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 - 베니스의 상인 (1605년 초연)
[참고]
본 도서는 특정 종교의 신으로 번역하고 있으므로 일반 독자들에게 권하지 않음.
그라쉬아노:
앤토니오, 안색이 안좋아 보이는군.
자네는 세상일을 너무나 걱정해
걱정이 많으면 세상사를 즐길 수가 없는 법이네.
정말이지 자네는 너무 많이 변했네.
앤토니오:
그라쉬아노, 나는 단지 세상을 세상으로 여길 뿐이네.
세상은 각자 자기 역할을 하는 무대이고,
내 역할은 우울한 것이지.
그라쉬아노:
그렇다면 나는 광대 역할을 하겠네.
늙어서 주름살이 생길 것 같으면 즐거이 웃어서 생기게 하고,
생명을 단축하는 한숨 소리로 심장을 서늘하게 하기 보담
술로 간을 따뜻하게 하겠네.
오장육부가 뜨거운 사람이 왜 석고상으로 만든
할아범처럼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한단 말인가?
깨어 있을 때도 잠든 것처럼 침묵만 지키고,
성질만 부리며 황달병자처럼 시들어간단 말인가?
정말이지, 앤토니오, 이건 자네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네만,
안면에 고인 늪처럼 허멀겋게 이끼가 끼어
일부러 침묵을 지키는 괴상한 사람들이 있다네.
"나는 신탁만을 말하는 자니, 내가 입을 열 때는
개도 짖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현명하고, 진중하며, 생각이 깊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그런 자들은 그렇게 한다네.
아 앤토니오여, 나는 오직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현명하다는 평판을 얻은 자들을 몇몇 알고 있다네.
이들이 말을 하게 되면, 틀림없이 듣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저주하게 될 것이네.
그들이 자신들의 형제일지라도 바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이 얘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하겠네.
그러나 이 우울증이란 미끼를 써서
그 바보 같은 물고기, 평판이란 놈을 낚을 생각이랑 말게.
자 가세, 로렌조. 그럼 조금 있다가 보세.
점심식사 후에 내 설교는 마저 하기로 하겠네.
로렌조:
그럼 헤어졌다가 점심때 보세
그라쉬아노가 혼자서 다 떠드니
나야 침묵을 지켜 현자처럼 보이게 되었군.
그라쉬아노:
그렇담, 나하고 이 년만 더 벗하게 되면
자넨 목소리도 잊어버릴 걸세
앤토니오:
잘들 가게.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는 수다쟁이가 되겠네.
그라쉬아노:
그거 고마운 일이네. 침묵을 지켜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건
말린 소 혓바닥하고 내다팔 수도 없은 노쳐녀뿐이라네. (p.15-17, 1막 1장)
포셔:
정말이지, 네리사야, 내 이 작은 몸뚱이는 이 큰 세상에 염증이 나는구나.
네리사:
아가씨, 아가씨의 불행이 행운만큼이나 많다면 그렇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제가 보는 바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포식하는 사람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중요을 지킨다는 것은 적지 않은 행복입니다. 지나치면 더 빨리 흰머리가 늘지만, 적절하면 장수하는 법이랍니다. (p.22, 1막 2장)
포셔:
좋은 일 하는 것이 그걸 아는 것만큼 쉽기만 하다면, 작은 예배당이 큰 교회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오두막이 군주의 궁전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따르는 설교자는 훌륭한 성직자이지. 내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무 명 중의 한 사람이 되기보다 스 무명에게 선행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쉽다. 머리가 혈기를 다스리는 법을 만든다 해도, 뜨거운 기운은 차가운 법칙을 뛰어넘어 버린다. 청춘은 미친 토끼와 같아서 절름발이인 선한 충고의 그물코를 건너뛰어 버린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내가 남편감을 선택하는 방식이 못되지. 아, 내 팔자야, 이놈의 '선택'이라는 말을 쓰다니!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을 고를 수도 없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거절할 수도 없으니, 살아 있는 딸의 뜻이 죽은 아버지의 뜻 때문에 제약을 받는구나. 네리사야, 내가 남편을 고를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다니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 (p.23, 1막 2장)
샤일록:
내가 이 선심을 진짜로 보여주겠소.
나와 같이 공증인한테 가서 그곳에서 당신의
계약서에 단독 서명을 해주고, 이건 재미로 하는 겁니다만,
정해진 날짜, 정해진 장소에서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액수를 내게 되갚지 ㅇㄶ는다면, 위약금조로
정확하게 당신의 살 일 파운드를 내가 원하는 부위로
잘라내어 갖는다고 명시합시다. (p.40-41, 1막 3장)
모로코 군주:
내 피부색이 검다고 날 싫어하지 마시오.
이는 달아오른 태양이 가져다준 검은 복장이오.
난 태양과 이웃하며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자라났소.
태양신 피버스가 고드름을 녹인 적 없는
북구 태생의 얼굴빛이 더없이 흰 자를 데려와 보시오.
당신의 사랑을 얻기에 그와 나 중에서 누구의
피가 더 붉은지 상처를 내 증명해 보이리다.
아가씩께 말씀드리지만, 내 모습을 보고는 아주 용감한
사람들도 겁을 내는가 하면, 사랑에 걸고 맹세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최고라 여겨지는 처녀들이
이 모습을 사랑하기도 하오. 당신의 사랑을 훔치는 일이
아니라면,
나의 여왕이시여, 나는 이 피부색을 바꾸지 않겠소. (p.46, 제2막 1장)
살리리노:
약속시간이 거의 지난걸.
그라쉬아노:
그가 약속시간에 늦다니 별일이군.
연인들은 항상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타나잖어.
살라리노:
결혼 언약을 깨뜨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는 일에 있어서보다
새로운 사랑의 약속을 맺어주는 일에
비너스 여신의 마차를 끄는 비둘기들은 열 배나 빠르지!
그라쉬아노:
그건 만고불변의 진리지. 잔치 자리에서 일어설 때
앉을 때와 식욕이 똑같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
처음 달렸던 지루한 길을 조금도 지치지 않고
다시 달려 되돌아오는 말이 어디 있냐고?
세상만사는 욕구가 채워졌을 때보다 쫓을 때 더욱
신이 나는 법이지.
변덕쟁이 바람의 애무를 받으며 출항하는 배는
막내둥이나 탕아처럼 얼마나 깃발을 휘날리며
신바람이 나 항구를 떠나는가!
그러나 돌아올 때는 변덕쟁이 바람에 야위고 찢기고,
거지꼴이 되어, 목재는 비바람에 씻기고, 돛은 헤진 채
돌아온 탕자 같은 모습 아닌가! (p.75-76, 제 2막 6장)
제시카:
자, 이 함을 받으세요. 무거운 만큼 값나가는 거예요.
당신이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없는 밤이어서 기쁘네요.
변장한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우니까요.
그러나 사랑은 장님이니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아름다운 어리석음을 볼 수 없답니다.
만일 볼 수 있다면, 큐피드 조차 소년으로 변신한
제 모습을 보고 얼굴을 붉힐 겁니다. (p.77-78, 제2막 6장)
모로코 군주:
염병할! 이게 뭐야?
해골바가지라니. 패인 눈 속에
두루마리가 꽂혀 있군. 어디 읽어보자
"반짝이는 것이 다 금은 아니다.
그대는 이 말을 자주 들었겠지.
많은 사람들이 단지 나의 외모만을 바라보고
자신들의 목숨을 팔았지.
금박을 씌운 무덤엔 구더기가 들끓지.
그대가 대담한 만큼 현명했더라면,
사지는 젊더라도 판단력은 무르익었더라면,
이 두루마리에 쓴 답을 얻지는 않았을 것이오.
잘 가시오. 당신의 희망은 사라졌소.?
정말 희망은 사라지고, 수고는 헛되구나.
그다면 희망의 열기여 잘 가고, 찬서리여 오너라.
포셔 아가씨, 안녕히 계십시오. 너무나 마음이 슬퍼서
길게 작별을 고하지도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패자는 떠납
니다.
포셔:
가버려서 시원하다! 가서 커튼을 다시 쳐라.
그와 같은 얼굴색을 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골라주기를! (p.84-85, 제2막 7장)
애러곤 영주:
나도 그런 각오를 했소. 이제 행운이 내 마음의
소망에 뒤따르기를! 금, 은, 그리고 미천한 밥이라.
"나를 택하는 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주고 모험을 걸어야 한다."
내가 다 내주거나 모험을 걸려면 좀 더 근사해 보여야지.
금 함에는 뭐라고 쓰여 있나? 자, 어디 보자.
"나를 택하는 자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 그 "많은"이란 말은 겉만 보고
선택하는 어리석은 대중을 뜻하는 말이겠지.
안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어리석은 눈이 가르치는 것밖에
모르는 자들이지. 비바람 치는 외벽에다가,
심지어 파멸의 길 한복판에 집을 짓는 제비 같은 자들이지.
평민들과 함께 어울려서 야만스런 대중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택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너에게, 너 은 보석함을 선택해야지.
너는 무슨 글귀를 갖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내게 말해주렴.
"나를 택하는 사람은 의당 가질 만한 것을 갖데 될 것이다."
역시 좋은 말이군. 누가 운명의 여신을 속일 것이며
미덕이라는 각인이 없이 영예로울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분에 넘치는 자리를 차지하려 해서는 안 되지.
신분과 계급과 관직은 부정한 방법으로
얻어서는 안 되며, 깨끗한 영예는 미덕으로 얻어져야지!
그렇지 않다면 모자를 벗고 서 있는 더 얼마나 많은 하인들이
주인이 될 것인가!
명령을 내리는 얼마나 많은 자들이 명령을 받게 될 것인가!
진정한 명예의 씨앗에서 얼마나 많은 비천한 촌뜨기들이
생겨날 것이며, 이 시대의 검불과 쓰레기에 골라내져
새 단장을 할 명예로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게 될 것인가!
자 그렇다면 이제 선택을 해야지.
"나를 택하는 자는 응당 가질 만한 것을 갖데 될 것이다."
내가 받을 만한 것을 주장하자. 이 함의 열쇠를 주시오.
지금 당장 이곳에서 내 행운을 열어 보겠소.
포셔:
그것을 찾으려고 그처럼 오랫동안 뜸을 들이셨군요.
애러곤 영주:
휘둥그레 눈을 껌벅이며
내게 두루마리 글을 내밀고 있는
멍청이의 초상화가 아닌가! 읽어봐야겠다.
네 모습은 포셔와는 딴판이구나!
나의 희망과 내가 차지한 것과는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가!
"나를 택하는 자는 의당 차지할 만한 것을 갖데 될 것이다."
그래 내가 바보의 머리통을 차지할 가치밖에 없단 말인가?
이게 내 상인가? 내가 차지할 것이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포셔:
기소하고 판결하는 것은 각각 다른 일이고,
성격도 상반되는 것이지요.
애라곤 영주:
여기에 뭐라고 쓰여 있나?
"이 은 함은 불에 일곱 번 달궈졌다.
일곱 번 달궈져야 결코 잘못 선택하지 않는 판단이 나온다.
그림자에 입을 맞추는 자들이 있으며,
그런 사람들은 그림자 같은 축복만을 누린다.
은으로 뒤덮여 있는 정말로 살아 있는 바보들이
있으며, 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아내를 침실로 이끌던
그대는 영원히 바보로 남을 것이다.
그대의 볼일은 끝났으니 속히 떠나라."
이곳에 오래 머물수록
더욱 바보처럼 보이겟구나.
하나의 바보 머리를 가지고 청혼하러 왔다가
갈 때는 두 개가 되어 가는구나.
아가씨, 안녕히 계십시오. 명세는 지키겠소,
슬픔을 말없이 견디며. (p.91-94, 제2막 9장)
살라리노:
설마 그가 약속을 못 지킨다고 그의 살점을 떼어가지는 않겠지.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샤일록:
물고기 밥으로 쓰지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더라도 내 복수심은
채워줄 것이오. 그는 내게 모욕을 주었고, 오십만 듀카트나 되는
내 벌이를 막았고, 내 손해에 기뻐 웃었고, 내돈벌이를
조롱했으며, 내 민족을 경멸하고, 내 계약을 망치고,
내 친구 사이를 벌려놓고, 나의 적대감을 들끓게 했소.
왜 그랬을까요?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이죠. 유대인은 눈이 없습니까?
유대인은 손과 장기와 육신과 감각과 애정과 격정이
없습니까? 기독교인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무길
로 상처를 입고, 같은 질병에 걸리고, 같은 방식으로 치료를
받고, 똑같이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워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우리도 피가 나지 않습니까? 당신
들이 우리를 간지럼 태우면 우리도 웃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우리들에게 독약을 먹이면, 우리들은 죽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신들이 우리에게 해악을 가하면, 우리들은 복수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나머지 것들에서 당신들과 같다면, 그 점
에서도 당신들을 닮을 것입니다.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잘
못을 행한다면, 그 겸손하다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소? 복수입니다.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해친다면, 인
내하는 데는 이골이 난 유대인들은 기독교인의 본보기를 따
라 어떻게 하겠소? 그야, 복수이지요! 당신들이 나에게 가르
쳐준 악행을 나도 행할 것이며, 어렵사리 당신들의 가르침
을 능가할 것입니다. (p.101-102, 제 3막 1장)
포셔:
잘못 선택하면, 당신과 함께 있지 못하게 되니,
서두르지 말고 모험을 하기 전에 천천히 하루나
이틀 쉬세요. 잠시만 참으세요.
사랑은 아니지만 마음 속 무언가가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하네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증오는 이런 식으로 충고하지 않죠.
그러나 당신이 저를 오해만 하지 않는다면,
처녀의 수줍음 때문에 생각을 다 말할 수 없으니까요.
저를 얻기 위해 시험을 하기 전에
이곳에 한두 달쯤 당신을 붙잡아 두고 싶다 말하고 싶어요.
올바른 선택법을 가르쳐드릴 수는 있지만, 그러면
맹세를 깨뜨리는 것이 되죠.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러니 당신은 저를 잃을 수도 있어요.
허나 그렇게 되면, 당신은 저더러 차라리 맹세를 저버리는
죄를
지었더라면 하고 후회하게 만들 겁니다. 몹쓸 당신의 눈들!
당신의 눈이 저를 사로잡아서 제 마음을 갈라놓았답니다.
나의 절반은 당신 것이고, 나머지 절반도 당신 것입니다,
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요. 제 몫이 당신 것이라면
모두가 당신 것이랍니다. 주인과 소유권을 갈라놓는
아 이 사악한 시대여!
그러니 비록 당신 것이지만, 당신 것이 아니기도 하지요.
만약 내가 당신 것이 안 되는 일이 생긴다면
내가 아니라 운명의 여신이 그 때문에 저주들 받아야지요.
제가 너무 말이 많군요. 그러나 이건 시간을 끌고,
시간을 잡아 펼치고, 늘어뜨려서
당신의 함 선택을 지체시키기 위함이랍니다. (p.109, 제3막 2장)
바싸니오:
겉모습은 실제와는 딴판일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은 항상 치장에 속는 법이지.
법정에서도 달콤한 목소리로 치장한 때 묻고 부패한 변론가가
악의 모습을 감추어버리지 않는가? 종교에 있어서도
저주받을 이단자가 근엄한 얼굴을 하고,
아름다운 장식으로 더러움을 숨기고
성경을 인용하며 불신앙을 굳건히 하지 않던가?
겉모습에 어떤 식으로든 미덕의 표시를
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바보 같은 악덕은 없지.
마음은 모래톱처럼 거짓된 얼마나 많은 겁쟁이들이
턱에는 헤라클레스와 찡그린 마르스 신의 턱수염들을
달고 다니는가. 이들의 속을 헤쳐 보면 간은 우유처럼 희다.
그런데도 이들은 무시무시하게 보이려고 용자의 턱수염을
달고 다닌다. 미인을 봐라.
화장과 가발로 무거운 치장을 잔뜩 해서
이로써 본성을 바꾸는 기적을 행사하여
치장으로 육중한 여인일수록 가벼운 법이지.
곱슬거리며 흘러내리는 금발 머리단도 마찬가지지.
미인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의 머리에서 바람결에
사뿐히 춤추지만, 알고 보면 무덤 속에 누워 있는
해골, 남의 머리에서 가져온 선물에 불과하지. 이처럼 장식
이란 가장 위험한 바다로 내모는
음험한 해변에 불과하고, 검은 미인을 가리는
름다운 스카프에 불과하지. 한 마디로 말해서
현자를 꼬이기 위해서 사악한 시대가 입고 있는
그럴 듯한 진실의 옷이지. 그러니 너 허울 좋은 금이여,
미다스 왕의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여, 나는 너를 택하지 않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창백하고 천한 하인인
너도 역시 택하지 않겠다. 그러나 희망을 주기보다는
위협을 주는 너 천박한 납이여, 너의 희미함이
웅변보다 나를 감동시키는구나.
그러니 너를 택하겠다. 기쁜 결과가 있기를! (p.111-113, 제3막 2장)
바싸니오:
"겉 모습을 보고 선택하지 않은 그대,
바르고 진실되게 잘 골랐다.
이 행운이 그대에게 갔으니
만족하고 새 것을 차지 말라.
그대가 이것에 흡족해하고,
그대의 행운을 축복으로 여긴다면,
그대의 여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사랑하는 입맞춤으로 그녀를 차지하라." (p.114-115, 제 3막 2장)
바싸니오:
당신의 삼천 듀카트 대신에 여기 육천 듀카트를 갚겠네.
샤일록:
육천 듀카트의 하나하나가 여섯으로 나뉘고, 그 각각이
일 듀카트짜리 동전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돈을
갖지 않겠소. 난 계약서대로 하겠소.
공작:
아무 자비도 베풀지 않겠다면 어떻게 자비를 바라겠는가?
샤일록: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심판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각하는 사들인 노예들이 많으시죠.
이 자들을 각하는 각하의 당나귀, 개, 노새들처럼
천한 노역에 부려먹습니다.
각하가 돈을 주고 샀기 때문입니다.
"노예들을 해방시켜라! 노예들을 각하의 자식들과 결혼시키시오!
왜 그들은 노역으로 땀 흘립니까? 그들의 침대도 각하 것처럼
부드럽게 해주시고, 그들의 혓바닥도 부드러운 고기로
감칠맛이 돌게 해주시오 하고 제가 각하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각하는 이렇게 대답하시겠죠.
"그 노예들은 내 것이다." 저도 똑같은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에게 요구하는 살 일 파운드는 비싼 돈을 주고
산 것입니다. 그러니 제 것이고 제가 갖겠다는 것입니다.
이걸 거절하시면, 각하의 법이라는 것이 웃기는 거죠.
베니스의 법률은 효력을 잃게 되죠.
저는 판결을 요청합니다. 살덤을 떼어내도 될지 답변해 주
시오. (p.149-150, 제4막 1장)
포셔:
샤일록, 그들은 워금의 세 배나 되는 돈을 갚겠다고 제안해쏘.
샤일록:
맹세했습니다, 맹세. 하늘에다 맹세했단 말입니다!
제 영혼의 위증의 죄를 씌우시겠습니까? 안 될 일이죠. 베니
스를 다 주어도 안 되죠.
포셔:
참, 이 계약서의 날짜가 지났군요.
이 때무에 합법적으로 이 유대인은 저 상인의
심장 가장 가까운데서 살 일 파운드를 떼어낼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비를 베푸세요.
원금의 세 배를 받고, 이 계약서를 찢어버립시다.
샤일록:
거기 적힌 대로 지불받은 다음에요.
판사님은 훌륭한 재판관이고, 법을 잘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판사님의 설명은 지극히 합당합니다.
법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시니 법에 대고 판사님께
법을 집행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 영혼에 대고
맹세하지만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제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앤토니오:
진심으로 법정에 바라니
어서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포셔:
그렇다면 판결을 내리지요.
저 원고의 칼끝에 당신의 심장을 드러내시오.
샤일록:
아 고매하신 판사님, 아 훌륭한 젊은이여!
포셔:
법의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이 계약서에 갚기로 적힌 대로
위약금을 받아낼 충분한 권리가 그대에게 있소.
샤일록: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아 현명하고 올바르신 재판관님,
보기보다 얼마나 판단력이 성숙하신지요!
포셔:
그러니 피고는 가슴을 드러내시오.
샤일록:
그렇죠, 가슴을.
계약서에 그렇게 쓰여 있죠. 그렇지 않습니까, 훌륭하신
재판관님?
"심장에 가장 가까운 곳." 바로 그렇게 쓰여 있죠.
포셔:
그렇소. 살의 무게를 달 저울은 준비되었습니까?
샤일록:
이미 준비해 놨습니다.
포셔:
샤일록, 그가 피 흘려 죽을지도 모르니 그의 상처를 막을
의사를 당신이 비용을 대서 대기시켜 놓으시오.
샤일록:
계약서에 그렇게 명기되어 있습니까?
포셔:
그렇게 쓰여 있지는 않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요?
그 정도의 자비는 베푸는 것이 당신한테도 좋을 거요.
샤일록:
계약서에 그런 내용은 적혀 있지 않는데요.
포셔:
여보시오, 상인 양반. 뭐 하고 싶은 말은 없소?
앤토니오:
별로 없소이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하고 있습니다.
바싸니오, 악수하세. 잘 지내게.
자네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한다고 슬퍼하지 말게.
운명의 여신이 자신의 관례를 벗어나 이번에는
더욱 친절을 베푸는 것 같네. 관례적으로 운명의 여신은 비
참한 사람이 재산을 다 털어먹고도 살아남아
휑한 눈과 주름진 이마의 몰골을 하고
비참한 노년을 경험하도록 하지. 그런데 그런 비참한
회한의 세월을 나에게는 감해주지 않는가.
자네의 정숙한 부인에게 내 안부를 전해주게
부인이게 앤토니오가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
내가 얼마나 자네를 사랑했는지, 얼마나 의연하게 죽었는지
말해주게.
이야기를 끝마치고서 부인에게 바싸니오가 한때
진정한 우정을 누리지 않았는가를 판단해달라고 하게.
자네는 친구를 잃게 되는 것만 서글퍼하게,
자네 빚을 갚는 것을 그 친구는 후회하지 않는다네.
저 유대인인 칼질을 충분히 깊숙하게 해준다면
내 온 마음으로 즉시 빚을 갚게 될 것이네.
바싸니오:
앤토니오, 나는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아내와 결혼했네.
그러나 이 목숨도, 아내도, 온 세상도
내게는 자네 목숨보다 소중하지가 않네.
자네를 구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것들을 잃어도 좋아.
아니 여기 있는 저 악마에게 기꺼이 모두 제물로 바치겠네.
포셔:
당신 부인이 여기서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 같군요.
그라쉬아노:
나도 맹세코 사랑하는 부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 개 같은 유대인의 마음을 바꿔주도록
신께 빌 수 있다면 그녀가 죽어 하늘나라에 가도 상관없습니다.
네리사:
부인이 안 듣는 데서 그런 제안을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집안이 조용하질 못할 겁니다.
샤일록:
기독교도 남편이란 작자들은 다 이 모양이지!
나도 딸이 하나 있지만 기독교보다는
바라빠 같은 도둑놈에게 시집보내는 편이 낫지!
시간을 헛되이 끌고 있군요.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포셔:
바로 저 상인의 살 일 파운드는 당신 것이오.
본 법정은 법률에 의해서 그것을 당신에게 주는 바이오.
샤일록:
더없이 온당하신 재판관님이시여!
포셔:
그리고 당신은 그의 가슴에서 이 살을 떼어내야 하오.
본 법정은 벌률에 의해서 그것을 당신에게 승인하는 바이오.
샤일록:
더없이 현명하신 재판관님이시여! 판결이 내려졌으니, 자 준비하라.
포셔:
잠깐 기다리시오, 얘기가 끝나지 않았소.
이 계약서에 따르면 당신은 피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살 일 파운드"라고만 거기엔 쓰여 있소.
그러니 계약에 따라 살 일 파운드를 떼어 가시오.
그러나 살을 떼어내느라고 기독교인의 피 한방울이라도
흘리는 날에는 당신의 땅과 재산이 베니스의 법률에 의해서
국가의 소유로 몰수될 것입니다.
그라쉬아노:
아 온당하신 재판관님이시여!
봐라, 이 유대인 놈아, 아, 현명하신 재판관님!
샤일록:
그게 법률인가요?
포셔:
당신 눈으로 직접 법 조항을 보시오.
그대가 정의를 요구했으니 당신이 원하는 이상의
정의를 맛볼 것이오.
그라쉬아노:
아! 현명하신 재판관님! 잘 봐라, 이 유대인 놈아. 아! 현명하신 재판관님.
샤일록:
그렇다면 아까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원금의 세 배를 갚고
저 기독교인을 풀어주시오.
바싸니오:
자 그 돈 여기 있다.
포셔:
가만히 계시오.
저 유대인이 받을 수 있는 건 법의 심판뿐이오. 서두르지 말
고,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는 위약금밖에는 받을 수 없소.
그라쉬아노:
오, 유대인 놈아, 올바른 재판관님, 학식 있는 재판관님이로다!
포셔:
그러니 살점을 떼어낼 준비를 하시오.
피를 흘리지 말고, 더도 덜도 말고 정확하게
일 파운드의 살만 잘라내시오. 정확하게 일 파운드,
이상이나, 그 이하를 떼어내면, 그 무게가 가벼건
무겁건, 아니 일 그램의 이십분의 일일지라도,
아니 저울추가 머리카락 하나의 무게라도 기울면,
당신은 죽임을 당하고 당신의 재산은 몰수될 줄 아시오.
그라쉬아노:
제2의 다니엘이 나타나셨군, 다니엘 말이다. 이 유대인 놈아!
자 이교도 놈아, 넌 이제 단단히 걸려들었다.
포셔:
유대인은 왜 머뭇거리는가? 어서 당신의 위약금을 가져가
시오.
샤일록:
원금만 돌려주면 가겠소.
바싸니오:
자, 여기 준비되어 있다. 옜다.
포셔:
그는 이 공개법정에서 이미 그것을 거절했소.
그는 단지 계약서상의 정의를 원할 뿐이오.
그라쉬아노:
제2의 다니엘이 납셨다, 다니엘이라니까!
그 이름을 내게 가르쳐주어서 고맙네, 유대인 양반.
샤일록:
단지 원금만이라도 돌려받을 수 없겠소?
포셔:
당신의 목숨을 내놓고 가져갈 거라곤 위약금
살덩이밖에 없소, 유대인.
샤일록:
그렇다면 악마나 실컷 가져가라시오!
더 이상 여기 남아 논쟁하고 싶지 않소.
포셔:
거기 섰거라, 샤일록
법적으로 우리는 당신을 붙잡아둘 또 다른 권리가 있다.
베니스의 법에 규정되어 있기로
외국인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베니스 시민의
목숨을 노린 것이 증명되면, 그가 음모를 가한 상대방은
가해자의 재산 중 절반을 소유하게 되고, 나머지 절반은
국고로 귀속되게 되어 있다. 또한 가해자의 목숨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이의 없이 공작의 손에 달려 있다.
그대는 지금 이러한 상태에 처해 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로 판단해 보건데 직간접적으로 그대는
피고의 목숨을 노렸으며, 본인이 앞서 선언한 위험을 초래
했음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꿇어앉아 공작께 용서를 빌라.
그라쉬아노:
목매달아 죽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해 봐라.
그러나 재산이 국가에 몰수당했으니
밧줄 살 돈도 없겠구나.
그러니 밧줄 값은 국비에서 지불해주지.
공작:
기독교인의 정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대가 간청하기 전에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대 재산의 절반은 앤토니오 몫이고,
나머지 절반은 국가가 필요한 곳에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착하게 굴면 벌금형으로 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포셔:
국가의 몫은 그리하셔도 됩니다만 앤토니오의 몫은 안 되업니다.
샤일록:
아니오, 내 목숨과 재산을 다 가져가시오. 사면도 필요 없소.
내 집의 기둥을 빼가면 집을 통째로 가져가는 셈이지요. 내가
살아갈 방법을 앗아가 버리면 당신들은 내 목숨을 앗아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포셔:
앤토니오, 당신은 저 사람에게 무슨 자비를 베풀어 줄 거요?
그라쉬아노:
목매달 밧줄이나 공짜로 주시오. 제발 다른 것은 안 됩니다.
앤토니오:
공작 각하와 법정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좋다면
그의 재산의 절반을 몰수하지 않고 벌금형만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제가 위탁하고 있죠.
저 사람이 죽게 되면 얼마 전에 그의 딸을 훔친 그자에게
그 재산을 양도하는데 저자가 동의한다는 조건으로 말입
니다.
두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하나는 이러한 호의의 대가로
그가 즉시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죽을 때 전 재산을
그의 사위 로렌조와 딸에게 양도한다는 양도증서를
이곳 법정에서 쓰는 것입니다.
공작:
그자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내가 조금 전에 선언했던
사면을 취소하겠소.
포셔:
어떤가, 샤일록? 그래도 좋은가?
샤일록:
좋습니다.
포셔:
법정 서기는 재산양도증을 작성하라. (p.160-173, 제4막 1장)
포셔: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보수는 이미 받은 셈이지요.
당신을 구해내서 저도 기쁘니
보수는 받은 셈으로 치겠습니다.
저는 돈에 관심을 둔 적이 결코 없습니다.
다시 만나게 되거든 잊지나 말아 주세요.
잘 지내십시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바싸니오:
재판관님, 억지로라도 좀 더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청컨대 보수가 아니면 존경의 표시로라도 저희가 드리는
기념품을 받아주세요. 제발 두 가지만 들어주세요.
저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과 저의 실례를 용서해주
신다는 것 말입니다.
포셔:
이처럼 고집을 부리시니 부탁대로 하겠습니다.
이 장갑을 주시면, 당신의 호의를 생각해서 제가 끼겠습니다.
그리고 우정의 징표로 당신의 이 반지를 가져가겠습니다.
손을 뒤로 빼지 마십시오. 다른 것은 필요없습니다.
우정상 이 정도는 거절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바싸니오:
이 반지 말씀입니까? 애석하게도 이건 싸구려입니다.
창피하게 이것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포셔: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이것만 갖겠습니다.
이것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요.
바싸니오:
이건 가치가 있다기보다는 사연이 있는 반지 입니다.
방을 붙여서라도 베니스에서 가장 비싼
반지를 구해드리겠습니다.
포셔:
아니 이제 보니 당신은 말로만 선심을 쓰는 분이로군요.
나더러 부탁하라고 해놓고, 거지처럼 동냥을 했다간
어떻게 거절당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군요.
바싸니오:
재판관님, 이 반지는 제 결혼반지입니다.
아내가 이걸 끼워주며, 이걸 팔아먹거나, 남에게 주거나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저한테 맹세하게 했습니다.
포셔:
많은 남자들이 주기가 아까우면 그런 변명을 늘어놓죠.
당신 부인이 미친 여자가 아니라면
내가 이 반지를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을 알고는,
그걸 나한테 주었다고 해서 끝까지 심통을
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앤토니오:
여보게, 바싸니오. 그 반지를 저분께 주게나.
그의 공로와 내 우정도 자네 부인의 명령만큼은
되지 않는가.
바싸니오:
그라쉬아노, 달려가서 그분을 따라잡아
이 반지를 드리게.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분을
앤토니오의 집으로 모셔오게. 자 서둘러 가보게. (p.174-177, 제4막 1장)
바싸니오:
태양이 없는 밤이라도 당신만 걸어다니면,
지구 맞은편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낮이요.
포셔:
빛은 발할지라도 가벼운 여자이고 싶지는 않아요.
벼운 부인은 남편 마음을 무겁게 하니까요. (p.192-193, 제5막 1장)
그라쉬아노:
저 달에 맹세코 당신 너무하는군!
정말로 그것을 판사의 서기에게 주었다니까.
당신이 그것을 그렇게 가슴 아파하니 나로서는
그것을 가져간 사람이 거세당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소.
포셔:
아니 벌써부터 사랑싸움이에요! 무슨 일이에요?
그라쉬아노:
금반지 하나 때문이죠. 네리사가 나에게 준 볼품없는
반지인데, 내 원 참, 거기에는 칼 장수가 칼끝에 새겨넣듯,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죠. "나를 사랑하고
내 곁을 떠나지 마세요."
네리사:
글귀나 가치에 대해선 왜 얘기하는 거예요?
그것을 드렸을 때 당신은 내게 명세했잖아요.
죽을 때까지 끼고 있을 것이며
무덤 속에도 지니고 있겠다고 말이에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그 격렬한 맹세를 위해서라도
그것을 소중히 간직했어야죠.
재판관의 서기한테 주었다고요? 하느님 맙소사!
그걸 가진 그 서기는 평생 얼굴에 털이 나지 않을 거예요.
그라쉬아노:
그가 살아서 어른이 되면 당연히 날 거요.
네리사:
여자가 장수해서 남자가 된다면 그렇겠죠.
그라쉬아노:
이 손에 맹세코 그것을 젊으니,
아니 애송이, 귀찮은 꼬마녀석
키가 당신만한 그 판사의 서기,
수고비로 그걸 달라고 애걸한 조잘거리는 꼬마한테
주었단 말이오.
차마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단 말이오.
포셔:
솔직히 말해서 당신 부인이 준 첫 선물,
맹세를 하고서 손가락에 끼우고
정조의 표시로 당신 살 속에 박은 그런 물건을
그처럼 가볍게 주어버리다니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저도 남편에게 반지를 드리며 절대로 빼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았습니다. 비록 그분이 여기 계시지만
감히 그분 대신 맹세하겠어요. 온 세상의 부를 다 주어도
그분은 절대로 반지를 남에게 주거나 손가락에서 빼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정말이지, 그라쉬아노,
당신은 몰인정하게 부인을 슬프게 만드셨군요.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저는 미쳐버렸을 겁니다.
바싸니오:
아, 내 왼손을 잘라버리고, 반지를 지키려다
그 손과 함께 반지들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그라쉬아노:
바싸니오도 반지를 달라고 조르는 재판관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정말이지 그는 그걸 달라고 할 만했어요.
그러자 기록하느라 약간 수고를 한 그의 서기인 꼬마도
반지들 달라고 졸랐습니다. 서기나 판사 모두 반지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않으려 했습니다.
포셔:
낭군님, 무슨 반지를 주셨어요?
설마 제가 드린 그 반지는 아니겠죠?
바싸니오:
잘못에다 거짓말까지 보탤 수 있다면
부정하고 싶지만, 당신이 보다시피 내 손가락에는
반지가 없어요, 사라져 버렸소.
포셔:
당신의 거짓된 마음도 그처럼 진실이 없는 거죠.
하늘에 맹세코 반지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
같이 잠자리에 들지 않겠어요.
네리사:
반지를 보기 전까지는
저도 마찬가지예요.
바싸니오:
사랑하는 포셔여,
내가 누구에게 그 반지를 주었는지,
내가 누구를 위해서 그 반지를 주었는지 알게 되고
또한 내가 무슨 이유로 반지를 주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반지 말고는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고
집을 피웠기에
내가 얼마나 마지못해 반지를 내주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당신의 불쾌함이 수그러들 것이오.
포셔:
당신이 그 반지의 의미를 아셨고
아니 그 반지를 드린 여인의 가치를 반만 아셨다면,
아니 그 반지를 간직하는 데 달린 당신 명예를 아셨다면,
그 반지를 그렇게 주어버리지 않으셨을 겁니다.
만일 당신이 그것을 단호하게 지키려 하셨다면
기념으로 간직한 것을 달라고 우길 정도로
그렇게 예의 없고 몰지각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네리사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틀림없이 어떤 여자가 그 반지를 가져간 거예요!
바싸니오:
아니오, 부인. 내 명예를 걸고, 아니 내 영혼을 걸고
여자한테 준 것이 아니라 법학박사가 가져갔어요.
그자는 삼천 듀카트를 준다 해도 거절하고
반지만 달라고 했소. 그걸 내가 거절했더니
불쾌해하며 갔소. 내 소중한 친구의
목숨을 구해준 바로 그 사람이 말이오. 부인, 내가
뭐라고 말하면 좋겠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뒤쫓아 반지를 보냈소.
배은망덕이 내 명예를 더럽히게 할 수는 없었소.
그러니 날 용서해주시오, 부인.
밤하늘의 축복받은 촛불 같은 이 별들에게 맹세코
당신도 거기 있었다면 그 훌륭한 박사에게 그 반지를
건네주라고 졸랐을 것이오.
포셔:
그 박사를 우리 집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하십시오.
내가 아끼고 당신이 나를 위해서 간직하겠다고 맹세한
그 반지를 그가 가져갔으니,
저도 당신처럼 후하게 인심을 쓸 겁니다.
그자가 원하면 뭐든지, 제 몸도, 남편의 침실도 주겠어요.
확언하건데, 그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 할 것 같아요.
하루 저녁이라도 집을 비우지 마세요. 눈이 백 개 달린
아거스처럼 저를 감시하세요. 그렇지 않고 저 혼자 있게 되면
아직은 깨끗한 제 정조에 걸고 말씀드리지만
그 박사와 동침할 겁니다.
네리사:
저도 그의 서기와 그럴 겁니다. 그러니 제 자신의 정소를
저로 하여금 어떻게 돌보게 할지 잘 생각해보세요.
그라쉬아노:
뭐 당신 좋을 대로 하시오. 그렇지만 나한테 들키는 날에는
그 젊은 서기의 펜대를 분질러버릴 것이오. (p.194-199, 제5막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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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1616년 4월 23일)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잉글랜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이주하고서 본격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일약 명성을 얻었고, 생전에 '영국 최고의 극작가' 지위에 올랐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처럼 인간 내면을 통찰한 걸작을 남겼으며, 그 희곡은 인류의 고전으로 남아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다. 당대 여타 작가와 다르게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자연 그 자체에서 깊은 생각과 뛰어난 지식을 모은 셰익스피어는 당대 최고의 희곡 작가로 칭송받는다.
.................................
베니스의 상인 - 셰익스피어 (권오숙 옮김, 서연바람)
베니스의 상인 - 셰익스피어 (신상웅 옮김, 동서월드북)
베니스의 상인 - 셰익스피어 (이경식 옮김, 문학동네)
베니스의 상인 -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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