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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코 - 고골 (오정석 옮김, 산호와진주)

by handaikhan 2024. 2. 28.

고골fl 단편선

 

네프스키 거리

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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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 - 코 (1836년)

 

3월 25일, 페테르부르크에서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보즈네센스키 거리에 살고 있는(그의 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이발소 간판에도 묽게 비누거품을 칠한 신사의 얼굴과 '검은 점을 빼드립니다'라는 글귀만이 보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일찍 눈을 떴다. 따끈한 빵 냄새가 풍겨 왔다. 그는 침대에서 비스듬히 몸을 일으켰다. 커피를 몹시 좋아하는 그의 뚱보 마누라가 페치카에서 마침 다 구워진 빵을 들어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보! 프라스코비야 오시포브나! 오늘은 커피를 안 마실래."

이반 야코블레비치가 말했다.

"대신 양파가 들어 있는 따뜻한 빵과 차를 마시고 싶은데...."

사실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빵과 커피를 다 먹고 싶었지만, 그의 마누라가 먹는 것에 욕심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두 가지를 요구할 수가 없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빵이나 실컷 먹으라지. 오히려 나한테는 그게 더 잘됐지 뭐.'

프라스코비야 오시포브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커피가 한 잔 남게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서 그녀는 식탁에다 빵 한 덩이를 휙 던져 주었다.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예의를 갖춰 어깨 위에 단정하게 실내복을 걸치고 식탁 앞에 앉았다. 그는 양파와 빵에 소금을 뿌린 다음 칼을 들고 거드름을 피우며 빵을 자르기 시작했다.

빵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자 그는 그 속을 힐끗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칼끝으로 조심조심 그것을 헤집고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았다.

"꽤 단단하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뭘까?"

그는 마침내 손가락을 얺어 그것을 끄집어냈다.

"코다!"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얼른 두 손으로 그것을 밀어 넣고는 눈을 비비며 다시 만져 보았는데 역시 그것은 코, 사람의 코가 분명했다. 더군다나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코였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그의 마누라가 터뜨린 분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 당신! 도대체 어디에서 남의 코를 잘라온 거야?"

그녀는 화가 치민 음성으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사기꾼에 술주정쟁이 같으니라고! 내가 직접 당신을 경찰에 고발해야겠어! 강도도 이만저만한 강도가 아니군! 면도할 때 당신이 남의 코를 힘껏 잡아당긴다는 말은 이미 세 사람한테서나 들었어...."

그러나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이 코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면도를 하러 오는 8급 관리 코발로프의 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179-182)

 

8급 관리 코발로프는 이른 아침 눈을 드자마자 한껏 숨을 내쉬며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아침에 눈을 뜨면 늘 하는 버릇이었다.

코발로프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탁자 위에 놓인 거울을 집어들었다. 어젯밤에 돋은 콧등 위의 여드름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코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주 편평해진 것이 아닌가! 깜작 놀란 코발로프는 물을 가져오라고 해 눈곱을 닦고 다시 거울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코는 그 자리에 없었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손으로 만져 보기도 했고, 몸을 꼬기도 했지만 꿈은 아닌 듯했다. 코발로프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온몸을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코는 없었다. 그는 하인에게 급히 옷을 가져오게 하여 걸쳐 입기가 무섭게 경찰서장에게로 달려갔다. (p.189-190)

 

코발로프 소령이 페테르부르크에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자기 관등에 맞는 지위를 구하려고 올라온 것이었다. 어느 곳의 부지사나 쟁쟁한 관청의 감찰관 정도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코발로프 소령이 결혼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다만 신부에게 20만 루블 정도의 지참금이 붙어 있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 소개하면 제법 잘 생기고 반듯하게 균형 잡힌 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가 보기 흉할 만큼 편평하고 반들반들해진 것을 발견한 순간,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독자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192)

 

"코가 없어졌으면 다른 거라도 대신 붙어 있어야 할 것 아냐! 그런데 이건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으니...."

그는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면서 제과점ㅁ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앞으로 누구를 만나더라도 전혀 못 본 체하고 또 아무에게도 웃어 보이지 않으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것은 평소 그의 행동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어느 집 문 밖에서 못이 박힌 듯 우두커니 서고 말았다. 상식적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바로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현관 앞에 개인용 마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의 한 신사가 몸을 구부리고 뛰어내려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그가 바로 다름 아닌 소령 자신의 코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놀라움과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괴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는 눈앞의 모든 것이 몽땅 뒤집어진 것만 같아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이 후들거리면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코가 마차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결심했다.

2분 정도 지나자 코, 즉 신사가 돌아왔다. 코 신사는 커다란 깃을 세우고 금실로 수놓은 제복에 양가죽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벨트를 매고 있었다. 깃이 달린 모자로 보아 그가 5급 관리의 신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밖의 모든 점으로 미루어볼 때 그는 누군가를 방문하러 온 것이분명했다. 코 신사는 좌우를 한 번 둘러보더니 마부에게 소리쳤다.

"마차를 이리 갖다 대거라!"

코 신사는 마차에 올라앉자 곧 어디론가 떠나가 버렸다. (p.194-196)

 

"조금 이상한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그러니까...., 당신은 본인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계실 듯한데요. 그런데 이런 성당 안에서 뵙게 되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p.198)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코 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코발로프 소령은 위엄 있게 보이려고 애쓰며 말했다.

"오히려 제가 당신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문제는 지극히 명백한 것 같은데요.....굳이 제 입으로 분명하게 말해 달라고 하신다면....., 당신은 다름 아닌 내 코가 아닙니까?"

코 신사는 약간 얼굴을 찌뿌리며 소령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무언가 잘못 생각하신 모양이군요. 이것 보세요!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입니다. 더군다나 나하고 당신 사이에는 어떤 밀접한 관계도 있을 수 없어요. 당신 제복에 달린 완장만으로도 나와는 다른 관청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군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코 신사는 소령을 외면하고 다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코발로프 소령은 어리둥절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때 가볍게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온몸을 레이스 깃으로 장식한 중년의 부인과 날씬한 허리에 매우 돋보이는 새하얀 옷을 입고 만두처럼 부풀어 오른 크림 빛 모자를 쓴 가냘픈 몸매의 부인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풍성한 구레나룻에 한 다스는 되어 보이는 여러 가지 깃을 목에 두른 훤칠한 신사가 따라 들어왔다. 신사는 걸음걸이를 멈추고 담뱃갑을 열었다.

코발로프 소령은 부인들의 곁으로 다가서서 옷깃을 보기 좋게 약간 뒤로 잡아당기고 금줄이 늘어진 복장을 가지런히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미소 띤 얼굴로 목을 세워 좌우를 둘러보고는 날씬한 부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봄꽃처럼 고개를 숙인 뒤 희다못해 거의 투명하게 보이는 양초 같은 손을 이마로 가져갔다. 코발로프 소령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그녀의 하얀 턱과 초봄에 피어나는 장밋빛 뺨이 모자 밑으로 살짝 드러났을 때, 더욱 환하게 퍼졌다.

그 순간 그는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흠칫하면서 물러났다. 코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는 제복을 입은 신사를 몰아붙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너는 이렇게 5급 관리인 척하고 있지만 비열한 사기꾼일 뿐이다! 너는 내 코가 아니냐?'

이렇게 결심하고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코 신사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아마도 다시 누군가를 방문하려고 마차를 타고 가 버린 것 같았다. (p.200-202)

 

"아아! 맙소사! 이렇게 기막힌 노릇이 어디 있담! 한쪽 팔이나 한쪽 다리가 없어진다고 해도 아마 이보다는 나을거야. 양쪽 귀가 없어져도 볼품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코가 없어서야 도대체 뭐가 되느냔 말이야. 부엉이라고 보자니 부엉이도 아니고, 사람이라고 보자니 사람도 ㄷ아니고, 아무런 쓸모도 없는걸! 더군다나 전쟁이나 결투에서 떨어져 나갔다거나, 아니면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러서 이렇게 됐다면 또 모르지만, 이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전혀 영문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지! 한 푼의 대가도 없이 그냥 잃게 되었으니, 나 참 기가 막혀서....아니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혼잣말을 계속했다.

"코가 없어지다니, 믿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해. 이건 분명히 내가 꿈을 꾸고 있거나 환상일 거야. 어쩌면 면도를 하고 나서 물을 마신다는 게 보드카를 마신건지도 몰라. 그 어리석은 이반이 보드카인 줄 모르고 준 것을 그냥 마셔 버렸는지도 모르지."

코발로프 소령은 자기가 정말 취했는지 확인해 보려고 자기 볼을 힘껏 꼬집어보았다가 너무 아픈 나머지 '아얏!' 하고 비명을 지를 번했다. 여하튼 아픈 것으로 보아 자신이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조금씩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처음에는 혹시 코가 제자리에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가늘게 뜨고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흠칫 뒤로 물러서며 중얼거렸다.

"이거야말로 정말 볼썽사납군!"

사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단추나 은수저, 혹은 시계 따위가 없어졌다고 해도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 코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을까? 더군다나 이번 일은 자기 집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가? 코발로프는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하나의 추측에 도달했다. 그것은 이 사건의 원인이 대령 부인인 포드토쉬나라는 것이었다. (p.221-223)

 

이렇게 말하면서 경찰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종이에 싼 코를 꺼냈다.

"맞아요. 바로 이거요!"

코발로프는 소리쳤다.

"틀림없어! 우선 같이 차라도 한잔하시죠!"

"감사합니다만, 그럴 수는 없군요. 저는 지금 교도소에 가 봐야 하거든요. 그런데 요즘 식료품 값이 무섭게 오르고 있더군요....우리 집에는 장모님이 와서 얹혀살고 있고 아이들도 많아서 언제나 시끌벅적하답니다. .뭐, 큰놈은 무척 영리해서 장래가 촉망됩니다만, 교육비를 댈 재간이 없어서 말입니다...."

코발로프는 그의 의도를 눈치 채고 탁자 위에 있던 10 루블 지폐를 집어서 경찰의 손에 쥐어 주었다. 경찰은 오른발을 뒤로 빼면서 인사를 하고는 문 밖으로 나갔는데, 그와 거의 동시에 거리에서 마차를 가로수에 들이박은 어느 농부를 훈게하는 경찰의 목소리가 코발로프의 귀에 들려왔다.

코발로프 소령은 경찰이 돌아간 뒤에도 얼마 동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몇 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는 사물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있게 되었다. 그가 이처럼 무의식 상태에 빠져든 이유는 그의 기쁨이 전혀 뜻밖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코를 움켜쥐었던 손을 펴고 두 손을 한데 모아 그 위에 다시 찾은 코를 올려놓고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맞아! 내 코야! 내 코가 틀림없어!"

코발로프는 다시 소리쳤다.

"여기 왼쪽에 어제 생긴 여드름도 그대로 있군!"

코발로프 소령은 너무도 반갑고 기쁜 나머지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일이란 무엇이든지 오래 계속되지는 않는 법이다. 기쁜 일도 다음 순간에는 그전처럼 그렇게 생생하지 못하고, 또 다음 순간에는 더욱 시들해져서 마침내는 사사로운 감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조그마한 돌을 물에 던졌을 때 생긴 파문이 결국은 다시 유리처럼 매끈한 수면에 묻혀 버리는 것과 같다. 코발로프 소령은 깊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건이 아직도 완전하게 마무리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확실히 코는 찾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다시 제자리에 붙여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만약 코가 붙지 않으면 어떡 하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은 그는 그만 얼굴이 창백해졌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인 그는 책상으로 달려가 거울을 꺼내 들고 어떻게든 비뚤어지지 않게 코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코를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이럴 수가! 코가 붙질 않아...!"

그는 코에 더운 입김을 불어 따뜻하게 한 다음 양 볼 사이의 그 매끄러운 자리에 다시 한 번 코를 갖다 댔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코는 붙지 않았다.

"이런, 바보 같은 코 같으니라구! 가만히 좀 있어!"

그는 코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코는 마치 병뚜껑과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책상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소령의 얼굴은 경련을 일으키며 일그러졌다.

"정말 붙지 않을 것인가?"

그는 낙심해서 중얼거리며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코를 제자리에 얹어 보았으나 역시 헛수고였다. (p.226-230)

 

"안되겠습니다. 이대로 그냥 두는 편이 더 좋을 것 같군요.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더 나빠질지도 모르거든요.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붙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해롭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코 없이 제가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코발로프가 말했다.

"어떤 경우라도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예요. 정말이지 이런 몰골로 어디를 다닌단 말입니까? 나는 훌륭한 사람들과 친분 관계가 있답니다. 당장 오늘 저녁만 해도 두 군데나 방문해야 합니다. 5급 관리 부인 체흐타례바라든가 대령 부인 포드토쉬나라든지...., 하긴 포드토쉬나 부인에게 이런 일을 당했기 때문에 경찰서에서나 만나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만날 일이 없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제발 부탁입니다!"

코발로프는 애원하다시피 했다.

"무슨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어떻게든 붙여만 주십시오. 보기 좋든 흉하든 상관없어요. 그저 떨어지지만 않으면 됩니다. 조금 위험할 것 같으면 미리 손으로 가만히 누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앞으로 춤추는 것도 그만두겠습니다. 조심성없이 행동하다가 또 잘못되면 큰일이니까요. 그리고 진찰료는 힘닿는 한 최대한 생각해 드릴 테니 그 점은 조금도 염려 마시고...."

"이렇게 말하면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의사는 크지는 않지만 힘차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돈 때문에 의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과 인술에 어긋나거든요. 물론 왕진료를 받기는 합니다만, 그건 그것을 거절함으로써 오히려 환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가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는 당장이라도 당신 코를 붙여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안 붙인 것만도 못할 엇입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말해도 당신은 내 말을 못 믿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자연스럽게 나을 수 있도록 그냥 놔두세요. 그 자리를 찬물로 자주 씻으십시오. 사실 코가 없어도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건강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코는 병에 넣어서 알코올에 담가 두시지요. 아니 그것보다 병 속에 독한 보드카를 넣고 따뜻한 식초를 타 두는 편이 낫겠군요. 그렇게 상하지 않게 보관해서 팔면 상당한 액수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값을 비싸게 부르지만 않는다면 저라도 살 수 있고요."

"안 돼! 안 돼! 무슨 말씀을!"

코발로프 소령은 펄쩍 뒤며 소리쳤다.

"당신은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실례했습니다."

의사는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성의껏 봐 드리려 했는데 할 수 없군요! 하지만 적어도 내가 노력했다는 것만은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의사는 점잔을 빼면서 방에서 나가 버렸다. 코발로프는 의사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무감각 상태에서 겨우 눈에 들어온 것은 의사가 입고 있던 까만 프록코트의 소매에서 비어져 나온 눈처럼 흰 셔츠뿐이었다. (231-234)

 

세상에는 참으로 터무니 없는 일도 있다. 가끔씩은 곧이 듣기 어려운 일도 있는 것이다. 한때 마차를 타고 5급 관리 행세를 하고 다니며 온 도시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코가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제자리에 , 그러니까 코발로프 소령의 양 볼 사이에 들어가 앉은 것이다. 어느덧 4월 7일이었다. 그가 잠에서 깨어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니 코가 제자리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코다!"

코발로프 소령은 손으로 코를 잡아 보았다.

"틀림없이 코다!"

그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온 방 안을 맨발로 뛰어다니려 했지만 이반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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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코를 나타내는 러시아어는 HOC인데 이 단어를 거꾸로 배열하면 꿈을 의미하는 COH이 된다. 주인공 코발로프 소령의 코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오는 것은 곧 그가 꿈을 꾸고 있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도.

 

코발로프가 보여주는 하급관리의 유형은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여 변화보다 현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속물이다. 코발로프는 자신이 5등관이 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는 출세 욕망이 환상으로 나타난 그의 꿈에서 5등관 관리의 옷을 입은 코가 던지는 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없어졌던 코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결말은 코발로프가 5등관이라는 꿈에서 벗어나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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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 1809년 3월 20일 ~ 1852년 2월 21일)

러시아의 작가이며 극작가이다.

1809년 우크라이나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818년 풀타바 군립 학교를 거쳐 1829년 네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젊었을 때 배우를 지망했으나 성공하지 못해 문학으로 전환한 고골은 철학, 문학, 역사에 관심을 두었고 이후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 1827년에 페테르스부르크로 이주하여 우크라이나 인민의 생활을 취재한 소설 《디카니카 근교 농촌 야화》를 출판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으며, 이때부터 알렉산드르 푸시킨을 사귀고 이후 그가 남긴 대작의 소재는 거의 대부분 푸시킨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1834년 페테르스부르크 대학의 조교로서 세계사를 강의했으나 실패하여 곧 퇴직하였다. 1836년 희극 《감찰관》을 알렉산더 극장과 모스크바에서 상연하였다. 이는 진보 세력의 절찬을 받았지만, 지배 세력으로부터는 공격을 받게 되어 그는 로마로 갔다. 그 후 계속하여 스위스·파리·로마 등지에 거주하였다. 1847년에 또 하나의 대표작 《결혼》을 쓰고, 같은 시기에 로마에서 명작 《죽은 영혼》의 제1부를 완성했고 제2부의 집필을 시작하며 1848년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건강을 해친 뒤였다. 결국 《죽은 영혼》을 모스크바에서 완성했으나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정신적 고뇌와 사상적 동요로 인해 정신 착란에 빠져 원고를 불 속에 던지고 10일간의 단식으로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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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 고골 (조주관 옮김, 민음사)

(이기주 옮김, 펭귄클래식)

(김학수 옮김, 동서월드북)

(김민아 옮김, 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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