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 백야 ( 1848년)
이 글을 읽는 이여, 그날 밤은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다 젊었을 때나 경험할 수 있었던 그런 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맑은 밤하늘엔 별이 총총히 빛나고.....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하늘 아래 못되고 변덕스러운 인간들이 살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이여, 이런 의문은 사실 참으로 순진한 질문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의문이 너무도 자주 든다는 것입니다. 못되고 변덕스러운 인간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내가 보인 품위 있는 행동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꼭두새벽부터 나는 알 수 없는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잖아도 외톨이인 나를 모든 사람들이 버리고 기피한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들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라니? 그렇습니다. 페테르부르크에 산 지 팔 년이나 되었지만 나는 아직 단 한 사람도 사귀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게는 인간관계가 필요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게 없어도 나는 페테르부르크를 다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 페테르부르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교외에 있는 별장으로 가버리자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는 느낌이 든 겁니다. 혼자 남아 있다는 게 너무도 무서워져 꼬박 사흘 동안 거리를 헤맸습니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견딜 수 없는 우울증에 빠져들었습니다. 넵스키 대로에도 가보고, 공원에도 가보고 강변도로에도 나가보았지만 일 년 내내 일정한 시간대가 되면 마주치곤 하던 낯익은 얼굴은 하나도 눈에 듸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나를 알 턱이 없지만 나는 안 그렇습니다. 쬐금은 알고 있는 거지요. 그들의 표정을 연구했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즐거워하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고 슬픈 기색이면 나도 침울해지곤 했습니다. 폰탄카 강변에서 매일 일정한 시간에 나타나던 한 노인네는 우정 같은 것을 나누었습니다. 노인네의 표정은 근엄했고 생각이 많아 보였습니다. 노인네는 항상 뭔가 중얼대면서 손잡이가 금빛으로 번쩍이고 마디가 긴 단장을 오른손에 들고 외손을 휘휘 저으며 걷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내 존재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는 내 마음속에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폰탄카 강의 일정한 장소에 일정한 시간에 내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노인네도 마음이 허전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다, 특히 우리 둘 다 기분이 좋을 때면 서로 지나치면서 인사를 할 뻔했던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가 꼬박 이틀간 서로 보지 못하다가 사흘째 되던 날에 보았을 때도 우리는 모자를 벗어 인사까지 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모자 가장자리까지 올라갔던 손을 내리고 마음만 간직한 채 스쳐 지나갔습니다. (p.11-13)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내가 웃는 건 당신 스스로 너무 자신을 구속하기 때문이에요. 한번 그렇게 해보세요. 어쩌면 거리에서도 성공할지 몰라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단순할수록 좋아요. 마음씨 고운 여자라면 머리가 모자라거나 하필 그때 화낼 일이 없는 이상 당신이 그처럼 조심스럽게 표현한 두 마디 말도 해주지 않고 당신을 쫓아버리는 짓은 안 할 거예요....아 참, 내 정신 좀 봐! 물론 당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판단하기에 따라서는 말이죠.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p.25-26)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잘 알겠습니다만 난 내 인생의 황금기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알아요. 그리고 그걸 알고 있다는 자각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하느님은 내가 그런 걸 얘기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내게 당신같이 착한 천사를 보내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신 곁에 앉아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게 두렵습니다. 또다시 고독, 케케묵은 삶, 무의미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니까요. 그리고 내가 당신 곁에서 행복해했던 게 꿈이 아닌데 뭐 하러 꿈을 꾸겠습니까! 당신은 날 다짜고짜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내게 내 인생에서 비록 이틀 밤밖에 안 되었지만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나스텐카,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복 받을 겁니다." (p.52)
"아, 나스텐카, 나스텐카! 당신 덕분에 난 나 자신과 오랜만에 화해했습니다. 이시겠어요? 난 더 이상 나 자신에 대해 예전처럼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니까 살아가면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일은 그만둘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제발 내가 당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스텐카. 난 사실 가끔 우울해질 때가 있거든요...그럴 때 나는 현실의 삶을 살아갈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현실에 대한 리듬이나 감각을 몽땅 상실해버리니까요. 그러다 끝내 나 자신을 저주하고 맙니다. 환상에 묻혀 며칠 밤을 지새우고 나면 제정신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땐 정말 미칩니다! 주위의 인파가 거센 회오리바람처럼 맴돌며 홱홱 소리를 내는 게 들려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고, 사람들이 살아가며 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틀에 박히지 않았어요. 또 꿈이나 환상처럼 산산이 부서지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끝없이 새로움과 젊음을 이어나가는 삶이에요.. 그 어떤 순간도 같은 게 없습니다. 그에 비해 환상은 얼마나 음울하고 또 천박할 정도로 단조롭습니까. 그림자, 이데아의 노예지요. 갑자기 태양을 가려서 그토록 자신의 태양을 끔찍이 아끼는 진정한 페테르부르크인의 마음에 우울을 심어 압박하는 한 점의 구름입니다. 그러면 환상도 이내 우수에 잠기고 말죠! 이 그칠 줄 모르는 환상이 긴장을 거부하다 마침내 지쳐 사라져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예전의 꿈을 떨쳐버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전의 꿈들은 산산이 부서져 먼지가 되고 맙니다. 만일 다른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부서진 파편들을 모아 삶을 다시 꾸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영혼은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하고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꿈꾸는 주인공은 잿속을 헤집듯이 혹시 불씨가 살아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부질없이 옛 꿈속을 헤집습니다. 불씨를 찾아 훅훅 불어 살린 후 차가워진 심장을 데우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예전에 영혼을 감동시켰던 소중한 것, 피를 끓게 하는 눈물을 쏟게 하고 또 그렇게 잘도 속이던 소중한 모든 것을 부활시키려 하는 겁니다. 나스텐카, 내가 어떤 상태에까지 이르렀는지 알겠지요? 난 어느새 내가 느낀 걸 기념하려고 하나 봅니다. 예전에는 지극히 소중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인데도요. 기념한다는 건 어리석은 꿈을 떠올려보는 겁니다. 굳이 그래보는 건 어리석은 꿈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되살릴 방법은 없습니다. 물론 꿈이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요. 난 요즘 회상하길 좋아합니다. 또 일정한 시간에 내가 언젠가 행복을 느꼈던 곳에 가서 흘러간 과거에 맞추어 현재를 설계하길 좋아합니다. 자주 아무런 목표나 목적도 없이 페테르부르크의 골목길과 거리를 따라 우울하고 서글픈 기분이 되어 그림자처럼 걸어다닙니다. 만감이 교차하지요! 예를 들어 정확히 일 년 전 바로 이 시간에 바로 이 보도를 따라 홀로 쓸쓸히 걸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과 똑같이! 당시에도 애잔한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나을 게 없었지요. 그렇기는 해도 산다는 게 조금은 낫고 수월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날 붙들어매는 어두운 생각은 안 했던 것 같고요. 양심의 가책, 밤이나 낮이나 날 괴롭히는 음울한 가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묻지요. '네 꿈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머리를 흔들며 대답합니다. '세월 참 빨리도 간다.' 다시 자신에게 묻습니다. '그래 그동안 뭘 했는가?'라고 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에게 말합니다. '참으로 각박해진 세상이다.'
세월이 흐르면 쓸쓸한 고독이 밀려오고 목발을 짚은 노년이 부들부들 떨며 오겠지요. 그 뒤를 애수와 우울이 따를 거고요. 환상의 세계는 빛을 잃고 서서히 굳어져 마침내 시들고 말 겁니다. 꿈 또한 나뭇잎이 노래져 나무에서 떨어지듯 툭 떨어지고 말겠지요.....아, 나스텐카! 홀로 된다는 것, 애착을 가질 대상이 하나도 없이 완전히 홀로 된다는 건 정말 서글픈 일입니다.....왜냐하면 잃어버린 모든 것은 하나같이 부질없고 공허한 한 줄기 꿈에 불과하니까요!" (p.53-56)
어떤 책이 가장 맘에 들더냐고 묻기에 <아이반호>와 푸시킨이라고 대답했어요. (p.6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아이반호 - 월트 스콧 (서미석 옮김, 현대지성)
푸슈킨 선집 - 알렉산드르 푸쉬킨 (최선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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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불행할 때 타인의 불행에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 감정은 흩어지는 게 아니라 한 곳에 모이는 법이니까요.... (p.79)
나의 밤들은 아침에 끝났습니다. (p.112)
나는 미트료나를 쳐다보았습니다......아직도 동작이 빠르고 젊은 중늙은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갑자기 시선이 흐리멍텅하고 얼굴엔 주름살이 가득한, 허리가 굽고 늙어빠진 할망구로 보였습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방 또한 노파만큼이나 늙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벽이며 바닥이며 할 것 없이 전부 빛이 바랬고 모든 게 광채를 잃어버렸습니다. 거미줄은 더 많아졌습니다.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건녀편 집 또한 낡고 퇴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기둥의 회반죽은 떨어져나가고 서까래는 시커멓ㅇ게 얼룩이 진 데다 군데군데 균열이 생겼고 화사한 진노랑색이던 벽도 얼룩덜룩 색깔이 변해버린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구름 사이로 햇살이 잠시 비치다가 다시 비구름에 가렸기 때문인지 내 눈에는 모든 게 다시 흐릿해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눈앞에 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너무 무뚝뚝하고 침울하게 잠깐 보여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정확히 십오 년 후의 내 모습, 지금의 나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외롭고, 똑같은 방에서 세월이 흘러도 조금도 영리해지지 않은 마트료나와 같이 있는 내 모습을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받은 모욕을 기억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나스텐카! 눈부시도록 잔잔한 그대의 행복에 먹구름이 드리우도록 한다면, 그대를 통렬히 비난한 후 그대의 심장에 근심이 스며들게 한다면, 그대의 심장을 양심의 가책으로 멍들게 한다면, 그대의 심장을 지극히 행복한 순간에 고통스럽게 뛰도록 만든다면, 그대 스스로 곱게 땋은 머릿단에 꽂은 예쁜 꽃들 중 단 한 송이라도 그대가 그 사람과 함께 제단으로 향할 때 내가 꺾어버린다면...아, 아니야, 그럴 순 없어, 절대로! 그대의 행복은 찬란할 거야. 그대의 사랑스러운 미소는 환하고 잔잔할 거야. 그대는 축복받을 거야. 그대는 다른 심장, 외로운 심장, 고마워할 줄 아는 심장에게 일 분의 지극한 행복, 행복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야!
오, 하느님! 꼬박 일 분간의 지극한 행복! 인간의 삶 전체에 비춰볼 때 과연 적은 것일까요? (p.115-116)
<작품 해설>
<백야>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페테르부르크라는 인위적으로 건설된 대도시에서 화려한 생활을 영위하는 귀족들과는 달리 세인의 관심 밖에서 초라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이른바 '소시민' 또는 '작은 인간들'의 애환이다. 주인공과, 주인공에게 사흘간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맛보게 해준 여주인공은 가난하고 외롭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여느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살고 싶은 꿈이 있고,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도 있다. 그러나 대도시는 이들에게 그런 꿈을 펼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따라서 주인공은 꿈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자 애써보지만 진정한 극복은 불가능하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바로 현실이고 꿈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가 공상, 꿈의 세계를 대변한다면 그에게 일순간이나마 사랑의 희열을 체험하게 해주는 여주인공 나스텐카는 현실을 대변한다. 그녀가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함께 미래를 꿈꾸는 것도 잠깐, 그녀는 결국 나타난 약혼자의 품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 마카르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그는 무엇보다도 공상에서 위안을 찾는 '꿈꾸는 인간'이다. 반면에 마카르는 뚜렷한 직장이 있고 꿈을 꾸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사랑하는 여성을 떠나보내고 비통해하지만, 마카르의 슬픔이 끝없는 좌절과 후회라면 <백야>의 주인공의 슬픔은 일순간이나마 행복을 맛보게 해준 여성에 대한 고마움으로 승화된 '절제된 슬픔'이다.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오, 하느님! 꼬박 일 분간의 지극한 행복! 인간의 삶 전체에 비춰볼 때 과연 적은 것일까요?" (p.162-16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가난한 사람들 - 도스토옙스키 (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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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1821년 11월 11일/구력 10월 30일 ~ 1881년 2월 9일/구력 1월 28일)
러시아의 소설가이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이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1월 11일(구력 10월 30일) 모스크바에서 모스크바 마린스키 자선 병원 의사인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와 어머니 마리아 표도로브나 사이 7남매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나 15살 때까지 생가에서 지냈다. 아버지 쪽이 귀족가문 출신이었지만, 당시 러시아에서 의사는 중인 계급이었으므로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매우 거친 성격이었으므로, 자식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했다.
도스토옙스키는 1834년 열세 살 때 형 미하일과 함께 모스크바의 체르마크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수학하였다. 1837년 온화하고 자애로운 성격으로 자녀들에게 천사 같은 존재였던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어머니 죽음은 가족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1837년 아버지는 장남 미하일과 열여섯 살이 된 차남 도스토옙스키를 공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보냈다.
1838년 도스토옙스키는 공병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여 군사 교육을 받았다. 소심하고 예민하며 병약했던 소년 도스토옙스키에게 군사 훈련은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문학은 유일한 위안으로,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습작을 서로 평가하고 논쟁을 벌이곤 하였다. 낭만주의 사조가 유행하던 시기로 도스토옙스키도 이 때 프리드리히 실러에 빠져 있었다.
1839년 6월 6일, 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가 영지의 농노들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는 도스토옙스키의 어머니가 죽은 후 영지로 내려가 생활했는데, 농노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던 것이 죽음의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던 형제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전기 작가 O. 밀레르에 따르면 이 시기에 도스토옙스키를 평생 괴롭힌 간질 발작이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1841년 8월, 도스토옙스키는 공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성 제도국 소위로 임관하였다. 그러나 문학으로 기우는 열정을 저버리지 못하고, 작가가 되어 문학에 전념하기 위하여 1844년 10월 제대하였다.
1846년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로 비평가 비사리온 벨린스키로부터 '제 2의 고골'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하였다. 데뷔 전에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직접 작품을 건네받아 읽었던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는 감동을 받은 나머지 밤 중에 그의 집을 찾아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데뷔는 화려했을지 모르나, 이어서 발표한 《백야》와 《분신》 등은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 때부터 서구주의 사상에 끌리고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미하일 페트라솁스키의 모임에 가담하였다.
젊은 시절 도스토옙스키는 페트라솁스키를 중심으로 작가 등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급진적 정치 모임에 참가하였다. 당시 차르 니콜라이 1세는 첩자를 보내 정치 모임들을 감시하였는데, 도스토옙스키는 모임에서 절대 왕정의 입장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고골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불온문서로 간주되었던 벨린스키의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것이 원인이 되어 1849년 4월 23일 5시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니콜라이 1세는 체포된 지식인들을 사형에 처할 생각은 없었으나, 당시 확산되고 있던 급진주의 정치 모임들에 대해 경고하고자 직전에 특별 사면할 계획으로 사형을 선고하였다.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회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고,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형 집행이 중지되고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것으로 감형되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나온 이 경험으로 인하여 몇몇 사람은 공포와 충격으로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도《백치》 등의 작품에 사형 집행 직전의 심정을 묘사하는 등 이 사건은 그의 작품 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시베리아 유형은 감옥 수형과 출소 후에 수도로 복귀하지 못하고 시베리아에서 복무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는데, 도스토옙스키는 1854년까지 옴스크 감옥에서 4년간 수형 생활을 한다. 성서 이외에는 일절 출판물이 허용되지 않았던 환경에서 성서에 대한 깊은 독서와 감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혔던 죄수와 민중들의 생생한 삶이 그로 하여금 사회주의자에서 기독교적 인도주의자로의 사상적 변화를 겪게끔 하였다. 이 시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후일 《죽음의 집의 기록》을 펴냈다. 출소 후 세미팔라틴스크 수비대에서 4년 간 사병으로 근무하며 당시 남편이 있었던 여성 마리야 이사예바를 만난다. 마리야의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자 도스토옙스키는 1857년 당시 29세였던 그녀와 결혼한다. 그는 가까스로 1859년에 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한 뒤 10년에 가까운 문학적 공백을 메꾸고자 의욕적으로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다.
1861년 형과 함께 잡지 《시대》를 발간하고, 《학대받는 사람들》, 《죽음의 집 기록》을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나, 이듬해 발행 금지를 당하였다. 1864년 형과 함께 새로운 잡지 《세기》를 창간 하였으나 실패하여 큰 빚을 지게 되었다. 1866년 걸작 《죄와 벌》을 완성하였다. 1867년부터 외국, 특히 드레스덴에 거주하면서 《백치》, 《악령》 등을 쓰고 귀국하였다. 1874년 《미성년》을 발표하여 큰 돈을 벌어 빈곤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베리아 유배 시절에 악화된 지병인 간질[1]과 취미로 즐기던 도박 등이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작품 속에 중요한 요소들로 간질과 도박 등이 자주 등장한다. 도박은 그의 인생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빚을 갚기 위해 출판사와 무리한 계약을 하여 마감에 쫓기는 나날을 보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죄와 벌》, 《도박꾼》 등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구술 필기의 형태로 작성되었다. 속기사였던 안나 스니트키나는 훗날 도스토옙스키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소설 이외의 저서로는 《작가의 일기》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잡지 《시민》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담당했던 문예란에 게재했던 것으로, 문예 지평[3], 정치·사회평론, 에세이, 단편 소설, 강연 원고[4], 종교론[5] 등을 포함하고 있어 훗날 도스토옙스키 연구에 귀중한 문헌 자료가 되었다.
1880년 그의 최후의 걸작인 장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탈고하였다. 그 즈음에는 이미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눈이 어두워져 있었고 도스토옙스키가 침대 누워 구술한 것을 아내 안나가 속기 하여 작품을 완성했다.[6]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881년 1월 28일에 폐동맥 파열로 인하여 가족의 간호를 뒤로 하고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임종 직전 아내에게 시베리아 형무소에 있었던 시절 지니고 있었던 성경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고 같은 날 밤 11시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죽었다.[7] 유해는 같은 달 31일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넵스키 사원 묘지에 안장 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문학의 최고 거장 가운데 한 명으로 불리며 20세기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신흥 자본주의 압박 밑에서 신음하는 소시민층의 대변자인 동시에 열렬한 슬라브주의자였다. 그의 작품은 비단 문학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철학·종교·사회 문제 등 각 방면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는 《죄와 벌》(1866년), 《카라마조프의 형제》(1879년 ~ 80년) 등이 있다. 진보적 사회 운동을 하다가 탄압받은 경험이 그의 문학 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 퍼지고 있던 사회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은 지식층(인텔리겐치야)의 폭력적인 혁명을 부정하고, 기독교, 특히 정교회 교리에 바탕을 둔 기독교 사상을 담고 있다. 그의 기독교 사상은 기독교의 교리와 사상을 변증하는 호교론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이름으로 종교재판을 행한 기독교의 폭력을 비판함으로써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그의 소설은 흔히 이질적, 극단적 심리의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인간 심리에 대한 놀라운 이해력을 보여주고 당대 러시아의 정치, 사회, 정신세계 등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때로 그를 실존주의의 창시자로 여기기도 하는데, 발터 카우프만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지하실의 수기》를 "실존주의를 위한 최고의 서곡"이라 묘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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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 도스토옙스키 (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백야 - 도스토옙스키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백야 - 도스토옙스키 (채수동 옮김, 동서월드북)
도스토옙스키 전집 (열린책들 25권 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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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고전 문학 (서양) > 1. 서양 - 고전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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