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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자유종 - 이해조 (문학과지성사)

by handaikhan 2023. 4. 7.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0

 

목차

안국선 - 금수회의록
이해조 - 자유종
이해조 - 구마검
최찬식 - 추월색


작품 해설 - 계몽 시대 신소설의 서사적 성격 / 권영민
작가 연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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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조 - 자유종 (1910년)

 

천지간 만물 중에 동물 되기 희한하고, 천만 가지 동물 중에 사람 되기 극난하다. 그같이 희한하고 그같이 극난한 동물 중 사람이 되어 압제를 받아 자유를 잃게 되면 하늘이 주신 사람의 직분을 지키지 못함이어늘, 하물며 사람 사이에 여자 되어 남자의 압제를 받아 자유를 빼앗기면 어찌 희한코 극난한 동물 중 사람의 권리를 스스로 버림이 아니라 하리오.

여보. 여러분, 나는 옛날 태평 시대에 숙부인까지 바쳤더니 지금은 가련한 민족 중의 한 몸이 된 신설헌이올시다. 오늘 이매경씨 생신에 청첩을 인하여 왔더니 마침 홍국란씨와 강금운씨와 그외 여러 귀중하신 부인들이 만좌하셨으니 두어 말씀 하오리다.

이전 같으면 오늘 이러한 잔치에 취하고 배부르면 무슨 걱정 있으리까마는, 지금 시대가 어떠한 시대며 우리 인족은 어떠한 인족이오? 내 말이 연설 체격과 흡사하나 우리 규중 여자도 결코 모를 일이 아니올시다.

일본도 삼십 년 전 형편이 우리나라보다 우심하여 혹 천하대세라 혹 자국전도라 말하는 자는, 미친 자라 괴악한 사람이라 지목하고 인류로 치지 얺더니, 점점 연설이 크게 열리매 전도하는 교인같이 거리거리 떠드나니 국가 형편이요. 부르나니 민족 사세라. 이삼 인 모꼬지라도 술잔을 대하기 전에 소회를 말하고 마시니, 전국 남녀들이 십여 년을 한담도 끊고 잡담도 끊고 언필칭 국가라 민족이라 하더니, 지금 동양에 제일 제이 되는 일대 강국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어떠한 비참지경이오? 세월은 물같이 흘러가고 풍조는 날로 닥치는데, 우리 비록 아홉 폭 치마는 둘렀으나 오늘만도 더 못한 지경을 또 당하면 상전벽해가 눈결에 될지라. 하늘을 부르면 대답이 있나, 부모를 부르면 능력이 있나, 가장을 부르면 무슨 방책이 있나. 고대광실 뉘가 들며 금의옥식 내 것인가? 이 지경이 이마에 당도했소. 우리 삼사 인이 모였든지 오륙인이 모였든지 어찌 심상한 말로 좋은 음식을 먹으리까? 승평무사 할 때에도 유의유식은 금법이어든 이 시대에 두 눈과 두 귀가 남과 같이 총명한 사람이 어찌 국가 의식만 축내리까? 우리 재미있게 학리상으로 토론하여 이날을 보냅시다.

(매경) "절당 절당하오이다. 오늘이 참 어떠한 시대요? 이 같은 수참하고 통곡할 시대에 나 같은 요마한 여자의 생일잔치가 왜 있겠소마는 변변치 못한 술잔으로 여러분을 청하기는 심히 부끄럽고 죄송하나 본의인즉 첫째는 여러분 만나 뵈옵기를 위하고, 둘째는 좋은 말씀을 듣고자 함이올시다. 남자들은 자주 상종하여 지식을 교환하지마는 우리 여자는 한번 만나기 졸연하오니까. <예기>에 가로되, 여자는 안에 있어 밖의 일을 말하지 말라 하였고, <시전>에 기로되 오직 술과 밥을 마땅히 할 뿐이라 하였기로 층암절벽 같은 네 기둥 안에서 나고 자라고 늙었으니, 비록 사마자장의 재주 있을지라도 보고 듣는 것이 있어야 아는 것이 있지요. 

이러므로 신세 연약하고 지각이 몸매하여 쌀이 무슨 나무에 열리는지 도미를 어느 산에서 잡는지 모르고, 다만 가장의 비위만 맞춰,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니, 진소위 밥 먹는 안석이요, 옷 입은 퇴침이라. 어찌 인류라 칭하리까? 그러나 그는 오히려 현철한 부인이라. 행검 있는 부인이라 하겠지마는, 성품이 괴악하고 행실이 불미하여 시앗이 투기하기, 친척에 이간하기, 무당 불러 굿하기, 절에 가서 불공하기, 제반악증은 소위 대갓집 부인이 더합디다. 가도가 무너지고 수욕이 자심하니 이것이 제 한집안일인 듯하나 그 영향이 실로 전국에 미치니 어찌 한심치 않으리까?

그런 부인이 생산도 잘 못하고 혹 생산하더라도 어찌 쓸 자식을 낳으리오. 태내 교육부터 가정교육까지 없으니 제가 생지의 바탕이 아닌 바에 맹모의 삼천하시던 교육이 없이 무슨 사람이 되리오. 그러나 재상도 그 자제이요 관찰, 군수도 그 자제니 국가의 정치가 무엇인가. 법률이 무엇인지 어찌 알겠소? 우리 비록 여자나 무식을 면치 못함을 항상 한탄하더니, 다행히 오늘 여러분 고명하신 부인께서 왕림하여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니 대단히 기꺼운 일이올시다."

(설헌) "변변치 못한 구변이나 내 먼저 말씀하오리다. 우리 대한의 정계가 부패함도 학문 없는 연고요, 민족의 부패함도 학문 없는 연고요, 우리 여자도 학문 없는 연고로 기천 년 금수 대우를 받았으니 우리나라에도 제일 급한 것이 학문이요, 우리 여자 사회도 제일 급한 것이 학문인즉 학문 말씀을 먼저 하겠소. 우리 이천만 민족 중에 일천만 남자들은 응당 고명한 학교를 졸업하여 정치, 법률, 군제, 농, 상, 공 등 만 가지 사업이 족하겠지마는, 우리 일천만 여자들은 학문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고 유의유식으로 남자만 의롸하여 먹고 입으려 하니 국세가 어찌 빈약치 아니하겠소? 옛말에, '백지장도 맞들어야 가볍다.' 하였으니 우리 일천만 여자도 일천만 남자의 사업을 백지장과 같이 거들었으면 백 년에 할 일을 오십 년에 할 것이요, 십 년에 할 일을 다섯 해면 할 것이니 그 이익이 어떠하뇨? 나라의 독립도 거기 있고 인민의 자유도 거기 있소.

세계 문명국 사람들은 남녀의 학문과 기예가 차등이 없고, 여자가 남자보다 해산하는 재주 한 가지가 더하다 하며, 혹 전쟁이 있어 남자가 다 죽어도 겨우 반구비라 하니, 그 여자의 창법 검술까지 통투함을 가히 알겠도다.

사람마다 대성인 공부자 아니거든 어찌 생이지지 하리요. 법국 파리 대학교에서 토론회를 열매, 가편은 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면 금수와 같다 하고, 부편은 사람이 천생 한 성질이니 비록 가르치지 아니할지라도 어찌 금수와 같으리오 하여 경쟁이 대단하되 귀결치 못하였더니, 학도들이 실지를 시험코자 하여 무보모한 아이들을 사다가 심산궁곡에 집 둘을 짓되 네 벽을 다 막고 문 하나만 뚫어 음식과 대소변을 통하게 하고 그 아이를 각각 그 속에서 기를새, 칠팔 년이 된 후 그 아이를 학교로 데려오니 제가 평생에 사람 많은 것을 보지 못하다가 육칠 층 양옥에 인산인해됨을 보고 크게 놀라 서로 돌아보며 하나는 꼬꼬댁꼬꼬댁 하고 하나는 끼익끼익 하니, 이는 다름 아니라 제 집에 아무것도 없고, 다만 닭과 돼지만 있는데, 닭이 놀라면 꼬꼬댁 하고 돼지도 놀라면 끼익끼익 하는 고로 그 아이가 지금 놀라운 일을 보고, 그 소리가 각각 본 대로 난 것이니 그것도 닭과 돼지의 교육을 받음이라. 학생들이 이것을 본 후에 사람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금수와 다름없음을 깨달아 가편이 득승하였다 하니, 이로 보건대 우리 여자가 그와 다름이 무엇이오? 일용범절에 여간 안다는 것이 저 아이의 꼬꼬댁, 끼익보다 얼마나 낫소이까? 우리 여자가 기천 년을 암매하고 비참한 경우에 빠져 있었으니 이렇고야 자유권이니 자강력이니 세상에 있는 줄이나 알겠소? 일생에 생사고락이 다 남자 압제 아래 있어, 말하는 제응과 숨 쉬는 송장을 면치 못하니 엣 성인의 법제가 어찌 이러하겠소. <예기>에도, 여인 스승이 있고 유모를 택한다 하였고 <소학>에도 여자 교육이 첫 편이니 어찌 우리나라 여자 같은 자고송이 있단 말이오?

우리나라 남자들이 아무리 정치가 밝다 하나 여자에게는 대단히 적악하였고, 법률이 밝다 하나 여자에게는 대단히 득죄하였습니다. 우리는 기왕이라 말할 것 없거니와 후생이나 불가불 교육을 잘하여야 할 터인데 권리 있는 남자들은 꿈도 깨지 못하니 답답하오. 남자들 마음에는 아들만 귀하고 딸은 귀치 아니한지 일분자라도 귀한 생각이 있으면 사지오관이 구비한 자식을 어찌 차마 금수와 같이 길러 이 같은 고해에 빠지게 하는고? 그 아들 가르치는 법도 별수는 없습니다. <사략>, <통감>으로 제일등 교과서를 삼으니 자국 정신은 간데없고 중국 혼만 길러서 언필칭 <좌전> 이라 <강목> 이라 하여 남의 나라 기천 년 흥망성쇠만 의논하고 내 나라 빈부강약은 꿈도 아니 꾸다가 오늘 이 지경을 하였소.

이태리국 역비다 산에 올차학이라는 구멍이 있어 해수로 통하였더니 홀연 산이 무너져 구멍 어구가 막힌지라. 그 속이 칠야같이 캄캄한데 본래 있던 고기들이 나오지 못하고 수백 년을 생장하여 눈이 있으나 쓸 곳이 없더니, 어구의 막혔던 흙이 해마다 바닷물에 패어가며 일조에 굼기 도로 열리매, 밖의 고기가 들어와 수없이 잡아먹되, 그 안에 있던 고기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도 저 해하려는 것을 전연 모르고 절로 밀려 어구 밖에를 혹 나왔으나 못 보던 눈이 졸지에 태양을 당하매 현기가 나며 정신이 없어 어릿어릿하더라 하니, 그와 같이 대문, 중문 꽉꽉 닫고 밖에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고 살던 우리나라 이왕 교육은 올차학 교육이라 할 만하니 그 교육 받은 남자들이 무슨 정신으로 우리 정치를 생각하겠소? 우리 여자의 말이 쓸데없을 듯하나 자국의 정신으로 하는 말이니, 오히려 만국공사의 헛담판 보다 낫습니다. 여러분 부인들은 대한 여자 교육게의 별방침을 연구하시오." (p.41-47)

 

(금운) "여보. 설헌씨는 학문 설명을 자세히 하셨으나 그 성질과 형편이 그래도 미진한 곳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식을 보통케 하려면 그 소위 무슨 변에 무슨 자, 무슨 아래 무슨 자라는, 옛날 상전으로 알던 중국 글을 폐지하여야 필요하겠소. 대저 글이라 하는 것은 말과 소와 같아서 그 나라의 범백 정신을 실어두나니, 우리나라 소위 한문은 곧 지나의 말과 소라, 다만 지나의 정신만 실었으니 우리나라 사람이야 평생을 끌고 당긴들 무슨 이익이 있겠소? 그런 중에 그 말과 소가 대단히 사나워 좀체 사람은 끌지 못하오.

그 글은 졸업 기한이 없고 일평생을 읽을지라도 이태백, 한퇴지는 못 되며, 혹 상등으로 총명한 자가 물 쥐어 먹고 십 년 이십 년을 읽어서 실재라, 거백이라 하여 눈앞에 영웅이 없고, 세상이 돈짝만 하여 내가 내로라고 도리질치더라도 그 사람더러 정치를 물으면 모른다, 법률을 물으면 모른다, 철학, 화학, 이학을 물으면 모르노라, 농학, 상학, 공학을 물으면 모르노나, 그러면 우리 대종교 공부자 도학의 성질은 어떠하냐 묻게 되면, 그 신성하신 진리는 모르고 다만 아노라 하는 것은, '공자님은 꿇어앉으셨지.' '공자님은 광수의 입으셨지' 하여 가장 도통을 이은 듯이 여기니, 다만 광수의만 입고 꿇어만 앉았으면 사람마다 천만 년 종교 부자가 되오리까?

공자님은 춤도 추시고, 노래도 하시고, 풍류도 하시고, 선배도 되시고, 문장도 되시고, 장수가 되셔도 가하고, 정승이 되셔도 가하고, 천자도 가히 되실 신성하신 우리 공부자님을, 어찌하여 속은 컴컴하고 외양만 번주그레한 위인들이 광수의만 입고 꿇어 앉아 공자님 도학이 이뿐이라 하여 고담준론을 하면서 이렇게 하여야 집을 보존하고 인군을 섬긴다 하여 자기 자손뿐 아니라 남의 자제까지 연골에 버려 골생원님이 되게 하니, 그런 자들은 종교에 난적이요, 교육에 공적이라 공자님께서 대단히 욕보셨소. 설사 공자님이 생존하셨을지라도 오히려 북을 올려 그자들을 벌하셨으리다.

그만도 못한, 승부꾼이라 일차꾼이라 하는 자는 천시도 모르고 지리도 모르고, 다만 의취 없는 강남 풍월한 다년이라. 듯도 모르는 것은 원코 형코라 하여 국가의 수용하는 인재 노릇을 하였으니 그렇고야 어찌 나라가 이 지경이 아니 되겠소?

대체 글을 무엇에 쓰자고 읽소? 사리를 통하려고 읽는 것인데 내 나라 지지와 역사를 모르고서 제갈량전과 비사맥전을 천번 만 번이나 읽은들 현금 비참한 지경을 면하겠소? 일본 학교 교과서를 보시오. 소학교 교과하는 것은 당초에 대한이라 청국이라는 말도 없이 다만 자국 인물이 어떠하고 자국 지리가 어떠하다하여 자국 정신이 굳은 후에 비로소 만국 역사와 만국 지지를 가르치니, 그런고로 무론 남녀 하고 자국의 보통 지식 없는 자가 없어 오늘날 저러한 큰 세력을 얻어 나라의 영광을 내었소.

우리나라 남자들은 거룩하고 고명한 학문이 있는 듯하나 우리 여자 사회에야 그 썩고 냄새나는 천지현황 글자나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오? 남자들도 응당 귀도 있고 눈도 있으리니. 타국 남자와 같이 학문을 힘쓰려니와 우리 여자도 타국 여자와 같이 지식이 있어야 우리 대한 삼천리강토도 보전하고, 우리 여자 누백 년 금수도 면하리니. 지식을 넓히려면 하필 어렵고 어려운 십 년 이 십 년 배워도 천치를 면지 못할 학문이 쓸데 있소? 불가불 자국 교과를 힘써야 되겠다 합니다." (p.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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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I. 정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발생하고 성장한 소설. 개화기소설.

II. 개설
신소설은 시대적 명칭이며 동시에 이 명칭은 문학용어로 정착되어 이제까지의 문학사에서 통용되고 있는 데, 때로는 역사적인 의미를 더 강조하거나 발생한 시대의 문화적 특성을 감안하여 ‘개화기소설’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 신소설의 명칭이 가장 먼저 쓰인 예는 1906년 2월 1일자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의 『중앙신보(中央新報)』 발간광고문에서 「명월기연(明月奇緣)」을 가리켜 “한운 선생(漢雲先生)이 저작한 현대걸작의 신소설”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가 가장 먼저 쓰인 일본에서는 잡지의 이름으로만 사용되었고, 중국에서도 월간지의 이름으로만 쓰였을 뿐, 이처럼 소설의 시대적 명칭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결국 우리 문학사에서 신소설이란 개화기소설들 중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념이나 사상을 다룬 소설에 적용되는 명칭이다.

III. 신소설의 발생
개화기소설 또는 신소설이란 우리의 중세적인 전통사회가 사회변동에 의하여 근대의 들머리로 들어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허구적 서사문학 형태로서의 소설을 뜻한다.
따라서, 신소설이라는 소설 형태는 기존문학으로서 조선조 소설의 점진적인 소멸과 이에 대치될 현대소설 발흥의 준비단계라는 이질적인 평행성이 병렬하는 과도기적인 시기의 소설인 것이다. 이러한 신소설의 발생요인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화사상의 대두 및 1876년의 개항을 비롯하여, 1894년의 갑오경장 · 동학혁명에 의한 일련의 사회제도 개편화 작업과 사회적 동요 등은 세계인식과 삶의 방식을 바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변화된 사회적인 삶의 양식은 문화적인 상황으로 보아 새로운 소설의 형성을 필연적이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둘째, 소설사회학적으로 보아, 생산자(작가)-분배자(출판사 및 서적판매업)-수요자(독자)라는 교환회로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소설관의 변화현상과 함께 개화나 애국계몽사상의 전파를 위한 국민 계몽적 입장에 있는 언론계에 종사하는 개화지식인 내지는 변화된 시대의 신기성(新奇性)에 적응하려는 작가가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국문을 존중하려는 고종의 칙명(1894)은 자연히 국어의 전파를 확산함으로써 독서대중이 더 많이 확보되게 하였다.
특히, 소설의 주요 독자인 중산층 부녀자들로서는 25전 내지 35전 내외의 돈으로 소설책 이상의 다른 오락 형태를 구할 수가 없었으며, 솔표 석유의 판매 보급은 그들에게 독서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더 많이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한편, 분배자로서의 근대적인 출판기업인 회동서관(匯東書館) · 광학서포(廣學書鋪) · 대동서원(大東書院) · 광문사(廣文社) · 동양서원(東洋書院) · 중앙서관(中央書館) · 보성사(普成社) 등이 등장했다.
이들은 새로운 인쇄기를 도입했으며, 서적 판매까지도 겸함으로써 종전의 판본 따위의 원초적 출판형태와는 다른 여건들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신소설 작가와 작품의 출현을 가져올 수 있는 후원자들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활자인쇄술 도입이 새로운 소설의 발흥에 기여하게 되었다.
셋째, 민간신문의 출현이 신소설 발행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관보(官報)와는 달리 민간자본에 의하여 경영되는 민간신문, 특히 개화기적 교도주의의 기능을 지닌 개화기신문은 계몽과 독자확보를 위한 상업성을 함께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1905년을 전후하여 『황성신문(皇城新聞)』 · 『제국신문(帝國新聞)』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 『만세보(萬歲報)』 · 『경남일보(慶南日報)』 및 일인이 발간한 『중앙신보(中央新報)』 · 『대한일보(大韓日報)』 등이 지면의 확대와 더불어 거의 모두 소설을 연재하였다. 민간신문은 신소설 발표의 거의 유일한 매개체였던 것이다.
넷째, 내재적인 전통의 축적과 외국문학의 영향이 지적될 수 있다. 신소설은 비록 전대의 소설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기존 소설에 대한 지속적인 의존이 불가피하였으며, 여기에 다시 서구소설의 영향을 받은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서구문학의 영향이라는 것도 주로 일본 및 중국(청)소설의 중간 전신자적 기능에 의한 간접적인 영향이었다. 특히 청말의 소설시학은 긍정적인 소설관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요인에 의하여 신소설은 비로소 그 생성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문학 형태로서는 과도기적인 미숙성을 지닌 것이었으며, 1910년대의 후반에 이르면서 이광수(李光洙)의 「무정」 등과 같은 현대소설에 의하여 대치되었다.
이들 신소설은 문학 그 자체의 독자적 예술성의 변혁보다는 정치 · 사회제도 및 풍속의 개혁, 새로운 교육관, 여성의 자유와 사회 · 문화적 평등, 과학적 세계관 등을 강조하려는 목적론적 성격이 우세하였으며, 기타 신기성을 추종하는 대중적인 취향에 영합하는 시장 지향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신소설의 탐정소설적 즉 미스터리 소설적 성격이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할지라도 당시의 사회적인 담론이었던 토론 · 연설과 같은 담론형태를 뚜렷이 하고 있는 점이 이 문학형태의 독자성이기도 하다.

IV. 신소설의 내용과 형식
신소설의 내용은 개화기의 개혁적 의지나 신문화 발전의 성취욕과 관계된 근대적 자각의 징후를 드러낸 것이 대부분이다.
첫째, 개화사상과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룬 것으로서 이인직의 「혈의 누」 · 「은세계(銀世界)」, 이해조(李海朝)의 「자유종(自由鐘)」, 구연학(具然學)의 「설중매(雪中梅)」 등을 예거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이 시기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내용으로서 한말의 봉건적 사회풍토에서 새 시대의 문화성취에 대한 의욕을 보이며, 경술국치 전후의 정치 ·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가령 「혈의 누」 첫 부분인 청일전쟁이 끝난 뒤의 의도적이고 상징적인 장면 제시에서는 나라의 주권이 튼튼하게 서지 못한 약한 민족국가의 고통을 묘사하면서 부강하고 강력한 주체력을 지닌 국가가 요망됨을 깨닫게 한 것이다.
또한 번안소설 「설중매」는 정치적 연설을 통하여 개화기 우리 민족이 깨닫고 실천하여야 될 자주독립의 사상을, 「자유종」은 부인들의 토론과 대화를 통하여 민족 · 국가의 중요성 및 새 시대에 맞는 교육과 학문의 가치를 제시하였다.
둘째, 우리의 전통문화를 새로이 강화하고 발전시키려면 새 교육을 통하여 활력을 진작시켜야 한다는 의식이 현저하게 주제가 되어 있다. 이러한 주제는 「혈의 누」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치악산(雉岳山)」에도 보이는 것으로, 신시대의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와 수용현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동양에 국한되었던 종래의 국제관계가 이 시기에 이르러 서양을 포함하게 됨으로써 세계라는 보다 큰 개념을 발견하고 이에 대응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욕의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인 체제나 학문만으로서는 새로이 확장된 세계의 개념을 바르게 이해할 수도 없고, 또 당당히 겨루어 나갈 역량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결과, 신학문과 신교육의 과제는 시급한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처럼 시급한 과제를 국민 전체에게 이해시키고 계몽하여야 할 필요성을 깨달은 지식인들의 구실이 이 시기 문화와 문예의 특질을 이루었다고 할 것이다.
이해조의 「자유종」에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인권을 존중받으려면 신학문을 익혀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으며, 최찬식(崔瓚植)의 「추월색(秋月色)」에서도 주인공들이 신학문을 서양에서 익히고 돌아오는 이야기 진행을 통해 신학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셋째, 대부분의 신소설에서 많이 다룬 내용으로서, 봉건적인 혼인풍속을 비판적으로 본 신결혼관이 두드러진다. 가장 먼저 「혈의 누」에서 조혼의 폐습을 지적하는 대목이 보이고, 누구나 장성한 다음 자유의사에 의하여 인격적인 결합으로 혼인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혼인관은 「추월색」과 「귀(鬼)의 성(聲)」, 이해조의 「빈상설(鬢上雪)」 등에도 두루 보이는바, 구식 혼인의 폐습을 비판하고 새로운 혼인관을 긍정적으로 제시한 예가 될 것이다.
신소설에서 비교적 사실적이고 실감 있게 묘사된 것이 이러한 혼인풍속의 비판인데, 그것은 우리 생활의 기본적인 면이고 공통된 과제로서 그 모순을 실질적으로 겪거나 이해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주제가 사회적 표면으로 드러나 문제시되는 것은, 봉건적 신분사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율적인 행동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자유주의와 평등사상의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일본 유학까지 한 이인직의 소설 「혈의 누」의 경우에 신학문의 필요성과 그 수용의 과정 사이에는 거리감이 있는데, 그 이유는 개화의 과제를 관념적 수준에서 논의하기 쉬웠고 실제적 내용을 체험적으로 제시할 만큼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비하면 혼례의 풍속은 누구나가 경험하였던 실생활이어서 그 모순의 지적과 개량의 필요성이 절실하였다고 파악된다. 이 주제는 인권의 존중과 남녀평등, 상하계층의 타파 및 가족관의 개혁 등, 복합적인 의미를 포함한 개인의식의 문제로서 기초적인 과제이었다.
이와 같은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사회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매우 중요한 당대의 이념이 대변된 문학적 주제인 것이다.
넷째, 미신타파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삶의 인식이 신소설의 중요한 내용으로 다루어졌다. 이인직의 「치악산」과 이해조의 「구마검(驅魔劍)」이 그 대표라고 할 수 있거니와, 특히 「구마검」의 최씨 부인은 미신에 심취한 여인으로서 그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무당에게 교묘히 침혹되어 가는 과정이 상세하게 폭로, 고발되고 있다. 결말에 가서 무녀 ‘금방울’의 죄악이 탄로나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바, 이 작품은 우리의 인습적인 삶을 객관적으로 비판한 것이며, 암시적으로는 합리적 삶을 일깨운 것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에는 직접적으로 새로운 문물이 과학과 관계되고 있음을 지적한 대목도 있다. 즉 ‘함일청’이 어리석은 ‘함진해’에게 보낸 편지에 미신을 버리고 과학적인 지식을 헤아리게 하는 대목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이러한 과제가 곧 국가와 민족을 부강하게 하는 길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근대적 삶과 문명이 과학에 의하여 지탱되고 발전해 간다는 의식을 고취한 작품으로는 이 밖에도 이해조의 번안소설인 「철세계(鐵世界)」가 있는데, 이는 근대적인 서구과학의 힘을 독자층에게 이해시키고 계몽하려는 의도로 번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학에 대한 관심은 곧바로 민족의 부강을 기약하려는 선구적 계몽의식에 의한 것이다.
다섯째, 한말의 부패된 관리를 비판적으로 다룬 내용으로 「은세계」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선량한 농민인 ‘최병도’가 무고하게 형(刑)을 받으면서, 백성에의 포악한 정사가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극언하는 항변 장면이 묘사된다.
또한, 안국선(安國善)의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에서도 개구리의 입을 통하여 벼슬자리에 한번 오른 사람이 벌이는 권리다툼 · 아첨 · 가렴주구 · 국고탕진 등의 비리를 고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동물의 입을 통하여 인간의 여러 약점을 풍자하는 대화체소설인 데, 게를 통한 악정 규탄 등 정치의식이 전면적으로 주제화되어 개화기의 정치적 부조리와 그 모순을 비판한 신소설의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신소설에는 근대적인 시민의식을 일깨우는 면에서 법질서의 확립을 위한 의견도 제시되었고, 합리적인 삶과 사고를 권장하는 취지도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들도 작가에 따라 열의의 정도나 진실성의 경중을 달리하여 제시되었다. 민족의 당대적 현실을 심각하게 인식한 작가들은 오락성이나 재미를 창안하기보다 개혁할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한 주제의식 제시에 주력하였고, 상업적 오락의식이 우세하였던 작가들은 쾌락과 재미에 치중한 이야기로 작품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편, 소설의 형태를 본다면, 고대소설과 신소설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은 차이라 하여도 그것이 새 시대의 문학적 창의임에는 틀림없다. 한 출중한 주인공의 행적이나 일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간 작품들의 경우, 대개 그것은 신소설이거나 고대소설이거나 거의 같은 틀을 지니고 있다.
위와 같은 이야기 단위들은 시대나 사회배경 또는 작가의 상상력이나 소설미학적인 취향에 따라 서로 그 내용이 다르지만, 한 출중한 인물이 어려움을 겪은 다음에 큰 공이나 이상을 실현하고 성취한다는 이야기의 짜임에서는 공통되고 있다. 이로 미루어 고대소설의 틀이 신소설의 틀에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금수회의록」과 같은 토론체소설은 매우 독특한 형태로 짜여져 있으므로 출중한 인물의 일생을 보여주는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 그 이유는 여러 개성을 통하여 시대나 사회가 요구하는 중요한 가치를 동시에 다각적으로 검토하여 보여주는 뜻이 작품의 미적 특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생을 그리는 소설은 출생 · 성장 · 능력 · 고난 · 구출 · 역경 · 극복 · 성취(또는 실패)라는 삶의 궤도에 따라 짜여져 일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틀이지만, 사회의 많은 층을 동시에 보여주는 소설은 각 층의 요구나 뜻을 드러낼 많은 성격이 요청되므로 같은 시간단위 속에서 많은 인물이나 인물을 대신할 대리적 성격들이 제시되는 것이다.
고대소설이나 신소설이나 대개 일생담을 주로 한 것이 많기는 하나, 신소설에서는 현실감을 나타내기 위해 회고와 역전의 수법 등 작가의 개성과 창의에 따라 매우 다양한 화법의 형태가 선보이고 있다. 즉, 이야기나 인물들이 설정된 장면의 집중적인 형상화의 효과를 얻기 위하여 신소설에서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행동을 구성하지 않고, 오히려 장면의 효과나 감동, 주의를 집중하게 하기 위하여 서사시간을 역전하는 방식도 취하였다.
이는 시간을 소설의 미적 요소로 인식한 객관적인 한 증거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물의 행동을 생장하고 성취하는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짜맞추지 않고, 인물의 신념이나 특성 및 행동의 비중에 따라 시간의 순서를 역전하여 그 효과를 높이려 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문장의 개성화 경향이다. 고대소설들이 대체로 관용어구를 주축으로 한 서술이거나 고사성어에 의존된 문장임에 비하여, 신소설은 가능한 한 고대소설투를 벗어나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첫 장면을 고대소설에서처럼 ‘화설’, ‘이때’, ‘각설’ 등의 허두나 또는 연호를 표시하여 시작하지 않고, 가장 요긴한 행동이나 장면의 현장을 포착하여 사실성에 입각하여 묘사한 점이 특히 두드러진다.
이처럼 신소설작가들은 낡은 관례를 극복하고, 아직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묘사 위주의 작품에서 새로운 창의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문장에서도 고대소설이 낭독조의 율격을 보유한 데 비하여, 신소설은 자유롭게 묘사하고 서술하였으므로 율격적 관습에서 벗어나려 하였고, 대화나 장면을 풍부하게 구사한 점이 특색이라고 하겠다.
인물 설정에 있어서도 고대소설에서는 선 · 악의 유형을 명확히 대칭적으로 설정한 데 비하여 신소설에서는 도식성을 탈피하고 비교적 개성을 창조하는 데 힘썼다. 또 제시된 인물들의 사회적 신분을 고대소설에서는 명확히 구분하였고 그것으로써 우열의 뜻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소설에서는 신분의 붕괴를 의식하였으므로 신분보다는 도덕의식이나 개화이념에 의하여 선 · 악의 구분이 밝혀져서 성격의 아름다움이나 신념의 고상함을 우세하게 드러내었다. 물론, 고대소설 중에서도 평민소설들은 비교적 도덕적 기준이 신분의 기준보다 존중되었던 경향도 보여주지만, 일반적으로 영웅소설이나 귀족소설들의 경향은 그렇지 않았다.
작품의 표제도 차차 인물 중심의 고대소설에서 탈피하여 내용 암시를 주는 상징적 제목으로 대체되었고, 그것이 그 작품의 새로움을 나타내는 구실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연재소설 형식으로써, 다양한 사건 제시나 토막 이야기마다 일정한 흥미를 부여하는 점에 있어서도 특색을 보였다. 말하자면, 고대소설의 양식에 의거한 신소설이었지만 상당한 면에서 새로운 창의성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소설의 특징도 이광수 이후의 현대소설과 비교하여 보면, 우연성이 많고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이야기가 우세하고 성격화 과정에서 상투적 경향이 잔존하여 있다고 할 것이다. 특히 많은 작품의 전체적 주제설정이 대체로 권선징악에 흐른 점도 문학사에서 지적되었다. 신소설 작가들이 대부분 전문적인 문학수업을 받지 않은 신문기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성숙된 기교나 창의성의 수준을 크게 기대할 수는 없었으리라고 보인다.

V. 신소설의 전단계 작품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신소설의 첫 작품으로 알려진 바 있는 「혈의 누」(1906)보다도 먼저 신문에 게재된 상당수의 개화기소설이 있었음이 주목된다. 이들은 신소설의 계몽의식이나 신시대의 이념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신소설의 전단계 소설로서 고대소설과 신소설 사이에서 교량적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04년 『대한일보(大韓日報)』에 연재된 「관정제호록(灌頂醍醐錄)」과 1906년 같은 신문에 게재된 「청루의녀전(靑樓義女傳)」 등은 고소설식 서술 · 묘사 및 유교적 도덕관을 드러낸 것으로서 신소설보다는 고대소설에 가까운 면이 많으나, 1906년 『황성신문(皇城新聞)』에 발표된 한문소설 「신단공안(神斷公案)」은 다른 작품과 달리 신소설에로 지향하는 새로운 내용상의 변모가 보인다.
이는 세태비판이 주요 내용이며 관가의 치죄기록(治罪記錄)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묘사도 구체적이고 허구성도 가미되는 등 근대적 문예의 성격을 지향하는 요소들이 주목할 만하다.
또한, 1907년 『황성신문』에 게재된 반아(槃阿)라는 작가의 「몽조(夢潮)」는 개화사상가가 사형을 받고 그 가족이 수난을 겪는 내용으로서, 당시대 사회의식이 명확히 드러난 소설이다.
그리고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거부오해(車夫誤解)」(1905), 「소경과 앉음뱅이 문답」(1905) 등은 문답형의 대화체소설로서 풍자와 반어적 양식, 짙은 시사성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들은 현실 인식에 그 기본을 두고 있으며 잘못된 사회개혁, 내정갈등, 무력한 정부, 부패관료, 외세침투 등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규탄과 국권의식이 나타나 있는바, 신소설로 이어지는 교량적 의미가 충실히 담겨져 있다.
이 밖에도 고대소설의 상투적 형식과 내용을 이어받은 외에 『대한일보』에 연재되었던 일학산인(一鶴散人)의 「일념홍(一捻紅)」 같은 작품은 친일적 개화의식이 제시되어 있어 그 뒤 신소설들의 의식지향을 예고하여 주고 있다.
또한, 『대한매일신보』에 무서명작으로 발표된 「지구성 미래몽(地球星未來夢)」, 1907년 『태극학보(太極學報)』에 게재된 백악춘사(白岳春史)의 「다정다한(多情多恨)」 · 「월하(月下)의 자백(自白)」 · 「마굴(魔窟)」 등도 신소설과 고대소설의 양면성을 포함한 작품으로서 우국경세적(憂國警世的) 주제나 미신타파, 기독교 선교, 부패관료의 비판과 개화기의 새 인간상 제시 등 새로운 주제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전시대의 소설적 구조나 내용을 지니면서도 당시대에 부응할 새 요소들이 점점 증가되어 계몽주의적 특색을 확연히 이루는 신소설이 제작되기에 이른다.

VI. 신소설 작품의 간행
신소설의 작품목록은 1913년 동양서원(東洋書院)에서 계획한 소설총서에 많이 나타나 있는데, 처음에는 모두 40종으로 드러나 있다.
그 뒤 조윤제(趙潤濟)의 『한국문학사(韓國文學史)』에 제시된 68종, [전광용(全光鏞)]](/Article/E0049252) · 송민호(宋敏鎬) · 백순재(白淳在)에 의하여 간행된 『한국신소설전집(韓國新小說全集)』에 드러난 18명의 작가와 49편의 서명작품 및 17편의 무서명작품이 밝혀졌다.
그리고 하동호(河東鎬)의 『신소설연구초(新小說硏究草) 상 · 중 · 하』 에서는 작가 47명, 작품편수 126종으로 가장 많은 개화기소설 목록이 제시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살펴보면 신소설작가는 총 47명, 작품은 126건이 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 및 작가로서는 이인직의 「혈의 누」 · 「은세계」 · 「치악산」(상권) · 「귀의성」, 이해조의 「빈상설」 · 「자유종」 · 「구마검」 · 「화(花)의 혈(血)」, 「화세계(花世界)」 · 「춘외춘(春外春)」 · 최찬식의 「추월색」, 「안(雁)의 성(聲)」 · 「금강문(金剛門)」, 김교제(金敎濟)의 「목단화(牧丹花)」 · 「치악산」(하권) · 「지장보살(地藏菩薩)」 · 「경중화(鏡中花)」 ·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 「공진회(共進會)」, 이상협(李相協)의 「재봉춘(再逢春)」 · 「눈물」(상 · 하)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 작가 및 작품 연구는 임화(林和) · 백철(白鐵) · 전광용 · 조연현(趙演鉉) · 송민호 · 조동일(趙東一) · 이재선(李在銑) · 최원식(崔元植)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런데 앞에 제시하였던 각 목록마다 표기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어 판본고찰이나 작가연구에서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VII. 신소설의 문학사적 가치
신소설은 고대소설의 전통적 맥락을 이어받고 있는데, 고대소설의 구조양식을 지니면서도 새로운 창의가 나타나 묘사 · 문체 · 구성 · 주제의식 및 인간형의 제시에서 고대소설을 많이 극복하고 있다.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견해나 신소설이 전적으로 서구적 영향 밑에서 발생되고 이룩되었다는 견해는 근원적으로 학구적 연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표면적인 인상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소설의 구조에 있어서 우연성이 많았다는 사실은 신소설을 다룬 연구가들에 의하여 많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의 문제는 단순한 합리주의적 사고에서만 논의될 성질이 아니고, 신소설이 제작된 시대의 사회제도나 삶의 의식과 관계지어서 그 당시까지에 도달하였던 소설기법의 관례를 고려하면서 평가되어야 한다.
소설에 있어서 우연은 그것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각에서 결정된다고 할 때, 그 시대가 고대소설에서의 신조의 도움으로 우연을 만들 만큼 사물 이해가 부족하였거나 빈약한 단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합리적 사고의 훈련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세련되고 성숙된 지식인의 그것과 격차가 있었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혈의 누」에서 옥련이가 구출되는 두 번의 우연한 장면을 살펴볼 수 있다. 처음 전쟁터에서 일본인 군의관이 구출해 주는 것과 두 번째 일본에서의 구완서와의 만남 및 그에 의한 구혼, 그리고 미국까지의 유학 부분은 훨씬 더 어색한 우연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어색함은 실상 미국유학을 가는 남녀를 통해서 자율적이며 인격이 존중된 남녀의 연애문제 및 신시대의 학문습득, 선진국의 문물 등을 알려주기 위한 작가의 주제의식에 의하여 선택되고 설정된 소설적 장치로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필연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신소설은 그 우연성이나 비합리성이 소설적 결함으로 지적받기도 하나, 신의 도움보다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삶이 현실적으로 이룩되어 간다는 객관적인 사고와 인식에 기초된 소설의 시도로 근대소설의 선구적 구실을 하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평가되어야 한다.
또, 이야기의 내용이 상투적 유형으로 실천도덕의 덕목을 사건화하였던 옛 소설보다 훨씬 다채롭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묘사해 낸 점은 문학사적으로 높이 평가할 근거가 된다.
삶의 세부적인 면모를 다양하게 묘사하였다는 것은 고대소설의 유형으로부터 탈피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러한 의식은 우리의 삶이 내포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 예컨대 가족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세부적인 마찰과 갈등을 파헤치고 그 해결을 새 시대의 이념에 비추어 비판해 보이는 수많은 신소설 작품들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일정한 시대적 한계로서 문제의 핵심을 깊이 파헤치지 못하고 표면적인 문제로만 다루었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점은 신소설의 성격을 고대소설과 근대적 사실주의소설과의 중간적 형태로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
또한, 이야기의 펼쳐지는 양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짜여지기보다는 작자의 미적 계획에 따라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여 짜낸 사실 역시 중요한 문학사적 가치로 인정받는다. 예컨대 「혈의 누」의 첫 가족이산장면, 「은세계」에서 행복이 깨어져 버린 참상의 장면제시로부터 사건이 시작되는 점 등은 옛 소설에서 안정된 상태의 인물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겪게 되는 고난을 순차적으로 제시한다는 짜임과 큰 차이가 있다.
신소설이 실제적인 삶의 내용과 경험을 존중하려고 한 증거는 이러한 이야기 짜임뿐 아니라 문장에서도 명확히 나타나고 있는데, 한글을 대담하게 한문투 문장에 적용한 것, 소설의 장면에 구어체를 적절히 이용한 점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체의식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내용이 일상어의 테두리에서 문제되고 있다는 증거로서, 생각의 일반화나 보편화를 기약할 수 있는 혁신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문장수사는 고대소설에서와 같이 직유법에 의존하고 있어 직유법적인 사유나 문장의식이 지닌 사물인식의 한계성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한편, 신소설은 개화와 혁신을 표면적인 시대의 과제로 추구하였지만 작품의 내면에서는 항상 오락적 흥미나 사건 자체의 흥미있는 변화에 관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즉, 표면적으로 제시한 그 시대의 민족적 과제는 인정하고 다루었으면서도 그 탐구의 진지성이나 심각성이 흥미나 오락적 감각에 의하여 약화됨으로써 심한 격차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은 이 시기 작가들의 표면적인 의도와 내면적인 어긋남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은 작가들의 생애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처럼 신소설은 문학사의 흐름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한계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혈의 누」 · 「은세계」 · 「치악산」 등이 신소설의 주요한 작품들이지만 민족의 시대적 과제나 주체성을 끝까지 살려내지 못하였고, 반면 「금수회의록」이나 「자유종」 등은 그러한 의식을 제기하였으면서도 제대로 형상화시키지 못하고 관념적 수준에서 주제가 맴돌아 이 시기 신소설들의 각각 다른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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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조(李海朝, 1869년 2월 27일 ∼1927년 5월 11일)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자 소설가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필명은 우산거사(牛山居士)·선음자(善飮子)·하관생(遐觀生)·석춘자(惜春子)·신안생(神眼生)·해관자(解觀子). 호는 동농(東濃)·이열재(怡悅齋). 경기도 포천 출생.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麟坪大君)의 10대 손이며, 이철용(李哲鎔)의 3남 1녀 중 맏아들이다.
어려서 한문 공부를 하여 진사 시험에도 합격했으나 신학문에 관심을 두어 고향인 포천에 청성제일학교(靑城第一學校)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활쏘기와 거문고 타기가 취미였으며, 특히 국악에 조예가 깊었다.
1906년 11월부터 잡지 『소년한반도(少年韓半島)』에 소설 「잠상태(岑上苔)」를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주로 양반가정 여인들의 구속적인 생활을 해방시키려는 의도로 실화(實話)에 근거하여 소설을 썼다.
1907년 대한협회(大韓協會)와 1908년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 등의 사회단체에 가담하여 신학문의 소개와 민중계몽운동에 나서기도 하였고, 한때 『매일신보』 등의 언론기관에도 관계하면서 30여 편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문학적 업적은 크게 작품을 통하여 이룩한 소설적 성과와 번안·번역을 통한 외국작품의 소개, 그리고 단편적으로 드러난 근대적인 문학관의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창작소설을 중심으로 볼 때 「자유종(自由鐘)」(1910)은 봉건제도에 비판을 가한 정치적 개혁의식이 뚜렷한 작품이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신교육의 고취, 사회풍속의 개량 등 개화의식이 두드러져 있다. 형식면에서는 토론소설로서 새로운 신소설의 양식을 시도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작첩·계모형의 가정비극적 주제를 보여주는 「빈상설(鬢上雪)」(1908)·「춘외춘(春外春)」(1912)·「구의산(九疑山)」(1912)이나, 미신타파를 내세운 「구마검(驅魔劍)」(1908), 일반적인 남녀이합(男女離合)에 중점을 둔 「화세계(花世界)」(1911)·「원앙도(鴛鴦圖)」(1911)·「봉선화(鳳仙花)」(1913) 등의 많은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봉건 부패 관료에 대한 비판, 여권신장, 신교육, 개가 문제, 미신타파 등의 새로운 근대적 의식과 계몽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고대소설의 전통적인 구조를 기본바탕으로 엮어나간 전형적인 신소설들이다.
이들은 모두 당시 사회현실을 절실하게 부각시키지 못한 결점은 있으나 개화기라는 역사적 상황을 개인적인 체험 세계 안에서 비교적 포괄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한편, 「화(花)의 혈(血)」·「탄금대(彈琴臺)」의 후기 등에서 보이는 현실주의적인 소설관과 「화의 혈」 후기에서 ‘빙공착영(憑空捉影 : 허공에 의지해 그림자를 잡다.)’으로 표현한 소설의 허구성에 대한 인식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소설의 사회계몽이라는 도덕적 기능과 오락적 기능에 대한 동시적 인식 등은 최초의 근대적인 문학관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 밖에 베르느(Verne,J.)의 「철세계(鐵世界)」(1908) 및 「화성돈전(華盛頓傳)」(1908) 등의 번안 소개, 그리고 「춘향전」·「심청전」·「흥부전」·「별주부전」 등의 판소리계 소설을 각각 「옥중화(獄中花)」(1912)·「강상련(江上蓮)」(1912)·「연(燕)의 각(脚)」(1913)·「토(兎)의 간(肝)」 등으로 개작한 것도 그의 문학적 공로이다.
그 밖에도 「모란병(牡丹屛)」(1911)·「우중행인(雨中行人)」(매일신보, 1913)·「소학령(巢鶴嶺)」(1913)·「비파성(琵琶聲)」(신구서림, 1913)·「홍도화(紅桃花)」(동양서림, 1910) 등 신소설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신소설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소설은 구어체의 특징과 인물·성격의 사실적 묘사, 기자 생활에서 오는 보고체 문장 의식 등이 두드러진다. 특히 고전소설의 구조적 특징과 이념형 인간들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근대적 사상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이인직(李人稙)과 더불어 신소설 확립에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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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종 - 이해조 (현대문학)

평양 기생 강명화전 - 이해조 (새움)

홍도 - 이해조 (범우사)

빈상설 - 이해조 (문학사상사)

이해조, 최찬식 작품집 (글누림)

자유종 - 이해조 (웅진 뿔)

빈상설 - 이해조 (웅진 뿔)

구마검 - 이해조 (웅진 뿔)

자유종 - 이해조 (범우 사루비아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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