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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2. 서양 - 고전 시

캣츠 - 엘리엇 (김승희 옮김, 문학세계사)

by handaikhan 2023. 2. 8.

엘리엇 - 캣츠

 

<고양이 이름 짓기>

 

고양이 이름 짓는 건 어려운 문제,

재미삼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처음 당신은 우릴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고양에겐 반드시 ㅅ 가지 이름이 필요하답니다

우선 가족들이 평상시 부르는 이름

피터, 오거스터스, 알론조, 제임스 같은 것,

빅터, 조나단, 조지, 빌 베일리 같은 것

모두 그럴듯한 평상시 이름

더 환상적인 이름도 있지요, 당신이 더 달콤하게 들린다 생각하실 만한

신사분을 위한 것도 있고, 숙녀분을 위한 것도 있어요

플라토, 아드미터스, 엘렉트라, 데미터 같은 것 -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그럴듯한 평상시 이름

거듭 말씀드리지만, 고양이게겐 특별한 이름이 필요하답니다,

독특한 이름, 좀더 위엄있는 이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꼬리를 꼿꼿이 세울 수 있을까요?

어찌 그리 수염을 쫙 펴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런 이름을 몇 가지 들어보자면,

문커스트랩, 쿼억소, 코리코팻 같은 이름,

봄바루리나, 젤리로럼 같은 이름 -

오직 한 마리 고양이를 위한 단 하나의 이름,

어쨌거나 아직 한 가지 이름이 더 남아 있으니,

당신은 상상도 못할 이름,

인간이 아무리 연구한들 찾아낼 수 없는 그런 이름 -

고양이 혼자만 알고 있을뿐,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이름

고양이가 심오한 명상에 잠겨 있는 걸 발견하신다면,

그것은 늘 같은 이유

바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음미하는 시간

말할 수 없는, 말로 하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고 불가해한 단 하나의 이름

 

<고양이게 말 걸기>

 

여러 고양이 이야기를 읽으셨죠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그들의 천성을 이해하는 데

통역자는 전혀 필요없습니다

아마 보시면서 충분히 느끼셨겠죠

고양이들이 당신이나 나, 그리고 여러가지의 다른 사람들과

아주 많이 닮았다는 걸 말입니다

누구는 제정신이고 누구는 미쳤고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나쁘고

누구는 좀더 낫고 누구는 더 나쁘고

그 모든 것들이 시 속에 다 드러나 있을 테니까요

다들 보셧지요, 그들이 일하는 모습, 노는 모습

그리고 알게 되셧지요, 그들에게 어울리는 이름과

습관과 주변환경

그런데

      어떤 식으로 고양이를 다하시겠어요?

 

우선 기억을 되살려드리자면

고양이는 개가 아닙니다

 

개들은 싸우는 걸 좋아하는 척한답니다

자주 짖기는 하지만 무슨 일은 아주 드물거든요

개는, 대체로

단순한 영혼이라고 부를 만한 그런 존재예요

물론 피크는 빼야겠지만요

괴상한 변덕을 부리는 개들도요

도시 주변ㄴ의 보통 개들은

광대짓을 많이 하는 편이지요

자존심과는 거리가 저만치 멀어서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런 개는 다루기도 아주 쉽답니다

턱 밑을 살살 간질이거나

등을 톡톡 치거나 발을 흔들어줘 보세요

그러면 장난을 치며 깔깔댈 거예요

그렇게 속편한 얼간이라서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좋아라 대답할 거예요

 

다시 한번 일러드여야겠네요

개는 개이고 - 고양이는 고양이입니다

 

고양이에 관해서 한 가지 규칙이 있다고들 하지요

고양이가 말을 하기 전까지 먼저 말을 걸지 마세요

저는 그건 못 참습니다

내 말은 당신이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겁니다

단, 늘 명심하세요. 고양이는

친한 척하면 싫어한다는 걸

먼저 인사를 하고, 모자를 벗은 다음

그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거세요: 오, 고양이!

만약 이웃집에 살아 전에 가끔 만난 고양이라면

(그가 날 만나러 내 아파트에 온다면)

난 그에게 어이구, 고양이님!이라고 인사를 하겠어요

그를 제임스 버즈-제임스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고 해도

아직 이름까지 건넬 단계는 아니랍니다

고양이에게 믿을 만한

친구로 인정받으려면

존경의 표시가 필요하니까요

예를 들면 크림 한 접시 같은 것 말이죠

뭐 가끔은 캐비어나

스트라스버그 파이

병조림한 들퀑고기나 연어조림을

챙겨줄 수도 있고요

입맛이 까다롭겠지만

(내가 아는 어떤 고양이는 다른 건 거들떠도 안 보고 토끼만 먹는

습성을 가진 것도 있어요

식사가 끝나면, 발을 핥아먹지요

양파 소스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거죠)

고양이는 이렇게 존경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요

그러니 곧 당신은 목적을 이루게 되겠죠

언젠가는 그와 이름을 부르는 친한 사이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것이 고양이에게 말 걸 때의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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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OM, 1888년 9월 26일 ~ 1965년 1월 4일)

미국계 영국 시인, 극작가 그리고 문학 비평가였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후에 영국에 귀화했다.

극작가로서 활약하기 전에는 시 〈황무지〉로 영미시계(英美詩界)에 큰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또한 비평가로서도 뛰어나 일약 유명해졌다. 〈스위니 아고니스티이즈〉(1926-27), 〈바위〉(1934), 〈사원의 살인〉(1935), 〈가족재회〉(1939), 〈칵테일 파티〉(1949), 〈비서〉(1953), 〈노정치가(老政治家)〉(1958) 등의 희곡을 발표하였는데 모두 운문으로 쓰여 있다. 그가 종교극, 또는 희극 등의 형식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항상 인간의 구제에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며 〈성당의 살인〉, 〈칵테일 파티〉 등은 특히 뛰어난 작품이다.
1888년 9월 26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헨리 웨어 엘리엇(1843~1919)은 성공한 사업가로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벽돌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의 어머니 샬럿 챔프 스턴즈(Charlotte Champe Stearns, 1843~1929)는 시인이자 사회운동가였다. 엘리엇은 살아남은 형제자매 여섯 명 중 막내였으며, 그의 부모는 그가 태어났을 때 모두 44세였다. 그의 네 명의 누나는 11세에서 19세까지였으며, 친구와 가족들에게는 외할아버지 토마스 스턴스의 이름을 따서 톰으로 불렸다.
1898년에서 1905년까지 스미스 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그곳에서 그는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배웠다. 그는 14세 때 이미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오마르 하이얌의 작품을 번역한 루바이야트의 영향이 컸다. 그의 최초의 시는 15세 때 수업시간에 연습으로 쓴 것이며, 이것은 후에 하버드 대학교의 학생 잡지인 《The Harvard Advocate》에 실렸다.
스미스 아카데미 졸업 후 엘리엇은 매사추세츠주의 밀턴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후에 그의 작품 《황무지》를 출판하게 될 스코필드 세이어를 만난다.
이후 1906년에서 1909년까지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3년만에 학사학위를 받았다. 후에 비평가 프랭크 커모드는 엘리엇이 하버드 대학 재학 중 아서 시몬스의 《시에서의 상징주의 운동》(The Symbolist Movement in Poetry, 1899)을 발견한 1908년이 엘리엇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썼다. 이 책은 그에게 쥘 라포르그, 아르튀르 랭보, 폴 발레리를 소개했으며, 실제로 엘리엇 자신도 발레리가 없었다면 트리스탄 꼬르비에를 접하지 못했을 것이라 쓰기도 했다.
졸업 후 엘리엇은 1910년부터 1년간 조교로 일한 후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파리 대학교, 마르부르크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 등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철학을 계속 공부한다.
1917년 시집 《프루프록 및 그 밖의 관찰》, 1922년 시 〈황무지〉를 발표하여 젊은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초기의 시는 영국 형이상학 시와 프랑스 상징주의 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현대 문명의 퇴폐성을 그리고 있다.
1927년 영국에 귀화하여 유니테리언에서 성공회로 개종하였다. 그는 스스로 문학은 고전주의, 정치는 왕당파, 종교는 앵글로 가톨릭(성공회의 가톨릭 전통을 중시하는 신학조류→고교회파)노선의 성공회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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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 - 엘리엇 (황동규 옮김, 민음사)

사중주 네 편 - 엘리엇 (윤헤준 옮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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