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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 호프만 (박은경 옮김, 문학동네)

by handaikhan 2023. 7. 1.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 -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1819년)

 

삶에는 그래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 멋진 것, 숭고한 것이 있다! - "오 그대 달콤한 존재의 습관이여!" 하고 저 네덜란드의 주인공은 비극에서 외친다. 나 역시 이렇게 외치노라. 하지만 비극의 주인공처럼 삶과 결별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외치는 것은 아니다. 천만의 말씀! 그게 아니라 내가 이제 그 달콤한 습관 속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언제고 그것에서 다시 빠져나올 의향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서 솟아나는 충만한 즐거움이 바야흐로 나를 가득 채우는 순간에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생각에 정신적 힘, 미지의 권력, 혹은 앞서 말한 습관을 내 동의 없이 강제로 떠맡기다시피 한 우리를 지배하는 원칙이 달리 또 어떻게 불리건 간에, 그것이 내가 모시고 있는 친절한 남자와 마찬가지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내 앞에 놓아준 생선이라는 음식을 내가 퍽 맛있게 먹고 있으면 그것을 결코 내 코앞에서 치워버리지 않는다. (p.17-18)

(주) 괴테의 <에그몬트> 5막에 나오는 대사를 변형한 것. 에그몬트는 16세기 네덜란드의 독립을 위해 스페인에 맞서 싸운 군인이자 정치가로,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자 이렇게 말한다. "달콤한 삶이여! 존재와 활동의 멋지고 친숙한 습관이여, 너와 헤어져야 하는구나!"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에그몬트 - 괴테 (윤도중 옮김,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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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셀 (데카 오리지널 마스터스)

George Szell, WPO (1969.12.11-15) Beethoven - Egmont, incidental music, Op.84

No.9 Siegessymphonie- Allegro con brio (Victory symphony)

(14) George Szell, WPO (1969.12.11-15) Beethoven - Egmont, incidental music, Op.84 - No. 9 Siegessymphonie- Allegro con brio (Victory symphony).mp3
3.08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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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궁핍하고 완고하고 사랑 없는 시대에 영혼들의 진정하 교감이란 얼마나 희귀한 것인가. (p.19)

 

도대체 두 발로 곧게 서서 걷는다는 것이, 인간이라 불리는 종족이 우리를, 확실한 균형을 잡고 네 발로 거니는 우리 모두를 통치할 권한이 있다고 믿어도 될 만큼 위대한 것인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머릿속에 있다는, 그들이 이성이라 부르는 그 무엇이 굉장한 것이라 착각하고 있음을.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이해하고 있는지는 나는 닥히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내가 내 주인이자 후원자의 모종의 언사에서 추론해보듯이, 이성이라는 게 의식을 갖고 행동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 능력에 다름 아니라면, 나는 결코 인간이고 싶지 않다. 내 생각에, 우리는 의식하는 습관을 들일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는 체 삶을 거치게 되고, 삶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듣자하니 자신이 어떻게,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자신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인간은 지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전해오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기 마련인데, 이 전해오는 이야기라는 것도 종종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도시들이 유명한 사람의 출생을 두고 서로 다투곤 한다. 나 자신도 출생에 대해 명확하게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으므로, 내가 세상의 빛을 처음 본 곳이 지하실인지 다락방인지 마구간인지는 영원히 불확실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세상의 빛을 보았다기보다는 세상에서 소중한 엄마의 눈에 처음 비치게 되었다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종족의 특성이 그러하듯 내 눈은 베일에 가려 있었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서 울리던 모종의 으러렁거리고 헐떡거리는 소리를 아주 어렴풋이 기억한다. 이 소리는 화가 치밀 때면 내가 본의 아니게 토해내는 소리이기도 하다. 더 명확하게, 거의 온전한 의식으로 나는 내가 부드러운 벽들이 있는 아주 좁은 상자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의 숨을 쉬지도 못하고 곤경에  빠진 채 무서운 가련한 비명을 지르면서 말이다. 나는 무언가가 상자 속으로 손을 넣어 아주 거칠게 내 몸을 그러잡는 것을 느꼈다. 이는 자연이 내게 부여한 첫번째 놀라운 힘을 느기고 시험해볼 기회였다. 나는 부드럽고 털이 수북한 앞발에서 날카롭고 유연한 발톱을 재빨리 끄집어내어 나를 그러잡은 것 속에 박아넣었다. 나중에 배운 바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손이었다. 하지만 그 손은 나를 상자에서 끄집어내어 내던졌고, 곧이어 나는 얼굴 양족에 두 방의 격렬한 타격을 느꼈다. 지금은 이 얼굴 양쪽 위로, 이렇게 말하고 싶거니와, 위풍당당한 수염이 솟아나 있다. 이제야 판단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 손은 내 앞발의 근육운동에 상처를 입고서 내게 따귀를 몇 대 날렸던 것이다. 나는 도덕적 원인과 결과에 대해 첫 경험을 했고, 바로 도덕적 본능이 나로 하여금 발톱을 밖으로 꺼내놓은 것만큼 재빨리 다시 거둬들이도록 재촉했다. 나중에 사람들은 발톱을 거둬들이는 이 움직임을 더없이 온후하고 친절한 행동으로 정당하게 인정했고 '조그만 벨벳 앞발'이라 명명했다.

이미 말한 것처럼, 그 손은 나를 다시 땅으로 내던졌다. 그러고는 곧 내 머리를 붙잡아 내리눌렀다. 그러자 내 작은 주둥이가 어떤 액체에 닿았다. 나는 - 왜 그랬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는 육체적 본능임이 틀림없다 - 그 액체를 핥아먹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내게 야릇한 내적 만족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제야 아는 바이지만 내가 먹은 것은 달콤한 우유였다. 배가 고팠는데 마시는 동안 배가 불러왔다. 그리하여 도덕적 교육이 시작된 후에 육체적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또다시, 하지만 이전보다 더 부드럽게, 두 손이 나를 붙잡아 따뜻하고 푹신한 잠자리에 넣어주었다. 나는 점점 더 기분이 좋아졌고, 사람들이 '그러렁거리다'라는 나쁘지 않은 표현으로 지칭하는 내 종족 특유의 기이한 소리를 냄으로써 내적 만족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렇듯 나는 세계를 위한 교육에서 큰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소리와 몸짓으로 내적인 육체적 만족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장점이며 얼마나 값진 하늘의 선물인가! 나는 처음에는 그러렁거렸고, 그후 긴 꼬리를 몹시도 귀여운 원 모양으로 굽이치게 하는 저 모방할 수 없는 재능이 내게 찾아왔으며, '야옹'이라는 단 하나의 조그만 낱말로 기쁨, 고통, 행복과 환희, 불안과 절망, 한마디로 수많은 뉘앙스를 지닌 모든 감정과 열정을 표현하는 놀라운 재능이 찾아왔다. 자신을 이해시키는 모든 단순한 수단 가운데 가장 단순한 이 수단에 비하면 인간들의 언어란 무엇이란 말인가! (p.19-21)

 

맙소사, 크라이슬러가 외쳤다. 저 작은 회색 고양이가 오성을 가지고 있고 장화를 신은 고양이의 저명한 가문 출신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걸요! (p.42)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장화 신은 고양이 - 요한 루트비히 티크 (정제형 옮김, 마르코폴로)

장화 신은 고양이 - 샤를 페로 (김설아 옮김, 단한권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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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아브라함이 나의 교육에서 잊힌 바제도(독일의 계몽주의 교육학자로 범애주의 교육의 신봉자)를 기준으로 삼지도, 페스탈로치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내게 나 자신을 교육할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한 것은 칭송할 일이다. 나는 마이스터 아브라함이 지배권력이 이 지상에 모아놓은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어느 정도의 통상적 원칙들만 따르면 되었다. 그런 원칙이 없다면 모든 것이 맹목적으로 미친듯이 우왕좌왕하고, 도처에서 불쾌하게 옆구리를 밀치게 하고, 뻔뻔스럽게 혹들을 만들어내 사회라는 것 자체를 생각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스터는 이 원칙들의 정수를 관습적인 공손함과 상반되는 자연적 공손함이라 칭했다. 관습적인 공손함에 따르자면 사람들은 자연적 공손함이라 칭했다. 관습적인 공손함에 따르자면 사람들은 어떤 무례한 놈이 사람들을 밀치거나 발을 밟았다 해도 대단히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청합니다 하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공손함이 사람들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 자유롭게 태어난 나의 종족도 그것을 따라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마이스터가 내게 에의 통상적 원칙들을 가르친 주요 수단이 모종의 고약한 자작나무 회초리였으니 나는 아마도 내 교육자의 엄격함에 대해 정당하게 불평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높은 문화를 향한 나의 타고난 성향이 나를 마이스터에게 꽉 묶어두지 않았더라면 나는 도망쳐버렸을 것이다. 문화가 많아질수록 자유는 적어진다. 이 말은 참이다. 문화와 함께 욕구들이 증대하고, 욕구들과 함께 - 그러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당수의 자연적 욕구들을 당장 충족시키는 것. 이 버릇이 마이스터가 치명적인 자작나무 회초리를 통해 완전히 버리게 한 첫번째 것이었다. 그다음 차례는, 내가 나중에 확신하게 된 것이지만, 오로지 어떤 비정상적인 기분에서 생겨나는 욕망이었다. 어쩌면 나의 심리적 구조 자체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그 이상한 기분은 마이스터가 나를 위해 갖다놓은 우유며 구운 고기조차 그대로 놔두고서, 탁자로 뛰어오르게 하고, 그가 먹으려던 것을 뺏어먹도록 나를 충동질했다. 나는 자작나무 회초리의 힘을 감지했고, 그래서 그 짓을 그만뒀다. 나의 감작을 그런 것에서 딴 데로 돌리려 했던 마이스터가 옳았음을 알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나보다 세련되지 못하고 좋은 교육을 받지도 못한 나의 선량한 동포 가운데 몇몇은 그 때문에 평생토록 몹시도 역겹고 불쾌한 일에, 정말이지 지독히 슬픈 상황에 봉착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망한 수고양이 청년이 우유 한 단지를 훔쳐 슬쩍 마셔버리려는 욕망에 저항할 내적 정신력의 결핍에 대한 죄값으로 꼬리를 잃어야 했고, 비웃음과 조롱을 당한 채 고독 속으로 물러나야 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내게 그런 버릇을 버리게 한 마이스터가 옳았다. 하지만 그가 학문과 예술에 대한 나의 욕망을 억눌렀다는 것, 그것은 용서할 수가 없다. (p.45-46)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은자의 황혼 - 페스탈로찌 (김정환, 서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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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나가 이웃 노파네 집에서 상당히 옹색하게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배고픔을 달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것을 들어 알게 되었다. 이는 나의 마음을 깊이 흔들어놓았고, 내 가슴속에 자식으로서의 사랑이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하게 싹텄다. 나는 전날 식하할 때 남긴 맛있는 청어 대가리를 떠올리고는 그것을 그토록 예기치 않게 다시 찾은 착한 어머니에게 선사하기로 결정했다.

달빛 아래 거니는 이들의 변화무쌍한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 어찌하여 운명은 불행한 열정의 격렬한 유희에 우리의 가슴을 닫아걸지 않았는가! - 어찌하여 우리는 가녀리고 흔들리는 갈대처럼 삶의 폭풍 앞에 굴복해야만 하는가? - 적대적인 숙명! -  오 식욕이여, 그대 이름은 수고양이! - 청어 대가리를 주둥이에 물고 나는 경건한 아이네이아스로서 지붕으로 기어올라갔다 - 그리고 천창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 그때 나는 기이하게도 나의 자아가 나의 자아에게 낯설면서도 나의 본래의 자아로 보이는 상태에 빠졌다. 나는 나의 기묘한 상태를 이렇게 묘사해놓은 것을 보고 누구나 내게 정신적 깊이를 꿰뚫어보는 심리학자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명쾌하고 예리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얘기를 계속하겠다!

욕망과 불쾌감으로 직조된 이상한 감정이 나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 나를 압도했다 - 어떠한 저항도 가능하지 않았다 - 나는 청어 대가리를 먹어버렸다! (p.67-68)

(주석)

<햄릿> 1막 2장에 나오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를 패러디한 것.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햄릿 -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민음사)

아이네이스 - 베르길리우스 (김남우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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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그대들 느낄 줄 아는 영혼들이여, 그대들은, 그대들이 멍청한 당나귀가 아니라 진정 단정한 수고양이들이라면, 내 말하노니, 내 가슴속의 이러한 폭풍이, 어두운 구름을 흩뜨려 지극히 맑은 전망을 열어주는 고마운 돌개바람처럼, 나의 청소년기의 하늘을 화창하게 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할 것이다. 오! 처음에는 청어 대가리가 너무나 무겁게 내 영혼을 짓눌렀다. 하지만 나는 식욕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머니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모독임을 통찰하는 법을 배웠다. 누구든지 자신의 청어 대가리를 찾으라. 그리고 다른 이들의 총명함을 성급히 단언하지 말라. 그들 역시 제대로 된 식욕에 이끌려 그들의 청어 대가리를 찾게 될 것이니.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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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테오도어 빌헬름 호프만(Ernst Theodor Wilhelm Hoffmann, 1776년 1월 24일 ~ 1822년 6월 25일)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 작가이자 작곡가이다.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현재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출생하였으며 그림과 음악에 뛰어났고 대법원 판사를 지냈다. 그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공상적이며 마법적인 기괴한 것이 많으며 에드거 앨런 포를 비롯해 니콜라이 고골, 찰스 디킨스, 샤를 보들레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프란츠 카프카 등의 문학가들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로베르트 슈만, 자크 오펜바흐, 표트르 차이콥스키, 파울 힌데미트, 리하르트 바그너, 레오 들리브 등과 같은 음악가들이 작곡한 작품의 원천이 되거나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문학가와 음악가뿐만 아니라 알프레드 히치콕, 잉마르 베리만, 길예르모 델 토로 등과 같은 영화 감독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의 작품인 〈모래 사나이〉를 대상으로 논문 〈섬뜩함〉(Das Unheimliche)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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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 - 호프만 (김선형 옮김, 경남대출판부)

모래 사나이 - 호프만 (신동화 옮김, 민음사)

호두까기 인형 - 호프만 (문성원 옮김, 시공주니어)

모래 사나이 - 호프만 (황종민 옮김, 창비)

모래 사나이 - 호프만 (김현성 옮김, 문확과지성사)

독일 환상 문학선 - 호프만 (박계수 옮김, 황금가지)

스퀴데리 양 - 호프만 (정서웅 옮김, 열림원 이삭줍기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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