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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뽕 - 나도향 (홍신문화사)

by handaikhan 2023. 4. 29.

홍신 한국 대표 단편선 7

 

목차

 

나도향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김성한

바비도

5분간

암야행

 

손창섭

잉여인간

 

조명희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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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향 - 뽕 (1925년)

 

안협집이 부엌으로 물을 길어 가지고 들어오매 쇠죽을 수던 삼돌이란 머슴놈이 부지깽이로 불을 헤치면서,

"어젯밤에는 어디 갔었습던교?"

하며 불밤송이 같은 머리에 외수건을 질끈 동여 뒤통수에 슬쩍 질러 맨 머리를 번쩍 들어 안협집을 훑어본다.

"남 어데 가고 안 가고, 임자가 알아 무엇할게요?"

안협집은 별 꼴사나운 소리를 듣는다는 듯이 암상스러운 눈을 흘겨보며 톡 쏴 버린다.

조금이라도 염량이 있는 사람 같으면 얼굴빛이라도 변하였을 것 같으나 본시 계집의 궁둥이라면 염치없이 추근추근 좇아다니며 음흉한 술책을 부리는 삼십이나 가까이 된 노총각 삼돌이는 도리어 비웃는 듯한 웃음을 웃으면서,

"그리 성낼 거야 뭐 있습나? 어젯밤 안주인 심부름으로 임자 집을 갔으니깐두루 말이지."

하고 털 벗은 송충이 모양으로 군데군데 꺼칫꺼칫하게 난 수염 숯검정 묻은 손가락을 두어 번 쓰다듬었다.

"어젯밤에도 김 참봉 아들네 사랑방에서 자고 왔습네그려."

삼돌이는 싱긋 웃는 가운데에도 남의 약점을 쥔 비겁한 즐거움이 나타났다.

'무엇이 어쩌그 어째, 이 망나니 같은 놈...'

하는 말이 입 바깥까지 나왔던 안협집은 꿀꺽 다시 집어삼키면서, 

"남 어데 가 자든 말든 상관할 것이 무엇인고."

하며 물동이를 이고서 다시 나가려 하니까,

"흥 두구 보소, 가만 있을 줄 알았다가는..."

"듣기 싫어! 별 꼬락서니를 다 보겠네." (p.62-63)

 

그러나 촌구석에서 아무렇게나 자란데다가 먼저 안 것이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서방도 있고, 먹을 것 입을 것이 다 있지.'

하는 굳은 신조는 자기 목숨을 내어 놓고는 무엇이든지 제공하여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

십오륙 세 적, 침외 한 개에 원두막 속에서 총각 녀석들에게 정조를 빌린 것이나, 벼 몇 섬, 돈 몇 원, 저고릿감 한 벌에 그것을 빌리는 것이 분량과 방법이 조금 높아졌을 뿐이요 그 관념은 동일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으로 온 뒤에는 동리에서 돈푼이나 있고 얌전한 사람은 거의 다 한 번씩은 후려내었으니 그것은 남자 편에서 실없는 짓 좋아하는 이에게 먼저 죄가 있다 하는 것보다도 이쪽 안협집에게 그 책임이 더 있다고 할 수 있고, 또 그것보다 더 큰 죄는 그 남편 되는 노름꾼 김삼보에게 있다고 할 수 있으니, 그것은 남편 노름꾼이 한 달에 한 번을 올까말까 하면서도 올 적에는 빈손으로 오는 때가 많으니 젊은 계집 혼자 지낼 수가 없으매 자연히 이 집 저 집 동리로 다니며 품방아도 찧어 주고 김도 매 주고 잔일도 하여 주며 얻어먹다가, 한 번은 어떤 집 서방님에게 실없는 짓을 당하고 나서 쌀말과 피륙 두 필을 받아 보니 그것처럼 좋은 벌이가 없어 차츰차츰 이번에는 자기 스스로 벌이를 시작하여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거래 단골을 트듯이 이 사람 저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하더니, 그것도 차차 눈이 높아지니까 웬만한 목도꾼 패장이나 장돌림, 조금 올라서서 순사 나리쯤은 눈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고, 적어도 그곳에는 돈푼도 상당하고 여간해서 손아귀에 들지 않는다는 자들을 얼러 보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p.65-66)

 

<작품 해설>

나도향의 후기 작품에 속하는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구성이 치밀하고,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작가의 시선이 객관적이다. 하층민들의 적나라한 삶의 실상이 밀도 있게 표현되었고, 낭만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인물이다. 안협집은 "돈만 있으면 서방도 있고 먹을 것 입을 것이 다 있지."라고 생각하는 황금 제일주의자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서슴없이 제공한다. 가난한 여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이라면 정조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안협집은 "십오륙 세 적 참외 한 개에 원두막 속에서 총각 녀석들에게 정조를 빌린 것이나, 벼 몇 섬, 돈 몇 원, 저고리 한 벌에 그것을 빌리는 것이 분량과 방법이 조금 높아졌을 뿐이요 그 관념은 동일하였다."라는 창녀적 인생관이 형성되는 것이다.

김삼보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에게 필요한 돈만 생기면 아내의 부정도 눈감아 버리는 이기적, 탐욕적인 무능력자인 것이다. 삼돌이 또한 공짜로 안협집을 노리는 탐욕스러운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은 물질과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야수적인 인간성을 묘사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구성에 있어서는 <물레방아>나 <벙어리 삼룡이>처럼 비극적 결말을 취하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그저 그런 속물적, 본능적, 야수적 인간상을 제시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물들의 관심이 경제적 빈궁 문제 자체보다는 애욕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나도향의 작품은 두 부류로 나눌 수가 있다. 처음엔 <백조> 동인으로서 낭만주의적 경향이 강한 작품 <젊은이의 시절>, <여이발사>,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 등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후에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전환하여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 등을 발표한다. 그는 죽음으로 인해 이중의 사슬을 벗는 인간의 갈등을 묘사하고, 죽음을 인간의 고립된 현실적 의지의 승화로 설정하고 있다.

 

'삶이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보이지 않는 기준은 있을 것이다. 물질을 제일로 여기고 정조쯤이야 쉽게 내버릴 수 있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단순한 하층민의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지극히 절제해야 할 본능적, 속물적 본성들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 같다. (p.9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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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향(羅稻香, 1902년 3월 30일~1926년 8월 26일)

일제강점기의 한국 소설가.

1917년 공옥학교(攻玉學校)를 거쳐, 1919년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에 뜻을 두어 할아버지 몰래 일본으로 갔다. 그러나 학비가 송달되지 않아서 귀국하였고, 192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22년 현진건(玄鎭健)·홍사용(洪思容)·이상화(李相和)·박종화(朴鍾和)·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백조(白潮)』 동인으로 참여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에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에 이어 11월부터 장편 「환희(幻戱)」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한편, 「옛날의 꿈은 창백(蒼白)하더이다」를 발표하였다.
1923년에는 「은화백동화(銀貨白銅貨)」·「17원50전(十七圓五十錢)」·「행랑자식」을, 1924년에는 「자기를 찾기 전」, 1925년에는 「벙어리 삼룡(三龍)」·「물레방아」·「뽕」 등을 발표하였다. 1926년 다시 일본에 갔다가 귀국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요절하였다.
초기에는 작가의 처지와 비슷한 예술가 지망생들로서 주관적 감정을 토로하는 데 그쳐, 객관화된 ‘나’로 형상화되지 못한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는 일종의 습작기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행랑자식」·「자기를 찾기 전」 등을 고비로 빈곤의 문제 등 차츰 냉혹한 현실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극복의지를 드러내는 주인공들을 내세움으로써, 초기의 낭만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고 사실주의로 변모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변모의 현실화로 나타난 작품이 대표작으로 꼽히는 「벙어리 삼룡」·「물레방아」·「뽕」이다.
이 작품들에는 본능과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객관적 사실 묘사에 의하여 부각되어 있다. 특히, 이들 후기의 애정 윤리와 궁핍의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과 객관적인 관찰은 적극적인 대결로 나아가지는 못하였으나 당대 현실과 사회를 부정적으로 예리하게 묘사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등장인물의 치밀한 성격 창조를 기반으로 한국 농촌의 현실과 풍속을 보였다는 관점에서, 1920년대 한국 소설의 한 전형으로 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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