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변신 - 프란츠 카프카 (편영수, 임홍배 옮김, 창비)

by handaikhan 2023. 2. 23.

창비 세계문학

 

프란츠 카프카 - 변신 (1912년)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누워 있었는데, 머리를 조금 들자 각질의 아치형 마디들로 나뉜 둥그렇게 솟은 갈색 배가 보였고, 배 위에 겨우 살짝 걸쳐져 있는 이불은 금방이라도 홀라당 흘러내릴 것 같았다. 눈앞에서는 몸통에 비해 딱하리만치 가냘픈 수많은 다리가 어쩔 줄 모르고 버둥거렸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잠자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조금 작긴 해도 사람이 살기에 손색이 없는 그의 방은 친숙한 네 벽 사이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잠자는 출장외판원이었는데, 옷감견본 모음을 펼쳐놓은 책상 위의 벽에는 얼마 전 화보잡지에서 오려내어 예쁜 금칠액자에 넣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사진은 모피모자를 쓰고 모피목도리를 두른 한 숙녀가 반듯이 앉아서 양쪽 팔목을 완전히 감싼 두툼한 모피토시를 사진 감상자를 향해 치켜든 모습을 담고 있었다.

다음으로 그레고르는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창문 발코니의 함석판에 빗방울 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찌푸린 날씨에 기분이 아주 울적해졌다. 그는 '잠을 좀 더 자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모두 잊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혀 실현 가망이 없었다. 그는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습관이 있는데, 지금 상태로는 그런 자세를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아무리 힘껏 오른쪽으로 굴려도 매번 시소처럼 흔들거리다가 뒤로 누운 자세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그는 버둥거리는 다리를 보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고 족히 백번은 그런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다가 옆구리에서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가볍고 먹먹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그제야 그만두었다.

그는 생각했다. '맙소사,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힘든 직업을 택했을까! 날이면 날마다 추장이라니. 이런 출장 업무는 사무실에서 고유 업무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경이 쓰여. 게다가 여행의 고역도 감당해야지, 열차 편 연결도 걱정해야지, 식사도 불규칙하고 형편없지, 인간관계도 계속 바뀌니 도무지 지속성이 없고 마음을 터놓지 못해. 제기랄, 이 모든 짓거리를 당장 팽개치고 싶어!' 그는 배 위쪽이 조금 근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등을 밀어서 침대의 손잡이 기둥으로 천천히 다가가 머리를 조금 높이 들었다. 그러자 근질거리는 부위가 보였는데, 깨알처럼 하얀 점들이 온통 뒤덮여 있었다. 어째서 생겼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다리 하나를 들어 그곳을 만져보려다 얼른 내리고 말았다. 다리가 닿자마자 싸늘한 전율이 온몸을 훑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원래 위치로 미끄러져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너무 일찍 일어나니 제정신이 아닌 거야. 사람은 잠을 충분히 자야해. 다른 외판원들은 이슬람교도의 규방 부인처럼 지내는데, 예를 들어 접수한 주문을 옮겨 쓰려고 오전 중에 여관으로 돌아오면 그 양반들은 그제야 아침식사를 하지. 나도 사장한테 대놓고 그렇게 해볼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그 자리에서 모가지가 날아가겠지. 그게 차라리 나한테 좋을지 알 게 뭐람. 부모님을 생각해서 꾹 참지 않았다면 진작 사표를 냈을 거야. 사장 앞에 당당히 나서서 가슴 깊이 묻어둔 생각을 말했을 거라고. 그러면 사장이 책상에서 굴러 떨어지겠지! 사장은 책상에 걸터앉아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직원과 얘기하니 버릇도 참 이상하지. 더구나 사장은 귀가 어두워서 직원이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말이야. 어떻든 내가 희망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야. 언젠가 부모님이 사장한테 진 빚을 갚을 만큼 돈을 모으며 - 대여섯 해는 더 걸리겠지만 - 무조건 매듭을 지어야지. 그러면 내 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되겠지. 그건 그렇고 지금은 일어나는 게 급선무야. 기차가 5시에 출발하니까.'

그는 서랍장 위에서 째깍거리는 자명종을 바라보았다. '하느님 맙소사!' 낭패였다. 6시 반이었다. 그러고도 시곗바늘이 조용히 앞으로 가서 30분을 지나 어느새 45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명종이 울리지 않았단 말인가? 침대에서 봐도 4시에 자명종이 제대로 맞춰져 있었다. 틀림없이 종이 울렸을 것이다. 그런데 가구가 울릴 정도로 요란한 자명종 소리도 듣지 못하고 편안히 잠을 잔다는 게 도대체 가능할까? 하긴 편안히 자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깊이 곯아떨어졌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기차는 7시에 있다. 그 기차를 타려면 부리나케 서둘러야 하는데, 아직 옷감견본도 챙겨 넣지 못했고, 몸 상태가 썩 가뿐히 움직일 것 같지도 않았다. 설령 7시 기차를 탄다 해도 사장의 날벼락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환이 5시 기차를 기다렸을 테고, 그레고르가 기차를 놓쳤다는 것을 이미 보고했을 터였다. 사환은 사장의 심복으로, 줏대도 이해심도 없었다. 아프다고 하면 어떨까? 그러나 그것도 아주 곤란한 일이고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레고르는 오 년 동안 근무하면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사장이 의료보험 담당 의사를 데리고 찾아올 것이고, 게으른 아들을 뒀다고 부모님을 야단칠 테고, 아무리 이의를 제기해도 의사의 소견을 앞세워 말을 잘라버릴 것이다. 모름지기 그런 의사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건강한데도 일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레고르의 경우 의사의 소견이 완전히 틀리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그는 늦잠을 잤는데도 정말 쓸데없이 졸린 것 말고는 아주 거뜬했고 심지어 왕성한 식욕도 느꼈다.

그레고르는 순식간에 이 모든 사정을 고려했지만 침대에서 일어날 결심은 미처 못했는데, 바로 그때 6시 45분 자명종이 울렸고, 침대 머리맡 쪽에서 방문을 조심스레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레고르야,"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였다. "6시 45분이야. 출근하지 않을 거니?" 얼마나 부드러운 목소리인가! 그런데 그레고르는 자기가 대답하는 목소리를 듣고서 깜짝 놀랐다. 틀림없이 예전의 목소리인데, 그 목소리에 섞여서 괴롭게 찍찍거리는 소리가 몸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이 처음에는 제대로 들렸지만, 그다음에는 찍찍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서 말을 삼켜버렸고, 결국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여부를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레고르는 자세히 대답하고 모든 것을 해명하려 했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 예, 고마워요 어머니, 금방 일어날게요."라고 대답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방문이 나무여서 그레고르의 목소리가 변했다는 것을 밖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할 터였다. 과연 어머니는 그의 대답에 안심했는지 발을 바닥에 끌며 물러갔다. (p.9-13)

 

그는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 원래 자리로 동라와서 한숨을 내쉬고 드러누었다. 그러자 짧은 다리들이 극성맞게 서로 다투는 꼴이 보였고, 이렇게 제멋대로인 짓거리를 가라앉히고 질서를 유지할 가망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침대에 죽치고 있을 수는 없다고 다짐했고, 침대에서 벗어날 희망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무엇이든 바치는 것이 상책이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이와 동시에 자포자기해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최대한 차분히 심사숙고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잊지 않고 틈틈이 되새겼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이따금 창밖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좁은 길거리의 맞은편까지 뒤덮은 아침 안개를 보자 자신감도 쾌활함도 회복하기 힘들었다. '벌써 7시야.' 다시 자명종이 울리자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벌써 7시인데 아직도 저렇게 안개가 자욱하다니.' 그는 잠시 숨을 죽이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완벽한 정적을 통해 현실적이고 납득할 만한 상황이 되돌아오기를 기대하기라도 하듯이. (p.15)

 

힘센 사람이 둘만 있으면 충분할 텐데. 아버지와 하녀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그의 둥그런 등짝 밑으로 팔을 밀어 넣고 침대에서 살살 끌어내면 될 텐데. 그를 받쳐 들고 자세를 낮추고, 그가 몸을 일으켜 방바닥에 바로 설 때까지 조심스레 참고 기다려주기만 하면 될 텐데. 방바닥에서는 짧은 다리들이 제구실을 해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은 접어두고라도, 정말로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사면초가의 곤경에도 이런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p.16)

 

어느새 상당히 전척돼 몸을 조금 세게 흔들어도 가까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고, 이제 곧 최종적인 결단을 내려야 했다. 오분 후면 7시 15분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현관문 초인종이 울렸다. "회사에서 누군가 찾아왔군." 그레고르는 중얼거리며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그럴수록 짧은 다리들은 더 극성스레 춤을 췄다. 한순간 온 집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구나." 그레고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부질없는 희망에 매달렸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하녀가 금세 또박또박 걸어가서 문을 열어줬다. 그레고르는 방문객의 처음 인사말만 들어도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지배인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이 회사는 직원이 아주 사소한 실수만 해도 대뜸 침소봉대해서 의심을 한다. 그런데 왜 하필 그레고르가 재수 없이 이런 회사에서 일하는 팔자란 말인가? 대체 왜 직원들을 모두 날건달 취급한단 말인가? 어찌하여 직원 중에 아침에 겨우 몇 시간 회사를 위해 유익한 일을 못했다고 양심에 찔려 바보처럼 굴고, 심지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그런 진실하고 충직한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정말이지 수습사원을 보내서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충분하지 않은가? 굳이 묻고 어쩌고 할 필요라도 있다면 말이다. 기어이 지배인이 직접 찾아와야 하는가? 이 미심쩍은 사안에 대한 조사를 반드시 지배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무고한 온 집안 식구들에게 보란 듯이 광고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레고르는 올바른 결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런 생각으로 흥분한 나머지 안간힘을 다해 참대에서 몸을 날렸다. 방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났지만,, 우려한 만큼 세게 쿵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떨어지는 충격이 양탄자 덕분에 다소 약화되었고, 등짝도 그레고르가 생각 했던 것보다는 탄력이 있어서 그다지 크게 울리지 않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다만 머리는 제대로 조심하지 않아서 바닥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는 짜증이 나고 아파서 머리를 돌리며 양탄자에 문질렀다. (p.16-17)

 

"사모님, 저도 달리는 납득이 되지 않네요." 지배인이 말했다.

"심각한 상태는 아니길 바랍니다. 다른 한편으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가볍게 아픈 것쯤은 웬만하면 업무를 생각해서 거뜬히 이겨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감인지 다행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요." (p.19)

 

그런데 여동생은 왜 우는 것일까? 그레고르가 일어나지 않고, 지배인을 방 안에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레고르가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고, 일자리를 잃으면 사장이 예전처럼 부모님에게 빚을 갚으라고 닦달할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당분간은 괜히 걱정할 필요가 없었따. 그레고르는 아직 버젓이 여기에 있고, 식구들을 저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이렇게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긴 했다. 하지만 그의 상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에게 지배인을 방 안에 들이라고 진지하게 요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사소한 결례에 대해서는 나중에 쉽게 그럴싸한 핑계를 대면 될 것이고, 이 정도 결례 때문에 그레고르를 당장 내쫓지는 못할 것이다. (p.19)

 

"잠자 씨!" 지배인이 언성을 높였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거기 방 안에서 농성을 하는군요. 그저 예, 아니요 하는 대답만 하고 괜히 부모님께 큰 걱정을 끼쳐드리잖아요.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하면,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직무유기를 하는군요. 부모님과 사장님의 이름으로 말하겠는데, 당장 명확한 해명을 엄중히 요구합니다. 놀라 자빠지겠군. 차분하고 분별 있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뜬금없이 유별난 변덕을 부리네. 사장님은 오늘 아침에 당신이 결근하 이유가 아마도 얼마 전에 맡긴 수금 문제 때문일 거라고 넌지시 언질을 주셨지요. 하지만 나는 정녕 내 명예를 걸고 단언하건대 그런 추측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여기서 보니 당신은 황당무계한 고집을 부리고 있어서 행여 눈곱만큼이라도 두둔할 마음이 싹 사라지네요. 당신 일자리는 철밥통이 아니오. 원래는 당신과 단둘이 얘기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쓸데없이 내 시간을 빼앗고 있으니 굳이 당신 부모님께 숨겨야 할지 모르겠소. 최근 당신의 영업실적은 아주 부진해요. 물론 특별매상을 올릴 시즌은 아니지. 그건 우리도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아예 매상이 전무한 시즌은 곤란해요, 잠자 씨. 그런 건 있을 수 없소."

"하지만 지배인님!" 그레고르는 정신없이 소리쳤고, 흥분한 나머지 다른 문제는 다 잊어버렸다. "당장 문을 열게요. 몸이 약간 불편하고 현기증이 나서 일어나지 못했어요.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어요. 하지만 금세 거뜬해졋어요. 지금 막 침대에서 일어나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런데 생각만큼 상태가 좋지는 않네요.. 하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어떻게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죠! 어제저녁에만 해도 말짱했답니다. 부모님도 잘 아시죠.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어제저녁부터 살짝 조짐이 있었어요. 어제 제 상태를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어째서 회상에 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결근하지 않고도 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늘 생각하잖아요. 지배인님! 부모님은 봐 주세요! 지금 저한테 쏟는 모든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어요. 아무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저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았거든요. 아마 지배인님은 제가 최근에 보내드린 주문장을 못 보신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8시 기차를 타고 출장을 가겠습니다. 두어 시간 쉬었더니 기운이 납니다. 제발 여기서 지체하지 마세요, 지배인님. 제가 바로 회사에 갈 테니까요. 너그러운 아량으로 사장님께 그렇게 전해주시고, 저를 좋게 말씀 드려주세요!" (p.20-2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 페터 빅셀 (전은경 옮김, 푸른숲)

..............................................................................................................................

 

그레고르는 지배인을 이런 기분 상태로 보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대로 보내면 회사에서 그의 일자리가 극히 위태로워질 터였다. 부모님은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부모님은 그레고르가 평생 이 회사에 몸담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게다가 지금은 눈앞에 닥친 걱정거리로 경황이 없어서 앞날을 내다볼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앞날을 내다봤다. 지배인을 제지하고, 진정시키고, 설득해서 반드시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레고르와 가족의 장래가 여기에 달린 것이다! 이럴 때 여동생이라도 여기 있었으면! 여동생은 영리했다. 여동생은 그가 가만히 누워 있을 때 이미 알아서 울어주었던 것이다. 여자에 약한 지배인은 틀림없이 여동생한테 넘어가을 터였다. 여동생이 대문을 닫고 현관복도에서 지배인을 살살 구슬려 놀란 가슴을 달래주면 될 텐데. 하필 이때 여동생이 없으니 그레고르 자신이 나서야 했다. (p.27)

 

문틈으로 살펴보니 거실에는 가스등이 밝혀져 있었다. 평소 이 시간이면 아버지가 석간신문을 어머니와 때로는 여동생한테도 소리 높여 읽어주곤 했는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동생은 아버지의 신문낭독 얘기를 늘 들려줬고 편지에도 쓰곤 했는데, 최근에는 낭독이 아예 중단된 모양이었다. 사방이 아주 조용했지만, 집이 비어 있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식구들이 어쩌면 이렇게 조용히 살까." 그레고르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어두운 허공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자신이 부모님과 여동생을 이렇게 근사한 집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 줬다고 생각하니 뿌듯한 자부심이 차올랐다. 그런데 이제 이 모든 평온과 풍족한 생활, 만족감이 끔찍하게 종말을 고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불길한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고 그레고르는 되도록 몸을 움직이고 방 안을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p.32)

 

확실히 부모님도 그레고르가 굶어 죽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레고르의 식사에 관해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정도를 넘어 직접 보는 것은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여동생은 가능하면 부모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부모님은 무척 힘들어했다. (p.36)

 

하녀는 사건 첫날 당장 집에서 내보내달라고 어머니에게 애걸복걸했는데, 그날 벌어진 일에 관해 하녀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그러고서 십오 분 후에 작별인사를 하면서 하녀는 눈물을 흘리며 해고시켜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해고가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행이라도 되는 것처럼. 또한 요구하지 않았는데 누구에게도 눈곱만큼도 발설하지 않겠노라고 굳이 철석같이 맹세를 했다. (p.37)

 

사건 첫날이 경과하는 동안 아버지는 벌써 집안의 모든 재산 상태와 향후 전망을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는 이따금 자리에서 일어나 오 년 전 사업이 파산했을 때 용케 건져낸 작은 베르트하임 금고에서 이런저런 증빙자료나 비망록을 꺼내왔다. 아버지가 금고의 복잡한 자물쇠를 열고, 찾던 서류를 꺼낸 다음 다시 닫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이렇게 재산 상태를 밝힌 것은 그레고르가 방 안에 갇힌 후 들은 이야기 중 그나마 처음으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금까지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사업자산이 티끌만큼도 남은 게 없다고 믿어온 것이다. 적어도 아버지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해준 적은 없었고, 물론 그레고르 역시 아버지에게 남은 재산에 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 당시 그레고르는 온 가족을 완전히 절망에 빠뜨린 파산의 불행을 식구들이 최대한 빨리 잊게 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데만 신경을 썼다. 그래서 당시에는 열성을 다해 일하기 시작했고,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말단 점원에서 외판원으로 승진했다. 외판원은 자연히 전혀 다른 돈벌이 가능성이 있었고, 영업실적을 올리면 금세 수수료 형태로 현금이 생겼다. 그는 그렇게 생긴 돈을 집으로 가져와 감탄하고 행복해하는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식탁에 꺼내놓곤 했다.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 후로는 그런 호시절은, 적어도 그 정도로 반짝한 시절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레고르는 돈을 잘 벌어서 온 식구가 지출하는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됐고, 실제로 감당했다. 식구들도 그레고르도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식구들은 고마워하며 돈을 받았고, 그레고르는 기꺼이 돈을 내주었다. 하지만 애틋한 정은 더 이상 살아나지 않았다. 다만 여동생과는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여동생은 그레고르와 달리 음악을 아주 좋아했고 바이올린을 감동적으로 연주할 줄 알았기 때문에, 그레고르는 내년에 여동생을 음악원에 보내려는 비밀스러운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자면 많은 학비가 들겠지만 개의치 않고 다른 방식으로 충당할 생각이었다. 그레고르가 이 도시에서 일하는 짧은 기간 동안 종종 여동생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음악원 얘기가 나왔는데, 언제나 허울 좋은 꿈에 불과했지 실현 가능성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도 그런 순진한 얘기를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레고르의 생각은 확고 했고, 성탄절 저녁에 근사하게 계획을 밝힐 작정이었다. (p.37-39)

 

아버지 자신도 남겨둔 재산 문제에는 오래도록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어머니가 그 모든 설명을 단번에 바로 이해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설명 중에 종종 같은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그래서 그레고르는 온갖 불행에도 예전에 챙겨둔 아주 적은 재산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이자를 손대지 않아서 그사이에 재산이 약간 불어났다는 것을 이제 제대로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그레고르가 자신의 몫으로 몇 굴덴만 갖고 매달 집으로 가져온 돈도 다 쓰지 않고 소규모 자금으로 축적되어 있었다. 그레고르는 문 뒤에서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 뜻밖의 사려와 절약정신에 흐뭇해했다. 본래는 이렇게 남겨둔 돈으로 아버지가 사장에게 진 빚을 더 많이 갚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레고르가 이 일자리를 벗어던질 날이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버지가 치한 조치가 분명히 더 유리했다.

그런데 이 돈은 식구들이 그 이자로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기껏해야 한두해 버틸 수 있을 만큼은 되겠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돈은 손대면 안 되고 비상시를 대비해 남겨둬야 하는 금액에 불과했다. 먹고살기 위한 돈은 따로 벌어야 했다. 아버지는 건강하긴 해도 노인네였고, 벌써 오 년째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 어떤 일도 제대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고생만 하고 성공하지 못한 인생에서 첫 휴가였던 지난 오년 동안 살이 많이 불었고, 그래서 몸이 꽤나 둔해졌다. 그렇다면 연로한 어머니가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천식을 앓아서 집 안에서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하고, 이틀이 멀다 하고 호흡곤란 증세로 창문을 열어놓고 소파에 드러누워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여동생이 돈을 벌어야 할까? 하지만 여동생은 열일곱 살 애가 아닌가. 여동생은 지금까지는 남부럽지 않게 혜택을 누려서 그저 맵시 있게 차려입고, 늦잠이나 자고, 집안 살림을 거들고, 두어 군데 소박한 파티에 참가하고, 무엇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다. 돈을 반드시 벌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레고르는 매번 문에서 얼른 떨어져 문 옆에 있는 서늘한 가죽소파에 몸을 던졌다. 부끄럽고 슬퍼서 얼굴이 화끈거렸기 때문이다. (p.39-40)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나자 이제는 여동생이 그의 외모에 특별히 놀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한 번은 여동생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와서 그레고르가 사람을 겁주기 딱 좋은 자세로 꼼짝 않고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과 맞닥뜨렸다. 그러자 그렇게 버티고 있어서 창문을 바로 열 수 없으니 여동생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그로서는 딱히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여동생은 들어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되돌아가면서 문을 닫아버렸다. 혹시 낯선 사람이 이런 광경을 목격했더라면 그레고르가 여동생을 노리다가 물려고 했다고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물론 그레고르는 즉시 소파 밑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점심때까지 기다려서야 여동생이 다시 돌아왔고, 평소보다 훨씬 불안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여동생이 자신을 보는 일이 여전히 견디기 힘들며 앞으로도 계속 견디기 힘들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동생이 그의 몸의 작은 부분이라도 소파 밑에서 삐져나온 것을 보고 달아나지 않으려면 엄청난 자기극복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레고르는 여동생에게 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어느날 리넨 시트를 등에 매고 끌고 와 - 이 작업을 하느라 무려 네시간이 걸렸다 - 소파 위에 걸쳐놓고 몸이 완전히 감춰질 수 있도록 정돈했다. 이제는 여동생이 몸을 구부린다 해도 그를 볼 수 없을 터였다. 여동생이 시트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치워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레고르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그렇게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 당연히 달가울 리 없지만, 여동생은 시트를 그대로 내버려뒀다. 한번은 여동생이 이 새로운 조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려고 그레고르가 머리로 시트를 살짝 들춰보니 심지어 고마워하고는 눈치가 느껴졌다. (p.41-42)

 

"우리가 가구를 치우면 병이 낫기를 바라는 희망을 아예 포기하고 개더러 알아서 하라고 야멸차게 방치하는 꼴이 되지 않겠니? 방을 원래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그레고르가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변함없다는 걸 알고서 힘들었던 시절을 더 쉽게 잊을 수 있지."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그레고르는 지난 두 달 내내 인간적인 대화를 직접 나눌 기회가 없었던 데다 식구들 사이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방을 깨끗이 치워주기를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대대로 물려받은 가구들이 정겹게 놓여 있는 따뜻한 방을 정말 텅 빈 동굴로 바꿔놓고 싶었을까? 물론 그렇게 하면 방해받지 않고 사방으로 기어 다닐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과거는 순식간에 깡그리 잊어버리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거의 잊어버릴 지경인데, 오랫동안 듣지 못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억을 일깨웠다. 아무것도 치우지 말고 전부 그대로 둬야 했다. 가구들이 그의 상태에 좋은 영향을 주도록 곡 이대로 유지돼야 했다. 가구들이 그가 이리저리 무의미하게 기어 다니는 것을 방해한다면 결코 손해가 아니라 큰 이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여동생은 그레고르의 문제를 의논할 때면 전문가인 양 부모님 앞에 나서는 데 익숙했는데, 물론 그런 태도가 반드시 부당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여동생의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충고가 오히려 원래 치우려 했던 서랍장과 책상뿐 아니라 꼭 필요한 소파만 제외하고 아예 모든 가구를 치우자고 주장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었다. 여동생이 이런 주장을 내세운 것은 단지 유치한 고집과 최근 들어 뜻밖에도 어렵게 성취한 자신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여동생이 관찰한 바로는 그레고르가 기어 다닐려면 넓은 광간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확인한 결과 가구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어쩌면 또래 소녀들처럼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해서 기회만 되면 끝장을 보려는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레테 역시 제 꾀에 넘어가서 그레고르를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이 잘해줄 수 있다는 일념으로 오히려 그의 처지를 더 끔찍하게 만드는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레고르 혼자서 지금 위치 그대로 텅 빈 벽을 누비고 다니는 방에는 그레테 말고는 그 어떤 사람도 감히 들어올 염두를 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여동생은 어머니의 만류에도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p.45-46)

 

그레고르는 특별한 문제가 생긴 게 아니고 그저 가구 두어 개를 옮기는 것뿐이라고 자신을 거듭 타일렀다. 그렇지만 모녀가 왔다 갔다 하고, 서로 나직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구, 가구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나는 것이 사방에서 그를 향해 조여 오는 대소동으로 느껴지는 것을 이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머리와 다리를 바짝 끌어당기고 몸을 바닥에 꼭 누르고 있었지만, 이 모든 소동을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모녀는 그의 방을 비우고 그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치우고 있었다. 실톱과 다른 연장들이 든 서랍장은 일찌감치 밖으로 치워졌다. 이제는 바닥에 붙박이로 고정된 책상을 들썩였다. 상과대학 학생 시절, 중학생 시절, 심지어 초등학생 시절부터 숙제를 했던 책상이었다. 이제는 정말 한가로이 어머니와 여동생의 선의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는 모녀가 방에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을 지경이었다. 모녀는 이제 기진맥진해서 아무 말없이 일을 했고, 터벅터벅 무거운 발소리만이 들려왔다.

모녀가 옆방에서 책상에 기대어 한숨 돌리는 사이에 그레고르는 소파 밑에서 기어 나와 달리는 방향을 네 번이나 바꿨다. 정말 무엇부터 먼저 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새 다른 곳은 다 비어버린 벽에 온몸에 모피를 두른 여자의 사진만 걸려 있는 것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는 얼른 기어올라가서 액자의 유리에 몸을 밀착시켰다. 유리는 그의 몸을 지탱해 줬고, 뜨거운 배가 유리에 닿자 기분 좋게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그레고르가 몸으로 완전히 덮은 이 사진만은 분명 아무도 치우지 못할 것이다. 그는 머리를 거실 문 쪽으로 돌려 여자들이 돌아오는지 지켜봤다. 

모녀는 마음 놓고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금세 돌아왔다. 그레테는 한쪽 팔로 어머니를 감싸 안고 거의 끌고 오다시피 했다. 그레테가 "이제 뭘 치울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여동생의 시선이 벽에 붙어 잇는 그레고르의 시선과 마주쳤다. 여동생이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어머니가 함께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동생은 어머니 쪽으로 얼굴을 숙여 어머니가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게 막았고,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연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거실로 나가서 좀 쉬면 어떨까? 나가요." 그레고르가 보기에 여동생의 속셈은 뻔했다. 어머니를 일단 안전하게 모셔놓고, 그다음에는 그레고르를 벽에서 쫓아내려는 것이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라지! 그레고르는 여성의 사진을 순순히 내주지 않으려고 꼭 달라붙었다. 사진을 내줄 바에야 차라리 그레테의 얼굴로 뛰어내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레테의 말에 비로소 덜컥 불안해진 어머니는 옆으로 비켜섰고, 꽃무늬가 수 놓인 벽걸이용 양탄자에 커다란 갈색 얼룩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방금 본 것이 그레고르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머니는 갈라진 목소리로 "하느님 맙소사! 하느님 맙소사!"라고 비명을 지르고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양팔을 쭉 뻗은 채 소파에 풀썩 쓰러져서 꼼짝도 못했다. 그러자 여동생이 주먹을 치켜들고 "야, 그레고르"라고 고함을 치면서 눈을 부라렸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후 여동생이 그에게 직접 건넨 첫마디였다. 여동생은 어머니를 기절 상태에서 깨어나게 할 추출액 같은 것을 가지러 옆방으로 달려갔다. 그레고르 역시 도와주고 싶었다. 아직 사진을 구할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그런데 몸이 유리에 꼭 달라붙어서 힘들게 떼어내야 했다. 그도 옆방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여동생이 작은 병을 이것저것 뒤지는 동안 뒤에서 잠자코 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몸을 돌린 여동생이 질겁했고, 그 바람에 병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려 깨드리고 말았다. 유리 조각이 그레고르의 얼굴에 상처를 냈고, 알 수 없는 부식성 약물이 그의 주위로 흘러왔다. 그레테는 더 지체하지 않고 손에 들 수 있는 만큼 작은 병들을 집어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고, 방에 들어가서는 문을 발로 차서 닫았다. 이제 그레고르는 어머니와 단절된 상태였고, 어머니는 그의 잘못으로 어쩌면 사경을 헤매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방문을 열수 없었다. 어머니 곁에 있어야 하는 여동생이 달아나면 곤란했다. 이제는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는 자책감과 근심 걱저응로 초조한 나머지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p.47-49)

 

아버지는 현관복도에서 들어오자마자 "에잇!" 하고 분노와 희열을 동시에 느끼는 듯한 어조로 고함을 질렀다. 그레고르는 문에 기댄 머리를 앞으로 당겨서 아버지 쪽으로 쳐들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렇게 당당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물론 최근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여기저기 기어 다니느라 예전처럼 다른 방의 동정에 신경을 쓰는 일을 게을리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변화된 상황과 맞닥뜨릴 각오는 다졌어야 했다. 그렇다 해도, 아버지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전에는 그레고르가 출장을 가고 없으면 아버지는 피곤하다고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맞나 싶었다. 그레고르가 집으로 돌아오는 전겨 무렵에는 잠옷 바람으로 등받이 의자에 앉은 채 그를 맞아주곤 했다.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반갑다는 표시로 그저 팔을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일 년 중 어쩌다 몇 차례 일요일이나 명절에 함께 산책을 나가면 그렇지 않아도 특히나 천천히 걷던 그레고르와 어머니 사이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더 천천히 걷지 않았던가? 낡은 외투로 몸을 감싼 채 늘 T자형 지팡이를 조심스레 짚으며 힘들게 나아가지 않았던가? 뭔가 할 말이 있으면 거의 매번 걸음을 멈추고 함께 걷던 어머니와 그레고르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던 아버지가 지금은 당당하게 꼿꼿이 서 있었다. 금단추가 달린 팽팽한 푸른색 제복 차림이 은행 사환이 입는 옷과 비슷했다. 상의의 빳빳한 높은 옷깃 위로 두툼한 이중턱이 삐져나와 있었다. 덥수룩한 눈썹 아래로는 까만 눈동자의 눈빛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평소에 헝클어져 있던 흰머리는 거슬릴 정도로 반듯하게 가르마를 타고 단정하게 빗어서 반들거렸다. 아버지는 은행 이니셜로 보이는 금실 머리글자가 박힌 모자를 집어던졌는데, 모자는 거실 전체를 가로질러 포물선을 그리며 소파로 날아갔다. 그러고는 긴 제복 상의의 끝자락을 뒤로 젖히고 양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인상을 찌푸리며 그레고르에게 다가왔다. 아버지 자신도 딱히 어쩔 작정인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발을 눈에 띄게 높이 들었는데,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장화 밑창이 거인의 신발처럼 커서 깜짝 놀랐다. 그레고르는 제자리에 가만있지 않았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 첫날부터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최대한 엄하게 다루는 것이 상책이라 여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피해 달아났다. 아버지가 가만 있으면 그도 멈췄고,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다시 급히 앞으로 달아놨다. 둘은 이렇게 방 안을 여러 바퀴 돌았지만 결정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가 워낙 느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쫓기는 모양새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레고르도 지금은 바닥에만 있었다. 혹시라도 벽이나 천장으로 달아나면 특별히 악의를 품고 있다가 아버지가 오해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물론 그레고르는 이런 달리기를 오래 버틸 수는 없다고 인정하지 않으 수 없었다. 아버지가 한걸음 내딛는 동안 그는 무수히 많은 동작을 취해야 했던 것이다. 예전에도 폐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제 호흡곤란이 유난히 심해졌다. 그레고르는 안간힘을 닿대 달리려고 버둥거렸지만 거의 눈도 뜨기 힘들었다. 머리가 멍한 상태여서 달리는 것 말고는 다른 구원의 가능성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벽을 타고 달아날 수도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물론 거실 벽을 가로막은 가구들은 정교하게 세공돼서 톱니 모양과 뽀죡한 부분이 많긴 했다. 그때 바로 옆에서 뭔가가 가볍게 던져진 듯 툭 떨어지더니 그의 앞으로 굴러왔다. 사과였다. 곧이어 두 번째 사과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레고르는 화들짝 놀라서 멈춰 섰다. 더 이상 달아나봤자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그를 사과로 폭격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음식을 놓아두는 탁자 위에 놓인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를 꺼내 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당장은 정확히 조준하지는 않고 사과를 하나씩 던졌다. 작고 빨간 사과들이 전기라도 통한 듯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서로 부딪혔다. 약하게 던져진 사과 하나가 그레고르의 등을 스쳤지만 아무 탈 없이 굴러갔다. 그런데 곧이어 던져진 사과가 문자 그대로 그레고르의 등짝에 박히고 말았다. 그레고르는 믿기지 않을 만큼 끔찍한 통증이 장소가 바뀌면 가라앉기라도 할 것처럼 계속 기어가려 했다. 하지만 못에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모든 감각이 완전히 흐트러진 상태에서 쭉 뻗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의 방문이 활짝 열러디니 비명을 지르는 여동생 앞에서 어머니가 다급히 달려오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내의 차림이었는데, 여동생이 기절한 어머니의 숨통을 틔우려고 옷을 벗겼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고, 매듭이 풀린 치마가 달리느라 하나씩 바닥에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치맛자락에 걸려 휘청거리며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끌어안고 아버지와 완전히 일체가 되어 - 이제 그레고르는 어는덧 시력이 거의 마비되었다 -  아버지의 뒷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제발 그레고르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p.50-53)

 

그레고르는 심한 부상 때문에 한 달을 넘게 앓았다. 사과는 아무도 감히 제거할 엄두를 내지 못해 눈에 띄는 기념물이 되어 살에 박힌 채 있었다. 이 일로 아버지조차 지금 그레고르가 애처롭고도 역겨운 몰골이지만 그래도 한식구이니 원수처럼 대해서는 안되며 거부감을 삼키고 그저 참고 또 참는 것만이 가족의 도리를 다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제 그레고르는 상처 때문에 기동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지금 상태로는 방을 가로질러 기어가는데도 늙은 상이군인처럼 몇십 분이 걸렸으며, 높은 곳에 기어오르는 일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몸 상태가 악화된 대신 그의 생각에는 아주 흡족한 보상이 생겼다. 다름 아니라 매일 저녁 무렵 거실로 통하는 방문을 열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문을 열기 한두 시간 전부터 이미 거실 쪽을 주의 깊게 관찰하곤 했다. 거실에서는 보이지 않게 어두운 방 안에 드러누워 온 식구가 환하게 밝힌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전과는 달리 사실상 모두의 허락 하에 식구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예전처럼 활기찬 대화는 아니었다. 그레고르는 좁은 호텔방에서 눅눅한 이부자리에 지친 몸을 던지고는 식구들의 대화를 늘 다소 그리워하며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대체로 대화가 아주 조용히 흘러갔다. 아버지는 저녁식사 후 의자에 앉은 채 금세 잠이 들었다. 그러면 어머니와 여동생은 서로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어머니는 등불 아래로 몸을 잔뜩 구부리고 의상실에 보낼 고급 속옷을 바느질했다. 판매원 자리를 얻은 여동생은 저녁에는 속기술과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나중에 더 좋은 자리에 오를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따금 아버지가 깼는데,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처럼 어머니에게 "오늘도 이렇게 늦도록 바늘지이야"라고 하고는 금방 다시 잠이 들었고, 그러면 어머니와 여동생은 피곤한 표정으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p.53-53)

 

식구들이 이렇게 일에 지쳐 녹초가 됐는데 과연 누가 꼭 필요한 이상으로 그레고르에게 계속 신경을 써줄 여유가 있겠는가? 집안 살림은 점점 축소되었다. 이제는 하녀도 내보냈다. 대신 기골이 장대한 파출부가 흰머리를 휘날리며 아침저녁으로 와서 힘든 일을 해치웠다. 다른 잔일은 어머니가 바느질거리가 많은 중에도 다 해냈다. 심지어 식구들의 갖가지 장신구도 내다 파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예전에 어머니와 여동생은 즐거운 모임이나 잔치에 갈 때 그런 장신구를 착용하고서 행복에 겨워했다. 그레고르는 저녁에 식구들이 판매 가격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얘기를 듣고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늘 언급되는 가장 큰 고충은 지금 형편으로는 너무 큰 이 집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레고르를 과연 어떻게 옮겨야 할지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이사를 못하는 이유가 자신에 대한 배려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적당한 상자에 숨구멍을 몇 개 뚫으면 그를 쉽게 옮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식구들이 이사를 못하는 주된 이유는 친척이나 지인을 통틀어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불행을 당했다는 생각, 그 막막한 절망감 때문이었다. 세상이 가난한 사람에게 요구하는 일을 식구들은 극한까지 해냈다. 아버지는 은행의 말단 직원들에게 아침식사를 날라줬고, 어머니는 낯 모르는 사람들의 속옷을 손질하는 일에 몸을 바쳤으며, 여동생은 고객이 시키는 대로 판매대 뒤에서 이리 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식구들은 더 이상 여력이 없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아버지를 침대까지 데려다준 다음에 돌아와서 일거리를 그대로 둔 채 서로 뺨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앉았다. 어머니는 그레고르의 방을 가리키면서 "그레테야, 저 문 닫아라"라고 했고, 그레고르는 다시 어두운 방에 갇히게 되었으며, 그사이에 모녀는 얼굴을 맞대고 눈물을 흘리거나 아니면 울지는 않고 식탁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일을 겪자 그레고르는 등의 상처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p.56-57)

 

물론 아무도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식구들은 바이올린 연주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반면 하숙인들은 처음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악보를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여동생의 보면대에 바짝 다가갔고, 그래서 확실히 여동생의 연주에 방해가 됐다. 그들은 그러다가 이내 소리가 들릴 정도로 뭐라고 숙덕거리더니 고개를 숙이고 창가로 갔으며, 아버지가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그대로 창가에 머물렀다. 그들은 근사하거나 즐거운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거라고 기대했다가 실망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연주가 온통 지겹지만 휴식에 방해가 돼도 그저 예의상 참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코와 입으로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내뿜는 모양새에서 엄청나게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도 여동생은 아주 멋지게 연주를 했다. 여동생은 얼굴을 옆으로 기울인 채 찬찬히 살피며 슬픈 눈길로 악보의 선을 따라갔다. 그레고르는 한 구간 더 앞으로 기어나갔고 제발 여동생의 눈길과 마주치길 바라며 머리를 바닥에 바짝 댔다. 이렇게 음악에 매료되었는데 어찌 그가 짐승이란 말인가? 그레고르는 동경하는 미지의 음식을 찾아가는 길이 트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여동생이 있는 데까지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여동생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겨서 바이올린을 갖고 자신의 방으로 가자고 넌지시 일러줄 생각이었다. 여기서는 아무도 그레고르만큼 이 연주에 대해 보상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적어도 그가 살아나 있는 동안에는 여동생을 그의 방에서 내보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자면 그의 끔찍한 모습이 처음으로 쓸모가 있을 것이다. 그는 모든 방문을 동시에 지키고 공격자들에 맞서 으르렁댈 작정이었다. 하지만 여동생은 강요당해선 안되고 자발적으로 그의 곁에 있어야 한다. 여동생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녀를 음악원에 보내줄 생각이 확고했노라고 털어놓고 싶었다. 이런 불행만 닥치지 않았으면 지난번 크리스마스 때 - 그새 크리스마스가 지나갔을 테지? - 그 어떤 반대에도 개의치 않고 온 식구에게 이런 생각을 밝혔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런 말을 들려주면 여동생은 감동의 눈물을 쏟을 것이고, 그러면 그레고르는 여동생의 어깨까지 몸을 일으켜 세워 목덜미에 키스를 할 것이다. 가게에 나가기 시작하고부터 여동생은 목덜미를 리본이나 옷깃으로 가리지 않고 드러냈다. (p.63-64)

 

여동생이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하며 말을 시작하는 신호로 식탁을 손으로 쳤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요. 두 분은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알아요. 저는 이 흉악한 짐승을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겠어요. 우리는 저걸 치워버릴 궁리를 해야 한다는 말만 할게요. 우리는 저걸 보살펴주고 참고 견디려고 사람이 할 수 있는 한도까지는 다 했어요. 그러니 아무도 우리를 털끝만치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백번 천번 옳은 말이다."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아직까지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어머니는 정신 나간 눈빛을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둔탁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얼른 어머니한테 달려가서 이마를 받쳐줬다. 아버지는 여동생의 말을 듣고서 생각이 정리됐는지 똑바로 앉아서 하숙인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내버려 둔 접시들 사이에 사환 모자를 올려놓고 만지작거렸으며, 이따금 가만있는 그레고를 쪽을 힐끗 쳐다봤다.

"우리는 저걸 치워버릴 궁리를 해야 해요." 여동생은 이제 순전히 아버지 하고만 얘기했다. 어머니는 기침 때문에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저것이 두 분을 말려 죽이고 말 거예요. 눈에 선하게 보여요. 우리 온 식구가 힘들게 일해야 하는 처지에 집에 와서도 이 영원한 골칫거리를 감당할 수는 없어요. 저도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여동생은 너무 격하게 울음을 터뜨려서 눈물이 어머니의 얼굴에 줄줄 흘러내렸고, 그러자 여동생은 손을 건성으로 움직여 어머니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가 딱하다는 듯 이해심이 묻어나는 어조로 말했다. "얘야,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여동생은 자기도 속수무책이라는 시늉으로 어깨를 으쓱했는데, 조금 전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우는 동안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쟤가 우리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 아버지는 반쯤은 묻는 어조로 말을 꺼냈고, 그러자 여동생은 울다 말고 마구 손사래를 치면서 그건 생각도 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쟤가 우리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아버지는 그건 불가능하다는 여동생의 확신을 받아들이는 표시로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야 혹시라도 우리가 쟤와 합의를 보는 것도 가능할 텐데. 하지만 그렇게......."

"저건 없어져야 해요." 여동생이 아버지의 말을 끊고 소리쳤다.

"아버지,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요. 제발 저게 그레고르라는 생각부터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불행을 자초한 거라고요. 저게 대체 어떻게 그레고르일 수 있어요? 만약 그레고르라면 인간이 저런 짐승과 함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진작 깨닫고 자진해서 떠났겠죠. 그러면 우리는 오빠를 잃겠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갈 수 있고 추모하는 마음을 간직할 거예요. 그런데 이 짐승은 우리를 이토록 못살게 굴고 하숙인들을 쫓아내니 틀림없이 온 집을 독차지하고 우리를 길거리로 내몰 거라고요. 저기 보세요. 아버지." 여동생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또 시작해요!" 그레고르는 도무지 영문을 몰랐지만 여동생은 질겁해서 어머니마저 버렸는데, 그레고르 가까이에 있느니 차라리 어머니를 희생시키겠다는 식으로 그야말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아버지의 뒤로 달려갔다. 아버지도 순전히 여동생의 행동 때문에 흥분해서 덩달아 일어나 여동생을 지켜주려는 듯 팔을 반쯤 들어 여동생 앞을 막았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여동생은 물론 누구한테도 겁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기 시작한 것뿐인데, 하긴 그런 동작도 유난히 눈에 띄긴 했다. (p.66-69)

 

그레고르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밖에서 누군가가 다급히 문을 닫고 단단히 걸어 잠갔다. 등 뒤에서 갑작스러운 소동이 벌어지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만 다리를 접질리고 말았다. 그렇게 다급하게 행동한 것은 여동생이었다. 여동생은 진작부터 일어나서 기다리다가 잽싸게 달려온 것인데, 그레고르는 여동생이 달려오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던 것이다. 이윽고 여동생은 자물쇠에 열쇠를 넣어 돌리면서 부모님을 향해  "드디어 해냈어요!"라고 외쳤다.

'이제 어쩌지?' 그레고르는 자문하면서 어두운 방 안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제 움직일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렇다고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렇게 가냘픈 다리로 계속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 말고는 비교적 편안한 느낌이었다. 온몸이 아프긴 했지만, 통증도 점점 약해지고 또 약해져서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등에 박힌 썩은 사과와 그 주위에 생긴 염증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는데, 염증 주위는 온통 미세한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식구들을 돌이켜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고 사랑이 느껴졌다. 그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여동생보다도 그가 훨씬 더 단호했다. 이런 상태로 공허하고도 평화로운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에 어느덧 시계탑의 시계가 새벽 3시를 울렸다. 그는 창밖으로 사방이 환해지기 시작하는 것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는 의지와 무관하게 머리를 푹 떨꿨고, 콧구멍에서 마지막 숨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이른 아침에 파출부가 왔다. 힘이 워낙 세고 성미도 급한 파출부는 제발 그러지 말라고 번번이 타일렀는데도 모든 문을 탕탕 두들겼고, 그 바람에 그녀가 오고부터는 집 안 어디에서도 도무지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그레고르의 방을 잠깐 들여다보았는데, 처음에는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레고르가 일부러 저렇게 꼼짝 않고 엎어져서 모욕당한 울분을 삭이는구나 생각했다. 하긴 녀석이 그래도 생각은 멀쩡하다는 것을 익히 짐작했다. 마침 길쭉한 빗자루를 들고 있었기에 문간에 선 채 빗자루로 그레고르를 간질여보았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짜증이 나서 그레고르를 살짝 찔러봤는데, 여전히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자리에서 밀려나자 그제야 이상하다 싶었다. 그녀는 금세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서 눈이 휘둥그레져 자기도 모르게 혼자서 휘파람을 불었다. 하지만 더 지체하지 않고 침실 문을 활짝 열어 어두운 실내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어서 와보세요! 이게 뒈졌어요, 여기 뻗어 있다고요. 완전히 뒈졌다니까요!"

잠자 씨 부부는 부부용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파출부의 소동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말뜻을 알아들었다. 곧바로 잠자 씨와 부인은 침대 양옆으로 후닥닥 일어났고, 잠자 씨는 어깨에 담요를 걸친 채, 부인은 잠옷 바람으로 방에서 나왔다. 부부가 그레고르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사이에 거실 문도 열렸는데, 하숙인을 들인 후로 그레테는 거실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그레테는 옷을 완전히 차려입고  있어서 잠을 자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창백한 얼굴을 봐도 그런 것 같았다. 잠자 부인은 "죽었다고요?"라며 묻는 표정으로 파출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모든 것을 직접 살펴볼 수도 있었고, 아니 굳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뻔히 알 수 있었건만. 파출부는 "그렇다니까요."라고 대답하고는 확인시켜 주려고 빗자루로 그레고르의 시체를 옆으로 죽 밀쳤다. 잠자 부인은 빗자루를 제지하려는 동작을 취하다 그만두었다. 잠자 씨는 "이제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겠군"하고 말했다. 그는 성호를 그었고, 세 여자도 따라 했다. 그레데는 잠시도 사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보세요, 이렇게 말랐네요. 그렇게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잖아요. 음식을 들여놓아도 그대로 다시 내왔죠." 실제로 그레고르의 몸은 완전히 납작하게 말라 있었는데, 짧은 다리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밖에 시선을 끌 만한 어떤 것도 없는 지금에 와서야 그런 모습을 제대로 알아본 것이다.

"그레테야, 잠깐 우리 방에 가자꾸나." 잠자 부인이 슬픈 미소를 띠며 말했고, 그레테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따라 침실로 가면서도 사체를 자꾸 돌아봤다. 파출부는 그레고르의 방문을 닫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신선한 공기에 벌써 미지근한 온기가 감돌았다. 어느덧 3월 말이었다.

세명의 하숙인이 방에서 나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바라보면서 아침식사를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식구들은 하숙인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침식사는 어디 있지요?" 가운데 신사가 볼멘소리로 파출부에게 물었다. 하지만 파출부는 쉿 하고 손가락을 입에 대고 하숙인들에게 그레고르의 방으로 가보라고 다급히 말없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도 그레고르의 방에 들어가서 낡아빠진 상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어느새 완전히 환해진 그레고르의 방에서 그의 사체 주위에 둘러섰다.

그때 잠자 씨 부부의 침실 문이 열리면서 사환 제복을 입은 잠자 씨가 한쪽 팔에는 부인을 다른 팔에는 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세 식구는 모두 조금 울던 표정이었다. 그레테는 이따금 얼굴을 아버지의 팔에 기댔다.

"당신들 당장 이 집에서 나가시오!" 잠자 씨는 그렇게 말하고 현관문을 가리키면서도 여자들을 몸에서 떼어놓지는 않았다. 그러자 가운데 남자가 "무슨 말씀이죠?"라고 되물으면서 약간 당황해서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두 남자는 뒷짐을 진 채 양손을 쉴 새 없이 비벼댔는데, 대판 싸움이 벌어지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틀림없이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결판날 거라고 자신했던 것이다. 잠자 씨는 '방금 말한 그대로요"라고 대답하고 두 여자와 나란히 한 줄로 서서 가운데 하숙인에게 다가갔다. 하숙인은 처음에는 가만히 있다가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머릿속으로 판을 새롭게 짜는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남자는 "그럼 우리는 나가겠습니다."라고 하고는 잠자 씨를 쳐다봤는데, 얼떨결에 주눅이 들어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도 새삼스레 집주인의 허락을 구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자 씨는 눈을 부릅뜨고 그저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는 정말로 곧장 현관복도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두 친구는 어느새 손을 얌전히 거두고 잠시 분위기를 살피다가 곧장 폴짝폴짝 따라 나갔다. 잠자 씨가 그들보다 먼저 현관복도로 앞질러 나가서 자신들이 지도자와 합류하는 것을 막기라도 할까 봐 겁내는 눈치였다. 세 사람은 현관복도에서 옷걸이에 걸려 있던 모자를 집어 들고 지팡이통에서 지팡이를 꺼내고는 말없이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잠자 씨는 그래도 혹시나 하고 미심쩍어서 모녀와 함께 현관 앞까지 나갔는데, 그의 의구심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세 식구가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니 세 남자가 비록 느리긴 해도 긴 계단을 따라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층마다 계단실일 일정한 각도로 꺾이는 지점에서 사라졌다가 금세 다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들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들에 대한 잠자 씨 가족의 관심도 점차 식었다. 그때 정육점 점원이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당당한 자세로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가 위층으로 높이 올라갔고, 잠자 씨는 모녀와 함께 바로 난간을 떠나 모두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 안으로 돌아왔다.

세 사람은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이들은 하루쯤 일을 쉴 자격이 있을 뿐 아니라 휴식이 꼭 필요하기도 했다. 세 사람은 식탁에 앉아서 세 통의 사과편지를 썼다. 잠자 씨는 감독관에게, 부인은 일감을 주는 사람에게, 그레테는 가게 주인에게 썼다. 편지를 쓰는 동안 파출부가 들어와서 아침나절 일을 마쳤으니 가보겠다고 했다. 세 사람은 편지를 쓰느라 처음에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여전히 파출부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제야 식구들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파출부를 쳐다봤다. 잠자 씨가 '무슨 용무라도?"라고 물었다. 파출부는 문간에 서서 미소를 지었는데, 마치 이 가족에게 아주 기쁜 소식을 알려줄 게 있지만 꼬치꼬치 캐묻기 전에는 말하지 않겠다는 표정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잠자 씨는 파출부의 모자에 꼿꼿이 꽂혀 있는 작은 타조 깃털이 그녀가 일하는 내내 못마땅했는데, 지금도 그 깃털이 사방으로 까불까불했다. "대체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요?" 잠자 부인이 다시 물었는데, 파출부는 그나마 그녀를 가장 존중하는 편이었다. 파출부는 "예"라고 대답하고는 딴에는 친근한 표시로 웃느라고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그러니까 옆방에 있는 그 잡것을 어떻게 치울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벌써 정리했거든요." 잠자 부인과 그레테는 계속 편지를 쓰려는 듯 편지지 쪽으로 몸을 숙였다. 하지만 잠자 씨는 이제 파출부가 어떻게 치웠는지 자세히 얘기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손을 뻗어서 그만하라고 단호히 막았다. 파출부는 얘기가 가로막히자 아주 급한 볼일이 있다는 걸 상기하고서 '그럼 자들 계슈"라고 작별인사를 했는데, 분명히 속이 상한 어투였다. 그녀는 홱 돌아서서 문을 무지막지하게 쾅 닫고는 집을 떠났다.

"저녁에 해고해야지." 잠자 씨가 말했지만, 부인도 딸도 뭐라고 대꾸를 하지 않았다. 겨우 평온을 되찾는가 싶었는데 기어코 파출부가 속을 휘저어놓은 것이다. 모녀는 일어나 창문 쪽으로 가서 서로 부둥켜안은 채 가만히 있었다. 잠자 씨는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돌려 잠시 모녀를 바라봤다. 이윽고 그가 소리쳤다.

"이리들 와바. 제발 지난 일은 내려놓자고. 그리고 나한테도 신경 좀 써줘."

모녀는 그의 말을 따라 곧장 그에게 달려가서 살갑게 쓰다듬어 주고는 서둘러 편지를 마무리했다.

이윽고 세 식구가 집을 나섰다. 벌써 몇 달째 함께 나들이를 하지 못했다. 전차를 타고 도시 근교의 야외로 갔다. 그들만이 앉아 있는 차량 안으로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그들은 편안하게 의자에 기댄 채 미래의 전망을 얘기했다. 곰곰이 따져보니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아 보였다. 지금까지 굳이 서로 캐묻지는 않았지만, 세 식구의 일자리는 모두 썩 괜찮은 편이었고 특히 앞으로의 전망이 밝았기 때문이다. 집을 바꿔 이사만 해도 당연히 지금보다 형편이 훨씬 좋아질 터였다. 그레고르가 직접 고른 지금 집보다 더 작고 싸지만 입지가 좋고 아주 실용적인 집으로 옮겨갈 생각이었다. 그런 얘기들을 나누는 사이에 잠자 씨 부부는 갈수록 생기가 도는 딸을 바라보면서,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온갖 고역을 치렀는데도 근래에 와서 어느덧 아름답고 풍만한 처녀로 피어났다는 걸 거의 동시에 알아봤다. 부부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심전심 눈길만 주고받으면서 이제 딸을 위해 착실한 신랑감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들이의 목적지에 도착해서 딸이 맨 먼저 일어나 젊은 몸으로 기지개를 켜자 잠자 씨 부부는 그들의 새로운 꿈과 근사한 계획이 제대로 들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p.69-76)

 

(1912년 11월 17일 - 12월 7일)

 

..............................................................................

<작품해설 - 임홍배 (서울대 독문학과 교수)>

변신은 3부로 구성되어 있어. 1부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신해 회사에 출근할 수 없게 된다. 그러자 회사 지배인이 집으로 찾아오는데, 그는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보고 질겁해서 도망친다. 1부 마지막에서 그레고르의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걷어차 방 안으로 날려 보내며, 그레고르는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의 방 안에 갇힌다. 2부에서는 그레고르의 여동생이 그레고르가 자유롭게 기어 다닐 수 있도록 방 안의 가구를 치우는 과정에서 소동이 벌어진다. 이로 인해 거실로 나오게 된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히는 중상을 입고 다시 자신의 방에 갇힌다. 3부에서 그레고르는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에 마음이 끌려 거실로 나왔다가 하숙인들에게 발각되며, 하숙인들은 당장 집에서 나가겠다고 아버지에게 항의한다. 그동안 그레고르를 보살피는 일을 도맡았던 여동생은 이 사건으로 그레고르가 없어져야 한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레고르는 결국 음식을 완전히 끊고 굶어 죽는데, 죽기 직전에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화해를 한다. 그레고르가 죽은 후 무거운 집에서 해방된 가족들은 교외로 소풍을 나가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이 그새 어엿한 처녀로 성숙한 것을 보며 신랑감을 구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신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첫 문장은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발ㄹ견했다"라고 묘사된다. 이런 자기 관찰에서 시작해 이어지는 이야기는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화자는 철저히 그레고르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별도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으며, 나중에 벌어진 사건이나 결말을 미리 암시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화자가 작중인물의 시점을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 방식은 카프카 소설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변신이 "꿈은 아니었다"라고 느끼므로 그가 벌레로 변신한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가족들 역시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벌레로만 취급한다. 이전의 문학전통에서 인간이 동물로 변하는 변신 이야기는 신들이 인간을 동물로 둔갑시키는 신화라든가 기적이나 환상이 펼쳐지는 동화에서 주로 등장했다. 그런데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 후 전개되는 이야기는 신화, 기적, 환상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소시민 가정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들로 이어진다. 카프카의 <변신>이 이전의 변신 이야기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뒤 가족들이 그의 말 - 문자 그대로 벌레의 소리로 찍찍거리는 - 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말을 벌레로 변신하기 전과 똑같이 알아듣는다. 그레그로는 벌레로 변신했지만 여전히 인간의 의식과 인지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즉 몸은 벌레이고 의식은 인간인 셈인데, 그렇다고 벌레 상태인 몸과 인간의 의식 사이에 경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며, 벌레의 몸과 생리가 인간적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전통적인 변신 이야기와 달리 주인공이 날짐승이나 들짐승이 아닌 '벌레'로 변신한 것은 인간의 지각과 사고가 닿기 힘들고 이해하기 힘든 상태를 상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요컨대 인간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 흔히 '소외'라 일컫는 - 가장 비인간적인 상태를 벌레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벌레가 딱정벌레나 풍뎅이 같은 특정한 종류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등이 갑옷처럼 딱딱하다는 묘사는 딱정벌레를 연상케 하지만, 수많은 가냘픈 다리가 버둥거리는 모습은 지네 같은 다족류를 떠올리게 한다. 카프카는 이 벌레가 특정한 종류와 동일시되는 것을 피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묘사했다. 당시 출판사가 이 벌레의 삽화를 넣으려 했을 때 카프카가 극구 반대했던 것도 벌레를 불가해한 수수께끼로 남겨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곧 이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그렇다면 그레고르가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레고르의 회상을 종합해 보면, 오 년 전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했고 그로 인해 그레고르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에게 큰 빚을 지게 됐다. 그때부터 그레고르는 부모님과 여동생을 부양하고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열성적으로 일해왔다.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해 5시 열차로 출근하는 고된 일과를 시작하며, 지난 오 년간 단 한 번도 결근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걱정하듯 퇴근 후 집에 와서 외출도 하지 않고 늘 회사 일만 생각하는 '일벌레'였던 것이다. 따라서 사실상 그레고르의 '변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레고르는 지금 벌레로 변한 심각한 사태에 대처하기보다는 오히려 줄곧 회사로 출근할 궁리만 하고 있다. 벌레의 몸으로 침대에서 꼼짝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초조하게 6시 30분, 6시 45분, 7시, 7시 10분 등 시시각각 시간을 재면서 8시 기차로는 출근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으로 유추해 보면, 지난 오 년 동안 그레고르는 몸이 웬만큼 아파서는 개의치 않고 어김없이 제시간에 출근했을 것이다. 즉 몸이 아파도 꾹 참고 고된 일을 감수했기 때문에 그런 중노동의 피로가 누적돼 지금처럼 자기 몸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그레고르가 지난 오 년간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기만일 수 있다. 아니, 자기기만이기 이전에, 회사의 통제 때문에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 길들여진 것이다. 정말 아프다고 해도 의료보험 담당 의사는 일하기 싫어서 생긴 꾀병이라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자기 몸을 보면서 외판원의 직업병인 독감의 전조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도 몸을 혹사하는 직장생활의 단면을 짐작케 한다. 외판원의 직업병이 독감이라는 말은 독감 정도는 달고 살면서 일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자기 몸이 벌레로 변한 상태를 고작 독감의 전조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모습을 통해, 몸을 혹사하는 노동이 반복되고 습관화되어 생각도 통제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레고르의 짐작에 따르면 회사 사환은 그레고르가 5시 기차에서 하차하지 않았다고 사장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회사가 문을 여는 7시 직후에 지배인이 직접 집으로 찾아왔다. 그레고르의 직장생활이 철저히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레고르는 지배인도 언젠가는 오늘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일을 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이 상상은 지배인이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르 보고 질겁해서 달아나는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흉측한 벌레를 본 지배인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로 달아나는데, 그 모습이 "균등하게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계속 몰아내는 것 같았다"라고 묘사된다. 여기서 지배인을 몰아내는 '보이지 않는 힘'은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의 몸에서 발산되는 것이므로 그레고르를 벌레로 만든 힘과 동일한 성질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레고르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는 직장생활의 시스템이 가하는 힘이다. 지배인은 외판원인 그레고르 위에 군림하는 것 같지만 지배인 역시 회사의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 그래서 부하 직원 그레고르가 출근하지 않자 직접 집까지 찾아와야 하는 톱니바퀴 시스템에 맞물려 있다 - 그레고르를 벌레로 전락시킨 동일한 힘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사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사장은 평소에 직원과 얘기할 때 책상 위에 걸터앉아 직원을 내려다보면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그러면서도 귀가 어두워서 직원이 바짝 가까이 다가가야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극히 단순한 몸동작만 표현하는 이 간결한 묘사는 사장 역시 직원에게 의존하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처럼 부하직원 위에 군림하는 지배인과 사장도 회사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다는 인식은 카프카가 자본주의를 전방위적 종속체제로 파악한 결과이다.

그레고르는 심신을 혹사하는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중압을 해소해 줄 출구가 전혀 없다. 외출도 하지 않으니 친구도 애인도 없다는 뜻이다. 즉 일체의 인간적 사생활이 아예 없는 것이다. 그가 벌어오는 돈을 가족들이 고맙게 받긴 하지만 더 이상 '애틋한 정'은 느끼지 못하므로 가족관계 역시 인간적인 정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 이처럼 인간적 감정을 느끼고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그레고르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직접 만든 액자에 잡지에서 오려낸 여성 사진을 넣어 책상 위에 걸어두는 것인데, 이는 현실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욕구의 대리만족을 찾으려는 것이다. 나중에 여동생이 그레고르의 방에 있는 모든 가구를 치우려 할 때 그레고르는 그림 액자만은 사수하려고 배로 액자를 완전히 감싼다. 그 대목에서 "뜨거운 배가 유리에 닿자 기분 좋게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라는 묘사가 암시하듯 그림에 대한 애착은 억눌린 성적 욕구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레고르의 변신과 더불어 그의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눈여겨볼 것은 그레고르가 벌레의 몸에 적응했을 때의 반응이다. 그는 방 안에서 밖에 있는 지배인에게 길게 자기변호를 하지만, 찍찍거리는 벌레의 소리를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며, 지배인은 '짐승 소리'라고 단언한다. 식구들이 놀라서 대소등이 벌어진 상황에서는 그레고르가 오히려 "훨씬 침착해졌다. 이제 사람들이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그는 자기 말이 또렷이, 아까보다는 또렷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마 귀가 적응한 덕분일 것이다"라고 인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식구들이 '짐스 소리'를 듣고 질겁한 위기상황에서 정작 그레고르는 자기 목소리를 알아들을 만큼 벌레 상태에 적응한 것에 안도하는 것이다. 작품은 그레고르가 벌레 상태에 적응하는 만큼 식구들이 질겁하는 인간적 반응에 둔감해지는 형국으로 흘러간다. 이것은 벌레의 생리가 인간적 의식과 판단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벌어지는 모습이다. 방문이 열리고 드디어 벌레의 몸이 식구들에게 노출될 때도 이런 상상은 반복된다. 벌레로 변한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기절해서 쓰러지고 아버지가 "건장한 가슴을 들썩이며 울기 시작"하는 판국에 그레고르는 '"자신만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지배인에게 이제 옷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겠다고 말한다. 벌레의 몸에 더 적응했기 때문에 침착한 것인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 출근할 태세를 취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수많은 다리가 바닥에 닿아 의지대로 움직이자 그는 "오늘 아침 처음으로 몸이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고통이 말끔히 나을 때가 임박했다고 믿었다"라며 착각에 빠진다. 이처럼 그레고르는 벌레의 생리에 적응할수록 심신의 편안함을 느낀다. 이것은 처음부터 식구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 소통의 단절과 고립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레고르는 점점 더 벌레의 생리대로, 벌레처럼 움직이고 인간적 의식이 잠식되어 가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의식을 마지막 순간까지 견지하려 한다. 그는 가족들에게 고통스러운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음식을 끊고 굶어 죽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가족들을 떠올리며 가슴 뭉클한 연민과 애정을 느끼고 마음속으로 화해하는 깊은 인간애를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그레고르가 변신한 후 여동생과 아버지의 반응 및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동생은 그레고르와 유일하게 마음이 통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바이올린을 '감동적으로' 연주하는 아끼는 여동생을 음악원에 입학시키겠다고 다짐한다. 신뢰와 기대가 쌓였던 덕분인지 여동생은 그레고르가 변신한 수 수발을 도맡는다. 이 일로 여동생을 어린애 취급하던 부모님도 그녀를 칭찬하며, 여동생은 부모님 앞에 그레고르 문제의 '전문가'로 나설 만큼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런 여동생도 자신이 세명의 하숙인 앞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할 때, 그레고르가 나타나 소동이 벌어지자 그것을 '저것'이라 칭하며 사라져야 한다고 극언을 한다. 여동생도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한편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고 나서도 여동생을 여전히 열일복살 '어린애'로 간주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사실 여동생이 그레고를 보살피는 것은 부모님도 못하는 끔찍한 궂은일을 혼자 도맡아 하는 것이다. 여동생이 집안에서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분명한 징표다. 그럼에도 그레고르는 그런 여동생을 가리켜 "애처럼 가벼운 생각으로 이렇게 힘든 일을 떠맡았을 것이다"라고 오판한다.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 장면에서 그레고르가 여동생을 자기 방으로 데려가 평생 보호하며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대목은 더욱 문제다. 좋게 보면 평생 여동생의 후견인 역할을 하겠다는 선의의 결심이지만, 그것도 여동생을 언제까지 어린애로 보호하겠다는 발상이므로 이미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한 여동생에겐 과한 억압이다. 또 이 대목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누이에 대한 근친애적 감정은 사회생활에서 욕구 충족의 대상을 찾을 수 없던 성적 욕망이 우회로로 표출되는 양상이다. 그것 역시 직장에 나가면서부터 옷깃으로 목덜미를 숨기지 않는 성숙한 처녀가 된 여동생에겐 억압적이다. 그레고르가 죽은 후 가족들이 교외로 소풍을 나간 마지막 장면에서 여동생이 부모님이 보기에 처음으로 "아름답고 풍만한 처녀로 피어"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레고르가 지난 오 년 간 실질적인 '가장'역할을 맡은 이래 여동생에 대해 줄곤 '후견인'의 태도를 보인 것은 사실상 가장의 권력으로 여동생의 성숙을 억압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혹시 그레고르가 아버지에게도 알게 모르게 그런 권력을 행사한 것은 아닐까? 물론 아버지와의 관계는 출발점이 다르다. 아버지가 파산하기 전까지 그레고르는 사업가인 아버지 덕분에 대학까지 졸업하는 은혜를 입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파산한 후 그레고르가 아버지의 사업 빚을 갚아나가고 가족 부양을 위해 힘들게 일하는 것은 그 은혜를 갚는 것이자, 가부장제 사회의 덕목에 맞게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문제는 일에 너무 얽매여서 인간적인 생활의 여유를 전혀 가질 수 없었다는 데 있다. 더근본적인 문제는 외판원이라는 직업이 그레고르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빚만 갚으면 이 직장을 때려치우겠다는 생각을 거듭한다. 이는 순전히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으며, 그래서 심신이 더욱 피폐해진 것을 드러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레고르가 직장에 나갈 수 없게 된 결과 그 자체는 그가 속으로 바라 마지않던 바이다. 물론 이것은 식구들로부터 문자 그대로 벌레 취급을 당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벌레'가 해석을 요구하는 수수께끼, 즉 은유라고 본다면 직장을 잃은 그레고르는 놀고먹는 '식충'이란 의미에서 벨레가 된 셈이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2부 마지막에서 아버지가 그레고르에게 던진 사과가 그의 등에 박히는 사건은 가족 부양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응징의 의미를 갖는다. '사과'가 원죄를 상징하는 선악과라는 점을 상기하면 그레고르가 사실상의 가장 역할을 하면서 가장의 자리에서 밀려난 아버지의 누적된 열패감이 분노로 폭발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사과를 던지기 이전 장면에서 아버지가 "분노와 희열을 동시에 느끼는 듯한 어조로" 고함을 지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단서는 그레고르가 아버지를 다시 일하기에는 너무 허약한 노인네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은행 사환으로 일을 나가기 시작한 아버지는 "당당하게 꼿꼿이 서" 있었고 "까만 눈동자의 눈빛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심지어 아버지에게 쫓기던 중 그레고르의 눈에 띈 아버지의 신발은 '거인'의 신발처럼 엄청나게 커 보인다. 파산으로 너무 일찍 은퇴한 아버지가 가장 당당히 복권한 것이다. 이제 그레고르가 지난 오 년간 가장 역할을 한 것은 아버지에게 원죄를 지은 것으로 치환된다. 타고난 원죄가 우리 자신의 잘못과 무관하듯 그레고르의 원죄 역시 그러하다.

부모님의 방에서 세상을 떠난 그레고르를 위한 간단한 추모의식을 가진 후 세 식구는 교외로 소풍을 간다. 빗방울이 창문 발코니의 함석판을 요란스레 치는 심란한 첫 장면과 달리 마지막 장면에서는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세 식구는 모두 밝은 미래를 예감하며 들떠 있다. 카프카는 이 마지막 장면을 "도저히 못 읽어주겠다"며 못마땅해했는데, 그레고르의 변신 이후 시종일관 무겁기만 했던 이전과 너무 대비되는 밝은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 역시 가족들이 그레고르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났다고 금세 이렇게 표정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야속한 생각이 들 법하다. 그런데 세 식구에게는 그들이 단지 그레고르라는 짐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가장' 그레고르에게만 의존해 더부살이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모두가 일거리를 가지고 삶을 책임지는 존재로 자립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소풍을 가면서 세 식구는 밝은 '미래의 전망'을 얘기하는 것이다. 특히 앞서 살펴본 대로 그레고르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부터 알게 모르게 가장으로 군림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들의 자립은 단순히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세 식구 모두 자기 일을 찾았기 때문에 향후 가족관계에서 적어도 일방적 의존과 종속의 관계는 넘어설 여지가 생긴 것이다. 바로 그것이 그레고르에게만 의존하면서 차갑게 식어버린 '애틋한 정'과 '사랑'을 되살릴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그레고르가 죽기 직전에 가족들을 떠올리며 사랑의 감정으로 화해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식구들이 그런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그레고르가 "창밖으로 사방이 환해지기 시작하는 것까지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의 빛을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까?

(중략)

그레고르가 죽는 장면을 집필한 후 카프카는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조금 전에 죽었으니 울어달라고 호소하며, 가족들과 화해하고 죽었으니 위안으로 삼으라고 덧붙인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카프카 자신도 그레고르의 죽음에 깊이 슬퍼하고 모종의 일체감을 느꼈던 것 같다. 때문에 카프카가 위의 일기에서 말하는 "어쩌면 위험하고 어쩌면 구원을 주는 글쓰기의 위안"과 "더 높은 차원의 관찰"은 그레고르가 굶어 죽는 사건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그레고르가 굶기 시작한 것은 여동생이 표독스러운 발언을 하기 이전으로 소급된다. 그레고르를 건사하는 일이 새로 고용한 파출부의 손에 넘겨진 직후부터 그레고르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레고르의 변신 전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파출부는 그레고르를 늙은 말똥구리라고 놀리며, 그레고르의 방 청소도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세명의 하숙인들을 들인 후 집 안의 온갖 잡동사니가 그레고르의 방에 버려지면서 그의 방은 쓰레기장이 된다. 잡동사니 사이를 기어 다니며 온몸ㅇ에 먼지를 뒤집어쓴 그레고르도 이제 사실상 쓰레기의 일부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레고르가 음식을 끊고 굶기 시작하는 것은 죽음만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유일한 길임을 자각한 결단일 것이다. 그의 죽음 충동의 전조는 앞선 부분에서도 확인된다. 여러 달이 지나도 여동생이 여전히 자신을 보기 꺼려하고 두려워하자 그레고르는 하얀 시트를 끌고 와 소파 위를 덮어서 몸을 그 속으로 완전히 숨긴다. 물론 식구들에게 자기 몸을 숨기려는 생각과 영영 사라져야 한다는 결심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그렇지만 하얀 시트로 몸을 덮는 행위는 죽은 자를 덮는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대목부터 그레고르는 이미 자신도 모르게 죽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카프카에 따르면 이생의 삶은 견딜 수 없고 다른 삶에는 도달하지 못한 절망적 상황에 직면하여 죽고 싶은 소망이 인식되는 첫 번째 징표이다. 그레고르가 굶어 죽기를 택한 것도 이런 삶은 사는 게 아니라는 인식에서 이생의 삶을 마감하고 다른 삶에 도달하려는 결단이라 할 수 있다. 그레고르가 마지막 순간에 "공허하고 평화로운 상념"에 잠겨 죽음을 맞을 때 여기서 말하는 '공허함'은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 그 어떤 미련도 원망도 없이 깨끗이 정화된 마음을 가리킨다. 또한 계속 굶어서 몸이 말라 더 이상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 육탈에 상응하는 정화된 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평화로운 것이고, 가족과의 화해도 가능했던 것이다. 정화된 마음은 인간과 사물을 '죽이고 확인하는' 언어 사용자의 대열에 끼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레고르가 죽음의 순간에 느끼는 내면의 빛도 그저 새벽에 동터오는 외경으로만 보일 뿐이다. 카프카 생시에 그의 삶과 문학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한 친구 막스 브로트가 통찰한 대로 카프카 문학에서 본질적인 것은 우리 눈에 쉽게 포착되지 않는 '비가시적인 것'이다.

이외에도 <변신>은 카프카 문학의 중요한 특징들을 담고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변신'은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말살하는 정신적, 육체적 혹사가 초래한 비인간적 소외의 극단을 보여주는 은유인 동시에 작가 카프카가 창작을 방해하는 직업세계로부터 해방되고자 했던 소망을 함축하고 있다. 이처럼 카프카의 문학은 고정된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다층적 다의성을 구축한다. 그 다의성은 단순히 관념적 구성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처럼 살아 꿈틀대는 '생물'의 복잡성에 연유한다. 예컨대 처음에는 낯설고 제어되지 않던 벌레의 마음까지도 어느 순간부터 벌레의 살이에 적응한다. 즉 벌레라는 은유 자체가 계속 살아 움직이며 변신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이와 관련해 카프카의 모든 작품이 '제스처들의 암호'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카프카는 실제로 이 제스처에 처음부터 확실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관관계를 변화시키고 실험적인 배치를 하여 의미를 탐색한다. <변신>에서도 그런 제스처의 암호가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다. 예컨대 그레고르의 아버지가 세명의 하숙인을 집에서 쫓아내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부인과 딸을 양쪽 팔에 끼고서 세 식구가 나란히 한 줄로 서서 하숙인들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여기서 아버지가 가운데 선 것은 집안의 중심, 즉 가장의 자리를 회복한 것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작품 초반에서 그레고르가 변신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양쪽 옆방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이 초조하게그레고르를 ㅜ르는 모습과 대비된다. 처음에는 그레고르가 오 년째 사실상의 가장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모녀가 그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의존관계가 심해질수록 '애틋한 정'은 사라지고 굳게 잠긴 방문처럼 소통이 단절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한편 세 식구와 마찬가지로 하숙인들도 세명이며, 그중 한 명은 항상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우두머리임을 과시한다. 실제로 다른 두 명은 매사에 꼭두각시처럼 우두머리를 따라 한다. 서로 불편한 관계로 엉킬 수 있는 세 명이 한 방에 하숙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지만, 우두머리의 통제에 따라 세명의 권력구조를 암시한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레고르가 살아 있을 때 세 식구는 세명의 하숙인에게 식사공간으로 거실을 내주고 식구들은 부엌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집 안에서 가장 깨끗했을 여동생의 방을 하숙방으로 내주고 여동생은 거실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그레고르가 죽은 후 아버지가 하숙인을 내쫓은 것은 그레고르 때문에 아버지를 겁박한 것에 대한 응징이라 할 수 있다. 세 식구와 세 하숙인의 양자구도에서 '가운데'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은 가부장의 권위가 엄격한 가족관계에도 사회의 권력구조가 스며들어 있음을 암시한다. 세 식구가 하숙인들을 받들어 모시는 처지였을 때는 가족관계도 사회의 권력구조에 그만큼 더 많이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죽은 후 외부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 새로운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권력구조에서 자유로울 여유가 생긴 셈이고, 그래서 하숙인들을 당당히 내쫓은 것이다. (p.219-237)

 

<사견 첨부>

액자에 매달린 그레고르는 가족 부양의 의무를 끝내고 새로운 배우자를 찾으려는 그레고르의 결혼 의지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직은 그레고르가 가족을 떠나서 독립된 가정을 꾸리는 것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등에 박힌 사과는 그레고르가 지금까지 가족을 부양한 지금까지의 노력을 다시 아버지가 돌려주는 것이다. 이제는 그레고르가 아닌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아버지의 의지.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보상은 훌륭한 신랑감을 찾지 못했다는 것으로 따라서 여동생을 음악원에 보내서 좀 더 나은 계급으로의 승급을 통해서 훌륭한 배우자를 찾아주고자 하는 그레고르의 희망.

 

..............................................................................................................................................................................................................................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5년 12월 31일 ~ 1924년 12월 31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카프카는 1883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하여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년간 프라하의 형사법원과 민사법원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1908년에는 노동자산재보험공사에 취직해 14년 동안 근무하면서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꾼 카프카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을 시작으로,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 등의 미완성 장편, 그리고 작품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와 일기 등 총 3,400여 쪽에 달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또한 약 1,500통의 편지를 작성하는 등 방대한 글쓰기 활동을 지속했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았고 세 번의 파혼과 권위적이던 아버지와의 갈등, 신경쇠약 등에 시달리면서도 꾸준히 집필 활동에 몰두했으나, 병이 악화되어 1924년 6월 3일 오스트리아 빈 근교 키얼링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카프카는 죽기 전 평생의 벗이었던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미완성 작품을 모두 없애달라고 부탁했지만, 브로트는 이를 지키지 않고 그의 유작들을 정리해 출간했다.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소외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그려낸 카프카의 작품들은 지금도 다양한 측면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재발견되고 있다.

 

........................................

변신 - 프판츠 카프카 (전영애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이주동 옮김, 솔출판사)

(김태환 옮김, 을유 세계문학)

(홍성광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