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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별에서 온 아이 - 오스카 와일드 (김유경 옮김, 펭귄클레식)

by handaikhan 2023. 2. 27.

오스카 와일드 단편모음집

 

오스카 와일드 - 별에서 온 아이 (1891년)

 

오래전 어느 날 가난한 나무꾼 두 명이 커다란 솔숲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들판과 나뭇가지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나무꾼들이 지나갈 때마다 서리가 작은 나뭇가지들을 툭툭 부러뜨리며 심술을 부렸다. 그러다 그들이 급류로 흐르는 곳에 도착할 즈음이 되자 서리도 잠잠해졌다. 얼음 왕의 키스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새와 짐승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다리 사이에 꼬리를 넣고 덤불 사이를 절뚝거리며 걷던 늑대가 으르렁거렸다.

"으으. 정말 무시무시한 날씨야. 정부에서는 대체 왜 아무 신경도 안 쓰는 거야?"

초록빛 홍방울새가 지저귀었다.

"휫, 휫, 휫. 땅이 너무 늙어서 죽어버린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땅에 하얀 수의를 입힌 거지."

"땅이 결혼하는 거야. 그래서 신부의 의상으로 갈아입은 거라고." 멧비둘기들이 서로 속삭였다. 멧비둘기의 분홍빛 발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그래도 현재 상황에 대해 무언가 낭만적인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였다.

"말도 안 돼! 이건 정부의 잘못이라고 내가 말했지! 내 말 안 들으면 너희들 모두 잡아먹어 버릴 테다." 늑대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늑대는 매우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논쟁에서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타고난 철학자인 딱따구리가 말했다.

"음, 내가 보기엔 말이지, 나는 사실 무언가를 설영해 내려는 원자 이론 같은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든. 현실이 그러면 그냥 그런 거야. 지금은 그러니까 그냥 끔찍하게 추운거지."

정말 끔찍하게 추웠다. 키 큰 전나무 안에 사는 다람쥐들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서로 코를 비벼댔고, 토끼들은 굴속에서 몸을 돌돌 말고는 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추위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큰 뿔이 달린 올빼미뿐이었다. 깃털은 서리 때문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는데도 올빼미들은 신경 쓰지 않고 커다랗고 노란 눈을 굴리며 서로를 큰 소리로 불러댔다.

"부엉부엉! 부엉부엉! 어이, 날씨 참 좋구먼!" (p.204-205)

 

숲 맞은편에 다다르자 드디어 저 아래 계곡에서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그들은 너무 기뻐서 큰 소리로 웃었다. 땅은 은으로 만든 꽃 같고, 달은 금으로 된 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다시 슬퍼졌다. 가난한 현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하나 다른 하나에게 말했다.

"왜 우리가 기뻐하는 거지? 인생은 부자를 위한 것이지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데 말이야. 숲에서 얼어 죽거나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다른 하나가 대답했다.

"맞아, 대부분이 몇몇 사람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주 적은 양을 나누어 가지지. 세상은 불공평해. 슬픔을 제외하고는 평등하게 나눠지는 게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그들이 자신의 비참함을 슬퍼하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아주 아름다운 별 하나가 떨어진 것이다. 그 별은 다른 별들을 지나쳐 하늘에서 미끄러져 내리더니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버드나무 숲 너머로 떨어졌다.

"우와! 저건 금 덩어리야! 줍는 사람이 임자다!" 그들은 이렇게 외치고는 금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빨리 달려 버드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정말 하얀 눈 위에 금 같은 물체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뭔가를 여러 겹으로 싼 신비한 별 장식과 금박이 달린 망토였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보물을 찾았다고 동료에게 소리쳤다. 동료가 도착하자 그들은 눈 위에 앉아 망토를 벗겨 보았다. 금을 나눌 요량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거기엔 금은 고사하고 은도 없었다. 단지 아기 하나가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말했다.

"괜한 희망을 품었잖아. 어린아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 여기 내버려 두고 가던 길이나 가자. 우린 가난한 데다 먹여 살려야 할 아이들도 많아. 남에게 나누어줄 빵 같은 건 없다고."

하지만 다른 하나는 대답했다.

"안 돼. 아이를 이렇게 눈 위에 버려둘 수는 없어. 나도 자네처럼 가난하고 먹여 살릴 입이 많은 데다 먹을 건 별로 없지만, 이 아이를 집에 데려가겠어. 아내가 돌봐 줄 거야."

그는 아주 부드럽게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춥지 않도록 아이를 망토로 잘 싸서 언덕을 내려가 마을로 향했다. 동료는 그의 착하지만 어리석은 마음에 놀라워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p.206-207)

 

"내가 숲에서 뭔가를 발견했거든. 당신이 그것을 좀 돌봐줬으면 좋겠는데."

"뭔데요? 뭔지 보여 줘요. 우리 집엔 필요한 게 너무 많아."

그러자 그는 망토를 젖히고 잠든 아이를 보여 주었다.

"세상에, 맙소사. 우리 애들도 많은데, 버려진 아이까지 함께 돌보라는 거예요? 이 아이가 불행을 가져다줄지 누가 알아요? 그리고 대체 어떻게 키우란 말이에요?" 아내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아니, 이 아이는 별에서 온 아이요." 남편은 이렇게 대답하며 아이를 데려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아내는 전혀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았고, 도리어 남편을 더 조롱하며 소리쳤다.

"우리 아이들 먹일 빵도 모자라는데 다른 아이까지 먹여야 한다고요? 그럼 대체 우리를 돌봐 주는 사람은 누구예요? 누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지요?"

"하느님께서는 참새까지도 돌보시며 먹을 것을 주시오."

남편이 대답했다.

"참새는 겨울이면 굶어 죽지 않나요? 그리고 지금이 겨울이잖아요?" 하지만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현관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숲에서 살을 에는 바람이 불어왔다. 아내는 벌벌 떨면서 말했다.

"현관문 안 닫을 거예요? 집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잖아요. 추워요."

"마음이 차가운 집에는 늘 추운 바람이 들어오는 것 아니겠소?" 남편이 물었다. 아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난로 옆으로 바싹 다가가 앉았다.

한참 후 아내가 남편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남편은 재빨리 들어와 아내의 팔에 아기를 안겼다. 아내는 아기에게 키스하고 막내가 누워 있는 작은 침대에 아기를 눕혔다. 그리고 다음 날 부부는 아기의 금박 옷과 목에 둘려 있던 호박 목걸이를 커다란 상자에 잘 넣어 보관해 두었다. (p.208-209)

 

하지만 아이의 외모가 아름다워질수록 아이의 성격은 사악해져 갔다. 오만하고 잔인하며 이기적이 되어버린 아이는 나무꾼의 아이들이나 마을 아이들이 천한 핏줄을 타고났다며 경멸했다. 그리고 자신은 별에서 왔기 때문에 고귀한 신분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부려먹으며 주인 행세를 했다. 아이는 가난하거나 눈이 멀거나 불구이거나 학대받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보이기는커녕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길거리로 내몰면서 다른 곳에 가서 구걸하라고 외쳤다. 그래서 범법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는 누구도 그 마을에 두 번 다시 오려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약하거나 보기 싫은 것이라면 무조건 조롱하고 비웃는 것 같았다. 아이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 여름이면 아이는 신부의 과수원에 들어가 우물 옆에 엎드려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p.210)

 

"집으로 들어가 봐라. 네 어머니가 너를 기다리고 계셔."

아이는 놀라움과 기쁨에 집으로 뛰어들어 갔다. 하지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여인을 보더니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어디 계시다는 거야? 여기에는 이 역겨운 거지 아줌마밖에 없는데.:

그러자 여인이 대답했다.

"내가 네 어미란다."

"당신 미쳤군요. 나는 당신 아들이 아니에요. 당신은 거지에다, 못생기고, 누더기를 입고 있잖아요. 당장 꺼져요. 다신 그 얼굴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별에서 온 아이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너는 정말 내가 숲에서 낳은 내 아들이란다. " 여인은 이렇게 외치며 무릎을 굻고 아이에게 두 손을 내밀면서 중얼거렸다.

"강도들이 너를 빼앗아 죽게 벼려둔 거야. 하지만 나는 널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알아볼 수 있었어. 금박 외투와 호박 목걸이도. 이제 나와 함께 가자구나. 나는 너를 찾아 온 세상을 헤매 다녔단다. 이리 오렴, 아들아. 이 어미는 네 사랑이 필요해."

하지만 아이는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녀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여인의 고통스러운 흐느낌을 제외하고는 침묵만이 흘렀다.

마침내 아이가 입을 뗐다. 그 목소리는 차갑고 냉담했다.

"정말 당신이 내 어머니라면, 그냥 떠나세요.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마세요. 나는 거지의 자식이 아니라 별에서 온 아이라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당장 꺼져요. 그 얼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요."

"아아, 아들아! 그럼 가기 전에 키스해 주겠니? 너를 찾느라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단다." 여인은 흐느끼며 말했다.

"싫어요. 당신은 쳐다보기도 역겨워요. 차라리 뱀이나 두꺼비한테 키스하는 게 낫겠어요."

여인은 일어나 비통하게 울면서 숲으로 사라졌다. 아이는 그녀가 사라진 것을 보고 기뻐서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친구들은 아이가 오는 것을 보고는 놀려대기 시작했다.

"너는 두꺼비처럼 역겹고 뱀처럼 혐오스러워. 당장 사라져. 너랑은 더 이상 놀지 않을 거야." 친구들은 아이를 정원에서 내쫓았다.

그러자 별에서 온 아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쟤네들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물에 가서 얼굴을 비쳐 봐야지.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이야."

그래서 아이는 우물로 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 비친 얼굴은 두꺼비 같았고, 몸은 뱀처럼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아이는 풀밭에 쓰러져 흐느꼈다. (p.213-215)

 

마을을 지날 때마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놀리며 돌을 던졌다. 농부들은 저장해 둔 옥수수에 핀 곰팡이를 떼어 내는 일을 해주어야만 외양간에서 잠을 재워 주었다. 아이의 모습이 너무 추해서 함께 일하는 인부들도 그를 쫓아냈고, 어느 누구도 아이를 동정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는 삼 년 동안 세상을 헤매고 다녔지만 어머니인 거지 여인에 대한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때로 아이는 길에서 아머니를 본 것 같은 생각에 어머니를 부르며 쫓아가다 날카로운 돌에 찔려 발에서 피가 나기도 했다. 아이는 어머니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길가에서는 사람들은 어머니와 닮은 사람조차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아이의 슬픔을 보고 우스워했다.

삼 년 동안 아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돌아다녔고 세상은 아이에게 사랑도, 친절함도,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아이가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자만심에 넘쳤을 때의 그 세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p.216-217)

 

마술사가 말했던 백금은 아침부터 낮까지, 낮부터 해 질 녘까지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해가 지자 아이는 슬프게 울며 집으로 향했다.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숲 가장자리에 도달했을 때 덤불에서 누군가 고통스럽게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슬픔도 잊은 채 아이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조그마한 산토끼가 사냥꾼이 설치해 놓은 덫에 걸려 있었다.

별에서 온 아이는 토끼가 불쌍해서 덫을 풀어 놓아주었다.

"나는 노예지만 네겐 자유를 줄 수 있구나."

그러자 토끼가 대답했다.

"당신은 내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답을 해드릴까요?"

아이가 말했다.

"백금을 찾고 있는데 어디에도 없어. 그걸 가져가지 않으면 주인은 분명 날 때릴 텐데."

"절 따라오십시오. 백금이 있는 곳을 가르쳐드리지요. 백금이 어디 숨겨져 있는지, 왜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별에서 온 아이는 토끼를 따라갔다. 정말로 커다란 너도밤나무 틈에 아이가 찾던 백금 한 조각이 숨겨져 있었다. 아이는 기쁘하며 그것을 손에 쥐고 토끼에게 말했다.

"내가 베푼 은혜가 수십 배가 되어 돌아오는구나. 너는 애가 베푼 친절을 백배로 갚았다."

"아닙니다. 당신이 저를 대하듯 저도 당신을 대한 것뿐인걸요." 토끼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재빨리 어디론가 달려갔다. 아이는 도시로 내려갔다.

성문에 다다르자 나병 환자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회색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작은 구멍 사이로 두 눈을 붉은 숯처럼 번득이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보자 나무 그릇을 두들기고 방울을 울리며 그를 불렀다.

"내게 돈을 조금만 주겠니. 굶어 죽게 생겼어. 사람들이 나를 성 밖으로 내쫓았단다. 어느 누구도 나를 동정하지 않더구나."

"저런! 제 지갑에 돈이 조금 있기는 한데, 이걸 주인에게 가져다주지 않으면 저는 매를 맞을 거예요. 저는 노예거든요."

하지만 나병 환자는 계속 아이에게 간청하며 애원했다. 결국 아이는 동정심에 백금 한 조각을 그에게 주었다.

아이가 마술사의 집으로 돌아오자 마술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백금은 가져왔느냐?"

"아니요." 아이는 대답했다. 그러자 마술사는 아이에게 달려들어 마구 때렸다. 그리고 빈 접시를 가져오더니 "먹어라." 하고 말하고, 빈 컵을 가져와 "마시라."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아이를 지하 감옥에 밀어 넣었다. (p.220-221)

 

궁전 문이 열리면서 신부와 귀족들이 뛰어나와 아이를 맞이했다. 그들은 몸을 낮추면서 말했다.

"그대는 우리가 기다리던 주인님이시자 왕자님이십니다."

아이는 대답했다.

"저는 왕의 아들이 아니라 가난한 거지 여인의 아들입니다. 어떻게 저를 보고 아름답다 하십니까? 제가 얼마나 추한지는 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금빛 꽃이 가득한 갑옷을 입고 날개 달린 사자가 앉아 있는 투구를 쓴 그 남자가 방패를 갖다 대며 외쳤다.

"주인님께서는 왜 자신을 아름답지 않다 말씀하십니까?"

아이는 방패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놀랍게도 얼굴은 예전처럼 매끈해지고 아름다움도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눈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보았다.

신부와 귀족들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오늘 저희를 다스리실 분이 오신다는 예언이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그러니 이 왕관과 홀을 받으시고 저희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하지만 아이는 말했다.

"저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저를 낳ㄴ아주신 어머니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찾아 용서를 받을 때까지 저는 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를 가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다시 세상을 헤매야 합니다. 여러분이 제게 왕관과 홀을 준다 해도 저는 여기에서 지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는 그들에게 얼굴을 돌려 성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병사들을 둘러싼 군중 사이에 자신의 어머니인 거지 여인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길가에 앉아 있던 나병 환자가 서 있었다.

아이의 입술에서 기쁨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이는 뛰어가서 어머니의 상처 난 발에 무릎을 끓고 입을 맞추었다. 아이의 눈물로 발이 흠뻑 젖었다. 아이는 머리를 깊이 숙여 절하며 가슴이 찢어질 듯 흐느꼈다.

"어머니, 오만했던 시절 저는 어머니를 부정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용서를 빕니다. 부디 저를 받아주세요. 어머니를 미워했던 저를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세요. 어머니를 거부했던 저를 받아주세요." 하지만 거지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손을 뻗어 나병 환자의 하얀 발을 움켜쥐며 말했다.

"저는 당신께 세 번의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어머니께 제발 단 한 번이라도 뭐라 말씀 좀 해달라고 해 주세요." 하지만 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다시 흐느끼며 말했다.

"어머니, 제 고통은 이제 제가 견디기에 너무 큽니다. 절 용서해 주세요.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자 거지 여인이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일어나라."

나병 환자도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일어나라."

아이는 일어서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바로 그곳에 왕과 왕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왕비는 말했다.

"네가 구해 준 사람이 바로 너의 아버지시다."

왕이 말했다.

"네 눈물로 씻어 낸 발이 네 어머니의 발이다."

그들은 아이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아이를 궁전으로 데리고 가서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왕관을 씌우고 손에는 홀을 들려주었다. 아이는 강가에 있는 도시의 주인이 되어 그곳을 다스렸다. 아이는 사람들에게 자비심과 공평함을 보여 주었고, 사악한 마술사를 내쫓았으며, 나무꾼 부부에게는 수없이 많은 선물을 보내고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경의를 표했다. 또한 그는 새나 짐승에게 결코 잔인하게 대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에게는 빵을, 헐벗은 자에게는 옷을 주었다. 평화가 자리 잡았고 땅은 비옥해졌다.

하지만 아이는 그리 오랫동안 그 도시를 다스리지는 못했다. 고생을 너무 심하게 한 데다 너무 힘든 시험을 거쳤기 때문이었다. 삼 년이 지나 아이는 죽었다. 그리고 아이의 뒤를 이어 다시 사악한 왕이 도시를 다스렸다. (p.22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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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Wilde, 1854년 10월 16일 - 1900년 11월 30일)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와일드는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웨스트랜드 로 21가에서 앵글로계 아일랜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와일드 경은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안과와 비과 외과의사이며, 고고학과 민속에 대한 책을 썼다. 또한 박애주의자로서, 트리니티 칼리지 뒤에 위치한 링컨 플레이스 내 도시 빈민을 위한 무료 진료소로 유명하였다. 애들레이드 도로에 위치한 더블린 안과 비과 의사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어머니 제인 프랜시스카 엘지는 성공적인 작가이며, '스페란차'로 알려진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다.
1855년 6월 와일드 가는 그당시 유행하던 거주 지역인 1번 에리온 스퀘어로 이사하였다. 와일드의 어머니는 토요일마다 정기적인 오후 살롱을 열었으며, 그 초대객에는 셰리던 레퍼뉴, 찰스 레버, 조지 피트리, 아이작 버트, 윌리엄 로언 해밀턴, 새뮤얼 퍼거슨 등이 있다. 오스카는 9살 때까지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페르마냐, 에이스킬렌에 있는 포토라 왕립 학교에 1864년에서 1871년까지 재학하였으며, 여름 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웩스퍼드 시골의 워터포드와 메이요에 있는 윌리엄 경의 가족집에서 지냈다. 와일드의 형제들은 이후 소설가로 성장하는 조지 무어와 함께 놀곤 하였다.
포르타를 졸업한 후, 와일드는 1871년부터 1874년까지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 문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1874년부터 1878년까지 옥스퍼드 대학 모들린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태만하기로 유명했으나 고전학에서는 발군의 성적을 나타냈다. 1882년에 미국으로 강연여행을 떠나 희곡을 쓰고 이것이 뉴욕에서 상연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 몇 가지 소설이나 시를 쓰고 또는 비극도 썼으나 와일드의 재능이 발휘된 것은 경묘한 희극의 분야, 즉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1892), <시시한 여자>(1893), <이상적(理想的) 남편>(1895) 등으로, 그 정점을 차지하는 것이 <진지함의 중요성>(1895)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와일드는 왕정복고시기의 콩그리프가 이룬 희극 작법의 전통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시극 <살로메>는 영국에서 상연이 금지되었으며 1894년에 사라 베르나르에 의해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1895년에 와일드는 동성애 사건으로 2년간의 노동 금고형 처분을 받았다. 그 후 파리에 나왔으나 건강이 악화되고 경제적으로도 파탄나며 뇌수막염에 걸려 1900년 4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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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작품선 (정영목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오스카 와일드의 아홉가지 이야기 - 오스카 와일드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김진석 옮김, 펭귄클래식)

캔터빌의 유령 - 오스카 와일드 (김미나 옮김, 문학동네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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