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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3. 시

꽃 - 김춘수 (시인생각)

by handaikhan 2023. 2. 1.

김춘수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

 

김춘수 -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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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다늅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三十步)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 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늅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늅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 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열 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잡히는 것 아무 것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의 분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항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뿌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다늅강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逆)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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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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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 처용 제1부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에 밟히며

잠을 깬다

숲속에서 바다가 잠을 깨듯이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남의 속도 모르는 새들이

금빛 깃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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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 처용단장 제1부

 

1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 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날이 저물자
내 늑골과 늑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고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또 아침이 오고
바다가 또 한 번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뚝 뚝 뚝, 천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또 밤이 와서
잠자는 내 어깨 위
그해의 새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의 한쪽이 조금 열리고
개동백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내리는 그
희디흰 눈발을 보고 있었다.


2
3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쪽 바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3월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3
벽(壁)이 걸어오고 있었다.
늙은 홰나무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밤에 눈을 뜨고 보면
호주(濠洲) 선교사네 집
회랑의 벽에 걸린 청동시계가
겨울도 다 갔는데
검고 긴 망또를 입고 걸어오고 있었다.
내 곁에는
바다가 잠을 자고 있었다.
잠자는 바다를 보면
바다는 또 제 품에
숭어새끼를 한 마리 잠재우고 있었다.

다시 또 잠을 자기 위하여 나는
검고 긴
한밤의 망또 속으로 들어가곤 하였다.
바다를 품에 안고
한 마리 숭어새끼와 함께 나는
다시 또 잠이 들곤 하였다.
 *
호주 선교사네 집에는
호주에서 가지고 온 해와 바람이
따로 또 있었다.
탱자나무 울 사이로
겨울에 죽두화가 피어 있었다.
주님 생일날 밤에는
눈이 내리고
내 눈썹과 눈썹 사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나비가 날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4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해안선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5
아침에 내린
복동이의 눈과 수동이의 눈은
두 마리의 금송아지가 되어
하늘로 갔다가
해 질 무렵
저희 아버지의 외발 달구지에 실려
금간 쇠방울 소리를 내며
돌아오곤 하였다.
한밤에 내린
복동이의 눈과 수동이의 눈은 또
잠자는 내 닫힌 눈꺼풀을
더운 물로 적시고 또 적시다가
동이 트기 전
저희 아버지의 외발 달구지에 실려
금간 쇠방울 소리를 내며
돌아가곤 하였다.
 *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아침을 뭉개고
바다를 뭉개고 있었다.
먼저 핀 산다화 한 송이가
시들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서넛 둘러앉아
불을 지피고 있었다.
아이들의 목덜미에도 불 속으로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6
모과(木瓜)나무 그늘로
느린 햇발의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지는 석양을 받은
적은 비탈 위
구기자 몇 알이 올리브빛으로 타고 있었다.
금붕어의 지느러미를 쉬게 하는
어항에는 크낙한 바다가
저물고 있었다.
VOU 하고 뱃고동이 두 번 울었다.
모과나무 그늘로
느린 햇발의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장난감 분수의 물보라가
솟았다간
하얗게 쓰러지곤 하였다.


7
새장에는 새똥 냄새도 오히려 향긋한
저녁이 오고 있었다.
잡혀온 산새의 눈은
꿈을 꾸고 있었다.
눈 속에서 눈을 먹고 겨울에 익는 열매
붉은 열매,
봄은 한 잎 두 잎 벚꽃이 지고 있었다.
입에 바람개비를 물고 한 아이가
비 개인 해안통(海岸通)을 달리고 있었다.
한 계집아이는 고운 목소리로
산토끼 토끼야를 부르면서
잡목림 너머 보리밭 위에 깔린
노을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8
내 손바닥에 고인 바다,
그때의 어리디어린 바다는 밤이었다.
새끼 무수리가 처음의 깃을 치고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동안
바다는 많이 자라서
허리까지 가슴까지 내 살을 적시고
내 살에 테 굵은 얼룩을 지우곤 하였다.
바다에 젖은
바다의 새하얀 모래톱을 달릴 때
즐겁고도 슬픈 빛나는 노래를
나는 혼자서만 부르고 있었다.
여름이 다한 어느 날이던가 나는
커다란 해바라기가 한 송이
다 자란 바다의 가장 살찐 곳에 떨어져
점점점 바다를 덮는 것을 보았다.


9
팔다리가 뽑힌 게가 한 마리
길게 파인 수렁을 가고 있었다.
길게 파인 수렁의 개나리꽃 그늘을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가고 있었다.
등에 업힌 듯한 그
두 개의 눈이 한없이 무겁게만 보였다.


10
은종이의 천사(天使)는
울고 있었다.
누가 코밑수염을 달아 주었기 때문이다.
제가 우는 눈물의 무게로
한쪽 어깨가 조금 기울고 있었다.
조금 기운 천사의
어깨 너머로
얼룩암소가 아이를 낳고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얼룩암소도 새벽까지 울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눈이
그 언저리에만 오고 있었다.


11
울지 말자,
산다화가 바다로 지고 있었다.
꽃잎 하나로 바다는 가리워지고
바다는 비로소
밝은 날의 제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발가벗은 바다를 바라보면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설청(雪晴)의 하늘 깊이
울지 말자,
산다화가 바다로 지고 있었다.


12
겨울이 다 가도록 운동장의
짧고 실한 장의자(長椅子)의 다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겨울이 다 가도록
아이들의 목덜미는 모두
눈에 덮인 가파른 비탈이었다.
산토끼의 바보,
무르팍에 피를 조금 흘리고 그때
너는 거짓말처럼 죽어 있었다.
봄이 와서
바람은 또 한번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
겨울에 죽은 네 무르팍의 피를
바다가 씻어 주고 있었다.
산토끼의 바보,
너는 죽어 바다로 가서
밝은 날 햇살 퍼지는
내 조그마한 눈웃음이 되고 있었다.


13
봄은 가고
그득히 비어 있던 풀밭 위 여름,
네 잎 토끼풀 하나,
상수리나무 잎들의
바다가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언제나 거기서부터 먼저
느린 햇발의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탱자나무 울이 있었고
탱자나무 가시에 찔린
서녘 하늘이 내 옆구리에
아프디아픈 새발톱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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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金春洙, 1922년 11월 25일 ~ 2004년 11월 29일)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광산이다. 

1935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중고교)에 입학. 1939년 경기공립중학교 5학년 때 자퇴하고 1940년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 입학. 1942년 일본의 가와사키 시 부두에서 일본 천황과 총독 정치를 비방하여 불경죄로 세다가야 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서울로 송치되었다.1945년 통영에서 유치환·윤이상·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 결성, 예술운동을 펼치고 시작활동을 본격화하였다. 1946년 통영중학교 교사로 부임 1948년까지 근무하였다. 1949년 마산중학교 교사로 전임하여 1951년까지 근무하였다. 1959년 문교부의 교수자격심사규정에 따라 국어국문학과 교수 자격을 인정받았으며, 12월에 제7회 자유아세아문학상을 조병화와 함께 수상하였다. 1960년 마산의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에 조교수로 취임,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겨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 양성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을 배출, 문단에서는 순수시 이론과 이 계열의 작품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1966년 경상남도문화상 수상. 1979년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옮긴 뒤 1981년까지 문리과대학 및 문과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이 되어 문공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해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었다. 1986년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1988년까지 위원장직을 맡았고, 그 해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선임되어 1988년까지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1991년 한국방송공사(KBS) 이사로 선임되어 1993년까지 이사직을 맡았다.1997년 제5회 대산문학상 수상. 1998년 제12회 인촌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 부인 명숙경 사망 후 외손녀 두 명과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여생을 보냈다. 2004년 제19회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수상. 그 해 8월 4일 식사 도중 기도폐색으로 입원 11월 29일 오전 9시경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유족으로 영희, 영애, 용목, 용욱, 용삼 등 3남 2녀가 있고, 장례는 시인장으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경기도 성남시 광주고원묘지에 묻혔다.통영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46년 8월 광복1주년 기념 시화집『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첫 시집『구름과 장미』(행문사, 1948)를 통영에서 자비로 출간하였다. 서문에 유치환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의로운 민족이기에 이와 같은 시인을 낳게 했느냐”는 등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늪』(문예사, 1950), 『기(旗)』(문예사, 1951)를 차례로 출간하였고, 네 번째 시집 『인인(隣人)』(문예사, 1953)은 연작시로 편성된 것으로 김춘수 자신이 손수 제본하여 출간했다. 다섯 번째 시집『꽃의 소묘』(백지사, 1959) 출간 후 같은 해 11월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춘조사, 1959)을 출간하였다.특히 시집『타령조 기타(打令調 其他)』(문화출판사, 1969)는 언어 실험 기간을 거쳐 ‘무의미시’로 넘어가는 전조를 보인다. 장타령의 가락을 끌어들이면서 현대문명 비판에 기울었으며,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친 경향을 보인다. 이후 시집『남천(南天)』(근역서재, 1977), 해외 기행시를 주축으로 한 시집『라틴 점묘(點描) 기타』(탑출판사, 1988), 연작 장시『 처용단장』(미학사, 1991) 등에서 일련의 무의미시를 펼친다.산문시집『서서 잠자는 숲』(민음사, 1993)은 30여 년 간 시도했던 ‘무의미시’의 종착점에서 그 간의 방법론적인 긴장을 풀고 자유롭게 시상을 전개하였다. 이후 시집『호(壺)』(일터와 사랑,1995),『들림, 도스트예프스키』(민음사, 1997),『의자와 계단』(문학세계사, 1999),『거울 속의 천사』(민음사, 2001),『쉰한 편의 비가』(현대문학사, 2002)를 출간했다.시 창작뿐만 아니라 시론연구를 병행하여 이론서『한국근대시형태론』(해동문화사, 1958), 『시론』(송원출판사, 1972),『의미와 무의미』(문학과 지성사, 1976),『시의 표정(表情)』(문학과 지성사, 1979), 『시의 위상(位相)』(둥지, 1991)을 출간하였다. 특히 시론집『의미와 무의미』는 ‘무의미시’에 대해 새로운 견해와 해설, 시 단평 등을 담고 있다.그 외 수상집『빛속의 그늘』(예문관, 1976)을 비롯하여『오지 않는 저녁』(근역서재, 1979),『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문장사, 1980)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꽃과 여우』(민음사, 1997)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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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전집 (현대문학)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 김춘수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교보문고)

 

처용 - 김춘수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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