 년 묵은 홰나무


박완서 

자전거 도둑
시인의 꿈
옥상의 민들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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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 시인의 꿈 (1999년)

 

길이란 길은 모조리 포장되고, 집이란 집은 모조리 아파트로 변한 아주 살기 좋은 도시가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얼음판처럼 매끄럽고, 티끌 하나 없이 정갈한 아파트 광장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낡은 자동차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바퀴는 없었습니다. 작은 유리창이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 많은 소년은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에는 작은 침대와 몇 권의 책이 있고,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깡통에 든 더러운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속에서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소년과 할아버지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소년과 할아버지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짓하며 웃었습니다. 소년은 할아버지의 웃음이 매우 보기 좋다고 생각했지만 도망쳤습니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p.100-101)

 

이 도시에선 사람은 모조리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개나 새 같은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은 지가 오래됩니다. 그렇다고 이 도시에 동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동물은 동물원에 수용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낡은 차같이 생긴 것 속에 사람이건 짐승이건 목숨 있는 것이 살고 있다는 것은 기괴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p.102)

 

소년은 손을 뻗어 선반의 책을 한 권 꺼내 펼쳤습니다. 책은 그림책이었습니다. 공작새보다 더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곤충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소년은 학교에서 곤충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 적은 없습니다. 사람 외에 살아 있는 짐승의 대부분은 동물원에 가면 볼 수 있었지만, 곤충만은 왠지 동물원에도 없었습니다. 소년은 학교에서 곤충을 사람에게 이로운 곤충과 해로운 곤충 두 가지로 나누어 배웠기 때문에 많은 곤충의 이름을 외워 두었지만, 곤충은 두 종류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책 속에는 수백 수천 가지의 곤충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각기 제 나름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황홀하게 빛깔 고운 날개를 가진 곤충도 있고, 오색이 찬란한 딱지를 가진 곤충도 있고, 엄마의 속치마 레이스보다도 훨씬 섬세한 날개를 가진 곤충, 생김새가 아기자기한 곤충, 징그러운 곤충, 용감해 보이는 곤충.....소년은 그 많은 곤충이 하늘을 나는 광경을 그리며 가슴이 두근댔습니다.

그런데 어느 틈에 할아버지가 들어와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이 아름다운 것들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우리나라에선 이제 아무 데서도 그걸 볼 수 없을걸. 우리나라보다 못살고 우리나라보다 덜 문명화된 나라에나 남아 있으려나 몰라."

할아버지가 슬픈 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이것들은 사람들이 잘사는 것과 문명을 싫어하는군요. 그래서 피해 달아났군요?"

"아니지, 그것들은 아름답지만 지혜가 없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알고 있는 것과 조금만 어긋난 일이 생기면 살아남질 못한단다. 피해 달아난 게 아니라 없어진 거지. 사람들이 잘 산다는 것 중에는 땅이란 땅을 시골의 농장만 남기고 모조리 시멘트로 포장을 하는 일도 포함되는데, 이 아름다운 것들은 대개 날개를 달기 전 애벌레 시절을 부드러운 흙 속에서 보낸단다. 목청이 좋은 매미라는 곤충은 17년 동안이나 애벌레로 땅속에서 보내는 수도 있단다. 생각해 봐라. 20년 가까이 깜깜한 땅속에서 살다가 마침내 날개가 돋아나, 몇 주일 동안이나마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날고 노래 부르기 위해 기어 나오려는데, 땅엔 두껍디두꺼운 천장이 생겨 있을 때의 매미의 딱한 처지를, 또 문명이라는 것도 그렇단다. 문명은 이 세상의 살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종류와 수효가 많은 곤충을 두 가지로 나누었지."

"그건 저도 알아요. 사람들에게 이로운 곤충과 해로운 곤충이죠."

소년은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맞았다. 그러나 정작 문명이 한 일은 그다음 일이란다. 문명은 사람에게 해로운 곤충을 닥치는 대로 죽였지. 그러다 보니 이로운 곤충까지 저절로 그 모습이 사라져 갔다. 사람은 사람 본위로 곤충을 두 패로 편을 갈랐는데, 저희끼리는 그게 아니어서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신비롭게 서로 해치며 도우며 잡아먹으며 잡아먹히며 어울려서 살았던 것이지.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해로운 곤충을 멸종시키려고 한 노릇이 결과적으론 가장 이로운 곤충의 먹이를 없애는 일이 되고, 그 일이 자꾸만 일어나면서 곤충 세계의 조화는 깨어지고 말았단다. 문명이 해친 것은 곤충이 아니라 곤충의 조화였고, 조화는 바로 곤충게의 목숨이었으니 곤충이 멸종될 수밖에...."

"할아버지, 그래도 우린 모두 이렇게 잘 살잖아요. 곤충의 도움 없이도 말이에요."

"곤충이 없어지고 나서 바람이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만 살아남고, 벌과 나비가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은 차츰 자취를 감추었단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금도 근심하지 않고 그런 식물이 자라던 자리에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 그런 식물이 아직도 살아남은 나라에 팔아서 그런 식물의 열매를 사 먹기 시작했단다. 근심할 건 아무것도 없었지. 사람은 곤충보다 위대하니까. 돈으로 못 사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아이들이 나비의 아름다움에 홀려 온종일 푸른 초원을 헤맨다든가, 우거진 녹음 아래서 매미 소리를 들으며 꿈을 꾼다든가, 벌이 윙윙대는 장미밭에서 한 마리 벌이 되어 본 적도 없이 어른이 되는 일을 근심하고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느니라. 그건 할아버지가 아주 젊었을 때의 일이고, 할아버지도 그걸 슬퍼한 사람 중의 하나였지." (p.108-112)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시가 없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밖에는."

"시가 있었으면 지금보다 살기가 불편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지금보다는 살맛이 있었을 거야."

"살맛이 뭔데요? 그것은 초콜릿 맛하고 닮은 건가요? 바나나 맛하고 닮은 건가요?"

"그건 몸으로 본 맛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보는 살맛하고는 비교를 할 수가 없지. 살맛이란, 나야말로 남과 바꿔치기할 수 없는 하나뿐인 나라는 것을 깨닫는 기쁨이고, 남들의 삶도 서로 바꿔치기할 수 없는 각기 제 나름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 아껴 주고 사랑하는 기쁨이란다." (p.117)

 

"궁전 아파트 현관의 신발장은 무슨 빛깔이더라?"

"모두 상앗빛이에요. 손잡이는 금빛이고요."

'지금 궁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상앗빛 신발장을 의심하지 않지? 그러나 시를 읽는 사람이 생기면 그걸 의심하는 사람도 생길 거야. 나는 상앗빛을 좋아하나? 아닌데, 나는 노랑을 좋아하는데. 그러면서 어느 날 노란색 페인트를 사다가 신발장을 칠해서 자기만의 신발장을 갖는 사람이 생겨난단 말이다. 물론 파랑 신발장, 빨강 신발장을 갖는 사람도 생겨나지. 그래서 궁전 아파트 신발장이 아닌 제 나름의 신발장을 갖데 되는 거야. 또 어린이 중에서도 어른이 가르쳐 준 놀이 말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내는 어린이가 생겨날 테지. 그 어린이는 판판한 아스팔트 밑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그것을 파헤쳐 그 속에 숨은 흙을 보고 말 거야. 그래서 그 속에서 몇 년째 잠자던 강아지풀과 명아주와 조리풀과 토끼풀과 민들레 씨앗을 눈뜨게 하고, 매미의 마지막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가로수를 향해 날아오르게 할 거야."

할아버지의 주름투성이 얼굴이 아이들의 얼굴처럼 더없이 맑아지고, 눈은 꿈꾸는 것처럼 한없이 먼 곳을 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이상해요.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까 괜히 가슴이 울렁거려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에요."

"아이야, 고맙다. 할아버지가 이제부터 말을 얻어다 시를 써도 늦지는 않겠구나.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과 만나는 거란다." (p.121-123)

 

<작품 이해>

1. 소년이 그림책에서 본 수많은 종류의 아름다운 곤충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묻자, 할아버지는 이제 그러한 곤충들을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 대부분의 땅을 시멘트로 포장해 곤충이 살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가령 매미 같은 곤충은 17년 동안이나 애벌레로 땅속에서 보내는데, 날개가 돋아 땅 밖으로 나오려 할 때 땅이 시멘트로 덮여 있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곤충들의 각기 다른 특성을 무시하고 이로운 곤충과 해로운 곤충으로 나누어 해로운 곤충을 아주 없애 버려서 곤충 세계의 조화가 깨져 아름다운 곤충이 사라졌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이렇게 보면, 결국 아름다운 곤충들을 볼 수 없는 것은 자연 생태계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편리와 이익만 생각한 사람들의 행동에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2.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시를 쓸모없다고 여겨서 시가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시를 불필요하다고 여긴 것은 시가 돈을 많이 벌게 하거나,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시가 우리의 마음을 잘 살게 하는 데 매우 가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요. 예를 들어 우리의 정서를 풍부하게 한다든지, 바른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한다든지, 각자의 개성을 살려 자신만의 멋을 만들어 낸다든지 하는 일에 시가 매우 쓸모 있는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시를 쓰려고 '말을 얻으러 다니는 것'도 시에 대한 이러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려다 보니 정서가 메말라 시에 쓸 수 있는 말도 얻기 힘들어졌다고 했지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진실하고 솔직한 슬픔과 기쁨, 바람 등을 나타낼 수 있는 말을 찾아 시를 쓰고 읽는다면, 사람들이 세상으 ㅣ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p.126-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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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朴婉緖, 1931년 10월 20일 ~ 2011년 1월 22일)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박완서(한1931년 10월 20일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에서 태어났다. 1934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열 살 위인 오빠만 데리고 서울로 떠나자 조부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8년 자식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어머니 덕에 서울로 이주, 같은 해 매동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44년 숙명고등여학교에 입학하는데, 여중(숙명고등여학교가 6년제 숙명여자중학교로 개편) 5학년 때 담임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고, 같은 반 친구였던 소설가 한말숙과 친분을 나누게 되었다.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입학식을 치른 지 닷새 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실제로 학교를 다닌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전쟁으로 오빠와 숙부가 죽은 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미8군 PX의 초상화부에 근무하다가 화가 박수근과 알았다. 어린 시절 고향 박적골과 서울살이의 추억은 「엄마의 말뚝」 연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반복적으로 서술되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박수근과의 만남은 등단작 『나목』을 쓰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1953년 호영진과 결혼한 뒤, 네 딸과 외아들을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40세가 되던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늦게 등단하였으나, 이후 왕성한 창작활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1976년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시작으로 하여, 중산층의 소비문화와 허위의식을 비판한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1977), 『목마른 계절』(1978), 『도시의 흉년』(1979)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와 같은 중년 여성의 현실을 다룬 작품을 발표하였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잇달아 잃으면서 잠시 미망의 시간을 보내다가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였고,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사회를 서사화하였다. 「저문날의 삽화」 연작,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노년기 인물이나 주변 인물을 통해 노인문제를 심도있게 서사화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도 『친절한 복희씨』와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근대 자본주의 도시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견지하였다.
1993년부터 장편소설을 모은 『박완서 소설 전집』이 순서에 따라서 발행되었으며, 1999년 단편소설을 모은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이 발행되었다. 2011년 1월 22일 노환으로 작고하였다.


「엄마의 말뚝 2」로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현대문학상,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동인문학상,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대산문학상,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만해문학상, 「그리움을 위하여」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 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었다.국 한자: 朴婉緖, 1931년 10월 20일 ~ 2011년 1월 22일)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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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단편 소설 전집 (문학동네 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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