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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권진아 옮김, 시공사)

by handaikhan 2023. 3. 17.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19

 

조지 오웰 - 동물 농장 (1945년)

 

매너 농장 주인 존스 씨는 밤이 되자 닭장은 잠갔지만, 너무 취한 나머지 그만 깜박 잊고 작은 문을 단속하지 않았다. 그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비추며 비틀비틀 마당을 가로질러 뒷문 앞에서 장화를 벗어던진 뒤, 부엌방에 놓인 통에서 마지막으로 맥주를 한 잔 더 따라 마시고 침대로 올라갔다. 존스 부인은 벌써 코를 골고 있었다.

침실 불이 꺼지자마자 농장 건물에서는 온통 부스럭대고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수상 경력에 빛나는 미들화이트 수퇘지 메이저 영감이 간밤에 이상한 꿈을 꿔서 다른 동물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한다는 소식이 낮에 모두에게 퍼졌었다. 존스 씨가 확실히 집에 들어가고 나면 다들 곧장 큰 헛간에 모이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다. 메이저 영감은 농장에서 신망이 높아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면 다들 한 시간 정도 잠을 희생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p.7-8)

 

이제 모세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물들이 다 모였다. 모세는 길든 까마귀로, 뒷문 뒤의 횃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메이저는 모두들 편안히 자리를 잡고 귀를 기울이며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더니, 목청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지들, 내가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는 다들 이미 들었을 게야. 하지만 꿈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먼저 이야기할 게 있거든. 동지들, 내 자네들과 같이 살 날이 몇 달 안 남은 것 같아. 그래서 죽기 전에 내가 얻은 지혜를 자네들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난 오래 살았고, 우리에 혼자 누워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이 있었지. 그래서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이 땅에서의 삶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럼 동지들, 우리 삶의 본질이 뭔가? 인정하자고. 우리 삶은 비참하고 고되고 짧아. 태어나서 그저 숨이 붙어 있을 정도의 음식만 받고 힘이 있는 동물은 마지막 한 방울 힘까지 짜내서 일해야 하지. 그러고는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잔인무도하게 도살되어 버리고. 영국의 동물들은 한 살만 넘어도 행복이나 여유 따위는 몰라. 영국에서는 어떤 동물도 자유롭지 않네. 동물의 삶은 비참하고 굴종적이야. 이게 바로 명백한 진실일세.

하지만 이게 그저 자연의 이치일까?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너무 척박해서 여기 사는 동물들이 버젓하게 살 형편이 안 되는걸까?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네! 영국의 토양은 비옥하고 기후도 좋아서 지금 여기 사는 동물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도 넉넉하게 먹일 수 있어. 우리 농장만 해도 말 열두 마리, 젖소 스무 마리, 양 수백 마리는 먹일 수 있어. 모두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품위 있게 살 수 있다고. 그렇다면 우린 왜 이런 비참한 환경에서 계속 사는 걸까? 우리의 노동이 생산하는 산물 거의 모두를 인간들이 빼앗아 가기 때문일세. 동지들,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바로 여기 있네.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어. 인간. 인간이 우리의 유일한 진정한 적일세. 인간을 없애면 배고픔과 과로의 근본 원인은 영원히 사라지는 거야.

인간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유일한 존재일세. 인간은 유유를 내놓지도 않고, 달걀도 낳지 않고, 너무 약해서 쟁기를 끌지도 못하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빨리 달리지도 못해. 그럼에도 모든 동물의 주인으로 군림하지. 인간은 동물들에게 일을 시키고는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먹이만 돌려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챙겨. 우리의 노동이 땅을 갈고 우리의 똥이 땅을 비옥하게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몸에 걸친 가죽뿐일세. 거기 앞에 앉은 젖소 양반들, 지난해에 우유를 몇천 갤런이나 내놓았나? 튼튼한 송아지를 키우는 데 써야 했을 그 우유는 어떻게 됐나? 한 방울 한 방울 모두가 우리 적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나? 그리고 암탉들, 자네들은 작년에 달걀을 얼마나 낳았나? 그런데 그중 부화해서 닭이 된 게 얼마나 되나? 나머지는 모두 시장에 나가서 존스와 그 가족들에게 돈으로 돌아왔지. 그리고 클로버, 자네가 낳은 망아지 네 마리, 노년에 버팀목이자 기쁨이 되어야 할 그 망아지들은 다 어디 있나? 모두 한 살이 되자마자 팔려 가지 않았나? 자네는 다시는 새끼들을 못 볼 테지. 네 번 해산하고 들판에서 일한 대가로, 보잘것없는 먹이와 마구간 외에 얻은 게 뭐가 있나?

게다가 심지어 이런 비참한 생활조차 제명대로 못 살아. 나야 불평이 없어. 난 운 좋은 축에 드니까. 난 여둘 살이고, 자식이 400마리가 넘어. 그런 게 돼지의 자연스러운 삶일세. 하지만 어떤 동물도 결국에는 잔인한 칼날을 피하지 못해. 거기 앞에 앉은 식용 돼지들. 자네들은 모두 1년 내에 단두대에서 비명횡사하게 될 거야. 우리 모두 그 끔찍한 공포와 만나게 될 거네. 젖소, 돼지, 암탉, 양 할 것 없이 모두들 말이야. 말과 개라고 해서 팔자가 나을 것도 없지. 복서, 근육이 힘을 잃기 무섭게 존스는 폐마 도살업자에게 자넬 팔아치울 거야. 그럼 그자는 자네 목을 따고 끓여서 여우 사냥개 먹이로 주겠지. 개들이 나이가 들어서 이빨이 빠지면 존스는 그 목에 벽돌을 매달아 가까운 연못에 빠뜨려 버릴 테고.

그렇다면 동지들, 우리 삶의 모든 악이 인간의 폭정에서 기인한다는 게 명백하지 않나? 인간을 없애기만 한다면, 우리 노동의 산물은 우리 것이 될 걸세. 하룻밤 사이에 우리는 부유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어. 그렇다면 뭘 해야겠나? 밤낮으로 몸과 마음을 다해 인간 타도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이것이 바로 내가 동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일세. 반란 말이야! 그 반란이 언제 일어날지, 일주일 후가 될지 100년 후가 될지는 알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내 발 밑에 깔린 짚단만큼 확실하게 알고 있어. 조만간 정의는 이루어질 걸세. 동지들, 얼마 안 남은 생애 내내 그 사실을 직시해야 해!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이야기를 자손들에게 전해주게. 승리의 그날까지 후손들이 계속해서 투쟁하도록.

기억하게, 동지들. 절대 결심이 흔들려서는 안 돼. 어떤 말에도 미혹되어서는 안 되네. 인간과 동물의 이해관계는 같아서, 한쪽이 번영하면 다른 쪽도 번영한다는 소리엔 절대 귀를 기울이지 마. 다 거짓말이세. 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할 뿐이야. 그러니 우리 동물들이 투쟁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고 동지애로 뭉쳐야 해. 모든 인간은 적일세. 모든 동물은 동지야."

그 순간 시끌벅적한 소동이 벌어졌다. 메이저가 말하는 동안 커다란 쥐 네 마리가 쥐구멍에서 기어 나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연설을 듣고 있었다. 개들이 갑자기 이들을 알아챘고, 쥐들은 구멍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 덕분에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메이저는 앞발을 들어 소란을 진정시켰다.

"동지들." 그가 말했다. "여기 꼭 정해야 할 문제가 있군. 쥐나 토끼 같은 야생동물들은 우리 친군가 적인가? 투표에 부치세. 이 질문을 회의에 상정하지. 쥐들은 동지요?"

즉시 투표가 진행되었고, 압도적인 다수가 쥐들이 동지라고 동의했다. 반대자는 넷 뿐으로, 개 세 마리와 고양이였고, 고양이는 나중에 알고 보니 양쪽에 다 표를 던졌다. 메이저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네. 다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행동 방식 모두를 증오하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라는 걸 절대 잊지 말게. 두 발로 걷는 건 뭐든 다 적이야.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들은 다 친구고. 또한 인간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인간을 닮아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게. 인간을 타도한 후에도 인간의 악덕을 받아들여서는 안 돼. 어떤 동물도 집에서 살거나 침대에서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장사를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인간의 습성은 모두 악한 걸세.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동물도 다른 동물에게 군림해서는 안 되네. 약하건 강하건, 영리하건 단순하건 간에 우린 모두 형제들이야.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되네. 모든 동물은 평등한 거야.

자, 동지들. 이제 어젯밤 꿈 이야기를 하지. 자세히 묘사는 못 하겠네. 인간이 사라진 후 이 땅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그런 꿈이었어. 하지만 그 꿈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뭔가를 떠올리게 하더군. 여러 해 전, 내가 아직 새끼 돼지였을 때, 어머니와 다른 암퇘지들이 가락과 첫 세 구절밖에 모르는 옛 노래를 부르곤 했었지. 어릴 때는 그 가락을 알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살았어. 그런데 어젯밤에 꿈속에서 그 노래가 다시 기억난 걸세. 게다가 노래 가사도 생각이 났어. 오래전 동물들이 불렀지만 수 세대 동안 잊힌 그 가사를 말일세. 이제 그 노래를 자네들한테 불러주겠네. 동지들. 나는 늙고 목소리는 쉬었지만, 이 곡조를 가르쳐주면 자네들은 더 잘 부를 수 있을 게야. 노래 제목은 <영국의 동물들>일세."

메이저 영감은 목청을 가다듬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말했듯이 목소리는 쉬었지만, 노래는 꽤 잘했다. 노래는 <클레멘타인>과 <라쿠카라차>의 중간쯤 되는 경쾌한 곡조였다.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영국의 동물들이여, 아일랜드의 동물들이여.

모든 나라의 동물들이여,

황금빛 미래에 대한 

내 기쁜 소식을 들으라.

 

그날은 곧 오리니,

압제자 인간들은 타도되고,

영국의 비옥한 들판에는

동물들만 춤추리

 

우리 코에서는 굴레가 사라지고

우리 등에서는 마구가 사라지고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게 되리

무자비한 채찍질도 이제는 없으리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풍요

밀과 보리, 귀리와 건초

토끼풀, 콩, 사탕무가

그날 우리 것이 되리

 

영국의 들판은 환히 빛나고

물은 더 맑아지고

미풍은 더 달콤하게 불어오리

우리가 자유를 얻은 그날

 

그날을 위해 우리는 힘써야 하네

그날이 오기 전에 죽을지라도

젖소와 말, 거위와 칠면조

모두들 자유를 위해 애써야 하네

 

영국의 동물들이여, 아일랜드의 동물들이여

모든 나라의 동물들이여

황금빛 미래에 대한

내 소식을 긴히 듣고 널리 퍼뜨리기를

 

이 노래를 부르자 동물들은 극도로 흥분했다. 메이저가 노래를 끝내기도 전에, 동물들도 알아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가장 멍청한 동물들조차 벌써 곡조와 가사 몇 구절을 외웠고, 돼지와 개처럼 영리한 동물들은 몇 분 만에 전곡을 다 외웠다. 몇 차례 연습을 거친 후 농장 전체에 <영국의 동물들>이 한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젖소들은 음매음매, 개들은 낑낑, 양들은 매매, 말들은 힝힝, 오리들은 꽥꽥거리며 노래했다. 모두들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연달아 다섯 번을 반복해서 불렀다. 중간에 방해가 없었다면 밤새도록 불렀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시끄러운 소름에 존스 씨가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마당에 여우가 들어온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그는 침실 구석에 늘 세워두는 총을 움켜쥐고 어둠 속으로 여섯 번 탄환을 발사햇다. 탄알이 헛간 벽에 박히자 모임은 서둘러 해산됐다. 모두 각자의 잠자리로 내뺐다. 새들은 횃대로 날아 올라갔고, 동물들은 짚단에 자리를 잡았다. 농장 전체는 곧 잠이 들었다. (p.10-1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공산당 선언 - 마르크스 & 엥겔스 (권화현 옮김, 펭귄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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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의 일이었다. 다음 석 달 동안 은밀한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메이저의 연설로 농장의 영리한 동물들은 삶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메이저가 예언한 반란은 언제 일어날지 몰랐고,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일어날 거라 생각할 근거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반란을 준비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했다. 다른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은 당연히 모두가 가장 똑똑한 동물이라고 인정하는 돼지들에게 맡겨졌다. 그중 단연 발군은 스노볼과 나폴레옹이라는 젊은 수퇘지 두 마리로, 존스 씨가 팔 목적으로 키우고 있는 돼지들이었다. 나폴레옹은 덩치가 크고 사납게 생긴 버크셔 수퇘지로, 농장에서 유일한 버크셔종이었는데, 말은 별로 없었지만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스노볼은 나폴레옹보다 쾌활하고 말도 더 잘하고 창의적이었지만, 나폴레옹 만큼 깊이가 있다는 평가는 받지 못했다. 농장의 다른 수퇘지들은 모두 식용 돼지들이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녀석은 스퀼러라는 조그맣고 살찐 돼지로, 동그란 뺨에 반짝거리는 눈, 날카로운 목소리를 가진, 동작이 날랜 녀석이었다. 그는 언변이 아주 뛰어났고, 어려운 문제를 논할 때면 이쪽저쪽으로 깡충깡충 뛰며 꼬리를 휘둘렀는데, 그 모습은 웬일인지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 다른 동물들은 스퀼러라면 검은색도 흰색으로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 셋은 메이저 영감의 가르침을 완전한 사상 체계로 다듬었고, 여기에 동물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p.18-19)

 

결국 반란은 예상보다 훨씬 더 일찍, 더 쉽게 이루어졌다. 과거 존스 씨는 엄한 주인이기는 해도 능력 있는 농부였지만, 최근에는 불운을 겪었다. 소송에서 돈을 잃고 크게 낙심한 나머지 그는 정도를 넘어 술에 빠져들었다. 하루 종일 부엌의 윈저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술을 마시고, 이따금 모세에게 맥주에 적신 빵부스러기를 주며 빈둥거렸다. 일꾼들은 게으르고 부정직해서, 들에는 잡초가 무성해졌고, 건물들은 지붕이 샜으며, 산울타리는 방치되었고, 동물들은 먹이도 제대로 얻어 먹지 못했다. (p.21)

 

칠계명

1.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적이다.

2.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달린 것은 모두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p.26-27)

 

건초를 거둬들이느라 얼마나 고생하고 땀을 흘렀던가! 하지만 그 노고에는 보상이 따랐다. 추수가 희망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일이 힘들 때도 있었다. 농기구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뒷다리로 서야 하는 기구들은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돼지들은 너무도 영리해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 말들은 들판에 관해서라면 구석구석까지 훤했고, 사실 풀베기와 갈퀴질은 존스와 일꾼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돼지들은 실제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동물들을 지휘하고 감독했다. 탁월한 지식을 가졌으니 그들이 지도자 역할을 맡는 것이 당연했다. 복서와 클로버는 스스로 절삭기나 써레를 메고 (물론 이즈음에는 재갈이나 고삐는 필요하지 않았다) 들판을 착실하게 돌고 또 돌았고, 돼지들은 그 뒤를 따라가며 상황에 따라 "힘내시오, 동지!" 또는 "뒤로, 동지!"라고 외쳐댔다. 가장 조그만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물들이 풀을 뒤집고 모으는 일을 했다. 오리와 암탉들까지도 부리에 조그만 풀다발을 물고 왔다 갔다 나르며 태양 아래서 하루 종일 일했다. 결국 그들은 존스와 일꾼들이 보통 걸렸던 시간보다 이틀 더 일찍 추수를 끝냈다. 게다가 역대 본 적 없던 풍년이었다. 손실도 전혀 없었다. 암탉과 오리들이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 한 줄기까지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농장의 어떤 동물도 한 입도 식량을 훔치지 않았다.

여름 내내 농장 일은 시계처럼 정확히 굴러갔다. 행복이 가능하다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던 동물들은 너무도 행복했다. 먹이를 한 입 먹을 때마다 행복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투덜대는 주인이 아까워하며 조금씩 나눠 주는 먹이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위해 생산한 먹이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 사라지자 모두의 몫이 더 많아졌다. 경험한 적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여가 시간도 더 많아졌다. 어려움도 많았다. 예를 들어, 농장에 탈곡기가 없어서 나중에 곡물을 수확할 때는 옛날 방식으로 밟은 다음 입으로 겨를 날려야 했다. 하지만 영리한 돼지들과 엄청난 근육을 가진 복서가 항상 문제를 돌파했다. 모두가 복서를 칭찬했다. 그는 존스가 주인던 시절에도 열심히 일했지만, 이제는 세 마리 몫은 하는 것 같았다. 농장 일 모두를 그의 강인한 어깨로 짊어지고 있는 듯한 날도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밀고 끌었고, 항상 가장 힘든 일이 있는 곳에 있었다. 그는 수평아리 하나에게 부탁해 아침에 다른 동물들보다 30분 일찍 깨워달라고 한 다음,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 가장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곳에서 자발적으로 일을 더 했다. 모든 문제와 난관에 대한 그의 대답은 "내가 더 열심히 할게!"였다. 그가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은 말이었다.

하지만 모두 자기 능력껏 일했다. 예를 들어, 암탉과 오리는 추수 때 떨어진 낟알들을 모아서 5부셸을 건져냈다. 누구도 도둑질을 하지 않았고, 받은 먹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늘 있던 말다툼이나 물어뜯기, 시기심도 거의 사라졌다. 뺀질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는 동물도 없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 사실 몰리는 아침에 잘 못 일어났고 발굽에 돌멩이가 박혔다며 일찍 일을 그만두는 경향이 있기는 했다. 또 고양이도 좀 언짢게 굴었다. 할 일이 있을 때면 고양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들 곧 알아챘다. 녀석은 몇 시간이고 사라졌다가 식사 시간이나 일이 끝난 뒤 저녁때가 되어서야 천연덕스럽게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늘 끝내주는 변명을 늘어놓고 사랑스럽게 가르랑댔기 때문에 나쁜 마음으로 그랬다고는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당나귀 벤자민 영감은 반란 이후에도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영감은 존스 시절과 다름없이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고 추가 작업에 자원하고 나서는 일도 없이 느릿느릿 완고하게 일했다. 반란과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았다. 존스가 없어지고 나니 더 행복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는 그저 "당나귀들은 오래 살지. 자네들 중 누구도 죽은 당나귀를 본 적 없잖나"하고 말했고, 다른 동물들은 이 불가해한 대답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에는 일을 하지 않았다. 아침 식사는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했고, 그 후에는 매주 빠짐없이 거행하는 의식이 있었다. 먼저 깃발 게양식을 했다. 스노볼이 마구실에서 존스 부인이 쓰던 초록색 식탁보를 찾아내 그 위에 흰색으로 발굽과 뿔을 그렸다. 이 깃발이 일요일 아침마다 농장 정원의 깃대에 올라갔다. 깃발이 초록색인 것은 영국의 푸른 들판을 나타내는 것이고 발굽과 뿔은 마침내 인류가 타도될 때 일어날 미래의 동물 공화국을 의미한다고 스노볼은 설명했다. 깃발 게양식이 끝나면 모두들 큰 헛간으로 몰려 들어가 '회의'라고 부르는 총회를 했다. 여기서 다음 주 작업을 계획하고 결정을 내리고 토론을 벌였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늘 돼지들이었다. 다른 동물들은 투표하는 법은 알았지만 스스로 결론을 생각해내지는 못했다.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토론에 가장 활발하게 참여했다. 한쪽이 어떤 의견을 내놓든지 간에 상대편은 백발백중 반대하고 나섰다. 심지어 과수원 뒤편의 조그만 방목장을 일할 나이가 지난 동물들의 요양원으로 하자고 결정했을 때 -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 도 동물별 은퇴 연령을 놓고 격한 논쟁이 오갔다. 회의는 언제나 <영국의 동물들> 합창과 더불어 끝났고, 오후는 오락 시간이었다.

돼지들은 마구실을 자기들의 본부로 정했다. 저녁때면 그들은 여기서 농가에서 가져온 책으로 대장간 일과 목공 등 필요한 기술들을 공부했다. 또한 스노볼은 동물들을 데리고 분주히 동물위원회라는 것을 조직했다. 그는 이 일에 지칠 새 없이 투신했다. 암탉들을 위한 '달걀 생산 위원회', 젖소들을 위한 '깨끗한 꼬리 연맹', 야생 동지 재교육 위원회' ( 이 위원회의 목적은 들쥐와 토끼를 길들이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위원회들이 꾸려졌고, 읽기와 쓰기 교실도 설립했다. 이 계획들은 대체로 실패했다. 예를 들어, 야생동물을 길들이려는 시도는 시작하기 무섭게 망했다. 녀석들은 전과 다름없이 행동했고, 융숭한 대접을 해주면 그저 이를 이용할 뿐이었다. 고양이는 재교육 위원회에 들어가서 한 며칠 동안은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지붕 위에 앉아 있다가, 발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참새들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고양이는 이제 동물들은 동지가 되었으니 원하는 참새는 와서 앞발에 앉아도 좋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새들은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읽기와 쓰기 교실은 대성공이었다. 가을 무렵이 되자 농장 동물들은 모두 어느 정도 글을 깨쳤다. (p.29-34)

 

나폴레옹은 스노볼의 위원회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미 다 자란 동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그 어떤 일보다는 어린것들의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추수 직후 제시와 블루벨이 모두 새끼를 낳아, 건강한 강아지가 아홉 마리 탄생했다. 나폴레옹은 강아지들이 젖을 떼기 무섭게 자기가 교육을 책임지겠다며 어미들에게 데려갔다. 그러고는 강아지들을 마구실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다락에다 올려놓고 철저히 격리시켰다. 농장의 다른 동물들은 곧 강아지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우유가 어디로 갔는지에 관한 수수께끼는 곧 밝혀졌다. 매일 돼지죽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사과가 익어가기 시작하고 과수원 풀밭에는 바람에 떨어진 과일들이 흩어져 뒹굴었다. 동물들은 당연히 이 과일들도 공평학 나눌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돼지들이 먹도록 낙과들을 다 주워서 마구실로 가져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 말에 몇몇 동물들이 투덜거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돼지들은 하나같이 이 일에 동의했다. 심지어 스노볼과 나폴레옹까지 같은 의견이었다. 스퀼러가 다른 동물들에게 필요한 설명을 해줄 임무를 받고 왔다.

"동지들!" 스퀼러가 외쳤다. "설마 우리 돼지들이 이기심과 특권 의식으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사실 우리 중에는 우유와 사과를 싫어하는 돼지들도 많습니다. 나부터도 싫어한다고요. 우리가 이걸 먹는 목적은 오로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우유와 사과에는 (이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동지들" 돼지의 건장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 들어있어요. 우리 돼지들은 정신노동자입니다. 이 농장을 경영하고 조직하는 일이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어요. 우린 밤낮으로 여러분의 안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건 다 여러분을 위해서예요. 우리 돼지들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압니까? 존스가 돌아올 거라고요! 그렇고 말고요, 동지들." 스퀼러는 이쪽저쪽 뛰어다니고 꼬리를 흔들며 거의 애원하듯이 울부짖었다. "존스가 돌아오는 꼴을 보고 싶은 동물은 당연히 아무도 없겠죠?"

이제 동물들이 전적으로 확신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존스의 귀환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관점을 들어대니 그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돼지들의 건강 유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했다. 그래서 우유와 낙과들은 (그리고 다 익은 다음 수확한 사과도) 돼지들만의 몫으로 하자는 데 모두 더 이상의 논쟁 없이 동의했다. (p.35-37)

 

인간들이 쫓겨 나가고 동물들이 스스로의 일을 관장하는 멋진 농장에 대한 소문은 모호하고 왜곡된 형태로 계속 퍼져나갔고, 그해 내내 반란의 물결이 시골을 휩쓸었다. 늘 순했던 황소들이 갑자기 사나워졌고, 양들은 산울타리를 부수고 토끼풀을 먹어치웠으며, 젖소들은 양동이를 걷어찼고, 사냥 말들은 울타리 넘기를 거부하고 등에 탄 사람들을 건너편으로 내동댕이쳤다. 무엇보다도 <영국의 동물들>의 곡조, 게다가 가사까지 사방에 알려졌다. 노래는 놀라운 속도로 퍼졌다. 노래를 들은 인간들은 그냥 웃기는 노래로 치부하는 척했지만 분노를 참지 못했다. 아무리 동물이지만 어떻게 저렇게 한심한 쓰레기 같은 노래를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노래하다 들킨 동물들은 그 자리에서 매질을 당했다. 그래도 노래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빠귀들은 울타리에서 지저귀며 노래했고, 비둘기들은 느릅나무에서 구구 노래했다. 노래는 대장간의 소음과 교회 종소리에도 섞여 들어갔다. 그 소리를 들을 때면 인간들은 그 속에서 다가올 파멸의 예언을 듣고 남모래 벌벌 떨었다. (p.4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어머니 - 고리끼 (최윤락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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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한 지 5분도 안 돼서 인간들은 왔던 길로 수치스럽게 후퇴했고, 거위 떼는 쉿 쉿 거리며 그 뒤를 쫓아가 인간들의 종아리를 쪼아댔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인간들이 도망갔다. 마당에서는 복서가 진흙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마구간 청년을 뒤집으려고 발굽으로 건드리고 있었다. 청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었어." 복서가 구슬프게 말했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편자를 하고 있다는 걸 깜박 잊은 거야.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누가 믿어줄까?"

"감상에 빠지지 마시오, 동지!" 스노볼이 외쳤다. 그의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전쟁은 전쟁이오. 착한 인간은 죽은 인간밖에 없어."

"생명을 빼앗고 싶지는 않아. 심지어 인간의 생명이라도."

복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되풀이해서 말했다. (p.43)

 

1월이 되자 날씨가 혹독하게 추워졌다. 땅은 쇠처럼 딱딱했고, 들판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큰 헛간에서는 회의가 자주 열렸고, 돼지들은 다가올 계절의 작업 계획을 짜느라 분주했다. 다른 동물들보다 월등히 똑똑한 돼지들이 농장 경영 문제를 모두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다들 동의했다. 그 결정이 다수결의 비준을 받아야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스노볼과 나폴레옹 간의 다툼만 없었더라면 이대로 모든 게 잘 돌아갔을 것이다. 이 둘은 이론의 여지가 있기만 하면 사사건건 의견을 달리하고 나섰다. 한쪽에서 보리밭 면적을 넓히자고 제안하면, 상대편에서는 어김없이 귀리밭을 넓히자고 주장했다. 한쪽에서 이런저런 밭은 양배추 농사에 안성맞춤이라고 하면, 상대편에서는 그 땅은 뿌리채소밖에 심을 수 없는 땅이라고 단언했다. 각각 추종자들이 있었고, 격론이 오갔다. 회의에서는 스노볼이 종종 유창한 연설로 다수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나폴레옹이 더 능란하게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는 특히 양들을 잘 다루었다. 최근 양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매매거리며 "네 발 좋아, 두 발 나빠"를 외치는 데 홀딱 빠져 있었고, 그러다가 종종 회의 진행을 방해하기도 했다. 특히 스노볼의 연설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네 발 좋아, 두 발 나빠"가 터져 나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스노볼은 농가에서 찾은 잡지 <농부와 축산업자>의 과월호들을 가지고 면밀히 연구해서 많은 혁신안과 개선안들을 내놓았다. 그는 농수로, 건초 저장, 기본 광재에 박식했고, 모든 동물들이 직접 들판으로 가서 매일 다른 지점에 똥을 누면 운반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복잡한 안도 고안했다. 나폴레옹은 스스로는 아무 기획도 내놓지 않았지만, 스노볼의 안 들은 다 실패할 거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 격렬했던 것은 풍차를 놓고 벌어졌던 논쟁이었다. (p.47-48)

 

풍차 문제로 농장 전체가 분열되었다. 스노볼은 풍차를 만드는 작업이 힘들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돌을 캐내서 벽을 세운 다음 날개를 만들어야 했고, 그다음에는 발전기와 전선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들을 조달할 방법에 대해서, 스노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년이면 모든 작업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그 후에는 노동량이 대폭 절감되어서 동물들은 일주일에 사흘만 일하면 된다는 것이다.

반면 나폴레옹은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식량 증산이며, 풍차에 시간을 낭비하면 모두 굶어 죽을 거라고 주장했다. 동물들은 '스노볼과 주 사흘 일하기에 투표하자"와 '나폴레옹과 꽉 찬 여물통에 투표하자'의 기치 아래 두 파로 갈라졌다. 어느 편도 들지 않은 동물은 벤저민이 유일했다. 그는 먹이가 더 많아진다는 말도, 풍차가 일을 덜어준다는 말도 믿지 않았다. 풍차가 있든 없든, 삶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 즉 안 좋게 - 계속될 거라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풍차 논쟁과 별개로 농장 방어 문제도 있었다. 외양간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농장을 탈환해서 존스를 복위시키려는 인간들의 결연한 시도가 또 있을 게 뻔했다. 패배 소식이 시골 방방곡곡에까지 퍼져서 주변 농장 동물들이 전에 없이 다루기 힘들어졌으니 인간들로선 그럴 이유가 충분했다. 늘 그렇듯이 이 문제에 있어서도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의견이 달랐다. 나폴레옹에 따르면, 동물들이 해야 할 일은 총기를 구해서 사용법을 훈련받는 것이었다. 스노볼은 더 많은 비둘기 떼를 보내 다른 농장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선동해야 한다고 했다. 나폴레옹은 스스로 방어하지 않으면 정복당할 거라고 주장했고, 스노볼은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방어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했다. 동물들은 처음에는 나폴레옹의 말에, 다음에는 스노볼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어느 쪽이 옳은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들은 항상 그때그때 말하고 있는 쪽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드디어 스노볼의 설계가 완성되었다. 다음 일요일 회의 때 풍차 건설을 시작할 것인지 말 것인지 여부가 투표에 부쳐지게 되었다. 동물들이 큰 헛간에 모이자 스노볼이 일어났다. 양들의 울음소리에 간간히 방해받기는 했지만, 그는 풍가 건설을 주장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에는 나폴레옹이 일어나서 응답했다. 그는 풍차는 헛소리이며 아무도 찬성표를 던져서는 안 된다고 굉장히 조용히 말하더니, 곧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채 30초도 발언하지 않았고, 자신이 만든 결과에 거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에 스노볼이 벌떡 일어나 다시 울어 대기 시작하는 양들을 고함을 질러 제압한 다음, 열정적으로 풍차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동물들의 마음은 양쪽으로 거의 똑같이 나뉘어져 있었지만, 스노볼의 웅변이 순식간에 그들을 휩쓸어 몰고 갔다. 그는 동물들의 등에서 지저분한 노동의 짐이 사라진 동물 농장의 청사진을 화려한 언변으로 그려 보였다. 이제 그의 상상은 여물 절삭기와 사탕무 슬라이서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그는 전기로 탈곡기, 쟁기, 써레, 땅 고르는 기게, 수확기, 바인더를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축사에 전등과 냉온수, 전기난로도 공북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연설을 마칠 즈음 투표 결가가 어느 쪽으로 갈지는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나폴레옹이 일어나 스노볼을 괴상하게 흘겨보더니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높은 소리로 낑낑거렸다.

그러자 바깥에서 무시무시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놋쇠 징이 박힌 목걸이를 한 거대한 개 아홉 마리가 헛간으로 달려 들어왔다. 개들은 곧장 스노볼을 향해 돌진했고, 그는 아슬아슬하게 그 자리에서 도망침으로써 개들의 딱 벌린 입을 피했다. 순식간에 그는 문밖으로 나갔고, 그 뒤를 개 떼가 쫓았다. 동물들은 너무 놀라고 공포에 질려 말도 못 한 채 앞다투어 문을 빠져나가 추격 광경을 바라보았다. 스노볼은 길로 이어지는 길쭉한 목초지를 가로질러 뛰고 있었다. 돼지로서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었지만, 개 떼는 꽁무니까지 바싹 따라붙었다. 갑자기 스노볼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잡힐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더 빨리 달렸고 개 떼도 다시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한 녀석이 거의 스노볼의 꼬리를 덥석 물 뻔했지만, 스노볼은 적시에 꼬리를 흔들어 이를 피했다. 스노볼은 박차를 더 가해 개들과의 간격을 얼마간 더 벌린 다음 산울타리에 난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동물들은 공포에 질려 침묵한 채 다시 헛간으로 살금살금 들어왔다. 곧 개 떼가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무도 개들이 어디서 왔는지 상상하지 못했지만, 문제는 곧 풀렸다. 녀석들은 나폴레옹이 어미들에게서 빼앗아 비밀리에 키운 강아지들이었다. 아직 다 자라진 않았지만, 덩치가 커다랗고 인상이 늑대처럼 사나웠다. 개들은 나폴레옹 옆에 딱 붙어 있었다. 녀석들은 다른 개들이 전에 존스 씨에게 살랑대며 꼬리를 흔들었던 것처럼 나폴레옹에게 꼬리를 흔들어댔다.

나폴레옹이 개들을 거느리고, 전에 메이저가 연설했던 약간 높이 솟은 바닥 위로 올라갔다. 그는 이제부터 일요일 아침 회의는 없을 거라고 공표했다. 회의는 불필요하고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농장 운영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그가 주재하고 돼지들로 구성되는 특별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다. 위원회는 비공식적으로 열릴 것이며, 결정 사항은 나중에 동물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동물들은 여전히 일요일 아침에 모여서 깃발에 경례를 하고, <영국 동물들>을 부르고, 그 주의 지시 사항들을 전달받겠지만, 토론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스노볼이 축출당하는 꼴을 보고 이미 충격을 받았음에도, 동물들은 이 발표에 당황했다. 적당한 반박거리를 생각해 낼 수만 있었다면, 몇몇은 항의했을 것이다. 심지어 복서마저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귀를 뒤로 눕히고 이마 갈기를 몇 차례 흔들며 생각을 정리해보려 애썼지만, 결국 어떤 말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몇몇 돼지들은 더 정연하게 생각을 표현했다. 앞줄에 앉아 있던 젊은 돼지 네 마리가 불만에 차서 날카로운 소리로 깩깩거리더니, 넷 다 벌떡 일어나서 한꺼번에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을 에워싸고 앉아 있던 개들이 나지막이 위협적으로 으르렁대자, 돼지들은 입을 딱 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양등리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로 매매거리며 "네 발 좋아, 두 발 나빠!"를 외치기 시작했다. 외침은 거의 15분간이나 계속되었고, 그렇게 토론의 여지는 막혀버렸다. (p.49-5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러시아 혁명 1917-1938 - 쉴라 피츠페트릭 (고광렬 옮김,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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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내내 동물들은 노예처럼 일했다. 하지만 일을 해도 행복했다. 어떤 노고나 희생에도 불평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게으름 피우며 도둑질이나 하는 인간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후대에 올 자손을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이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봄여름 내내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했다. 8월이 되자, 나폴레옹은 일요일 오후에도 일이 있다고 발표했다. 전적으로 자발적 지원에 의해 하는 일이지만, 참가하지 않는 동물들은 식량 배급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었다. 그런데도 몇몇 작업은 끝내지 못하고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작년보다 수확량이 조금 줄어들었고, 밭 두 군데는 초여름에 뿌리채소류를 심어야 하는데 제시간까지 다 갈지 못하는 바람에 씨를 뿌리지도 못했다. 다가오는 겨울은 힘든 시기가 될 게 뻔했다. (p.58)

 

그해 여름 내내, 동물들은 일이 고되긴 해도 궁핍하지는 않았다. 존스 시절보다 더 많이 먹지는 못했다 해도, 적어도 덜 먹지는 않았다. 낭비벽 심한 인간 다섯을 부양할 필요 없이 자신들만 먹여 살리면 된다는 게 어찌나 좋은지, 그것만으로도 다른 여러 가지 부족들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또 동물들이 일하는 방식이 여러모로 더 효율적이고 노동도 덜어줬다. 예를 들어, 김매기 같은 작업은 인간은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 또한 이제는 어떤 동물도 음식을 훔치지 않았기 때문에 경작지와 목초지 사이에 울타리를 칠 필요도 없었고, 덕분에 산울타리와 문을 유지하는 데 드는 수고를 많이 덜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름이 깊어가면서 예상치 못한 여러 물자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등유, 못, 끈, 개 비스킷, 말편자용 쇠가 필요했지만, 농장에서는 만들 수 없는 물품이었다. 나중에는 이런저런 연장들 외에도 종자와 인공 비료가 필요해질 테고, 결국에는 풍차에 들어갈 기계들도 있어야 했다. 이런 물품들을 어떻게 조달해야 할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동물들이 지시를 받으러 모였을 때, 나폴레옹이 새로운 정책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제부터 동물 농장은 이웃 농장들과 거래를 할 것이다. 물론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단지 당장 필요한 물자들을 얻기 위해서다. 풍차 공사에 필요한 것들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건초 더미와 올해 수확한 밀 중 일부를 팔기로 했으며, 나중에 돈이 더 필요하면 계란을 팔아서 보충해야 할 거라고 했다. 윌링던에는 항상 계란 시장이 있으니까, 암탉들은 이를 풍차 건설을 위한 특별 공헌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나폴레옹은 말했다.

또다시 동물들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인간과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 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는 존스를 쫓아내고 나서 처음 연 전승 회의에서 통과된 결의안들 아니던가? 동물들은 그런 결의안을 통과시켰던 일을 기억했다. 아니 적어도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나폴레옹이 회의를 폐지했을 때 항의했던 젊은 돼지 넷이 소심하게 목소리를 높이려다가 개들이 커다란 소리로 으르렁대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이때 평소처럼 양 떼가 "네 발 좋아, 두 발 나빠!"하고 외쳐대기 시작하는 바람에 잠시 맴돌던 거북한 분위기는 사라졌다. 마침내 나폴레옹은 앞발을 들어 조용히 시킨 후 이미 채비는 다 끝났다고 통고했다. 동물들이 인간과 접촉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니 누구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모든 짐은 자신이 다 떠맡겠다는 것이다. 월링던에 사는 변호사인 휨퍼 씨라는 사람이 동물 농장과 바깥세상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으며, 자신의 지시를 받으러 월요일 아침마다 농장에 올 거라고 했다. 나폴레옹은 평소대로 "동물 농장이여, 영원하라!"라고 외치면서 연설을 마쳤고, 동물들은 <영국의 동물들>을 부른 후 해산했다. (p.60-62)

 

인간과의 관계는 전과 같지 않았다. 농장이 번성한다고 해서 인간들이 이제 동물 농장을 덜 미워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도 증오했다. 인간들은 모두 동물 농장이 곧 파산할 거라고, 무엇보다 풍차 건설이 실패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술집에서 만나 그림을 그려가며 풍차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고 장담해다. 혹여 풍차가 완성된다 해도 작동될 리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들은 이미 동물들의 효율적인 일처리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를 보여주는 한 증후는 동물 농장 이름을 제대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여기가 전에는 매너 농장이었는데 운운하지도 않았다. 또한 그들은 존스 편을 들지도 않았다. 존스는 농장을 되찾을 희망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p.63)

 

돼지들이 갑자기 농가로 들어가 그곳을 거처로 삼은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이번에도 동물들은 예전에 그래서는 안 된다는 합의를 했던 기억이 나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도 스퀼러가 그렇지 않다고 납득시켰다. 농장의 두뇌인 돼지들에게는 조용히 일할 곳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돼지우리보다는 집에서 사는 게 지도자 (최근 그는 나폴레옹을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의 품위에도 더 걸맞다는 것이다. 그래도 돼지들이 부엌에서 식사를 하고 거실을 오락실로 사용할 뿐 아니라 침대에서 잔다는 말을 듣자 몇몇 동물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복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로 이를 넘겨버렸지만, 분명히 침대 금지 조항이 있었다고 기억하는 클로버는 헛간 끝에 가서 거기 쓰인 칠계명을 읽어보려 애썼다. 결국 글자 하나하나밖에 읽을 수 없자, 클로버는 뮤리엘을 데려왔다.

클로버가 말했다. "뮤리엘, 네 번째 계명 좀 읽어줘.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는 말 아니야?"

뮤리엘은 힘겹게 또박또박 읽었다.

"어떤 동물도 '침대보가 깔린'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이렇게 적혀 있는데." 마침내 뮤리엘이 말했다.

이상하게도 클로버는 네 번째 계명에 침대보 이야기가 있었다는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벽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그랬었던 게 틀림없다. 마침 그 순간 두세 마리 개들의 호위를 받으며 지나던 스퀼러가 이 모든 일을 제대로 된 관점에서 설명해 줬다.

"동지들, 우리 돼지들이 농가의 침대에서 잔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보네요. 그러면 안 됩니까? '침대'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침대는 잠자리를 뜻할 뿐이에요. 외양간에 깐 짚도 엄밀히 말하면 침대잖아요. 그건 인간의 고안품인 '침대보'를 금지하는 조항이었어요. 우리는 농가 침대에서 침대보를 걷고 담요를 깔고 덮고 잡니다. 그래도 아주 편해요!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편한 건 아니에요. 말씀드리지만, 요즘 우리가 해야 하는 온갖 두뇌 작업을 생각한다면 말이죠. 우리의 휴식을 빼앗지는 않겠지요, 동지들? 우리가 너무 지쳐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기를 바라지는 않겠지요? 설마 존스가 돌아오기를 바라지는 않겠지요?"

동물들은 당장 잘 알았다며 그를 안심시켰고, 돼지들이 농가 침대에서 자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이제부터 돼지들은 다른 동물보다 한 시간 늦게 일어난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이 일에 대해서도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p.64-65)

 

혹독한 겨울이었다. 폭풍우에 이어 진눈깨비와 눈이 내렸고, 그 후에는 서리가 단단히 얼어서 2월까지도 녹지 않았다. 동물들은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풍차를 다시 지었다. 바깥세상이 자신들을 지켜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풍차가 제때 완성되지 않으면 시기하던 인간들은 환호하며 의기양양해할 것이다.

악의에 찬 인간들은 풍차를 망가뜨린 게 스노볼이라는 걸 안 믿는 척했다. 풍차가 무너진 것은 벽이 너무 얇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처럼 18인치가 아니라 3피트 두께로 벽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즉 돌을 훨씬 더 많이 모아야 했다. 오랫동안 채석장에 눈 더미가 쌓여 있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눈이 오지 않는 혹한의 날씨가 이어지자 약간의 진척이 있었지만, 일이 지독하게 고됐고 동물들은 전처럼 희망을 갖지 못했다. 늘 추웠고 대개 배까지 고팠다. 복서와 클로버만이 용기를 잃지 않았다. 스퀼러가 봉사의 기쁨과 노동의 긍지에 대해 멋진 연설을 했지만, 동물들은 복서의 힘과 "내가 더 열심히 하겠어!'라는 한결같은 외침에 더 힘을 얻었다.

1월이 되자 식량이 부족해졌다. 곡식 배급이 급속이 줄었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감자가 더 배급될 거라는 발표가 나왔다. 하지만 짚을 충분히 덮지 않은 바람에 저장처의 감자 대부분은 얼어 있었다. 감자는 푸석푸석해지고 변색되어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동물들은 며칠씩 여물과 사탕무만 먹어야 했다. 굶어 죽을 게 뻔해 보였다.

이런 사실은 바깥세상에는 절대 숨겨야만 했다. 풍차가 무너지자 용기백백한 인간들은 동물 농장에 대해 새로운 거짓말들을 지어내고 있었다. 또다시 동물들이 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느니, 항상 싸움질을 하며 서로 잡아먹고 새끼를 죽인다느니 하는 소리들이 돌아다녔다. 나폴레옹은 식량 사정에 관한 현실이 알려지면 어떤 나쁜 결과가 나타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휨퍼 씨를 이용해서 정반대 이미지를 퍼뜨리기로 했다. 지금까지 동물들은 휨퍼가 매주 방문할 때 거의 혹은 전혀 접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몇몇 동물들, 주로 양들을 뽑아서 그가 듣는 데서 배급이 늘어났다고 슬쩍 말을 흐리도록 지시했다. 뚀 나폴레옹은 창고에 있는 거의 빈 저장통에 모래를 가득 채운 뒤 그 위에 남은 곡물과 곡식 가루를 덮으라고 명령했다. 그러고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휨퍼를 창고로 데려와서 저장통을 슬쩍 보게 했다. 그는 속아 넘어갔고, 동물 농장은 식량이 부족하지 않다고 바깥세상에 계속해서 알렸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1월 말이 되자 어디서 곡식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다. 이 무렵 나폴레옹은 바깥에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문마다 사나운 개들이 지키고 있는 농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바깥에 나타날 때면 개 여섯 마리의 호위를 받으며 격식을 차렸고, 그를 둘러싼 개들은 누가 다가가기만 하면 으르렁댔다. 일요일 아침 회의에 조차 자주 빠졌지만, 지시는 다른 돼지를 통해서 내렸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주로 스퀼러였다. (p.69-71)

 

어느 일요일 아침 스퀼러는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한 암탉들에게 달걀을 내놓으라고 공지했다. 나폴레옹은 휨퍼를 통해 매주 달걀 400개를 팔기로 계약했다. 그 돈이면 여름이 와서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농장이 돌아가게 할 곡물과 곡식 가루를 살 수 있었다.

이 소식을 듣자 암탉들은 목청 높여 마구 항의했다. 이러한 희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긴 했지만, 정말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 막 봄에 부화시킬 알들을 모으고 있던 차라, 지금 달걀을 가져가는 것은 살해 행위라고 반대했다. 존스가 추방한 이후 처음으로 반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암탉들은 흑색 미노르카종 젊은 암탉 셋의 지휘 아래 나폴레옹의 바람을 꺾기 위해 결연히 힘썼다. 저항 방법은 서까래로 날아올라 거기서 알을 낳아 바닥에 떨어뜨려 산산조각 나게 하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신속하게 무자비하게 조치를 취했다. 그는 암탉들의 식량 배급을 중지 시켰고, 그들에게 낟알 하나라도 가져다주는 동물들은 모두 사형에 처하겠다고 발표했다. 명령이 지켜지는지 개들이 감시했다. 암탉들은 닷새간 버티다가 항복하고 둥지인 상자 안으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암탉 아홉 마리가 죽었다. 그들은 과수원에 묻혔고, 콕시디아증으로 죽었다는 발표가 나갔다. 휨퍼는 이 일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고, 달걀은 제시간에 인도되었다. 식료품점 트럭이 일주일에 한 번 농장에 와서 달걀을 가져갔다. (p.71-72)

 

나폴레옹은 단호하게 서서 청중을 둘러보더니 날카롭게 꽥꽥거렸다. 순식간에 개들이 달려 나와, 돼지 네 마리의 귀를 물고 나폴레옹의 발치로 질질 끌고 갔다. 돼지들은 고통과 공포로 깩깩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돼지들의 귀에서 흐르는 피 맛을 본 개들은 잠시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중 세 마리가 복서에게 달려들었다. 복서는 달려드는 개들을 보더니 커다란 발굽을 들어 공중에서 한 마리를 낚아채 바닥에 짓눌렀다. 개는 깨갱거리며 자비를 구했고, 다른 두 마리는 꼬리를 내리고 달아났다. 복서는 개를 밟아 죽여야 할지 놔줘야 할지 나폴레옹을 바라보며 답을 구했다. 나폴레옹은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개를 놓아주라고 날카롭게 명령했다. 복서가 발굽을 들자 개는 멍이 든 채 울부짖으며 도망갔다.

소란은 곧 가라앉았다. 돼지 네 마리는 죄의식이 가득한 얼굴로 덜덜 떨며 기다렸다. 나폴레옹은 그들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명령했다. 나폴레옹이 일요일 회의를 폐지했을 때 항의했던 바로 그 돼지들이었다. 더 닦달하지 않아도 그들은 스노볼이 추방된 이후 계속해서 은밀히 접촉했노라고, 그와 공모해서 풍차를 무너뜨렸으며, 동물 농장을 프레더릭 씨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했다고 자백했다. 또 스노볼이 지난 몇 년 동안 존스의 비밀 첩자였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자백을 마치자 개들이 곧장 목을 물어뜯었다. 나폴레옹은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또 자백할 게 있는 동물이 있느냐고 물었다.

달걀 반란을 주모했던 암탉 세 마리가 앞으로 나오더니, 스노볼이 꿈에 나타나서 나폴레옹의 명령에 반항하도록 선동했다고 말했다. 그들 역시 처형당했다. 다음으로는 거위 한 마리가 앞으로 나와 작년 추수 때 곡식 이삭 여섯 개를 몰래 감췄다가 밤에 먹었다고 자백했다. 다음에는 양 한 마리가 나와 식용 옹달샘에 오줌을 눴다고 털어놓았다. 스노볼이 시켰다는 것이다. 또 다른 양 두 마리는 나폴레옹의 열렬한 추종자인 늙은 숫양이 감기로 고생할 때 모닥불 주위에서 계속 뒤를 쫓아 돌고 또 돌고 해서 죽게 했노라고 자백했다. 모두 그 자리에서 학살당했다. 그렇게 자백과 처형이 계속되었다. 나폴레옹의 발치에는 시체 더미가 쌓였고, 피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존스가 추방된 이후로 없던 일이었다.

모든 게 끝나자, 돼지와 개를 제외한 동물들은 무리 지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모두들 비참함에 몸을 떨었다. 스노볼과 내통한 동물들의 배신, 그리고 방금 목격한 무자비한 보복, 둘 중 어느 것이 더 충격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끔찍한 유혈 참사가 종종 벌어지기는 했지만, 이번은 동물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 훨씬 끔찍하게 느껴졌다. 존스가 농장을 떠난 후 오늘까지 동물이 다른 동물을 죽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쥐 한 마리도 죽임을 당한 적 없었다. 동물들은 반쯤 지은 풍차가 서 있는 작은 언덕으로 올라가서, 추위를 피해 옹기종기 붙듯이 나란히 엎드렸다. 클로버, 뮤리엘, 벤저민, 젖소들, 양 떼, 거위와 암탉들 - 나폴레옹이 소집 명령을 내리기 직전 갑자기 사라진 고양이만 빼고 다 있었다. 한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복서만 서 있었다. 그는 긴 검은 꼬리로 옆구리를 철썩철썩 때리고 가끔 놀란 듯이 히힝 울며 초조하게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난 정말 모르겠어. 우리 농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니 지금도 못 믿겠어. 분명 우리가 뭔가 잘못해서겠지. 내가 보기에, 해결책은 더 열심히 일하는 거야. 지금부터 나는 아침에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나겠어."

그러고는 터벅터벅 채석장으로 향했다. 채석장에 도착한 그는 돌을 연속 두 더미 모아 풍차까지 다 옮겨놓고서야 자러 갔다.

동물들은 클로버를 둘러싸고 아무 말 없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이 엎드려 있는 언덕에서는 시골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동물 농장도 대부분 다 보였다. 큰길까지 길게 뻗은 목초지, 건초용 풀밭, 방적 공장, 옹달샘, 어린 밀이 빽빽이 자란 초록색 밭, 농가 건물의 빨간 지붕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맑은 봄날 저녁이었다. 봉우리들이 터지기 시작한 산울타리와 풀밭이 비스듬한 저녁 햇살에 물들었다. 농장이 이렇게 멋지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저곳이 자신들의 농장이라는 것, 그 구석구석 모두가 자신들의 소유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클로버는 언덕을 내려다보면서 눈물지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몇 년 전 인간을 몰아냈을 때 목표로 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메이저 영감이 처음으로 반란을 선동하던 그날 밤,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이런 공포와 처형 장면이 아니었다. 자신이 상상한 미래의 모습은 모든 동물들이 배고픔과 채찍질에서 해방되어 능력껏 일하며 모두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였다. 메이저 영감이 연설하던 밤 자기 앞다리로 어미 잃은 오리 새끼들을 지켜줬던 것처럼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였다. 그 대신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 지금 그들이 사는 세상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사납게 으르렁대는 개 떼가 사방에 돌아다니고, 동지가 충격적인 죄를 고백한 후 갈가리 찢기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곳이었다. 클로버는 반란이나 불복종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 해도 존스 시절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인간이 되돌아오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것을 클로버는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충성하고, 열심히 일하고, 주어진 지시 사항들을 수행하고, 나폴레옹의 지도에 따를 작정이었다. 그럼에도, 자신과 다른 모든 동물들이 바라고 노력한 건 이런 것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러자고 풍차를 세우고 존스의 총알에 맞선 게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능력은 없었지만 이것이 클로버의 생각이었다.

결국 클로버는 <영국의 동물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표현할 수 없는 말 대신 이 노래가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위의 다른 동물들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다들 세 번이나 노래했다. 그들은 아름답게 불렀지만, 노래는 전과 달리 느릿느릿하고 구슬펐다.

세 번째로 노래를 막 마쳤을 때, 스퀼러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분위기를 풍기며 다가왔다. 그는 나폴레옹 동지의 특별 포고에 의해 <영국의 동물들>은 폐지되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은 금지라는 것이다. 

동물들은 깜짝 놀랐다.

"왜?" 뮤리엘이 물었다.

"이제는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지." 스퀼러는 딱딱하게 말했다. "<영국의 동물들>은 반란가였어요. 하지만 이제 반란은 완성되었습니다. 오늘 오후 배신자들의 처형이 반란의 마지막 조처였죠. 이제 내부와 외부의 적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영국의 동물들>로 우리는 미래에 올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었죠. 하지만 그 사회는 이제 이루어졌습니다. 이 노래는 아무 쓸모가 없어요."

겁이 나긴 했지만 몇몇 동물은 항의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양들이 평소처럼 "네 발 좋아, 두 발 나빠"를 외치기 시작했고, 그 소리가 몇 분 동안이나 계속되면서 논의는 끝나버렸다. (p.77-82)

 

며칠 후 처형으로 인한 공포가 잦아들자, 몇몇 동물들은 여섯 번째 계명이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였다는 걸 떠올렸다. 아니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돼지나 개가 듣는데서는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동물들을 처형한 것은 게명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로버는 벤저민에게 여섯 번째 계명을 읽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늘 그렇듯이 벤저민이 그런 문제에 끼어들기를 거부하자 뮤리엘을 데려왔다. 뮤리엘이 계명을 읽어주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물들의 기억 속에는 '이유 없이'라는 구절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어쨌거나 계명을 위반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스노볼과 한통속이 된 배반자들을 죽이는 것은 분명 충분한 이유가 되니 말이다. (p.83-84)

 

이제는 모든 지시 사항들이 스퀼러나 다른 돼지를 통해 내려왔다. 나폴레옹이 동물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2주에 한 번도 되지 않았다. 등장할 때는 수행견들뿐만 아니라 검은 수평아리도 거느리고 나왔는데, 수평아리는 앞장서서 행진하다가 나폴레옹이 연설하기 전에 "꼬끼오" 하고 커다른 소리를 내질러 일종의 나팔수 노릇을 했다. 농가 안에서도 나폴레옹은 다른 돼지들과 방을 따로 쓴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는 돼지 두 마리의 시중을 받으며 혼자 식사하고, 거실 유리 찬장에 있던 크라운 더비 식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 매년 두 번의 기념일 외에 나폴레옹의 생일에도 축포를 쏜다는 발표가 나왔다. 

나폴레옹은 이제 그냥 '나폴레옹'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언제나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지'라고 격식을 갖춰 호명되었다. 돼지들은 그에게 '모든 동물의 아버지', '인간들의 공포의 대상', '양 떼의 보호자', '오리들의 친구' 같은 이름들을 붙여주는 것을 좋아했다. 연설을 할 때면 스퀼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폴레옹의 지헤와 선한 마음, 사방의 모든 동물들에 대한 깊은 사랑에 대해 언급했다. 아직도 다른 농장에서 무지와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불행한 동물들에 대한 사랑은 특히 남달랐다. 모든 성취와 행운은 나폴레옹 덕으로 돌리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암탉이 다른 암탉에게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지의 영도로 엿새 동안 알을 여섯 개 낳았어"라고 말하거나, 샘에서 물을 마시던 젖소 두 마리가 "나폴레옹 동지의 영도 덕분에 물맛이 어찌나 좋은지!" 하고 감탄하는 소리들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p.84-8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독재자가 되는 법 - 프랑크 디쾨터 (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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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에게 가해지는 이런 짓거리들을 들을 때마다 동물들은 분노로 피가 끓었다 .때로 그들은 단체로 핀치필드 농장을 공격해서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들을 해방시키도록 허락해달라고 법석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스퀼러는 성급한 행동을 피하고, 나폴레옹 동지의 전략을 믿으라고 충고했다.

그럼에도 프레더릭에 대한 반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나폴레옹은 헛간에 나타나 자신은 프레더릭에게 목재를 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다고 설명했다. 그따위 악당과 거래를 하는 것은 자신의 품위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바깥세상에 반란 소식을 퍼뜨리는 임무를 맡고 있는 비둘기들에게는 폭스우드 농장에는 발도 들이지 말 것이며, "인간에게 죽음을" 이라는 예전 구호 대신 "프레더릭에게 죽음을" 이라는 구호를 쓰라고 명령했다. (p.88)

 

나폴레옹도 개들과 수평아리의 호위를 받으며 와서 완성된 풍차를 시찰했다. 그는 동물들의 위업을 치하하고, 이를 '나폴레옹 풍차'로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이틀 후 동물들은 헛간에서 열리는 특별 회의에 소집되었다. 나폴레옹이 프레더릭에게 목재를 팔았다고 발표하자, 동물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일 프레더릭이 보낸 마차들이 와서 목재를 실어 갈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내내 필킹턴과 우호적으로 지내는 척하면서 사실 나폴레옹은 은밀히 프레더릭과 거래를 했던 것이다. (p.89-90)

 

며칠 후 돼지들은 농가 지하실에서 위스키 통을 발견했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는 지나쳤던 물건이었다. 그날 밤 농가에서는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렸고, 그 속에는 놀랍게도 <영국의 동물들> 가락도 섞여 있었다. 9시 반쯤 존스 씨의 낡은 중산모를 쓴 나폴레옹이 뒷문에서 나와 마당을 마구 뛰며 돌다가 다시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목도되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농가에는 무거운 고요가 내려앉아 있었다. 돼지 한 마리도 얼씬대지 않았다. 9시가 다 되어서야 스퀼러가 나타났다. 그는 멍한 눈에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는 어느 모로 봐도 중병이라도 걸린 듯한 모습으로 기운 없이 천천히 걸었다. 그러고는 동물들을 소집하더니 끔찍한 소식이 있다고 말했다. 나폴레옹 동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비탄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농가 문밖에는 짚단이 깔렸고, 동물들은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그들은 눈물을 그렁거리며 지도자가 떠나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서로에게 질문했다. 스노볼ㅇ리 어찌어찌 용케 나폴레옹의 음식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돌았다. 11시에 스퀼러가 나오더니 또 다른 발표를 했다. 나폴레옹 동지가 이승에서 마지막 조치로 준엄한 법령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사형에 처한다는 법령이었다.

하지만 저녁 무렵이 되자 나폴레옹은 좀 나아진 듯했고, 다음 날 아침 스퀼러는 그가 잘 회복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p.97)

 

그러나 며칠 후 뮤리엘은 칠계명을 읽다가 동물들이 잘못 기억하는 계명을 하나 더 발견했다. 다섯 번째 계명은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모두 잊어버렸지만 거기에는 한 단어가 더 있었다. 사실 그 계명은 "어떤 동물도 '지나치게'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였다. (p.98)

 

그러는 동안도 생활은 힘겨웠다. 겨울은 작년과 다름없이 추웠고, 식량은 훨씬 모자랐다. 또 돼지와 개를 제외한 모든 동물들의 배급량이 줄었다. 지나치게 공평한 배급은 동물주의 원칙과 맞지 않을 거라고 스퀼러는 설명했다. 하여튼 그는 겉으로는 어떻게 보이든지 간에 동물들이 실제로는 식량이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전혀 어렵지 않게 증명해 보였다. 당분간은 배급량을 재조정 (스퀼러는 늘 '축소'대신 '재조정'이라는 말을 썼다)할 수밖에 없지만, 존스 시절과 비교하면 사정이 엄청나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는 새된 소리로 재빨리 숫자들을 읽으며, 존스 시절보다 귀리, 건초, 순무를 더 많이 생산했고, 노동시간이 짧아졌으며, 식수의 질도 좋아졌고, 수명은 길어졌으며 새끼들의 생존율이 높아졌고, 우리에는 짚이 많아졌고 벼룩에게도 덜 물린다고 조목조목 증명했다. 동물들은 그의 말을 모두 믿었다. 사실 그들은 존스와, 그가 의미하는 모든 것들을 거의 희미하게 잊어버렸다. 요즘 생활이 힘들고 부족하다는 것, 종종 배가 고프고 추우며, 자지 않을 때면 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예전에는 더 형편없었다. 그렇게 믿는 게 좋았다. 게다가 그 시절에 그들은 노예였지만 지금은 자유로웠고, 스퀼러가 잊지 않고 강조하듯이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이제는 먹여야 할 입도 훨씬 늘었다. 가을에 암퇘지 네 마리가 동시에 새끼를 낳아서, 모두 서른한 마리의 새끼 돼지들이 태어났다. 새끼 돼지들은 얼룩덜룩했고, 농장에 수퇘지라고는 나폴레옹뿐이니 아버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벽돌과 목재를 사들인 후 농가 정원에 교실을 짓는다는 발표가 나왔다. 당분간은 나폴레옹이 농가 부엌에서 직접 새끼 돼지들을 가르쳤다. 그들은 정원에서 운동을 했고, 다른 새끼 동물들과는 어울려선 안 된다고 교육받았다. 돼지와 다른 동물이 길에서 마주치면 다른 동물이 비켜서야 한다는 규칙이 제정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또 모든 돼지들은 지위 불문하고 일요일에 꼬리에 초록색 리본을 매는 특혜도 누리게 되었다.

농장의 한 해 농사는 꽤 성공적이었지만, 돈은 여전히 부족했다. 교실을 지을 벽돌, 모래, 석회를 구입해야 했고, 풍차에 들어갈 기계 값을 모으기 위해 다시 저축을 시작해야 했다. 농가에서 쓸 등잔용 기름과 초, 나폴레옹의 식탁에 올릴 설탕(그는 살찐다는 이류로 다른 돼지들에게는 설탕을 금지했다). 그외 도구와 못, 끈, 석탄, 철사, 고철, 개 비스킷 같은 소모품들도 필요했다. 그래서 건초 자투리와 감자 일부를 팔고, 달걀 계약도 일주일에 600개로 늘려서, 그해에 암탉들은 암탉 숫자를 유지할 만큼도 병아리를 품지 못했다. 12월에 줄어든 배급량은 2월에 다시 줄어들었고, 기름 절약을 위해 우리에 등을 켜는 것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돼지들은 편안하게 사는 것 같았고, 사실 체중도 늘었다. 2월 말의 어느 오후, 동물들이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짙고 강한 맛 좋은 냄새가 마당으로 퍼져나갔다. 그 냄새는 존스 시절에는 쓰지 않던, 부엌 뒤쪽의 조그만 양조장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건 보리를 찌는 냄새라고 말했다. 동물들은 걸신들린 듯 킁킁거리며 저녁밥으로 따뜻한 엿기름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했다. 하지만 따뜻한 엿기름은 나오지 않았고, 다음 일요일이 되자 앞으로 모든 보리는 돼지들 전용으로 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과수원 뒤편의 들판에는 이미 보리씨가 뿌러졌다. 돼지들은 모두 매일 맥주 1파인트를 배급받는다는 소식이 금세 새어 나왔다. 나폴레옹은 반 갤런씩, 그것도 항상 크라운 더비 수프 접시에 담아서 마신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곤궁을 견뎌야 해도, 요즘 생활은 전보다는 훨씬 더 위엄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 어려움은 어느 정도 상쇄되었다. 노래도 더 많이 부르고, 연설도 더 많이 하고, 행진도 더 많이 했다. 나폴레옹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동물 농장의 투쟁과 승리를 치하나는 '자발적 시위'라는 것을 하라고 지시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동물들은 일을 멈추고 군대식 대열을 갖추어 농장 구내를 돌며 행진했다. 돼지들이 앞장서고, 그 뒤에는 말, 소, 양, ,가금류 순으로 섰다. 개들은 행렬의 측면을 지켰고, 맨 앞에는 나폴레옹의 검은 수평아리가 행진했다. 복서와 클로버는 항상 발굽과 뿔 그림이 있고 "나폴레옹 동지여, 영원하라!" 라는 말이 적힌 초록색 깃발을 함께 들고 행진했다. 그 후에는 나폴레옹을 찬양하며 쓴 시들의 암송이 이어졌고, 스퀼러가 최근 식량 생산량 증가에 대한 세부 사항들을 발표하는 연설을 했다. 때로는 축포를 쏘기도 했다. 자발적 시위라거나 추위에 오래 서 있는 게 힘들다느니 하며 불평하면(몇몇 동물은 돼지나 개가 주위에 없을 때면 가끔 불평했다), 어김없이 양들이 "네 발 좋아, 두 발 나빠!"라고 커다랗게 소리쳐서 입을 막았다. 하지만 대체로 동물들은 이런 축하 행사를 좋아했다. 자신이 스스로의 주인이며, 스스로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동물들은 노래아 행진, 스퀼러의 숫자들, 우레 같은 총소리, 수평아리의 울음소리, 펄럭이는 깃발로 허기진 배를 잊을 수 있었다. 적어도 잠시 동안은. (p.100-10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파수꾼 - 이강백 (지만지)

우신예찬 - 에라스무스 (김남우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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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몇 년 동안 안 보이던 까마귀 모세가 돌연 농장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아무 일도 안 했고, 언제나처럼 슈거캔디 산 타령을 했다.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검은 날개를 퍼덕이며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한 시간이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동지들, 저 위엔 말이지." 그는 커다란 부리로 엄숙하게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위, 저기 보이는 검은 구름의 반대편에 슈거캔디 산이 있어. 우리 불쌍한 동물들이 영원히 일하고 쉴 수 있는 행복한 나라 말이야!" 그는 심지어 한 번은 아주 높이 날아 올라갔다가 그곳에 가본 적도 있으며, 거기서 끝없는 토끼풀 들판과 아마인 케이크, 각설탕이 자라는 산울타리를 봤다고 주장했다. 많은 동물이 까마귀의 말을 믿었다. 동물들은 생각했다. 지금의 삶은 허기지고 고단하니, 다른 어딘가에 더 나은 세상이 있다면 옳고 공정하지 않을까?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모세를 대하는 돼지들의 태도였다. 돼지들은 까마귀의 슈거캔디 산 이야기는 다 헛소리라고 경멸하며 단언했지만, 일도 안 하는 그에게 매일 맥주 1질씩이나 주면서 농장에서 살게 해줬다. (p.104-105)

 

농장의 동물 절반이 풍차가 있는 언덕으로 뛰어갔다. 거기 복서가 수레 굴대를 맨 채 목을 죽 빼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눈에 생기가 없고, 옆구리는 땀범벅이었다. 입에서 한 줄기 피가 가느다랗게 흘렀다. 클러버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복서! 괜찮아요?" 클로버가 울부짖었다.

"폐 때문이야." 복서는 힘없는 소리로 대답했다. "상관없어. 내가 없어도 다들 풍차를 완성할 수 있을 거야. 돌이 꽤 많이 쌓였으니까. 어쨌거나 난 이제 한 달밖에 안 남았잖아. 솔직히 말하면 은퇴를 많이 기대하고 있었어. 어쩌면 벤저민도 늙었느니 같이 은퇴해서 서로 벗하게 해주겠지."

"당장 도움을 구해야 해." 클로버가 말했다. "누가 뛰어가서 스퀼러에게 상황을 좀 알려."

다른 동물들은 즉시 스퀼러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농가로 달려갔다. 클로버와 벤저민만 남았다. 벤저민은 복서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긴 꼬리로 파리 떼를 쫓아주었다. 15분쯤 지난 후 스퀼러가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타났다. 그는 나폴레옹 동지도 농장에서 가장 충실한 일꾼이 이런 불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걱정하고 있으며, 윌링던의 병원에 복서를 보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벌써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동물들은 마음이 좀 편치 않았다. 몰리와 스노볼 외에 농장을 떠난 동물도 없었고, 아픈 동지를 인간의 손에 맡긴다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스퀼러는 농장에서보다 윌링던의 수의사가 복서의 병을 더 잘 치료해줄 거라며 그들을 쉽게 설득시켰다. 약 30분 후, 복서는 약간 기운을 차리고 힘겹게 일어나더니 절룩거리며 우리로 돌아갔다. 클로버와 벤저민이 새로 짚을 깔아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다음 이틀 동안 복서는 우리에 남아 있었다. 돼지들은 욕실의 약장에서 찾은, 분홍색 약이 든 커다란 약병을 보냈고, 클로버는 복서에게 하루 두 번씩 식후에 약을 먹였다. 저녁이면 클로버는 복서의 우리에 누워서 말벗을 해주었고, 벤저민은 파리를 쫓아주었다. 복서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말라고 했다. 잘 회복하면 3년쯤은 더 살 수도 있을 테고, 넓은 목초지 한 귀퉁이에서 보낼 평온한 나날들이 기대된다고 했다. 처음으로 공부하고 하고 정신을 계발할 여유 시간도 갖게 될 것이었다. 그는 남은 글자 스물두 개를 배우며 여생을 보낼 작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벤저민과 클로버는 일이 끝난 후에야 복서 곁에 있을 수 있었고, 짐차가 그를 데리러 왔을 때는 한낮이었다. 동물들은 돼지 한 마리의 감독하에 순무 밭의 잡초를 뽑고 있다가, 벤저민이 목이 터져라 울어대며 동물 건물 쪽에서 달려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벤저민이 흥분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사실 그가 뛰는 걸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빨리, 빨리!" 그가 외쳤다. "당장 이리 와! 인간들이 복서를 데려가고 있어!" 동물들은 돼지의 허락을 기다릴 틈도 없이 일손을 놓고는 농장 건물로 달려갔다. 과연 마당에 들어서서 보니, 말 두 필이 끄는 커다란 포장마차가 있었다. 마차 옆면에는 글자가 쓰여 있었고, 낮은 중절모를 쓴 비열한 인상의 사내가 마부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복서의 우리는 비어 있었다.

동물들이 마차 주변에 모여들었다. "잘 가요, 복서!" 그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잘 가요!"

"바보들! 바보들 같으니!" 벤저민은 조그만 발굽으로 땅바닥을 쿵쿵 구르고 마구 날뛰면서 외쳤다. "이 바보들아! 마차 옆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안 보여?"

그 말에 동물들은 동작을 멈추고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뮤리엘이 글자를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벤저민은 뮤리엘을 미치고, 소름 끼치는 고요 속에서 글자를 읽어나갔다.

"'엘프리드 시먼스, 윌링던의 말 도살업자 겸 아교 제작자. 가죽과 골분 거래. 개집 공급'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복서를 폐마 도살업자에게 데려가는 거라고!"

동물들의 입에서 공포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마부석의 남자가 말들에게 채찍을 휘둘렀고, 마차는 총총걸음으로 마당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동물들 모두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마차를 쫓아갔다. 클로버는 동물들을 해치고 선두로 뛰쳐나갔다. 마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클로버는 뚱뚱한 다리를 힘껏 움직이며 달리려고 애쓴 끝에 겨우 느린 구보 정도의 속력에 도달했다. "복서!" 클로버가 외쳤다. "복서! 복서! 복서!" 바로 그 순간, 바깥의 소란을 듣기라도 한 듯이 코에 하얀 줄이 나 있는 복서의 얼굴이 마차뒤 조그만 창에서 나타났다.

"복서!" 클로버가 무시무시한 소리로 외쳤다. "복서! 내려요! 어서 내려! 당신을 죽이러 데려가는 거라고요!"

동물들 모두 "내려요! 복서, 내려요!"하고 외쳤다. 하지만 마차는 이미 속력을 내서 점점 멀어져갔다. 복서가 클로버의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복서의 얼굴이 창문에서 사라지더니 마차 안에서 발굽으로 미친 듯이 쿵쿵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발로 차서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복서가 발굽으로 몇 번만 걷어차면 마차 같은 건 산산조각이 나고도 남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그런 힘은 사라졌다. 잠시 후 걷어차는 소리가 점점 약해지더니 사라졌다. 동물들은 마차를 모는 말에게 멈추라고 필사적으로 호소하기 시작했다. "동지들, 동지들!" 동물들은 외쳤다. "당신 형제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말아요!"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아둔한 동물들은 그저 귀를 젖히고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복서의 얼굴은 다시는 창에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 앞서 달려 나가서 다서 가로대 문을 닫을 생각을 했지만, 너무 늦었다. 순식간에 마차는 대문을 빠져나가 길을 따라 내려가버렸다 .그들은 복서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사흘 후 복서는 윌링던의 병원에서 말이 받을 수 있는 온갖 보살핌을 다 받았지만 죽고 말았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스퀼러가 동물들에게 소식을 알리러 왔다. 그는 복서의 마지막 몇 시간을 함께했다고 말했다. (p.106-110)

 

다음 일요일 회의 때 나폴레옹이 직접 나타나 복서를 기리는 짧은 연설을 했다. 모두가 애도하는 동지의 시신을 가져와 농장에 매장하지는 못했지만 농가 정원에 있는 월계수로 커다란 화환을 만들어 보내 복서의 무덤 옆에 놓게 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 돼지들은 복서를 기리는 추모 연회를 열 작정이라고 했다. 나폴레옹은 복서가 좋아하는 두 가지 좌우명, '내가 더 열심히 일하겠어'와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를 상기시키며 연설을 마쳤다. 모든 동물들이 이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는 게 좋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연회가 열리던 날, 윌링던에서 식료품상의 짐차가 와서 농가에 커다란 나무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날 밤 농가에서는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뒤이어 격렬한 싸움 소리 같은 게 들렸고, 11시쯤에는 유리 깨지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다음 날 농가에서는 정오까지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돼지들이 어디선가 돈을 구해 위스키 한 통을 더 샀다는 소문이 돌았다. (p.111-112)

 

몇 해가 지났다. 계절이 오갔고, 동물들의 짧은 생애도 흘러갔다. 반란 이전의 엣 시절을 기억하는 동물들도 거의 없어졌다. 클로버와 벤저민, 까마귀 모세. 돼지 몇 마리만이 그 시절을 기억할 뿐이었다. (p.113)

 

이제 농장에는 동물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전에 예상했던 것처럼 엄청나게 증가한 것은 아니었따. 새로 태어난 동물들에게 반란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희미한 전통일 뿐이었고, 사들인 동물들은 이곳에 오기 전에는 반란 이야기는 듣지도 못했다. (p.114)

 

농장은 이제 더욱 발전했고 잘 조직되어 있었다. 필킹턴 씨에게 밭 두 개를 사서 땅을 넓히기까지 했다. 마침내 풍차가 성공적으로 완공되었고, 탈곡기와 건초를 올리는 기계가 들어왓으며, 여러 가지 새 건물들도 더 들어섰다. 휨퍼는 이륜마차를 샀다. 하지만 결국 풍차는 전기 발전용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풍차는 곡물을 빻는 데 쓰였고, 꽤 많은 이익을 가져왔다. 동물들은 풍차를 하나 더 짓느라 고생했다. 그 풍차는 완성되면 발전기를 설치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과거 스노볼의 말을 듣고 동물들이 꿈꾸던 호사, 즉 전등이 달리고 냉수와 온수가 나오는 외양간이나 주 사흘 노동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폴레옹은 그런 생각은 동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진정한 행복은 열심히 노동하고 검소하게 사는 데 있다는 것이다.

어쩐지 동물들 자신은 조금도 부유해지지 않는데 농장만 번성하는 것 같았다. 물론 돼지와 개는 제외하고 말이다. 돼지와 개가 워낙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이 자기 나름대로 이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농장을 감독하고 조직하는 일은 끝이 없다고, 스퀼러는 지치지도 않고 설명했다. 그 대부분은 다른 동물들은 워낙 무지해서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p.114-115)

 

다른 동물들의 삶은 그들이 아는 한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언제나 배가 고프고, 짚단에서 잠자며, 샘물을 마시고, 들판에서 노동했다. 겨울이면 추위로 고생했고, 여름이면 파리 떼에 시달렸다. 때로 그중 나이 든 동물들은 흐릿한 기억을 애써 짜내 존스를 추방한 직후의 반란 초기 시절이 지금보다 나았는지 못했는지 가늠해보려 했다. 기억나지가 않았다. 현재의 생활과 비교해볼 거리가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스퀼러가 불러주는 숫자들밖에 없었는데, 그 숫자들은 언제나 모든 게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증명하고 있었다. 동물들은 그 문제의 답을 찾을 수가 없었고, 어쨌거나 지금은 그런 것을 곰곰이 생각해볼 시간도 없었다. 지난 오랜 세월을 낱낱이 다 기억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벤저민 영감은,, 과거에도 삶은 대단히 나았던 적도 못했던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공언했다. 허기와 고생, 실망은 삶의 변함없는 법칙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도 동물들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동물 농장의 일원이라는 명예 의식과 특권 의식을 한순간도 잊어버리지 않았따. 아직도 이 나라 전체 - 영국 전역!- 에서 동물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농장은 이곳뿐이었다.모두가, 심지어 새끼들이나 10마일, 20마일 떨어진 곳에서 팔려 온 동물들조차도 그 사실에 경탄했다. 축포 소리를 듣거나 깃대에서 초록색 깃발이 나부끼는 걸 보면 억누를 수 없는 자부심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럴 때면 늘 영웅적인 옛 시절 이야기를 했다. 존스를 추방하고, 칠계명을 쓰고, 인간 침입자들을 물리친 위대한 전투 이야기를, 그들은 엣 꿈들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따. 메이저 영감이 예언한 동물 공화국, 영국의 푸른 들판이 인간의 발에 밟히지 않게 되는 그 공화국의 꿈을 그들은 아직도 믿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날이 올 것이며, 금방은 아닐 수도 있고, 지금의 동물들이 살아 있는 동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날은 올 것이다. 심지어 여기저기서 몰래 <영국의 동물들> 곡조를 콧노래로 부르기도 했다. 감히 소리 높여 부르지는 못해도, 어쨌거나 농장 동물들 중 그 노래를 모르는 동물은 아무도 없었다. 생활이고되고 모든 희망이 다 이루어지진 않았을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배가 고파도, 그것은 포악한 인간들을 먹여야 하기 때문이 아니어다. 일이 고되어도, 적어도 그건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여기서는 어떤 동물도 두 다리로 걷지 않았다. 여기서는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했다. (P.115-117)

 

다시 울음소리가 들리자, 동물들은 모두 마당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도 클로버가 본 것을 목격했다.

돼지가 뒷다리로 걷고 있었다.

그랬다. 스퀼러였다. 그 자세로 엄청난 체구를 지탱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좀 어색하긴 해도, 그는 완벽하게 균형을 잡고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농가 문에서 돼지들이 길게 줄지어 나왔다. 다들 뒷다리로 걷고 있었다. 남들보다 좀 더 잘 걷는 돼지들도 있었고, 약간 불안정한 게 지팡이라도 짚는 게 나을 듯한 돼지도 한두 마리 있었지만, 모두 성공적으로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마침내 무시무시하게 짖어대는 개들의 외침과 검은 수평아리의 날카로운 울음과 함께 나폴레옹이 나왔다. 그는 위풍당당하게 똑바로 서서 거만한 눈길을 이러저리 던졌다. 개들이 주위에서 빙빙 돌며 뛰었다.

나폴레옹은 앞발에 채찍을 들고 있었다.

마당은 쥐 죽은 듯 조횽했다. 놀라고 겁에 질린 동물들은 옹기종기 모인 채, 돼지들이 길게 줄지어 마당을 천천히 한 바퀴 행진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것만 같았다. 최초의 충격이 가라앉자, 온갖 압박 - 개들에 대한 공포나,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 불평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 오랜 세월에 걸쳐 생겨난 습관 -에도 불구하고 뭔가 항의의 소리가 터져 나올 분위기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마치 무슨 신호라도 떨어진 듯이 양들이 한꺼번에 커다란 소리로 외쳐댔다.

"네 발 좋아, 더 발 '더 좋아'! 네 발 좋아, 두 발 '더 좋아'! 네 발 좋아, 두 발 '더 좋아'!"

구호는 그치지도 않고 5분이나 계속됐다. 양들이 조용해졌을 무렵 항의할 기회는 사라졌다. 돼지들이 다시 농가로 들어 가벼렸던 것이다. (p.118-119)

 

단 한 번 벤저민은 자신의 원칙을 깨고 벽에 적힌 문구를 읽어주었다. 거기에는 이제 하나의 게명밖에 없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119)

 

그다음부터는 농장 일을 감독하는 돼지들이 다음 날 모두 앞발로 채찍을 들고 있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따. 돼지들이 라디오를 사고, 전화기를 설치하고, <존 볼>이나 <팃빗츠>, <데일리 미러>를 정기구독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입에 파이프를 물고 농가 정원을 거니는 모습을 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돼지들이 옷장에서 존스 씨의 옷을 꺼내 입거나, 나폴레옹이 검은 코트에 사냥복 바지를 입고 가죽 각반을 차고 등장해도,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는 암퇘지가 존스 부인이 일요일에 입던 물결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주일 후 오후, 여러 대의 이륜마차가 농장으로 올라왔다. 이웃 농부 대표단이 농장 시찰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안내를 받아 농장 곳곳을 둘러보면서 보는 것마다, 무엇보다 특히 풍차에 감탄했다. 동물들은 순무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다들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다. 돼지들을 더 무서워해야 하는지 인간 방문객을 더 무서워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농가에서는 요란한 웃음과 노랫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섞인 목소리에 동물들은 갑자기 호기심이 동했다. 동물과 인간이 처음으로 평등하게 만나고 있는 저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동물들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일제히 농가 정원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p.120-121)

 

폭스우드의 필킹턴 씨가 술잔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잠시 후 참석자들에게 건배를 제안하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꼭 해야 할 말이 몇 마디 있다고 했다.

그는 오랜 불신과 오해가 마침내 끝나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만족스럽다고, 이는 다른 참석자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말했따. 자기나 다른 참석자들은 그런 적 없지만, 이웃 인간들이 동물 농장의 존경스러운 소유자들을 적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약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따. 불행한 사건들이 벌어졌고, 잘못된 생각이 유포되었다. 돼지들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농장이 존재한다는 게 뭔가 비정상적임 이웃에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는 마음들을 가졌었다. 수많은 농부들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서는 이런 농장에서는 방종과 무질서가 횡핼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들은 자기네 동물이나, 나아가 인간 일꾼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의심은 싹 가셨다. 오늘 그와 친구들은 동물 농장을 방문해서 구석구석까지 직접 시찰해봤다. 그래서 무엇을 발견했나? 최신 방식뿐 아니라 사방의 모든 농부들에게 모범이 될 규율과 질서였다. 그는 동물 농장의 하급 동물들이 이 나라 동물들 중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먹는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와 동료 방문자들은 당장 자기들의 농장에 도입할 여러 가지 면들을 보았노라고 했다.

그는 동물 농장과 이웃들 사이에 존재하는, 또 마땅히 존해해야 하는 우정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연설을 맺겠다고 했다. 돼지들과 인간들 사이에는 어떤 이해의 충돌도 없으며,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투쟁하고 극복해야 할 어려움은 단 하나였따. 노동 문제는 어디서건 똑같지 않은가? 이 시점에서 필킹턴 씨는 공들여 준비한 유머를 구사하려다가 잠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여러 겹의 턱이 퍼렇게 질리도록 캑캑대다가 가까스로 말을 했다. "당신들에게 싸워야 할 하급 동물들이 있따면, 우리에게는 하층 계급이 있죠!" 이 명언에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했고, 필킹턴 씨는 다시 한 번 적은 배급량과 긴 노동 시간, 그리고 동물 농장에서는 응석 따위 볼 수 없었다는 점에 대해 돼지들에게 축하를 보냈다. (p.121-123)

 

나폴레옹의 모든 연설이 그렇듯이, 짧고 핵심적인 연설이었다. 그는 자기 역시 오해가 끝나서 기쁘다고 했다. 오랫동안 자신과 동료들의 견해에 뭔가 전복적이고, 심지어 혁명적인 면이 있다는 - 악의에 찬 적이 퍼뜨린 게 분명한 - 소문이 돌았다. 다들 자신들이 이웃 농장의 동물들에게 반란을 부추길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니다! 과에나 지금에나 자신들의 유일한 바람은 이웃들과 정상적인 거래를 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뿐이다. 그러고는 영광스럽게도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이 농장은 협동기업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권리 증서는 돼지들의 공동 소유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의 의심들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고 믿지 않지만, 최근 농장에 일어난 몇 가지 변화가 신뢰감을 높이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농장 동물들이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는 어리석은 관습이 있었다. 이런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또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일요일 아침마다 정원 기둥에 붙여놓은 수퇘지 두개골 앞을 지나 행진하는 매우 기이한 관습이 있었다. 이 또한 금지될 것이며, 그 두상은 이미 파묻어버렸다. 손님들도 깃대에서 나부끼는 초록색 깃발을 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깃발에 흰 발굽과 뿔이 있었지만 이제는 없어진 것도 아마 알아차렸을 것이다. 앞으로는 단순한 초록색 깃발만 쓰게 될 것이다.

그는 릴킹턴 씨의 탁월하며 우호적인 연설에 대해 딱 한 가지 비판할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필킹턴 씨는 내내 '동물 낭장'이라는 이름을 썼다. 물론 필킹턴 씨는 '동물 농장'이라는 이름이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나폴레옹 자신이 지금 처음으로 발표하는 사실이니까. 앞으로 이 농장은 '매너 농장'으로 불릴 것이다. 그는 이것이 농장의 올바른 원래 이름이라고 믿는다.

"신사 여러분." 나폴레옹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전처럼 건배를 제안합니다만,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합시다. 잔을 가득 채우십시오. 신사 여러분, 제가 선창하죠. 매너 농장의 번영을 위하여!"

그들은 전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잔을 단숨에 비웠다. 하지만 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동물들은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돼지들의 얼굴에서 뭐가 달라진 거지? 클로버는 늙고 침침한 눈으로 이 얼굴 저 얼굴을 쳐다보았따. 몇몇 돼지들은 턱이 다섯 겹이었고, 네 겹이나 세 겹인 돼지도 있었다. 그런데 흘러내려서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뭘까? 그 순간 박수 소리가 그치더니, 다들 카드를 들고 중단했던 게임을 게속했다. 동물들은 살금살금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런데 20야드도 못 가서 그들은 우뚝 멈춰 섰다. 농가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던 것이다. 그들은 서둘러 돌아가서 다시 창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렇다.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고함을 지르고, 테이블을 내려치고, 의심스러운 눈길로 쏘아보고, 맹렬하게 부인하고 있었다. 나폴레옹과 필킹턴 씨가 동시에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를 자기고 있었던 게 싸움의 발단인 것 같았다.

열두 개의 목소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똑같았다. 이제 돼지들의 얼굴이 어떻게 된 것인지 분명해졌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 인간에서 돼지, 다시 돼지에서 인간에게로 시선을 옮겼지만, 이미 어느 족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p.123-125)

 

<작품 해설 - 권진아 서울대학교 교수>

<동물 농장>은 어린이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박한 우화으ㅟ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일견 단순해 보이는 그 표면 아래에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메이저 영감의 동물주의)의 등장과 1917년 10월 혁명(동물들의 반란), 봉건적 차르 체제의 종식(매너 농장에서 추방되는 존스)에서부터 시작해 혁명 이후 최초의 반란이었던 1921년 크론시타트 수병 반란(암탉들의 반란)을 거쳐 독일군의 침입과 스탈린그라드 전투(프레더릭의 임입과 풍차 전투), 스탈린과 처칠 등이 나치에 대해 공동전선을 펴기로 동의한 테헤란 회담(나폴레옹과 필킹턴의 제휴)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초 소련의 역사가 조목조목 재구성되어 담겨 있다. 국유화와 산업화, 일국 사회주의론과 영구 혁명론 등 혁명 초기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대표적 대립 주장들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는 나폴레옹과 스노볼의 대립 구도나, 대중들을 통제하는 공포정치의 고두인 비밀경찰(어디서나 나폴레옹을 호위하는 사나운 개 떼들), 달콤한 내세의 약속으로 현실의 고통을 기만하는 종교(구름 위 슈거캔디 산 이야기를 들려주는 까마귀 모세), 당의 논조를 대중들에게 주입하는 언론 프라우다(스퀼러), 노동자들의 애창곡 인터내셔널 가(영국의 동물들) 등 대응 관계들 또한 오웰이 이 우화를 얼마나 실제 역사에 근거해 구성했는지 잘 보여주는 세부 사항들이다. (p.18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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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년 06월 25일 - 1950년 01월 21일)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언론인,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1903년 6월 25일, 영국령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세관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영국 제국주의가 저지르는 악마적 만행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작가수업을 쌓았다.
유럽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작가가 되기로 한다. 파리와 런던에서 노숙자, 접시닦이, 교사, 서점 직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속에서도 소설을 쓰고 서평과 에세이를 발표했다. 1933년에 파리와 런던에서 겪었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첫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과 1935년 식민지 백인 관리의 잔혹상을 묘사한 소설 『버마 시절』이다. 이 시기부터 그는 죽음의 원인이 된 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사회 정의의 문제에 민감했고,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던 그는 첫 소설 『버마 시절』에 이어 『목사의 딸』, 『그 엽란을 날게 하라』를 출간했고,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의 가난한 삶을 그린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발표했다. 중·장년 시절에는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경찰관으로 재직했지만, 식민지배의 불합리성을 목격한 후 사직을 하고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빈곤한 생활을 겪다가 전체주의를 혐오한 그는 스페인 내전에 가담하여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체험을 기록한 1936년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는 뛰어난 보도 문학으로 평가된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BBC방송국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후 [트리뷴]의 문학 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정치와 문학 분야의 논평을 정기적으로 썼다.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1946년 스코틀랜드 주라 섬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전체주의의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을 집필하였고, 1949년에 출간되었다. 『1984년』은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1984년』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과 더불어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며, 이후 많은 예술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을 꾀하지만, 오히려 함정에 빠져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 '골드스타인'을 만났다고 자백하고, 결국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1984년』은 오웰을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장르에 상관없이 언제나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글을 썼으며 소설, 에세이, 르포, 평론 등 70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1950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지 오웰의 47년간의 삶 중 시대적 배경은 전쟁으로 인한 평화가 무너지는 격변기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전체주의(집단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사상이 다변화되면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대표 언론가로 상징된다. ‘조지 오웰’은 21세기 새 시대를 맞이하여 199년 영국 BBC 조사한 ‘지난 천년동안 가장 위대한 작가 3위’, 2008년 [더 타임스]가 선정한 영국 작가 50인의 2위로 선정되었다. 게다가 영문학에서는 ‘오웰주의’, '오웰주의자'라는 뜻의 Orwellism이나 Orwellian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그가 서양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 의식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 일찍이 스탈린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거기서 다시 현대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체주의의 풍토를 작품에 정착시켰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버마의 나날』, 『목사의 딸』, 『엽란을 날려라』,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 『숨쉬러 올라오기』, 『고래 뱃속에서』, 『사자와 일각수』, 『동물 농장』, 『비판적 에세이』, 『영국 사람들』, 『1984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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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 조지 오웰 (도정일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박경서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정회성 옮김, 책세상 세계문학)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김기혁 옮김, 문학동네 세계문학)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최희섭 옮김, 펭귄 클래식)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김욱동 옮김, 비채)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박지원 옮김, 동서월드북)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강문순 옮김, 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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