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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소나기 - 황순원 (일신서적)

by handaikhan 2023. 4. 2.

 

목차


소나기

독 짓는 늙은이

곡예사
원색 오두기
목넘이 마을의 개
산골 아이
이리도
내 고향 사람들
잃어버린 사람들
닭제
그늘
가랑비
황노인
노새
과부
기러기
황순원의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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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 소나기 (1952년)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초시네 증손녀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는 개울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소년은 개울둑에 앉아 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요행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소녀가 길을 비켜 주었다.

 

다음날은 좀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이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올린 팔과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물속을 빤히 들여다 본다. 얼굴이라도 비추어 보는 것이리라. 갑자기 물을 움켜낸다. 고기새끼라도 지나가는 듯.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래도 재미있는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훌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달린다. 갈밭 사잇길로 들어섰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갈꽃뿐.

이제 저쯤 갈밭머리로 소녀가 나타나리라.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발돋움을 했다. 그러고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됐다.

저쪽 갈밭머리에 갈꽃이 한 옴큼 움직인다. 소녀가 갈꽃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천천한 걸음이었다. 유난히 맑은 가을 햇살이 소녀의 갈꽃머리에서 반짝거렸다. 소녀 아닌 갈꽃이 들길을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소년은 이 갈꽃이 아주 뵈지 않게 되기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문득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내려다보았다. 물기가 걷혀 있었다. 소년은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날부터 좀 더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는 날이 계속될수록 소년의 가슴 한구석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자리잡는 것이었다. 주머니 속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한 어떤 날, 소년은 전에 소녀가 앉아 물장난을 하던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앉아 보았다. 물속에 손을 잠갔다. 세수를 하였다.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검게 탄 얼굴이 그대로 비치었다. 싫었다.

소년은 두 손으로 물속의 얼굴을 움키었다. 몇 번이고 움키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고 말았다. 소녀가 이리 건너오고 있지 않느냐.

숨어서 내 하는 꼴을 엿보고 있었구나. 소년은 달리기 시작했다. 디딤돌을 헛짚었다. 한 발이 물속에 빠졌다. 더 달렸다.

몸을 가릴 데가 있어줬으면 좋겠다. 이쪽 길에는 갈밭도 없다. 메밀밭이다. 전에 없이 메밀꽃내가 짜릿하니 코를 찌른다고 생각됐다. 미간이 아찔했다. 찝질한 액체가 입술에 흘러들었다. 코피였다. 소년은 한 손으로 코피를 훔쳐내면서 그냥 달렸다. 어디선가, 바보, 바보 하는 소리가 자꾸만 뒤따라오는 것 같았다. (p.5-7)

 

"저기 송아지가 있다. 그리 가 보자."

누런 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주는 척 후딱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뒤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너희 예서 뭣들 하느나."

농부 하나가 억새풀 사이로 올라왔다.

송아지 등에서 뛰어내렸다. 어린 송아지를 타서 허리가 상하면 어쩌느냐고 꾸지람을 들을 것 같다.

그런데 나룻이 긴 농부는 소녀편을 한 번 훑어보고는 그저 송아지 고삐를 풀어내면서,

"어서들 집으루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참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뭇잎에서 빗방울 듣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뜻선뜻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비안개 속에 원두막이 보였다. 그리로 가 비를 그을 수밖에.

그러나 원두막은 기둥이 기울고 지붕도 갈래갈래 찢어져 있었다. 그런대로 비가 덜 새는 곳을 가려 소녀를 들어서게 했다. 소녀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깨를 자꾸 떨었다.

무명 겹저고리를 벗어 소녀의 어깨를 싸주었다. 소녀는 비에 젖은 눈을 들어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소년이 하는대로 잠자코 있었다. 그러면서 안고 온 꽃묶음 속에서 가지가 꺾이고 꽃이 일그러진 송이를 골라 발밑에 버린다.

소녀가 들어선 곳도 비가 새기 시작했다. 더 거기서 비를 그을 수 없었다.

밖을 내다보던 소년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수수밭 쪽으로 달려간다. 세워놓은 수숫단 속을 비집어 보더니 옆의 수숫단을 날라다 덧세운다. 다시 속을 비집어본다. 그리고는 소녀 쪽을 향해 손짓을 한다.

수숫단 속은 비는 안 새었다. 그겆 어둡고 좁은 게 안됐다.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다. 그런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소녀가 속삭이듯이, 이리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소녀가 다시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는 꽃묶음이 우그러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비에 젖은 소년의 몸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여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도리어 소년의 몸기운으로 해서 떨리던 몸이 적이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소란하던 수숫잎 소리가 뚝 그쳤다. 밖이 멀개졌다.

수숫단 속을 벗어나왔다. 멀지 않는 앞쪽에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붓고 있었다.

도랑 있는 곳까지 와 보니, 엄청나게 물이 불어 있었다. 빛마저 제법 붉은 흙탕물이었다. 뛰어건널 수가 없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걷어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녀는, 어머나 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그러앉았다.

개울가에 다다르기 전에 가을 하늘은 언제 그랬는가 싶게 구름 한 점 없이 쪽빛으로 개어 있었다. (p.11-14)

 

그날도 소년은 주머니 속 흰 조약돌만 만지작거리며 개울가로 나왔다. 그랬더니 이쪽 개울둑에 소녀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소년은 가슴부터 두근거렸다.

"그동안 앓았다."

알아보게 소녀의 얼굴이 해쓱해져 있었다.

"그날 소나기 맞은 것 때메?"

소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인제 다 낫냐?"

"아직두..."

"그럼 누워 있어야지."

"너무 갑갑해서 나왔다...그날 참 재밌었어...근데 그날 어디서 이런 물이 들었는지 잘 지지 않는다."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본다. 거기에 검붉은 진흙물같은 게 들어 있었다.

소녀가 가만히 보조개를 떠올리며,

"이게 무슨 물 같니?"

소년은 스웨터 앞자락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내 생각해냈다. 그날 도랑 건늘 때 내가 업힌 일 있지? 그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

소년은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저 오늘 아침에 우리집에서 대추를 땄다. 낼 제사 지낼려구..."

대추 한 줌을 내어준다.

소년은 주춤한다.

"맛봐라.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심었다는데 아주 달다."

소년은 두 손을 오그려 내밀며,

"참 알두 굵다!"

"그리구 저, 우리 이번에 제사 지내구 나서 좀 있다 집을 내주게 됐다."

소년은 소녀네가 이사해 오기 전에 벌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윤초시 손자가 서울서 사업에 실패해가지고 고향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고향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게 된 모양이었다.

'왜 그런지 난 이사가는 게 싫어졌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전에 없이 소녀의 까만 눈에서 쓸쓸한 빛이 떠돌았다.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잣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무어 그리 안타까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었다. 그렇건만 소년은 지금 자기가 씹고 있는 대추알의 단맛을 모르고 있었다. (p.14-16)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는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그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히는 걸 가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가 어떨까.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허 참 세상두..."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윤초시댁두 말이 아니어. 그 많은 전답을 다 팔어버리구, 대대로 살아오든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드니, 또 악상꺼지 당하는 걸 보면..."

남포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증손이라곤 기집애 그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애 둘 있든 건 어려서 잃구.."

"어쩌믄 그렇게 자식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두 변변히 못 써봤다드군. 지금 같애서는 윤초시네두 대가 끊긴 셈이지...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든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 달라고..." (p.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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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黃順元, 1915년 3월 26일 ~ 2000년 9월 14일)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본관은 제안(齊安)이고 자(字)는 만강(晩岡)이다

황순원은 1915년 3월 26일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아버지 황찬영(黃贊永)와 어머니 장찬붕(張贊朋)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3.1운동 때 평양 숭덕학교 교사로 재직 중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한 일로 옥살이를 했다. 한때 일제 경찰이 뿌린 서슬을 피하여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데, 1921년 당시 6세 때 가족 전체가 평양으로 이사하고, 1923년 만 8세 때 숭덕소학교에 입학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예체능 교육까지 따로 받으며 자라났다. 1929년에는 정주에 있는 오산중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교장 출신인 남강 이승훈을 만나게 된다.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31년 7월 《동광(東光)》에 실은 〈나의 꿈〉이 등단작이다. 이후 숭실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고, 중학교 시절 거듭 시를 발표하다가 1934년 졸업하고 일본 도쿄로 건너가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입학한다.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 연구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하였고, 이 단체 이름으로 27편의 시가 실린 첫 시집 《放歌》를 간행했다. 1936년 와세다 제2고등학원을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다. 그 해 5월에 두 번째 시집 《骨董品》을 냈다. 이후 시를 더 이상 쓰지 않고 문학 편력이 소설로 넘어간다. 그 첫 작품은 1937년 7월 《創作》 제3집에 발표한 〈거리의 副詞〉이다. 이듬해 10월에 〈돼지系〉를 발표하고, 이 두 작품을 비롯해서 창작 연대가 확실치 않은 다른 11편의 단편을 함께 묶어 그로부터 3년 뒤인 1940년에 《황순원 단편집》(나중에 이 책을 늪』라는 제목으로 고쳐 펴낸다)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단편소설을 주로 쓰며 활동하다가 1942년 이후에는 일본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고향인 빙장리에 숨어 지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채 여러 단편을 썼다. 8.15 광복 이후 황순원은 평양으로 돌아가지만 북조선이 공산화되면서 지주 계급으로 몰리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이듬해 월남했다.
월남 후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한 황순원은 지속적으로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1953년에는 장편 작가로서 그를 인정받게 한 장편 소설 《카인의 후예》를 발표한다. 1957년에는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생활이 안정되면서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더 많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5년 발표한 산문집 《말과 삶과 자유》를 발표할 때까지 왕성한 창작열을 불태우며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2000년 타계할 때까지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았으나 간간이 시작품을 발표하며 말년을 보냈다. 아들 황동규는 시인이자 영문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현재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으며, 소년의 순수한 사랑을 부각시킨 내용의 뮤지컬로도 제작이 되기도 하였다.
2000년 9월 14일에 노환으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자택에서 별세했다(향년 8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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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후예 - 황순원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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