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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1. 동양 - 고전 소설

고향 - 루쉰 (전형준 옮김, 창비)

by handaikhan 2024. 1. 8.

 

루쉰 - 고향 (1921년)

 

나는 혹한을 무릅쓰고, 이천여 리나 떨어진 먼 곳에서, 이십여 년 동안 떠나 있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때는 한겨울인데다가, 점차 고향이 가까워지면서 날씨마저 음울해져서, 차가운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선창 안으로 불어 들어왔다. 선창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니 음산한 하늘 아래 여기 저기 몇 개인가의 쓸쓸하고 황량한 마을이 활기 없이 가로누워 있었다. 내 마음은 슬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이것이 내가 이십 년 동안 늘 그리워하던 고향이란 말인가?

내 기억 속의 고향은 전혀 이렇지 않았다. 내 고향은 훨씬 더 좋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기억해내고 그 좋은 점을 말로 표현하려 하자 그 모습은 사라져버리고 그것을 표현할 말도 사라져버렸다. 원래부터 이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변명했다. 고향은 본래부터 이런 곳이었다고 - 진보도 없지만, 내가 느낀 바와 같은 슬픔도 마찬가지로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나 자신의 마음의 변화일 뿐이다. 나의 이번 귀향은 본래 아무런 즐거운 마음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p.49-50)

 

"큰아버지! 우린 언제 돌아오나요?"

"돌아오냐구? 넌 어떻게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돌아올 생각부터 하니." (p.62)

 

옛집은 내게서 더욱 멀어져갔고, 고향의 산천도 내게서 점점 멀어져갔지만, 그러나 나는 조금도 미련을 느끼지 않았다. 단지 사방으로 보이지 않는 높은 담에 둘러싸여 나 혼자 격리된 듯이 느껴졌고, 그러자 몹시 울적해졌다. 그 수박밭의 은목걸이를 한 작은 영웅의 영상도, 원래 그토록 선명하던 것이 갑자기 흐릿해졌고, 그러자 나는 몹시 슬퍼졌다.

어머니와 훙얼은 잠이 들었다.

나는 누운 채 배 밑바닥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길을 가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결국 룬투와 이 정도까지 격절되었지만, 우리의 후배들은 아직 한마음이다. 훙얼은 수이성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희망한다. 그들은 더 이상 나처럼, 사람들끼리 격절되지 않기를.....그러나 나는 또한, 그들이 한마음이 되려고 하다가 그 때문에 나처럼 괴롭고 또도는 삶을 사는 것은 원하지 않고, 그들이 룬투처럼 괴롭고 마비된 삶을 사는 것도 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괴롭고 방종한 삶을 사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땅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을.

희망을 생각하자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우상을 숭배하면서 언제나 그것을 잊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몰래 그를 비웃었었다.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 낸 우상이 아닐까? 다만 그의 소망은 아주 가까운 것이고 나의 소망은 아득히 먼 것이라는 것뿐이다.

몽롱한 가운데, 나의 눈앞에 해변의 초록빛 모래밭이 펼쳐졌다. 그 위의 쪽빛 하늘에는 황금빛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p.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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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魯迅, 1881년 9월 25일 ~ 1936년 10월 19일)

중국의 소설가.

본명은 저우수런(중국어 간체자: 周树人, 정체자: 周樹人, 병음: Zhōu Shùrén)이며, 자는 예재(豫才), 루쉰은 새롭게 지은 필명이다. 이외 영비(令飛), 하간(何幹) 등 100개 넘는 필명을 사용하면서 반정부 논객으로 많이 활동하였다.
중국의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저우쭤런과 생물 연구자였던 저우젠런은 그의 남동생이다.
대표작으로 『아큐정전(阿Q正伝)』, 『광인일기(狂人日記)』 등이 있으며, 특히 단편 『광인일기』는 중화민국의 봉건의 상징이었던 전통 문화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민중의 각오와 행동을 촉구하게 되는 단편소설로 <신청년>에 1918년에 수록되었다.

루쉰의 문학세계는 이 1927년을 기점으로 크게 두 시대로 분수령을 이룬다. 루쉰의 전기시대가 단편시대라면 후기는 잡감문(雜感文)의 시대이고, 전기가 계몽적이고 사실적인 인생문학이라면, 후기는 사회비판과 문학비평을 전제로 한 정치문학이다. 전기작품에는 전통적인 애수와 낭만 그리고 풍자가 특징이지만 후기작품은 맵고 신 정공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루쉰이 후기에 정치에 관심을 보이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인간혁명, 제도혁명에 전념하게 되고, 비판문학의 영역으로 사상적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말년의 루쉰은 중국의 막심 고리키라 일컬어질 정도로 많은 청년 작가들로부터 숭앙을 받았다. 헌데, 실제로 고리키가 죽은 그해에 루쉰도 죽었다. 정확히 고리키가 죽고 4달하고 하루가 지난 다음 지병으로 병상에 드러누우면서도 집필을 쉬지 않았던 루쉰은 독일인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용하다"고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1936년 10월 19일, 향년 55세로 삶을 마감했다. 당시 1만여 명의 군중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항일 통일전선 조직문제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문인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문단을 통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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